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하루를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 여기저기서 채이고 밟혀 구겨진 하루, 너무 많이 구겨져 그대로 잠들 수 없으니, 매일 밤 다려서 다시 펴지 않으면 내일 또 일어날 수 없을 테니..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를 적었던, 제대로 살고 싶지만, 최소한이라도 비상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초라한 하루, 그래서 거짓말이라도 변명해야 했던, 희망했으므로 더욱 더 커진 절망 속에서 구구절절한 일기란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이 일단이라도 드러나리라.. 

 

거짓말이 시들은 어스름에/ 쉬이 머물던 약속은 먼저 자릴 뜨네요/ ㅡ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는 일기였기에 어둠이 깊어가는 그 어스름에는 시들어버리기까지, 자신이 자신에게 했거나, 타인이 자신에게 했던 약속은 잠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성에가 낀 창문에 불어 넣은 입김은/ 생각보다도 금방 식어 버렸죠/ ㅡ 밖으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그래서 창문에는 날카롭게 갈라진 성에가 끼었는데, 별빛이나 달빛이라도 보려고 자신의 입김으로 성에를 녹이려는데, 초라한 하루를 선사한 꽉막힌 현실에, 그 냉정한 한기에 자신의 입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리라, 더욱 두꺼워졌을 성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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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심죠/ 내가 이어 붙인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렇게 야위어 가는 내 마음은 이 넓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심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절망, 매일같이 구겨지는 하루하루, 성공은커녕 한 움쿰의 마음조차 간직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기우고 이어 붙여 보았지만, 화창해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이 광할한 하늘 아래서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ㅡ 너와 나, 우리는, 청춘이라는 특권이 너무나도 무겁고 버겁기만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향해 달려온 것일까요? 너와 나, 우리가 키워온 것이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른 것일까?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ㅡ 창에 성에가 낄만큼 추운 것을 고려할 때, 온도가 시작되는 곳이란 희망의 원천이거나 생명의 기원 같은 것일 수도, 너무나 적은 1%의 희망 때문에 99%에 이르는 압도적인 절망을 참아내며 매일밤 다려서 펴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던 초리한 하루로 온도가 시작되는 곳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바라보고 갈구했던 곳인데, 그곳을 향한 시선마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꿈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절망의 크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보여.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까지 잡았던 손을/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렸어요/ ㅡ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이란, 살을 가르는 상처가 전해주는 줄 정도의 아픔까지 참아가며,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손마저, 그 인내의 고통마저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릴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닐까? 1%의 희망이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너와의 손을 놓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포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은 무대가 아닐까?

 

손장갑을 끼지 않아도 움켜쥘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ㅡ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누구도 내 꿈을 알아주지 않아도, 1%의 희망마저, 그 꿈꾸는 마음마저, 너무 일찍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성에와 대비되는 손장갑, 손에 난 상처는 살을 에는 한기로 더욱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손장갑을 끼지 않고 무대를 향한 꿈을 놓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네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묻죠/ 네가 이어 받은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지칠대로 지쳤고, 그래서 구겨질 대로 구겨져 갈수록 야위어 가는 너의, 어쩌면 이승윤의 동료일 수도 있고, 무대를 향한 그만의 꿈일 수도 있는 너는, 그 간절한 마음은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너무 쉽게 손을 놓았으므로, 그것이 내가 흘린 눈물을 이어 받아 함께 울었던 너의 눈물은 어디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이 화창한 하늘 아래에 어디에? 내 눈물을 묻는 곳, 바로 그 옆에라도..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글을 좋아하시는 분은 영상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영상에 좀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글로도 충분히 풀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척이는 허울

 

 

잉크가 마른 경전 위에는 완장을 두른 경구들/ 어머 난 난시가 있어/

 

(모든 일신교의 특징이 최고존재자이자 전지전능하며 절대자이며 창조자이고 모든 우주를 창조한 단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이런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주장을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며 비판했지요. 최초의 원인으로 소급해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 충먼하고 완벽해야 하는 존재로 비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에 선행하며, 영원불멸이며, 어디에나 편재해 있으며, 모든 일어나는 일들에 자신의 뜻이 배경으로 자리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잉크가 마른 경전은 모든 신자와 비신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믿음을 강요하지요, 마치 완장을 찬 것처럼.   

 

모든 종교의 경전들 만큼 수많은 경구로 넘쳐나는 책들이 니체의 <짜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입니다)

 

헌데 자신은 난시라니, 무조건적인 필연적인 믿음과 복종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보면 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전체 세상이 아닌 성경과 성전에서만 절대적이고 구원자이자 사랑받고 구원을 주는 존재인지 물어봅니다.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더욱 많은 기여를 하려면 성서와 성전밖에서 사랑과 구원을 주는 실천가가 되야 하는 것이 아니나며 묻는 것이 나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들고나온 성서제일주의, 성서와 예수무오류설 등도 완장을 두른 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잉크가 말랐다는 것은 각각의 종교가 오래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무지 변화할 줄 모르는 그런 고집불통으로서.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뒤척이는 허울은 완장을 두른 경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난시이니 경전이 아마도 뒤척이는 허울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고요 완장을 두른 경전은 너무너무 싫으니까. 지척에는 조울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마음 상태가 아닐까요? 뒤쳐지는 너울은 믿는 자들처럼 하늘을 향해 가지 않고 지상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최근의 일부 기독교도들처럼, 또는 경전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안은 채 자신의 이익과 탐욕에 물든 광신도들로 인해 서울이 미쳐갈 수 있고, 믿음 자체와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각자도생과 욕망들의 충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빛을 잃은 거울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돌아보게 하는 반성과 성찰 기능으로써의 거울의 역할은 쓸모없어진 것이지요. 이것만 넘어서면, 그래서 위층에 오르면 거기는 햇살 가득한 곳일 수 있지요. 아니면 해, 즉 태양으로 상징되는 신은 아랫층, 즉 현실을 방관하고만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신이 함께한다는 데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악하고 추한 것들이 널려 있으니...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이런 이유들로 해서 미쳐가는 서울에서, 그 탐욕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또는 종교적 광신에 휘청이는 각각의 개인들을 살펴봐 달라는 것 같습니다. 눈 감았다는 것은 비신도들을 말할 수도 있고요. 

 

토성의 고리 손가락엔 안 맞아/ 천체를 접붙인 왕관을 가져와도/ 어머 난 얼굴도 작아/ 어쩌면 신이, 맹신을 요구하는 신이 이승윤군에게 영광의 반지, 즉 토성의 고리를 준다고 해도 맞지 않으며, 천체, 우주를 접붙인 왕관을 씌워준다고 해도 자신은 얼굴이 작아 맞지도 않는다는 것, 즉 완장 두른 경전을 따를 순 없다는 것,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시대의 품 속에 얼어붙은/ 우린 아마 여기서 얼어죽을 개인/ 얼어죽을 내일/ 많은 이들이 시대의 품 속에서 얼어붙은 채, 다시 말해 신앙적으로도, 세속적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해 천국이 아닌 여기서, 이 지상에서, 미쳐버린 서울에서 얼어죽는 것이지요. 지옥도 아닌 대한민국 수도인 이 서울에서. 청춘을 헐값에 가져다 쓴 후에 냉정하게 버려버리는 거대도시의 냉혹한 본질에 개인은 참혹하게 얼어죽는 것이지요. 희망이라는 것의 의미로 쓰인 내일에 얼어죽을 것이니 절망의 상태에서 죽음을 맡는 것이지요.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관광지 사람들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는 이 도시에서/ 난 살아 아니 사실은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그래도 나는 살아/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나 이탈리아에 있는 고대로마의 도시들이나, 그리스 아테네 등을 보면 그 역사적 명성 때문에 살아는 있으나 좋았던 시절이 모두 다 사라진 퇴락한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살아있지도 않은 도시가 된 것이지요. 이승윤군이 말한 관광지는 정확히 확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난 이곳에서 살고 있어, 반쯤은 죽은 채로, 반쯤은 겨우 숨만 쉴 수 있는 생의 명맥만 유지한 채로, 과거의 영광에 족쇄 채워진 상태이지만 그렇게 지옥에나 있는 듯이 살아 있기는 해 

 

좋은 자린 전부 역사가 차지하고/ 우린 무덤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고/ 어제를 파낸 자리에 오늘을 묻어야만 해/ 그래야 내일이란 걸 살아/ 그래야만 내일이란 걸 살아/ 좋은 자리란 역사의 유물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역사의 무덤, 폐허처럼 쇄락한 이곳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으며,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후대의 사람들은 최악의 삶과 행복을 바쳐야 한다는 뜻, 역사의 유물들이 던져주는, 즉 관광객들이 흘리고 가는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어야 겨우 삶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뜻이지요. 많은 관광지들이 유물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까지 더하면 역사의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힘겨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역사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 왔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이 쓰는 돈 덕분에 먹고살 수 있으니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각종 유물들도 우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빚을 지기란 과거도 마찬가지. 게다가 후대의 사람들을 과거의 영광을 얘기라도 하는데, 그래야 도시의 유물도 관광객들을 맞을 수 있는데, 죽은 유물들은 후대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기억해주기는커녕 우리는 잊혀진 존재야, 관광객의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역전된 관계, 주민이 주인이 아닌 곳, 잠시 동안 들렀다 가는 관광객이 그래서 주인이지.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라는 표현은 정말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입니다. 관광객 또는 관람객에게 팔 그림이나 안내글, 역사책 등에 이곳의 주민들이 담기는 정도가 허용된 삶의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박물관 앞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친구녀석이 묻더라/ 세기가 다섯 번을 더 지나도/ 나 같은 놈은 여전하겠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걸려 있고/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 널려 있지/ 저 안에 자리는 안 그래도 얼마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헐값에 팔아/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팔아/ 관광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희망 없는 도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명성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시, 그곳의 주민으로써 화려한 비상과 절박한 탈출이란 불가능하겠지. 우리의 자리란 없어. 벽의 여백엔 관광객을 위한 작품이 걸려있고, 유적지에서 나오면 기념품들이 즐비하지. 그런 공간이 후대의 사람들이 삶을 가꾸어가야 할 공간인데 그것도 주민의 몫은 아니지. 헐값에 팔밖에야,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파는 영겁회귀의 윤회에 갇혀버린 것이지.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비록 더럽고 누추한 도시였지만 셈족의 모든 종교가 이곳을 거룩한 성지로 만들어놓았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과거의 유물을 직접 관찰하고 또한 역사의 전통을 실질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해마다 이곳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치적인 미래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보고 싶어 했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의 단합된 힘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거의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치 호텔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처럼 아무런 개성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오가는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www.youtube.com/watch?v=AOL2QknvnIQ

 

 

 

 

이승윤의 자작곡 중 3편을 선정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이승윤이라는 가수가 얼마나 잘 준비된 아티스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의 작사는 작곡 능력과 소화력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미적으로도 이승윤의 가사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만이 아니라 인간을 따뜻하게 끌어앉을 수 있는 탁월한 아티스트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픔과 슬픔, 고난과 고뇌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내면서도 아웃사이더에 머무르지 않고 좀더 성장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니 대단할 뿐입니다. 보다 자세한 가사 분석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보다 말이 좋은 분들은 영상으로 곧자 넘어가도 되고요.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삶은 원일까/아니면 구일까/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근데 나는 마름모야/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근데 나는 마름모야/여전히 삐뚜루 서 있지/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기도보다 아프게ㅡ세월호참사 아이들을 위한 노래

 

 

단 한줄도/쓸 수 없던/말들이 있었어

​기억한다는 말과/함께한다는 말은/펜보다 무거웠어

​눈물이 고여 있던 웅덩이에 들었던 하늘도/닦아내 버리면 자취를 감췄으니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마치 비밀인 듯이/모르고 팠던 건/매일 태어난 아픔들이야

​울먹이며 지는 석양아 이제 나도 서 있을게/네게 모든 어둠을 맡겨 놓지 않을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노래할게/기도보다 아프게/기억할게

 

 

 

 

게인주의

 

 

헤이 미스터 갤럭시/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착각은 말랬지/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별과 별 사이엔/어둠이 더 많아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헤이 미스 무지개/뭐 그리 혼자서 숨어 있어

폭우가 그치게/기다릴 필요 이젠 더 없어

얼굴을 내밀어봐/넌 이미 전 우주야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

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

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어느 결혼식 축가와 나머지 곡들의 가사 분석은 차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_0j9Im6PNgw

 

  1. 참교육 2021.02.03 07:47 신고

    저도 싱어게임 가끔 보는데..
    이친구 눈여겨 봐야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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