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국정자문기획위원장인 김진표 의원이 종교인 과세를 2년 간 유예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김진표가 과세를 유예하는 이유로 든 것이 몇 년 전에도 우려먹은 것이라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종교계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김진표 위원장의 법안발의는 조세정의를 바로세워 '국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뿌리 채 흔드는 소탐대실의 전형입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의료비 걱정없는 세상'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세정의의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한데, 종교인 과세 유예는 이것과도 상충한다는 점에서 득보다는 실이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문통에 대한 국민의 높은 신뢰는 공약한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라면, 국정자문기회위원장의 종교인 과세 유예 대표발의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는 단초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것이 여소야대의 정국을 돌파하는 최고의 카드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일부 종교계의 표를 의식해 종교인 과세를 또다시 연장한다면 더 많은 표를 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의 표를 의식해 국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저버린다면 민주당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마저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박기영의 임명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데 종교인 과세마저 유예된다면 당정청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가워질 수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지지층 결집에 따른 야당들의 지지율이 높아지겠지만,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그들의 약진을 걱정할 만큼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인물난에 허덕이는 야당들에 비해 높은 인지도를 지닌 주자들이 많은 민주당이 종교계의 불확실한 표를 구걸하기 위해 상당수 유권자를 등돌리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할 이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누리당 2중대 소리를 듣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김진표 의원은 종교인 과세 유예 법안을 거둬들여야 합니다. 국정자문기획위원장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면 촛불혁명의 주역들인 깨시민들을 믿고 가십시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모든 국민에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종교인 과세 유예가 이것에 합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칼 세이건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했던 질문을 이용해 김진표 의원에게 물어봅니다. 



칼 세이건 ㅡ 하느님은 성서에서는 그렇게 뚜렷하면서도, 이 세계에서는 그처럼 모호한 것일까요?

늙은도령 ㅡ 종교인의 수입은 성전에서는 그렇게 뚜렷하면서도, 과세를 하려 하면 그처럼 모호한 것일까요? 예수님도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고 했는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8.10 08:21 신고

    일부 종교인,종교단체를 위한 과세 유예를 한다면
    오히려 표가 달아날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당연히 과세 추진하여야 합니다

  2. 참교육 2017.08.10 10:46 신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역행하는 가짜 교인들...
    적폐청산 대상입니다.

  3. *저녁노을* 2017.08.10 19:21 신고

    자꾸 미뤄서는 곤란하지요.ㅠ.ㅠ

    • 늙은도령 2017.08.11 03:10 신고

      김진표가 자체적인 표관리에 들어갔나 봅니다.
      자신의 신앙 때문일 수도 있고....
      답답하네요.

  4. 담공자 2017.08.15 00:51

    최근까지도 친박집회에 인력 대주며, 수구 기득권과의 협력으로 이익을 도모했던 대형교회들을 보자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멀어져, 기득권이 듣고싶어하는 설교만 하며, 쉽게 속죄를 남발하는 교회들은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서비스를 제공하는 신흥사이비종교 개독교라 불리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김진표 장로가 출석하거나, 연이 닿아 있는 대부분의 개독교 목사들이 그래 달라 청탁한 것이겠지요. 예전 소망교회 같은 꼴인것은 눈앞의 횟불처럼 환합니다. 바울은 형제의 허물을 탓하지 말라 했지만, 이 정도로 악한 이들일 줄은 몰랐던 것이겠죠. 젠장.


교양과학서로서 가장 많이 팔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이오니아의 자연과학에서 현대물리학까지 인류의 과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왔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이다. 멋진 문장으로 인류의 과학사를 풀어낸 《코스모스》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교양과학서다. 이 책을 정독하게 되면 과학 얘기가 나왔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패러다임 이론을 정립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조금 지루하지만 제임스 베니거의 《통제혁명》 등을 추가로 읽으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꿀리지 않고 과학사에 대해서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학강의》 시리즈 3권에 도전해 보라. 

 

 

이 책들을 다 읽으면 과학사에 대해 강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이득은 인문학과 사회학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과학이 인문학과 사회학과 별개의 것인양 생각하기 일쑤지만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이기 때문에 인문학과 사회학에도 이 세 개의 학문적 지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번 글에서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진화의 예를 옮겨놓을까 한다. 이 내용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코스모스》를 구입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교양과학사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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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년 왜국의 천황은 안토쿠(安德)라는 이름의 일곱 살 소년이었다. 그는 헤이케(平家) 사무라이 일파의 명목상 지도자였다. 당시 헤이케 파는 숙적 겐지(原氏) 파와 오랫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 오던 중이었다. 이 두 파의 사무라이들은 서로 자신들의 조상이 더 위대하므로 천황의 자리는 자기네가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웠다. 둘의 자웅을 겨룰 운명의 해전이 1185년 4월 24일 일본의 내해 단노우라에서 벌어졌다. 이때 안토쿠 천황도 전함에 타고 있었다.

 

 

헤이케 파는 수적으로 열세였고 전략 면에서도 겐지 파에 비해 처지는 편이었다. 이 해전에서 헤이케 파 병사들이 수없이 전사했다.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도 나중에 바다에 몸을 던져 집단 자살했다. 천황의 할머니 니이(二位尼)는 천황과 자신이 적에게 포로로 잡혀 갈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그 해 황제는 일곱 살이었는데 나이에 비해 무척 조숙했다. 그는 매우 예쁘게 생겨서 얼굴에서부터 밝은 광채가 발하는 듯했다. 검은 머리카락을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린 어린 천황은 겁에 질려 한껏 불안한 표정으로 할머니 니이에게 물었다. “저를 어디로 데리고 가시나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어린 천황을 그의 긴 머리카락으로 묶어 줬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어린 천황은 작고 예쁘장한 두 손을 한데 모았다. 먼저 동쪽에 있는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작별을 고하고 서쪽으로 돌아서서 나무아미타불을 반복해서 읊었다. 니이는 “우리의 황도는 바다 저 깊은 곳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두 팔로 어린 천황을 꼭 껴안은 채 출렁이는 파도 밑으로 가라앉았다.

 

 

헤이케 함대는 전멸 당했다. 살아남은 사람이라곤 여자 42명뿐이었다. 이들은 원래 궁중의 시녀였는데, 그 후 전쟁터 근처에 살던 어부들에게 몸을 팔면서 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헤이케 파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시녀와 어촌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단노우라 해전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이 축제는 오늘날에도 매년 4월 24일에 거행된다.

 

 

축제일이 되면 자신을 헤이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 생각하는 어민들은 대마로 만든 옷을 입고, 검은 머리덮개를 쓰고 물에 빠져 죽은 천황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아카마(赤間) 신궁으로 행진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단노우라 해전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재연하는 연극을 관람하기도 한다. 몇 세기가 지난 후에도 사람들은 사무라이 유령들이 바닷물을 퍼내느라 헛수고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도 바다에서 피와 패배와 굴욕을 씻어 내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어부들 사이에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헤이케의 사무라이들은 게가 되어 지금도 왜국 내해 단노우라의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발견되는 게의 등딱지에는 기이한 무늬가 잡혀 있는데 그 무늬는 섬뜩하리만큼 사무라이의 얼굴을 빼어 닮았다. 어부들은 이런 게가 잡히면 단노우라 해전의 비극을 기리는 뜻에서 먹지 않고 다시 바다로 놓아 준다고 한다.

 

 

이 전설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문제를 하나 제공한다. 어떻게 무사의 얼굴이 게의 등딱지에 새겨질 수 있었을까? 답은 아마도 “인간이 게의 등딱지에 그 얼굴을 새겨 놓았다”일 것이다. 게의 등딱지 형태는 유전된다. 그러나 인간처럼 게들에게도 여러 유전 계통이 있게 마련이다. 우연하게 이 게의 먼 조상 가운데 아주 희미하지만 인간의 얼굴과 유사한 형태의 등딱지를 가진 것이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

 

 

어부들은 단노우라 해전 이후에도, 그렇게 생긴 게를 먹는다는 생각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 게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냄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화의 바퀴를 특정 방향으로 돌렸던 것이다. 평범한 모양의 등딱지를 가진 게는 사람들에게 속속 잡혀 먹혀서 후손을 남기기 어려웠다. 그러나 등딱지가 조금이라도 사람의 얼굴을 닮은 게는 사람들이 다시 바다로 던져 넣은 덕분에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었다. 게 등딱지의 모양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셈이다. 생존 확률이 점점 높아졌다.

 

 

마침내 보통 사람이나 보통 왜국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무섭게 찌푸린 사무라이의 용모가 게의 등딱지에 새겨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코 게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며, 게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도태 혹은 선택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사무라이와 더 많이 닮을수록 생존의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졌다. 마침내 단노우라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무라이 게들이 살게 됐다.

 

 

이 과정을 우리는 인위 도태 혹은 인위 선택이라 부른다. 헤에케게의 경우 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그 길을 택해서 그런 등딱지 모양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부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 선택에 간섭한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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