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를 선택한 문재인 대표의 결정에 조건부 찬성을 표한다. 이종걸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내년도 예산과 관광진흥법 등을 일괄처리함으로써 새누라당2중대 역할에 완벽히 충실했던 오늘, 문안박 연대니, 야권통합이니, 집단탈당이니, 집단지도체제니, 친노와 비노니.. 이런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고 싶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현재, 마지막으로 문 대표의 결정에 조건부나마 찬성하는 이유를 밝히려 한다.   

 

 

 

 

 

 

 

필자의 조건부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문 대표가 박근혜와 현 집권세력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라는 것이고, 나머지는 그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정권 탈환의 계획을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찬성에 대한 이런 두 가지 조건부는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이기 때문에 문 대표가 역사적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이를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박근혜 일당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는 유권자와 당선자가 동일시되는, 그래서 당선자가 유권자의 뜻을 따라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민주성과 다수의 동의를 받아 당선됐기 때문에 유권자의 뜻이나 여론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는 대표성으로 나뉜다. 민주성이 강조되면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워지고, 대표성이 강조되면 제왕적 대통령제나 권위주의적 독재에 가까워진다.  

 

 

집권 3년차에 들어 본격적인 독재로 들어선 박근혜는 선거제도의 반민주적 특성(극단적일 정도로 부와 기득권, 엘리트에게 유리한 제도적 특성)을 이용해 대통령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의 대표성만 강조한다. 국회를 비난하고, 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역사를 재단하고, 국민을 테러리스트와 동급으로 만들고, 헌법적 기본권을 제한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국격과 국익을 땅에 떨어뜨리고, 가계부채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재벌의 이익만 챙기는 박근혜의 독재가 가능한 것은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만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정치적 정통성은 거의 대부분 박정희에 있지만, 대통령이 된 다음의 정통성은 선거의 승리에 있다(그래서 부정선거를 주도한 이명박과 국정원에게도 정통성의 일부가 있다). 박근혜의 폭주는 일단 당선되면 유권자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선거의 반민주적 특성을 활용하는 것에서 나온다. 특히 독선과 아집의 대명사고, 박정희로부터 독재의 통치법만 배운 것 같은 박근혜가 국회의원 및 후보시절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의 독재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은 이것 말고 하나 더 있다. 그녀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으며, 자신의 또 다른 본질이며, 현 집권세력의 본질인 시장경제주의에 대한 광적인 추종이다. 이들이 말하는 시장경제주의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대란으로 위기에 처했으며, 세습자본주의와 헬조선의 근원이 된 한국판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한국을 규정하고 줄푸세로 대표되는 시장경제주의는 보수우파의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하기에 박정희의 유신독재(정확히는 통치자가 민주주의와 헌법을 제한하는 칼 슈미트적 독재)와 일맥상통하면서도 선거제도의 반민주적 성격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막기도 힘들다.

 

 

 

 

 

 

이런 면에서 문재인 대표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박근혜와 그 일당의 독재적 행태가 아니라 선거제도의 반민주적 특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다. 이는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 헌법 개정과도 연결되며, 강자(부와 기득권, 엘리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정치·경제·사회적 평등을 최소화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로 자리잡도록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요구하는 첫 번째 조건부는 이로써 해결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야당부터 혁명에 준하는 변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특히 만악의 근원인 부와 권력의 독점과 세습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보수우파의 시장경제주의에 맞서 진보좌파의 가치를 명확히해야 한다. 시장경제주의(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인류의 종말을 걱정할 지경에 이른 지금, 선진민주국가에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줄이는 조치를 취하고, 전통의 좌파들이 정권을 잡거나 유력 정당의 대표에 선출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국익은 부의 재분배를 통해 국민의 이익이 커지면 저절로 달성되는 것이지, 시장경제주의 세력이 떠벌리는 낙수효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필자의 두 번째 조건이 나온다. 손석희가 극도로 피하는 이념(이데올로기, 거대담론, 정치적 정체성 등)은 정치경제적 가치체계를 이루는 기초이기 때문에 정치경제적 행위를 결정하며, 정당과 후보자가 공약과 정책을 세우고 집권한 이후의 실천을 강제하는데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다. 이념은 통치자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쉬운 짝퉁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지 못하게 만들며,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시위, 집회, 혁명)를 이뤄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도록 만들어준다. 

 

 

'을'이나 서민, 노동자 등을 대변하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리멸렬한 정당으로 전락한 것도 이런 이념적 지향과 정체성이 엉망진창이 됐기 때문이다. 보수 기득권화됐으며, 새누리당2중대라는 치욕적인 말을 듣는 것도, 그래서 박근혜와 그 일당들의 독재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외면하는 것도 그들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강자와 기득권의 이념은 국민의 여론도 무시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제1야당이 우측으로만 이동하려 하니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남발했지만 지키지 않는 공약와 정책의 홍수에서 보듯이, 현행 선거제도로는 당선되기 전의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과 정책의 이행을 담보할 수 없다. 특히 현재의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시장경제주의(보수우파가 주도하는)는 선거 기간 동안만 유권자를 속이기 위해 가면과 복면을 쓰면 당선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는 그들의 가치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국민은 속고 또 속을 뿐이다. 

 

 

문재인의 결정에 찬성하는 두 번째 조건부는 이로써 명료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스키외, 루소 등이 정의한 진정한 민주주의(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부와 재능, 도덕 등이 평등할 때 이루어지는 직접민주주의. 통치자는 피통치자와 유사해야 하며, 그들의 뜻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를 추구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재편하는 것이다. 세습되는 부와 권력에 반대하고, 헬조선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이 표를 줄 수 있는 그런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수정헌법의 내용부터 부자와 엘리트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유럽적이자 단군 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사회민주주의적 요소(정치적 자유의 원천인 사회경제적 평등의 강화로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제한하는)를 강화할 때만이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며, 정권 탈환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좋게 말해도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이지 평등주의적 진보정당이 절대 아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12.04 08:17 신고

    어떻게 되든 빨리 추스리고 단합해서 야권 통합화를 이루어야
    내년 총선에서 이길수 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절대 이길수 없습니다
    당권,당파 경쟁은 총선 승리후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2. 참교육 2015.12.04 10:55 신고

    건강 좀 회복되셨는지요? 좋은 글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민주청년 2015.12.04 14:29 신고

    문재인 대표님 정면돌파하시길 바랍니다..

  4. 불루이글 2015.12.05 08:59 신고

    안타까운 것은 문대표가 좀더 강한 어법들로 약자의 가슴을 울리는 정책들을 외쳐 주었으면 하는데 너무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원색적인 발언이 될지 모르겠지만
    부자증세를 통해 지금의 친재벌이 추구 하면서 실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민증세를 막아내고 편중된 부를 재편 해 나갈 것을 약속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라게 됩니다.
    일단은 안철수와 비주류 세력들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는 모습은 잘한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진보좌파는 자신의 정체성(이념)을 사회와 국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자본주의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대중매체 등이 만들어낸 결과들이 소수의 기득권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절대다수의 비기득권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거나 극복하는데 정치적 목표를 둔다.



민주주의와 대중매체가 보편화된 20세기 후반부터 사실상 폭력적 혁명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좌파는 정치행위를 통해 이념적 가치인 다양한 방식의 차별을 줄이고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줄여야 했다. 폭력 혁명의 필요성을 놓을 수 없었던 좌파의 투쟁방식은 설 자리를 잃게 됨에 따라, 진보라는 투쟁방식의 정치적 변화를 선택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그냥 시장의 확대에 불과하다)가 더해지자, 이념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공론장의 구조변동’이 이루어졌다. 공동체나 지역 단위의 공론장은 국가 전체와 세계를 거의 동시에 보여주는 대중매체의 속도에 의해 무너졌다. 인식의 출발점인 시각적 단위가 커지면 전통의 공동체는 너무 작아서 무의미해진다.



기본적으로 대중매체의 테크놀로지는 현실의 피폐함보다는, 꿈이나 희망처럼 좋아 보이는 것, 재미있어 보이는 것,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 대세(특히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드라마와 각종 쇼, 연예인 스캔들 등)를 이루고 있는 것 등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대중매체는 전파를 타는 콘텐츠가 시청자를 중독(인터넷은 재접속)시킬 수 있어야 이익을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대중매체는 시청자와 이용자들이 보기에 좋은 것, 재미있는 것, 복잡하지 않는 것 그래서 깊은 생각 없이 표피적인 인스턴트 쾌락에 빠져들게 하는 것들을 양산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치열한 토론과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정치적인 것들마저 몇 초 만에 판단할 수 있는 즉시성을 띠어야만 대중매체를 탈 수 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인터넷과 SNS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켰다. 단문 위주의 재잘거림인 트위터나, ‘좋아요’에 따라 글의 가치가 정해지는 페이스북, 말의 결핍을 불러오는 카카오톡 등은 정치의 몰락이나 정치철학, 즉 이념이 추구하는 것을 질식사시킨다. 정치는 늘어나지만 이념적 정체성은 희박해진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본질인 말(토론)이 메시지와 영상, 단문 등으로 대체됨에 따라 상징조작이 일상화됐고, 욕망과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선거의 승리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정치의 역할에서 치열한 토론과 냉혹한 현실 인식이라는 공익을 창출하는 과정이 힘을 잃었다.



이때부터 세상의 보수화가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욕망과 쾌락에 대한 상징조작이 난무하는 미디어정치가 이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상대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 보다 유리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가 갈수록 피곤한 것이 된다. 즉 쿨하지 못한 것이 정치가 됐다.



사회경제적 평등이 전제될 때 ‘자유의 왕국’으로서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좌파의 이념(전체화하는 경향과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는 국가의 특성과 함께 봐야 한다)은 무용지물이 됐다. 태생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방임적 자유를, 법이나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로 제어하지 않으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절대적 힘을 발휘한다.



헌데 이런 인식이 대세를 이루면서 강준만류의 오류가 발생한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와 제도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전제를 이룬다. 이런 현실 인식은 현재가 최선의 결과이고,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가장 보수적이다.





‘정치가 타협’이라는 강준만의 진단은, 폭력 혁명이 불가능해진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좌파적 이념을 정치적으로 풀어보려는 진보진영에게 끝없는 양보라는 정치적 타협을 강제하는 올가미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와 미디어정치의 약자인 진보진영이 좌파적 가치를 실현하려면 기득권을 인정하는 ‘싸가지’부터 갖춰야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이해가 생긴 이래, 이념의 다른 말인 정치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탄생과 함께 결정된 불평등을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 공익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후천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이었다. 동서양과 종교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행동의 황금률이나 사회적 정의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이성이 '계몽의 변증법'으로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를 욕망과 쾌락의 실현에 방점을 두면서 이념적 분할이 이루어졌다(프랑스혁명도 이념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시민권의 확대와 현대적 의미의 역사도 이때를 전후로 해서 이루어지고 정립됐다. 언제나 기득권의 이익에 봉사했던 정치가 공평, 공정, 정의, 평등의 구현이라는 철학을 되찾은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달라진 것이란 과학기술의 발전과 대중매체의 보편화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발전뿐이었다. 공간을 시간으로 점령하는 세계화란 이 두 가지의 지원 하에 정치에서 철학적 가치를 담고 있는 이념을 배제시키는 과정이었다. 마키아벨리적 추문을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린 것도, 정치를 마케팅으로 바꿔버린 미디어정치다. 한국의 경우 언론인(특히 기자와 앵커)이 정치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매체가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강준만식의 진보 비판이란 그 자체로 보수화를 의미한다. 대중매체가 주도하는 미디어적 시각에서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진보의 정답인데, 그것을 이루는 방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의 수준이 높다고 정치가 이념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차별을 조장하는 엘리트주의가 부활하고, 노력보다 능력이 중시되고, 결과의 평등을 강제하는 것들이 갈수록 힘을 잃는 부정의로 가득한 현실에서 국민을 계몽시키면 정치와 민주주의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준만식의 진보 비판과 시대 진단은 그저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언어적 유희일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정치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사후적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과정을 통해 모든 개인이 또 다른 시작을 할 때, 다음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출발을 할 때, 공정하고 공평한 경쟁과 공존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에 의해 균형과 견제가 가능하도록 사회와 국가를 제도화하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되, 어쩔 수 없이 참사가 일어나면 가장 민주적인 대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게 인류가 민주주의를 지배적 체제로 선택한 이유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삶에 찌들어 있도록 만들어, 풀뿌리 민주주의조차 불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20세기 후반부터 정치권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후반부터 정치권에서 이루어진 타협이란 우파적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달라진 것이란 20세기 후반보다 모든 면에서 불평등이 늘어나 풀뿌리 민주주의는커녕, 자식의 죽음을 대중매체를 통해 생중계로 보았지만 부모들이 목숨을 건 단식이 아니면 진상규명에조차 다가갈 수 없는 정치적 타협을 가장한 야합이 늘어난 것이고, 진보 지식인을 자처했던 자가 타협하라고 유족들에게 대목을 박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정치적 타협과 투쟁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철저하게 보수화되고 재봉건화된 세상에서 진보가 싸가지라도 없으면 무엇으로 버틴단 말인가? 진보에게 싸가지 없다고 욕하기 전에 진보를 싸가지 없게 만드는 대중매체와 극단의 불평등이 초래한 현실의 부정의함부터 제대로 인식하라. 역사상 최고의 추문으로 유명해진 마키아벨리적 접근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싸가지 없는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싸가지다.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가 말이라는 것을 되살려내고, 보수진영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없어 상황에 따라 변신하는 기회주의적인 집단이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욕망과 쾌락을 잘게 나눠 분할해서 지배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인류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하기 때문이며,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최종적 결과의 불평등을 끊임없이 최소화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 필요한 것은 이념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며, 유시민처럼 싸가지가 없어도 정치의 본질이 말에서 출발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행동은 말보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고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내몰았다는 것이 판명난 지금, 보수가 토론을 피하고 대중매체를 동원해 상징조작에 전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 비판에 적용해야 할 것을 강준만 교수는 진보에게 적용했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대중매체 인터뷰와 기사와 칼럼 등을 기준으로 하면. 즉 강준만은 더 이상 진보 지식인이 아니라 보수 지식인이다. 세상이 변했다고? 아니, 더 나빠졌을 뿐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아우성치며 시끄럽고 싸가지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중용투자자 2014.10.01 08:50

    진보,보수,중도 이런 프레임에 가둬두고 판단을 한다면 어떤 사람도 피해갈 수 없을 듯합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 태봉 2014.10.01 11:20

      제 개인적인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이 세상은 결국은 각자가 프레임을 통한 세계를 보고 경험합니다 그래서 중요한건 프레임의 내용인 이념적 가치관,세계관의 정확하고 바른 정립이 우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재벌 ,정치,미디어권력 등 기득권세력에 의해서 중도,보수,진보라는 개념이 잘못 인식되고 있습니다 늙은 도령님이 말씀하였듯이 가치와 보존,국익추구가 보수일진데, 사익에 눈이 먼 수구를 보수로 잘못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프레임에 대중들은 쇄뇌되어 있어서 그들은 그들을 잘 이용해 먹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각자의 개인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수구는 사적이익에 몰빵하므로 수구는 수구식으로 행동일치가 가장 잘되나 봅니다ㅋ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넘이 재잘거렸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01 22:31 신고

      이념적 깊이란 말과 행동의 일치를 불러옵니다.
      최소치가 아니라 최대치로요.
      정치적 기술만 늘뿐, 이념적 이해가 부족하면 정치는 언제나 기득권의 놀이터가 됩니다.
      국회에 다양한 계층의 정당이,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집단의 일원이 진입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합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것들이 이루어집니다.
      헌데 거대 양당체제에서는 둘만의 이해만 일치하면 됩니다.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해도 그들만의 이익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어서 그 과정에 국민이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01 22:34 신고

      그럼요, 태봉님.
      이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확고한 실천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기득권이 만든 논리인 타협이 최상인줄 압니다.
      보수는 바꾸지 말고, 최대로 해도 기존의 것들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주장합니다.
      이미 벌어진 차이는 줄어들지 않거나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진보는 이것을 정치과정을 통해 줄이고, 줄이고, 그러다가 역전도 가능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념적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승자와 강자의 세상만 계속됩니다.

  2. 지나는독자1 2014.10.02 09:58

    늙은도령님, 또 다른 지식인, 운동가들은 말고, 시민단체도 말고, 지금 야당 정치인들은 야당이 중도층 표를 얻어 집권"하려면 반드시 강교수 이야기를 새겨들어야 할 듯.... 싶네요. 진보가 되었건 좌파가 되었건 싸가지가 없으면 다른 건 몰라도 '집권'은 절대로 못합니다. 강교수 말은 쉽게 말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쟤들은 더 심하잖아'라고 말하는 건 집권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게 또 강교수 말이라고 봐요.^^

    • 늙은도령 2014.10.02 14:17 신고

      강준만의 진단은 단기적 승리를 위한 하책입니다.
      강준만은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수준이라고 하면서, 국민을 끌어올리야 한다는 방법으로 방법적 접근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또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보수와 진보 모두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방법적으로는요.
      그래서 결국은 이념, 즉 가치를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강준만의 진단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그는 기본적인 것을 놓쳤습니다.
      기본이 흔들린 성공은 일시적이고 어쩌면 영원히 집권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진보보고 보수를 따라 하려면 절대 못 이기지요.
      진보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강준만은 반대로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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