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에는 '더불어'도 사라졌고, '민주'도 사라졌다. 오직 ''이라는 단 하나의 글자만 남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킬 때마다 '비상사태'를 들먹이는 박근혜처럼, 제1야당을 '비상사태에 처한 당'으로 규정(여기까지는 필자도 동의한다)해 공천과 당 운영에 관해 전권을 넘겨받은 김종인이 2차 컷오프 대상을 정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더불어'와 '민주'는 종적을 감췄다. 





필자는 문재인 전 대표 때 이루어진 1차 컷오프 결과를 수용하는 대가로, 김종인 위원장이 2차 컷오프 대상을 정할 때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전권'을 받아낸 것도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자 했다. 총선에서 패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에게 최소한의 탈출구를 마련해주려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안고가야 한다는 것(문재인의 지역구 출마와 충돌난다)으로 해석한 것이 그 첫 번째였다. 



총선투표율이 50%대(이 정도의 투표율이라면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없지만)에 불과하기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새누리당과 1대 1 구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에도 우선한다고 해석한 것이 두 번째였다. 특히 수도권에서 국민의당과 통합후보(선거연대던, 당대당 통합이던, 흡수통합이던)를 내지 못하면 새누리당의 압승을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선전(현상유지만 해도 성공이라는 김종인의 발언이 엄살이라고 해도)했을 경우 김종인 체제로 대선을 준비하는 것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 세 번째였다. 여기까지는 김종인과 문재인이 운명공동체라는 수없이 많은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과 (김종인 체제를 비판한 필자를 과대망상증 환자이자 분열분자로 규정한) '오늘의유머'처럼 문재인 지지자들의 견해에 따른 것이었다.





총선 승리가 무엇에도 우선하기 때문에, 김종인 위원장이 (필자 같은 SNS 이용자들에 의하면) 조중동의 영향력을 신에 준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박영선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손석희의 뉴스룸에 따르면) 이목희와 이춘석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간에, 시민들의 열광적인 시청에도 불구하고 '마국텔 조기종영'의 후속작으로 '야당 통합'을 조기방영한 것이 패착이 될 수 있다는 필자의 비판도 거둬들였다.



당원과 지지자들과의 수평적 토론이라는 '더불어'도 저버리고, 의원(은수미의 트윗를 보라)과 당직자(손혜원의 트윗을 보라)와의 수평적 토론이라는 '민주'도 저버린 김종인 위원장의 첫 번째 독단도 눈감아 버렸다. 범야권 공영방송을 표방한 '시민표창 양비진쌤' 1~2회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결정을 믿어도 된다는 표창원과 양정철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아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자신을 설득했다)





이념논쟁에 빠지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최악의 양비론도 문제 삼지 않았다. 안철수에 대해서도, 문재인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중앙회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훈계를 쏟아낸 김종인 위원장의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인 발언들도 비판하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옳다'는 그의 언행이 이명박근혜와 여러 가지 면에서 겹쳐짐에도 내 판단이 틀렸고, '시민표창 양비진쌤' 1~2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정당으로서의 기본도 갖추지 못했던 더불어민주당의 부활을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안철수를 포함해, 국민의당에 합류한 의원들이 하루라도 빨리 복당할 수 있도록 더불어민주당 내부에 진공상태(공천을 주는 것과 상관없이)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면, 그래서 정청래와 강동원(손석희의 뉴스룸이 '마국텔 조기종영'의 주범으로 지목한 이목희까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더 이상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할 이유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풍전등화의 비상상태이기 때문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예외상황적 독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지극히 칼 슈미트적이며, 그래서 당원과 지지자와의 '더불어'와, 의원과 당직자와의 '민주'도 사라진 채, 오직 자기기만적 집단최면에 빠져버린 ''을 위해 내 한 표를 던질 이유도 사라져버렸다. 정청래와 강동원이 당의 결정에 따른다 해도 필자의 한 표(정당투표를 포함하면 두 표)는 녹색당과 노동당에 나눠질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정의당과 녹색당,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은 (제1야당의 방조와 협조 속에) 이명박근혜 정부 8년 동안의 해체작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현실정치라는 시공간이 완전한 진공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초법적인 해체작업의 반작용으로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젊은피의 수혈이라는 인적 구성의 변화를 덤으로 신자유주의적 헬조선을 뒤집기 위한 이들의 시대적 역설은 '역사는 희극으로 한 번, 비극으로 한 번 되풀이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마저 돌파하겠다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자신만 살겠다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잠시나마 야성과 정체성을 회복한 듯했던 제1야당이 비상상태 운운하며 (문재인은 꿈도 꾸지 못했던) 전권을 달라는 김종인의 협박에 당헌과 당규마저 뜯어고치며 낮게 엎드린 모습이란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다. 개처럼 벌면 개밖에 될 수 없듯이, 새누리당스럽게 이기면 새누리당2중대밖에 될 수 없다. 






차라리 '더불어'와 '민주'를 반납하라! 김대중과 노무현이란 이름을 제1야당의 역사에서 맹렬하게 지워나가는 행태를 통해서라도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면, 그것이 문재인과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친노의 와신상담일 수도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면, 최소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투표한 필자의 표만큼의 가치라도 돌려달라! 그래야 정청래와 강동원에게 내 한 표라도 줄 테니 진보정당의 으르렁에 합류하라고 권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청래와 강동원을 컷오프시킨 논리가 최소한의 정당성이라도 가지려면 이종걸과 박영선도 컷오프돼야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부관참시도 서슴지 않는 저들의 행태에 문재인이 답해야 한다. 총선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김종인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더불어민주당의 모든 것들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필자의 분노를 모조리 담아낸 칼날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6.03.11 07:22 신고

    김종인도 안철수도 새누리가 심은 사람이 아닐까 하느 생각이 점차 사실같다는 생각이 굳어집니다.
    정말 더민주당은 자멸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2. 耽讀 2016.03.11 07:28 신고

    박영선과 이종걸이 더 나쁜 자들입니다.
    세월호 가족들에 대못을 박았고, 이종걸은 당무 거부 40일입니다. 문재인을 유신에 비유했습니다.
    이미 떠난 당 관심 가질 마음 조차 없습니다. 이 당 희망 없습니다.

  3. 이재현 2016.03.11 07:37

    가슴이 아픔니다
    가슴이 아픔니다ㅠ

    • 늙은도령 2016.03.11 15:58 신고

      네,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무려 30년을 넘게 지지한 정당이니까요.

  4. BOW 2016.03.11 08:07

    개인적으로 애초에 저런 인간(김종인)을 끌어들인 문재인을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져보면....

  5. 공수래공수거 2016.03.11 08:25 신고

    상대방이 자중지란 하고 잇는데 그것을 이용못하는
    장수는 전쟁에서 승리할수가 없습니다

    일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잘 판단해야 할것입니다

  6. catlover8 2016.03.11 10:49

    오늘 기사를 보니 더민주 공천위원회 인사가 인터뷰에서 정청래 의원을 트럼프에 비교했더군요. 그래서 재심할 수 없다고..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것이야 말로 막말이 아닙니까? 정청래 의원이 당을 교란시키고, 온갖 협잡과 속임수로 일관하는 자들과 싸우다 보니, 또 당대표를 쥐고 흔들고, 무시하려는 자들로부터 대표를 지키려다보니 정제되지 못한 단어를 몇 개 사용하였다 하여 어떻게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전쟁광과 비교를 할 수가 있습니까?

    트럼프가 생방송중 미국 여성앵커에게 한 막말이 어떤 말인지 더민주 공천위는 파악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트럼프는 영국에서 60만명이 넘는 영국민들이 영국 입국 금지 서명운동을 벌여 영국 의회에서 토론을 벌이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 선거당시 가파르게 지지율이 올라가자 블레어가 뛰어다니며 낙선운동을 벌였었죠. 지금 그는 샌더스 낙선 운동을 벌이고 있구요.

    그 때 한 코빈 지지자가 블레어에게 코빈의 연설을 들으면 심장이 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블레어는 심장이식 수술을 받으라는 참으로 무례한 막말을 했는데, 그래서 욕을 먹었지만 코빈 지지자들은 그의 교만을 비난하고, 다시 한 번 전의를 다지며 넘어갔지 블레어가 그 말을 했다고 그를 제명시켜야 한다는 노동당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블레어는 두고두고 그 말로 비웃음을 살 뿐이죠.

    저에게 어제오늘 든 생각은 이제 더이상 어떤 문제가 한국 진보 혹은 보수 이런식으로 따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나라 전체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무엇이 민주주의고, 무엇이 법치주의인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가치들조차 흔들리고 있지 않나 하는...

    박근혜를 대통령에 앉혀놓은 것이 나라에 이렇게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라는 것을 그녀를 뽑았던 사람들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 늙은도령 2016.03.11 16:01 신고

      조중동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미친 놈들이 지랄을 떨고 있습니다.
      제가 글로서 답할게요.
      님의 댓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7. 붕붕이 2016.03.11 12:33

    아. 정말 새누리랑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민홍철을 눈물을 머금고 그동안 투표를 해왔는데 이번엔 안 찍고 싶네요. 민주시민들과 당원들이 호구로 보지 않는다면 이럴수 없습니다. 정말
    문재인때문에 그동안 진보정당에게 비례를 주던걸 더불어민주당에게 주려했건만 다시 진보당에게 줘야겠네요. 너무 화가 나네요.

  8. 까밀 2016.03.12 17:54

    김종인은 중도보수로 더민주를 탈바꿈시켜 총선 승리 후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수렴청정하려는 듯 합니다.. 아니면 담종을 친 세조처럼 할 수도 있겠지요. 중도보수 포지셔닝이 국민의 당과 겹치니 안철수도 죽이려하고... 정체성을 버리고, 공약도 제대로 없이 권력잡는데 혈안된 더민주 보다는 다른 진보정당을 키워야할때라 생각됩니다

    • 늙은도령 2016.03.12 20:56 신고

      그럼요, 진보정당을 키워야 합니다.
      청춘들이 흥겨워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어떤 혁신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치학에는 ‘나쁜 지도자보다 무지하고 무능한 지도자가 더 나쁘다’라는 명제가 있다. 전두환과 이명박처럼 나쁜 지도자는 국민이 기대하지 않고, 속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쁜 통치에 대처가 가능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이 상당한 피해를 입지만, 국민들이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어 나라를 말아먹는 정도까지 가지는 않는다. 

 


 

반면에 김영삼 전 대통령에서 보듯 나쁘지는 않지만 통치에 무능하면 IMF 외환위기처럼 국가와 국민에게 회복불가능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국민은 지도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 감시가 약해지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박근혜의 폭정에 직면해 김영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경제에 무능해 상당수의 국민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정경유착으로 이루어진 압축성장의 폐해를 관리하지 못한 김영삼의 무능함은 IMF 외환위기로 이어졌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의 중산층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층민은 빈곤층으로 전락해 생존선 주변으로 내몰렸고, 숫적으로도 폭발적인 증가를 나타냈다. 그 결과 정치와 담합한 독점 자본과 거대기업들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신자유주의의 토착화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김영삼 다음에 김대중이 대통령에 오른 것은 위대한 민주화의 결과이며 역사의 필연이기도 하지만, 부도 직전의 국가와 허허벌판으로 내몰린 국민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필자처럼 벤처광풍에 휩쓸린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시절이었지만, 국가경제와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최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의 해악이 여전했지만, 국가와 사회복지의 기초를 다짐으로서 상당 부분을 상쇄할 수 있었다.





국민에 의해 끌어내려진 이승만처럼 나쁜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인물이 지도자에 오르면 국가와 국민은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지금까지 수구세력에 의해 악용되고 있는 한국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전쟁 발발의 책임이 전적으로 이승만에게 있진 않지만, 그가 제대로 된 지도자였다면 친일청산도 가능했을 것이고, 한국전쟁을 막을 수 없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냉전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의 승자는 북한이었을 것이고, 우리는 좌파 전체주의의 압제와 김일성 일족의 착취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을 터였다. 전형적인 트러블메이커이자 권력의 화신이었던 이승만은 대한민국에서 나온 지도자 중 최악의 대통령이었고, 그가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 내려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역사가 반성적 성찰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 정상적이라면 이승만 같은 지도자는 다시 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의 선택이 또다시 잘못된다면 국민 스스로 국가와 자신을 말아먹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국부로 띄우려는 현 집권세력의 시도가 얼마나 반국가적이고 반국민적인지 구태여 부연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는 희극으로 한 번, 비극으로 한 번 되풀이된다고 했는데, 이승만보다 더 나쁘고 더 무능한 지도자가 나왔다. 당연히 입헌군주의 독재를 지향하는 대통령, 박근혜를 말한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박근혜가 3년 동안 한 일이란 국민을 분열시키고, 세대간 갈등을 최대화하고,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몰아 대한민국을 풍전등화의 위기로 내몰았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실정의 결과가 폭발할 텐데, 박근혜 지지자가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머지 국민들은 억울하고 환장할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무능함에 더해 나쁜 지도자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와 국회의장에 대한 비난과 노골적인 압박, 야만공권력을 동원한 국민의 기본권 탄압, 공안정국의 조성 등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역사에 기록될 업적)만 생각한다.

 

 

박근혜는 국가의 야만공권력과 콘크리트지지층을 이용한 박근혜의 선동적인 사적정치는 대한민국을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이명박은 그나마 고정지지층이 없어서 그의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가 있겠지만, 박정희의 지지층을 물려받은 박근혜는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크다. 박근혜가 김무성을 밀어내고 공천권을 장악한 뒤 자신의 사람들로 새누리당을 재편하면, 대다수 국민에게 생지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보수언론과 종편, 보도채널, 지상파3사라는 쓰레기들의 보도행태와 정치검찰의 무리한 기소, 수구세력의 고소와 고발의 남발까지 더하면 2030의 헬조선이 전 세대의 헬조선으로 넓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김무성을 털끝만큼도 지지할 생각이 없지만, 최소한 그가 박근혜와의 권력암투에서 선전해주기를 바라고, 문재인 체제가 야당의 부활로 이어져야 한다. 

 

 

국민들은 아우성치고, 난장을 벌이고, 집회와 시위를 이어가고, 지상파에 세월호 청문회 생중계를 요구하고, 야만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며 저항하고, 정치검찰의 행태에 비판을 가하고, 위안부협상을 무효로 만들어야 하고, 노동개악을 막아내야 하고, 제대로 하라고 야당을 지원하고 분열을 막고 통합적 혁신에 이르러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최악의 지도자가 국격과 공익, 국민의 삶과 역사, 언론과 교육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바람 언덕 2015.09.20 10:36 신고

    무능한데가 나쁘기까지 하면 바로 저 위의 인간처럼 되는 것이겠죠.
    아, 정말 역사가 그네를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합니다.
    진성여왕 그 언저리쯤 될까요?
    마지막 문장이 아리네요, 제길슨...

  2. 참교육 2015.09.20 11:13 신고

    혼자보기 아깝습니다.
    페북이나 트윗트로 공유하겠습니다.

  3. 耽讀 2015.09.20 15:31 신고

    이런 사람이 지지율 50%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박그네 볼 때마다 대통령 하기 참 쉽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최악입니다. 참나쁜 대통령이고, 참 무능한 대통령입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09.21 08:52 신고

    이젠 헛웃음이 나옵니다
    아직도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X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할정도로...

  5. 우니에몽 2015.09.21 09:46 신고

    투표도 잘못 기재되었다고 하는데 ㅋㅋㅋ 진짜 ㅋㅋ
    조작이라고 하는데 ㅋㅋ
    일단은 국민들 말을 안들어주는게 제일 크죠
    귀기울이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6. 여행쟁이 김군 2015.09.21 12:35 신고

    그저 씁쓸합니다ㅠ

    이런분의 지지율 50%.....
    뭐가 맞는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씁쓸합니다

  7. 『방쌤』 2015.09.21 21:29 신고

    최선을, 또는 차선을,, 바라지도 못하고
    최악은 피해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점점 더 최악이 되어가고 있으니,, 참 답답하네요

  8. 2015.09.23 08:31

    비밀댓글입니다

  9. 2015.09.23 08:54

    비밀댓글입니다

  10. 비단강 2015.09.23 20:21 신고

    이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구해줄 손길은 없다.
    오로지 우리 스스로의 손 밖에는 없다.

  11. 뉴론♥ 2015.09.26 18:58 신고

    오늘부터 추석 연휴 기간입니다.
    내일이 추석인데 가족들과 좋은 시간보내시고
    소원 성취하세요

  12. 머무는바람 2015.09.28 10:05 신고

    추석잘 보내시고
    좋은글 부탁드릴께요



청와대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메르스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망자도 6명이나 나왔고, 확진환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믿을 수 없고 숫자에 잡히지 않는 자가격리자까지 포함하면 직접 피해자만 수천 명이 넘습니다. 이런 속도면 직접 피해자만 수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청와대와 정부의 방역실패 때문에 목숨을 잃었거나, 고통스런 투병을 해야 하고, 강제 휴직이나 휴업을 당한 꼴이라 유무형의 피해는 계속해서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가족이 겪어야 할 피해(메르스에 노출된 잠재적인 환자라는 낙인효과까지)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입니다.



병원들이 입은 피해는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방역당국의 초기대응 실패로 국내의 거의 모든 병원들이 파산지경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오늘 필자가 다녀온 분당서울대병원만 해도 지난 8년 동안 정기적으로 다녀봤지만 이렇게까지 썰렁한 적이 없었습니다. 식당에 들려 식사를 하는데도 저를 포함해 5명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잃어버린 신뢰는 병원시스템과 간병문화에 책임을 돌리기에는 메르스 퇴치가 완전히 끝났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에 계산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의료계 종사들이 입은 피해와 국내외의 신뢰 하락까지 더하면 피해추정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의료민영화와 영리화 추진이 힘들어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자영업자와 내수경제 주체들이 입은 피해는 병원들이 입은 피해액보다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메르스가 완전 종식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피해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재정상태가 나쁜 자영업자와 내수경제 주체들은 파산을 면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휴교학교까지 더하면 관련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납니다. 



수출기업들도 유무형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추상할 방법이 없지만, 중요 미팅들이 뒤로 미루어지고 그에 따라 결정이 늦어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환율 쇼크와 비슷한 단기적 피해를 면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란 나라의 브랜드 가치의 하락까지 고려하면 후진국 시절의 ‘코리아 디스카운팅’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민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라는 스트레스는 계산불가능합니다.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것은 오래전에 밝혀졌습니다. 모든 병의 직접적 원인인 바이러스와 균, 세포변이 등도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인간의 면역체계가 약화될수록 그 위력이 배가됩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코리아 디스카운팅’은 박근혜 대통령이 입만 열면 흘러나오는 ‘국격’에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초국적기업들이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연간 수천억에서 수조 원의 마케팅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정부도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 붙습니다.



메르스의 급속 확산과 방역실패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땅 속 깊은 곳으로 처박아 버렸습니다. 국민과 기업들, 앞선 정부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쌓아올린 국격이 이번처럼 곤두박질친 경우는 5.18광주민주화항쟁의 무력진압과 IMF 외환위기에 비견될 만큼 치명적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두 비극은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주시하지 않았지만, 기술발전과 세계화의 결과로 국제교류가 일상화된 현재에는 전 세계가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메르스 방역실패가 불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두 개의 비극보다 국제적 파장이 더욱 클 수 있습니다.





대강 살펴본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관련 전문가들이 세세히 살펴보면 피해의 종류와 크기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김연아와 한류의 경제효과를 계량화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민간의 경제연구소들이 메르스 피해액을 구체적인 수치로 계량화해야 합니다.



이는 땅에 떨어진 국격과 파탄지경에 이른 민생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초등대응에 실패한 청와대와 정부를 상대로 모든 피해자들이 피해보상과 배상을 요구하는데도 필요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조치라도 취해야 후대의 국민에게 지도자를 잘못 뽑고 정부 감시를 소홀히 하면 어떤 피해를 입는지 깨우쳐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의 기록이며, 소수의 승자와 강자가 독점하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길입니다. 오늘의 무정부상태도 집단적인 단기기억상실에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국민의 특성을 고려하면, 경제적 수치로 계량화할 때만 반칙과 특권, 부정과 비리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개조에 일조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6.09 08:13 신고

    여러 간접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는 메르스와 관계가 없는데도
    메르스 발병이후 매출이 급감했다 합니다

    저도 친구들과의 여행 계획 취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컨대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이 있엇을것이라
    예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09 15:07 신고

      그럼요,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오늘 원광대 병원을 다녀왔는데 가히 휑합니다.
      피해가 어마어마해요.

  2. 耽讀 2015.06.09 08:17 신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정부와 언론은 국제대회를 유치하면 경제효과가 수 천 억원이니, 수 조원이니 홍보를 합니다.
    그런데 메르스 피해액이 얼마인지 발표하는 기관이나 보도하는 언론이 없습니다.
    계량화하면 엄청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09 15:09 신고

      외국이면 무조건 집단소송에 들어갑니다.
      정부가 초등대응을 실패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정부에서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요.

  3. 뉴론♥ 2015.06.09 10:10 신고

    메르스가 생각보단 바이러스가 강한거 같더군요 잠잠해질라면 조금 시간이 걸려서 피해도 많이 오겠지여
    어케 보면 안일한 생각해서 오는 결과죠

  4. 바람 언덕 2015.06.09 11:11 신고

    수구보수 세력에서 이를 역이용할 수도 있어요.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메르스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 위기를 슬그머니 들이밀겠지요.
    같은 진단인데 누가 어떻게 시나리오를 짜느냐에 따라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 늙은도령 2015.06.09 15:18 신고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그럴지 모르겟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싸울 용기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부의 초등대응 실패와 피해의 크기를 같이 연결하는 프레임을 고수해야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습니다.
      야당은 메르스 퇴치에 총력협조하되, 문제의 근원을 찾아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작업을 착실히 해야 합니다.
      무조건 퇴진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자료를 축척해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5. 함께행운이 2015.06.09 11:49

    아고라에서 님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경제적 피해도 큰 것이지만 국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마음의 상처또한 크다고 생각합니다 ..
    어떻게 된 시스템인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라니 참 실망스러울 분입니다 ..
    생명이란 가장 소중한 것인데 실수로 잃는 일이 없어야하는데.. 불안한 이 사회에 무엇을 믿어야할지 모를는 사태로 와있읍니다 ..
    참 답답할 뿐입니다 ..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5.06.09 15:20 신고

      네, 님의 지적처럼 이 정부의 무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너무나 우습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일이 커지면 그때서야 난리법석을 떱니다.
      일이 커지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고요.
      경제적 이익과 편리함 이상의 것들이 인간에게는 많습니다.
      가치와 도덕, 신념 같은 것들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6. 참교육 2015.06.09 14:18 신고

    솔직히 말해 병원들 정신 좀 차려야 합니다.
    배가 불로 고객을 봉으로 생각하고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습니까?
    그리고 국민들 제약회사 마피아들에 속아 병원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마취에서 깨어나야하고요.
    박근혜정부는 사람 목숨보다 돈계산이 더 급한 모양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09 15:25 신고

      그래서 그것을 역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병원이 손해에 민감하기에 그것을 가지고 정부와 일전을 치를 수 있게 만들어야 그 다음의 조치가 가능합니다.
      국민들이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공은 자신에게 돌리고 피해는 아랫사람에 돌리면 어떤 공무원도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통령이 경제만 외칠 때 그것은 상위 10%를 위한 것이라고.
      대통령이 민생을 외칠 때는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라는 것을.
      기본적인 조세제도, 복지체계, 일자리 창출, 공공의료 등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유럽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미국식으로 가면 무조건 망합니다.

  7. 최홍대 2015.06.09 19:53 신고

    찬물을 확 끼얹은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세월호 그리고 올해는 메르스..골고루 하네요. 마치 뷔페를 보는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09 19:56 신고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데...
      사실 서민에게는 정부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조세정의를 실현해 서민을 도울 수 있는 지도자와 정당을 선택해야 합니다.

  8. 소피스트 지니 2015.06.10 01:39 신고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이 대단한거 같아요. 뉴스에서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안나오네요. 거리도 너무 썰렁해진 것 같아요.
    조심하세요~

    • 늙은도령 2015.06.10 03:03 신고

      네, 마르스의 공포를 조장한 것은 정부인데 그것이 너무 커지자 이제는 공포를 거두들일 여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님도 조심하십시오.



거의 모든 면에서 진보좌파라고 믿었던 나는 합리적(이 단어는 대단히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이지만 이를 대체할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와는 몇 가지 면(특히 과학철학을 바탕으로 해석해낸 경제와 역사의 재구성)에서 일치하지 않지만, 정치권력의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과 그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역사는 단순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 자신과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자유는 불멸의 가치다. 이것이 없으면 인류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평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 평등이라는 것이 탄생과 함께 불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 불평등을 구조화한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부정의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지 않는 한, 나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비쳐진 다양하거나 엇비슷한 나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든 경쟁이 존재하는 한, 타인이 지옥으로 다가올 수는 있어도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와, 그런 다양한 나와 관계를 갖는 타인과의 접촉을 거절할 수 없다. 자살마저도 세상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하나의 선택이라고 주장한, 그래서 말 잘 듣는 노동자가 필요했던 초기 자본주의체제가 철저하게 배격했던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

 

 

“타방이 있어야만 일방이 있으며, 타방이 없으면 다른 일방도 소멸되어 버린다. 양자는 서로 직접 접경하여 객관이 시작되는 데서 주관은 끝난다. 양자의 경계가 공통된 것은 모든 객관의 일반 형식, 즉 시간·공간·인과율이 객관의 인식이 없이도 주관에 의해 안전히 인식”될 수 있다.

 

 

결국 사실이라는 객관적 팩트(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의해서 시계의 흐름에 따라 진열되는 역사의 단편들로 특정 가치체제를 거치지 않는 날것에 가까운 사실)는 의미라는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만, 내가 소중한 것만큼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과 믿음이 역사에 적시될 팩트(사건, 사실, 사람)를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인류의 위대한 현인이며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정치학자의 입을 빌려보자. 그녀는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히이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전체주의의 기원》, 《혁명론》 등을 쓴 한나 아렌트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 오직 인간에만 집중했던 그녀의 사상(전체주의에 지나칠 정도로 속박된 정치철학 혹은 비판정신)은, 그것에 대한 네그리의 비판이 아무리 신랄해도(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의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다음과 같은 통찰은 어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현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는 것이다.

 

 

내가 나의 능력에도 너무나 부치는 일인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유치하고 깊이가 턱없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는 가능한 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최대한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동시에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통해 바라보고 분석하고 비판할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지만, 그보다 크거나 다를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체가 부분보다 커야 할 이유는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부분이 전체에 예속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만이 강자와 승자 위주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맞설 수 있을 것이며,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 연대를 이룰 때 그들에 맞서 싸워 이길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의적 권력의 결정체인 새로운 제국과의 싸움이 어찌 간단할 수 있겠는가? 제국의 체제 논리 때문에 전 세계가 상시적 전쟁 상태와 유동적인 감시체제에 빠져든 상황까지 고려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어찌 그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노력하고 연대한다 해도 무적의 제국과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을 무너뜨리는 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나는 제국과 신자유주의 통치술과의 일전에 임해, 그 투쟁의 지평선을 넓히고자 한다. 더하여 이런 투쟁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 투쟁들이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삶의 현장에서 행동과 실천으로 구현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며, 나는 그 거대한 전환의 현장에서 가능한 많은 변화들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고 전하고 싶다. 그것만이 디지털 파놉티콘이라는 감시사회(각자도생사회 또는 삶정치로 포장되기 일쑤인 민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마도 거대한 전환의 실체를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바로 그것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내가 다시 쓰고자 하는 역사이며, 세계사의 진정한 모습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할 권리란 없다. 부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강자와 승자의 역사에서 사라진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재발견이며, 지상에서 보고 싶은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성지이기를 바란다.





P.S. 필자는 이 글을 쓴 이후 푸코와 벤야민, 벡과 바우만 등의 책들을 추가로 읽었다. 포퍼의 책도 더 읽었고, 그의 숙적이었던 토마스 쿤의 책들도 더 접했다. 최근에는 장하석의 책들을 읽었다. 그래서 생각이 조금은 변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을 통해 조금씩 풀어가고 있고, 지적공동체를 이루는데 성공하면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지식은 이성을 지혜의 영역으로 이끄는 거름이다. 철학은 지혜를 모아 실천적 삶을 형성한다. 출발점은 지식의 축적이다. 현대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섞여있어 제대로 된 지혜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는 철학의 부재를 불러온다. 필자는 운이 좋게 지식 축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고삐 풀린 이성을 통해 무수한 사유를 할 수 있어서 나름의 지혜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철학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음은 동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플라톤의 방식을 따라갈 생각은 없다. 나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나눌 생각이다. 최대한 쉽게 풀어내 나눌 생각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방식은 푸코를 지향하되 촘스키에 가까울 것이며, 최근에 내가 주시하고 있는 장하석의 방식에 근접할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부디 건강이 허락돼 작은 지적공동체라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삶의 스승들이 필요하고, 공동체의 성원들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줄 것이 많지만, 동시에 받아야 할 것도 많다. 내 안의 공간은 일종의 혼돈이다. 충만하면서도 배고프고, 만족하면서도 욕망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가진 것을 다 줄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5.09 20:47 신고

    1966년, 경남에서 태어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습니다. 박정희를 거의 신처럼 숭배했습니다. 그가 김재규에서 피살 당하자 통곡했습니다. 5.18광주를 '빨갱이' 천국으로 생각했습니다. 전라도와 김대중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의심하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힘을 배우지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상하게도 군대가서 전라도 목포 선배를 만나 생각하는 힘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더는 것을 22년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셋인데. 딱 하나 물려줄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라고. 그래야 너 자신이 주인이고, 주체의식을 가져야 다른 이들도 존중할 줄 안다고.

    • 일루와봐 2015.05.09 21:29 신고

      도령님 포스팅을 둘러보다, 아이 셋에게 물려줄 유산이 생각하는 힘이라는데 격렬히 동의하며, 님의 답글에 감동 받아 글 남깁니다.
      (한자를 잘 몰라 님이라 칭한 점 이해바랍니다 ;))

    • 늙은도령 2015.05.09 22:39 신고

      그렇게 사실을 넘어 진실을 접했을 때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철학자들도 진실, 혹인 진리를 접하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사람만이 진실과 접했을 때 변합니다.
      다만 그 변화가 오래가도록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생각하는 힘을 전해주는 것이 곧 지혜의 방식입니다.
      좋은 조건을 물려주면 편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지혜를 발휘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는 절대 경험하지 못한 채 삶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결혼하지 않아 아이가 없지만, 좋은 환경보다는 좋은 정신을 물려줄 것입니다, 님처럼요.

  2. base 2015.05.09 23:35

    고집도 대단하십니다. 건강생각해서 몇일 쉬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 늙은도령 2015.05.10 00:37 신고

      오늘 올린 글은 예전에 써둔 것을 조금 수정한 것이니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글은 별 어려움없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자판을 두들기기까지 단순 작업의 에너지면 충분하니까요.
      오늘 하루 푹 쉬고 있습니다.
      다만 저번에 넘어져 다친 어깨와 며칠 전에 미끄러져 다친 무릎 주변의 근육을 원상회복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지만 어쨌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니까...

  3. 이후 2015.05.10 00:22

    전 물리학과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잡지식과 사회경험을 비교분석하길 좋아했었습니다. 비록 전공자에겐 명함도 못내밀겠지만 나름 교양수준에서는 어느정도 자리잡았다라고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사회 돌아가는걸 비교하면서 잼있는게 둘이 분명히 다른것이라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것과는 달리 전 둘이 매우 유사함을 발견합니다.
    양자역학의 신비로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 인간의 이중성과 닮아 있음을 느끼고, 사회현상 또한 엔트로피와 닮았다고 느끼기까요. 이런얘기를 타 사이트에서 하니. 그 사이트에서 꽤 유명하고 학식있는 분이 이러더군요. "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다르다. 그걸 연결시켜서 안좋은 결과가 나온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냐. 나치가 우생학을 받아들여 유대인학살을 저질렀다. 위험한 생각이다 " 이런식이었는데.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확고히 굳어지고 있죠.

    일종의 믿음이라고 보여질수도 있는데. 자연은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인간도 그것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고로 인간의 활동역시 마찬가지 둘이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행태를 보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중력과 권력같은이죠.
    인간. 아니 생명은 자체로 권력을 지향합니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은 생존확률의 증가와 자손의 번영을 의미하죠. 그러기위해서 덩치를 키우죠. 그렇게 씨족사회.부족사회. 더나아가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안에서 다시 권력층이 생겨나고, 이게 우주에서 별들이 태어나고, 은하가 생기고, 태양계가 생기고 이런거랑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물리학과 사회학의 연관성. 혹은 물리학적 미래의 예측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점쳐볼수는 없을까. 생각하는데 이건 좀 위험하기도 해요. 왜냐면 미래가 정해지면 그것이 좋던 나쁘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테니까요. 그래서 사회물리학에서 사회학으로 명칭이 변경된건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된걸까요?

    • 늙은도령 2015.05.10 01:08 신고

      물리학은 크게 고전물리학, 아인슈타인을 기점으로 상대성이론의 시대,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처음 밝혔지만 그가 부인한 양자역학의 시대로 나뉩니다.
      이 세계의 물리학은 근원에 관한 학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론물리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고, 특히 철학과 비슷합니다.
      이론물리학은 형이상학적 추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고대의 물리학은 그리스신화에 접목됐고, 소크라테스학파에게 전수돼 근대까지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특히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물리학은 근대철학을 낳았고, 그것이 근대이성이 됐으며, 현대성으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근대이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깨졌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부정된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식 3차원(절대적 시공간)을 넘어 4차원(시간이라는 개념의 등장, 시간도 광속 이하에서 변할 수 있다)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때부터 미래란 예측할 수 있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이 양자역학의 문을 열면서 미래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리고 와인버그를 거쳐 최근의 초끈이론까지 질서정연한 통일이론을 꿈꾸는 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미래는 무한대의 모습을 지닌다는 역사총합이론도 양자역학의 발전 덕분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파인만의 <물리학강의>를 보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음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했는데, 이것이 역사총합이론으로 가는 길을 열었지요.

      최근에는 양자역학은 원자단위의 공간에 적용되고, 이것에 상대성이론이 적용돼 우주 차원의 공간에 적용되고, 태양계 차원에서는 뉴턴 역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GPS인데 이 기술에는 세 가지 물리학법칙이 모두 적용됩니다.

      아무튼 물리학이 사회학의 기원이 된 것은 뉴턴 역학의 영향을 받은, 그러나 분자생물학은 꿈도 꾸지 못했던 다윈의 진화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을 잘못 이해한 스펜서가 사회진화론을 들고 나온 것이지요.
      이때부터 물리학과 철학, 사회학이 혼재하게 됐고, 역사라는 것이 등장했지만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정치경제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또한 패러다임의 개념을 과학혁명에 적용한 토마스 쿤의 과학철학이 사회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논해야 하지만, 물리학이 사회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문학자나 진보좌파가 현대의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저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핵심은 아주 짧은 미래는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유토피아도 없고.. 뭐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완벽한 이론은 없습니다.
      저는 인간이 절대 거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뉴턴역학부터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까지 모든 것이 공존할 것입니다.
      초끈이론이 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이론물리학(과학철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래서 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치는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고, 그것이 최대한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니까요.
      학문은 분열하고 전문화됐지만 최근에 들어 융합이나 통섭이 유행하는 것도 일종의 패러다임인데, 다원주의적 접근을 하는 장하석까지 아직은 열린 상태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라 짧게 설명하기는 힘이 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포퍼와 쿤의 책을 보십시오.
      노이랏과 장하석까지 넓히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베르그송도 읽어보면 좋고, 특히 푸코도 보십시오.
      인문학의 한계를 깨달을 때, 칸트에서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를 논할 수 있을 때, 보다 넓고 깊은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공부할 것은 널려 있습니다.
      저도 통합적 접근의 초기 단계입니다.
      많이 헷갈리고 어려운 작업이라 많은 전문가와 소통할 필요를 느낍니다.
      현재진행형인 것이지요.
      두서없이 막 썼습니다.

  4. 이후 2015.05.10 00:39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족의 끈끈한 유대감이 가장 강하듯. 원자속의 핵력이 가장 강하고 범위는 작죠. 가족에서 회사가 되면 구성원에 충성을 요구하죠. 반대급부를 주고 충성을 받는데 이건 원자들이 상호 공유결합을 통해 하나의분자나 보다 큰 분자집단을 형성하는것과 유사하고요. 유대감은 가족보단 작지만 힘의 범위는 넓어지죠. 일정한 에너지로 이 결합을 끊는게 가능하고요. 마치 더 높은 연봉으로 회사에서 회사로 이직하는것과 같이.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자연의 기본단위부터 들어가면 끼워맞추기로 보여질지 몰라도 매우 유사하더라고요. 한 개인을 사회적 원자로 보기도 하잖아요. 그냥 비유일수도 있지만 사실 관계를 따지다 보면 역할이 비슷하더군요.ㅎㅎ

    • 늙은도령 2015.05.10 01:16 신고

      비유와 은유는 이론물리학에서 필수입니다.
      님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입자물리학에 근거할 때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와 베타원리를 적용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장이론과 제3의 과학도 있고요.
      파동이론을 적용하면 조금 더 달라집니다.
      강한 핵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중력까지 힘의 종류도 4가지나 되고요.

      절대 물리학만 보면 안 됩니다.
      그건 기초이지 전체가 아닙니다.

      철학에도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근원을 성찰하는 철학과 문제를 성찰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전자가 사회철학적인 것이고, 후자가 과학절학적인 것입니다.

  5. 트라이어 2015.05.11 08:36 신고

    뭔가 엄청 심오하네요.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저에게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ㅠㅠ

  6. 공수래공수거 2015.05.11 08:55 신고

    무엇보다도 이양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군요 ㅠㅠ

    • 늙은도령 2015.05.11 17:24 신고

      정말 답답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답답함을 참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7. 참교육 2015.05.11 11:40

    관념이 아니라 깨어 있는 지성인의 실천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남보다 먹물 좀 더 들어가면 권력에 빌붙어 이익이나 쫓는 사이비 지식인들로 인해 수탈의 역사를 계속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11 17:27 신고

      저는 국민들을 비판할 생각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이렇게까지 개판이 되는 세상을 받아들인단 말입니까?
      전 요즘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타락할지 모르겠네요.

  8. 최홍대 2015.05.11 21:51 신고

    지식인을 비롯한 지성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때인것 같습니다. 모든사람이 평생직장..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더욱더 왜곡되겠지요.

    • 늙은도령 2015.05.12 00:43 신고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구별되기 힘든 지점까지 이르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구별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를 각오해야 합니다.

  9. 나비오 2015.05.11 22:05 신고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 할 수 있는 ‘국제시장’을 두고 벌어지는 각종 논란을 보고 있자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중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포레스토 검프’는 빈곤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인 미국에서만 가능한 영화라면 ‘국제시장’은 일제가 남겨놓은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는 한국에서만 가능한 영화입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전체주의화하는 성향이 있는 국가와 경제성장이 유일한 가치인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대단히 성공한 나라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건너 띈 채 흥남철수에서 시작되는 ‘국제시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규모 14위에 오른 경제성장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언제나 뛰어나 연기를 보여주는 황정민과 오달수가 이끌어가는 ‘국제시장’이 산업화의 숨겨진ㅡ또는 정치적으로 동원되거나 그 이유 때문에 지나치게 축소된 이름 없는 주역들에게 바치는 헌사임은 그래서 당연합니다. 오로지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그분들에게 저 또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의 삶을 수십 년 간 지켜본 필자이기에,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한국을 경제규모 14위의 선진국으로 만든 진정한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극소수의 승자나 강자의 기록이 아닌 절대다수의 패자와 약자의 기록이어야 한다면, 한국 산업화는 그들의 피와 땀, 희생의 기록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그들의 대부분이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빈곤이 그들이 그렇게 지키려 했던 자식과 손주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인빈곤과 복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못하다는 통계가 나왔고, 자식들은 낀 세대로 외면받고 있으며, 손주들은 88만원 세대나 삼포세대라고 불립니다.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라는 ‘국제시장’의 주역들 중 과연 몇 %가 그들의 피와 땀, 희생에 걸 맞는 대가를 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있을까요? 국가는 세계 최고의 빈곤국ㅡ전쟁이 끝난 해의 통계니 그럴 수밖에 없다ㅡ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음했다지만,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후손은 그에 합당한 삶의 질을 누리고 있을까요?





‘국제시장’이 산업화 주역들에 대한 헌사로서 충분한 영상미를 담아냈지만, 여전히 고달프고 힘겨운 그들의 현실은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윤제균 감독이 오로지 그들에 대한 헌사만 얘기하고 싶었다면, 그는 대단히 성공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한국을 분배가 아닌 성장의 관점에서만 보면 대단히 성공한 나라인 것처럼.



'포레스토 검프'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람보'와 '록키' 등을 영화적 재미로만 볼 수 없었던 것은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을 영화적 재미로만 볼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흥남철수부터 낙동강 넘어까지 이어진 피난행렬 때 미국 B-29의 무차별 폭격에 제 모친의 친척어른들이 돌아가신 것처럼, 현대사의 질곡을 넘기지 못한 분들도 많고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분들은 더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P.S. 영화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과포장된 ‘해운대’와 비교하면 ‘국제시장’이 낫지만, 윤제균 감독이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평가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윤 감독이 보수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지만, 아직까지는 영화로 보여주는 철학적 깊이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비해 너무 떨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4.12.30 05:08

    성장과 분배... OECD 몇법째니 국민소득 얼마니 한느 수치 노름... 민초들에게는 그림 속에나 있습니다.
    분배없는 성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림의 떡입니다.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작품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30 05:50 신고

      네, 그런 영화가 잘 만들어진 형태로 나왔으면 합니다.
      문제는 제작비와 상영관 확보인데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제시장과 정반대의 시각에서 현대사를 다루고 싶은 영화사가 있다면 제가 시나리오도 써줄 생각이 있습니다.
      영화광이었고 지금도 영화광인 저로서는 정말 녹여내고 싶은 한국 현대사의 내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30 08:27 신고

    국제 시장 영화를 가지고 보수층에서 이용하는듯 합니다
    제가 보는 메시지는 "아버지"였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당연히 원래의 색깔을 차단합니다
    만일 윤제균 감독이 그러한 의도였다면 영화의 많은 부분을
    다르게 표현할수도 있엇을겁니다

    보수들이 변호인에 대항하고픈 마음으로 이 영화를 이용한다는
    느낌입니다
    거기에 진보들도 덩달아 춤추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30 11:32 신고

      영화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는 잘 만들었고 산업화 주역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그분들이 가난하고 자식과 손주들이 빈곤의 대물림에 처한 상황을 말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부분을 강조해 노인빈곤과 청년실업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찬사가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수천 배 더 해야지요.
      헌데 이 영화는 그분들에 대한 헌사로서는 최고이지만, 그것으로 또 다른 현실에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그분들을.
      전 그것이 답답할 것입니다.

  3. 바람 언덕 2014.12.30 12:09 신고

    요즘 논란이 많네요, 이 영화.
    보질 않아서 글로 옮기진 않았습니다만, 대충 보니.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히더군요.
    .
    .
    .
    올해도 하루 밖에는 안 남았네요.
    마무리 잘 하시고, 멋진 새해 맞이하시길...

    • 늙은도령 2014.12.30 12:11 신고

      영화는 좋은 영화입니다.
      헌데 영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면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헌사가 갈등을 더 부추기는 원인이 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고, 단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지만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는 하나의 목표로 귀결된다. 강자와 승자 위주로 쓰인 역사와 세계사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것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깔려 죽은 이름 모를 수많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희생과, 단 한 번도 제값을 받지 못한 피와 땀을 되살리는 것이다. 



나의 능력과 건강, 나이에 비해 도무지 이루기 힘든 지난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인류의 위대한 현인인 중 두 명의 입을 통해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길에 나서려 한다. 내가 이 두 사람을 인용하는 것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과는 달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회의주의자이자, 타협을 모르는 진정한 용기 때문이다. 그 처음은 『열린사회와 그 적들2』의 저자 칼 포퍼의 말이다.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라고 말할 때 그들이 생각하며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정치권력의 역사는 국제적 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도대체 인류의 구체적 역사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역사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과 투쟁 그리고 수난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의 신봉자이자 확장자였던 칼 포퍼는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역사주의 학자들의 역사결정론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비록 그는 마르크스 비판에서 지나칠 정도로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 사회학적 오류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소한 역사의 주인에 대한 그의 인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또한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2』에 나오는 다음의 인용문들을 보자.

 

 

“신이 보통 <역사>라고 일컫는 국제적 범죄와 대량학살의 역사에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잔인하며 치졸하기도 한 짓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의 삶의 영역 안에서 참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제대로 말해줄 수 있겠는가. 잊혀진 사람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슬픔과 기쁨, 그들의 수난과 죽음,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인간경험의 참된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는 모든 시대에서 평범하게 살다간 고달픈 삶을 반영해야 하며, 온갖 피해를 감내했던 대다수 인류를 포괄하는 우리 모두의 역사가 돼야 한다. 승자나 강자의 역사는 극소수의 영웅적인 신념에 의해 절대다수의 약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집단 최면의 거짓되고 희생을 강요하는 죽음의 역사였다. 성공한 사람의 기억만이 유효하다면 인류는 동물 중에 가장 천박한 동물에 다름 아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짐승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빌 브라이슨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만약 우리의 외로운 우주에서 생명이 어디를 지나왔는가를 기록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감시할 일을 맡길 수 있는 생물을 디자인하려고 한다면, 그런 일을 절대 인간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의해서나, 신에 의해서나, 아니면 당신이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은 바로 그 존재에 의해서 선택”됐다고 말했다. 미우나 고우나 인간만이 우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와 우주의 탄생과 역사, 미래에 대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자, 그런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그리하여 인류가 공존과 상생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뜰 수 있도록 “우리는 열린사회를 위하여, 이성의 지배를 위하여, 정의와 자유와 평등을 위하여, 그리고 국제적 범죄의 통제를 위하여 우리가 벌이는 투쟁의 관점에서 권력정치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역사가 그 자체로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이러한 목적들을 역사에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가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며, 기록은 그 이후에나 필요한 것이다.



극소수의 승자나 강자의 입장에서 역사가 기술되면 인류는 언제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탐욕과 죽음의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만인의 것이 되지 못할 때, 역사는 그 자체로 승자와 강자의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니, 이제 우리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이자 검열관이 되어야 한다.

 

 

합리적 보수(유럽의 경우, 미국에서는 진보, 한국에서는 중도)의 가치를 드러내는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들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휴머니즘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철학자로 내가 꿈꾸는 역사의 재구성에 모범적 예다. 역사의 주인은 강자나 승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인의 행복을 위해 '사회계약론'의 필요성을 제시한 루소의 『인류 불평등기원론』의 핵심 주제도 이와 비슷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사회를 이루는 일반의지를 부정하고, 인류 이성의 포기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역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평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 평등권을 위한 투쟁을 벌일 것을 결정할 수 있다. 국가와 같은 인간의 제도들은 그 자체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벌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프랑스의 행동하는 자유주의자였고 급진적 진보주의자였던 『분노하라』는 소책자로 널리 알려진 고 스테판 에셀을 떠올리는 칼 포퍼의 외침은, 발터 벤야민과 미셀 푸코, 칼 폴라니와 한나 아렌트처럼 ‘신은 승자와 언제나 함께 한다’는 통념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루려는 폭력적인 혁명도 반대한다. 열린사회라는 것이 꾸준한 변화들이 쌓여 점진적으로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칼 포퍼의 열린사회가 마르크스의 '자유의 왕국'과 다른 점은 최종적인 모습이 결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인 체제의 하부구조가 정치와 문화 및 교육과 예술 같은 체제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궁극의 유토피아를 확정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결정론도 거부하는 칼 포퍼는 인류의 역사를 열린 상태로 나두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그것이 사회경제적 약자와 이름 모를 무명용사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자유주의적 이상론에 빠지지 않고 열린 세상을 위한 정의로운 투쟁을 역설한  것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점에서 칼 포퍼와 칼 마르크스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벤야민의 성찰처럼, 서로간에 사상의 소통이 가능하다.      

 

 

“우리는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과 그 적들(궁지에 몰리면 이들은 파레토의 충고에 따라 인도주의적 정감을 앞세운다)과의 항쟁을 벌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우리는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삶의 목적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달렸다. 사실과 결정의 이러한 이원론은 아주 근본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실은 우리의 결정을 통해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생산관계의 산물인 특정 제품이 자신의 삶과 관계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과도 일맥상통한다. 언제나 결정권은 인간의 주체성에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칼 포퍼는 마르크스의 역사적 결정론을 비판한 것이지, 그의 휴머니즘적인 신념과 과학적인 분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위선자였고 차별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였던 플라톤과 기득권을 옹호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은 헤겔을 맹렬히 비판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도 초기 기독교의 이론을 제공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며, 월가의 현인으로 등장한 탈래브의 《블랙스완》을 관통하는 주장도 플라톤의 주름지대(권위가 만들어낸 단순성, 다양한 토론이 가능한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플라톤의 주장처럼 변화 자체가 부패라면 열린사회는 애당초 불가능하고 인류의 진보도 불가능하다. 플라톤은 이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에 열린사회의 적이 된 것이고, 전체주의의 기원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처럼 이용하는 자들이 얼마나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같은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인간의 이타성에 대해 분명히 하고자 한다. 도킨스가 이기적이라고 한 것은 유전자 차원에서 적용되는 논리로 그들 또한 무한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도 한다는 사실도 아울러 상기하고자 한다.  

 


“30억 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그 독점권을 영원히 가지리란 법은 없다.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이미 낡은 유형이 된 진화를 답보할 이유는 없다.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하는 낡은 유형의 진화는 뇌를 만들어 냄으로써 최초의 밈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진화를 시작했다......일단 유전자가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그 생존 기계에게 만들어 주면, 밈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을 것이다...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뇌가 모방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뿐이다. 그러기만 하면 밈은 그 능력을 십분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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