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순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냐?”

“네. 역천마곡이 아니라 검강인을 먼저 치겠습니다. 역으로 가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네가 의심하는 신비세력이 움직일 보장은 없잖아.”

“뭔, 얼어 죽을 신비세력? 그냥 아새끼들이지! 헌데 그 자식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날 건 없죠. 어차피 없애야 할 놈이니. 대신 그놈을 처단할 때 최대로 많은 인원이 직접 보게 해 신비세력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먼저 상대를 파악하자, 이거네.”

“그거 멋지다. 지피지기면, 즉 가죽을 벗기면. 백전백승이라, 즉 호랑이를 때려잡는다는 것이지. 허, 그거 정말 멋지네.”

“네 도혼 할아버지. 호랑이를 굴에서 끌어내는 거죠. 게다가 그 자리에 역천마곡까지 끌어들이면 신비세력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도 모습의 일단이라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거에요.”

“후후. 그거 신나겠군. 원 없이 싸워보겠네. 크크, 하하.”

“해서. 삼혼께서 역천마곡을 흔들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더 좋고, 좋지. 아예 뿌리 채 뽑아놓을게. 흐흐흐. 놈들! 다 죽었어, 이제. 이 도혼 어른님이 사랑을 듬뿍 안겨주마.”

“무영아. 그러면 천상천은 삼영에게 유인시키게 할 생각이냐?”

“아니요. 불혼 할아버지. 그것을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아저씨가 미리 안배한 사람들.”

“뭐? 주군께서?”



뜻밖의 말에 불혼과 도혼이 동시에 물었다.



“네. 아저씨가.”

“아, 그래서.. 역시, 주군이야. 그 혜안의 깊이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겠어.”



불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혼의 말이 이미 귀를 파고들었다. 헌데 무영의 말도 함께 파고들었다.



“그거야, 네놈 머리가 나빠서지.”

“네. 그래요. 정말 아저..”

“그렇지? 무영아,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불혼, 저놈은 정말 돌대가리가 분명해.”



도혼과 무영의 말이 섞이는 불혼이 정말로 돌대리가 됐다. 무영은 웃으며 끊겨진 말을 이었고, 불혼의 얼굴은 붉그락푸르락 했다.



“도혼, 너 이놈!! 내, 너부터 손 보고 말겠다!!!”

“할아버지, 제 말은 그것이 아니라.. 아무튼 정말 아저씨는 대단한 분이세요. 게다가 이런 상황을 예상해 삼영이 해야 할 일을 안배해 놓으셨으니 그저 감탄할 뿐이에요.”

“뭐? 삼영이 할 일까지? 어허! 허. 허허. 역시 불혼의 주군이시구나. 도혼 저 덜 떨어진 놈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 너겠지? 주군은 너보다 날 믿으셔. 착각하지마, 이 땡중아! 늙었다고 모든지 다 갖다 붙이면 되는 거 아니거든!”



대화가 여기까지 본말이 전도됐다. 무영은 맨 날 되풀이되는 둘의 말싸움부터 막아야 했다.



“그래, 너 잘났다. 너 힘쓰는 것 굵어서 좋겠다. 젊고 힘이 넘치지만 아무 데도 쓸모없어서 좋겠다. 우이구, 이것도 사제라고. 쯧쯧.”

“큭! 두 분 싸우지 마시고요. 일단 밥이나 먹죠. 그리고 준영형과.. 삼영이 한 가지 일을 해줬으면 해. 맨 날 어려운 일만 시켜서 미안하지만.”

“말만 하십시오. …주군.”



불혼과 도혼의 말다툼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준영이 공손하게 답했다. 무영이 준영이라고 말했다가 삼영으로 바꾼 것은 삼혼이 같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삼영으로 하기로 약속한 것이 떠올라, 얼른 말을 바꾼 것이었다.



‘그래도 주군이란 말은 정말 싫어.’

“부탁할 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며칠 자리를 비울 거야. 늦지 않겠지만, 그 기간 동안 삼영이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내가 여기 머물러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었으면 해.”

“어떻게 저희가 주군을 대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힘들 것 같은데요?”

“아니. 될 수 있어. 힘들겠지만 그 방법을 생각해봐 답이 나올 거야. 셋이서 생각하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럼, 나는 한 시진 후에 출발할게.”

“하지만 주군, 뭔가 단초라도 하나만 주시면..”

“셋이 모이면 생각날 거야. 삼영이 함께 하면 뭐든 못 하겠어? 그럼, 나는 준비할게.”








“혹시 이것 아닐까요, 대사형!”

“우리끼리 있을 때는 큰형이라고 부르라 했지. 뭔데?”

“네, 큰형. 다름 아니라 우리 셋이 모여서 무영 형에게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것 아닐까요?”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그러네. 네 말이 맞아. 그런 것 같아. 형, 안 그래?”

“허허, 철용이가 보통이 아니네. 우린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허허, 막내가 최고야.”

“헤! 형. 뭘 이정도 갖고.”



철용이 준영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야! 그러면 나는 그 정도도 아니다, 이 말이잖아? 이 노~옴 철용아, 이 예쁜 막내야.”

“켁! 헤헤.”

“하하하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곳은 무영과 류심환이 상승무공의 기초를 닦았던 무명곡! 무영이 삼혼과 삼영을 차례로 만날 때, 두 신형이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의 신형은 그 은밀함이 삼재나 쌍비에 못지않았다. 신형 하나는 육척을 넘는 장신에 어깨가 넓고 전체적으로 건장한 것이 남자인 게 틀림없었고 나머지 신형은 작고 동그란 어깨와 가녀린 허리, 길고 얇은 다리와 팔로 볼 때 여자인 게 분명했다.



“금강인가요?”



여자로 보이는 신형이 듣기만 해도 심신이 맑아지는 소리로 칠 척 장신의 신형에게 물었다.



“네. 그렇소. 당신은?”



그는 중저음의 음성으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고 다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네. 혜준 맞아요.”

“반갑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아마, 저곳 같습니다. 거기에 현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혜준임을 확인한 금강은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네. 그리로 가요.”



그녀의 말이 끝남도 동시에 두 사람이 무명곡의 동쪽 끝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곳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클클. 이런 어린 얘들과 함께 해야 한다니. 이거 참. 이 나이에 입장이 말이 아니야, 말이. 너 금강이라 했나?”



칠 척 장신의 거구였지만 머리는 감았으나 냄새가 남아 있고 삐쩍 말라 뼈가 다 드러날 정도 로 마른 강시 같은 사람이 금강에게 물었다.



“네. 금강입니다.”



그의 음성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담백함과 단아한 품위가 느껴졌다.



“어린놈이 늙은 티내는 느낌하곤. 클. 그럼 너는?”

“혜준이라고 해요. 할아버지는요?”



초롱초롱한 별빛 같은 눈망울로 혜준은 현성이란 존재가 마냥 신기한 듯 올려보았다.



‘허. 이렇게 크고 맑은 눈이. 그 안에서 헤엄도 치겠어. 원, 저런 눈이 있다니?’

“나는 현성이라 한다. 하지만 내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열 받으니까.”

‘이름을 얘기해 주고 부르지는 말라니?’

“그럼 뭐라 불러요?”

“험.. 음.. 에.. 그러면. 험. 어.. 그러니까. 험.. 에라! 그냥 현성이라 불러.”



그 또한 그들과 너무 많은 나이 차이가 커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칠십 년 세월이 너무 가슴에 맺혀 죽어도 할아버지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땅한 호칭이 도통 떠오르는 게 없었다.



“호호호. 그럼 사숙이라 할게요. 현 사숙님. 와. 그렇게 부르니까 참 좋다. 혜준은 그게 좋아요. 현 사숙님.”

“혜준 소저님이 그러시면, 저도 사숙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야! 넌 됐어 그냥 부르지 마. 필요하면 내가 놈이라고 부를 테니.”

“어머, 현 사숙님 그러는 게 어딨어요. 그럼, 금강 오빠가 맘 아프잖아. 그냥 사숙이라고 부르게 해줘요. 응? 나의 사숙님. 헤헤.”

‘응? 나의 사숙님… 이라고. 요 맹랑한 것 보라? 저 표정은 또..’



혜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에 견딜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그는 고금제일의 감정억제신공을 대성한 자일 것이다.



“혜준의 사숙님. 응? 그렇게 해줘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귀엽고 아름다운 거야. 에라. 한 번 망가진 것.’

“알았다. 너도 사숙이라 불러.”

“네. 사숙.”

“님 자 붙여.”

“네 사숙님!”

“와 이것으로 우리 사이의 관계가 정리됐네. 잘됐다. 그럼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맛있는 저녁 준비할게.”

“저. 혜준 소저…”

“왜? 금강 오빠.”

“저… 저녁은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왜? 내가 하면 맛없을 것 같아서? 아니야, 이젠 나 잘해.”



금강의 말에 혜준의 말끝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왕방울만한 두 눈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야, 놈! 니가 왜 밥을 해. 넌 빠져. 혜준…아, 네가 해라.”

“정말? 알았어요, 나의 사숙님.”



그렁그렁한 눈물이 쏙 들어가며 혜준이 해맑게 웃었다.



‘우와! 죽겠네. 지 사숙이래? 헐, 저놈의 표정하고는!’

“왜! 또 뭐! 야. 제발, 그 표정 좀 풀어..라.”



혜준이 눈을 약간 찌푸린 채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인가 부탁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알았어. 알았어.”



현성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혜준이 자신을 왜 그렇게 뚫어질 듯 바라보는지.



“야. 놈. 너도 같이 해. 대신 놈, 네가 장작 패 불 피고 쌀 씻고… 뭐, 그런 거. 잡일은 놈, 네가 해. 끝!”

“와. 잘됐다. 그럼 왕창 산해진미를 차려야지.”

“…네. 혜준 소저.”

“야. 놈! 젊은 놈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놈!”

“넵!!”

“호호호호. 오빠 그냥 같이 해요.”



그녀의 웃음은 정말 옥쟁반에 구슬 구르는 소리였다. 금강은 왜 선인들이 혜준 같은 웃음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어색한 세 사람의 만남을 부드럽게 만들려는 혜준이 노력이 가상할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허나, 그들을 볼 때마다 혜준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저렸다. 그들의 몸에는 천상천 네 호법의 희생도 함께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혜준은 며칠이 지나면 자신은 그들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온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렸다. 그녀의 옆에서 간도 보고 몰래 소금도 넣고 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도왔지만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과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한 가지 합공을 수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합공은 펼쳐질 수도 평생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수련의 결과가 거의 완성에 다다랐다. 그 순간이 오면 현성과 금강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해 완벽한 어둠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그것은 은형술을 펼쳐 숨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아예 그들의 삶 자체를 어둠에 묻어둬야 했고 일이 잘못되면 그들은 영원히 그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더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해 결국 임무의 완성은 두 사람의 완전한 희생을 담보로 했다.



그래서 혜준은 마음이 더욱 아팠고 상을 차리는 손에 자꾸 눈물이 떨어졌다. 해서, 혜준은 간절히 기원했다. 아예 최상의 결과가 나와 모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무영 오빠가 해내길 바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같은 것을 기원했다. 며칠만 지나면 자신들은 이제부터 존재하지 않는 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돼야 한다. 현성은 자신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무림 삼성의 제자로 선택된 이유도 천년 전설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전설만 믿고 기다릴 수 없어 삼성이 천하 기재인 자신을 보자마자 공동 제자로 받아들였고 최강의 전사를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 같았다. 이제 팔십을 넘기는 나이가 돼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운명은 아예 돌고 도는 것 같았다. 인간은 그 안에서 쳇바퀴 돌듯이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금강은 혜준이 너무 예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녀와 있는 동안은 바라만 봐도 좋았기 때문에 그 다음은 일은 그녀가 떠난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까짓 것 사나이 한 목숨 아닌가. 혜준 같은 사람이 나 하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무림이나 천하. 뭐 그렇게 대단한 것 대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까짓 것 정말 사나이 한 목숨 얼마든지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그녀가 곁에 있어 행복하고 너무 아름답고 눈부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금강은 이십 평생 짧은 세월이었지만 처음으로 행복이란 단어의 뜻을 알 것 같았다. 그녀와의 만남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어쨌든 그녀가 지금은 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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