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학을 정당화하는 기본적인 도덕적 주장 가은데 하나, 즉 개인의 이윤 추구가 동시에 공익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의혹에 싸였고 사실상 거짓으로 밝혀졌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인용  




미셀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그들이 밝힌 현대성이란 특별한 정형이 없지만, 시장경제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소의 통치로 최대의 경쟁을 이루어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을 말합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학파가 정립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국가가 시장경제(수출 포함)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부분을 시장 중심으로 재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는 국가 주도의 독점경제(히틀러의 우파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좌파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 시장참여자 사이의 완전경쟁을 극대화하도록 법과 제도,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면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정부가 할 일이란 시장경제가 가장 잘 돌아가도록 국가와 사회, 기업과 개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시장경쟁을 방해하는 것은 공권력을 동원해 제거하는 것입니다. 국가 전체를 시장경제에 가장 적합한 조직으로 만들면서도, 국민에게 기본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된 것입니다. 



관방학(내치학)과 국가이성 및 17~18세기의 정치경제학(고전파 경제학)이 적절한 조합을 이루면서 탄생한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질서자유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라 명명되는 것도 '최대의 경쟁을 위해, 최소의 개입을'이라는 구호가 국가의 부흥과 국민의 삶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거치면서 영미식 신자유주의로 바뀌닙니다. 이때부터 국민의 안전과 소득, 복지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가능한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따라 모든 것이 정열된 경제국가를 만드는 것으로 축소됩니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과 더 이상 사회의 도움은 없다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도와주던 보편적 복지는 사라지고, 소비자로 파편화된 국민은 시장경제에 종속된 채 끊임없는 경쟁과 퇴출을 반복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것이 일반화됐습니다. 





정부의 복지는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개인을 최단 시간 내에 시장경제에 재진입시키기 위한 재교육을 제공하고, 완전한 패자는 최소한의 삶만 보장해줍니다.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달로 전 지구적 시장이 등장함에 따라 영토 내에서의 배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은 더욱 축소됐습니다.



기술공학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를 촉진시켰고, 이에 따라 자본과 초국적기업은 노동과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전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국민 전체에게 기본적인 소득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 결과 부의 불평등이 계속해서 커졌고, 정부는 보편적 복지에 들어가던 비용을 시장경제의 극대화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정부는 또한 완전경쟁을 방해하는 것들을 규제 완화,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관세 철폐, 초저금리, 보조금 지급금지, 노조의 해체, 조세 개혁 등과 같은 방식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고, 보편적 복지는 선별적 복지를 축소됐습니다. 생존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을 높이는 것뿐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업무도 민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통치술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부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양산했고, 완전경쟁이 불평등경쟁으로 바뀌었고, 저축이 소비(빚을 내서라도)로 대체됐고, 부와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의 재정보다 훨씬 많은 부를 축적한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압도적인 힘은 시장경제에 반하는 민주주의의 요소들(조세정의에 의한 부의 재분배, 신분이동의 가능성 제고, 공정한 경쟁과 기회 제공 등)을 제한했고, 그 결과 과두정치에 가까운 최소의 민주주의가 보편화됐습니다.





마침내 새로운 형태의 차별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완전경쟁의 시장경제에 편입되는 것과 퇴출되는 것으로 1차 차별이 작동하고, 소득 능력에 따라 2차 차별이 작동하고, 소비 물량에 따라 3차 차별이 작동하고, 가족 전체의 소비 여력에 따라 4차 차별이 이루어집니다.



자유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시장경제 의존성이 높은 제한된 자유여서,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치적으로 확장된) 자유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시장경제에 참여해야 하는 제한된 자율성에 불과합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란 소비할 수 있는 자유, 즉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됐습니다.



이로써 생존선 이하의 삶의 자율성만 지닌ㅡ다시 말해 가난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잉여들이 양산됐고, 그들 중 일부는 시장경제에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거나, 시장경제에 위험한 군으로 분류되고 배제된 상태(도시의 게토, 난민수용소, 열악한 복지시설, 슬럼가 등)에서 총체적 감시를 받는 존재로 버려집니다.





선별적 복지란 이런 이유들로 해서 시장경제 탈락자에게 주어지는, 그래서 생존을 위한 소비 외에는 단 한 푼도 저축할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를 말합니다. 국가업무의 민영화와 함께, 국가의 역할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이 시장경제를 먹여 살리는 최후의 먹거리가 됐습니다.



석유(만능의 제품인 플라스틱)를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가 나올 때까지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것이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복지와 공적 부조가 줄어들거나 최소화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도 보장돼지 않습니다.



홍준표가 강행한 의무급식 중단과 오세훈 등이 주장하는 선별적 복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강화됐고, 최소한의 복지라도 받기 위해 저소득층은 보수정당을 지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제도화된 가난이 양산됐고, 소득원을 찾을 수 없는 개인들이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노예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무서움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가능한 시장경제 자본주의국가를 만들어놓으면 개개인이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인과 특권층을 비난해도 최소의 통치만으로 기득권의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엄청날 정도로 자유가 늘어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소비로 유혹되고 감시받는 자유(시장 의존적 자율성)일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에서 볼 수 있듯, 부분적인 교정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목숨을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소비자를 키우려는 것입니다. 생산은 자동화되고 외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얼마든지 아웃소싱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어, 돈이 없으면 생필품도 기본적인 서비스(특히 의료와 보건)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넘치도록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지독할 정도로 시장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기 이전에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구축한 체제의 노예부터 되는 것입니다(왜 가난한 사람들은 보수정당을 찍을까-1)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ppp 2015.06.11 11:37

    좋은글입니다 항상 감탄하고 읽고있습니다 퍼갑니다.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새정연이 몰락하는 과정을 복기해 보면 계층구조와 이념구조의 변화가 중첩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로는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 시발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1997년의 외환위기다.

 


수출 일변도의 압축성장의 폐해가 외환위기로 폭발하자,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돌이킬 수 없는 해부학적 외과수술이 단행됐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구조조정은 수없이 많은 해직자를 양산했고, 노동유연화의 본격화에 따라 노동의 몰락이 촉진됐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강화됐지만, 질적인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계층구조는 10 대 90로 악화되고 있고, 이념구조도 보수3 : 중도3 : 진보4에서 보수4 : 중도4 : 진보2로 재편되고 있다. 







현 제1야당의 갈지자 행보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여기에 이른다. 참여정부 후반부터 오늘의 새정연에 이르기까지 제1야당이 외연을 넓히겠다고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면, 계층구조의 90%를 이루고 있는 중하위층 중에서 중도(이중이념)와 합리적 보수 성향을 띠는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끌어들여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7.30 재보권선거의 참패로 이어진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과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추진이 가장 대표적이다.



시민이 개인을 거쳐 소비자로 변한 상황에서 공통의 정체성이 없는 계층들은 사실상 세대로 대체된 상태다. 계급적 의식을 대표했던 노조도 노동유연성이 대세가 됨에 따라 전통의 영향력을 상실하며, 한국노총의 경우 아예 보수화됐다. 대형사업장 노조들은 귀족화됐고, 정작 노조가 필요한 사업장은 비정규직으로대체됐다. 



여기에 성별의 차이(차별)와 지역적 환경, 학력과 이주민, 직종과 노동의 분화까지 더해지면서 중하위층 90%는 수없이 분열되고 파편화됐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삶정치적 영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는 반정치적 정서의 확대와 투표율 하락에 따른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졌다. 정치를 얘기하는 것조차 시대에 뒤쳐진 자들의 특징이 됐다.  



소비자로 떨어진 시민은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어떠한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그에 따라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정치경제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 없어 공통의 의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네트워크의 과잉은 네트워크의 무력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세력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때그때의 사안에 따라 단기적이고 즉물적인 이합집산만 보여준다. 



네그리와 하트가 꿈꾸었던 이합집산이 자유로운 수평적인 떼처럼 '다중'으로서의 세계시민적 네트워크는 이루어지지도 않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시민적 자유와 계급적 의식이나 공토의 이해를 구축하지 못하는 극도로 파편화된 소비자의 시대에는 유럽적 의미의 신좌파란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어색한 동거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형태의 네트워크적 유목민은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에 의해 여론 조작의 대상으로 최적화된다. 민주주의란 사회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정치적 자유와 각종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데, 정착하지 못하는 디지털 유목민은 신빈곤층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권리들을 제대로 행사하기 힘들다.



저임금 비정규직과 임시직의 젖줄인 잉여들이 포화상태를 넘어 삼포세대처럼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의 전 단계까지 추락을 거듭한다. 이들에게는 빈곤의 대가로 떠들어댈 수 있는 자유,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아예 진입을 거부하는 자유, 사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 기타등등의 자유들이 주어진다. 



1인가구와 빈곤가구의 증가는 평균수명의 확대와 중첩되며, 필연적으로 신빈곤층이 늘어난다. 청년 실업자의 증가와 교용 형태의 악화는 노인 빈곤과 낮은 수준의 복지, 저임금 여성노동자와 이주민 및 외국인노동자의 확대와 삼중사중으로 중첩되며, 세대간 갈등과 성적·인종적 차별과 저임금 노동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중하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스트레스와 만성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강화되며 계층간 이동이 최소화된다.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는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확대와 맞물려 최소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차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강화된다. 모든 분야에서 구조적 부정의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에 비해 상위 10%는 부와 기회의 대물림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1%의 특권층과 9%의 상류층을 이루며 두터운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중하위층이 이익 집단과 특정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1이라면 상위층은 10에 이르고, 최상위 1%는 20~25에 이른다. 



그 결과 상위 10%와 중하위 90%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벌어진다. 정치자금 제공과 각종 기부를 통해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고액의 광고비와 대규모 협찬 등으로 대중매체를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특권층으로 접어든다. 마침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1인1표가 1원1표로 대체되며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만큼 금권정치를 강화한다.



국가와 사회의 보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신빈곤층은 복지의 사각지대로 떨어지거나, 이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에 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이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결과물인 빅데이터가 구축됨에 따라 프라이버시가 축소된다. 감시받는 사람들이 기득권에 맞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중산층도 언제든지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류층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노후대책도 챙겨야 한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가족이 해체되고, 계층구조가 10 대 90으로 재편됐음에도 이념구조가 4 : 3 : 3으로 고착화되는 이유다.





여기서 진보의 가치가 정체성인 새정연의 중도와 보수화의 논리가 힘을 얻는다. 안철수 신당과의 통합과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화의 시발점이 됐던 신민주당 플랜이나, 신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당의 강령을 정할 때 4.19와 5.18 정신과 10.4선언 계승 등이 빠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도 마찬가지다.



헌데 새정연의 주류는 진보고, 고정 지지층의 대부분도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이들에게는 새정연의 보수화가 달갑지 않았고, 당의 정체성마저 약화되고 혼란은 가중됐다. 계파의 난립이 강화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이는 대여 투쟁이나 협상에서 연전연패로 이어졌다.



또한 고착화된 이념구조인 4 : 3 : 3도 진보세력을 대변하던 새정연의 쇄락으로 인해 4 : 4 : 2로 변화될 조짐마저 강화되고 있다. 새정연이 진보적 가치를 강화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된 정치적 리더십을 제시할 수 있으면 계층구조의 변화 때문에 진보의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음에도 새정연은 정반대로 간 것이다.

외연 확장은 고사하고 정치적 영향력만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참사 초기에 국민이 보여준 분노의 분출은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대한 사회경제적 평등과 민주주의의 강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참사 초기에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조중동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여야 모두에게 떠넘김으로써 정치적 프레임 설정해 전력을 다한 것이 이 때문이며, 그 결과는 정치적 접근의 원천봉쇄였다. 



새정연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요인이 다음 글에서 다룰 두 번째 요인에 휘둘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행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유족과 새정연은 이렇게 갈라졌고, 박영선 대표의 연이은 실족이 이어지며, 제1야당의 몰락이 역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진보정당들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새정연의 중도보수화는 진보 진영 전체를 무너뜨린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능함과 그에 대한 정치적 무책임이 겹쳐져 일어난 퇴행이었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놓고 새누리당과 일전을 불사한다면 고정지지층마저 잃게 되는 필패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고, 전략적으로도 이길 수 없었다. 



                                     


  1. 중용투자자 2014.09.19 08:22

    넘어야 할 산들은 많으나 이번기회에 바닥을 잘 다져서 위기극복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

    • 늙은도령 2014.09.19 14:59 신고

      네, 이번 연재를 시작한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것을 뒤로 미루고 이것에 집중해 글을 쓴 후 추가로 조사를 한 다음에 출판할 생각입니다.
      모든 순서를 바꿀 생각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09.19 13:04 신고

    언론이 제일 무섭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14:58 신고

      종편부터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런 다음에 MBC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그러면 자연히 무너집니다.
      방송부터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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