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증거 조작과 검언유착의 가짜뉴스로 대표되는 '조국 죽이기'로 공수처 설치라는 검찰 개혁의 핵심이 무력화됐습니다. 서초동에 모인 촛불시민과 유시민 이사장의 활약 등으로 '조국 죽이기'의 거대한 파도가 일부 꺾였지만 조국과 그의 가족들의 따박따박 고발이 이루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검찰 개혁의 동력은 상당히 약화됐으며 공수처 출범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전공의와 의대생의 불법파업으로 사실상 좌초된 것처럼, 검찰 개혁의 동력을 되살리기도 전에 '조국 죽이기'의 재판인 '추미애 죽이기'가 시작됐습니다. 기획된 폭로부터 온갖 의혹들과 가짜뉴스들이 기레기와 극우유튜버, 각종 음모론자들을 통해 무한정으로 쏟아져나왔습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서로 충돌나는 보도들에서 보듯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과 음모, 조작 등으로 얼룩진 정치기획이자 공작의 전형이었습니다. 

 

이런 엉망진창, 막무가내식 테러에도 불구하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이것으로써 연내에 공수처 출범의 가능성은 90% 이상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항상 내외부의 총질러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박용진, 조웅천, 금태섭, 조기숙 등이 그들입니다. 이해찬 대표가 물러난 뒤라 이들의 내부총질을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공수처 수정법안 운운하는 소리가 민주당 내부에서 들리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요. 

 

친일파에서 연원하는 이런 악질적인 기득권들의 한바탕 분탕질이 지나고 나면, 아니 겨우겨우 넘기고 나면 검찰 개혁의 동력은 거의 다 형혜화되버리고 맙니다. 정부의 강경대응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저들의 불법과 탈법을 극복한다고 해도 근본적 차원의 개혁 동력들은 대부분 소진되기 일쑤입니다. 민주당 내에도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놈들이 있어 공수처의 연내 출범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무산되고 맙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패턴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지만, 조국 죽이기와 박원순 죽이기, 의사파업과 추미애 죽이기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도입 후유증, 트럼프가 일으킨 미중무역전쟁, 아베가 일으킨 한일무역전쟁, 이것도 모자라 코로나19 펜데믹과 기후 이상에 따른 초장기 장마와 태풍까지 겹치며 목표한 결과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검찰 개혁보다 더욱 중요한 언론 개혁은 말할 것도 없고요. 

 

국가를 이루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는 물론 제4부로 회자되는 언론까지 공화국적 자유주의 논리들이 기득권의 특권과 반칙, 세습과 독점, 불법과 협박 등에 휘둘리는 방식으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수의 민주주의가 무력화되면서 소수의 기득권이 그들만의 자본주의를 영속할 수 있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착실하게 국정운영을 준비한 문재인 대통령이었음에도 결국은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기득권들에게 한판패를 당하기 직전입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으려면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문통의 인기 뒤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챙기는 비겁한 짓거리를 끝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공수처 출범과 4대의료정책 진행을 위한 관련 법들을 무조건 처리해야 합니다, 비열하고 악질적인 기레기들을 바로잡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함께. 

 

 

https://youtu.be/c3lmjlQcHos

 

 

 

 

어떤 제약도 빛의 속도로 퍼지는 디지털 기술과 지구 차원의 단일 시장을 구축한 플랫폼 공룡사업자들의 탐욕 추구의 결과, 민주적 소통의 장으로 기대받았던 디지털 공간이 분열과 갈등,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최악의 네트워크로 변질됐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바이러스성 콘텐츠는 정교한 조작을 거친 가짜뉴스의 형태를 거치기 때문에 상당수의 이용자들이 속고 또 속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갈등과 분열, 증오와 차별, 폭력과 선동을 조장하는 바이러스성 콘텐츠의 범람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튀틀린 형태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정교한 조작이나 그럴싸한 음모론적 형태를 띠는 바이러스성 콘텐츠는 다양한 가치관과 성향, 이해를 가진 플랫폼 이용자들의 의식구조를 조금씩, 꾸준하게 바꿔놓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플랫폼 이용자들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노출되는 회수만큼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플랫폼 공룡사업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를 절대적 가치로 자리매김시키는데 성공함에 따라 정교한 가짜뉴스와 악성 음모론 작성·유포자들이 디지털 공간을 마음껏 떠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상당한 노력을 투자해야 진실이나 지식으로 승격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이들에 의해 갈등과 분열, 차별과 폭력을 유발시키는 악성 바이러스에 전염되게 만듭니다. 

 

의사ㅡ또는 의사를 가장한ㅡ가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기본적 상식에도 벗어나는 얘기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도 어떤 규제에서도 자유로운 공룡사업자들의 이익극대화 전략 때문입니다. 기존의 언론들이 디지털 공간에 끝없는 가짜뉴스의 원천을 제공하는 기레기로 전락한 것도 공룡사업자들의 플랫폼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자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각종 바이러스성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공룡사업자의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헌데 디지털 세계를 장악한 이들이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에 힘입어 무한대의 이익을 긁어모을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준 것이 신자유주의 50년을 추동해온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투자 대비 최대의 효율을 거두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덕목이라고 주장한 경제학 제국주의가 지난 50년 동안 병립하는 일체의 가치를 죽이고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 남기는데 성공한 것이 현재의 디지털 공간입니다.  

 

자유를 중시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권리를 강조하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를 분리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보다 평등이 더 큰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던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이익극대화 전략의 무한질주는 경제학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지옥 같은 결과입니다. 신앙과 지식, 공기와 물, 노동과 자원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되게 만들면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이 번성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시장참여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게 된다는 '자기조절 능력이 있는 시장'이나 '렌덤워크 가설'에 의해 시장참여자 모두가 해피해질 수 있다는 '효율적 시장'이 전 분야에 걸쳐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 경제학 제국주의의 핵심입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므로 모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개인은 시장원리에 따라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경제학 제국주의는 법앞의 평등마저 경제적 논리로 재단하게 만듭니다.    

 

디지털 공간이 각국 정부로부터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의 뒤에 숨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이러스성 콘텐츠를 쏟아내도 되는 곳으로 직행한 것도 경제학 제국주의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투자 대비 효율이 유일한 가치판단 기준이기에 목사와 의사라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테러행위에 다름없는 짓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각각의 네트워크를 구성한 이들의 폭주는 플랫폼 공룡사업자들을 각국 정부가 세계적 차원에서 규제할 수 있을 때만이 양질의 정보가 오가는 민주적 소통의 장으로 자리할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이것에 합의하지 못하면 트럼프 같은 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오프라인 공간마저 갈등과 분열, 차별과 증오, 폭력과 테러의 장으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https://youtu.be/_AN8iABrvrU

 

 

본격적으로 의료계의 주장들에 대해 하나하나씩 반박해 모조리 박살내는 첫 번째 영상입니다. 지금까지는 일부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의료계의 반발이 결국은 제살 깎아먹기로 귀결될 것을 막기 위해 전체적인 차원에서만 비판영상을 올렸지만, 그런 식으로는 저들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의료계의 주장 모두를 모아놓고 하나하나씩 박살냄으로써 그들이 신자유주의 50년의 결과라는 사실을 입증하겠습니다. 

 

제가 의료계의 파업을 비판하는 첫 번째 영상을 올릴 때, 의사의 집단파업부터 시작해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다룬 책들과 논문에서 얻은 지식와 통계치들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일 전공의와 전임의, 의대생들은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한 신자유주의 50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탐욕이 좋은 것이며, 성공과 실패 모두 노력과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이기에 성공의 이익을 독식하는 것과 실패의 책임을 온전히 지는 것이 모두 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을 매일같이 주입받은 세대들이 파업에 참여한 의사와 의대생들입니다. 신자유주의 50년이란 인간의 도덕과 윤리, 시민적 덕성을 퇴출시킨 채 무한경쟁의 시장논리로만 세상을 재단해온 기간을 말합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을 주장한 다윈의 진화론과 우주는 질서정연하다는 뉴턴의 만유인력 등을 교묘하게 엮어 승자독식이 진화의 필연이라고 주장한 허버트 스펜스의 <사회진화론>과 경제학 제국주의를 주도한 시카고학파의 효율적 시장가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자리합니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개별적으로 발전해 하나로 합쳐진 신자유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된 신소유주의와 합쳐지면서 극단적 이기주의와 승자독식을 유일한 가치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경제학으로 모든 분야를 재해석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든 경제학 제국주의도 신자유주의 50년의 결과였고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법학을 집어삼키 결과입니다. 이것을 법경제학이라고 하며 도덕의 최소한이며 정의의 실현을 구현해야 하는 법의 운용과 적용이 시장논리에 지배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요. 경제학 제국주의는 한계효용학파의 득세와 함께 하며, 그들의 판단 기준은 투자 대비 효율성(경제성)이라는 단 하나입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모든 분야를 잠식했고, 그중에서 가장 많이 잠식된 곳 중 하나가 의료계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의료의 출발은 공익적 차원이었는데 신자유주의 50년 동안 민영화와 영리화가 공공의료를 최악의 것으로 추락시켰습니다. 모든 분야의 민영화가 의료계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지요. 

 

보다 구체적인 비판들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번 영상은 저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것이며, 의료계의 주장들을 큰 차원에서 비판했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www.youtube.com/watch?v=mm0AujYArrA

 

  1. 참교육 2020.09.02 06:12 신고

    머리좋은 사람들이 왜 여론 외면하면 진 싸움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이런 수준에게 국민의 생명을 맡기겠다니 소른 끼칩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으로 대표되는 다윈의 진화론적 주장에 따르면, 생존에 성공한 모든 개체는 능력의 한계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승자독식이 이루어질 때까지 무한경쟁을 하는 대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선택하는 도덕성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압도적이거나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힘을 보유하지 않는 한 공멸로 이어지기 마련인 승자독식보다는 적절한 수준의 협력을 통해 종이나 개체군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에서 균형을 잡는 도덕성을 키워왔다는 것이지요.   

 

종이나 개체 단위에서 유래한 도덕성에 대한 이런 접근은 세계적인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진리의 차원으로 승격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유지의 자원을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든 개인이 무한경쟁에 뛰어들면 공유지의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 후생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시장에 참여한 어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해를 초래할 때만 가능한 상태에 이르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파레토 최적' '파레토 균형'이라는 후생경제학의 제1원리가 여기에서 나왔는데, 모두의 이익이 완벽한 균형에 이르러 모두의 이익을 늘리지 않는 한 사람의 이익도 늘릴 수 없는 완벽한 균형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파레토 최적'에서 영감을 받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시장에 참여한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이기적인 노력과 선택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거해 최적의 시장가격을 형성하면ㅡ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 시장가격이 모든 참여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점ㅡ이익의 극대화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진화론적 해석을 인위적으로 극대화한 것입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이런 주장들은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정보와 선택, 계약이 이루어지고, 비행기와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과 같은 고도화된 물류시스템에 의해 시공간의 한계를 무력화한 현대에서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극복될 수 있는 근대적 시장규모에서는 '도덕성이 다른 면에서는 이기적인 개체들이 협력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끔 해주는 심리적 적응물이'라는 진화론적 주장이 통용될 수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만 구별하면 되는 사회관계와 시장규모가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별로 확장되고, 부족 단위의 공동체는커녕 지역과 국가를 넘어 전 지국적 차원으로 추가 확장되면 '공유지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옵니다. 자본의 축적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세계화는 인류로 하여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시장경제에 무방비로 던져버렸고, '벨 에포크 시대의 도래'라는 사상 최악의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이런 국가와 인류 차원의 불평등은 1차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경제대공황, 2차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대학살을 연이어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뉴딜정책과 유럽의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상생과 공존, 평등의 세계적인 합의가 2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체결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려 30년 동안 이어진 평등한 세상을 위한 공통의 협력은 지구적 차원의 상생과 공존이 불가능한 꿈만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로 회자되는 '영광의 30년'은 1979년 영국에서 대처가, 1980년 미국에서 레이건이 최고지도자에 당선됨에 따라 무려 50년에 걸쳐 완벽하게 해체됩니다. 이 기간을 신자유주의 50년 또는 신소유주의 50년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태어나 자란 세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경쟁이란 좋은 것이며, 성공도 실패도 개인의 책임이며 운이라는 요소는 개입할 수 없다며 소수의 승자독식 승자를 무한대로 칭송하고 절대다수의 패자들을 국가의 세금이나 축내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추락시켜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탐욕이 모든 수준의 경쟁에서 최고의 덕목이 됐으며,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무한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새로운 도덕이 모든 개인의 내면에 절대적 기준인양 자리잡도록 만들었습니다.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부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초고율의 누진세를 부과해 하위 99%에게 나눠주는 재분배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최악의 대죄로 사형선고를 내려버렸습니다.

 

조슈아 그린이 《옳고 그름》에서 "똑같은 도덕적 사고가 한 집단 안에서는 협력의 기초가 되지만 집단 사이에서는 협력을 방해한다"는 현대적 비극이라 칭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정된 자원과 유한한 기회라는 한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이익 추구적 행태는 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 환경 오염이라는 외부효과를 피할 수 없음에도, 이익은 극소수가 독점한 채 피해는 절대다수에게 전가하는 탐욕의 폭주를 도덕성에 따른 공정한 정의인양 포장해버렸습니다.

 

극소수에게 무한대의 부와 권력, 기회를 몰아준 신자유주의 50년이란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뽑아내는 '사탄의 맷돌'을 무한정으로 돌리기 위한 상위 1%의 거짓과 궤변의 향연이었습니다. 상위 1%의 탐욕을 위해 하위 99%가 피터지도록 싸워야 하는 세상이 이렇게해서 일반화됐습니다. 분열과 갈등은 모든 차원에서 발생했으며, 하위 99%에 속하는 우리(또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또다른 하위 99%에 속하는 그들을 죽여야 하는 제로섬게임이 생존의 기준이 됐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의 이면에는 극소수의 탐욕을 위해 절대다수가 피해를 감수해야 논리가 도덕의 이름으로 자리하는 세상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에 대해 코로나19 펜데믹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젊은의사들의 분노가 유별나게 큰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선배들에 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가뜩이나 줄어든 자신의 밥그릇을 더욱 축내는 것일 뿐이며, 특수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선배 의사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해법을 고민하거나 여론의 향배를 지켜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킨 극단의 분노와 복수심에 가득찬 이들은 장렬히 전사할지언정 문재인 정부와의 타협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선택이자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치욕입니다.

 

 

의료계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낙수효과의 작동불능 때문에 자신에게 떨어질 몫이 없으므로, 당장의 밥그릇 또는 가까운 미래의 밥그릇을 챙기는 극한 투쟁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판단에 이성과 사고는 작동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젊은의사들은 최대집이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온 지난 3년의 비협조가 정당했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극한투쟁도 정당한 것입니다.

 

노력한 것 이상을 번 선배와 비교할 때 투자와 노력에 대비 터무니없이 작은 몫만 챙길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최대집과 의협의 투쟁은 지극히 정당하고 자신의 몫을 지켜주기 위한 희생적인 영웅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또는 우리)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몫을 미래세대에게 나눠주려는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은 정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독재나 전체주의에 다를 것이 없으며, 그들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몫을 강제로 빼앗아 미래세대에게 나눠주려는 것이어서 사회주의적이고 심지어는 공산주의적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의료를 벗어나면 배운 것이 없는 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쟁을 제한하고, 자신보다 못한 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모든 행위가 사회주의고 공산주의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을 무력화시키지 못하면 자신과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의사의 선택이 극단적인 단체행동이나 사직서를 제출하는 감정적 대응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상위 1%가 밀어붙인 무한경쟁의 승자독식 논리를 내면화한 젊은의사에게는 '죽이 아니면 까무라치기' 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도덕적 원리에 따라 문재인 정부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것 이외의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앞의 영상에서 이번 투쟁에서는 회색으로 칠해진 중간지대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들은 4대의료정책을 좌초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얼마든지 담보로 내걸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현재의 국민,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완벽하게 거부하고 있는 젊은의사의 도덕율은 단체행동은 'all or nothing'의 내면화가 얼마나 극한투쟁으로 국가와 국민을 천길나락으로 몰아낼 수 있는지 웅변해줍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대집이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의 의료계의 이기적인 행태는 어떤 정부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도 진작에 넘었습니다. 상위 1%, 더욱 자세하게 파고들면 상위 0.01~0.1%로 모든 부가 쏠리는 현실에서 3년차를 넘긴 단임정부에 질 수 없다는 결기와 광기가 의협 집행부를 넘어 젊은의사들에게까지 단체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내부에서도 불평등이 극대화되는 상위 1%는 영원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남은 것이란 레임덕밖에 없는 4년차 정부가 더욱 만만한 상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구축하겠다는 의협 집행부보다 더욱 강경한 젊은의사의 단체행동과 집단적 사직서 제출은 갈등과 분열로 얼루직 이 시대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최후의 과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지난 50년의 세상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왔다고 앞으로의 세상도 같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저들의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지켜보면서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찾아해맸던 보편적 도덕원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새로운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도덕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세상이란 끝없이 늘어나는 분열과 갈등을 매일의 양식처럼 먹고살아야 하는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GeLtR7rMg     

 

 

<분열과 갈등의 시대, 왜 다시 도덕인가>라는 부제를 가진 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와의 분열과 갈등이 자유와 책임에 대한 해석에서 우선순위와 경계선에 관한 부분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도덕이 부재한 시공간에서는 자신의 주장 및 신념을 정당화하는 기준의 차이와 규모의 문제가 모든 정당성을 대체하는 타협불가능한 갈등과 충돌로 귀결됨을 말해줍니다.

 

조슈아 그린은 '오바마케어라고도 불리는 환자 보호 및 의료비용 합리화법인 미국인들의 건강보험에 관한 법률"에 대한 미국의 보수주의자(텍사주 하원의원 론 폴과 공화당 대선후보 밋 롬니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적이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진보주의자(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메사추세스 주 상원의원으로 대표되는 이타주의적 공동체주의)의 갈등과 분열도 "'우리' 대 '그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성향이 강한가 아니면 약한가, 부족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집단활동(미 연방정부나 UN처럼)에 더 개방적인가 아니면 덜 개방적인가의 차이"라는 주장에서 출발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현대적 도덕의 기준선을 제시했습니다.        

 

자유지상주의와 극단적 개인주의를 내세운 론 폴과 롬니는 연방대법원에서 합헌 판정을 받은 '오마바케어'가 '재원 마련을 자발적 가입과 세금을 결합한' 사회주의적 강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바마케어'에 가입하지 않은 청년이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을 경우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자유의 본령이며 미국의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는 '친구, 이웃, 교회 등이 돌봐야 한다'며 자유에 따른 책임을 사적인 차원으로 넘겨버렸습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밋 롬니는 이것보다 한술 더 떠 '미국 인구 중 소득이 너무 적어 급여세 외에 소득세도 내지 못하는 파렴치한 '47%'는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삶을 돌볼 의사가 전혀 없는 고의적인 정부 식객'이라며 '그들은 번 것 이상으로 받을 자격이 없다'며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지면 된다'는 론 폴과 밋 롬니는 '오바마케어'의 재원 마련이 "한 사람을 총으로 의협해 그의 부를 훔치고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옮기는 것"이라며, 대법원의 합법 판결마저 사회주의로 몰아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워렌 상위의원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적 진보주의자들은 "부자들이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뜯어고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롬니 같은 부자들은 투자소득에 대한 낮은 세율, 온갖 탈세 수법, 해외 조세피난처 등을 이용해 중산층의 많은 노동자들보다도 낮은 비율의 세금을 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워런 의원이 '공장을 세운 부자가 큰 부분을 가지되, 그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각종 인프라 재원을 모든 국민의 세금에서 마련했기에, 나머지를 다음 세대를 위해 지불하는 것이 근본적인 사회계약의 일부'라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면파업에 나선 한국의 의사들을 이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해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 전체를 상대로 공갈협박을 일삼는 행위는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쪽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모를 리 없습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학장인 신찬수 교수의 발언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제자의 권리와 이익이 진료보다 중요하다"며 '정부가 4대의료정책을 밀어붙이면 자신을 포함한 교수들이 나설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자신의 제자처럼 특정 집단의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S_6cCxCe9TM

 

  1. 선한이웃moonsaem 2020.08.27 20:02 신고

    양의 탈을 쓴 이리떼들처럼 시커먼 그들의 속.... ㅜㅜ
    조금 심하게 표현 하자면 환자들의 생명을 약탈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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