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고칠레요 4회>에서 유시민과 천호선이 언급했듯이 조중동스러운 가짜뉴스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홍준표가 나옵니다. 그는 수치를 절대 확인하지 않는 대다수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프레임 설정과 낙인찍기ㅡ진보정부는 경제에 무능하다ㅡ에만 열을 올립니다. 홍준표는 유권자의 대다수가 발언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용어 한두 개만 동원한 거짓말을 꺼리낌없이 쏟아냅니다. 유권자 세뇌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심리학과 선동정치의 핵심입니다.

 

 

 

 

프레임 설정과 낙인찍기의 핵심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듣고 싶어하는 단어와 문장을 통해 유권자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입니다. <유시민의 고칠레요 4회>에서 홍준표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수많은 통계와 지표를 제시한다 해도 합리적인 접근보다 감정적 접근을 선호하는 인간 본능의 약점을 파고든 프레임 설정과 낙인찍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빌어먹을 경제학이 보편화시킨 최악의 거짓말,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믿음 때문에 진보의 반박은 울림이 크지 않습니다.

 

 

플라톤에서 기원해 토마스 홉스와 에드먼드 버크, 러셀 커크, 월트 휘트먼, 윌리암 버클리, 라인홀트 니부어, 다니얼 벨, 피터 자이한 등에 이르기까지 보수의 정신과 가치를 설파한 분들조차도 홍준표의 말들을 들으면 그 저급함과 거짓말에 기겁할 것입니다. 홍준표가 쏟아내는 말들은 한국 보수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습니다. 그에게서 제대로 된 보수의 정신과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일베와 손가혁 중에서 문프 지지자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제 주변은 강고한 보수주의자들로 들끓는데 그들조차도 홍준표는 비판과 좌절, 수치의 대상입니다. 평생을 보수정당에 표를 준 이들은 홍준표가 보수의 부활을 막고있다며 비판하는 것은 기본 사양입니다. 이들이 홍준표의 언행에서 느끼는 감정이란 미래에 대한 좌절과 얼굴을 들지 못할 창피함입니다. 이들 모두는 보수의 부활을 바라지만 홍준표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홍준표로 대표됐던 자한당 의원들이 물갈이될 때까지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말도 심심찮게 합니다. 

 

 

홍준표의 유뷰브 방송을 보지도 않지만 그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이 수십만에 이르는 현실에 참담해 합니다. 이들은 또한 정권 탈환을 갈구하면서도 홍준표의 망동을 보고 있으면 자한당이 더 망해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현실정치에 신물이 난다며 정치의 '정'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칩니다. 한 때는 노무현 사람이었던 김병준을 믿지 않으며, 서울시를 넘겨준 오세훈과 박근혜 정부의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역임한 황교안의 당대표 출마에 절망을 드러내곤 합니다.

 

 

이들의 공황상태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언행과 투쟁방식에 이르면 극단까지 치닫습니다. 5시간 반의 릴레이 단식농성에서는 조증과 울증을 왔다갔다 합니다. 국민적 조롱거리로 전락한 '간헐적 단식'의 참혹한 결과를 만회하고자 야심차게 들고나온 '방콕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TV를 꺼버리고 자리를 뜹니다. 정권 탈환을 갈구하는 이들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독한 문재인 지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경원의 거듭된 실언과 실족에 실망은 좌절로 바뀌고, 절망은 분노로 변합니다. 일본의 '초계기 도발'을 감싸고돈 발언에는 거친 욕설도 나왔습니다. 제 주변의 보수주의자들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오피니언이자 그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어서 제가 보수의 분위기와 방향성을 파악할 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와 새누리당의 패배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들어 홍준표와 나경원의 모지리 짓거리에 비판을 가하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자한당의 전당대회의 흥행몰이에 어떻게든 일조하려는 기성언론의 편향적 보도(지상파 중에서는 손혜원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SBS가 제일 심한데 이들은 손혜원을 핑계로 자한당 전당대회를 노골적으로 띄워주고 있다)도 비판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구 기득권세력의 일치담합이 홍준표와 나경원, 황교안와 오세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정치적 확장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쉬운 점은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제외하면 문파 스피커들의 영향력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김어준 패거리들을 따라잡기는커녕 이정렬과 최재성, 김빈을 둘러싼 극한대치와 상호비난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경우 상당한 숫자의 문파들이 계정을 폭파하거나 폭파당하고 있습니다. 이정렬 변호사가 혜경궁 김씨 고발건에 대한 마지막 보고서에서 촉발시킨 분열과 반목의 아수라장은 나몰랑으로 일관하는 이정렬이 입을 열지 않는 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28일)를 기점으로 모든 기성언론에서 '손석희 폭행 혐의' 관련 보도가 자취를 감춘 대신, 자한당 전당대회 띄우기와 문재인 대통령 보여주지 않기ㅡ기득권언론이 담합한 문재인 왕따 전략ㅡ가 본격화 됐지만, 이를 지적하는 문파 스피커는 하나도 없습니다. 촛불혁명도 이전의 혁명(4천만 국민 중 천만 명을 동원한 폴란드의 연대투쟁과 상당히 닮았다)처럼 일회적 시민 동원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문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여론몰이는 김어준과 이재명의 리얼미터를 중심으로 가열차게 진행 중이고요.

 

 

이런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홍준표와 나경원의 실언과 실족, 실책 덕분에 자한당 중심의 '보수 부활 프로젝트'가 정권 탈환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홍준표와 나경원의 자한당이란 무능하고 저급한 진보진영(구좌파 중심)이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원천 중의 원천입니다. 홍준표에 이어 나경원까지 유튜브 방송에 뛰어든다면 최상이라고 할 수 있고요. 문프의 발목만 잡는 현재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바닥으로의 경주'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짐만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홍준표와 나경원의 자한당이 국회를 마비시켰기 때문에 문프의 국정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구시대의 인물들을 모조리 갈아치울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바닥으로의 경주에 올인한 작금의 상황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곳곳에 썩은 물이 고여있는데, 그것을 퍼낼 장비를 찾을 수 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페이스 2019.01.29 22:53

    못 찍을 만한 사람만 남았죠.
    그래도 남경필이나 홍정욱 같은, 하다못해 유승민이라도 있으면 찍어볼까? 하는데 이거는 뭐...

    • 늙은도령 2019.01.30 02:04 신고

      그르게 말입니다.
      보수진영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국가 전체를 봐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문프를 믿는다고 해서 모든 공무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견제세력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내부의 부패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KBS를 제외하면 모든 언론과 거대 팟캐들이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려는 사람들(이하 궁찾사)을 극소수의 극렬 문파로 낙인 찍어 수천만 명의 문재인 지지자(이하 문파)들로부터 분리시킵니다. 이런 낙인 찍기는 궁찾사에게 문프와 이재명을 이간질시켜 남경필을 당선시키기 위한 세작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웁니다. 『프레임 전쟁』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 설정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시작됩니다.

 

 



세작으로 낙인 찍힌 궁찾사는 모든 언론과 거대 팟캐의 부정적 분석과 멘트까지 더해지면서 신나치 같은 반사회적 집단으로 범주화됩니다. 이런 고립화 과정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되풀이되면서 궁찾사를 정상적인 문파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프레임이 공고해집니다.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네거티브 선거법 때문에, 언론과 팟캐들이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을 할 수 없음도 한몫 거듭니다.  

 

 

혜경궁 김씨와 이재명의 관계를 모르거나, 아예 관심도 없는 수천만 명의 문파들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당내경선에서 이재명과 그의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자행한 패륜적인 짓들은 돌아보지 않은 채 언론과 팟캐의 프레임에 중독됩니다. 이들에게는 혜경궁 김씨와 이재명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증거들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살펴보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마주하기 힘들 정도로 추할 때가 많은데, 문프가 꽃길만 걷기를 바라는 문파들은 궁찾사의 집회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을 넘어 증오의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이들은 문프의 성공을 위해 이재명을 찍겠다는 분들이어서 추악해 보일 수도 있는 진실을 애써 부인합니다. 같은 당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이재명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언론과 거대 팟캐의 주장에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킵니다.

 

 

탈레브의 『블랙스완』에도 나오듯이, 인간은 의외로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을 찾기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습니다. TV가 나온 이후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으며, 최근에는 팟캐의 난립과 유튜브의 영향력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2012년도 물론 지금까지도 이재명 욕설파일을 들은 문파는 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수많은 연구들이 진실이라면 절대 5%를 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언론과 거대 팟캐의 프레임 설정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근접해집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고위당직자, 황교익처럼 문프의 절친으로 알려진 자들의 이재명 쉴드치기(모순과 오류가 너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가 더해지면 궁찾사는 신나치보다 더한 반사회적 집단이자 문프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악마로 배척당합니다. 이쯤 되면 약자를 상대로 한 고소고발의 달인인 이재명의 특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궁찾사가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대다수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도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이재명의 당선가능성은 안정권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문프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에 문프의 등에 칼을 꽂을 확률이 가장 높은 이재명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룹니다. 한국당의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도 이재명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오늘의 집회를 취재하러 온 KBS<추적 60>처럼, 궁찾사가 찾아낸 수없이 많은 증거들을 공중파에서 공정하게 다뤄주지 않는 이상ㅡ이재명 캠프가 방송금지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방송을 막을 것이다ㅡ이재명의 경기지사 당선을 막을 수 없습니다. 변방의 시장에 불과한 이재명을 김어준과 김용민, 이동형, 새날 등이 키워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재명 방어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요.

 

 

마지막 집회를 취재한 <추적 60>이 궁찾사의 증거들을 공정하게 다룰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공정하게 방송하고 많은 분들이 시청한다면 천지개벽 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추적 60>의 반응이 높으면, 다시보기까지 해서 시청률이 10%를 넘으면 JTBC 뉴스룸보다 공정성이 높아진 9시뉴스에서도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다른 방송도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차고 넘치는 증거들을 찾아낸 궁찾사의 노력이 진실의 상당 부분을 담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수개 월째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경찰도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만이, 오직 그럴 때만이, 그래서 혜경궁 김씨의 정체가 밝혀져 이재명이 문프의 동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0.01%의 기적이 현실이 됩니다. 궁찾사의 노력으로 <추적 60분>팀이 마지막 집회를 취재하도록 만든 것이 그 거대한 전환의 시작일 것이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8.05.27 11:2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8.05.27 15:44 신고

      네, 이번만은 역선택을 해도 됩니다.
      이재명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합니다.
      그의 삶이 그가 어떤 인간인지 말해줍니다.
      무조건 퇴출시켜야 합니다.

  2. 별하 2018.05.28 15:3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완전 격공합니다ㅜㅜ

  3. 답답함 2018.11.27 15:54

    이재명이 그래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이런 글 읽는 전 정말 답답합니다. 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재명이 깡패같으니 그것이 진실이라면 어쩌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지지하지 말라는 것인가요?
    선택은 자유인데 왜 자꾸 선택과 판단에 개입하려 하십니까?



많은 젊은 세대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던 간에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도 그러하다며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 진저리를 친다. 이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는 더욱 줄어들고, 그것도 아니면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만나도 좀처럼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인들을 욕해도 이념적 성향이 들어가는 것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밝힌 것처럼 '핫'이란 개념과 '쿨'이란 개념이 뒤바뀌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런 경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네 권의 책만 읽어도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정치라는 사실은 시대가 아무리 흘러가도 변할 수는 사실이다. 심지어 인간이란 자신 안에서도 몇 개의 자아가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행위로 이어지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런 갈등없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과정이 선행된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선택했을 때는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이것을 기회비용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홀로 있을 때조차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의 과정을 거치고 이것이 곧 삶에서의 정치다.   



우리는 이런 선택과 행위의 과정을 욕구에 대한 최고의 효율성(최대의 쾌락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하며 경제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심지어 자해(이것이 극에 달하면 자살에 이른다)마저 처해진 상황에서 최고의 효율성(최대의 쾌락으로, 부정적이거나 마이너스 쾌락도 존재한다)을 찾기 위한 것으로 설명되기 일쑤다. 그리고 이것은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분명한 진실을 담고 있다.

 

 

 

헌데 정치라는 것이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 동원 가능한 자원을 골고루 배분하는 행위라는 것이 현대 정치학의 주류이론이다. 우리가 경제라고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정치에 속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인 것을 경제로 대체하는 정치권의 언어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미디어의 왜곡에 판단의 기준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면 인간은 판단의 기준이 고정되며, 삶에서의 실천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것이 편향된 이념의 밑바탕을 이룬다. 

 

    

                                  

                       국과수의 DNA분석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나온 이 사진이 유병언의 죽음을 확정했다.



특히 텔레비전의 보편화와 일반화가 이루어진 이후로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텔레비전은 콘텐츠를 보내는 쪽에서 일방적인 전달만 하기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는 것이 믿는 것과 같음은 인간이란 존재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것들에 많이 노출될수록 콘텐츠를 전달하는 측의 입장에 더욱 경도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청자의 인식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텔레비전에서 전하는 것에 조금씩 젖어들고 길들여지게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인 편향의 오류가 발생하고, 이것이 무의식이나 의식의 전반에 쌓이고 축적되서 견고하게 굳어지면 거의 모든 콘텐츠를 이념의 잣대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이 바뀌어 텔레비전이 전하는 콘텐츠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도 이미 굳어져 버린 인식의 틀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자신이 보고 믿고 익숙한 것들만 받아들이고 강화하는 확인 편향의 오류 때문에 어떤 콘텐츠가 주어져도 해석의 작용은 변함없는 편향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이란 과거의 기억들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삶의 조건과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사회일수록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일종의 문화지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의 독재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그들은 특히 어느 집에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을 보고 받아들인 최초의 세대들이었다. 아래의 인용문은 닐 포트스만의 《죽도록 즐기기》에 나오는 내용 일부인데,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세대의 확인 편향 오류, 즉 이념적 편향성과 경도된 인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것이 6.4지방선거의 결과를 갈랐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도, 진실과 거짓의 문제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확인 편향 오류가 만들어내는 집단적인 인식의 편향성은 어떤 것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자신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나 고뇌에 찬 결단은 이념적 편향성에 불을 당기는 미디어 세대들의 절대 마약이다. 정치적 프레임 설정이나 전환이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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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텔레비전은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관한 방법론까지 지시하는, 초매체적 지위에까지 올랐다...우리는 더 이상 그 기계장치에 매료되거나 어쩔 줄 몰라 하지 않는다. 또한 텔레비전의 경이로움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텔레비전 수상기를 특별한 공간에만 한정시키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현재 이런 장면은 텔레비전을 타지 못한다.


 

마치 눈과 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고 묻듯이, 그러한 질문 자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그래픽과 전자혁명으로 유발된 가장 큰 골칫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된 세계가 우리에게 낯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낯설게 느끼는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길들여졌다는 신호이며 길들여져 온 만큼 변해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는 이제 텔레비전의 인식론에 거의 다 길들여졌다. 즉,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규정되는 진실, 지식, 사실을 너무도 철저하게 받아들이기에 쓸모없는 것들이 중요한 것인 양, 그리고 모순된 것들이 대단히 합리적인 양 우리 안에 가득 들어앉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 중 일부가 시대적 규범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이제는 시대적 규범을 문제라기보다는 본래의 관습이나 제도가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여긴다......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라는 최적의 기후조건에서 텔레비전은 모든 잠재력을 영상기술로 끌어낼 수 있었다...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그저 방송 프로그램이 좋아서 원할 뿐이다. 여기서의 논점은 텔레비전이 오락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락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온 세상과 교감을 유지하지만, 이는 인격이 사라진 무표정한 방식일 뿐이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더더욱 텔레비전을 타지 못한다.                                                     

 

텔레비전 세계에서 오락은 모든 담론을 압도하는 지배이념과 같다. 무엇을 묘사하든, 어떤 관점에서 전달하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재미' 때문에 매일같이 뉴스에서 재난이나 잔혹한 장면을 접하면서도, 뉴스진행자가 하는 한마디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에 걸려들고 만다...이 모든 것들이 방금 본 장면을 슬퍼할 필요가 없음을 암시한다...이들은 읽는 뉴스를 편집하거나 라디오 청취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위한 뉴스를 TV로 내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들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매체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갈 수밖에 없다. "믿을 만한 텔레비전"이란 설명이나 언어표현이 뛰어나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그저 생생한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에 관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텔레비전'이라는 말 그대로 사람들은 '본다'는 점이다. 또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순간순간 생동감 있게 바뀌는 수백만 가지 동영상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기 위해 사고력을 억누를 수밖에 없는 TV매체의 본질이다. 즉, 텔레비전은 쇼비지니스적 가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여강여호 2014.07.27 14:50 신고

    대학시절 전공수업 교재였던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요기서 보게 되네요.
    어떤 내용이었는지 깜깜하지만요..ㅎㅎ..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미디어에서 보듯 그런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민주주의의 진보를 정비례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국민들의 분노일 것입니다.
    여기에 정치는 생활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겠지요.

  2. 백순주 2015.09.18 11:00 신고

    우아~ 글이 매력적이예요. 짜임새 있고, 간결하고, 막힘없고... 독서력의 힘인가요? 새삼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이 보고 믿고 익숙한 것들만 받아들이고 강화하는 확인 편향'의 오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매체를 멀리하는 것이 방법은 물론 아닐테고요. 뇌가 익숙한 것을 선택한다고 하던데요. 습관처럼.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데 뭘 배워야 하는지 그런 시각이 필요할텐데...의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글은 명쾌한데 저는 머물러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도령님 심정이시지요?ㅋㅋ

    • 늙은도령 2015.09.18 11:14 신고

      제가 글에 올린 책들을 보면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세상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 다방면의 책을 읽었습니다.
      어려서 읽은 것들은 기본적인 철학을 구축했다면 지난 10년 동안 읽은 책들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 자아의 구축이 일정 수준 이상 완성되면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습니다.
      결국은 책을 많이 읽고, 사유의 양을 늘리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연습을 멈추지 않고, 거울뉴런이 최대로 발달할 수 있도록 관계를 늘려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로는 계략적인 것만 쓸 수 있습니다.
      제가 지적공동체를 만들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적검증부대를 만들어 사이비들을 걸러내고, 정치경제적 지배엘리트의 논리를 까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위 90%는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백순주 2015.09.19 04:32 신고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



유병언의 죽음이 확정된 날을 전후로 해서 새누리당이 본래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병언의 죽음을 영구미제사건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전날의 오전에는 심채철의 카톡이 돌아다녔고, 대낮에는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의 세월호 유족에 대한 폭력이 발생했고, 당일의 자정에 지나자마자 유병언의 변사체가 발견됐고, 저녁에 새누리당은 수사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을 무산시키기 위한 프레임 설정을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국과수가 유병원이 법적으로 사망했음을 밝히면서도 사인을 불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병언 관련 수사는 이것으로 사실상 종결됐습니다. 이는 또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이 영구미제(최소한 보수 정권 기간 동안)로 남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검-경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데,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은 최종 책임의 크기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는 JTBC 특집토론에 나와 세월호 참사를 보상과 특혜의 문제로 격하시켰습니다. 주호영 의원은 세월호 참사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말했습니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로 대표되는 보수단체의 폭언과 폭력도 기본적으로 보상과 특혜의 문제를 걸고 널어진 것입니다. 그 출발은 심재철 의원의 카톡이었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것이 확대재생산 됐습니다. 

 

 

 


이들의 교활함과 치밀함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세월호 참사의 보상을 천안함 폭침과 동일한 적용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폭침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건인데, 집권세력은 죽은 것으로 확정된 유병언을 북한의 침략과 동일한 수준으로 변질시켜 버림으로써 책임의 소재를 대통령과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획책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이들의 프레임 설정 능력은 야당의 무력함과 어우러져 최상의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자가 안산이 지역구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전해철 의원이었다는 것이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이 무산돼서는 안 됩니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 전체에 빌미를 제공한 전해철 의원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보다 많은 보상과 혜택을 주고 싶겠지만, 유족의 뜻을 묻지 않았기에, 다음 번 선거에서 그 대가를 치르면 됩니다. 

 

 

 

 

단 3일 만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치적 프레임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에서 보상과 특혜의 문제로 재정립시킨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의 프레임 설정 능력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습니다. 필자가 그 동안 유병언 관련 글을 추가로 쓰지 않은 것도 그의 죽음이 확정된 다음에 세월호 참사의 출구전략이 어떻게 설정될지를 지켜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전해철 의원의 또라이짓 때문에 물건너 갔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가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은 제정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의견이 완전체를 이룬 상황에서 여야의 TF팀을 통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된 특별법 제정은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단 3일 만입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정치적 프레임이 침몰 원인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서 보상과 특혜의 차원으로 격하된 것이. 안철수와 김한길 공공대표가 모든 판을 깨고 거리로 나서지 않는 이상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4월16일에서 영원히 멈춰버린 채 저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보수화될 대로 보수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좌우과 균형을 이루며 민주주의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 폭우가 내리는 중에서도 청와대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세월호 유족의 단식농성에 참여한 여성 의원들, 김제동과 김장훈의 천만 개의 바람 운동,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농성과 전국보도행진 등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의 민주주의는 국회와 청와대에 있지 않고 길거리에, 광화문에, 서울시청 앞에, 팽목항에 있습니다.  

 

 

 

 

7월 재보선은 하나의 정치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압승한다고 해도 현재의 지도부가 유지되는 이상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이루는 것은 정부도 국회도 아닙니다. 그들은 국민이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의 주인이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나서 이를 관철시켜야 합니다. 


 

 

 

유병언의 죽음이 확정되고 그의 장남이 체포된 이후 국민의 마음을 파고드는 온갖 통치술의 정치경제학적 조치들이 난발될 텐데, 그렇게 하루에 하루가 더해지면 세월호 참사도 유병언의 죽음처럼, 장준하 선생의 타살의혹처럼, 경찰의 댓글사건 축소의혹처럼, 개표 조작 의혹처럼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우리가 당장 굶어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민생, 민생하면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매몰되면 단 한 명의 희생자 영혼도 하늘라로 보낼 수 없습니다. 

 

 



 

 

헌데 오늘 유병언의 장남인 유대균이 너무나도 맥없이 체포됐습니다. 마치 경찰과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는 듯이, 세월호 선장을 해경이 숨겨줬던 것처럼 경찰도 유대균을 구원파 일부와 성난 민심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듯이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월호 법정에서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을 기존의 특검법 수준에서 새누리당과 합의할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정확히 100일 기점으로 해서 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글은 국정원의 세월호 실소유 여부에 대해 다루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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