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틈이 나는 대로 산본의 1020세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그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치철학적으로 말하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체득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가 너무나 적어 보편성이 전혀 없지만, 이대생의 투쟁에서 볼 수 있었던 개인주의(자유주의적 성향)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토론과 합의(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일단을 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들은 저와의 대화에서 예의를 지켰지만 대등한 입장에서 얘기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장장 50년에 걸친 독재에 익숙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경험이 부족하며, 불평등성장보다는 빈곤에서의 탈출이 시급했던 6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시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8혁명의 1020세대가 그랬듯이 이들도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생태·환경·먹거리 같은 삶의 질에 관심이 많은 탈물질주의적 성향(N포세대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하는 반칙과 특권의 신자유주의를 뒤엎는 체제혁명의 기본조건)을 드러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반대해 10대의 소녀들이 촛불집회를 기획한 것도 이런 성향이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조기숙과 정태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참조)도 있듯이,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이들은 탈물질주의의 원천인 진보적 자유주의와 상당 부분이 겹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한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의 불평등과 취업대란, 환경오염, 권위주의로의 회귀, 위계서열 강조 같은 헬조선에 직면하면서 진보적 성향이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헬조선을 탈출하는 모토 중 하나가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인 것도 이들의 절망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적 성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핵심인 소극적 자유(천부인권이 대표적, 국가와 정부의 개입 최소화)보다는 인권, 평등한 자유, 헌법적 권리, 환경과 생태 보존, 보편적 복지의 실현, 소수자 권리 인정, 노동시간 단축, 축제처럼 즐기는 집회, 수평적 네트워크, 시민주권 같은 적극적 자유(사회적 합의와 헌법이 보장)에 친화적인 성향을 공통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등에서 독재적 행정을 남발하는 대학측에 맞선 투쟁과 1020세대가 많이 참여하는 촛불집회 등에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즐거운 이데올로기와 탈물질주의적 성향에서 나온 1020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40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이런 특징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20대의 눈으로 1020대를 얘기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68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구조'는, 거품경제가 붕괴한 1991년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은 일본 사회다. 거품경제의 붕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인생 모델'(일본형 업적주의)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제 대기업은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이라는 '일본형 경영'을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중산층의 꿈'이 붕괴되어 가던 시대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태어났다(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인용).





노무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거품과 벤처거품, 카드대란을 물려받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임계점에 다다른 시점에 임기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했기 때문에 (지지층이 소수였고 국민의 의식에 성장에 대한 환상이 여전했음에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중동과 사이비 지식인의 왜곡과 조작으로 당시에는 부정됐지만, 현재의 20대는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에 대통령 선호도에서 노무현이 박정희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고, 이명박근혜 9년을 경험한 지금에는 50대까지 이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복지를 쟁점화함으로써 오히려 지지기반을 축소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경제적 개혁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중산층의 지지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좌우균열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이 지지자를 잃으면서까지 비전 2030을 내놓고 복지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는 발전주의와 복지주의라는 경제적 균열이 단기적으로는 진보진영을 소수로 만들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결과) 노무현 정부 5년간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복지주의의 등장으로 발전주의와 대립하면서 약한 균열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전근대적인 지역균열을 근대적 의미의 좌우균열로의 이동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두 번째 변화는 탈근대적 현상의 출현이다. 근대적 시장과 국가를 둘러싼 경제균열 외에 탈물질주의 대 물질주의의 균열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조기숙과 정태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을 고도성장이 박정희의 신화적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과 상당수의 기성세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신분이동성이 협소해진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1020세대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1020세대 중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탈물질주의적 성향은 N포세대의 등장(경제 후퇴와 저성장시대의 진화심리학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과 그에 따른 삶의 모습에서 1020세대의 지배적 특징임이 입증됩니다. 



노무현의 추구했고, 문재인과 유시민 등이 발전적으로 계승했으며, 1020세대는 체험적으로 습득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한 87민주항쟁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시민주권의 단계가 참정권에서 복지권을 거쳐 자치권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정부와 자본, 시장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자치권이다. 잘살고 성공하는 것보다는 자유와 행복이 중시된다).  





특히 선거연령이 16세까지 내려간다면 87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더욱 빨라질 것이며, 헬조선의 탈출도 빨라질 것이 확실합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기성세대인 필자가 복지권이 실현된 '사회적 권리'에 집착하는 것에 비해서, 1020세대가 탈물질주의적 자치권에 보다 집중하는 것도 경험(공기처럼 주어진 민주주의)과 환경(불평등과 환경오염이 심각하며,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입니다. 



필자가 촛불혁명의 목표로 조세정의(복지권 실현의 거의 모든 것)와 세대교체를 울부짖는 것도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많은 1020세대들에게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해 불평등과 차별을 극대화시킬 4차 산업혁명의 폐해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지배적 체제를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전환시키려면 1020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야 합니다. 촛불혁명은 이를 앞당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미국과 일본을 빼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비판하는 반기문이 대선에 나서려고 하는 것처럼, 기성세대와 늙은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개 같은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려면 촛불혁명의 기저에 깔려있는 노무현과 1020세대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탈물질주의에 천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시장 참여와 상관없이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누리면서도, 네트워크적 연대(느슨하지만 상호 인정이 핵심)를 통해 자치권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에 이르려면 1020세대에게 보다 많은 발언권을 주어야 합니다.



각 당마다 25% 정도의 젊은이들을 무조건 할당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비례일 경우 순번도 당선안정권에 두어야 합니다. 이럴 때만이 1030세대가 정치권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기성정치인 위주의 대의민주주의와 균형과 견제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춰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토마토 2016.12.28 05:18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어느나라보다 현명하며, 현실에 눈이 떠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나라 같았으면 진작에 망했을 조건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이유가 현명한 국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 낭중지추 2016.12.28 08:43

    투표, 선거는 현재로부터 4년까지의 미래입니다 그것이 16세가 투표해야하는 근거입니다 16세에서 20세까지와 80세에서 84세까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노인들에게 그 기간은 의미가 크지않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래란 미래의 주역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기에 투표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90세 이상의, 과거가 더 중요한, 어르신들의 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12.28 20:39 신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직도 현역에서 노욕을 풀어내는 어르신들이 미래세대에게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12.28 10:32 신고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동감입니다

  4. merryjanet 2016.12.28 10:58

    선거연령을 16세~17세로 낮추는 것에 전적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10대의 사고가 진보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요인으로는 인터넷과 댓글 문화일 거라
    생각되는데 아직 토론문화는 정착되었다 말하기 힘든 정도입니다.
    토론이야 말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첨예하게 전쟁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힘이잖아요
    우리의 중 노년층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10대 20대들에게도 그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아 아직은 토론이
    자유롭거나 낯익지 않은 편이지만, 학교나 방송 혹은 다른 매체에서 젊은이들의 토론에 더 많은 참여를 보장하게 되면
    우리 청소년들의 사고는 더욱더 바람직하게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광화문처럼 큰 광장이 아니어도 유럽 도시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보이는 광장에서 큰 정치적 사안이 아니어도,
    어떤 이슈에 관해 자신의 소견을 표출하고 토론도 하며 대립하다가도 끝나고 나면 손잡고 웃으며 함께 일하는
    문화, 바로 민주주의의 힘을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에서는 일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5. 둘리토비 2016.12.28 22:06 신고

    전 특히 1020세대의 탈물질주의,
    그리고 특히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던 입장으로서 이들에게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조화로움,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 연대, 기초를 다지는 작업과 가치를 세움으로
    지금 촛불의 향연 너머에 있는 희망의 실제적 끈, 그리고 성취를 너무나 갈급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들을 격려하고 경청하는 자로 있고 싶네요~^^

  6. 생명마루 신림점 2016.12.28 22:11 신고

    포스팅 구경 잘하고 갑니다~

  7. STEP 1 2016.12.28 23:21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동감입니다.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같은 표를 인용하시는 경우 출처와
    통계자료는 여론조사 날짜 등 기타 통계관련 필요한 정보를 같이 계시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

  8. 따뜻한 연말되세요

  9. 참교육 2016.12.29 05:14 신고

    수구세력과 자본이 깨어나지 못하게 온갖수단을 동원해 마취시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그런 역할을 학하고있습니다.

  10. mangrove 2017.01.02 10:48

    글을 읽는 데 오래 걸리네요.. 생소한 단어, 탈물질주의 등등도 그렇고 내공이 깊으셔서 쿨럭...

    좀더 많은 1020 아이들과 소통을 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전 어두운 단면을 먼저 보는 성격이라...

    가끔 일본이나, 중국이나, 특히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도 많이 변화되고 훼손되고 가치를 잃어가지만 우리 만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이루는 핵심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의 철학과 사상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사회는 휘둘리게 되고 인간의 가치는 무너지게 되겠죠. 우리는 일제 36년을 겪으면서 개화를 했고, 우리의 것들이 철저하게 밟히고 왜곡 되어 왔습니다. 거기에 한국전쟁에 이 땅은 초토화되고 모두들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경제적 논리에 모든 것이 갖히고 훼손되어 왔으며, 지난 날 우리의 삶의 근간이었던 유교적 사상과 관습도 낡고 불편한 것으로 부정되었고 버려졌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운영 논리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과 사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은 폐전국이었지만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 냈으며, 중국도 경제 논리에 부상하고 있지만, 그 기반의 철학적 가치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에, 아니 생계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어쩌면 정말 소중 했을 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그냥"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든 지 근본적인 사상에 충실하면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가치는 훼손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땅에서는 기독교가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뭐 햄버거 좋아 하는 아이들에게 서당을 가르칠 생각은 없기에... ^^

    • 늙은도령 2017.01.06 06:45 신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우리도 변해야 하겠지요.
      미래는 미래세대의 것이니까요.

      현재의 체제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65~70세 정도를 기반으로 구축됐습니다.
      헌데 현재는 평균수명이 80~90세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청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첫 번째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TV세대를 넘어 인터넷과 SNS세대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TV세대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이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문화인류학과 진화심리학적 개념이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온 세대들이 용광로 안에 모여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답을 찾기란 정말 힙듭니다.
      제가 다방면의 공부를 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래야 변화를 알 수 있을 것 같고, 세대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는 유교적 가치의 일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교적 가치는 신자유주의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상당 부분을 폐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간 갈등은 무한대로 늘어날 것입니다.

      아무튼 어려운 얘기인데,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윗사람이 낮추는 것입니다.
      청춘은 경험이 없는 상황이기에 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만 기억하면 해결책이 나옵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유신독재를 경험한 내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 때 박정희가 떠올라 두려워하셨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일체의 비판도 못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중앙정보부와 권력기관의 감시가 되살아났다고 느끼시는 듯, 아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두려움을 표출하셨다. 

 

 

 

 

어머님에게는 박근혜를 보는 것 자체가 독재와 연결된다. 동아일보가 유신독재의 군화에 짓밟혔을 때 고모부가 해고된 것과 민주화운동으로 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조카가 멕시코로 이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느끼는 두려움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공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권력의 그물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샐틈없이 촘촘하다고 세뇌당했기 때문에 어머님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연으로 물러나면서, 병든 아들의 분노와 격정적인 표출을 걱정했다. 아들이 기자 생활을 하며 민주정부의 지도자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할 때 두려움이 없었던 어머님이었지만,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오르자 무의식에 자리했던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일제시대에도 일본 학생들과 싸웠던 어머님이셨고, 큰 오빠는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통역사로 들어갔다 한국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협상에 분노해 통역사를 때려치울 만큼 명문가문의 후손이었고, 남편은 한국전쟁의 공훈으로 무공훈장을 받았고 22년 간 군생활을 했음에도,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자 두려움을 표출했다. 

 

 

이 땅의 수많은 노인들은, 자유와 평등에 관한 한 박정희 시대를 일제시대에 비견될 만큼 암흑기로 인식한다. 일제시대에 만연했던 가혹한 수탈은 줄어들었고, 동족상잔의 전쟁과 완장 찬 좌우의 폭도들, 미군의 무차별폭격 등으로 수없이 많은 피난민과 주민이 살육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 시대나 주어졌던 정도의 자유만 누릴 수 있었던 것이 18년6개월의 유신독재였다.

 

 

수많은 청춘들이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는 박근혜 치하의 3년이란 아주 조금씩, 경제 파탄(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것이다)이 분명해진 지금에는 노골적일 만큼 폭력적으로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수많은 노인들이 침묵의 벽 속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님이 박근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치가 다시 공포와 연결되어 버렸다.

 

 

아버님이 남긴 쥐꼬리만한 군인연금과 집의 크기를 줄여가면서 세 아들을 교육시키고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이루도록 만들었던 어머님이 박근혜의 방문에 항의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수많은 교수들이 국정화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뉴스마저 회피하던 어머님이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이화여대생들이, 어머님에게는 가장 좋은 여자대학이고 명문가로 시집가는 것으로 각인돼 있는 이대생들이 서슬 퍼런 박근혜의 방문에 저항하는 것을 보며,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른 근원적인 공포를 이겨내셨다. 아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촛불소녀와 6.10항쟁의 학생들이 떠올랐지만, 어머님은 4.19혁명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유럽의 선진국가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노인들은 이런 사실을 체험할 수 없었다. 2~3세대만 지나면 온갖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압축성장의 수혜자(동시에 피해자)들이어서 독재가 산업화와 일치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생들의 저항을 TV로 지켜본 어머님처럼,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 전쟁은 독재의 망령에 시달렸던 노인 세대와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것을 체험한 세대 간에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박근혜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전쟁은 이념 전쟁을 넘어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박근혜는 이전의 대통령에게서는 찾기 힘든 무능과 무책임, 아집과 독선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키고 있다. 필자의 어머님처럼 가부장적 사고가 강한 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박근혜는 정치와 경제, 역사와 교육을 퇴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수없는 투쟁과 저항, 토론과 합의를 거쳐 이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남녀평등의 위업마저 퇴행시키고 있다. 

 

 

이대생들이 보여준 분노의 표출과 정의의 실천이 또래의 청춘들과 나와 같은 장년층에 던져준 희망의 메시지처럼,  필자의 어머님 세대에게도 묵직한 시대적 정신을 전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의 저항이 하나의 불씨를 넘어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횃불로 타오르리라 믿는다. 이대생 덕분에 87세의 노모가 다시 정치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약하기 그지없는 늙은도령의 건강도 다시 돌아왔다. 거리로 나갈 만큼은 안 되지만 이대생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큼은 된다. 임금, 이자, 지대(생산의 3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와 한쌍이다)에 관한 고전파경제학의 오류를 미국적 방식으로 풀어낸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해묵은 잘못에 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 무렵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에는 대단치 않아 보이더라도,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화여자 대학생들의 저항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대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굴하지 않는 청춘들과 함께.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1.01 19:04 신고

    저도 대견하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마취를 시키면 얼마든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착각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1.01 19:51 신고

      그럼요, 대한민국을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왔는데요.
      역사의 주인은 정부도 지도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이 주인이고, 역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급해진 박근혜가 이성을 상실했습니다.
      반격의 시점이 더 빨리 올 것 같습니다.

  2. 2015.11.02 02:4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1.02 05:42 신고

      BBC에서도 프라임 타임에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한국이 국정화를 강행하면 10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인 창피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 耽讀 2015.11.02 08:03 신고

    박그네는 확신범입니다. 국정화도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위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국정화는 종교진리에 가깝습니다. 타협과 협상 토론과 논쟁 자체가 없는 이유입니다. 역사교과서를 종교진리로 생각하니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끝은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11.02 08:37 신고

    무엇보다 건강을 다시 회복하셨다니 다행이십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라는 무리한 자충수가 결국
    남은 정권을 힘들게 할것입니다

  5. 바람 언덕 2015.11.02 14:08 신고

    저 젊은이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6. 글을 읽고 2015.11.02 19:58

    글이 포스팅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깊은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7. 불루이글 2015.11.03 04:24 신고

    해묵은 잘못에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때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 시작할땐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다.
    정말 희망적인 문구를 접하게 됩니다.
    도무지 꿈틀 거릴것 같지 않든 지성들이 눈을 뜨고 있다는 희망이 느껴 집니다.
    민주주의의 달콤함에만 취해 허약한 지성들이 조금씩 경석을 차리는 것 같네요
    정말 다행히 라고 여겨 집니다.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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