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언어와 문자, 도구와 기술발전의 역사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종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원시시대에도 그들 나름의 종교는 존재했습니다(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을 참조). 근대 이후로는 이성과 자본이라는 종교가 가장 막강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 둘과 손잡고, 또는 그 둘과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개의 종교가 집단을 이루며 거대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근대이성이 현대성으로 이어지면서 현대종교가 하는 역할은 갈수록 변질되고 있습니다. 특히 신도수가 많은 종교일수록 집단화 정도가 높아지면서 자본주의적 기득권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유권자인 신도수를 무기로 정부와 정당과의 거래도 서슴지 않습니다(다른 무엇보다도 로버트 퍼트남의 《아메리칸 그레이스》를 참조).



특히 대형교회의 세속화는 종교개혁 직전의 가톨릭의 타락을 떠올립니다. 그때의 천주교는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권력집단의 전형을 이루었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잉태된 고도로 치밀해진 추문정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고전 《데카메론》에서 나오듯, 수도원과 수녀원 사이에 고아원이 생길 정도로 가톨릭의 타락은 끝을 모를 정도였습니다(《데카메론》은 유럽을 초토화시킨 페스트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종교개혁 직전에는 천국행 티켓을 판매한 교황까지 있었으니, 원죄로부터의 구원을 명분으로 바벨탑 쌓기에 여념 없는 대형교회의 타락은 그때의 가톨릭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막상막하며 난형난제고 용호상박이며 도진개진입니다. 거대한 성전을 건설한다며 신도의 지위에 따라 헌금의 액수가 차이가 나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것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러다간 신학이 일수놀이의 경영학으로 바뀔 판입니다. 전국 곳곳에 자리한 대형교회의 프랜차이즈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재현을 위해, 성직자들이 합작해 전신을 성형시켜버린 21세기의 예수를 닥치는 대로 팔아먹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사업화는 세속화의 핵심이라 자본주의적 가치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신앙에도 가격을 매기는 행위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명의 추기경을 배출한 한국천주교는 바로 그 두 명의 추기경으로 인해 무서운 속도로 보수화되고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습니다. 주교회의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천주교의 보수화와 세속화는 대형교회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천주교 신자인 저로서는 예수와 전혀 다른 가르침을 말하는 두 명의 추기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야훼(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대량살상도 마다하지 않은 살벌한 창조자였다)가 모세를 구원의 목자로 선택한 이유는 99명의 양보다 1마리 양을 구하려 했기 때문인데, 이 땅의 곳곳에서 1마리 양으로 핍박을 받는 분들 곁에는 두 명의 추기경을 볼 수 없습니다. 이들 때문에 낮은 곳으로 임하지 못하는 이 땅의 예수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공허하고 허망하기까지 합니다. 





신앙에도 가격을 매기고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미국식 기독교를 벤치마킹한 것이 보수화된 대형교회의 타락을 이끌었다면, 천주교의 보수적인 퇴행은 두 명의 추기경이 주도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곧 이 땅에 임한 예수임을 두 명의 추기경은 실천적으로 입증해야 함에도, 칼 세이건의 말처럼 두 명의 추기경은 성전과 성서 안에서만 안주하려 합니다.  



종교와 사회가 만나면 피바람이 분다는 유럽 속담이 있듯이, 현재 이 땅의 거대 종교집단들의 행태는 세속화와 대형화가 너무 강해서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은 종교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자라는 이유로 종교의 세속화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습니다. 이명박에게 몰표를 주었으며, 문창극과 황교안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세월호참사에 소극적이며, 중태에 빠진 백남기씨를 외면하고, 일제의 만행에 면죄부를 발행한 위안부협상에 찬성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대형교회 위주의 기독교입니다.  



종교가 인간 구원과 사회 정의를 포기하고 세속에서의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변질되면, 반드시 대형화와 권력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신자 한 명 한 명이 돈으로 보이고, 신자수를 늘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합니다. 종교의 본질이 호도되고 세속화하는 지점이 신자수의 확대에 집착할 때 발생함은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음에도 이 땅의 종교집단들은 이를 외면합니다.





타 종교에 대한 폄하와 선교활동의 폭력성은 여기서 나옵니다. 종교와 신앙에 우위가 있다면 예수는 부처와, 또는 마호메드와 서열부터 정리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싸우고 죽이고 속이며 천상의 세계에서 세력을 넓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을 것입니다. 국가권력과 결탁한 경험이 있는 천주교와 기독교의 정치세력화와 세속화는 종교의 존재이유마저 말살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한 확장일변도의 대형화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사회에는 피바람이 불게 됩니다(유럽인들의 경험이 이것에 농축돼 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세속의 법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폭력과 테러로 변질되기 일쑤입니다. 천주교와 기독교가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욕망을 추구할 때 세상은 중재가 불가능한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세속화와 대형화로 대표되는 종교의 신자유주의화는 이렇게 세상을 핏빛 경쟁으로 물들게 합니다. 이념이 물러간 자리에 종교가 들어와 경쟁을 부추기고 전쟁을 선언하며 세속의 세계에서도 주인행세를 하는 꼴입니다(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야훼의 것은 야훼에게 바치라고 했고, 남에게 받고 싶은 대로 먼저 행하라 했습니다).  





어떤 종교도 지상에서의 부와 권력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구원에 이르려면 하늘에 부를 쌓으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가장 초라한 마구간 구유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고통 속에서 죽은 뒤, 가장 초라한 여인 옆에서 부활한 것도, 왕자였던 부처가 모든 부와 권력을 버리는 것에서 깨달음에 이른 것도 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줍니다. 



헌데 이 시대의 기독교와 천주교가 그러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으로 인해 구별지워지고 배척하고 다투는 것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종교가 할 일이란 피안의 세계로 사라지거나,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인류의 구원에 충실하는 것, 둘 중의 하나 뿐입니다. 바벨탑을 짓지 않고 낮은 대로 임하지 않는 천주교와 기독교는 위선이며 차별이고 치명적인 선동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의 존재가 문제였던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신을 들먹이고 팔아먹는 자들이 문제였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base 2015.02.23 00:21

    설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천주교 모태 신앙인으로 한국 천주교의 흐름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후 한국 천주교가 급속히 세속화되고 있으며 특히 서울교구는 그 정도가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약자와 병든자를 위해 몸소 부패한 종교인, 정치인에 맞서 실천적 사회 참여와 당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셨는데 작금의 수많은 성직자와 종교 지도자는 오히려 예수를 팔아 먹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조차 보수화 세속화가 진행되어 저희 성당에서도 최근 사회 교리를 강조하는 주임 신부님이 신자들과의 갈등을 빚고 있지요. 아무튼 걱정스럽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늙은도령 2015.02.23 00:58 신고

      네, 최근 들어 천주교의 세속화와 보수화가 문제입니다.
      상당수 주교들도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추기경이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앞섭니다.
      예수님을 어디서도 찾기 힘들어지고 있으니....

  2. 뉴론♥ 2015.02.23 06:04 신고

    설날 연휴 잘보내셧나염 전 기독교를 한때 다녔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고 있네염 이유는 다녀도 밑음이 생기질 않는답니다.

  3. 참교육 2015.02.23 07:12 신고

    자본주의와 종교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공존한다는 것은 이미 종교의 본질이 변절된 것이이고요. 이데올로기가 된 종교는 종교가 아니지요.
    종교에 대해 좀 더 많은 글을 생산했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23 18:12 신고

      사회 전반에 걸친 비판을 먼저 한 뒤 구체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가 친일파와 공안검찰들고 손을 잡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조금 더 공부를 한 뒤 본격적으로 비판할 생각입니다.

  4. 耽讀 2015.02.23 08:45 신고

    종교가 권력이 되면 어떤 비극이 도래하는지 중세교회가 증명합니다. 문제는 종교는 끊임없이 권력이 되려고 합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 늙은도령 2015.02.23 18:13 신고

      네, 문제가 심각합니다.
      종교는 신을 내세우기에 어떤 거침도 없습니다.
      자신은 구원받았다 이것이지요.

  5.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군요
    좋은글 너무 잘읽고 갑니다

  6. 꼬장닷컴 2015.02.23 09:48 신고

    맞습니다.
    신은 늘 그자리에 있죠.
    신을 빙자해 상업화하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도령님 늘 좋은 글 감사드리고 힘찬 한주 되세요..^^

    • 늙은도령 2015.02.23 18:14 신고

      신을 이용하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7. 랩소디블루 2015.02.23 11:02 신고

    종교인들도 요즘은 조금 그렇긴 한거 같네염.

  8. 공수래공수거 2015.02.23 11:28 신고

    맞습니다
    가면을 쓰고 신을 팔아 먹는 자들이 문제이지요

  9. 기독교와 천주교 덕분에 유용한 정보 잘보고갑니다
    요즘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10. 봄빛 2015.02.24 08:56

    그런 문제로 고민이 깊습니다.
    좀 깊이 따질라치면 믿음이 약해서라고..
    사탄 취급하는 그런 분위기도 싫고
    자신의 신앙만 지키며 살아갔던
    무교회 주의자들의 뜻을 알것같습니다.
    세상 곳곳에 썩은내가 진동합니다.

    • 늙은도령 2015.02.24 15:46 신고

      믿음이 약해서라면 믿음이 강한 자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온갖 불의를 그냥 넘기면서 무슨 믿음이 강하다고 하는지요?
      자신은 언제나 신의 가르침대로 사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믿음이 아닌 광기일 뿐입니다.
      신앙과 믿음도 그냥 무자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결코 무장적인 믿음을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서와 복음에 나오지 않는 주장을 합니다.

  11. 새해마노 2015.02.25 10:16

    종교는 나의 모든 것을 다해서, 믿는 그 분(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맹목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러나, 작금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 모든 가르침이 들어있는 성경을 믿지도 못하고,
    또한 가르침대로 행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생명이 살 수 없는 소금땅 같이 되어 멸망할 것이라고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늙은 도령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목자라 하는 자들 중에는 성경과 복음에 나오지 않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말씀과 같이,
    성경의 말씀외에 더하거나, 제하여 버린 것과 같은 것이므로,
    이러한 목자들은 결국 재앙이 더하여지고, 구원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목자를 따르는 자들도 또한 같은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대로 따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멸망할 수 있겠습니까?
    주변을 돌아보세요. 성경 말씀대로 구하세요. 찾아보세요. 그리고 두드려 보세요.
    당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복음을 전해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함께하시길.
    복 많이 받으세요.

    • 늙은도령 2015.02.25 14:39 신고

      그럼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하면 이런 세상이 될 수 없지요.
      다 함께 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부를 쌓으라 했고, 올바른 목자가 되라 했습니다.
      요즘의 종교는 이익집단처럼 행동합니다.
      주님이 가장 경계했던 것으로 그것은 사탄의 무리라 봐야지요.
      성경 어디를 봐도 거대한 권력과 자본의 바벨탑을 지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가장 낮은 위치로 이땅에 와서는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 가장 미천한 여인을 구원해 그녀로 하여금 부활을 증거하게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도 사랑 때문인데...
      요즘의 종교집단과 목자들을 보고 있으면.......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고 서민적인 성향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습니다. 역대 교황 중에 이처럼 소탈한 분도 없었지만, 빈자의 성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교황의 새로운 이름으로 정한 분도 처음입니다. 교황의 성품과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발언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미혼모 자녀의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에게 "사람들과 구원의 길 사이를 갈라놓는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하며,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교회는 거부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오늘날 초국가적테러와 시장경제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공동선이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며 "바티칸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에 관해 국제법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교황은 이 땅의 약자들을 만나서 축복할 것이며, 항상 낮은 곳으로 다니셨던 예수처럼 교황도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을 치를 것입니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사실 필자는 84년대에 한국에 방문했던 최초의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2세를 만나기 위해 각 지구에서 선발된 청년 대표로 장충체육관서 일어나 교황을 향해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문제를 소리쳤습니다. 장내는 일순간 술렁거렸지만, 안기부 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 해당 청년을 연행하려 했습니다. 분위기가 팽팽해지며 그 청년이 끌려나가면 우리라도 말려야 하는지, 그래도 교황이 지켜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우 복잡했는데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청년을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행사 때였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갔는 듯했으나 3부행사가 진행됐을 때 자리를 비운 그 청년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물론 교황이 행사가 끝난 후에 선처를 호소해 풀려났지만, 그 이후로 청년이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언론이 완전히 통제된 상태라 그 후의 일을 추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두환 군부독재 하에서는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서 많은 일들을 하며 큰 희망과 위로를 주고 갈 것은 확실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7월재보선 이후의 정국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붕괴했고, 방송들의 선정적인 과잉보도로 상당수 국민이 세월호 피로감에 젖어들었고, 방송들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과 각을 지려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JTBC도 힘이 딸리는 형국이고, 뉴스타파는 권은희 관련 의혹 보도 이후 다른 독립언론들의 영향력까지 끌어내리는 악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언론의 본질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던 KBS는 조금씩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고, MBC는 종편화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TV조선과 채널A는 북한전문방송과 유병언 전문방송 및 새누리당 방송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MBN은 모든 뉴스를 선정적으로 변형시키는 해적방송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통신사인 뉴스아이는 종편이 다루지 않는 정부 편향성 보도들에 열을 올리고, YTN은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내용은 단신처리하고, 유리한 것은 부각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최근 전국을 여행했던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방의 음식점은 거의 다 TV조선을 틀어놓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용인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시민단체는 이미 힘을 잃은지 오래고, 아무런 아젠다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들도 현재의 질서와 체제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정부를 비판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이런 현실에서 대한민국을 보다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정의롭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레임덕에 처했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거리 몇 곳에서만 촛불을 들 수 있을 뿐이서, 집권세력은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네티즌들의 아우성이 넘쳐나지만, 비정치적 사안에서만 효과를 볼뿐, 기존의 체제를 개혁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린세상에서 닫혀버린 여론만 무수히 사이버 공간을 휘젖고 다니며 격한 감정만 배설하고 다닐 뿐입니다.  



군대의 문제와 폐해에 대해 많은 것들이 방송과 언론을 타고 있지만, 군대라는 조직의 존재 목적을 생각하면 변할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구축되고 군이 완전히 민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군대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현 집권세력과 족벌언론들은 북한의 호전성예측가능한 대응을 먹고 사는 관계로 지금보다 나아질 것을 바라는 것은 기대난망입니다.  





그렇다면 야권과 시민단체, 국민들을 한껏 들뜨게 만든 교황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 다음에는 어떤 전략이 있는지, 야권이 총 궐기해 집권세력과 목숨을 건 건곤일척의 투쟁을 할지,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진보 정당들이 국민을 움직일 수 있는 천하의 묘책을 덜고나올 수 있을지, 너무나 큰 실책을 벌였고 회복불가능한 피해를 제1야당에 입혔지만, 안철수에 이어 박영선까지 모두 다 식물 의원으로 만들면 제1야당의 야성과 리더십은 어디서 찾을지, 모든 것이 안개 속으로 기어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합니다.



교황이 세월호 참사와 군대 폭행살인 등에 대해 지속적인 발언을 할 수 없는 일이며, 정진석 추기경만큼 보수적 성향이 강한 염수정 추기경이 강우일 주교처럼 집권세력과 대척점에 설 리도 없습니다. 교황 또한 추기경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어서 교황이 돌아간 다음의 천주교 지도부가 60~80년대의 모습을 되찾을 수도 업습니다. 우경화될 대로 우경화된 현재의 한국에서 진보적 가치를 얘기한다는 것은 일부 사이버 공간이나 인문학 강의에서나 가능합니다. 



교황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국내에 있을 때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기내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으니 그때서야 교황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강우일 주교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를 통해, 세월호 유족들을 통해, 하이에나 같은 언들을 통해 먼저 흘러나올 수는 있지만, 현 집권세력은 그것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현 집권세력의 폭주를 저지해야 하는 정당과 단체 등에서는 교황이 떠난 뒤에 어떻게 하겠다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황이 박근혜 머리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회의 다수당을 이길 만큼의 투표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황의 발언은 비교할 수 없는 위로가 되고, 끝까지 투쟁할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줄지언정, 현 집권세력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대안과 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들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야권과 지식인들이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란 그럴 때만이 존재의 이유를 획득할 수 있고, 정당정치가 유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됩니다. 종교가 정치를 대신할 수 없고, 교황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황의 방문이 이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밀알이 되게 하려면, 그에 앞서 야권이 비옥한 토지가 돼야 합니다. 



제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교황이 방한 중에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 이후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황의 방안 중에 확실한 것을, 그래서 그분이 떠난 뒤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내고, 국민이 그것에 도움받아 세월호 특별법을 유족의 뜻대로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론7 2014.08.15 10:31 신고

    잘보고 감니다. 좋은하루되세염

  2. 참교육 2014.08.15 12:12 신고

    교회는 이미 예수님이 떠난 지 오래됐습니다.
    교황님을 영접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 있는데... 왜 그분은 멀리하고 예수님을 조금 닮은 교황만 바라볼까? 교황을 쳐다보는 이들이여 당신 곁에 잇는 예수님부터 영접하라.
    아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 늙은도령 2014.08.15 21:23 신고

      그나마 예수님을 가장 닮은 교황입니다.
      우리가 교황으로 봐야 할 것이 바로 낮은 곳으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교황으로부터 봐야 할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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