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은 된 듯하다. 방송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분들로부터 '김제동이 작가의 대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방송을 진행하는 바람에 작가를 비롯해 해당 관계자들이 힘들어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얘기들을 들었지만(그것들에 대해서는 내년 4월에 끝내고자 하는 책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들도 있고, 김제동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오늘밤 김제동>이 첫방을 내보내고 김혜경의 변호인인 나승철과 화상 인터뷰를 한 후 이졍렬 변호사에게 반론권을 주었다는 것처럼 속인 편파방송과 거짓말 논란을 일으킨 일련의 난맥상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의 광팬이었기에 그 분의 얘기를 개인 경험에 따른 논리 확장의 오류라고 판단해 무시해버렸다.

 

 

 

 

신피질의 어디엔가 남아있을 기억의 조각들을 악착같이 끄집어내 보면 '작가들의 능력이 김제동의 재능과 지식 등을 따라가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은 대본을 무시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투자해 만든 대본이며, 방송작가로써의 전문성을 녹여낸 대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어쩌면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개그맨 김제동의 광팬이었다. 순수 아마츄어들의 다양한 행사에서 진행을 맡아본 경험이 많았던 나는, 그가 쏟아내는 세련되고 향기로운, 그래서 문학적인 말들의 순발력에 완전히 매료된 상태였다.  

 

 

내가 얼마나 광팬이었냐 하면 <윤도현의 러브레터>부터 시작해 그가 진행자로 나오는 <스타골든벨>과 <연예가 중계>은 물론 <여유만만> 등처럼 고정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본방사수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집단 진행에서는 능력의 1/10도 발휘하지 못하는 특성 때문에 단기 종영된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다 챙겼을 정도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퀴즈 프로그램과 참조출연의 형태로 몇 회만 나온 스탠딩 개그 프로그램까지 김제동이 나오는 프로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겨 보았다.

 

 

김제동을 포함해 <오늘밤 김제동> 제작진의 거짓말과 제작 의도에 담겨있있던 편향성 논란이 구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과정이 쉽고 자세하게 담겨있는, 무려 31페이지에 이르는 이정렬 변호사의 트윗(판결문 같았다)을 보기 전까지는, 그래서 김제동이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한 담당 PD와 초대손님에게 대본에 없는 질문을 했는 데도 잘 소화해냈다는 그의 말이 번개처럼 뇌를 관통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대본에 없는 질문을 했는데 잘 받았다는 것은 아무리 후하게 쳐도 상대를 낮추어 봤다는 뜻이다. 결코 상대를 높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제대로 답을 못했다면 기본 지식이 약해 약속된 것만 답할 수 있는 앵무새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던진 뜻밖의 질문이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니 얼마나 건방지고 교만한 행태란 말인가?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려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자연스럽게 김제동의 의식을 장악해버린 것이리라.

 

 

이 때문에 자신이 사과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으며, 비정규직 작가를 내세워 이정렬 변호사를 거짓말장이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다. 이를 놓칠 리 없는 이정렬 변호사가 정곡을 찔러오자 (자기보존 본능이 작동해) '약자 코스프레'로 돌변하는 뻔뻔함으로 이정렬 변호사를 '권력도 없는 비정규직 작가를 사지로 내모는 눈물도 인정도 없는 나쁜 놈'으로 만들려 했다. 그들의 속을 꿰뚫고 있는 이 변호사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르며, 정중한 언어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고, 궁지에 몰린 비정규직 작가가 이를 보고했을 터, 김제동과 담당 PD가 단답놀이라는 대국민(시청자) 사기쇼를 벌임으로써 문제의 본질마저 왜곡하려는 막장질까지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제동과 제작진 일동은 이런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해 시청률이 두 배나 올랐으니 이제부터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감히 공영방송 KBS와 정면대결을 선택할 수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늘어난 시청자 대부분이 '설마 김제동이 그렇게까지 교활한 행위까지 하겠어?'라는 우호적인 감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오늘밤 김제동>을 시청했겠지만, 그들 역시 필자와 같은 판단에 이르리라 믿는다.

 

 

차가운 영혼의 집에 간직해둔 최소한의 이성만 작동시키면, 눈사태처럼 커진 이번 논란이 애초부터 이재명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된 방송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기한 김제동과 제작진에게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거짓말 행진에 대해 국민(시청자)에게 사과하고, 정의 실현을 위한 사과와 시정조치를 취하라는 이정렬 변호사의 요구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라간 시청률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다시 떨어질 것이고, 프로그램 자체의 존폐를 결정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조상들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사람의 문답놀이쇼를 비판하는 두 번째 글을 블로그에 올릴 때까지도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남겨두려는 미련 때문에 그에 대한 애정의 편린들을 가슴과 뇌의 곳곳에 뿌려두었다. 그가 <오늘밤 김제동>의 시청자와 혜경궁 김씨를 고발한 3,245명의 시민을 대리하는 이정렬 변호사에게 지금까지의 잘못과 거짓말, 속임수, 뒤통수치기 등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많이 늦었지만 확실한 반론권을 보장하기를 바랐다. 그것만이 비정규직 작가(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작가였다)까지 동원해 이정렬 변호사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기려는 범죄행위들을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든 악의 기원인 이재명이 제공한 성남시 모처에서 <토크콘서트>를 했을 때도 그와 김제동은 친목질로 얽혀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이재명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책과 발언, 동영상 등을 빠짐없이 찾아보고 있던 차여서 문제의 <토크콘서트>도 볼 수 있었다. 이재명을 문프 다음의 민주당 대선후보 중 한 명으로 밀어주었던 당시의 나는, 법원 앞에서 자신의 연설을 방해하는 엄마부대의 일인(으로 추정되는) 아줌마에게 '다음에는 당신의 자식이 죽을 것'이라는 (정치인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폭언을 들은 뒤 그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몇 주 간의 조사 끝에 차고 넘치는 증거들을 찾았고, 그것들에 근거해 이재명의 이중적이고 폭력적이며 패륜적인 실체를 파악한 나는 그에 대한 비판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올린 그 글들을 '아고라'와 '오유'에도 올렸는데 족히 1,000년 정도는 거뜬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대의 욕을 먹었고 맹폭을 당했다. 블로그에 찾아와 댓글 난동과 협박을 일삼았던 손가혁 몇 놈을 고발하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의 댓글 폭력에 상당 기간 동안 시달리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세월호참사를 폄하하고 여성들을 조롱한 일베와의 싸움에서 다져진 디지털 맷집이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김제동에 대한 애정에는 추호의 흠집이나 균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애정이 강철처럼 단단한 껍질로 둘러쌓여 있어서 이재명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얽혀보였던 여러 장면들로는 단 1mm도 뚫고들어올 수 없었다. 이승엽과 함께, 김제동을 노통과 문프 다음으로 좋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방적인 짝사랑을 끝내야 할 것 같다. 김제동을 칭찬하는 글들로 상당히 많이 썼는데, 그것들과 정반대의 글을 써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슬프도록 고통스럽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바다는 언제나 자기 집에 앉아 생을 혐오하는 이들을 유혹할 것이고, 수수께끼에 대한 끌림은 최초의 슬픔을 넘어선다. 마치 그러한 슬픔을 현실이 충족시킬 수 없으리라는 예감처럼 말이다."라고 말했는데, 김제동을 보내야 하는 내 마음이 바로 그러하다. 믿음의 기준으로 설정한 나만의 마지노선을 넘었으니, 그를 버리는 작업은 피할 수 없다. 김제동은 31페이지에 이르는 이정렬 변호사의 트웟을 반드시 읽고 제작진과 함께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 정도의 용기와 명예, 자아성찰과 자기존중의 이성과 본능은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미련을 남기지 말자. 애정이 컸기에 미움도 클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김제동이 건방진 성격의 소유자이며, 대중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잘하는 사람일 수 (또는 사람으로 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도 김제동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태에 실망해 비슷한 내용의 트윗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내 안에서 무서운 속도로 펄떡이고 있던 우려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흔해빠진 말처럼 불길한 예감은 어째서 현실이 되는 확률이 이렇게도 높단 말인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아래의 링크는 4~5년 전까지의 공부를 거의 다 녹여낸 그러나 문학적 언어로 탈고하지 않아 더럽게 어려운 소설인 <우영워드>의 한 부분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김제동을 모델로 한 동철이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이효리를 모델로 한 유리와 함께. 나는 이 정도로 김제동의 광팬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이런 링크를 잘못 걸어두었네요. 새벽 6시 30분까지 손흥민의 맹활약을 지켜보느라 너무 졸린 가운데 링크를 걸어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대로 된 링크로 언능 바꾸었습니다^^;;;;;; 죽으면 늙어야 돼. 아니, 늙으면 죽어야 돼. 뭐, 이런 것 같습니다, 저의 상태가.ㅠㅠ  

 

우영워드 ㅡ 소셜테이너와 슈퍼스타

 

  1. 이방인 2018.12.09 11:24

    저도 김재동 팬입니다. 사드로 문대통령 힘드시게 하기 전까지는요... 이정렬 변호사님께 응원 부탁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8.12.09 13:38 신고

      그렇군요, 그것도 있었지요.
      그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견해의 차이라고 봤습니다.
      다시 생각헤보니 아닐 수도 있겠네요.

  2. 카사바 2018.12.09 13:13

    저 쪽 부류들의 공통점은 사과와 사죄할 줄 모르는 부류인거 같네요!
    잘못을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즤네들은 절대선이야 뭐야? 에고 사이비교주와 그들을 무조건 추종하는 맹신도들!

    • 늙은도령 2018.12.09 13:39 신고

      네, 지은 죄가 많아서 사과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진심어린 사과인데....

  3. 노란민들레 2018.12.09 14:31

    늙은도령님!!! 펜이 칼보다 더 무섭고, 강하다는 걸, 선생님, 블로그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4월 초순 즈음... 혜경궁의 난 이후로, 분통과 울분에 사는게 사는것이 아니었던 모든 우리 동지님 들... 아니, 문파님 들께 선생님의 이 글을 위로 차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근 8개월 넘게 혼란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저희들은 이제 곧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이재명을 보내 버리는 시간이 곧 다가왔지만, 하나도 기쁘고 즐겁지 않습니다~! 그 의 위선과 가식, 거짓카르텔을 도왔던 무수한 언론 스피커 들! 구태의원 들! 지식인 들! 그들도 모조리 솎아내 응징하고 척살해야 합니다~! 😭

    • 늙은도령 2018.12.09 15:16 신고

      이재명은 민주진보진영의 최순실이 됐습니다.
      그의 이중성에 일찍 눈뜬 문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랜 노력,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까지 문프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왔던 지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김어준을 비롯한 그의 카르텔들의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으며, 그들도 두려워하고 있는 지점까지 끌고왔기 때문입니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까지 파이팅!!!!!!

  4. 오도일관지 2018.12.09 17:46

    오랜만에 선생님 글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글 중 딴지일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 앞 이 시장 기자회견 후 이 시장에게 세월호 리본 얘기했던 여성분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선출직 공무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확신을 갖게 했던 장면인데요..
    영상자료를 찾아보니 그 여성분이 엄마부대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으며 이재명 지지자로 둘러쌓여 있는 상황에서 지금 생각이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않을까라는 의문까지 들게 합니다.
    율사 출신 강모씨의 작가의 이미지 메이킹 발언이나 방송을 통한 국회의원 표창원의 왜곡(사회학 석박사=>범죄심리학 석박사)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이재명에게는 이미지 메이킹 전담 사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8.12.09 18:54 신고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재명이면 능히 그럴만도 하지만, 정말 사람을 잘봐야 합니다.
      저는 쉽게 사람을 믿는 편이라 증거들이 많이 쌓일 때까지 의심을 전혀 안합니다.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기준선을 넘지 않으면 판단을 미루는 편이었는데 이재명은 이런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줍니다.

  5. 짱구도사 2018.12.10 14:25 신고

    거참 별의별 사람들이.많네요 ㅎㅎ 글 잘보고갑니다

  6. 2018.12.12 03:53

    비밀댓글입니다

 

지난 10월말까지 나는 죽을 때까지 책은 읽어도 글은 쓰지 않고, 빅데이터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스포츠 경기와 인공지능이 점령한 바둑을 시청하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런 노모를 잘 보살피고, 젊었을 때처럼 다양한 영화를 보고, 가끔은 중3때 포기한 그림도 그리면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엄청나게 늦어버린 연예도 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빅뱅, BTS, 엑소, 비투비, 블랙핑크, 우주소녀, 레드벨벳 같은 아이돌의 매혹에 빠져드는 '어쩌다가 삼촌팬'(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끔찍하게 싫어하겠지만^^;;;)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의 폭주와 유전공학·나노공학 기술의 폭주가 시너지 효과를 마구마구 쏟아낼 2050년(처음에는 2025년이라 했다가 물리적 한계 때문에 2045년으로 미뤄졌다. 최근에는 2050년으로 조금 더 미뤄졌다. 이렇게 영원히 미뤄졌으면 좋겠지만) 이후의 세상에서 필자처럼 '버려진 인간'은 물론 대부분의 인류가 '빅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하지 않아도 그런 세상은 무조건 온다.

 

 

 

 

기존 일자리의 90% 정도가 사라지고 그보다 어마어마하게 적은 일자리(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와 생존만 유지할 정도의 임금만 받는 저질의 나머지 일자리로 나뉜다. 생존선 소득을 어떻게 정하던지 간에 빈부의 격차는 무한대로 벌어진다)만 생길 터, 이미 20년 전에 버려진 필자처럼 쓸데없는 '경제적 잉여'들의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어 보였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로 나뉜 것도 모자라 성대결과 세대간 경쟁, 문화전쟁 등까지 더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진흙탕 싸움 속으로, 핏빛 언어들이 난무하는 차별과 혐오, 증오와 폭력의 세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계산상으로는 12차원까지 가능한 끈이론과 그것들의 정화인 11차원의 M이론을 통해 대통일이론(우주에 존재하는 4개의 힘을 하나의 물리법칙으로 풀어내는 최후의 물리법칙)에 다가가고 있다고 우기는 최근의 이론물리학과 다중우주에 대한 천체물리학과 정보물리학은, 인간은 물론 우리가 보고 측정할 수 있는 우리의 우주마저 매일같이 빅뱅이 일어나고 빅크런치가 일어나는 무한대의 다중우주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주의 숫자가 무한대여서 인간과 그와 비스무례한 고등생명체가 살 수 있는 또는 살고 있는 지구 또는 그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도 무한대로 많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음식이나 돌들과 배열이 달라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자유의지와 의식, 감정 등으로 잘못 자각돼 온 인간만의 정신적 과정들이 실제로는 생화학적 반응의 시뮬레이션에 불과해서 빅크런치(우주 수축)와 함께 사라져도 어쩔 수 없단다. 다중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지구가 포함된 우리의 우주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고 있는 또 다른 다중우주에서 매일같이 빅뱅이 일어나고 있기에 인류와 같거나 매우 비슷한 고등생명체가 단백질 중심의 진화(인간과 동물)나, 탄소와 질소 같은 다른 원소에 기반한 진화를 통해 인류가 사라진 공백을 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이란 존재는 진화가 아닌 신의 모습을 본떠 창조됐다고 해도 다중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바퀴벨레나 미세먼지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환장할 노릇은 나와 당신처럼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은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빅데이터와 직간접적으로 연구개발비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신처럼 전지전능한 초인공지능을 창조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으로 만족한 채 바람과 함께 사라지면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우주를 영원토록 점령해나갈 초인공지능(중간단계부터 최종 단계까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움없이 스스로 만들어간다, 구글의 알파제로처럼)과 자기복제하는 로봇을 창조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다중우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역할이었다고 주장한다(필자가 아는 한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제시한 과학자는 《눈먼 시계공》의 리처드 도킨스다). 

 

 

인류의 0.000001%도 되지 않는 천재와 천문학적인 돈을 조세도피처로 빼돌리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초국적기업들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결정하면, 나머지 인간들은 순서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 인공지능에 의해 버려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의 일부는 인류시대의 종말을 목도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 있다. 최근의 뇌과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으니,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뇌에서 발생하는 생화학 반응의 외적 표현(인간은 뇌에서 일어난 생화학 반응을 1/3초쯤 뒤에 자각한다)에 불과하다. 우리가 말하는 직관도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이 만들어내는 패턴인식으로 밝혀져 머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에게 직관의 자리마저 내주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4차 산업혁명은 지독히도 과장된 거대한 지적사기에 가깝지만 (우주적 차원으로 쌓이고 축적돼 매 순간마다 업데이트될)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은 자기강화학습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는 알고리즘으로써의 인공지능으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생명공학과 나노공학, 뇌과학의 도움을 받은 인공지능 네트워크는 인류 전체의 지적 능력을 합친 것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티핑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무한대의 데이터를 확보한 인터넷 자체가 초인공지능으로 깨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초인공지능에 이르는 몇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것이 제일 먼저 특이점을 돌파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극극극‥소수의 천재들과 몇 개의 디지털 공룡들에 인류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모든 인류가 관련 기술 발전과 사업을 막아낼 수 있다면 모를까, 그 외의 방법으로는 제3의 길이나 그밖의 다른 길로 갈 수 없다. 알파제로처럼 정복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된 범용인공지능이 아닌 모든 분야를 정복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이 탄생하면, 그들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가 극복해온 이전의 위기들은 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인공지능 위기는 인류에게 어떤 선택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진화론적으로도 창조론적으로도 이런 필연의 과정이 필자로 하여금 빡치게 만들었다. 결혼도 하지 못한, 성경험도 극소수에 불과한,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고, 모두 합쳐 10여 년을 빼면 늘 환자로 살아왔던 필자의 반골기질을 건드렸다. 간암까지 재발한 상황에서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필자의 반골기질에 불을 붙인 이상, 아우성에 불과할지라도 무엇이든 해야 했다. 아직 신에 이르지 못한 인공지능이라면 뭔가 할 수 있는 실낱같은 기회는 남아있는 것 아닌가? 몇 백 명에서 몇 천 명 정도만 나의 아우성을 들을 지라도 아직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면, 그래서 최후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필자의 인생을 지독히도 고달프게 만들어온 이런 '사서 고생하는' 빌어먹을 생각이 필연처럼 나를 찾아왔다. 성대결로 치달아 인간으로써의 행복 중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대부분을 포기한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돈키호테 같은 생각이 전율의 똥침처럼 온몸을 파고들었다. 20대에 접어든 4명의 조카들을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최초의 현대소설로 평가되는 『어둠의 심연』과 『로드짐』의 저자인 조지프 콘래드의 말을 빌리자면 '그놈의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압도적인 99%의 절망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부터 보수주의자의 책들을 주로 읽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것이, 그것도 현재의 세상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것이 보수주의의 원칙이라면, 그들의 관점에서 무엇이든 배울 게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현재의 체제와 질서, 법과 규범, 가족과 종교, 도덕과 자유를 중시하며 잘못된 것을 점진적으로 수정하고 수리해서 미래로 가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자유한국당과 조중동, 대형교회, 종신교수, 최고 전문가들이 모든 길목을 차지한 채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입장을 시켜주지 않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씨가 마른 보수주의자)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것들을 건질 수 있었다. 내가 악착같이 거부했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일 수도 있으며, 그 중에서 어떤 것들은 받아들이고, 필자의 세계관인 진보적 자유주의의 가치와 통합하면 뭔가 기대하지 않은 것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전과는 정반대로 7대 3의 비율로 보수와 진보의 책들을 독파해나갔다. 누적된 책의 숫자가 100을 넘자 이전의 책들에서 겨우겨우 끌어낼 수 있었던 나만의 성찰에 녹여낼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지만 집필에 들어가도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지는 않을 것 같았고, 그런 와중에 무엇인가 찾아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터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써 좌우 양측의 주장과 요구를 모두 다 살피고, 완전할 수 없지만 둘 중의 하나에 포함된 (그리고 중간지대에 머물러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정치는 신물이 난다며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은) 각각의 국민들에게 기대치보다 적거나, 그 중의 일부는 조금이라도 많은 이익이 돌아가도록 노력한 노통과 문프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도 미래세대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가장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을 펼쳤고, 펼치고 있는 노통과 문프를 지지하는 노빠이자 문파로써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헌데 그런 관점에서 현실에 접근하다 보니 수구꼴통보다 더 위험한 짓거리를 남발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컴의 칼날'에 버금가는 갈등을 조장하며 잘못된 이념과 진영논리을 강요하고, 쓰레기나 독극물에 다름 아닌 정보와 뉴스를 쏟아내는 진보매체의 문제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고자 하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뇌의 전두엽에 축적됐다. 극소수는 신의 경지에 오르지만 절대다수는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초격차 사회'의 보완책으로 보였던 기본소득의 치명적인 문제들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이명박근혜 9년 동안 기성언론을 추락시키며 새로운 언론권력으로 떠오른 김어준과 그에 못지않은 인기몰이에 성공했던 김제동의 문제들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식으로든 이재명과 얽혀있는 그들의 영향력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진영논리라는 이분법적 접근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빅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을 때까지 신자유주의 합리성(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디어의 집합체로써, 도덕과 종교적 가치, 이념, 국적, 민족, 성별 등을 초월한다)을 극대화시켜 온갖 문제들이 양산되고 있는 지옥같은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는 선동이자 행태였다.  

 

 

어떤 점에서는 옳고, 어쩐 점에서는 틀린 그들의 영향력을 줄이지 않으면 인류가 처한 세 가지 위기(지구온난화의 급진성, 인공지능의 폭주, 저출산고령화의 심화)에 공통의 대응과 합의에 이르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짜뉴스와 루머와 함께 사람들을 극단적인 혼란과 대결로 몰고가는 이분법적 음모론 및 편향된 이념과 협소한 지식, 성숙되지 못한 진영논리에 근거한 그들의 영향력은 성대결 양상으로 접어든 미래세대의 분열과 증오, 폭력의 아수라장을 연출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어준과 김제동이 진보 진영의 한 축이고 상당한 공헌을 해왔다는 점에서 필자의 판단이 틀릴 수 있지만, '도덕이 없는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이 이재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를 지키기 위한 김어준의 '지지율 7% 협박 발언'도, 안철수와 박경철과 법륜 등과의 교류에서 출발해 노통의 영결식 사회를 거쳐, 촛불집회와 사드 반대, 이재명과의 친목질과 청년당의 고문으로 넘어가면서 구좌파적 가치에 함몰된 김제동의 '김정은 찬양 논란'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으로 보면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국민들을 더욱 분열시키고 첨예하게 분열해서 상대를 적으로 몰아가는 극단의 갈등을 양산하고 있었다. 

 

 

진보 진영의 소중한 자산이었던 이들이ㅡ김어준과 김제동에 대한 필자의 잘못된 판단이라는 욕과 질책을 받았지만ㅡ진보 진영에 부담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김어준과 김제동이 단기적 이익과 협소한 관점에 갇혀 세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면 퇴출의 위기까지 내몰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지자와 추종자가 워낙 많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정치인과 언론들이 있기 때문에 퇴출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그들에게 분명한 경고음을 들려줄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김어준과 김제동이 수구꼴통에 맞서, 조중동과 대형교회와 시장만능주의자, 배타적 민족주의자, 인종차별주의 등에 맞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지켜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미시적으로도 거시적으로도 정직하고 투명해야 그들의 영향력이 지속가능하다. 그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그랬다면 진실된 사과를 꺼리지 말고 그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완벽함이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자신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조언을 들어보고, 합리적인 부분은 받아들이는 현명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이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과욕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나라도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이런 갈등과 대립, 증오와 폭력의 만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면 스스로 진화해 인간의 영역을 모두 다 점령할 인공지능의 기술전체주의를 막을 방법이, 아니 그것을 늦출 기회는 모조리 사라진다. 더 이상의 분열과 대립은 안 된다. 그것이 진부할 대로 진부해진 이념적 대결이건, 상대를 찍어눌러야 내가 사는 진영과 정파의 논리이건, 여성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성대결을 유발하는 폭력적 페미니즘이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더 가지려는 상위 1%와 지금 가진 것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공포에 짓눌린 99%의 극한 충돌이건 더 이상의 분열과 대립은 자살행위에 다름아니다. 

 

 

'파렴치한 사법부의 재판거래'처럼 나라를 좀먹는 적폐청산은 계속하되, 두 자리수 최저임금 인상과 중소상공인 고충 해결, '광주형 일자리' 같은 공존과 상생의 모델을 통해 갈등과 분열의 사회가 아닌 공존과 상생의 포용적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만이 불평등과 양극화가 줄어든 공정경제와 동반자 민주주의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 그것에 우리 모두의 전력을 쏟아부을 때 인류의 종말을 막거나 늦출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합의에 도달해야 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적 대타협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모든 개인의 기대와 목표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그것을 향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때 인류의 시대는 약간의 희망이라도 만들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유발 하라리의 최근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을 보면 '초당 7,000만 수를 계산할 수 있는 스톡피시 8 프로그램(체스 인공지능)과 초당 8만 수를 계산할 수 있는 알파 제로(최초의 범용인공지능으로 초인공지능으로 가는 첫 단계)가 100번의 체스 대결을 벌였는데 알파 제로가 28승 72무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악할 노릇은 '최신 기계 학습 원리(머신 러닝)를 자가 학습 체스에 적용한 알파 제로가 인간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단 네 시간만 공부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더욱 경악할 노릇은 구글제로를 만든 구글조차 4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계 학습은 알고리즘 개발자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블랙박스'라고 지칭된다. 구글 직원 전부가 달라붙어도 구글제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모델을 세워 어떤 분석을 거쳐 체스의 최강자가 됐는지 알아낼 수 없다. 이것 때문에 인공지능의 발전 경로와 한계점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범용인공지능이 프로그래머의 코드와 상관없이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시기에 이르면 신도 인공지능을 제어할 수 없다.

 

 

물리적 한계와 기술 개발 및 적용의 한계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 지적사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 알파제로 같은 범용인공지능(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돌파할 최적의 후보이고, 지금 이 순간도 인터넷에 연결된 채 빛의 속도로 빅데이터를 흝어보고 처리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념? 진영논리? 정파적 이익? 성대결? 그 따위 것들에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단 말이다!   

  1. 카사바 2018.12.08 21:02

    선생님이 한동안 절필하셨던 이유를 이제사 알게 됐네요 제가 금년초에 아고라에서 선생님의 글에 매료되었고 트위터도 선생님을 따라 6월에 넘어와서,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누구를 팔로해야할지도 몰라서 일단 선생님이 팔로잉하신 분들 위주로 팔로잉하면서 트생도 시작한 셈인데..
    어느날 갑자기 절필하셔서 많이 궁금하던 차에 11월의 어느 날인가에 돌아오신 걸 보고 엄청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항암치료도 잘 받으시길 기원드리고, 집필 중인 저서도 많이 기다려집니다 어차피 아직은 지식이 짧아 많이 이해하진 못하지만, 선생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제 인생의 지평을 열어주심에 감사드리고 글과 앞으로 나올 저서를 통해 차차 배우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선생님의 집필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2. 늙은도령 2018.12.08 21:06 신고

    열심히 쓸 게요.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으니 이번에는 출판까지 갈 것입니다.
    님 같은 독자분들이 저의 보물이자 원동력입니다.
    쉽게 풀어낼 것이니 블로그에 올린 글과는 상당히 다를 거에요.
    자세한 설명과 예들을 포함시켜 이해를 도울 겁니다.
    감사합니다.

  3. 카사바 2018.12.08 21:27

    네 고맙습니다👍
    책이 나오면 동네방네 제가 열심히 홍보도 하겠습니다ㅎㅎ

  4. 자연e 2018.12.09 12:17

    다음 세대에게 좋은 지식 남기고 간다는 사명감 으로 이해됨니다.

    • 늙은도령 2018.12.09 15:26 신고

      인공지능을 전문가 수준까지 공부하면 다를 겁니다.
      전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전문가와 1년 정도 사업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은 머신 러닝과 뇌의 신경망을 통합시킨 최근의 인공지능은 특이점까지 가지 않아도 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노예처럼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5. 앨리스 2018.12.18 23:14

    너무 너무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갈등과 분열의 사회가 아닌 공존과 상생의 사회!!
    도령님의 글을 읽으니 요즘의 현실이 더욱 이해됩니다
    책도 너무 기대되고요^^
    빨리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권력의 애완견 노릇에 충실하기 위해 친일·반공의 완장과 신자유주의 합리성(인간을 극도로 세분화되고 표준화된 비숙련 단순 노동자로 훈련시켜 극단적인 노동 착취를 거쳐, 종국에는 노동자와 관리자 모두를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해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인 비인간화와 탈인간화의 형식합리성)을 대변했던  KBS가 정반대에 위치한 것으로 포장됐지만 또 다른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구좌파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극우에서 극좌로 탈각한 KBS의 역주행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방송 시간을 늘린 <오늘밤 김제동>과 KBS뉴스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좌파의 놀이터를 표방한 듯한 <오늘밤 김제동>에 대해서는 2편의 글로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9시 뉴스>에서 뚜렷해지고 있는 구좌파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유한국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말아먹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이 땅의 언론들 중에서 JTBC 뉴스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KBS <9시 뉴스>의 (발견하기 힘든) 구좌파화는 '백석역 사고'와 '광주형 일자리' 등의 보도들에서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사고들이 속출하는 것은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자신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두 정부에 누가 될까봐 언론들이 보도를 회피했던 사고들에 비하면 많은 편도 아니지만)이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나 맥도날드화, 유리감옥이나 감시사회, 승자독식사회나 시장만능주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나 줄푸세, 부정적 세계화와 자동화의 확대 등으로도 명명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의거해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이명박근혜 9년이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구축해 놓은 국가위기관리시스템과 다양한 위기대응 메뉴얼 등을 모조리 무력화시키는 시기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용산참사와 AI 확산, 구제역 파동, 세월호참사, 메르스대란 등도 이런 신자유주의적 역주행의 결과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9년 내내 방치해둔 곳곳에서 부실화 과정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터지지 않았을 뿐 사고의 가능성은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었다(9년 동안 초대형사고들이 너무 많아 보도가 되지 않은 것도 많을 수 있다). 민영화와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된 공무원 정원 축소 과정에서 시설관리와 보수, 점검 등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해고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무원을 대폭 증원(일자리 창출)하려고 했던 것도 무력화된 국가위기관리시스템과 다양한 위기대응 메뉴얼을 복원하는데 방점이 찍혀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CT룰 찍고 온 필자가 '백석역 사고'를 다룬 <9시 뉴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보도를 보면서 최근에 두드러진 변화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보도에서는 '온수관이 낡았다'는 것만 언급했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2명이 123km 육안 점검'이라는 타이틀의 2 번째 보도에서도 터무니없을 정도의 관리·점검 인원 부족의 이유를 다루지 않았다. 모든 책임이 문재인 정부와 지자체로 향할 수밖에 없다. <9시 뉴스>는 노동정책에서 약간의 후퇴를 보여준 (그러나 구조적 문제여서 어쩔 수 없었던)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언론들이 남발해 사용하기 때문에 '단독'이라 쓰고 '공통'이라 읽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배당 조작' 보도 시리즈는, <오늘밤 김제동>의 확대재편성과 맞물려 통진당과 관련된 사법부의 범죄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현대사법사에서 이 정도의 민주주의 파괴행위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 관련자들을 모조리 처형해도 모자랄 판이어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단히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이석기와 이정희, 서기호 등으로 대표되는 통진당의 피해가 가장 컸기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도 정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위안부할머니와 강제징용피해자 등과 함께 사법농단의 주요 피해자인 통진당 관련 보도는, 그들이 대한민국의 구좌파를 대표했다는 점에서 '광주형 일자리 무산 이유'인 '생산 물량 35만 대 달성 때까지 단체협약 유예'에 대한 현대차의 거부(협력업체 포함 광주와 전남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독일의 부흥을 이끈 슈뢰더 내각의 사회적 대타협을 모방한 것으로 보임)에 이어 현대차 노조의 파업 예고로 마무리한 보도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도록 편성·배치됐다.

 

 

문재인 정부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민주노총에 이어 현대기아차 노조가 포함된 한국노총까지 대정부 투쟁에 들어간다는 보도에는 현대차와 정부의 입장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구좌파적 편향을 노골화했다. <9시 뉴스>의 이런 보도 흐름은 '연동형 비례제'를 밀어주고 있는 <오늘밤 김제동>과 수미상관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국민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공영방송 'KBS1'으로써는 구좌파적으로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데올로기적 지향으로써 생명을 다한 획일적인 평등이나 노동의 절대성과 동등성을 대변하는 구좌파적 가치는 진보의 재정립을 막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들의 교조적 주장과 투쟁방식은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디지털 기술의 21세기에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온갖 문제들이 속출했던 자본주의 초기에 연구를 진행하는 바람에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와 소외, 잉여, 교환 등을 탁월하게 설명했지만, 그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빈약한 미래 예측의 참혹한 실패로 68혁명의 신좌파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시민행동주의 및 존 롤스의 《정의론》과 부분적 반론의 형태로 이루어진 후속 연구들에 자리를 내주면서 겨우 명목을 유지할 뿐이다.   

 

 

이 때문에 민주진보정권이 들어설 때만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는 KBS가 구좌파 같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에 편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준조세에 해당하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는 점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신자유주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나, 정치적 양극화의 한 축인 구좌파적 급진화는 촛불혁명을 통해 상당 부분 극복해낸 극단적 양극화를 되살려내고 표퓰리즘의 득세에 일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난 9년간의 애완견 노릇에서 탈피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KBS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노동 정책 후퇴에 맞춘듯이 구좌파적 급진화로 방향을 튼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구좌파를 포함해 거의 모든 진보주의의 핵심 메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N포세대의 좌절과 절망, 불행과 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불꽃 페미'라는 '급진적 여성운동'(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그들의 투쟁과 주장을 페미니즘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해서는 '성대결로 치닫는 20대 분노의 근원에 대해'와 '이수역 사건, 신자유주의와 디지털기술의 슬픈 자화상'에서 거칠게 다루었는데 'KBS1'의 급진화에 대한 반론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최초의 자식세대'라는 프레임은 사실이 아니며, 설사 그렇다 해도 구좌파적 급진화로는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세상을 모두 분해해 다시 조립하지 않는 한 'All or Nothing'식 투쟁으로는 바람직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약한 모든 것을 100% 지키라고 요구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남은 임기 동안 영생의 차원에 이를 천문학적 단위의 욕들을 먹는 수밖에 없다. 약속한 것을 모두 다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또한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분야에서 공약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실현해가고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순서에서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을 차근차근 되돌리고 있음도 말할 수 있다. 

 

 

일요일에 방송되는 <저널리즘 토크쇼 J>를 보면 'KBS1'의 목표가 공정성과 영향력 면에서 '손석희의 뉴스룸'으로 대표되는 JTBC를 능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KBS1'이 언론의 역할을 중립적 위치에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손석희의 JTBC와 비교해서 상대적 우위를 최대한 빨리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좌파적 급진화를 선택했다면 미시적으로도 거시적으로도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면서도 그것의 결과물에 대단히 부정적인 중상류층 고학력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KBS1의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구좌파는, 그것도 급진화된 구좌파는 지독할 정도로 물질주의적이어서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 성향을 20세기 내내 보여주었다는 경험적 사실이다. 이재명의 트레이드 마크로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할 수 없는 기본소득(기본소득 논의에서 숨겨진 위험들)이 구좌파와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것도 마르크스주의의 악성 변종을 불평등 극복의 정수처럼 오해했기 때문이다(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미래학자의 성급한 결론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김어준이 말한 이재명 지지율 7%의 핵심에 자리한 것도 '꼬리를 잡아 중심을 흔들겠다'는 기본소득(청년배당 포함)에 대한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민주당 지지자라는 그의 주장에는 추호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을 묶어주는 최고의 지향점이 기본소득인 것은 분명하다. 지급액을 대폭 후퇴시킨 이재명의 계획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아닌 기본용돈이라 불려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말하는 기본소득이 스위스와 핀란드에서 진행했던 기본소득과는 금액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으로는 불평등의 'ㅂ'조차도 줄이지 못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해서 'KBS1'이 지향하려는 미래의 이상향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필자가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통합적 사고로 치환할 수 있는 진보적 꼰대(단 유머와 위트를 장착한 대단히 열려있는 배나온 꼰대)를 자처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은, 표퓰리즘 뒤에 숨은 극우의 준동과 반동을 막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디지털 기술을 해방의 수단으로 여기는 급진적 구좌파의 선동과 폭력으로부터도 미래세대와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필자가 'KBS1'의 최근 행태에 적극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남은 일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었던 필자의 약 20년에 걸친 다독 및 정독과, 그것에 바탕한 반성적 성찰의 사고들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거나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는 경험들과 현실적 한계들이 이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필자의 공부와 판단이 틀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맞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을 단 한 줄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정의로운 사회와 포용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믿어라!! 믿어 봐라, 제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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