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철이 ‘니뫼러의 고백’을 고백성사 하듯 암송했다. 거대 언론이 현재 권력과 자본에 밀착했을 때 나타나는 전체주의적 성향에 대해 일격을 가하려는 재영이 절대 모를 수 없는 글이었다.



“‘처음에 저항하라(Principiis obsta)’ 그리고 ‘결말을 생각하라(Finem respice).’ 니뫼러가 제시한 두 개의 원칙이 그 참혹한 경험에서 나왔죠.”

“그런가요? 하지만 사후약방문 아닌가요? 히틀러는 투표로 권좌에 올랐잖아요? 법에 의한 통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그가 아닌가요? 모든 독일인이 그를 선택하진 않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있었답니까? 아무튼 자기변명처럼 들리네요.”

“맞아요, 사후약방문이고 변명이 맞아요. 니뫼러처럼 저항정신이 투철한 사람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깨달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어요. 모든 것이 변하고 있을 때, 변화를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아요. 체제의 내부인으로써, 침묵했던 지식인으로써 자신의 무력함을 변호하고 싶었겠지만, 그의 말처럼 처음에 저항하지 않으면 어떤 결말도 생각할 수 없어요. 깨달았을 때는 늦어도 너무 늦었죠. 인간은 정말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족속인가 봐요?”

“제 생각도 같아요. 어쩔 때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만 악의 근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중에서도 배운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요. 지식인이라는 게 뭡니까? 권력 주변을 알짱거릴 뿐, 지식의 왕국에 머물러 초연한 척, 격려라고 하는 게 시국선언문 몇 쪽이란 말입니까? 배웠으면 돌려줘야죠. 지식이란 어느 누구의 전유물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동철의 눈에 적개심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고고한 척, 현실적 한계를 들먹이며, 체제의 수면 아래에서 시끄러울 뿐, 행동하거나 행동을 격려하지도 않는 이 땅의 지식인에 대한 비릿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재영도 그 점에선 의견을 같이 했지만 언론인으로써의 자괴감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 없었다.



“유구무언입니다.”

“아이고, 재영씨를 지칭한 거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제가 재영씨에게 얼마나 많이 배우고 있는데요. 좀 어려워서 그렇지, 큭.”



본성이 착해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동철이 손사래를 쳤다. 재영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국민이 인정하는 최고의 MC로써, 절대적 영향력의 소유자인 그는, 안타까울 만큼 거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재영은 그런 동철이 좋았다. 그는 동철이 전임 대통령에 대한 회한에서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나 보다 창조적인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한 잔 더 빨까요?”

“병나발도 좋습니다!”



재영과 동철은 사막에서 겨우 빠져 나온 사람처럼 소주를 들이켰다. 늘어나는 취기보다는 마음의 갈증이 더욱 컸다. 동철이 아예 글라스로 잔으로 갈아타자고 했다. 마다할 재영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안주는 싸늘하게 식어갔지만 빈 술병들은 테이블을 빼곡하게 채워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주인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연예인이라면 최소한 5가지 이상의 저 품질 고가의 안주는 기본 아닌가? 게다가 지금이 몇 시야, 소주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씨였으면 모를까? 아니 이제는 소주잔을 아예 글라스 잔으로 바꿔달라고? 이 화상들아, 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야! 제발 이익 짭짤한 안주 좀 시켜! 이런 주문들을 외는 주인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했다. 수리수리 마수리, 아부라카다부라!



“근데 재영씨, 도대체 뭘 먹었기에 그렇게도 아는 것이 많아요? 과학이면 과학,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이건 걸어 다니는 사전이 따로 없다니까? 검색도 필요 없겠어, 크큭.”



동철의 혀가 조금 꼬이기 시작했다. 주인은 두 병의 소주와 글라스 잔을 내려놓으며 더 시킬 안주 없느냐고 엄청(?) 우회해서 물었다. 그 마음을 알아챈 동철이 아예 메뉴판을 흔들었다. 알아서 갔다 달라는 얘기였다. 주인이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귀에 걸린 입의 잔영을 남기면서.



“사돈 남 말 하십니다. 동철씨도 만만치 않잖아요?”

“저야 여기저기서 동냥한 것에 불과한데요, 뭘?”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어요. 경험을 통해 스스로 얻은 지식이 진짜 아닙니까? 사실 플라톤 주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엄청나게! 도대체 전공이 뭐였습니까?”

“허허, 이거 참. 대학 때는 물리학과 생물학을, 편입해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기웃거렸죠. 대학원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남아 있는 게 없어요. 뇌 속에는 온통 말똥과 쓰레기뿐이에요.”



재영의 혀도 급격히 꼬여 들었다. 주방에서 지글지글 끓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게 전해져 왔다. 동철이 글라스 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재영의 눈에 입이 귀에 달린 주인의 잔영이 떠올랐다.





“엄청 공부하셨네요? 도대체 전공만 몇 개야? 어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근거리네. 근데, 플라톤 주름지대가 뭐에요? 성형수술 관련 용어인가요?”

“하하하! 성형 수술 용어라? 어떻게 보면 비슷하네요. 단순하고 정의하기 쉬운 것만 대상으로 삼고 복잡하고 가변적인 건 아예 무시하는 영역이 플라톤 주름지대니까. 다른 얼굴로 들어갔다 같은 얼굴로 나오는 성형외과도 일종의 플라톤 주름지대라 할 수 있겠네요. 죄다 김태희고 송혜교니..”

“김태희와 송혜교도 온다고? 이곳에? 언제?”



주방에서 미친 듯이 안주를 만들고 있던 주인이 쩌렁쩌렁한 소리로 물었다. 안주를 만들고 있는 상태에서 목을 길게 뺀 상태에서 홀을 향해 고개만 돌리니, 바동거리는 거북이가 따로 없다. 오십 줄에 접어든 주인의 두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고 얼굴 가득 기대감이 넘쳐난다. 수리수리 마수리, 아부라카다부라!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지는 법이다. 조금 전의 안주 사건이 이를 증명해주지 않는가? 주인은 기원하고 기원한다. 동방국 최고의 미녀, 김태희와 송혜교가 자신의 가계에 왕림해주길. 주시길. 주시길!



“크큭!. 귀는 밝아서. 신경 끄세요, 아저씨. 그 사람들이 이 시간에 여길 왜 와요? 그나저나 재영씨, 시대를 앞서가는 제 얼굴, 멋지지 않습니까? 요즘 대세는 못생긴, 아 그게 아니라 개성 있는 얼굴이 대세라는..”

“어련하시겠습니까? 견적 자체가 나오지 않을 만큼 대세는 대세지요, 하하하!”

“크큭. 그런가요? 우리 엄만 나 보고 잘 생겼다 하더구먼. 아, 그런데 플라톤 주름지대라? 허, 이거 참. 플라톤이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요 교수라고 알고 있었는데?”



소주가 반쯤 차 있는 글라스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철의 표정에 실망감이 완연했다. 그에게 플라톤은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았다. 재영도 글라스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동철에게 물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동철씨께, 플라톤이 최고의 철학자고 교수여야 하는?” 



꿀꺽꿀꺽. 재영이 글라스 잔에 가득 찬 소주를 맥주처럼 들이켰다. 그에 따라 이성을 잠식하는 취기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위장이 처음으로 거부의 반응을 전해왔다.



“있습니다, 있어요! 플라톤 주름지대니 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꺼억! 플라톤이 최고의 교수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있고말고요!”



동철도 취기가 급격히 올라오는지 말을 끝내는 소리의 톤이 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 말 속에는 진지함과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이 철철 넘쳐흘렀다. 재영은 취기에 급격히 무너지는 정신을 악착같이 붙들며 동철에게 물었다.



“뭡니까? 우리 동철씨를 괴롭히는 게 뭡니까? 플라톤, 그 사람! 자기 시대에만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이 시대 이곳까지 따라와 동철씨를 괴롭힘 답니까? 대체 뭡니까, 뭐에요”



플라톤이라면 질색하는 재영이 따지듯 물었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노예 찬성론자였으며, 이데아로부터의 모든 변화를 타락이라 주장해 인류의 발전을 제한했다. 게다가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활용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시켰으며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같은(실제 그는 공자처럼 당시의 권력자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랐다) 현자가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인류가 지향해야 할 유일한 이상향으로 정의했다. 일체의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 유토피아, 즉 완벽한 전체주의(히틀러의 나치, 왜국의 군국주의, 3대 세습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배체제를 구축한 조선국이 이에 속함)를 창시한 위대하면서도 위선적인 철학자였으니 재영으로써는 플라톤에 대해 탐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흔히 미국에 정착해 청빈한 삶과 지독한 노동, 다음 세대를 위한 저축을 통해 미국의 기초를 다진 청교도들을 뜻한다. 이들의 전통은 19세기 말까지 이어져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어냈다)의 정신적 선조도 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초기 기독교 신앙에 미친 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기에 칼뱅의 교리를 따른 아일랜드 계 백인 프로테스탄트들을 그의 사상적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후손이라 치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광활한 대지와 누구든 노력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천혜의 신대륙(잔혹하게 몰살된 인디언 입장에서 보면 구대륙)에 도착한 그들이 대륙의 원주민이자 자연과 더불어 살던 인디언들을 무참히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도, 신이 내린 천혜의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유일한 선민(백인 우월주의에 전형이자 플라톤이 태생적으로 지배계급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인 자신들이 다스리는 게 신의 뜻이라는 의식에서 나왔다. 신대륙에 ‘언덕 위의 도시’를 구축하겠다는 그들은 자유와 함께 개인 및 기업의 이익 추구를 절대적 가치로 내세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단시일 내에 구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에 그들의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예외적 존재’로써의 신이 준 사명이라며 선제적 침공을 서슴지 않는 등, 영국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최악의 대통령이었던 부시가 소명의식 운운(실제는 석유 확보와 함께 당시 달러화를 대체할 듯한 기세를 보여주었던 유로화 결제를 막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만)하며 마치 십자군의 후예라도 되는 양, 이라크 등을 침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플라톤의 유토피아적 발상에서 이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체주의적 성향을 그 기저부터, 낱낱이 파악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복잡한 재영의 생각을 알 리 없는 동철이 플라톤에 대한 재영의 적개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꿈이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거예요. 플라톤처럼 끄윽. 최고의 학교를 만드는 게 제 필생의 꿈이거든요.”

“대안 학교요? 아, 그 얘기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동철씨, 어떤 대안 학교를 만드시려고?”

“20분 공부하고 40분 쉬는 그런 학교요. 10분 공부하고 50분 쉬어도 상관없지만. 교사는 가르치기보다 애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그런 학교요. 끅.”



재영은 동철의 표정에서 몽환적인, 그러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의 의지와 일관성이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20분 공부하고 40분 쉬는 것이었다. 가르치기보다 들어준다?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경쟁만 강요하는 기존의 교육제도에 대한 통쾌한 전복이 이것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비록 동철이 모델로 삼았던 플라톤은 자신이 세우려는 이상적인 학교가 아테네 자체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알았을 수도 있다. 칼 포퍼처럼, 나는 플라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므로).



‘동기의 순수성에서 보면 플라톤이 동철의 아래야.’



재영은 동철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그의 매력은 끝이 어디일까, 재영은 그것이 궁금했다. 



“저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을 최고의 가치라고 봐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전 이것이 영원불멸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꺼억.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것 하나면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전 그렇게 믿어요.”

“헌법에는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들어있지요.”

“재영씨가 중요시 여기는 헌법 조항은 무엇인데요? 기자라는 직업을 떠나서요?”

“헌법 119조 2항입니다.”



동철의 질문에 재영은 직각적으로 답했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뭔데요? 외우고 있다면 말해주세요.”

“좀 깁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너무 길지요?”

“길긴 기네요. 요즘 한참 회자되는 공정사회를 위한 대기업 때리기의 근거와 비슷하네요. 솔직히 전 잘 모르겠어요. 경제는 영 꽝이라. 하지만 힘없는 서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헌법이 규정한 ‘행복추구권’이라고 봐요. 나머지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해요.”

“그래서요?”

“전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상대를 짓밟아야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해요. 그냥 그 자체로 행복했으면 해요. 공부, 공부, 공부! 그렇게 올라서고 나도 딸꾹, 또 짓밟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돌려주고 싶어요, 행복을! 네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친구와 함께 가는 게 삶이라고! 딸꾹, 두려워하지 말고 사다리를 걷어차라고!”



열정 가득한 동철의 말에 재영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진심에서 흘러나온 울림이 너무나 맑고 고와서, 그 공명을 함께 하고 싶어서, 자신은 동철의 꿈을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동철씨, 일본이 나은 위대한 정치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현대정치사상과 행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헌법의 규정 배후에는, 표면의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무수한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축적되어온 노력의 흔적이 구불구불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다”고. 동철씨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나서 드리는 말입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뛰어난 인물이 나왔네요?”

“일본이란 나라, 절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실체적 진실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요. 정말 뭐 같지만.”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비관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공간이 제공되기만 하면 그들을 따라잡는 일도 멀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딸꾹! 제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이 밝은 웃음과 신명나는 놀이의 공간을 제공하는 날을 위해서예요. 그래서 저의 하루하루가 행복에 가까운 것 같아요, 딸꾹!”



재영은 술 때문에 딸꾹질을 하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하지 않는 동철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재영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동철의 꿈처럼 신명나는 것인지, 정말 자신은 그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너무나 오랫동안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본 결과 눈이 흐려지고 시야가 좁아진 것이 아닌지 갑자기 헷갈렸다. 무엇이 정의고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이란 말인가?



‘그리고 난 행복한가?’

절대! NEVER!



재영은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정했다. 누구나 자신이 변해가는 경우에는 그 누구도 변하지 않은 것이 불변의 진리라면, 플라톤 주름지대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자는 동철이 아니라 자신일지도 몰랐다. 미래로 통하는 길이 투명하고 꼭 질서정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성지에 이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여정이 나름대로의 가치와 행복을 갖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재영은 지난 3년 동안 그 사실을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는데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들, 설사 이룬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재영은 갑자기 두려웠다, 굳건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믿음에 미세하나마 균열이 가는 것이. 재영은 너무나 부러웠다, 이미 긴 순례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믿는 동철의 확신이.



“어, 근데? 재영씨, 왜 저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거예요? 저 남자가 싫다고 말했잖아요! 딸꾹. 저 여자 엄청 밝혀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크큭!”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재영은 그저 웃었다. 왜 웃느냐고 물으면, 웃음이 나와서 그랬다고. 웃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냐고?



“안주 대령이요. 어, 술도 몇 병 가져와야겠네? 김태희와 송혜교는 언제 오는 거야?”



불쑥 튀어나와 여러 개의 안주를 내려놓으며 상냥하게 묻는 주인의 말에, 재영도 웃고 동철도 웃었다.



“하하하하하!”

“크크크큭!”



영문을 모르는 주인만 눈알을 번뜩거렸다. 입술은 위 아래로, 삐죽 나오거나 샐쭉 들어갔다. 헌데 그 눈빛이 왠지 사악하다.




  1. 앨리스 2015.05.24 07:12

    소설같은...같지않은듯 하면서도..종횡문진 하는 지적유희가 재미있고 감탄스럽습니다!
    현자들의 말씀은 의식수준에 따라 달리 해석 되기도 하는것 같아요^^

    • 늙은도령 2015.05.24 16:01 신고

      소설적 재미를 가미해야 하는데 탈고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
      시간이 되면 전체적인 퇴고를 해야 하고, 중단된 부분부터 다시 써야 하는데... 에고, 시간이 부족하네요.


<블랙스완>은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쓰여진 우리시대의 명저입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예언했다 해서 유명해진 월가의 현인인 탈레브가 자신의 현장 경험 속에서 어떤 것들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해 블랙스완과도 같은 거대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그 이론적 근거에 대해 밝힌 것입니다.

 

 

한 때 이 책의 시의성과 인기도에 비해 독자들의 이해의 폭이 적어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한 책이지만 그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요약해 봤습니다. <블랙스완>은 분명 우리에게 좋은 판단을 해주게 만드는 훌륭한 책입니다. 저의 요약을 읽은 다음에는 반드시 책을 사서 읽어 보십시오.

 

 

이곳에 요약한 것 이상의 내용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많이 나오고, 솔직히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세계의 지적 세계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 세상의 거짓에 대해 속고 당하지 않는 헛똑똑이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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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새의 깃털이 주는 교훈 

 

검은 백조는 다음 세 가지 속성을 지니는 사건이다. 첫째,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영역 바깥에 놓여 있는 관측값을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이다. 극단값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준다. 셋째,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모르는 것  

   

검은 백조 원리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2001년의 911일에 테러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만 있었다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비즈니스의 어느 영역에서나 적용된다...인간의 투기 활동에서 수익은 일반적 기대 수준에 반비례한다...알고 있는 것에서는 어떤 위험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빈껍데기 전문가 

  

극단값을 예견하지 못하는 것은 곧 역사의 진행방향을 예견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한다. 역사에서는 특이한 사건들이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오류가 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예측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그것은 어떤 희귀한 사건에서는 대체로 잃을 것은 거의 없지만 얻을 것은 많기 때문이다. 

 

 

배우는 법을 배워라

 

실패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그것은 아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무는 보지만 숲

은 보지 못하는 격이랄까. 

 

우리가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인간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실만을 머리에 우겨 넣는다...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얕잡아 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통념과 달리 많은 증거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적게 생각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를 생각하는 순간일 것이다.

 

 

또 다른 배은망덕

 

텔레비전은 공정한 매체가 아니라 검은 백조에 눈을 감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우리 인간은 얼마나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족속인가.  

 

인생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사건

 

정규분포를 나타내는 종모양의 곡선을 전제로 추론을 전개하는 대부분의 사회 연구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정규분포란 큰 편차를 무시하거나 다룰 수 없는데도 마치 우리가 불확실성을 길들이고 있다는 확신을 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런 따위를 GIF,  거대한 지적 사기(Great Intellectual Fraud)라 부른다.

 

 

플라톤과 헛똑똑이

 

플라톤적 도식이 어디서 오류를 빚을지 사전에 알 수 없고, 이로 인한 실수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플라톤적 태도가 복잡한 현실과 만나는 폭발성 있는 경계지대를 플라톤 주름지대(Platonic fold)라고 부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넓어서 위험한 지점, 바로 그곳이 플라톤 주름지대다. 검은 백조는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다.

 

 

 

1  한 경험론적 회의주의자의 도제 시절

       

 

별이 총총한 밤

 

암흑이 도래하면 유일한 위안은 하늘을 쳐다보는 일뿐이다.

 

 

역사는 기어가지 않는다, 비약한다

 

인간의 마음은 거의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고 갖가지 현상을 풀이해낼 수 있는 반면에 예견 불가능성은 일절 용납하지 못한다...얘상 밖의 행동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다...우리는 뒤돌아보는 쪽으로 발달된 거대한 기계라는 것, 인간은 자기 기만에 탁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친애하는 베를린 일지: 뒤로 가는 역사에 대하여

 

사건은 왜곡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중요한 것은 사건의 실행이 아니라 사건의 기술이다.

 

 

끼리끼리

 

편 가르기의 자의성, 편 가르기가 만들어 내는 전염 효과를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상 이러한 편 가르기가 얼마나 빈번하게 뒤집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효율적 시장 이론에 따르면, 시장 가격은 모든 가용 정보를 자동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유가증권 거래에서 수익을 거둘 길이 없다. 공표된 정보는 특히 사업가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가격은 그러한 모든 정보를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는 어디에서 벌어지는가?

 

회사의 경영자라는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유시장 체계의 힘이다.

 

 

퍽 유어 머니

 

퍽 유어 머니(Fuck your money)라는 말이 있다...멋대로 펑펑 쓰고 살 만큼은 안 되지만, 월급에 목을 매지 않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줄 만큼은 되는 돈이다. 그것은 돈에 영혼을 파는 것을 막아 주며, 외부의 권위어떤 외부의 권위든 간에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준다.

 

 

3  투기꾼과 창녀

 

 

  

최선(혹은 최악)의 충고

 

작가와 제빵사의 차이, 투기꾼과 의사의 차이, 사기꾼과 창녀의 차이를 알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조금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추가적인 노동이 전혀 없이도 수입을 열 배, 백 배 늘릴 수 있는 직업과 하나를 더 얻을 때마다 그만큼의 (유한한 자원인) 시간과 노력을 또 투입해야 하는 직업-다시 말해서 중력에 종속된 직업-의 차이다.

 

 

자가증식성에 주목하라

 

자가증식하는 직업을 선택하라는 충고는 나쁜 충고였다. 자가증식하는 직업은 성공하는 경우에만 좋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첫 번째 범주는 평범한 것, 평균적인 것, 중도적인 것에 의해 추동된다. 여기서는 평범한 것이 집단적으로 과실을 얻는다. 다른 한 가지 범주에서는 거인이 되거나 난쟁이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극소수는 거인이 되고, 절대 다수는 난쟁이가 된다.

 

 

 

자가증식성의 출현

 

녹음의 효과는 엄청난 불평등을 초래한 발명이었다. 공연을 재생하고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골 피아니스트들은 최저 임금에 허덕이며 별 재능도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피아노 레슨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죽은 호로비츠가 살아 있는 피아니스트들의 밥줄을 빼앗은 셈이다.

 

진화는 자가증식성이 있는 것이다. (행운에 의해서든 생존경쟁에 의해서든) 승자의 자리를 차지한 DNA는 베스트셀러나 대박 음반처럼 자기 자신을 복제하여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다른 DNA는 소멸하게 된다. 

 

불평등은 약간 나아 보이는 자가 파이 전부를 차지할 때 발생한다. 영화 같은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 이 분야에서는 재능이 성공을 낳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재능을 낳는다.

 

아트 드 배니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재주라고 말하는 것이 실은 사후에 부여된 속성이라는 씁쓸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영화가 배우를 만들며, 또 영화의 성공을 만드는 것도 비선형적 행운의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영화의 성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일종의 감염 현상이다. 

 

 

참으로 이상한 극단의 왕국 

 

극단의 왕국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해서 하나의 관측값이 불균형한 비율로 전체에 충격을 가한다. 사회적 사건들은 대부분 극단의 왕국에 속한다...돈은 그저 숫자다!

 

 

극단의 왕국과 지식

 

평범의 왕국에서 자료를 바탕으로 알 수 있는 지식은 정보가 주어짐에 따라 빠르게 증가한다. 그러나 극단의 왕국에서 지식은 느리게 증가하며 축적된 자료와 어긋나기 일쑤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극단적이다.

 

 

무엇이 사건을 지배하는가

 

평범의 왕국은 우리가 집단적인 것, 진부한 것, 명백한 것, 예상되는 것의 지배를 견뎌야 하는 곳이다. 반면에 극단의 왕국은 우리가 단 하나의 것, 우발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예상치 못한 것의 난폭한 지배에 내맡겨져 있는 곳이다.

 

극단의 왕국이 곧바로 검은 백조를 뜻하지 않는다. 희귀하고 심대한 결과를 초래하지만 예측 가능한, 특히(통계학자, 경제학자, 정규분포곡선 찬양론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대신에) 그런 사건들에 늘 대비하고 있는 사람들, 그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예측 가능한 사건들도 있다. 그것들은 유사 검은 백조다.

 

 

 

 

4  천 하루째 날에 살아 있기

 

 

칠면조의 교훈

 

관찰을 통해 얻어진 일체의 지식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과거에 내내 통했던 것이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며,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운 것은 최선의 경우에 쓸모 없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파국을 낳는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깜작 놀라게 만든 돌발 사건이 발생한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돌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하려고 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보지 못한다. 앞선 사건이 전례가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검은 백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과거의 관찰을 미래를 결정짓는 것, 혹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바보 되기 훈련

 

은행업은 보수적이지 않다. 파국적인 큰 손실의 가능성을 양탄자로 덮어 버림으로써 현상적으로는 훌륭하게 스스로를 기만해 왔다. 이른바 보수적인 은행들은 이윤이 생길 때는 자신들이 이익을 챙긴다. 그러나 위기에 빠지면 그 비용을 우리 납세자가 낸다.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는 수익의 수준을 알 수 없다...따라서 경영자들은 위험을 은폐하고 수익과 수익률을 조작함으로써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을 속인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비극이다.

 

 

검은 백조는 지식에 상대적이다

 

검은 백조가 뭘 모르는 젖먹이들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물론 LTCM 사람들처럼 사람들에게 검은 백조는 출현할 수 없다는 확신을 심어 줌으로써 과학으로 오히려 검은 백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과학이 보통 시민을 젖먹이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간의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척도로 사태를 관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검은 백조는 효과를 발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부정적인 검은 백조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건설보다 파괴가 훨씬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회의주의자들, 종교의 벗

 

어떠한 사건도 무한한 수의 가능한 원인들을 가질 수 있다...단언하건대, 소양 없는 학위는 재앙을 낳는다.

 

 

칠면조가 되긴 싫어!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젖먹이가 되지 않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 현업종사자다!...눈을 감은 채 길을 건너지는 말라는 것이다.

 

 


5
 
 확인 편향의 오류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 출현할 가능성이 없다는 증거가 있다는 혼동하기 십상이다. 두 명제 사이에는 엄청난 논리적 거리가 있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에서는 그 거리가 매우 좁아지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둘을 쉽게 혼동한다.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는 모슬렘이다라는 명제와 거의 모든 모슬렘은 테러리스트다라는 명제는 다르다. 고정관념의 불공정함 역시 왕복 여행의 오류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보수주의자들이 모두 멍청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멍청한 사람들이 대부분 보수주의자라고 말했을 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항변하며 했던 말이다. 우리의 통계적 직관은 미묘한 변화가 커다란 차이를 낳는 복잡한 환경에 맞춰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모든 주글이 부글인 것은 아니다

 

 

표본수가 클수록 안정적인 값을 보이며 장기적인 평균값으로부터의 변동이 적어진다는 것은 통계학의 기본에 속한다. 스포츠 클럽에 가서 경우 2층밖에 안 되는 곳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곧장 운동기구로 향하는 사람들이 이런 영역 특정적인 전형이다.

 

의학과 관련된 글에서 흔히 사용하는 NED라는 단어는 질병의 증거 없음(No Evidence of Disease)의 약어다. END, 질병 없음의 증거(Evidence of No Diease)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보적인 추론 오류 때문에 의학이 위험을 초래한 사례는 인류사에 수두룩하다.

 

 

증거

 

내가 소박한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정신 작용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세계, 자신이 그리는 세계를 확인해 주는 사례들만 찾는 선천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람들 덕분에 발전이 있었다.

 

 

부정적 경험주의

 

어떤 명제가 참인지를 반드시 알지 못하지만 어떤 명제가 거짓인지 알면 소박한 경험주의를 피할 수 있다...단 하나의 악성종양만 발견되어도 암이 있음을 확증할 수 있다. 그러나 악성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암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1,000일간의 시간이 당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못하지만, 단 하루의 시간이 당신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다.

 

 

수열 실험

 

인지과학자들도 확증해 주는 증거만 찾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을 연구해왔다. 그들은 이러한 약점을 확인 편향이라고 불렀다.

 

어떤 규칙을 검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규칙이 통하는 사례들을 찾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적으로 이 규칙이 통하지 않는 사례들을 찾는 방법이다. 진리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반증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 

 

일단 우리의 마음에 하나의 세계관이 자리 잡으면 그 세계관을 확증해 주는 사례만 중요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생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자신의 견해를 더욱 정당화하는 역설이 생겨나는 것이다. 슬프게도 확인 편향은 우리의 지적 습관과 담론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지식의 문제의 핵심은 확증 증거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평범의 왕국으로

 

현대사회는 한마디로 극단의 왕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지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오늘날 검은 백조가 출현하는 영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6  이야기 짓기의 오류

 

 

내가 원인 찾기를 거부하는 원인에 대하여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요약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화하기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환원시키기를 좋아한다. 이야기 짓기의 오류는 인간의 확대해석, 날것의 진실보다 압축된 이야기를 편애하는 경향과 연관이 있다. 이 오류는 세계에 대한 표상을 심하게 왜곡시키는데, 희귀한 사건과 관련해서 특히 심각해진다.

 

이야기 짓기의 오류는 연쇄적 사실들을 억지 설명이나 논리적 연결고리, 즉 화살표에서 벗어나서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가리킨다. 설명은 사실들을 엮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기억하기가 용이해지며, 납득하기가 용이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해했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그 순간, 이러한 습성은 과녁을 빗나간다.

 

 

좌우 반구 분리증이 말해 주는 것들

 

좌우 반구 분리증(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별개로 작용하는 증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일련의 유명한 실험은 해석 활동의 자동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물리적 증거, 즉 생물학적 증거를 제공해 준다.

 

좌우 반구 분리증 환자들은 뇌의 좌우 반구 사이에 아무런 연결조직도 없기 때문에 서로간에 정보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좌뇌는 패턴 인식을 수행하는 부위가 존재하는 곳으로, 언어가 패턴 인식적 속성을 갖고 있는 한에서만 좌뇌가 언어를 관장한다.

 

좌뇌와 우뇌의 또 다른 차이는 우뇌가 새로운 것을 다루는 곳이라는 점이다. 우뇌는 일련의 사실들(개별적인 것, 즉 나무들)을 보는 반면에 좌뇌는 패턴(일반적인 것, 즉 숲)을 지각한다.

 

의미와 개념을 집어넣으려는 인간의 성향은 개념을 구성하는 세부사항들에 대한 지각을 차단한다. 그래서 좌뇌 활동을 억제하면 좀 더 사실적이 되는 것이다

 

해석 작용을 피하기 어려운 까닭은 인간의 뇌 기능이 종종 지각의 바깥에서 작동한다는 것이 그 열쇠다. 마치 호흡처럼, 해석 작용은 자동화된 통제력 바깥의 다른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동시적으로 행해진다.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의 법칙

 

의식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압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패턴, 즉 연쇄의 규칙을 발견하면 더 이상 전체를 다 기억할 필요가 없다. 패턴만 저장하면 된다.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단순화를 강요하는 바로 그 조건이 세계를 실제보다 덜 무작위적인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다. 검은 백조는 단순화 작업에서 버려지는 부분이다.

 

 

좀 오래된 것들의 기억

 

기억 속의 사건을 떠올릴 때, 사건들의 실제 순서가 아니라 재구성된 사건의 순서를 떠올리는 이 단순한 무력함이 실제 역사보다 되돌아본 역사를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게 만든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최신 사건을 기억하면서 이전의 기억에 이를 덧붙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기억은 견고하고 불변이며 서로 단단히 연결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짓기에 들어맞는 쪽으로 정보를 사후에 선택함으로써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는 것이다.

 

 

정밀하고 세세한 분석이 만능인가

 

혈통을 따지는 일은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 줌으로써 인과관계를 채워 넣으려는 우리의 속성을 만족시켜 준다...경험적으로 볼 때, 민족성보다는 성별이나 계급, 직업 따위가 한 사람의 행동에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그뿐이다. 안타깝지만, 사실 검증 부대는 있을 수 있지만 지적 검증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검은 백조에 대한 맹목

 

희귀한 사건에도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검은 백조다. 둘째는 이론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검은 백조다. 첫 번째 검은 백조는 과대평가되고, 두 번째 검은 백조는 과소평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어떤 사건을 인지하고 일단 입에 올리면 가능성이 낮은 사건도 과대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손실이 적을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 선호 경향이라 불렀다. 이는 가능성이 적되 충격은 더 큰 사고에 대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확률이 희박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실제보다도 더 낮게 평가한다.

 

 

직감의 힘

 

스탈린의 말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숫자다. 통계란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테러리즘보다 더 무서운 살인자는 환경 재앙임에도 우리는 테러리즘에 더 분노한다. 우리는 자연이 몰고 오는 피해보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피해에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1. 백순주 2015.09.21 08:45 신고

    정말 이 책에 애정이 깊으신군요. 군데군데 흥미롭습니다. 요약이 힘드셨을텐데 정성스럽습니다.

  2. 로욤 2016.11.22 17:13

    구글에서 헛똑똑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포스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을 알게 되었네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이 블로그의 다른 포스팅들도 읽어볼만 한 글들이 많군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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