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리더십의 본질을 가장 냉정하게 파고든 책 중에 하나가 올해 1월1일에 작고한 울리히 벡(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최진기 강사가 위대한 사회학자라고 언급했던 석학으로 《위험사회》의 저자)의 《경제위기의 정치학》이다. 이제는 정치를 전공한 사람들도 읽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메르켈의 리더십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추론할 수 있는데, 벡은 이것을 정확히 짚어냈다.





메르켈의 리더십을 ‘엄마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다’는 것과 동일하다. 메르켈은 지독히 마키아벨리적이어서 그때그때의 여론의 흐름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 원전건설을 강행하던 중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났고, 여론이 나빠지자 원전제로로 돌아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메르켈이 시리아 난민 수용을 결정한 것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독일 우파의 주장에 따라 난민 수용 불가를 천명하다, 국가 전체의 여론이 나빠지자 이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메르켈은 TV로 생중계된 학생과의 토론에서 불법난민인 자신의 부모가 강제추방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여학생의 애원을 단호히 거절했었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불법난민과 이주자에 대한 극우주의자의 폭력이 확산되고, 그리스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비판에 처하고 국내여론도 나빠지자 전격적으로 난민 수용을 결정했다. 여론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 메르켈 리더십의 실체다.





독일이란 나라가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유일한 국가여서 이런 결정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난민이 독일에 정착한 다음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보면(역사의 재구성이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방불케 한다), 이스라엘이 재난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이 대규모 난민수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소련연방이 여러 가지 이유(너무 많은 책에서 너무나 많은 주장을 제시해 하나로 압축할 수 없지만, 정치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다)로 붕괴된 지 얼마 안 된 1993년에, 러시아 정부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쇼크요법(국영기업 민영화, 공무원의 대규모 구조조정, 가격통제 해제에 따른 생활필수품에 대한 정부보조금 폐지, 전면적 시장경제 도입, 외국자본의 러시아 기업의 인수‧합병 허용, 이익의 해외반출 허용 등)을 실시했다.



이때 거의 1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추방됐는데, 이들을 받아들일 나라는 전 세계에 이스라엘밖에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잦은 전쟁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침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은 것도 국제적 압력보다는 경제적 탈출구를 찾기 위함이 더욱 강했다.





헌데 러시아에서 유입된 어마어마한 값싼 노동력(박사 학위 소지자와 첨단기술 전문가도 많았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이어갈 정치경제적 필요성을 없애버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생존을 위해 팔레스타인에 정착했고, 위험도 불사하지 않았기에 평화협정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경제부흥을 일으켰고, 거기서 얻은 노하우와 기술을 살려 폭력시장과 안보‧재난시장, 디지털 감시사회, 경제적 차별을 축으로 하는 재난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유대계 난민들이 정착한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리틀 러시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르켈의 결정은 최대 30만 명에 이르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와 동일해서 오씨라고 놀림받고 있는 동독의 노동자나 실업자들과 격렬한 일자리 충돌을 불러올지 모른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독일행을 선택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이 겪었던 힘겨운 생존을 되풀이해야 한다.





통일독일이 대규모로 유입될 난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돌려버리면 독일사회의 잠재적 불안요소로 자리할 수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낼 시장은 기득권의 수중에 집중될 것이고, 메르켈이 동독노동자와 경쟁시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난민들이 신빈곤층을 형성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며 그리스 부채탕감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 유로존의 돈을 싹쓸이하는 것에 대한 각국의 비난도 이번 결정 때문에 쏙 들어갈 수 있다. 프랑스 정부가 받을 압력도 클 것이며,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나머지 유럽국가에도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메르켈 입장에선 한 번만 더 총리를 연임하면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도 완성되기 때문에 묘수를 둔 것만은 확실하다. 독일이 저지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감안하면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유럽의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등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결정은 환영해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모델처럼 한다면 메르켈의 결정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일 될 것이다. 부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9.04 08:44 신고

    함께 사는 세상..그것이 정답입니다



언론 인터뷰를 피해왔던 윤제균 감독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국제시장>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손석희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국제시장>을 만든 의도와 그에 상반되는 평가들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변론을 내놓았습니다.





윤 감독은 <국제시장>의 제작의도가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헌사이자, 세대와 지역과 계층 간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가족영화’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독으로써 “극장 안에 가장이 자기 아들과 자기 자식과 또 부모세대 또 할아버지, 할머니 3대가 와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윤 감독은 또한 <국제시장>이 “거시적인 현대사에 대한 어떤 정치적, 사회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던 역사가 아니라 진짜 소박하게 일찍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려고 만든 영화”라고 함으로써 정치적 의도가 없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윤제균 감독의 발언이 왜 문제인지, 허지웅의 트위터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음인지, <국제시장>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을 선택했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특히 덕수의 삶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난의 여정으로 그리기 위해 영화의 배경으로 흥남 철수와 파독 광부, 베트남전쟁 등을 선택한 것이 결국은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됐다는 것을 설명해보겠습니다.






1950년 12월 15일에서 24일까지 진행된 흥남 철수는 10만 명에 이르는 북한의 피난민이 12만 명에 이르는 중공군을 피해 남하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맥아더의 오판 때문에 중공군에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 흥남 철수의 원인으로 덕수 가족의 시선에서 보면 선악의 구분이 너무 명백하다는 점에서 지독히 이데올로기적입니다.



영화의 시작을 흥남 철수로 잡은 이상 <국제시장>은 소련과 미국에 책임이 있는 한반도 분단의 결과로 일어난 한국전쟁을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가해자 대 피해자, 선과 악이라는 미국에 철저히 경도된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로 하게 됩니다. 윤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흥남 철수는 현대 한국사의 비극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남 철수에서 미군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 때문에 국제시장까지 흘러들어온 덕수는 미군에서 흘러나온 제품을 팔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맥아더의 오판과 많은 피난민들에게 폭격을 가한 미군은 미화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이데올로기적 면죄부를 받게 됩니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라는 에피소드도 분단된 국가였던 독일을 떠올리게 만들고, 동독에 대해 우위에 있었던 서독의 압도적인 경제력이 통일로 이어진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남 철수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한 덕수의 희생은 최고조로 오르지만, 또 다른 덕수인 파독 광부들의 비참했던 삶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파독 광부는 ‘우리의 소원’에서 ‘대박’으로 변질된 박근혜 정부의 통일 아젠다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윤제균 감독의 아버지가 덕수처럼 파독 광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수 세대에 파독 광부가 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윤 감독에게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은영중에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전쟁은 이라크전쟁과 함께 미국이 일으킨 최악의 전쟁임에도, 흥남 철수에서 국제시장으로 흘러들어와 파독 광부를 거친 덕수의 관점에서 그려졌다는 점이 가장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전쟁보다 더 부도덕한 전쟁인 베트남전쟁이 덕수의 희생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는 점은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이데올로기적입니다.





베트남전쟁은 원래 프랑스에 대한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국민의 독립전쟁이었는데, 냉전논리를 내세운 미군의 참전, 이를 위해 미국의 꼭두각시를 남베트남(월남)의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것, 나쁜 국내여론을 뒤집기 위해 CIA를 동원한 돈킹만 사건 조작에 의한 확전, 미국의 패배가 확실한 시점부터 베트남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기 위한 초토화 작전까지 미국 연방정부와 미군의 저지른 전쟁범죄로 가득한 최악의 전쟁이었습니다.



수천 페이지에 걸친 ‘펜타곤 페이퍼’를 보면 미국 연방정부와 미국 국방부,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이 저지른 온갖 거짓말과 전쟁범죄(민간인 학살, 한국군이 연루도 나온다)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덕수의 관점에서 보면 베트남전쟁은 가족의 부양과 한국의 부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전쟁ㅡ한국 군대와 장사치들이 저지른 범죄는 빠진ㅡ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전쟁 때문에 전후의 일본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면, 베트남전쟁 때문에 한국이 개발도상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갖춘 것은 미국의 전쟁범죄에 동참한 한국의 변명으로써는 최상의 것입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을 내세우는 것이 덕수의 본질이라면 베트남 파병을 비판할 여지는 최소한으로 줄어듭니다.



또한 호치민(김구+안창호+여운형)과 그의 군대에 호의적이었던 베트남 국민(심지어 남베트남 국민까지)을 ‘종북’과 동일한 공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로 묘사하는 미국식 냉전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덕수를 통해 감독이 그려낼 수 있는 최대치도 전쟁의 위험을 무릅쓴 가장의 희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록키와 람보시리즈는 미국 백인들로 이루어진 전통 보수의 시각(레이건과 부시 정부가 대표적)을 대변하는 근육질 가족영화입니다. 허리우드 영화에는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데 <국제시장>은 동원된 한국 현대사의 에피소드로 인해 가장 허리우드적인 가족영화가 됐습니다.



윤제균 감독이 뭐라고 변명을 하던 <국제시장>은 역사적 사건의 이데올로기적 선택 때문에 보수적인 의미에서 잘 만들어진 가족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허지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며, 조중동과 보수세력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 가장 좋은 영화로써 주저함이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윤제균 감독은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국제시장>이 삼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삼포세대와 비정규직 및 실업자가 넘쳐나고 노인빈곤율에 비해 노인복지가 형편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삼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서의 <국제시장>은 중·상류층에서나 가능할 듯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론7 2015.01.07 06:46 신고

    국제시장을 한번보긴 해야겠어요 좋은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5.01.07 11:06 신고

      한 번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잘 만든 영화입니다.
      윗 세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2. 참교육 2015.01.07 07:14 신고

    보수층이 좋아할.. .어떤 영화인지 더 궁금해 집니다.

    • 늙은도령 2015.01.07 11:07 신고

      네,그렇기는 합니다.
      허나 영화만 놓고 보면 잘 만든 영임입에는 틀림없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1.07 09:53 신고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시면 그럴수 있습니다
    윤감독의 말처럼 70년~80년대 암울한 시대를 덕수를 통해
    일부라도 구현했다면 이상한 영화가 되었을겁니다

    감독이 의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흑백의 논리에서 해석할수 밖에 없는 현실이 비참하군요

    그러면 앞으로 모든 시대극 영화도 그런 관점에서 볼수밖에
    없습니다 ㅡ.ㅡ;

    • 늙은도령 2015.01.07 11:10 신고

      보수적 영화도 좋은 영화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크린스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그렇구요.

      부정적인 시각이 아니라 윤제균 감독의 변명과 영화에 채택된 사건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중동이 이용하기 쉽고요.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가족영화를 높은 가치를 지니고 덕수 세대에 대한 헌사로도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다만 영화가 선택한 에피소드와 주제가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보수의 가치 중 최고가 가족입니다.
      대처가 노조를 탄압하고 민영화하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밀어붙인 것도 가족의 이름으로 입니다.

  4. singenv 2015.01.07 19:08 신고

    <국제시장>은 그자체로 현실도피입니다. 암울한 현재와 보이지 않는 미래 대신 힘들었지만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는 거라 생각됩니다.

    • 늙은도령 2015.01.07 19:48 신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덕수 세대들에게 대한 헌사는 과거에 방점이 찍혀 있으니까요.

  5. 란쿨 2015.01.16 17:22 신고

    흠... 국제시장 보면서 이런생각은 못했는데요

    • 늙은도령 2015.01.16 18:15 신고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 영화에 도입된 역사의 사건들이 산업화 세대를 위한 것이라 이런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0만을 넘기는 영화라면 그 영향력이 엄청납니다.
      윤 감독은 아버지 세대를 위한 헌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아버지 세대들 때문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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