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ㅡ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 인용




어제 JTBC의 오락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서는 스티븐 호킹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테슬라‧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넘는 정보기술 기업가와 로봇공학 연구가들이 ‘국제 인공지능 컨퍼런스(IJCAI)’에서 공개한 서신의 경고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삶의 미래 연구소’ 명의로 공개된 이 서한에는 인공지능이 ‘킬러 로봇’처럼 군사기술에 적용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인류의 멸종도 가능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삐 풀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종말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는 비정상회담 출연진들도 숙고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에 관한 한 최고의 선두에 있는 구글의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이전에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우주와 지구, 인류가 특이점의 빅뱅에서 나왔다면, 커즈와일의 주장은 급진적인 것을 넘어 섬뜩하기 그지없습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프로그래머는 아직까지 인공지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이론이 발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인간보다 우수한 능력을 지닌 전반인공지능(GAI)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리처드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에서 인류를 대체할 지구의 지배자가 인공지능 컴퓨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이전의 경고들과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준 DDT(유대인을 학살한 화학가스와 미군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대량으로 살포한 고엽제와 네이팜탄도 DDT의 일종)가 실제로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그 이후에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5번째 종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등은 총체적 종말을 경고합니다.



이에 비해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총체적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 즉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주인공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표였던 진화의 과정이었던, 지구의 지배자가 인간에서 인공지능 로봇으로 바뀌는 것이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란 뜻입니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기술의 총아인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창조자인 인류를 친구이자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이 도래합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 류의 세계관이라면 지구의 다음번 주인이 인공지능 로봇이 된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인간이란 종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종말론도 신을 닮은 유일한 창조물인 인간이란 존재가 유한하다는 것에서만 유효한데,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공지능의 세상에선 부활이란 의미도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국익을 보호하고 유명인사의 죽음을 막기 위해 딜리트한 자료를 복구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거장 그리스토퍼 놀란이 메가폰을 잡은 <인터스텔라>의 낙관적 전망보다 스탠리 큐브릭이 메가폰을 잡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인공지능의 특이점입니다. 인류와 환경을 종말로 몰아붙이는 시장경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비정상회담의 토론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는 진보의 낙관론에 기반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법’이라는 머피의 법칙을 이론물리학적(만유인력,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초끈이론, 인류원리, 초대칭성, 블랙홀, 웜홀, 시공간 왜곡 등이 총망라된)으로 풀어간 <인터스텔라>보다는 ‘삶의 미래 연구소’ 명의로 공개된 경고가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하랄트 발처가 《기후전쟁》에서 말한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식수 고갈, 대홍수에 의한 파괴,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에 의한 오염, 거대한 쓰레기더미, 팽창하는 유전개발에 의한 환경파괴 등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분쟁상황 자체가 가히 파국적이다. 여기에는 기후변화와 전쟁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현재의 수단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P.S. 필자가 연재 중이지만 출판하려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퇴고해야 하는 '근현대사 비판'의 핵심주제가 과학기술과 시장경제 비판입니다. 인공지능은 핵폭탄을 넘어 이 두 가지가 완벽히 결합한 정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컴퓨터가 보편화되면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인데, 이런 속도라면 지구온난화의 급진화보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류를 대체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11 08:39 신고

    인공지능이 군사기술에 실제로 적용되면 안된다는 협약이
    잇어야됩니다. 핵처럼..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날이
    '멀지 않을겁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6 신고

      인공지능 로봇은 전쟁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자리를 말살시킬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인공지능 로봇은 더욱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2. 참교육 2015.08.11 10:49 신고

    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과학이 인류의 미래를 결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감출 수 없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8 신고

      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일부만이 큰 돈을 벌겠지요.

  3. 耽讀 2015.08.11 13:26 신고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비행기를 만들면서 추락도 함께 생겼다"고 했습니다. 최첨단 과학이 발전하면 할 수록 인류문명은 패망은 빨리질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9 신고

      아마 프로이트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가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탐욕이 곁들면 무조건 적이 됩니다.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 과보호론은 한마디로 말해 자본과 재계(오너와 경영진 및 대주주)의 입장만 반영한 편향된 주장입니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기업)이 이익을 높일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정규직의 인건비(정확히는 정규직의 권리고 최후에는 노동의 권리가 될 것이다)를 최소화하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기업)의 역사는 최대 이익을 거두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역사였습니다. 특히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자본(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고, 최후의 장벽으로 남은 것이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바늘공장’의 예를 들며 분업이 불러오는 생산의 확대가 자본(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래, 포드 자동차의 자동화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자본(기업)의 이익은 비례해서 늘었지만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들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른 자동화는 노동의 질을 숙련노동에서 비숙련노동으로 만들었습니다. 노동의 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이는 임금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남성노동자가 줄어들었고, 저임금 여성‧청소년노동자가 노동현장에 투입됐습니다.





고든 레어드가 《가격파괴의 저주》에서 자세히 다루었듯, 중국처럼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는 저소득 국가들의 등장은 자본(기업)에게 저임금노동자를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외국노동자의 수입도 동일한 효과를 발휘함에 따라 임금하락과 높은 실업률은 일상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지켰던 노조의 힘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네그리가 《혁명의 만회》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신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해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을 만큼 무력화됐고, 대형사업장 노조들은 기득권의 일부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이 지닌 지적‧경험적 오류를 줄여주거나 대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이를 장착한 디지털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화이트칼라(전문직 포함)의 지식노동까지 위협받고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고착화됐습니다.





데이터의 저장용량을 무한대로 늘리고 있는 반도체의 발달로 빅데이터 구축이 가능해졌고, 이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달로 수십 년의 경험으로 구축된 노하우까지 대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최고급 지식노동자까지 컴퓨터의 조작자나 보조자의 역할로 격하됐습니다.



이렇게 기업 활동의 대부분이 자동화됨에 따라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고, 비정규직이 느는 만큼 정규직의 임금도 줄어들었습니다. 컴퓨터 클라우딩 시스템과 사물인터넷의 현실화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노동의 종말’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입니다.



니콜라스 카가 《유리감옥》에서 “GE와 애플 같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일부 제조업을 다시 옮기고 있다는 소식조차 무작정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제조업이 되돌아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 없이도 대부분의 제조업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고용없는 성장’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말해줍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자본(기업)은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노트북과 스마트폰, 테블릿PC, 자가용비행기, 핵심인력 등만 있으면 노동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화의 과실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필요했던 시절의 자본(기업)은 전설의 영역으로 사라졌습니다.



무한경쟁에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비정규‧파견‧임시직에 아웃소싱까지 활성화시키는데 정치권력을 포획하는데 성공했고, 이제 자본(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은 것은 정년과 그에 따른 임금상승이 보장되는 정규직의 자유로운 해고와 임금뿐입니다(2편에서는 반론, 3편에서는 대안을 다루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4.04 08:26 신고

    정책입안자나 결정권자가 한번이라도 을의 입장,비정규직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책을 세운다면 분명 달라질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2. 뉴론♥ 2015.04.04 08:36 신고

    전 비정규직도 좋아요 취직만 할수 있다면요

  3. 참교육 2015.04.04 12:42 신고

    자본주의는 영원한까?
    이 담론은 끝이 없습니다.
    결국 자본의 영원한 승자일 수밖에 없다는 채념이 약자를 더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4. 공유의 플랫폼 2015.04.05 00:01 신고

    무엇이 정답일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가라는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야 된다는 담론에는 동의해야 될것 같아요.

  5. Aa 2017.11.09 10:40

    일반적인 헬조센의 기업의 인력중 90%가 해고도 못하는 잉여인력인걸 모르나? 미국기업들은 정규직 해고시 해고사유도 대야하는 의무가 없는 반면, 헬조센에선 고용한 후면 게으르고 무능한게 입증이 되도 해고를 못하는게 현실. 쓸모없는 인력을 해고하지 못하는 헬조센 기업들은 그만큼 경쟁성이나 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회사 전체의 임금도 하향 평준화되지.




1978년에 항공 여행 규제가 풀리자, 미국의 항공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 항공 기관사들을 자리를 없애고, 기장과 부기장만 조정석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위의 인용문은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레이건이 자동화기술에 밀려 자리를 잃게 된 미국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을 강경진압(11,345명 해고, 관련 노조 해체)한 이후 결정된 내용입니다. 이후로 전 세계 항공사들은 조정석에 기장과 부기장 두 명만 들여보내게 됐습니다.





이번에 프랑스 남부 알프스에 추락한 독일 항공사 저먼윙스의 부기장이 고의적으로 사고를 낼 수 있는 배경이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가 기장이 자리를 뜬 사이에 조정석 문을 잠근 채 알프스 산맥을 향해 죽음의 비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비행에 필요한 일들을 자동화기술이 맡게 됨에 따라 조정석에 단 두 명만 들어가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컴퓨터에 의해 작동하는 자동비행장치의 발달과 재계의 인건비 절감을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가 맞물리면서 항공기 사고는 기체 결함보다는 ‘조정사의 과실’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됐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조정사에게 필요한 자질과 기술을 형편없이 떨어뜨렸고,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항공사고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요즘 일반 여객기 조정사들은, 이착륙할 때 각각 1~2분 정도씩, 즉 총 3분 동안만 조정간을 잡”고 “스크린을 확인하고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잡담을 나누는 등 하는 일이 없어 안전비행에 필요한 기술과 판단, 인식의 총체적인 후퇴가 불가피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번 사고는 인류의 성장을 견인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기술발달의 혜택은 기계의 소유주의 부만 불려줄 뿐, 관련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임금을 하락시켜 가난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정신질환까지 갖게 만듭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 정신질환의 종류와 환자의 수입니다. 인간은 의학과 약학, 후생학과 진료기기의 발전 등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났지만, 평생을 각종 질환에 시달리며 사는 악순환에 빠져들었습니다. 과학기술과 탐욕이 한쌍이 되면서 인간은 돈벌이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자동화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추세를 받아들여 인공지능이 장착된 디지털컴퓨터와 자동화기계의 부속품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갈수록 줄어드는 입지가 두려워 정신질환에 시달려야 할지 결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추락 사고는 현대 첨단문명의 문제들이 압축된 비극적 사고입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현재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고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가 성장할수록 인간의 삶과 영혼이 피폐해지과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장을 멈춰라》라고 외쳤던 것이 생각납니다.



인류는 고삐 풀린 기술의 발달과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정말로 부유해지고 행복해졌는지, 아니면 무능해지고 무력해졌는지 한 번은 멈춰 서서 자신과 세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과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만들어낸 첨단문명의 결과물이 이번 독일 항공기 추락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인류가 극소수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디지털컴퓨터로 연결된 각종 자동화기술의 네트워크 속에 갇혀버리면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것이며, 반대로 인간의 삶과 노동의 가치, 인식의 전환이 우선될 때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smm 2015.03.29 09:13

    독일도 개인적 이탈행위로 몰아가고 있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하네요 ^^

    • 늙은도령 2015.03.29 16:26 신고

      개인적 일탈이 가능한 시스템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고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소피스트 지니 2015.03.29 15:46 신고

    이번사고로 알게된 사실들을 보면 항공안전도 참 허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저런 규제완화 사실은 좀 충격적이네요..

    • 늙은도령 2015.03.29 16:27 신고

      기술에 대한 맹신, 인건비 절감에 대한 탐욕,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욕망이 결합된 사고입니다.
      기술은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술을 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 소피스트 지니 2015.03.29 16:30 신고

      옳은 말씀입니다

  3. 정말 너무 무서울 정도 입니다 ㅠ

  4. 『방쌤』 2015.03.29 20:16 신고

    과연...
    삶이 풍족해진만큼..삶도 나아진건지..
    하나 둘 돌아보니 맘이 씁쓸하네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건데 말이죠

    • 늙은도령 2015.03.29 20:47 신고

      지금은 인류의 타락이 정점에 이른 상태입니다.
      자본주의적 인식이 가치 기준까지 결정하는 시대인데, 한국이 특히 심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인간은 스스로 종말에 이를 것입니다.

  5. Cong Cherry 2015.03.29 23:14 신고

    무섭네요......

    • 늙은도령 2015.03.29 23:54 신고

      향후 무인항공기에 대한 논의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기술만 아는 자들의 무책임한 발언들이 난무할 것이고요.
      인간은 기술발전의 결과 끝없이 퇴행하고 있습니다.

    • Cong Cherry 2015.03.29 23:58 신고

      무인항공기 라는 그 단어가 더 두려워요. ㅠ
      예전에 무인지하철이라며 기관사 없는 지하철이라며 8호선에서 시행하고 얼마되지 않아 지하철 문끼임 사고가 있었던걸로 알아요. 헌데 무인 항공기,,,

    • 늙은도령 2015.03.30 02:45 신고

      우리는 정교한 기계가 인간보다 안전하다고 믿거든요.
      그것이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사였습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5.03.30 10:28 신고

    항공기도 그렇지만 범위를 좁히면
    버스 운전도 마찬 가지입니다

    자의인경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자의가 아닌 경우도
    ( 불시에 일어날 가능성) 있을수가 있습니다
    적절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 늙은도령 2015.03.30 17:17 신고

      인간의 능력을 낮추는 자동화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번 사고도 그런 것에서 나왔습니다.

  7. 티스토리 운영자 2015.03.30 11:58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3월 30일자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국방부에서 내부통신용으로 만들었던 인터넷이 민간에 이전된 이후 사이버 세상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루었습니다. 바퀴와 시계, 내연기관과 분업화된 포드의 생산라인, 활자와 세탁기 등이 세상을 바꾼 것에 비해 인터넷이 바꾼 세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흡하다는 것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1990년대 말 미국과 일본, 영국과 한국 등에서 벤처거품이 폭발하면서 짧은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것도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이 약속한 세상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SNS까지 더해지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까지 등장했습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 혁명’이 아랍을 들끓게 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참혹한 실패로 귀결되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강화됐습니다. 제도권 언론을 대체할 것 같았던 블로그의 열기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벤처거품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사이버세상의 부작용이 갈수록 쌓이고 축적되는 가운데, 빅브라더의 출현까지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란 초국적기업을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됐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현은 인류 진화의 과정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에 이르렀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세상을 뒤엎는 가운데서 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밝히기 힘들었던 권력과 자본의 심부에서 벌어진 일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빅브라더의 출현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터넷과 SNS은 극도로 혼탁하지만, 그런 혼탁함 속에서 권력과 자본이 남긴 쓰레기와 악취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수백 년 간 쌓여온 기득권의 벽이 여전히 높지만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대선개입도 밝혀졌고, 현직 부장판사의 일베충 같은 댓글도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빛의 속도로 세계를 질주하는 것은 최상위 1%의 전유물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파시즘적 속도에 99%가 익숙해지면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철학과 지식, 과학기술의 최종 목적지가 완전한 자유의 실현이라면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의 단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 막말과 거친 표현이 난무하는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사회경제적 평등까지 이끌어낼지 알 수 없지만, 사회경제적 평등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가 역설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 정치적 평등을 시작으로 사회경제적 평등을 이루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합니다.



자본주의의 폭주가 신자유주의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완전히 뒤집힌 세상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성찰처럼 ‘액체근대’나 ‘유동하는 공포’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갈수록 정형화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제멋대로 출렁이는 세상이 제자리를 잡을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병과 잠시도 홀로 둘 수 없는 어머님 때문에 집과 병원과 마트만 왔다 갔다 하는 필자가 지적 여행(최근에는 철학의 형이상학에 빠져서 헤매고 있지만)을 계속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음도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임스 베니거가 《통제혁명》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최상위 1%가 작금의 혼란을 통제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최근에 들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새로운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이런 추세가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과 한병철의 《투명사회》의 디스토피아로 갈지, 아니면 뒤집힌 세상을 또 한 번 뒤집는 역설을 보여줄지 알 수 없지만, 인터넷과 SNS에 부정적이었던 필자가 ‘인터넷과 SNS의 역설’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봤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인원이 처올린 뼛조각이 우주선이 될 수 있다는 스탠리 큐브릭의 놀라운 영상미처럼.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저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제가 힘겨운 투병에서 짧은 승리를 이어가면서 삶의 역동을 경험할 수 있음도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가져다준 고마움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세상이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에 빠져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이들을 하나씩 걸러내고 있음에 힘을 내봅니다. 희망과 절망의 비율이 1대 99라고 해도 1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면 희망의 대가로 견뎌내야 할 압도적인 절망도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제국》과 《다중》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복적 스피노자》에서 “민주주의는 두려움의 제거뿐만 아니라 더욱 높은 형태의 자유의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2.13 06:42 신고

    민주주의란 갈수록 법전에 남아 있을뿐입니다.
    전자개표도 수개표로 바꿔야한다는 운동이 일고 있더군요.
    정보화시대에 대한 공포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3 14:56 신고

      언제나 이런 암흑기를 거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합니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행정, 입법, 사법 기능이 모두 있는 절대적 민주주의가 되면 가능한데 그것은 유토피아적인 것이지요.
      스피노자가 그렇게 생각했더군요.
      그에 준하는 절대적 일치성과 다양성이 동시에 하나의 체제에서 개인들의 집단적 사고로 이루어진다면 완벽하겠지요.
      그 근처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인터넷과 SNS 등은 사용에 따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2. 꼬장닷컴 2015.02.13 08:01 신고

    아직 갈길이 멉니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럼에도 뚜벅두벅 내 갈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에서 백성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13 14:58 신고

      네, 민주주의는 언제나 갈길이 멉니다.
      흥망성쇄를 거듭하는 것이 그 내적 본질입니다.
      다만 최상의 상태에서 창조적 발전과 안전성이 유지될 때 국민은 권리를 누리며 의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는 절대다수의 민초에게 발현할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3. 耽讀 2015.02.13 08:10 신고

    아직도 저들음 힘이 셉니다. 뭉개고 가는 것이지요. 인터넷과 sns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요. 조중동은 의제를 설정하고 종편은 하루 종일 극우시각을 전합니다. 오후에 식당에 가면 다 종편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은 하늘에 떨어지는 보따리가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이 행동할 때 가능합니다.

    • 늙은도령 2015.02.13 14:59 신고

      조금씩 뒤집어 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 조중동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힘을 가질수록 조금씩 나아지리라 봅니다.
      하나씩 각개전투를 해서 무너뜨리다 보면 아주 조금은 나아졌겠지요.
      그렇게 전진하는 것입니다.
      시끄럽게 떠들고 저항하고 투쟁하면 민주주의는 강화됩니다.

  4. 랩소디블루 2015.02.13 08:13 신고

    언젠가는 좋아지겠지욤 희망이란 항상 존재하니고 있네염.

  5. 공수래공수거 2015.02.13 08:45 신고

    그마저 없었으면 암흑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을겁니다

    항상 건강 돌보시면서 생활하시길...

    • 늙은도령 2015.02.13 15:01 신고

      네, 건강에 조심,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적정 글쓰기 이후에는 편하게 누워서 책을 일고 잘 먹고 있습니다.
      운동도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항상 하고 있습니다.

  6. 바람 언덕 2015.02.13 10:17 신고

    건강만 하십시요...
    ^^*

  7. Starry 2015.02.13 12:09

    처음으로 흔적 남기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8. 꼴찌PD 2015.02.13 15:59 신고

    공유와 확산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 인터넷과 SNS의 무서움을 알겠네요.

    • 늙은도령 2015.02.13 17:49 신고

      저는 처음으로 긍정적인 면을 봤습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다중에 의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언제나 변화와 갈등의 대척점은 있지만 그런 가운데 일정한 합의를 찾아가는 모습.
      다양성과 주체성을 골고루 살아있는 공간....
      뭐,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제가 요즘 스피노자를 읽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9. *저녁노을* 2015.02.13 18:22 신고

    더 무서운 세상을 만들어버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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