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방송된 ‘미생’ 18화는 드라마적으로 볼 때 가장 극적이라 할 만큼 흡입력 있는 내용이 전개되었습니다.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올리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 최 전무의 라인으로 다시 들어가는 오성식 차장의 결단은 이제는 거의 볼 수 없게 된 직장상사의 아름다운 덕목을 보여줬습니다.





대기업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세 가지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하나는 직속 선배인 사수를 잘 만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팀의 운명을 결정하는 부서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부서들을 총괄하는 부문장(보통 전무나 부사장이 맞는다)에 이르는 라인을 잘 타야 합니다.



‘미생’에서는 대리로 대표되는 사수들이, 직급에 비해 너무나 많이 알고 팀에서의 비중이 상당히 크지만, 현실에서도 직속 사수(이런 면에서 볼 때 김동식 대리는 좋은 사수다)를 잘 만나는 것은 신입사원에게 성공으로 가는 첫 번째 토대입니다. 사수를 잘 만나면 정글이기 일쑤인 회사에 빨리 적응할 수 있고, 사수의 도움 하에 어떻게 해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사수의 능력이 좋으면 승진으로 가는 길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신입사원에게 방향을 잡아주고 맥을 짚어주는 사수는 등불 같은 존재입니다. 그 사수도 직속 사수의 도움 하에 그 자리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상호작용 속에서 낮은 단계의 라인이 형성됩니다.



신입사원이 성공할 수 있는 두 번째 운은 팀장(보통 차장과 부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팀장은 '미생‘에서처럼 업무를 따오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현실화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팀장일수록 이익이 많이 남고,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업무량은 적은 프로제트를 고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대기업의 경우 한 부문은 여러 개의 팀이 있어서 업무의 비중과 팀장의 능력에 따라 부문에 배당된 사업비 확보가 달라집니다. 흔히 말하는 업무추진비를 놓고 다른 팀장과의 경쟁에서 최대한 확보하고, 업무의 크기에 따라 능력 있는 팀원을 늘릴 수 있으며, 승진을 좌우하는 팀별 업무고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여러 팀으로 이루어진 부문, 즉 라인을 잘 타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팀장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팀장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실에서 팀장에 이르면 좋던 싫던 일정한 라인에 들어서 있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라인이 고정불변인 것도 아니고, 오 차장처럼 게릴라식 생존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미생’의 신입사원들처럼 부문에 대한 선택권은 팀장에게도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속한 부문이 회사의 주력이면 최상이고, 부문장이 본부장을 넘어 CEO까지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면 회사에서의 성공은 어느 정도(부장) 이상은 보장이 됩니다. 중간에 회사의 실적 악화나 사업조정에 따른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미생’ 18화에서 그려진 오 차장의 선택은 일종의 라인을 타는ㅡ라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보통 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종합상사라면 드물게라도 일어나는 일이기는 합니다. 오 차장의 선택은 최 전무가 승진하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에 올라탄 것이지만, 그 칼날이 너무나 예리해 희생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생’ 18화에서 보여준 오 차장의 선택은 직장상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덕목이지만, 그 위험성 때문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특히 프로젝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보일 경우에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선택입니다(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라인을 강화하기 위한 최 전무의 선택이다). 계약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올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팀의 운명을 거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하지만 승부수를 던진 전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존재하는 라인에서 자유로운 회사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아닌, 상시 구조조정이 난무하는 대기업에서 오 차장 같은 상사를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이고, 장그래 같은 뛰어난 계약직 사원을 팀원으로 두기도 힘든 일입니다.



참고로 정말 현명하고 유능한 직장상사라면 승진을 앞둔 부하직원이 있으면, 실적을 낼 확률이 매우 높은 일을 준비해두었다가 성사시켜 그 공을 해당직원에게 돌려서 승진을 관철시킵니다. 이미 진행 중인 업무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담당직원으로 배정해 승진을 이끌어냅니다. 



라인은 그렇게 일정 부분 강화되고, 당사자의 인사고과도 회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현명한 사수가 똑똑한 후배를 키우고, 그 후배가 영글어갈수록 사수의 승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렇게 끌어주고 밀어주는 상호 공존이 가장 현명한 회사 생활입니다.   





아무튼 ‘미생’ 18화는 오 차장과 장그래의 케미가 최고조에 이른 명국이었습니다. 권부의 핵심에서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2014년의 마지막에, 그나마 ‘미생’ 보는 맛에 한 주를 버팁니다. '미생'이 시즌제로 간다면 한 번은 꼭 한영이의 입장에서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물론 재벌의 수준에 이르면 전문경영인조차 일년에 오너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고, 오 차장과 장그래처럼 일하면 제 형제처럼 40대에 골병 들기 일쑤고, 제 친구처럼 돌연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 기업은 이익이 되는 한에서만 임직원을 데리고 갑니다.



오너의 가족이 아닌 이상 모든 임직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오직 실적으로만 말하는 기업의 속성상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대기업의 매력도 예전과 같지 않고, 무엇보다도 상시적 구조조정 때문에 안정된 직장이란 신화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창조경제니 유망산업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기업의 현실이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오 차장이나 장그래처럼 일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승진은 고사하고 40대에 중병에 걸려 구조조정될 확률만 높아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4.12.15 09:27 신고

    정말 대기업에서는 소속 1차 부서장을 잘 만나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첫 상사가 20년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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