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역 사고에 이어 강릉선 KTX 사고가 뒤를 잇자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 철저하게 살펴보라'며 공공기관마저 정복해버린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폐해를 정확히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전권을 국민의 새로운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참으로 국민께 송구하고 부끄러운 사고"라며 '국민들이 우리의 일상이 과연 안전한가'라는 근본적인 불신을 표할 정도로 '위험사회'가 일상화된 것은 아닌지 철처히 살펴보고, 재발방지책을 세우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임기 내내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맹폭을 당하면서도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묵묵히 구축해나갔던 국가위기관리시스템과 청와대에 설치한 컨트롤타워, 중앙정부와 지자체 단위로 만들어놓은 위기대처메뉴얼 등이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모조리 해체되고 무력해진 상황에서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가 일어났기에 문프의 경고는 시의적절했다. KT의 사고와 함께, 두 개의 사고는 '나라다운 나라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 1년 반 동안 부단하게 노력했지만 완전하게 복구하지 못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안정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공기업의 민영화와 핵심 부분 민영화, 안전관리업무의 외주화와 정원 축소, 공무원 조직의 무사안일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이런 것들조차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내세운 여러 가지 논리에 따른 것이다.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효율성과 서비스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민영화해야 한다. 민영화를 할 수 없다면 조직을 슬림화하고 민간전문가를 특채해 민간의 관리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들에게 핵심 부분을 맞기고 나머지를 민영화나 외주화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일련의 합리화 논리 세트에 정부와 국회는 물론 상당수 국민까지 동의하도록 세뇌당했기 때문이다. 문프가 확실한 점검과 대책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이런 것들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유대인 학살에 사용된 독가스의 연료였고 베트남을 파괴한 대량살상 폭탄에도 탑재된 DDT가 지구생태계와 환경을 얼마나 많이 망가뜨렸는지를 다룬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천지사방에서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잠식하고 있는 각종 위험요소들로 인해 현대사회의 특징을 '위험을 지고 사는 삶'으로 압축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모든 분야에서 진행된 개발의 정도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늘어나는 이유를 사례별로 풀어낸 필립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 등을 보면,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의 본질'이 아니냐는 문프의 지적은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폐해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념과는 정반대에 위치했으니 이런 경고가 가능했던 것이다. 

 

 

미셀 푸코가 처음으로 명명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막스 베버가 관료제의 핵심으로 파악한 합리성(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 등으로 대표되는 형식적 합리성으로 인간의 노동을 초 단위까지 분류·분석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을 배제하고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하는 완전자동화를 목표로 한다)을 프레드릭 테일러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과학적 관리'의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궁극의 통치술이라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다.

 

 

(푸코가 제시한 신자유주의 권력과의 저항점을 다변화하자는 제안을 네그리는 《다중》에서 이합집산이 신속하고 자유롭게 일어나는 벌떼 같은 네트워크의 다중으로 재편성했지만, 필자는 그의 노력을 발전으로 보지 않고 후퇴로 본다. 한국에서는 《폭력의 세기》라는 제목으로 변역됐고, 《공화국의 위기》에서는 〈시민불복종〉으로 번역된 비폭력 시민저항이 한국의 촛불혁명으로 발현된 시민행동주의로 보는 것이 푸코의 성찰을 발전적으로 재편성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다). 

 

 

공기와 물처럼 자연이 선사한 물질들은 물론, 민주주의와 종교, 도덕과 윤리, 자유와 평등, 사랑과 우정, 헌법과 법률 같은 인류문명의 합의물과 정신적 산물까지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 가능하도록 만들어버린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정보통신술과 유전공학, 나노공학, 뇌과학 등의 발달에 따라 우주까지 식민화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까지 확대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시장민주주의로 대체된 것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생산해낸 최고의 상품이다. 

 

 

조지 리치가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의 '뉴 센추리판'에서 잡다하게 다룬 경영과 인사, 생산과 판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형식적 합리성이 프랜차이즈 업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과정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폭주가 세상을 점령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맥도날드 지점들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종업원만이 아니라 손님마저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맥도날드화에 내재되어 있는 합리성의 비합리성'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20세기의 중후반을 지배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민간기업과 공기업을 넘어 NGO,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선거, 복지, 사회안전망, 교육, 종교, 결혼, 데이트까지 '요람에서 무덤'으로 대표되는 삶의 전 과정을 점령했고 점령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과 유전공학, 나노공학, 뇌과학의 발전으로 생전(정자와 난자공장, 유전자 조작, 냉동수면 등)에서 사후(디지털 유언장, 사이버 세상에 남겨진 온갖 흔적들)까지 관리하고 통제해서 최대한의 데이터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인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인간을 넘어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다품종 대량생산'이 모토인 포드자동차의 생산방식(just in case,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본사는 물론 협력업체의 제고까지 충분해야 한다)과 '소품종 맞춤생산'이 모토인 토요다의 생산방식(just in time, 주문에 맞춰 생산하기 때문에 본사의 재고는 최소화하지만, 본사의 납품요청시점와 요구량을 예측할 수 없는 협력업체는 납품시점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재고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죽어난다)도 동일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전성시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보다는 베버의 합리성에 더욱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비인간화의 초석을 다진 기간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후쿠시마산 제품과 라돈침대 등에서 발견된 방사능과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와 <손석희의 뉴스룸>이 발생진원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일상화도 '인간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만들어낸 역설이다. 최근에는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에서 호언장담한 초인공지능의 특이점 돌파, 즉 전지전능한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베버와 테일러, 포드 등에서 출발해 토요타와 소니, 삼성전자를 거쳐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서 만개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극소수의 인간과 함께) 지구와 우주까지 식민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푸코를 초청해 진행된 '꼴레드 주 프랑스'의 강의를 책으로 묶어낸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를 보면,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시장에서의 경쟁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인 최초의 신자유주의 모델)를 연구한 후에 '자유주의 통치술'이라고 명명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대표되는 '표퓰리즘 세계화'의 배후에 자리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케이블TV(한국의 종편)과 팟캐스트, 인터넷 언론, 소셜미디어와 포털에 적용된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무차별적 규제 완화(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랜들리, 박근혜의 줄푸세),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거대자본이라는 '탐욕의 삼각편대'가 없었다면 '표퓰리즘의 세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험사회의 일상화'도 그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중간 과정으로 보면 충분할 것 같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경고하고 있는 '민주주의 종말론'과 '인류의 종말론'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만들어낸 '위험사회'에 디지털기술의 총화인 '감시사회'가 통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공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술적 이해가 높은 학자나 전문가일수록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할 시기로 2050년을 거론하고 있다(필자는 물리법칙의 한계 때문에 집적도의 향상이 한계점에 근접하고 있거나 실리콘을 대체할 신소재의 안정성과 대량생산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로 볼 때 2050년보다 더 미뤄질 것으로 본다. 그렇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으며 몇십 년 정도의 시간차에 불고할 뿐이다). 

 

 

그들이 2050년을 골든크로스가 일어나는 시점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한정됐지만 초지능으로 가는 최초의 범용인공지능인 구글제로의 발전 속도에 따른 것이다(페이스북과 바이두가 만들고 있는 인공지능도 범용인공지능의 초기 버전인데 셋 중에 누가 최종승자가 될지 알 수 없다. 범용인공지능이란 직관이나 의식, 감정 등처럼 수학적 계산과 확률만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들ㅡ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의 생화학적 작용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와 양에 의해 결정된다ㅡ을 모조리 따라잡을 수 있는 초지능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장기적 불평등을 초래한 사유재산권에서 출발해 인류의 멸종이란 종말론적 미래로 귀결되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은 단 하나의 합리성에서 출발했고 인류의 진화 역사 전체와 비교했을 때 한 시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프가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에 대해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니냐'며 의문을 표한 것에 정확히 응축되어 있는 탈이념과 탈인간화의 합리성,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푸코처럼 베버의 합리성에 주목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보면, 농업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여준 DDT는 히틀러의 나치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독일의 생물·화학자들이 개발하고, 관련 엔지니어들이 제품화했으며, 교통학자들이 설계하고 토목·건축학자들이 구축한 현대적 교통망인 철도와 도로를 이용해 철강·기계 관련 공학자들이 독가스를 담을 특수탱크를 제조해 자동차·철도업체가 만든 자동차와 기차를 이용해 지리학자들 지정하고 조경·건축·건설업체가 만든 유럽의 곳곳에 흩어진 유대인 수용소까지 보낼 수 있었다. 

 

 

정치·외교학자들이 제공한 논리와 역사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이 세운 전략을 바탕으로 유럽국가들을 위협해 유대인을 방출시켜 집단수용소로 보내게 만들고, 최고의 디자이너와 의류업체들이 만든 값싼 의류를 입히고, 식품업체가 제공한 최소의 음식만 먹이고, 행정학자와 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 명망있는 유대인을 끌어들여 유대인 모집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종교·교육·여성·청년단체를 동원해 유대인 색출의 임무를 부여하고, 정신분석학자와 정신병 전문의, 괴벨스 같은 언론·방송·광고전문가와 문인, 방송사와 언론사를 총동원해 악성 루머와 유대인 음모론을 만들고 유포해 유대인의 악마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행정학자와 아이히만 같은 행정공무원들을 동원해 학살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고의 경제성을 도출해낸 것이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본질이자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변종 중 하나다. 

 

 

스탈린의 소련연방에서 자행된 대규모 학살의 집행지이자 정치범 강제수용소인 '굴락'도 히틀러의 나치가 운영한 유대인 집단수용소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됐다.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었던 나치의 유대인 집단수용소와는 달리 '굴락'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또는 공개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둘은 작금의 표퓰리즘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극우와 극좌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말해주는 인류역사의 잔혹함이다. 

 

 

인간이란 종으로 살아가는 모든 날들에 감사하자. 70억 인류 중에서 노통에 이어 문프까지 경험할 수 있었고, 경험하고 있는 행운에도 감사하자. 자유와 평등,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에 살고있는 것에 감사하자. 죽기 전에 남북한의 자유로운 왕래와 공동 번영이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감사하자. 북한이란 존재를 팔아먹으며 호가호식했던 수구꼴통이 표퓰리즘의 득세로 부활하는 것에도 감사………………………하지 말고(제기랄, 어떻게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인데 그렇게 빨리 돌아설 수 있단 말인가!) 슬퍼하고 분노하고 저항하자(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종편의 활약(?)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김어준과 주진우, 김제동, 이동형 등에 열광하고 휘둘리는 것이!).  

  1. 뉴페이스 2018.12.11 05:20

    일딴 srt부터 없애야죠.
    정규직화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많은 건 맞지만(아버지가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셔서 압니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불만이 굉장히 높다고 하네요...),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게 맞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코레일이 손해를 입고 뒤에서 철도시설공단이 이득을 먹는 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거, 그게 우선이라 봅니다. 탈선의 근본적인 책임은 철도시설공단에 있는데 모두 코레일만 보죠...

    • 늙은도령 2018.12.11 06:06 신고

      문프가 공무원을 대폭 늘리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위험의 외주화에서 벗어나려면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는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그것까지 건드리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정치적 역학관계가 보통 아닙니다.
      저의 삼촌이 교통개발원을 만든 분이고 저도 그곳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잘 알고 있지만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정규직이 반발하는 것은 모든 세대와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보면 인정하기 힘듭니다.
      그런 반발은 민간기업에서도 엄청나게 나오고 있지만 기득권의 주장이라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 분야를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18 동안 그것만 파고들었는데 최근에야 전체적인 윤곽을 잡았습니다.
      다양한 학파와 주의의 신봉자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모두를 섭렵해야 비판의 지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어느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고요.

 

자한당의 수구꼴통들과 그들만큼 뇌가 부식된 전·현직 정치인들, 전통의 기레기 조중동과 그들을 따라하기 일쑤인 진보매체마저도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불평등이 늘어났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자본주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뉴딜정책과 케인즈주의 덕분에 자유민주주의가 자신의 구성원들에게 약속한 온갖 장밋빛 혜택들을 단 하나도 누려보지 못한 밀레니엄 세대와 중년파산으로 내몰린 40대들의 문재인 정부 비판도 이들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소득불평등이 늘어났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너무나 당연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J노믹스의 첫 번째 단추인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해서 이런 통계가 나온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상위 10%%에게 하위 90%의 부와 기회를 이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그것도 2020년의 통계 때부터 조금이라도 반영될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평등을 늘려온 지난 20년의 추세를 멈추게 만든다는 것은 경제의 신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8년 동안 필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주제가 신자유주의 합리성으로 작금의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들어낸 절대적 원인이다. 많은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모든 종류의 민주주의를 시장화시키는 궁극의 통치술이다(미셀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던진 화두로 필자가 아는 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성찰을 담은 책이고, 이를 확대·재정립한 해낸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가 뒤를 잇는다. 푸코의 관심이 일련의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으로 관련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지만 브라운에 의해 그 일부는 채워질 수 있었다). 

 

 

김연아의 경제적 효과가 얼마니, 정치사회적 갈등이 초래하는 비용이 얼마니, BTS가 창출하는 경제적 이익이 얼마니, 노조들이 일으키는 파업의 손실 비용이 얼마니, 교황의 북한 방문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얼마니 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끄는 모든 것들을 경제 지표(시장 지표)로 환산해 자본화하는 것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세상을 점령해가는 방식이다. 나라마다 10~20년 정도의 편차가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모든 노동을 개인의 책임하에 진행되는 투자의 형태로 치환함으로써 불평등과 양극화를 경제성장의 촉진제로 만들어버렸다.  

 

 

모든 노동(개인의 돈으로 쌓아올린 각종 스펙들 포함)이 인적자본화 되면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라 자신의 자본적 가치를 팔아 이익을 얻어야 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전환된다. 노동은 자본과 기업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하에 자본과 기업에 파는 것으로 변질된다. 이럴 경우 투자의 원칙이 노동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노동(학력이 낮을수록, 스펙이 적을수록, 기술숙련도가 낮을수록 불리하다)은 저임금으로 내몰리며, 가치가 사라진 노동은 버려지거나 대체되거나 폐기된다(노동유연화의 핵심).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또한 정부의 역할을 모든 경제 주체들의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쟁을 증진시키는 규제를 늘리고,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해야 하는 것으로 한정한다(세월호 참사의 간접적 요인). 투자는 개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종 복지를 줄이고 사회안전망과 공교육 지원을 최소화해야 하고, 그래서 긴축재정과 균형재정을 지향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반하는 부실기업은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더 큰 기업에 흡수합병시켜야 하며, 그에 따른 대규모 해고는 경쟁력 저하에 일조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IMF가 김대중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한 것).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노조는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고, 자본과 기업의 투자수익률을 낮추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국정철학). 모든 교육의 목표가 민주적 이상과 정치사회적 지식, 자치 능력, 자아실현 능력 등을 지닌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비용 대비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 주체를 배출하는 것으로 치환된다. 투자 대비 이익이 떨어지는 리버럴아츠(기초 교양)는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퇴출돼야 마땅한 학문이 된다. 다시 말해 자본과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는 학문들은 생존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고 축적돼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접어들었고 무한경쟁에 따른 극소수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가 국가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서도 지난 30년 동안 지속된 이런 신자유주의의 폭격(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이런 추세를 거스를 수 없었지만 경제성장과 복지, 사회안전망, 국가안전시스템 구축 등을 늘려 신자유주의 폭주의 피해를 줄이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은 자본과 기업의 천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청년과 여성과 노인을 절망과 빈곤의 질곡으로 몰아붙였다.

 

 

청춘들이 중시하는 가성비가 가치 판단의 최고 기준이 된 것도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결과인 소득불평등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들고 미래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최소 투자로 최대 수익을 거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반화된 현상이다. 소확행의 유행도 똑같은 관점에서 보면 가성비 중시와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는 현상으로 밀레니엄 세대의 좌절과 절망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망과 희망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행복으로의 후퇴뿐이다. 

 

 

민주주의와 인류의 종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세상을 망가뜨린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자유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대체해버렸고, 필요하다면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져다 쓰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돈만 되다면, 그리고 그 이익이 상위 1%에 집중된다면 어떤 아이디어라도 가져다 썼다(나오미 클라인의 《No로는 부족하다》를 참조). 골목상권이 대형프렌차이즈에게 잠식당한 것을 넘어 대리점 간의 출혈경쟁으로 내몰리는 것도 신자유주의 합리성 때문이다. 갈수록 커지는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는 20~40년에 걸친 (보수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의 작품이어서 특정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실시된 최저임금 인상 같은 것들이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데, 그것도 정책의 효과가 나오려면 최소 2년은 걸린다. 대한민국처럼 중소상공인이 전체 국민의 20% 가까이에 이르고, 이중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중소상공인이 150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피해를 만회해줄 (자한당이 악착같이 반대해온) 임대차보호법 같은 법률 제·개정과 (카드수수로 인하와 임금 지원, 노동시간 단축을 전제로 한 탄력근로제 등의)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제공돼야 한다. 

 

 

필자의 경우, 중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내년에도 최저임금 인상폭이 두 자리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년 1사분기까지는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이지만, 그 이후로는 약간의 성장세(낮은 유가가 핵심)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두 자리 수의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반신자유주의적 조치를 감행해도 될 것 같다.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재정정책들도 과감하게 실시해야 하며, 하나의 방법으로 임대주택 건설을 늘리는 것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정 수준의 가계부채와 대학등록금대출액의 탕감도 이루어졌으면 한다(모든 책임을 개인화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익숙해진 국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겠지만).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대표적인 J노믹스의 한 축인 혁신성장(조지프 슘페터가 개념화한 '창조적 파괴'가 원조라 할 수 있다)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자와 기업을 동시에 포용해 국민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는 공정경제는 이런 포용적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구축될 수 있다. J노믹스가 신자유주의의 폭주를 막고 민주적 분배를 실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정책 집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뚜렷한 결과를 내놓을 수 없지만 문프의 J노믹스는 대한민국 경제를 신자유주의적 폭주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이 (통계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마사지함으로써 J노믹스가 실패하도록 만들기 위한) 사이비 지식인과 교수, 보수 정치인의 무논리와 거짓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불평등과 양극화를 늘리기만 해온 신자유주의 통치술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갈수록 늘어난다. 소득분위 최하위와 차상위의 소득만 줄었다는 통계는 아픈 현실이고 J노믹스에 불리하지만, 본질적인 차원의 분석없이 단기적 현상만 놓고 소득주도성장을 실패로 단정하고 후퇴할 이유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 글도 초고입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온갖 부작용을 포함해 대단히 많은 부분을 첨가해야 하지만 핵심 논리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하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돌되는 현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세분해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커졌습니다.) 

  1. 카사바 2018.11.26 23:38

    선생님, 오늘도 글 잘 봤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단락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든다"부분을 다시 살펴 봐 주세요! 혹시 "~늘어난다"가 아닐런지요?

  2. 뉴페이스 2018.11.27 00:31

    좋은 글인데, 흠...크게 3가지 정도 내용이 빠진 것 같아요.
    첫째는 부동산이고,
    둘째는 물가,
    셋째는 금리인상이 있겠네요...

    J노믹스의 정책은 훌륭하나 문제는 국민이 이를 기다려주냐 겠죠.

    • 늙은도령 2018.11.27 01:08 신고

      부동산은 별도의 글로 다룰 것입니다.
      부동산에는 다양한 역설이 자리해서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긴 글로 따로 다뤄야 합니다.

      물가는 핵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소득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과민반응으로 이어진 면도 있고요.
      1인가구가 늘어난 것도 하나의 요인입니다.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다른 부분에서 줄어든 생활비는 생각하지 않은 채 일부 분야에서 오른 물가만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요.
      유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올라간 물가의 대부분이 내려갈 것이고요.

      금리인상은 필연이지만 최대한 늦추고 있습니다.
      인상이 단행되면 가계부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정부나 한국은행도 최대한 자제하는 것입니다.
      금리인상에는 너무나 많은 외적 변수가 자리하고 있어서 답이 없는 부분입니다.
      미국도 금리인상을 못하는 이유가 연준과 트럼프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고요.
      최근에 들어 경기가 하강하는 조짐이 강해지는 것도 한몫했고요.

      님이 말한 세 가지는 하나하나를 별도로 다루어도 대단히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글에서 다루지 않았고요.

      국민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올바른 정책을 포기할 순 없지요.
      국민의 수준이 그렇다면 그 대가 역시 국민이 치루게 됩니다.
      제가 달라진 부분은 국민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영위하려면 국민의 수준이 올라가야 합니다.
      체제를 탓하고 정당과 정치인, 언론을 탓해도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인 것이고 지금까지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이라면 저라고 어쩔 도리는 없지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다면 정부라고 해도 별 수 없고요.
      국민이 떠나가면 정권을 뺏기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민의 판단에 도움을 드릴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습니다.

      진보좌파는 너무 이상론만 애기해요.
      그것도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론을 애기해요.
      그렇게 갈등만 부풀려 놓고서는 자신들의 이익만 챙깁니다.
      보수우파만 비판했던 제가 진보좌파 비판에도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이지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보수우파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현실을 이해한 다음에야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 아니면 뒤집어버려야 할지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글  

 

 

 

 

그리하여 가장 최근에는 브라질에서 극우 표퓰리스트 정치인이자 '리틀 트럼프'로 회자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63)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최고조에 이른 민주주의 위기론과 종말론이 신종 전염병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시민의 힘으로 권위주의적 표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박근혜를 탄핵시킴으로써 민주주의 역주행의 잃어버린 9년을 종식시킨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들이 권력을 잡거나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시민 자치를 뜻하는 민주주의(특히 자유민주주의)를 벼랑끝으로 내몰면서 작동불능의 지경으로까지 몰고가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빰칠 듯한 극단적 표퓰리스트의 득세에 기존의 정당들과 언론들은 너무나 무력하고 부패해서 이들에게 휘둘리며 민주주의 방패막이로써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케이블 방송(한국의 종편을 생각하면 된다)과 인터넷언론, 팟캐스트, 유튜브의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한 1인방송, 정치뿐만 아니라 모둔 분야에서 극단적 대결을 조장하는 소셜미디어 같은 대안언론과 유사언론, 1인언론의 폭발적인 분출은 정치적 아웃사이더나 극단적 표퓰리스트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필터링 기능이 마비된 생태계에서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증오와 혐오, 차별과 분열, 배제와 범주화, 복수와 테러를 조장하는 발언들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퍼져나갔다.       

 

 

경쟁하는 체제와의 싸움에서 민주주의 진영의 승리를 이끌었던 고도·과속성장의 파티는 너무나도 짧았고, 선진복지국가를 구축한 북유럽의 국가들을 빼면 자유주의 경제학이 자랑했던 낙수효과와 비슷한 것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뒤를 이은 신자유주의 30~40년 동안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가 발생함에 따라 기성정치와 제도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면서 표퓰리스트들이 목소리를 높일 환경이 조성됐다. 2016년부터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수많은 논문과 저서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과학기술이 미친 영향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처음으로 정식화한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40년만에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정보통신기술로 대표되는 디지털기술과 빅데이터 및 뇌과학에 기반한 인공지능 발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신자유주의는 하위 99%의 돈을 상위 1%로 이전하는 역계급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대기업과 자본의 입장에서 수익성이 높은 아이디어들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강자의 수익모델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무한경쟁을 강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술이다. 푸코에 의해 신자유주의 이성이라고 명명된 이런 통치술은 자유민주주의를 시장민주주의로 치환시켜 정치적 인간을 경제적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따라서 기술 발전을 녹여내는데 상당한 성공을 이룬 로버트 J.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와 '촛불혁명'과 '소셜미디어'에 하나의 장을 할애한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와 경제,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날개를 달아준 디지털기술과 인공지능에 대한 냉정하고도 비판적이며 포괄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물론 인류의 멸종을 막을 최후의 기회마저 허무하게 날릴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인간이 주도하는 마지막 산업혁명이자 최후의 발명품이라고 하는 4차 산업혁명(미국의 실리콘벨리와 영국, 한국에서만 각광을 받는)과 인공지능의 영향까지 포함해 거칠고 위태하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려고 한다. 성장의 또 다른 말이 극단적 불평등이었으며 지속불가능한 양극화였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과학기술 발전의 역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성장과 진보를 무조건적인 선으로 보는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이런 인식을 대전제로, 가능하면 모든 사안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볼 생각이며, 양극화된 이념적 구분이나 프레임전쟁의 관점에서도 최대한 벗어나려고 노력하되 현장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나에게는 너무 쉬운 보수우파 비판만이 아니라 살과 뼈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진보좌파 비판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작고한 드워킨이 그랬듯이, 진보와 보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합의점을 제시할 것이며, 비판을 넘어 대안 제시에도 용감하려 노력할 생각이다. 다양한 정의론 중에서 이 시대에 맞는 정의론의 일단이라도 고민해보았고, 몇몇 선도적 연구가들의 도움을 받아 디지털기술과 디지털세대의 명암도 직선적으로 다루었다. 조심스럽지만 디지털기술과 만난 페미니즘의 급진화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페미니즘의 정상화만이 수많은 인류 멸종 시나리오의 대부분을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남녀의 성대결로 변질되고 있는 페미니즘 급진화의 원인을 밝혀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믿는다. 인류사 전체를 놓고 보면 부모세대보다 자식세대가 못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밝힐 것이지만, 밀레니엄 세대의 경우가 그중에서도 최악인 이유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았으며,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자살만 꿈꾸다가 방대하고 무차별적인 독서를 통해 지금에 이른 나에 대한 이야기다. 거의 모든 표퓰리시트는 빛과 어둠의 경계를 어슬렁거리며 세상을 배회하던 아웃사이더로 분류되고, 기성정치인과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에 나의 삶을 짧게나마 다루는 것이 그들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매우 짧은 기간의 꿈으로 허망하게 끝났지만 지금의 구글과 애플이 하고 있는 사업들을 거의 다 그려보고 한두 가지는 실제로 추진해봤기 때문에 디지털기술과 온라인 세상, 특히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명과 암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었던 내 경험이 작금의 현실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이 때문에 두 번째 파트는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본 근현대사 비판에 할애했으며, 산업혁명에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거쳐 표퓰리즘의 득세까지 신자유주의 합리성과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에 미친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다루어보았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디지털시대의 표퓰리즘과 민주주의 위기, 진보의 역설과 인류의 종말을 다양한 부분으로 세분해 다루었으며, 포괄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과정을 거쳐 끝에 이르렀을 때 내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들이 독자들의 눈에는 더욱 진보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진보의 재정립처럼 다가올 수도 있고, 보수의 정신을 대폭 수용한 새로운 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가 무엇으로 나오던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것이며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며, 지금보다 풍요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식과 양심, 상호존중과 배려, 정의와 공정이 산소처럼 퍼져있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사람 사는 세상'에 다가가는 것이다. 비록 소수에 그칠 독자와의 여행이지만 모든 고민의 끝에는 흐릿하게나마 희망적인 세상의 일단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전 과정이 더욱 흥분되고 설레는 것처럼, 나와 여러분의 여행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대한 쉬운 언어로, 평이하게 풀어가도록 노력하겠지만, 혹시라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필자의 모자람과 과욕에 있지 독자 여러분의 사유의 깊이와 넓이에 있지 않음을 밝힌다. 

 

 

자, 그러면 함께 출발해 볼까요?

  

  1. 카사바 2018.11.27 00:16

    네 저도 출발합니다! 선생님의 저서가 벌써부터 많이 기대됩니다.."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우리 후손들은 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겠지요! 선생님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네요. 책을 내실 때 제목이든 부제든 눈에 확 띄게 해주셔서 많은 분들이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책이 나올 때까지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8.11.27 01:44 신고

      네, 그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목과 부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제가 최대한 충실하게 글을 써내는데 성공하면 그에 걸맞는 제목과 부제도 나올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목표한 것을 이루어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