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막바지 단계로 치닫고 있다. 혁신위의 안이 모두 나오자 그 동안 변죽만 올리던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천권이 걸려 있으니 혁신위의 안이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은 당연하고, 혁신안이 나왔으니 본격적인 지분확보에 나선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안철수, 김한길, 박지원.. 똥줄이 탈만도 하다. 야당의 분열과 무능력‧무책임화에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자들이니 지지자야 어떻게 생각하던 자기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노골적으로 문재인 흔들기에 나선 ‘5시정치부회의’를 필두로 JTBC까지 이들을 밀어주니 완전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지금까지의 문재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야당의 대표로서 당의 정체성과 미래비전도 도무지 제시하지 않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선 답답하기 그지없다. 당청정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 같은 일처리는 새누리당2중대란 소리를 듣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긴 당의 정체성과 미래비전을 얘기해도 안-김-박 등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움직였으리라. 그의 입장에서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후안무치한 당청정의 지랄에 맞서지 않는 것이 불만인 지지자들로서는 죽을 맛이다. 





어느 대표인들 당이 깨지는 것을 바라겠는가. 문재인의 발목을 잡은 것이 이것이었을 터, 혁신위의 혁신안이 모두 다 나온 이상 더는 분당에 연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리라. 이런 면에서 당원과 지지자 모두에게 재신임을 물어 혁신위의 제안을 강행할 의지를 밝힌 것은 대단히 잘한 결단이다.



모처럼 문재인에게서 노무현의 향기가 난다. 둘의 리더십은 너무 다르고 비교해서도 안 되지만, 정치는 때로 선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명백한 표절인 신경숙의 경우와는 다르다). 지금은 결단의 시기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행동과 실천의 순간에 이르렀다. 지지자의 뚝심과 혜안을 믿어라.   



다만 재신임에 성공한다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이해찬에게 직접 2선 후퇴를 요청하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기득권들의 물갈이에 들어가야 한다. 호남 유권자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고 과감하게 물갈이를 단행해야 한다. 동시에 당의 정체성을 다시 좌측으로 옮겨야 한다.






미국에서 트럼프와 샌더스의 돌풍이 증명하고, 유럽에서 난민 수용이 이슈로 떠오르고, 중국경제가 경착륙을 피할 수 없는 것에서 보듯, 야당이 승리하려면 무조건 좌측으로 옮겨야 한다. 노인의 표를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란 집토끼가 최대한도로 투표소에 나오게 만드는데 달려 있다.



중도, 즉 이중개념자들은 보수와 진보의 응집력을 저울질하며 시대정신을 읽게 마련이다. 하위 90%의 돈을 상위 1%의 지배엘리트로 이전하는 체제인 신자유주의가 최후의 몸부림을 하는 것에서 보듯, 지금은 상위 1%의 부를 하위 90%에 되돌리는 진보좌파적 가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다. 그것만이 박근혜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기득권에 있으면 밑바닥의 정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밑바닥은 혁명의 불씨가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은 헬조선을 말하는 청춘들을 만나야 한다. 정치권을 어슬렁거리는 사이비 경제학자들을 내치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지식인들을 만나야 한다. 미래세대가 죽어가는 나라에 희망은 없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나라다. 오바마가 노조 가입을 독려하듯이,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문재인은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한국이 살려면 무조건 부의 재분배(소득 주도 성장도 부의 재분배가 있어야 가능하다)가 이루어져야 하고, 야당이 그것을 목표로 선거 전략을 펼쳐야 승리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하위 90%만 보라. 거기에 시대정신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으므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니, 그들에게 안달하지 말라. 만났으면 해어지는 법이다,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하늘이 2015.09.11 17:52

    도령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 글을 읽으며 속이다 후련해 지네요 ᆞ
    제발 아닌 사람들 떠나고 제대로된 정치 한번 해봤으면합니다 ᆞ그동안 문재인님 이눈치 저눈치 보느라 고생 너무 많으셨습니다 ᆞ

    이제 진짜 해야할일을 해야할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ᆞ무소의 뿔처럼 국민만 보고 가자구요 ᆞ

    • 늙은도령 2015.09.11 19:02 신고

      지금은 그래야 합니다.
      밀어붙일 때지 다 데리고 갈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마지막에 몰리니 발악을 하는 것인데 나가라고 해야지요.
      이제는 승부를 걸어야 할 때이고 문재인도 그러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댓글은.

  2. 참교육 2015.09.11 18:09 신고

    야당이라는 간판이 부끄럽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기 까지 야당이 한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지분 챙기기나 하고 야도여도 아닌 사이비는 국민들의 외면을 당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1 19:03 신고

      지금은 언론 때문에라도 아무것도 안 됩니다.
      무조건 문재인은 안 된다는 것이 여야의 기득권들입니다.
      그 동안 문재인이 참을 만큼 참았고, 명분을 쌓은 것 같습니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이지요.
      지금부터는 진짜 승부입니다.

  3. base 2015.09.11 20:09

    그 동안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는 상황이었으나 이제는 진정한 지지자를 믿고 한치의 흔들림없이 나가면 됩니다. 박원순 이재명 안희정 정청래등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겠죠..

    • 늙은도령 2015.09.11 20:18 신고

      이제부터는 정말 강하게 가야 합니다.
      이것저것 재면 안 됩니다.
      정면돌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지자들이 밀어줄 것입니다.
      노무현의 방식이 지금은 먹힙니다.

  4. 하늘이 2015.09.11 20:12

    네ᆞ울산으로 갑자기 발령이나서 이동하고 정리하고 바빠서 그동안 뜸했습니다 ᆞ그래도 매일 틈내서 글은 보고 있습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9.11 20:19 신고

      아이고.. 그렇게 먼 곳으로...
      10월9일 첫 모임을 가지려고 하는데....

  5. 불루이글 2015.09.11 20:17 신고

    이제 마지막 재신임을 받는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면

    혁신안 대로 강력히 밀어 붙혀야 합니다.

    혁신안 대로만 된다면 사이비 기득권 세력들이 설자리를 잃게 되리라 믿습니다.

    도령님 말씀처럼 1%엘리트자본가들의 부를 90%의 국민다수에게 분배 하는 강력한 정책으로 밀어 붙혀야 합니다.

    아마 처음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될테지만 밥이되든 죽이되든 조금도 주저함없이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민생고에 허덕이는 서민경제를 살릴수 있는 마지막 길이기 때문 입니다.
    좋은정보 잘보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9.11 20:20 신고

      네, 이제는 강력하게 나가야 합니다.
      그 동안 충분히 명분을 축적했으니 강경하게 나가야지요.
      이제 명분은 충분합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5.09.12 10:50 신고

    빨리 혁신위원회 혁신안대로 혁신하여
    차근차근 내년 선거를 준비해야 합니다



책을 없애버리려는 자만이 비평할 수 있다.


                                                                  ㅡ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서 인용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질서를 세우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이들을 굴복시키고 배제시키는 완벽한 독재란 그 자신마저도 독재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자신의 세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을 인간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만드는 것은, 사막에 들어온 사람이나 사막을 떠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오아시스마저도 마르게 하기 때문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그렇게도 강조했던 어떤 시작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곳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뿐이다. 카네티도 자신을 노예로 만들었던 칼 크라우스의 실체가 모든 존재를 죽이는 완벽한 독재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성찰과 함께.





나는 이때부터 개개의 인간에게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주는 언어적 형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또 그들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충돌하여 튀어나가는 일종의 반동체라는 사실과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견해보다 더 큰 환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상대방은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는 더욱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외치면, 그들도 되받아 외친다. 이렇게 되면 문법 속에서 초라한 삶을 꾸려나가는 감탄사들이 언어를 지배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외침의 소리들이 마치 공처럼 이리저리 튀면서 지면에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란 거의 없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그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 아름답고, 추하고, 고상하고, 천박하고, 성스럽고, 속된 온갖 종류의 말들이 모두 이 떠들썩한 말들의 저수지로부터 끄집어내어 사용한다. 그리고는 그 말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리고 완전히 다른 어떤 것, 즉 그것이 전에 의미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 될 때까지, 그 말들을 되풀이해서 사용한다. 언어의 왜곡은 창세기적 혼돈에까지 이른다.



결국 칼 크라우스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들으려 했던 그의 자발성과는 달리, 그의 언어 사용은 그에게도, 그의 추종자에게도 어떤 자발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비트켄슈타인과 한나 아렌트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말과 언어는 경험의 산물이며 모든 사유의 출발점인데 칼 크라우스의 강연과 글들은 그 자체로는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어떤 추가적 경험도, 무궁무진한 사유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세계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릴 운명이었다.





칼 크라우스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치명적 모순을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벽한 독재를 꿈꾸는 절대 권력은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지의 일반적인 감퇴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면 어떤 권위도 누리지 못하고, 지속되는 어떤 질서도 세우지 못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타인을 현혹하고 흥분상태로 만들어 자신의 추종자로 만드는 독재자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피지배자들은 자신만의 밀실에서도 독재자가 가하는 공포와 폭력에 압도당해 어떤 사유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노예나 가축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설사 독재자가 무엇을 이루었다 해도 남의 것을 차용해 끌어 모은 추종자의 에너지ㅡ자발적인 희생으로 포장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한 것ㅡ로 이룬 업적이기에, 그것은 단지 신기루일 뿐이다.



카네티의 고백성사는 이렇게 종결되는데, 그가 《말의 양심》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창조의 근원인 사유의 자유가 사라지면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영원한 휴면상태인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노예였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힘겹게 자유인으로 돌아온 카네티 같은 깨달음이 없으면 ‘모든 창작은 인식의 조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자를 현대의 쓰레기로 전락시킨 폭력적인 세계와 혼돈의 시대, 1%의 희망 때문에 99%의 절망을 감내해야하는(조셉 콘래드의 소설에서 인용) 운명을 이해하고자 시작한 모든 지적 여정이 칼 크라우스와 비슷한 필자도 이것이 두려웠다.





한 때 자살만 생각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처했던 필자는 모든 지적 여정을 홀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그 방향과 사유가 올바른지, 원하는 목표에 이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한 마디로 내 지적 여정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잡식성 특징을 띠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에 많이 나오는 책들을 구입해 읽었고, 신문에 나오는 신간들 중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을 구입해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에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카네티가 칼 크라우스에게 사로잡혔던 것처럼, 필자 역시 위대한 저자들에게 사로잡혀서 한 동안 그들의 세상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수많은 석학들의 사유와 성찰은 나에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도록 만들었고, 지적 여정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고, 서로 충돌하는 부분에서 극심한 혼란을 주었다. 필자가 몇 번 집필에 도전했다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인식의 조급함의 결과였고, 끝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체 하던 일을 접어야 했다. 나는 석학들의 사유와 성찰을 내것으로 녹여내,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을 내놓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P.S. 신경숙의 표절논란을 지켜보면서 더욱 참담했던 것은 그녀를 옹호하는 평론가들의 주장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들이 제대로 된 창작물을 내놓게 하려면 평론가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평론으로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론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 문학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작가와 평론가의 선순환적 구조가 구축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22 08:21 신고

    문제가 왜 생겼냐는 원인을 풀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읽은 기억은 없고 기억을 믿을수 없고..
    대단한 모순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5:59 신고

      표절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의 끝에 이런 저런 책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인용을 밝히면 됩니다.
      소설과 시는 창조의 작품입니다.
      앞선 위대한 작가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신경숙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2. 耽讀 2015.07.22 13:09 신고

    누구나 표절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생각하면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하는 삶입니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 끝없는 지적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표절할 수밖애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6:00 신고

      표절은 밝히면 됩니다.
      " "로 표시하면 그대로 옮겼음을 말하고 ' '로 표시하면 수정해서 인용했음을 말합니다.
      얼마든지 표절이 아닌 인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표절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다. 제대로 된 사과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숙의 표절논란이 영원히 끝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글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을 읽고 쓴 것이라, 신경숙의 표절논란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표절논란에 대한 그녀의 대응이 뻔뻔함을 넘어, 그녀를 옹호하는 평론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경숙이 진정한 작가라면, 그것도 대단히 성공한 작가라면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합당한 대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






창작은 언제나 인식의 조급함이다.


                                           ㅡ 헤르만 브로흐,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에서 재인용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60년경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발표한 에세이를 연대순으로 묶어 《말의 양심》을 발간했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서 근대이성의 수도라 할 만한 빈에서 공부를 했지만, 바로 그 위대한 근대이성이 만들어낸 모든 성취들을 총동원해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의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작가로서 평생을 권력과 죽음에 천착했다.



작가는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시대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일주일 전에 한 무명작가의 기록을 보게 됐다. 그 무명작가의 기록에는 “모든 것은 끝장이 났다. 내가 진정한 작가라면 전쟁을 저지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개 작가에게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운, 그래서 상당히 오만하게 비칠 수도 있는 이 기록에는 또다시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내모는 제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었던 무명작가의 무력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온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 기록하지도 못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니 발발하게 됐으니, 거대한 악의 번성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명작가의 고뇌란 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무명작가의 비통한 기록을 ‘흥분과 초조의 상태’에서 읽은 카네티는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졌고, 무명작가의 기록이 작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말로 포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옹호하려는 의지이자 또 어떠한 실패도 자기 스스로가 속죄하려는 의지”임을 깨닫게 됐다. 





작가는 보통사람보다 말과 언어의 연금술에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 화려한 연금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작가의 진정성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어느 무명작가의 기록은 “업적과 전문성의 세계, 줄곧 정상만을 향하여 온갖 힘을 경주하는 세계, 정상을 향한 목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부수적이지만 다양하고 본질적인 것을 경멸하고 말소시키는 세계, 자기 파괴의 수단을 증가시킬 뿐 초기의 인간이 획득한 특성을 강한 한 질식시키는, 생산이라는 일반적 목적에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에 점점 더 변신을 금지하는 세계(이는 견고한 근대, 무거운 경제 위주의 생산자 사회에 적용된 것이지만)”에서 삶과 죽음을 천착하는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네티는 ‘문학의 종언’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후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산재해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면서도, “자기 시대에 예속된 맨 밑바닥에 있는 종”이자 ‘끊임없이 짖어야 하는 개’이기도 한 작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그가 자기 시대에 저항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성찰한 카네티가 처음부터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다가와 그의 정신세계를 정복했지만, 결국에는 반기를 들고 자신을 방어하도록’ 만든 칼 크라우스의 말의 항연에 빠져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인하기도 했다.



죽음의 증인이자 시대의 고발자로서 10여 년에 걸친 사유를 묶어낸 《말의 양심》의 세 번째 에세이가 ‘칼 크라우스ㅡ저항의 학교’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에 갇혀 그 밖의 모든 세계를 부정하는 말과 언어의 독재자이자 정신의 파괴자였던 칼 크라우스(벤야민과 아도르노도 크라우스를 인용할 정도)의 포로였음을 고백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든 살아남은 대중에게 남긴 ‘후유증·악덕·살인·탐욕·기만·활자의 오식’까지도 찾아내, 대중의 도마 위로 올려서 현장에서 즉결처분하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 지닌 칼 크라우스에게 빠졌다가 힘겹게 빠져나온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카네티는 다음과 같은 고백성사에 이른다.






맨 처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군중의 효과가 갖는 급진성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사람이 사건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반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것이 고발되고 단죄되기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었을까? 모든 고발자들은 법조문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견고한 어투로 행해졌으며 또 그 고발들은 결코 중단된다거나 끝나는 일이 없이 마치 몇 년 전부터 시작되어 앞으로도 한결같이 동일한 어조로 계속될 것처럼 들렸다. 그 어투는 법의 영역에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또 모든 것은 이미 건드릴 수 없는 확실한 기존의 법률과 같은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거기에는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긁어 상처를 내거나 낙서를 할 수 없는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카네티는 그렇게 칼 크라우스의 ‘법률’ 속으로 빠져들었고, 스스로 예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체의 이단을 인정하지 않는 칼 크라우스의 ‘법률’은 그의 것이 아닌 앞선 사람들ㅡ셰익스피어, 클라우디우스, 괴테, 네스트로이, 오펜바하 등ㅡ의 글이나 말에서 빌려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사용한 것들이었다. 그는 이것들을 연사로서의 특출한 능력으로 버무려 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공공의 적을 만든 다음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즉결심판을 통해 그의 추종자들을 양산했다.



카네티가 칼 크라우스의 최대 장점으로 들었던 ‘청각적 인용’ㅡ연설 중에 특정 인물의 글이나 말에서 일정 부분만 때내 그들의 의도를 왜곡함으로써 관중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악의적인 인용ㅡ도 길거리나 광장, 술집과 같은 곳에서 들었던 대중의 말들과 모든 종류의 신문에서 읽었던 문장들을 그의 연설 중에 적재적소에 써먹는 차용능력을 말한다. 일반의 작가와 지식인들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얘기를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칼 크라우스는 이런 ‘청각적 인용’을 통해 ‘도덕의 영역과 문학의 영역을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그가 연설하는 중에 나왔던 “힘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다정함, 힘 있는 자들을 추적하는 살인적인 대담성, 정신박약증의 가면을 벗김으로써 사물을 꿰뚫어보려는 욕망, 자신의 주위에 거리감을 만들어주는 오만함”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2부로 이어집니다). 




P.S. 칼 크라우스는 플라톤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철학자이자 선동가였고, 연설가였으며 정치인이었고, 탁월한 작가였고 시인이었습니다. 유럽 석학들의 저작들을 보면 칼 크라우스를 인용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마르크스보다 위대했던 블랑키처럼,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초의 유럽을 뒤흔들었던 인물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22 08:17 신고

    표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신경숙건은 표절 맞습니다

    왜 인정을 안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칼 크라우스..기억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5:54 신고

      원래 신경숙처럼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표절을 여러 번 한 것이 발견되면 어느 나라에서건 절필을 선언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탐욕의 국가가 됐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경숙이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고 자신이 벌었던 돈을 가난한 문인을 위해서 쓰던지, 여러 가지 대가를 치를 방법이 있었는데 그녀는 최악의 사과와 휴식만 말했을 뿐입니다.

  2. 왜 그냥 2015.07.22 08:40

    자기 이름만 내걸고 글 못 쓰나.
    신경숙 일 있고 여기저기 이름없던 사람들 이름만 떠올라.
    점잖은 양반들은 말을 아끼더라.

    • 늙은도령 2015.07.22 15:56 신고

      창피해서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가 시인들을 여러 분 알고 있습니다.
      연륜이 높으신 그 분들은 너무나 참담해 얘기조차 안하는 것입니다.
      소설이 나오면 계속해서 표절논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필자는 신경숙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고, 표절의 대상이 된 소설도 읽지 않았다. 필자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경숙이 표절 논란에 대해 몇 번이나 글을 쓰다가 삭제해버린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숙의 표절이 의도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한때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꿨던 필자로서는 표절의 문제가 남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필자가 처음 소설에 도전했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체력적 한계 때문에 시를 쓰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던 때도 기억이 난다.



선친이 자식들을 위해 구입한 1,500여권의 책 중에는 수많은 소설들이 있었고, 필자는 젊은 날의 상당 부분을 그 소설들과 함께 보냈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 속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가와의 만남은 필자에게 삶을 관통하는 전율이었고, 시대를 초월한 만남이었고,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지금도 좋은 문구를 보면 문학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소설들을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기호와 맞는 작품을 접하기 마련이지만 필자는 잡식성이었던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 고리키, 푸쉬킨, 괴테, 톨스토이, 까뮈, 카프카, 프로스트, 발자크, 펄 벅, 서머셋 모음, 보카치오, 헤르만 헷세, 스탕달, 빅토르 위고, 루이제 린저, 모파상, 애드가 알렌 포,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D.H. 로렌스, 단테, 김동리와 황순원, 이청준과 최인훈, 죠셉 콘래드, 오웰, 헉슬리 등의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은 것 같다.



지금은 작가는 물론 제목과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당시에는 일단 소설을 손에 들면 밥도 먹지 않고 하루를 꼬박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중에 좋은 표현들은 몇 권의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이것 덕분에 대학생 때 참 많은 여학생을 꼬일 수 있었다. 단 말로만).





그러다가 소설 5~6백 권을 읽은 후에 처음으로 습작에 들어갔다. 계기가 된 소설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김동리의 『까치소리』.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였다. 습작을 쓰면서 이 네 소설들을 많이 뒤적였고, 다른 소설들에 나온 문장들도 응용했다.



어차피 출판할 것도 아니고, 최초의 습작이기에 분량이 늘어날수록 많은 소설들을 길라잡이로 삼았다. 특히 글을 쓰다 막히면, 그래서 며칠을 생각해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으면 어김없이 대가의 소설들을 펼쳐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습작을 써나가다 도중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이런 시도는 여러 번 있었고, 조금씩 글을 쓰는 재주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 수면장애를 겪게 되면서 소설을 쓰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겨웠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이것저것 생각하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졌고 편두통 증상도 생겼다.





건강은 더욱 악화됐고, 수면장애도 심해져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삶을 갉아먹고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필자는 압축적인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때는 선친께서 돌아가신 이후라 시집을 마음껏 살 여력이 안 돼 교보문고에서 수백 권의 시집을 사면서 몇 권을 훔쳤던 기억도 난다.



시에 대한 자질이 부족했던 필자가 고등학교 은사(고등학교 때 등단하신 분으로 서정주 시인의 수제자)와 신달자 시인의 도움을 잠시 받았지만, 수많은 습작들도 유명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고, 표현도 빌려오곤 했다. 천부적 재질이 없으면 그렇게 수많은 습작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열망은 지독히 강한)의 시작이다.



시 때문에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쓰다가 막히면 시집을 뒤적였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진전이 없으면 잠을 청해도, 밥을 먹다가도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했다. 습작 소설을 쓸 때처럼 뇌리를 휘도는 단어와 문장 때문에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많은 경우 기존 작가의 표현을 조금 수정하는 것으로 타협할 때도 많았다.



필자가 시집이나 소설을 출판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일 출판을 할 생각이라면 표절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모조리 고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었다. 그것은 글 쓰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자 덕목이고, 양심이며 상식이고,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길이며, 돈과 시간을 투자한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언론에 보도된 표절 부분만 놓고 볼 때 신경숙 작가가 표절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더욱 놀란 것(정확히는 절망했던 것)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데 있다. 필자가 매일 쓰는 블로그 글에서도 인용한 글이면 출처를 밝히거나 인용한 문장이라는 표식을 남기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최고 잡지인 창비의 행태도 필자를 분노케 하고 절망케 했다. 문학계에도 문화 권력이 있음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표절 논란을 4~5차례라 겪었으면서도 작가와 출판사가 이에 무신경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학계에 표절이 난무하는 나라라 해도 연속된 표절은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더욱 참담한 것은 표절 논란을 법정으로 끌고 간 어떤 사회학자의 정신 나간 행동이다. 사회학에서는 인용을 밝히지 않는 것이 범죄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그것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법정의 판결에 따라 표절이 되거나, 표절이 아닌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발터 베야민의 《일방통행로》를 다시 꺼내들었다. 단 한 자라도 바꾸면 전체의 글이 모두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의 산문들에서, 심지어는 한 줄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출산의 고통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베르테르가 자살할 총에 묻어있을 로테의 손길을 찾아 천 번의 키스를 하는 모습이 떠올라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더욱 참담했다.





완벽한 창작이란 없을 것이다. 피를 토할 듯한 고통 속에서 한 편의 소설을 써나가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뛰어난 문장에서 자유롭기도 힘들 것이다.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문단이, 또는 그 이상이 자신의 창작물인지, 타인의 글을 읽다가 무의식 속에 자리했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자신의 생각인양 썼는지 헷갈릴 수도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표절 논란이 한 번도 아닌 4~5번이나 제기됐다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신경숙의 작품들을 파고들자 표절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표절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만연하다는 증언이 속출하는 것까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한국 문단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향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겠지만, 평생 글을 쓰고자 하는 필자로서는 참담한 심경을 달래기 힘들다.



이놈의 대한민국, 도대체 어디까지 썩었단 말인가? 성공지상주의가 문학세계까지 퍼져 이제는 가장 기초적인 것마저도 작동하지 않는 나라가 됐단 말인가? 이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신경숙 작가가 직접 말해야 한다, 문제의 소설들이 표절인지 아닌지를. 영광을 누린 만큼 고통도 그녀의 몫이기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가난한여행자 2015.06.21 11:57 신고

    신경숙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절'''입니다 . 의식적으로 했던 안했던 출판되어 나온이상 신작가는 무조건 절필해야합니다
    이사건을 한국 특유의 모호한 인정주의로 넘어가면 , 표절작가 ,후배들이 계속 양산됩니다

    신작가 한권읽어 보았는데 일본 현대 문학의 모티브 ,감성 이 배어있어서''''일본번역하던사람이 문학했나?
    프로필을 보니 전혀 관계는 없어서 ,,그냥 덮은적이 있습니다
    (읽고나서 관심이없어 그후로는 잊음)

    신작가 습작 과정해서 일본 작품실수로 인용했다고 할수있는데 , 이것이야 말로 자신도 속이고 독자도 속이는것입니다

    사숙을 통해 문학을 한사람이 자기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사람이 최고 작가 반열에 올라 수십년을 부와명예를 얻었다는게
    한국의 얼마나 인문학적 빈곤하고 , 정신적기반이 없는나라인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네요


    요건사건 핵심은 '''' 인문학적 기반이 없는 나라에 ,약간 글재주이용.지적유희와 적절한 시대정신을 비벼 섞어서 명품백화점 상품진열대에 올려놓아 ,팔아먹은 짝뚱이네요

    가장 나쁜범죄는 한개인의 영혼을 속이고 자기이득을 취하는집단,개인입니다 ,,


    #
    그리고 늙은도령님 르네상스적 지식이 바탕을 알게 되었네요
    백과 사전 학파 회원을 보는듯하네요

    항상 좋은글 읽고있습니다
    멀리서나만 응원합니다

    두서없이 쓴글 이해 하시기를 ,,,,,,

    • 늙은도령 2015.06.21 16:54 신고

      상당히 참담한 심정입니다.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고 출판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표절 시비가 없도록 만든 다음에야 출판하던지, 아니면 어디서 모티브를 얻어 일부 수정한 정도라고 밝히던지 해야지 이건은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입니다.
      답답하네요.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에는 창의적인 것들이 넘쳐났습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냈으니까요.
      정말 대량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지켜온 가치들이 모조리 붕괴된 모양입니다.

  2. 耽讀 2015.06.21 15:10 신고

    저도 신경숙씨 글을 읽지 않았네요. 소설을 읽은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표절'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심지어 기사도 표절합니다. 요즘 기자들 천편일률입니다. 드래그만 하면 할 수 있었으니까요?
    블로그 하는 사람으로 솔직히 뜨끔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16:56 신고

      인용을 밝히면 됩니다.
      그러면 표절의 문제에서 벗어납니다.
      소설에서도 이 부분은 누구의 작품, 어디서 인용했고, 일부만 수정했음을 밝히면 됩니다.
      소설의 과정 상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지 못해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도 소설 전체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3. EMC 2015.06.21 15:31

    안녕하세요 선생님. 캐나다에서 문안 인사 드립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있는 정치학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소설책을 읽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르는 시사, 정치, 철학, 역사에 관한 책들은 다소 쉽게 읽히는 반면에
    소설책은 몇년전 갓 20대 초반에 들어설 즈음에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은 이후로는 단 한번도 읽지 못했습니다.

    "읽지 못했다" 라고 하는 이유는 제 개인 자신이 시간을 들여 소설을 읽을 심적 여유와, 예술에 지나치게 심취할까 두려워 반사적으로 경계하게 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음으로 얻을 수 있는, 예로 들자면 마음의 안식과 치유, 그리고 사람의 감성을 터치할 수 있는 글을 쓸 능력 등, 수많은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몰입을 할 수가 없더군요.
    이것이 과연 좋은 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에 관련된 것들을 읽다보면 시간이 부족하고, 하찮게 문학에 심취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다 이솝우화 "개미와 배짱이"에 나오는 배짱이 꼴이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책을 수백,수천권 읽으셨을 선생님께 이런 말씀 드리기 창피하지만, 지난 몇년간 저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이 정치학과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받고, 그 책들에서 얻은 지식 덕분에 여기 캐나다인 토박이들과 같이 수강하는 강의시간과 토론시간에 꿀먹은 벙어리 꼴은 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허나 저는 가끔 그 노력이 저를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제 또래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홀로 생각하는 시간들이 길다보니 재 또래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들이 눈에 아주 저질스럽게 보였고, 재 또래들이 듣는 음악도 유치하기 짝이없게 느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근대사와 정치를 저보다 더 많이 알고 행동해야 할 또래들이
    세상돌아가는 것에는 전혀 관심없고 오로지 외모관리, 여행, 놀기, 맛집기행 등등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니 뭐라고 말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점 그대로 다른 한국학생이나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인 또래들에게 말하면 외계인 취급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기예 아예 그들과의 관계는 담을 쌓고 지낸지 오래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처럼 대기업 사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하시다 IMF 때문에 맨주먹으로 이 캐나다 중서부 허허벌판으로 오게 된 저희 가족보단 살만한지 이곳에까지 와서 오로지 종교에 매달리는 나약한 심성의 사람들과 "Carpe Diem" 만 추구하는 타 한국인들의 졸부근성 꼴보기 싫어 하는 제 셩격도 한몫했죠.

    그래서 근 일년 몇개월동안은 제가 학업을 하고있는 도시에서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깊게 슬퍼하는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커뮤니티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이라고 해야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이나 우크라이나와 인접국들과의 이해관계가 낮설어 하는 5~6세대 우크라이나계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교 신문과 우크라이나계 캐내다인들이 운영하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에도 글을 몇번 기고했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상으로 장학금도 얼마 받고 NATO 산하에 있는 싱크탱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지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학적으로 얼마나 크나큰 사건이며,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7~8월 쯤 다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어떤 웹사이트에 기고하는 것이 좋을지 선생님께 조언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
    저희 아버지도 몇년전 크게 편찮으신 적이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 건강도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쾌차하셨고 지금은 건강하십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17:21 신고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다른 시대와 그때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시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전이라는 소설 중에는 정치학을 하는 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치가 세상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권력에 대한 것이듯, 인간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도 이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좋은 정치학이 됩니다.
      제가 마키아베리가 가장 현실정치를 잘 다루었지만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그의 정치란 학문적 가치도 없을 뿐더러 정치 자체를 최악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존 듀이 <공공성과 그 문제들>을 보면 정치학이 공민학에서 멀어지면안 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사람과 사회, 국가를 이해하는 것이 정치여야 합니다.
      모든 학문의 마지막이 정치학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능하면 소설도 읽고 사람과의 관계도 늘렸으면 하네요.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정부를 필요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사람의 가치와 선함을 믿기에 정부가 필요악이어도 정치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여러 가지 기사를 통해 접근하고 있지만, 저는 미국의 탐욕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푸틴이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현재의 러시아는 미국의 상대가 안 됩니다.
      우크라이나 본국에서 벌어지는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약소국이 강국들의 싸움의 장이 된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각인데 그것이 알려지지 않네요.
      푸틴의 목표가 정말로 제정 러시아의 부활이라면 신냉전은 피할 수 없을 터이지만, 그것이 아닌 에너지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한 추악한 강국들의 경쟁이라면 정말 걱정입니다.

      좋은 일을 하시는 것 같아 매우 좋습니다.
      님의 글이 어디에 기고하면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적정한 웹사이트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국제정치학을 전문으로 하는 웹사이트를 찾아야 할 텐데 저도 그 부분은 지식이 부족합니다.
      서프라이즈는 지나치게 좌파적이고 다른 웹사이트는 수준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정치학을 다루는 웹사이트가 별로 없어서 어디가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남의 글을 훔쳐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조심스럽구요.
      저도 사이트를 검색해 볼 테니 님도 많은 사이트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참, 자본주의와 미디어 산업은 한몸이기 때문에 인간을 물질의 포로로 만듭니다.
      인터넷이 이런 경향을 더욱 퍼뜨려 전 세계적으로 낮은 문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많이 어렵고, 형이상학적 표현이 많지만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 등을 보면 자본주의가 이런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이 100년 전에 이미 파악된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자본주의와 기술발전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그래서 더욱 고전들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퇴행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인자동차, 무인비행기,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 생각도 대신해주는 로봇 등이 판을 치게 되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전 지금의 발전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은 운전을 쉽게 해줬지만 공간 감각만이 자신이 다니는 곳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공간적 인지감각을 퇴화시킵니다.
      그것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고 인류 진화의 핵심적 축복인데 이것을 인간 스스로 파괴하는 꼴입니다.
      이런 물질적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을 생각하지도 않게, 그저 즐기는 존재로만 만듭니다.
      이것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합니다.
      인류 문명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인간과 자연, 환경에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4. singenv 2015.06.21 22:20 신고

    다른 할 말이 없네요..
    참담하고 참담할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22:39 신고

      가치의 기준이 사라졌습니다.
      돈과 성공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5. EMC 2015.06.22 06:35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론 미국과 EU가 우크라이나를 서방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벌인 무리수도 원인이지만
    (예를 들자면 우크라이나 경제와 정치 시스템으로 이행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던 지난 2013년 가을에 EU가 채결하려 했던 자유무역협정과 협력조약 등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련시절의 노스탈지아에 취해있는 푸틴과 러시아 극우의 침략행위로 인해
    법과 질서과 바로서고 부정부패를 근절하여 인간적 존엄성을 되찾자는 시민들의 염원으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한국전쟁과 비슷한 성질의 국제적 분쟁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대로 러시아는 군사, 경제, 문화 어느 부분에서도 미국보다 우월한 점은 없습니다.
    허나 저는 러시아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 크나큰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크게 걱정됩니다.
    푸틴은 대통령 된 이후부터 온갖 뒷공작으로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인사들은 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실각시키거나
    심지어 암살까지 자행했습니다.

    오늘의 러시아는 푸틴과 푸틴이 만든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러시아 엘리트들이 장악한 나라입니다.
    옛 제정 러시아 처럼 절대 다수는 빈곤의 늪에 빠져 있지요.
    아직도 40%이상의 러시아 국민들이 전기 없이 생활한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재벌들에게서 강탈한 미디어를 국유화해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고 있지요.
    이제는 러시아 국민들을 눈뜬 장님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다국적 뉴스 채널인 Russia Today를 통해 서구사회의 눈과 귀도 흐리고 있습니다.
    ( 이 Russia Today (RT) 가 재밌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쪽 진보인사들을 대거 출연시켜 진보적인 색을 띈 방송으로 위장하였지만 실상은 러시아에 대해 흥미로운 다큐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매복의 독' 입니다.)
    거기다 덤으로 유럽에 친러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프랑스의 국민 전선 같은 유럽의 수많은 극우주의 정당에도 뒷돈을 대고 있지요.

    그리하여 수많은 석학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프로파간다 행위가
    '대채 현실' (Alternate Reality)를 창조하고 있다며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계 우크라이나 인들을 수도 키예프를 점거한 나치들로 구한다며 한 행위가 바로
    크림반도 강탈과 현재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진행중인 전쟁입니다.
    러시아는 계속 직접적인 개입을 부정하고 있으나
    외신들의 보도에 의하면 이 자칭 '친러 분리주의자' 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다수가
    러시아 정규군만이 사용하는 장비라던가 러시아 정규군들이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들의 위치가 우크라이나로 나오는등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의용군들과 직접적인 전투까지 벌이는데도
    이 명백한 침략행위에 대해 뻔뻔히 전면 부정하고 있지요.

    러시아가 얼마나 억지를 부린다는 것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수립한 친러 정권들의 성질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크림 반도의 경우, 푸틴이 직접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인들과 타타르 인들의 문화와 자치권을 존중한다고 하더니
    크림 반도 강탈 그 다음날 크림반도 지방 의회 건물에 우크라이나 어와 타타르 어로 쓰여진 현판을 모조리 떼어 버렸지요.
    게다가 타타르 인들의 운영하는 방송국도 강제로 문닫게 하고 적지 않은 수의 타타르인 인권 운동가들이 실종되서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건국한 자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은 더 가관입니다.
    마치 한국 전쟁 당시 점령된 서울을 보는 느낌입니다.
    구소련 깃발이 나부끼고 완장찬 의용군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인민 재판을 벌이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군 포로들에 대한 인권 무시는 전쟁 범죄 수준이죠.
    많은 수의 포로들은 잡히자 마자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을 당했고, 살아있는 포로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아닌, 평범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입니다.
    거의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인들의 일상용어로 러시아 어를 사용하며 언론, 문화도 러시아어가 절대적인 강세입니다.
    러시아인들과 원래 같은 동 슬라브 인들이라 서로 "형제"라 칭하던 사이였고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과 혈연관계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많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수많은 가정들이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예로 들지만, 부모님이나 조부모는 러시아 계라 러시아를 지지하지만
    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라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가족 사이도 서먹하거나 적대적으로 변해버린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자주국으로서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가 EU 국가들처럼 법치가 올바로 서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변하기를 갈망하지요.
    허나 아직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고 오랫동안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 등 외세에 수많은 세월을 지배당했고
    그로 인해 지역마다 아이덴티티가 다르다 보니 한국처럼 동-서로 나뉜 내부갈등은 구소련 붕괴 이후 죽 존재해 왔습니다.
    (서부는 오스트리아, 폴란드의 영향이 강했고 동부는 근세에 들어 죽 러시아의 지배권에 있었습니다)
    허나 푸틴과 러시아 극우가 실상 위협에 처해있지도 않은 러시아 계가 나치들로 인해 멸졀될 위기라고 우기며
    결국 침략행위를 자행함으로서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이지요.

    저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근미래에 한반도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미리 대비하란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THADD 와 AIIB 등의 당근을 통해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드리려 하여
    한국이 균형적인 외교를 하는데 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자칭 혈맹이라며 편파적인 외교를 강요하는 미국이야 말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데
    큰 역활을 하고 있지요.

    Timothy Snyder란 동유럽 역사의 정통한 미국인 학자가 말하길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가장 주시하고 있는 나라는 다름아닌 중국이라고 합니다.
    남중국해에서 인공섬까지 건설하며 무리수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닌것 같습니다.
    나치의 주데튼란트 강탈에 맞먹는 크림반도 강탈로 국제법을 완전 무시한 위험한 전례를 남긴 러시아는 두말 할 것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푸틴처럼 아직도 태평양 전쟁 시절의 노스탈지아에 취해있는 아베를 필두로 한 극우가 정권을 잡고있는 일본과
    자기 목 날아갈줄도 모르고 도발을 자행하는 북한에 둘러쌓인 오늘의 한국은
    오히려 우크라이나보다 더 위태로워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죽 쓰다보니
    제가 쓰려고 한 글의 요약글이 되어 버렸네요.

    아무튼 제 소견은 한국은 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깊게 주시하고 반면교사로 삼어아 한다는 것입니다.
    2013년 우크라이나 처럼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층이 오로지 한 수퍼파워만 손을 잡고 다른 수퍼파워랑은 관계를 단절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
    경제보복처럼 사소한 게 아니라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게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회복되는 계기가 될지는 모르나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나누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2 15:33 신고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고민이 보이네요.
      우크라이나가 EU 가입을 두고 내분이 일어난 것은 정치적으로 보면 일정 부분 가능한 일입니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러시아의 영향력이 떨어지니 독재자 푸틴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요.
      헌데 우크라이나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상류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푸틴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제정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푸틴의 야망이 정신 나간 짓이고 천벌을 받을 일이지만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세력 간의 싸움에 국민만 죽어나가는 것이지요.

      다만 아쉬움이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한다고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유럽국가들이 EU에 가입해 망가졌습니다.
      지금은 독일만 돈을 벌고 나머지 국가는 죽을 맛입니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기 전에 내부의 민주주의를 더욱 다지는 것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푸틴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이 미친 독재자가 얼마든지 그것을 막을 개입거리란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정치와 권력욕이 국민을 죽이는 것이니.
      민주주의는 출발이 좋아야 성공합니다.
      대한민국도 출발이 안 좋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에 이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패권놀음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내전상태에 빠져든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만 더 내부를 다진 다음에 EU 가입을 추진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미국이 부추긴 면도 있습니다.
      푸틴의 힘이 커져서 중국과 아슬아슬한 연합을 이루면 신냉전이 다시 시작될 테니까요.
      그러면 미국은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중국을 깨놓고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우크라이나의 EU가입을 선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푸틴의 야욕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한다고 갑자기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서둘러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답답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느냐 입니다.
      내부의 권력다툼 때문에 국민이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듭니다.
      제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처음에 들여다 봤을 때 국제정치학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봤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러시아의 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든 상황에서 반푸틴 노선을 걷는 것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걱정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EU에 가입한 국가 중에서 후회하는 국가들도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약한 민주주의를 잡아먹고 독주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경제독점의 역사입니다.
      정치는 경제와 손잡아 자신의 역할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시대이고요.

      우크라이나 상황은 보다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세상에 알려진 것들도 상당 부분 가공된 것이기에 시민단체의 것들을 참조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많이 부족해 제대로 된 판단이 힘든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자료가 있으면 분명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어렵네요.
      푸틴의 야욕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그의 힘이 커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독재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요.

      한국은 우크라이나와는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약하지는 않습니다.
      보수우파 정부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망할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기 때문에 그렇지 경제규모 10위권과 국방력은 어떤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려는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형편없는 나라로 만들어 님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구나 그밖의 것들을 다 고려할 때 경제가 나빠질 수 있는 위험성에 직면해 있지만 세금만 제대로 거두면 어느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수준에는 이르렀습니다.
      이놈의 보수정부들이 부자와 기업의 법인세를 안 올리고 억지로 경제를 이끌어나가니 위태로워졌지만 이것만 바로 잡아도 대한민국은 다시 비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정당이 공공성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면 어떤 나라도 흔들립니다.
      우리는 그 상태에 이른 것은 확실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을 최악으로 몰고 가고 잇습니다.

      조국을 걱정하는 님의 마음이 우리나라 정치가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합니다.
      정치가 바로 서야 세상이 좋아집니다.
      님처럼 진실로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면 이런 어이없는 역주행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6. 공수래공수거 2015.06.22 08:40 신고

    신경숙 표절 문제는 본인의 양심이 좌우할것입니다
    한번 양심을 속이면 계속 속이게 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기도쉽고
    ( 인용하기 쉽고) 표절 여부도 쉽게 확인할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일루와봐 2015.06.22 16:20 신고

    독자들이 모를 줄 알았을까요? 독자들을 뭘로 본 걸까요?
    양심은 없다쳐도 대놓고 뻔뻔한게 참...
    이 사건을 터뜨린 이응준 작가의 의도까지 꼬아 보게 만드는 한국 문학월드 ㅋㅋㅋ

    • 늙은도령 2015.06.22 17:13 신고

      저도 그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입니다.
      작가로서 이것은 용납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문학계의 파렴치한 쉴드도 그렇고...

    • 일루와봐 2015.06.22 17:17 신고

      그네들을 한 자루에 놓고 꾸-욱 밟는 방법 중 하나, 창비책 보이캇 시작! 원래 사지도 않았지만 ㅋ

    • 늙은도령 2015.06.22 17:38 신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8. 최홍대 2015.06.22 20:09 신고

    저도 한권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표절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씁쓸하더라구요.

    • 늙은도령 2015.06.22 21:15 신고

      표절이라는 부분을 읽어보니 표절이 맞더라고요.
      헌데 재미있는 것은 하필 이때 이 문제가 부각됐느냐 입니다.
      정권이 위기에 처한 때인데, 그전에도 있었던 문제가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으니까요.

  9. 일본의 케이 2015.06.23 09:31 신고

    참 좋아했던 작가였습니다. 표절이 아니길 바랬는데,,,표절이라는게 참 씁쓸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3 14:49 신고

      그러게요.
      아쉽습니다.
      신경숙도 이번을 통해 거듭나야지요.
      부디 신경숙 사태로 한국이 표절이 없는 문단을 가졌으면 합니다.

  10. 이정윤 2015.06.23 09:55

    풍그이 있던자리 엄마를 부탁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읽었는데 표절이라... 젠장

    • 늙은도령 2015.06.23 14:50 신고

      많은 부분은 아니라고 합니다.
      표현이 막힌 부분이 있어 표절을 했을 것입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지만 전체적인 것은 아니니 감동까지 버릴 필요는 없겠지요.

  11. 푸르메 2015.06.23 11:08

    글 잘 읽었습니다. 표절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다가 정치인들의 논문 표절이 이슈가 되니까 더 크게 불거져 나온 것 같군요
    영화 헐리우드키드의 생애도 떠오르고요 . 제가 딴지를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신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은적이 없다 그런데 표절이다' 이말은 존체가 아니라 부분 그것도 누군가 표절이라고 제시한 부분을 비교해서 그렇다는 얘기가 되는데 조금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을 것 같군요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3 14:53 신고

      그래서 언론에 제기된 부분들을 다 살펴봤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가지고 말했을 때 표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찌 소설 전체가 표절이 되겠습니까?
      특정 부분, 특정 포인트에서 신경숙도 한계에 부딪쳤을 것이고 그때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지요.
      하지만 전체 소설로 보면 양은 적을 것입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양이라 해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 나온 내용들은 많이 지나쳤습니다.

  12. 불루이글 2015.06.23 13:47 신고

    지금 표절 문제가 크게 부각 되는것은
    바로 메르스 때문에 곤두박질 치고 있는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물타려는 의도가 다분 한것 같습니다.

    이제 북풍은 더이상 우려 먹을 건덕지가 남아 있지 않고
    참으로 골치아프게 되버린 박 카카 입니다.

    하긴 메르스 덕분에 쑥 들어간 성완종 사건
    성완종이 때문에 묻혀버린 사자방 비리

    무었이 무었을 묻고 있는지 모를 지경 이네요....

    정말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6.23 15:00 신고

      저도 그 부분에 대해 의심했습니다.
      예전부터 나왔던 얘기가 지금 폭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표절은 문제입니다.
      특히 신경숙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면 특히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은 욕망이 모든 것을 망쳤어요.

  13. 결국 2015.07.22 09:07

    저자께서 전제한 '나는 신경숙 글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다'가 모든 논의의 발목을 잡습니다.
    시도 아닌 소설을 논란이 인 단 한 편도 읽지 않고 '표절' 운운하는 건 오만불손한 태도로 보입니다.

    학자들이 재인용을 할 때도 최소한의 원칙이 있습니다.
    원문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저자께서도 인용이나 언급을 위해 단 한 번은
    글을 읽으셨어야
    본 저작 전반에 전제하신 학문에 있어서 윤리학이나 경건주의에 맞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후로도 신경숙 관계 뉴스로 검색이 되도록 두 편의 글을 더 쓰셨던데요.
    그 독자들이 모르고 있는 건 저자께서 선학의 도리를 인용할 동안
    정작 읽어야 할 논란의 책은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게는 표절만큼이나 비도덕적 행태로 보이는군요.

    • 늙은도령 2015.07.22 16:10 신고

      원문을 다 읽어야 비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문비평가가 해야 할 일이지요.
      기본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을 땐 원문을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신경숙의 표절논란에 관한 기사들을 거의 다 검색해서 비교하고 표절했다는 책들은 저도 몇 권을 가지고 있어서, 알려진 것들을 가지고 비교해봤습니다.
      그 다음에 글을 쓴 것이니 그 수준에서 비평한 것입니다.
      제가 신경숙의 문제되는 소설들을 다 읽고, 표절했다는 책을 다 읽었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예 책을 없애버리려는 자세로 모조리 벗겼을 것입니다.
      당신의 주장대로 하면 모든 것을 아는 사람만이 비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신이라면 그것이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이 글을 쓴 다음에 어제 쓴 글은 신경숙과 다르게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기 위한 글입니다.
      님이 저의 나머지 글을 읽지 않고 이런 댓글을 달 수 있는 것도, 제가 신경숙을 비판하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신경숙은 작가로서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거짓말을 하다 여론이 불리해지자 표절을 인정했습니다.
      그것부터 잘못됐고, 사과의 방식과 그 이후의 행태도 잘못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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