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이틀 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독자의 수준에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대가라고 하는 분들은 독자의 수준에 맞추면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담아냅니다. 문제는 이런 명제가 디지털시대에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독자의 수준에 맞춰 글을 쓴다는 것에는 전체적인 하향평준화의 부작용과 사이비 지식인들의 득세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위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대단히 한정된 경험이기에, 부분적 진리를 보편적 진리로 확장하는 논리적 비약의 위험성이 대단히 높지만, 필자가 아는 한 2016년을 살아가고 있는 19~35세의 청춘들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후세대가 앞세대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는 인류문명 발전의 암묵적 동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헬조선에 살면서도 그들이 보여주는 적응과 선택의 과정이란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인류의 탄생을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필자 같은 비주류 먹물이 보기에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그들의 진화란 인류문명 발전의 암묵적 동의가 깨졌다면 그런 엿같은 세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최단 기간 안에 끝나게 만들려는 생존의 지혜가 곳곳에서 빛(이것에 감정이 있다면 슬픔에 가깝겠지만)나고 있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N포세대라고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는 것들의 총합이란 '깨진 동의'에 철저하게 순응함으로써 역발상의 혁명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포기한 것들은 인류문명의 발전은커녕 인류문명의 존속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세상과 체제를 뜯어고칠 정치경제적 권력이 없기에, 그들은 인류문명 발전의 두 개의 축인 '소비와 출산'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들고나왔습니다. 그것이 적응과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대단히 진화론적이며, 절망과 좌절에 빠져들기 보다는 그들의 유전자에 축적된 집단지성의 발현이기에 한판 뒤집기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디지털시대에 적합한 방법으로 저항하고 투쟁합니다. 절망과 좌절에 빠져들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성세대의 헬조선에 멋진 카운터펀치를 날립니다. 그들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정확하게 분류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정확하게 찾아냅니다.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라고 하니까, 아프면 환자지 청춘과 무슨 상관이 있냐며 꼰대의 위로를 멋지게 비틀어버립니다. 





박근혜와 김종인으로 대표되는 꼰대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청춘들은 평등한 자유를 충분히 누리는 주체로서 헬조선에 저항하고 투쟁하지 꼰대들이 제시한 방법에 따라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망과 좌절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고학력 비정규직 알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것에 적응하되, 그런 주류의 메커니즘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시기를 앞당기는 선택적 포기들로 역발상의 혁명을 주도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라 '이것이 최대한 빨리 지나가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 그들의 진화론이며, 생존전략이자, 디지털 네트워크 세대의 집단지성입니다. 박근혜는 몇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김종인은 그들의 특성을 며칠 이내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된다면 듣고 참조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청춘들의 다양한 의사소통(SNS가 대표적)만이 헬조선을 가장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주류의 먹물들(조중동과 종편, 강단에 널려 있으며, 청춘에게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과 비주류의 주류를 자처하는 먹물들(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에 몰려 있으며, 필자에게도 보이는 '보이는 손'이다)의 주장처럼, 중간층과 무당층에게 총선 승리의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대통령 선호도 1위로 만든 19~35세의 청춘들에게 있습니다. 필자 같은 비주류 먹물 꼰대가 보기에는 눈물겨운,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디지털 의사소통에 답이 있습니다.



정치공학적 계산이 민주주의를 이길 순 없습니다(이런 면에서 이재명 시장의 트윗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결정한다면, 민주주의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15~35세의 청춘들의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어떤 세대의 수준에 맞출 수 있겠습니까? 




P.S. 김종인 위원장이 107석 이하로 내려가면 더민주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현상 유지라도 좋다면 정의당에게 통 큰 양보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수도권에서 정의당과 연대하지 않으면 107석도 지키지 못합니다. 시대의 역적이 되지 않으려면 정의당과의 연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딴지 2016.03.17 00:11

    마지막 PS 참 좋습니다. 엄지 척~ ^^)= b
    그런데 과연 김종인이 그럴까... 라는 걱정이 앞서네요.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2년동안
    40여년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봤던 나라걱정을
    한꺼번에 모아서 다 하고 있다는 심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17 00:40 신고

      김종인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제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김종인은 못하는 것을 유권자는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정당이 정한 후보에 찍으라는 것이라면 유권자는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이후의 누구도 유권자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다만 그 방법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할 것입니다.
      변화된 상황이 생겼으니 그에 맞게 전술은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실천할 것입니다.
      김종인 때문에 1인방송국을 오픈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아쉽지만....

  2. 먼북소리 2016.03.17 00:41

    원래 내가 낙천적인 성격이었는데..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 비관론자가 되어갑니다. 과거도 계속 뒤돌아보게 되고..
    나의 우려일까요? 전쟁이라는 단어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 늙은도령 2016.03.17 01:40 신고

      장담이라는 것은 예언과 비슷해서 대단히 위험한 얘기지만 전쟁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 같은 경제대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 경제는 끝장납니다.
      지금은 저금리와 저물가, 대규모 양적완화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그때는 세계경제고 뭐고 다 끝장납니다.
      전쟁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일 박근혜나 김정은이 그런 생각을 구체화하는 어떤 행태라도 보이면 그들이 미국 등에 의해 제거되면 됐지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3. 먼북소리 2016.03.17 01:00

    한가지 질문 드릴까 합니다..
    오늘 정청래의 백의종군 효과가 있을거라 생각하는지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할려고 했으면 좀 더 빨리 했어야 한다고 보는데..
    좀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는것 같습니다.
    이번총선에 그다지 영향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늙은도령 2016.03.17 01:42 신고

      정청래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지금보다 한 단계 이상 도약하려면 무조건 백의종군해야 합니다.
      그는 대한히 현명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가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탈당하는 순간 정청래라는 정치인의 가치는 하한가로 떨어집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것들이 일시에 박살납니다.
      정청래, 생각보다 더 멋진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새노래 2016.03.17 01:24

    지금 4.13 총선을 앞두고 정말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 보시고 계실줄 믿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할까, 지조도 소신도 없이 ... 사람이 바뀔때는 내가 뭔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내가 약점을 잡혔을때 입니다, 이번 선거가 꼬이고 김종인과 그 일당들이 상식에 맞지 않는 짓을 하는걸 보면 정의화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정의화도 직권상정 하면 성을 갈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성을 갈아 버렸지요.... 김종인과 그일당들의 하는짓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튜브에 "최상천의 사람나라 35강" "김종인 이기는길 놔두고 왜 지는길로 갈까" 추천 합니다, 저도 보고 지금 현재 4.13총선의 난맥상과 상식밖의 일들이 왜 벌어지나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된것 같습니다, 믿고 안믿고는 자신들이 스스로 판단 하시면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어떤 지경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남이 짓으니 나도 짓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남이 그러니 나도 그런다 는 식의 개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뭘 물어 보면 제대로 아는것도 없습니다, 그냥 귀 동냥으로 조중동에서 조금 들은 예기가 무슨 만고의 진리인양 씨부려되고 있는 개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개들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자신의 아들 딸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이런 한심한 개들 즉 죽은자들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한 사회는 변화 할 수 없습니다, 어짜피 사회는 산자의 사회지, 죽은자들의 사회는 아닙니다, 죽은자들은 사회를 변화 시킬수 없습니다, 죽은자들은 그 쭈둥아리 다물고 산자의 가는길을 방해 말고 산자의 뒤를 따르라...

    • 늙은도령 2016.03.17 01:51 신고

      그럼요, 그 시대의 중추와 바로 아래 세대가 전면에 나선 나라만이 제대로 돌아갔고 성공햇습니다.
      노무현과 김대중의 정신 중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지 그들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분들은 늘 비판을 받는 존재이지만, 그러면서 그 위대함이 새롭게 살아나 당대의 주축들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렇게 발전해왔습니다.
      다만 물질문명의 거대한 파고와 놀라운 속도 때문에 잠시동안 그런 발전의 긍정적 요인이 위축됐지만, 그 시대의 주축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다른 형태의 발전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미 은퇴하고 물러나 후진 양성에나 힘써야 할 자들이 모두 다 기어나와서 이 나라의 주인은 아직도 우리다 하면서 추악한 욕망을 드러낸 것에 불과합니다.
      특히 정치권이 40대와 50 초반을 주축(단 다수여서는 안 된다)으로 2030세대들이 토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들은 향후 50~6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 이익에 연연하는 결정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일정 수준의 전리품은 챙기겠지만 그 정도는 대세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늙은이들이 물러나야 합니다.
      제가 동교동계의 노욕이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김대중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세대와 시대, 인류 전체의 역사를 기반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5. 耽讀 2016.03.17 08:12 신고

    김종인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말 듣고 결정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독재자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누구가 김종인을 차르라고 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김종인은 죽어 따 깨어나도1935세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그네가 민주주의를 결코 이해할 수 없듯이.
    김종인과 박그네에게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17 15:15 신고

      답답합니다.
      오늘 박영선의 발언까지... 비대위 전체가 문제 있습니다.
      저는 정의당 지지할 것입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6.03.17 08:22 신고

    지금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나라와 야당을 걱정하는 공인이라기 보다
    개인의 욕심과 명예를 위해 민주당을 선택한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4월 13일 현실화될까 걱정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17 15:15 신고

      김종인은 더불어민주당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전체를 보지 않으려 합니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ㅡ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에서 인용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지금에도, 거의 모든 정치학자들과 언론‧방송학자들은 텔레비전이 정치에 미친 영향이 측정불가능할 만큼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면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SNS 상에서 다루어지는 컨텐츠의 원천이 거의 다 TV에서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루었기에 이번 글에서 그에 대한 근거를 대는 것은 필요없으리라 봅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일반화된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정치행위의 상당 부분이 돌아갑니다. 《죽도록 즐기기》의 저자, 닐 포스트만의 주장처럼 텔레비전은 자본과 권력의 광고와 협찬, 지원 등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정수입니다. 권력과 자본을 위해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텔레비전이 한 몸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형편없이 떨어뜨린다고 해서 ‘바보상자’로 불리는 텔레비전이 처음 도입됐을 때, 정치인과 언론학자들은 전혀 다른 예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텔레비전이 만들어낼 세상에 대해 온통 장밋빛 전망만 내놓았고, 정치의 수준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방송생태계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칭찬들이 난무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대통령의 아들) : 텔레비전이 정치를 집안으로 가져옴으로써 ‘국가정책을 이끄는 사람들과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나라 전체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유권자에게 더 지적이고 일치단결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스스로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린 던랩(최초의 뉴욕타임스 텔레비전 기자) : 카메라가 ‘정치의 빛과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술책을 부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 말과 얼굴 표정의 진정성이 중요해졌고, 정치 지도자들 또한 우리는 투명하고 지적인 정치가 열리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정치 후보들이 ’과거 정치인들이 역사를 바꾸고 만들어낸 호텔밀실이 아니라 국민의 앞에서 지명될 것이다.


토마스 듀이(1944년 194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 텔레비전은 엑스레이다. 정부의 사업을 모르고 있다면 그 날카로운 광선과 극명한 사실성을 오래 버틸 수 없다. 정치 운동에서 건설적인 진보를 이뤄낼 것이다.


제조업체 : 최초의 텔레비전 출시를 알리는 신문광고 중에는, 텔레비전이 보통 사람들에게 정치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품의 이점으로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리처드 생크먼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에서 인용).





이런 잘못된 예측 때문에 정치와 텔레비전의 불륜은 모든 가정을 파탄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텔레비전 시청자가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모든 정치인들은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국민을 이분법의 노예로 만들려던 박정희가 흑백TV를 포기하고 컬러TV를 허용한 것도 시대적 변화를 더 이상 거역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통치수단으로써의 텔레비전의 위력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이재명이 연상된다).  



시청자인 국민은 그렇게 정당(계급과 계층적 이익을 대변하는, 즉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과 정치인과의 직접적인 대면으로부터 멀어져갔고, 현장에 있는 느낌 때문에 방과 거실에 고립된 유권자로 파편화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루스벨트, 케네디, 레이건, 부시, 오바마,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1930년대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은 텔레비전과의 불륜을 포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도, 심지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알려야 하는 무소속 후보도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시청자를 향해 뜨거운 구애를 해야 했습니다. 정치는 그렇게 시민들을 능동적 참여의 현장이 아닌, 자신의 방과 거실로 물러난 채 카메라 앵글 속의 정치인의 언행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텔레비전이 들어섬에 따라 정치는 오락화되고 개인화됐으며, 이미지 마사지에 속아 철저한 검증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이고 즉각적인 이미지 전달을 통해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 ‘바보상자’라는 텔레비전의 본질에는 추호의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텔레비전은 맹자와 플라톤이 그렇게도 걱정했던 ‘무지하고 우둔하고 멍청한’ 국민들을 양산했습니다(TV를 많이 보지 않는 1020세대는 다르다). 아주 간단한 정치조작과 상징조작, 정보와 이미지 왜곡에 쉽게 넘어가는 그런 국민 말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텔레비전의 지각방식이 인쇄를 통한 지각방식에 철저하게 적대적이고, 텔레비전을 통한 의사소통은 모순과 하찮음을 조장하고, '진지한 텔레비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은 오직 한 가지 소리(오락의 소리)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즉, 텔레비전은 시청자가 생각하지 않도록 만듬으로써 (의심하는 기능을 마비시키며) 방송의 지배력을 높입니다. 대한민국을 말아먹고 있는 종편의 성공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고,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면, 정치의 하향평준화는 극단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는 보는 것이 곧 믿는 것과 동일시됐으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국민들은 스크린의 포로가 됐습니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인의 표정과 동작, 말과 호흡까지 지켜봤기 때문에 그가 본 정치인이 그 정치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도 텔레비전의 성공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시청률조사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 여론조사의 활용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중이 대단히 무지하고 비합리적이며 우리 정치가 신화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다는 증거가 축적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정치 시스템은 과거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직접적인 지배권을 주는 방향으로 재편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조작되기 일쑤인 여론조사가 정치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위로 격상된 것입니다. 



“일단 여론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아무도 그것이 파악해야 하는 것인지 당위를 묻지 않았”고, “여론조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대중을 넘어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두려워하고 바라는지를” 알기 위해 매주 다양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고,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의 안방과 거실을 점령해버렸습니다. 



과학적이라는 전제가 붙어있기에, 일단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정치인들은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정치적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과 이슈에 대해 명확한 의견이 없는 국민들은 여론조사기관에서 작성된 질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임에도,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여론조사결과는 전파를 타고 시청자에게 전달됩니다.



조작되기 일쑤인 여론조사를 권위의 원천이자 시청자를 조정하는 핵심 수단으로 장착한 텔레비전은 정치의 수준을 갈수록 하향평준화시켰습니다. 광고와 협찬의 지원 하에 모든 것을 오락화하는 텔레비전은 출발의 시점부터 시청자들을 더 멍청하게 만들도록 설계됐지, 똑똑하거나 현명하게 만들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방송종사자들은 시청자에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국민들이 권한을 책임 있게 행사할 가능성이 적어진 바로 그 시점에 (권력과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일쑤인 여론조사와 텔레비전이 일반화됨에 따라)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권한이 국민들'에게 넘어가면서 정치의 하향평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텔레비전의 보급을 막을 수 없는 일이고, 여론조사를 하지 않도록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토크빌의 성찰처럼 “국민이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는 것처럼, 미디어 또한 수준에 맞는 미디어만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만약 대중이 정치인들이 유포하는 신화를 기꺼이 수용하는 미디어를 원한다면, 우리는 바로 그런 미디어를 가질 수 있”으며,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친일수구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종편들과 보도채널(연합뉴스TV), 지상파3사의 활약은 무소불위의 경지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최상의 체제로 굳어진 현실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사실(진실)이 전달되면 최상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국민신화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와 사실(진실)을 전달하는 쓰레기 방송들의 일탈과 막장질을 막으려면 텔레비전 시청을 최소화하고, 가짜뉴스를 필터링하는 습관을 키우고, 정치 참여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이런 비관적 전망은 마냥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에 더해 인터넷과 SNS가 텔레비전의 콘텐츠를 확대재상산하는데 머물고, 정치적 영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집단적 결정을 이루는 하위정치의 공간이자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후퇴는 피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집단적 성찰에 들었고 촛불혁명으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인터넷과 SNS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정치적 양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의 감정적 배설과 언어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작동불능의 상태에 이를 것입니다. 반대의 결과를 이룩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는 보다 넓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며, 수많은 정치철학자들과 석학들이 모델링한 진정한 민주주의로서의 참여·직접민주주의가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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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이재명처럼 결격사유와 하자가 많은 인간들이 지도자급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디어의 위력을 말해줍니다. 안철수는 TV 예능프로그램이 만든 허상이었지만 '안철수 현상'이란 새정치의 주인공으로 포장되고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은 촛불집회와 각종 광고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뻥튀기하고,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 세탁에 성공할 정도로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미디어를 활용하는데 도를 튼 정치선동가(히틀러와 스탈린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장은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도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촛불혁명으로 타올 수 있었습니다. 깨어난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이 1%의 희망으로 99%의 절망을 대체하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이재명도 안철수처럼 미디어(텔레비전)가 만든 허상의 정치인임을 깨닫게 된다면 작금의 지지율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문프가 주도하고 있는 평화협정 체결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5.28 08:38 신고

    TV 의 순기능이 많은데 역기능적인 부분이 순기능을
    압도해 버립니다
    그것을 보는 국민들이 걸러 볼줄을 알아야 하는데 곧이 곧대로 보고
    믿으니 종편을 비롯 모든 방송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호도하기 급급합니다

    수구 언론에 반하는 방송들이 나와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4:42 신고

      네, 텔레비전이 정치를 망치는 것은 미국, 한국, 일본 등입니다.
      유럽은 덜한 편인데 유독 한국은 미국만 쫓아갑니다.

  2. 耽讀 2015.05.28 08:43 신고

    진보는 종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나이든 사람과 보수만 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식당이나, 병원을 가면 하루 종일 종편에 틀어줍니다.
    진보는 종편이 만들어질 때, 허가 반대 외칠 것이 아니라 진보언론과 진보세력이 온힘을 다 해 채널 하나라도 개설해야 했습니다. 조중동 중 하나라도 탈락시켜고, 그 중 채널 하나를 확보했다면 언론지형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4:44 신고

      보수 반동이 너무 진행돼 진보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다시 살리고 재정립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로 계속갈 것입니다.
      작은 소규모 공동체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최상인데,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에 치이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은 절망적입니다.

  3. 뉴론♥ 2015.05.28 09:31 신고

    요즘은 1인 미디어가 많긴 하지여 블로그 미디어가 제일 낳긴하네요 .

  4. HowlS 2015.05.29 03:18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5. 공유의 플랫폼 2015.05.29 11:51 신고

    이명박 대통령이 저렇게 가볍과 의미없게 보일줄이야..국민수준이 그랬던것 같아요.

    • 늙은도령 2015.05.29 14:37 신고

      그렇지요, 우리는 경영과 정치를 혼동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6. evitamins 2015.05.30 06:08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글 읽으러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7. CheekyNaru 2015.05.30 18:42 신고

    잘보고 갑니당~!!

  8. 아줌 2015.05.30 19:38

    정몽준 아들이 어느정도는 옳은 말을 한듯...요. 국민수준에 딱 맞는 통령... 미디어를 갖고있죠....

  9. 그렇지? 2015.05.31 03:34

    동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31 03:47 신고

      네, 걱정입니다.
      보수 반동은 미국에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했습니다.

  10. Abricot 2015.05.31 11:39 신고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11. 썸띵 2015.06.17 14:42

    오타나셨어요. 마지막에서 세번째 문단에 가길을 가질로 바꾸셔야 해요. 정독했는데 사실이고 지금도 하향평준화되는 중이라 씁슬하네요. 오락물을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도 한목 한 것 같아요.(낮은 임금에 비해 값비싼 외부활동), 저조차도 이제는 이런 장문 읽기를 꺼려한다는게 정말 무섭고 부끄럽네요. 초등생부터 이런 내용의 교육을 받으면 정말 좋겠어요.독서도 많이 하고요..

    • 늙은도령 2015.06.17 00:57 신고

      네,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타는 저의 한계이니 이렇게 정독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독서는 이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됐습니다.
      인류는 퇴화하는 쪽으로 발전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12. specialist 2015.07.20 22:42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한번쯤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그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시고 글을 주시네요...
    답답한 사람들 훈계하고 상대하시느라 피곤하실텐데 대단하십니다. 이말밖에는...ㅎㅎ

    • 늙은도령 2015.07.20 23:00 신고

      아닙니다, 저도 꾸쥰하 공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니 노력하는 것이지요.



현재의 경제위기는 상위 10%에 부가 집중돼서 소비의 주체인 중하위층 90%의 소비 여력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기술공학과 소프트웨어의 발달, 자동화와 후발국의 저임금노동으로 인해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졌지만, 중하위 90%의 소득이 그것보다 더 떨어져서 경제위기가 도래했습니다.





상위 10%가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중하위 90%의 소비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소비를 늘리는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중하위 90%의 소득이 늘어나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직원의 임금을 인상하는 것도 중하위 90%의 소비 여력을 늘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대침체에 빠져 있는 현실에서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똑같은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화 때문에 무한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이 계속되면 국가의 재정과 기업의 가격경쟁력(기술경쟁력의 차이는 거의 없다)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지구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에 어떤 국가와 기업이라고 해도 나 홀로 이루어지는 소득 증대 성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루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의 재분배를 단행하면 최소 몇 세기는 경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온갖 통계수치들이 나타내는 것처럼 상위 10%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중하위 90%의 부는 그에 비례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장의 대가를 독식했지만,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 부의 불평등이 초래한 폭력시장의 확대와 새로운 형태의 인종차별(특히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도의 인종차별) 같은 사회적 비용(누진적 과세도 사회적 비용을 받아내는 것이다)은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 차원의 법인세 인상과 고율의 누진적 부자증세 없이 현재의 경제대침체와 지구에서 일어난 6번째 종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경제구조가 잘못됐던, 정치구조가 잘못됐던, 사회구조가 잘못됐던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들의 부를 이전하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없다면(언젠가는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30~40년 이내에는 그럴 것이 없다) 인류 전체가 지닌 부를 나눠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중하위 90%에게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라는 것은 흡혈귀의 살인행위와 다름없습니다.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왜곡된 언어로 프레임이 설정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해고된 실업자가 새로운 일자리(이전 직장의 임금과 비슷한)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됐을 때만 유효합니다. 그 외의 경우에는 자본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살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가 형편없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일수록 노동시장 개혁은 소득 증대에 맞춰져야 하고, 그와 동시에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부의 재분배를 단행해야 합니다. 중하위 90%의 목을 조이는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의 폭주와는 정반대로 가는 것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경제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방법은 다 시도해봤지만 그 결과가 작금의 경제대침체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더 길로 가야 하고, 그 길로 가서 성공한 사례를 찾아야 합니다. 2008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은 분명한 성공사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성공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방법입니다. 경제의 선순환으로 접어들기 위해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논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노동시장 개혁 같은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후생을 하향평준화하는 노동유연화는 미국과 영국, 일본과 독일 등에서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정책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사상 최고의 내부유보금을 싸놓은 기업들에게 또 얼마나 많은 내부유보금을 쌓아주려고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수많은 국가에서 실패로 드러난 정책을 밀어붙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을 개혁하기 전에 중하위 90%의 소득 증대와 복지 및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로드맵부터 내놓아야 합니다. 부를 독식하는 동안 나누려 하지 않고 위험만 떠넘겨 온 자본과 기업을 위해 지난 70년을 희생했으면 충분합니다. 이제는 중하위 90%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을 중동으로 내몰 생각만 하지 말고, 의무급식을 중단할 기회만 엿보지 말고, 복지사각지대를 늘릴 정책만 강행하지 말고,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할 압력만 가하지 말고, 중하위 90%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로드맵(보편적 차등복지도 있다)부터 제시하십시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4.08 06:49 신고

    노동시장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지요.이사람들은 지원을 해고하기 쉽도록 하는 말도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하지요. 언어의 유희로 서민들의 눈을 감기고 GNP니 GDP어쩌고 하면서 허위 중산층의식을 심이주고.... 결국은 부자들을 위한 재벌들을 위한 기득권 유지를 위한 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서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08 18:31 신고

      저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닥질 때문에 조금씩 서민들이 깨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은 언론 때문에 그 파괴력이 최소화된 상태인데, 이를 키워나갈 수 있는 글을 쓸 필요가 잇습니다.

  2. 耽讀 2015.04.08 07:19 신고

    박그네 입에서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들어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왜 저들은 노동시장 개혁은 하면서 재벌개혁은 안 하죠?

    • 늙은도령 2015.04.08 18:32 신고

      임기 동안은 안 할 것입니다.
      박에게는 70년대 지식과 신자유주의만 있습니다.

  3. 뉴론♥ 2015.04.08 07:48 신고

    노동시장이 좋아 질거라는 생각은 해번적이 없네요 어디 일한 자리나 있었으면 하지요

    • 늙은도령 2015.04.08 18:33 신고

      국민이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선진국은 그렇게 좋아졌습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04.08 08:56 신고

    상위 1%,10% 소득점유율 이야기 하면
    또 새xx 당은 미국을 보라 하겠네요 ㅡ.ㅡ;

    • 늙은도령 2015.04.08 18:33 신고

      우리는 미국의 나쁜 점만 배워옵니다.
      좋은 점은 절대 가져오지 않습니다.

  5.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2015.04.08 10:26

    자신들의 정권입지와 기득권층을
    더욱 강화하시기 위한 노동개혁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군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드림

    • 늙은도령 2015.04.08 18:34 신고

      노동유연화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를 무력화시키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6. 바람 언덕 2015.04.08 10:41 신고

    언발에 오줌누기...
    딱 그 짝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08 18:35 신고

      노동유연화는 스웨덴도 노동조건을 나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 노동유연화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고 있습니다.

  7. 노동시장의 개선을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

    • 늙은도령 2015.04.08 18:35 신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인류문명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의 경쟁적인 세계에서 다수의 패자들이 떨어진 이삭을 줍는 동안, 성공한 자들은 식탁 위에 차려진 이익들을 쓸어 담는다. 바로 유연성이 그러한 시장을 형성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가 없는 곳에서는 이익이 권력을 지닌 최고위층에게로 돌아가고, 규제가 없는 체제에서는 모든 것을 장악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익을 차지하게 된다. 유연성은 이렇게 승자만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킨다.



위의 인용문은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 나오는 내용으로, 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겠다고 하는 노동시장 개혁(노동유연화)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한 일이란 자본(기업 오너와 경영진, 대주주와 고용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착취를 유연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빨긴 색으로 강조를 준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란 근무연속에 따라 자동적으로 호봉과 복지후생비가 올라가는 정규직 임금체계(연공서열제)를 말합니다. 비정규‧임시직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정규직 임금체계는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고정비용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자본은 핵심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를 아웃소싱하고, 자동화를 통해 비정규‧임시직을 늘렸으며,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상시적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임금체계는 워낙 저항이 심해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돼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선진복지국가마저 무너뜨렸지만, 연공서열제는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연말정산대란의 결과에서 보듯이 유리지갑들이 한 마음으로 뭉치면 어떤 정부도 권력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비정규‧임시직은 하루하루의 삶에 치여 정치적 연대를 구축할 수 없도록 길들이는데 성공했지만,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을 버틸 수 있는 정규직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노동시장 개혁, 즉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자본의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정규직 임금체계를 파괴해서 하향평준화시킬 수 있다면, 정규직과의 차별을 근거로 한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개선 요구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본의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기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 정부였던 이명박 정부는 정규직 노조를 파괴하는데 집중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날개가 꺾인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개혁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규직의 임금체계가 무너지면 임금의 하향평준화는 대세로 굳어집니다.



사실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는 유권자들도 거의 대부분 정규직에 분포돼 있습니다.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증세를 해서라도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정부와 맞서려면 피고용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학력자와 전통의 중산층들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는 것도 이런 생존의 필요성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돈이 곧 힘인 자본주의 세상에서 절대다수의 피고용자들이 부를 독식하려는 극소수의 고용주(자본)와 맞서려면 노동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비정규‧임시직이 하루살이처럼 사는 한 이는 불가능합니다. 이에 반해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은 복지 확대에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반대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확대가 공멸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은 각국의 정부들이 비정규‧임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집중하는데 비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대한민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가면 뒤에서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파괴하는데 성공하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는 유권자들마저 보수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개선 요구는 시대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모두가 비정규직화됐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처우개선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비정규‧임시직들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화려한 스펙과 능력으로 중무장한 이들이 비정규‧임시직으로 내려오면 현재의 비정규‧임시직들은 알바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교훈은 부의 불평등이 초래한 위험의 불평등입니다. 선진국 초입에 있는 대한민국이 패선이 돼야 할 여객선을 수입해 위험천만한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가난해진 사람들을 상대로 후진국형 장사를 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작고한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경고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부의 불평등과 만나면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양산됩니다.    





정부에 의해 정규직 과보호론이 제기된 것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할 정도로 부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명목 상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아니 알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면 이를 되돌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필자의 눈에는 자본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두고 정규직에서 내려온 신규 비정규직들과 기존의 비정규‧임시직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끌어내리는 것 중, 선택은 유권자들이 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것도 유권자들이라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분명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4.06 08:38 신고

    대한민국 총 국부가 100억원이라고 할 때. 1%가 80억원을 먹습니다. 10%가 10억을 먹습니다. 20%가 5억을 먹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80%가 5억원을 먹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것 아닐까요.

    • 늙은도령 2015.04.06 17:20 신고

      맞습니다, 바로 그러한데 우리는 증세도 논의하지 않고 노동시장을 개혁하자고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4.06 10:18 신고

    선택을 다시 해야 할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발 깨어나길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4.06 17:21 신고

      박지원을 보니까 쉽지 않겠네요.
      동교동계의 어깃장을 통해 문재인이 굴복하니...

  3. 참교육 2015.04.06 10:21 신고

    노동자들...청년들... 주부들, 학생들이 깨어나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1%도 없습니다.
    결국은 자본이 주인인 세상이 철옹성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06 17:21 신고

      정말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세계는 변화하는데 대한민국만 거꾸로 갑니다.

  4.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2015.04.06 13:34

    모처럼 늙은도령님 답게 적절한 비유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모순점을 잘 표현해 주셨군요^^

    늙은 도령님께서 인용해 주신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인용문을 보면서
    문득 제가 한창시절 배웠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가난한 자( 패자)들을 위한 배려는
    지금도 그들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지요^6

    저들은 농사할 때도 수확할 때가 되면 떨어진 이삭들은 모두다 거두지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들과 자국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일부러 남겨 둔답니다.

    또한 자국민들이 해외에서 직장이나 결혼문제로 어려움을 당할 때면
    마치도 자신의 일과 같이 직접 나서서 도와 준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고 방식이 오늘날의 강한 유대인들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 대부분의 숫자들이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에 흩어져서 경제를 휘어잡고
    누구도 감히 그 나라를 건드릴 수 없는 위대한 강국으로 만들고 말았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러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없는 행동들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명목상일 뿐
    실제로는 가진 자들이 모든 것을 주무르고 있는 독재사회와도 같은 것이죠^^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드림


    • 늙은도령 2015.04.06 17:23 신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경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본적인 것부터 문제를 일으킵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과두정치입니다.

  5. 착한곰돌이 2015.04.06 13:38 신고

    참 슬픈 현실입니다. 저도 모 크게 다르지 않겠네요...

  6. 나비오 2015.04.06 17:28 신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국민의 자각이 뒤따라야 할텐데
    큰일입니다.
    늙은도령님 같은 분들이 많이 진실을 알리셔야 할 듯 해요 !!1

    • 늙은도령 2015.04.06 18:20 신고

      자본의 힘이 너무 세진 데다 박근혜가 요지부동입니다.
      이러다간 정말로 비정규직의 천국이 되겠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유연화를 또다시 언급했습니다. 지난해 발의한 ‘장그래 양산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신임 한국경제학회 회장에 임명된 이지순 서울대 교수는 모든 근로자를 계약직(비정규직)으로 전환해 평생을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세웠습니다.





반드시 법정에 세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이명박 정부 때 창조컨설팅 같은 용역업체를 동원해 노조를 파괴한 것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밀어붙일 태세입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박근혜 정부가 목을 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기업 이익을 보장해줄 수 있은 유일한 방법은 근로‧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직접 나서면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되니까 정부가 대신 나서 기업의 오너가문과 대주주에게 이익을 몰아주려는 것입니다.





헌데 이것을 거꾸로 보면, 기업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줄어들어 정규직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정부가 기업의 매출과 이익을 맞춰주려면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바꿔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또한 상시적으로 해고가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사상 최고에 이릅니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막나가는 정부라 해도 기업들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국민들에게 추가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뭔가 대다수 국민을 속일 수 있는 그럴싸한 명분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럴 때 동원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흔히 정규직이란 하는 조금 잘나가는 부류와 흔히 비정규직이란 하는 아주 못나가는 부류(두 부류의 차이는 능력과 상관없다)와 싸움을 붙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란 보통 자신과 차이가 워낙 크게 나는 부류와는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만만한 족속을 찾기 마련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바로 그러합니다. 정규직이 많던 시절에는 이런 발상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정규직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나서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양자를 이간질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것에 기초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양쪽에 속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데, 정부는 마치 정규직들이 일치단결해서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것처럼 호도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정책과 제도와 법규, 경영과 사규 등의 다양한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정규직이 의도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이런 작은 차이를 이용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을 분할통치라고 하는데, 성장을 통해 경제규모를 늘릴 수 있을 때는 정규직은 정규직끼리 싸우게 만들고,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끼리 싸우게 만들면 충분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분류를 더욱 세분화해 업종별로, 분야별로, 지역별로 싸우게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헌데 성장을 통해 경제규모가 늘어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분류로는 한계가 있어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더 큰 단위의 싸움을 부추겨야 분할통치가 가능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기업가와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자리합니다.



이들도 낙수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부의 불평등이 돌이키기 힘들만큼 심화됐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기 때문에, 갈등의 단위를 크게 만들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겨야 합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면 차이는 줄어드니 배 아픈 것은 줄어듭니다(당장은 그렇다). 



이렇게 하위 90% 국민이 정규직 대 비정규직으로 싸울 동안, 정부와 국회는 각종 규제완화를 강행해 기업들을 인건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싸워서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면 기업의 오너와 대주주(외국인이 많다)만 이익을 봅니다. 정부가 배당을 늘리도록 했으니 분기마다 이익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려는 이유는 극소수의 통치엘리트가 최소의 비용으로 절대다수의 피통치자들을 지배하기 위함입니다. 기업의 생산성이 하루아침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어서 하위 90%의 차이를 줄여주되, 그들을 하향평준화시키는 것이 친기업적 통치엘리트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7년이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하게 만드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최정점에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해서 정규직과의 차이를 줄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상위 1%에게만 유리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약한 나라에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은 최악의 정책입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기업의 오너와 대주주들을 위해 자산소득(금융소득 포함)를 늘려주는 규제완화와 인건비를 줄여주고 쉽게 해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노동유연화는 반민주적인 행태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3.03 03:57 신고

    이제 더불어 사는 세상은 물건너 갔습니다.
    자본주의 특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입니다.
    노예제 사회의 다른 이름입니다. 자본가들은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친일 친미세력의 후예들이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04:01 신고

      흡혈귀 영화가 판을 치는 이유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이사를 마친 후에 글로 올릴 생각인데,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일반화돼 흡혈귀 영화가 득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뉴론♥ 2015.03.03 06:58 신고

    비정규직이라도 일하고 시퍼요 일자리가 없네요

    • 늙은도령 2015.03.03 16:19 신고

      아이고... 경제 상황이 너무 나빠서요.
      조세정의를 실현해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3. 耽讀 2015.03.03 08:23 신고

    어제 김재환 감독이 만든 <퀴바디스>를 봤습니다.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 비정규직 관련 내용도 있었습니다. 한 반에 학생이 30명이면, 나중에 정규직은 1명이고, 29명이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극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16:19 신고

      심각합니다.
      이런 세상은 뒤집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지옥에 재림입니다.

  4. 바람 언덕 2015.03.03 10:44 신고

    비정규직이 거리로 뛰쳐 나와야 합니다.
    연대만이 이 불평등의 장벽을 깨부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국가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저들의 행태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16:20 신고

      네, 그랬으면 합니다.
      정규직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혁명전야 같은 느낌이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5. 하얀뱀 2015.03.03 10:45

    우리나라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레밍같네요... 뭐 몇놈은 살아남겠죠.

    • 늙은도령 2015.03.03 16:21 신고

      그러면 모두 다 망하기 때문에 정치적 조치가 취해질 것입니다.
      헌데 그때 제대로 된 조치가 일어나려면 우리가 연대해서 싸워야 합니다.
      서민에게 정말 유리하도록 만들려면....

  6. 공수래공수거 2015.03.03 10:55 신고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왜 생겼는지.왜 있어야 하는지..
    참 웃기는 세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16:22 신고

      비정규직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단기 정규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단기간 근무하는 사람도 정규직에 근접한 대가를 받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복지로 받쳐줘야 합니다.

  7. 나비오 2015.03.03 11:10 신고

    사람을 분할하여 싸우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죠

    없었어야할 7년이 지금도 지나고 있네요 ㅜㅜ

    • 늙은도령 2015.03.03 16:23 신고

      악마의 정부입니다.
      비열한 통치를 하는 것이지요.
      통치행위에도 대가를 치르게 해야 이놈의 나라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8. 꼬장닷컴 2015.03.03 13:09 신고

    아직 점심 전인데..
    최경환 사진보니 입맛이 뚝 떨어 집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16:24 신고

      저도요.
      나라 말아먹는 자...
      박근혜의 무지를 이용하는 자....
      국민을 기업을 위해 희생시키는 자.......

  9. 휴 정말 모든게 잘풀려야 하는데 요즘 너무 어렵네요 ㅠ

    • 늙은도령 2015.03.03 17:10 신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초국적기업들이 힘들 정도면 말 다한 것이지요.
      대형 금영업체와 거대 자본만 먹고 사는 세상이 됐습니다.

  10. 천추 2015.03.03 18:54 신고

    아 정말 시민이 거리로 나와야 하는대가 아닐런지요,,,

    • 늙은도령 2015.03.03 21:41 신고

      네, 그런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안 됩니다.

  11. 기저 2015.03.03 23:12 신고

    저와 같은 젋은 세대가 정치권 문제, 제도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야하는데, 당장 대기업, 정규직 취업이라는 프레임에 갖혀서 스펙쌓기나 하고 앉아있고, 취업을 하고 나면 비합리적인 노동시간, 업무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갖을 수 없으며, 극히 일부가 선구자로서 행동한다하더라도 적색분자로 낙인을 찍도록 여론을 조성하니 이것이 상위1%의 통치 방식인가봅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23:44 신고

      인식의 보수화가 꾸준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별적인 개인이 항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20% 정도만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강했구요.
      헌데 지금은 70~80%가 대학에 갑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살기 위한 경쟁만 남게 됩니다.
      대학을 들어가지 않아도 살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기 전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학 졸업이 힘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진학을 원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최대한 지원하되 졸업을 힘들게 하고, 복지나 사회안전망 확장을 통해 꼭 대학에 나올 필요가 없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들도 한계에 이르면 터질 것입니다.
      현재 많은 대학생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지만 계기만 주어지면 터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때가 됐을 때 터질 수 있도록 연대의 폭을 조금씩 늘리면서 기다려 주시면 필요한 시기가 올 것입니다.
      힘 내십시오.
      전 대학생들의 내면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많이 고민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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