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들어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기 위한 짓거리들이 청와대와 여당에서까지 난무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기 위한 이들의 헛짓거리는 언제나 변함없는 기레기들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과 신현수 민정수석 간에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와 그것에 대한 유영민 비서실장의 발언, 그의 발언에 제동을 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단의 해프닝은 무엇이 진실이던 간에 기레기와 야당(국짐은 물론 정당에서 정치동아리로 전락한 정의당 포함)들의 먹거리로 자리잡은 모양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림없이 지지하는 저로써는 대단히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지만, 이재명을 미래권력으로 밀어주고 있는 민주당 꼴통들에 의한 대통령 흔들기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어서 답답한 노릇이네요. 단임제 대통령제 하의 권력의 역사란 이런 악순환의 반복을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미래권력으로 갈아탄 여당 내부로부터의 반발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문프의 입장에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언제까지 어디까지 박살낼까와 적정선의 국가채무를 둘러싼 무차별 기본소득에 대한 공방이 이런 혼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검찰 언제까지 어디까지 박살낼까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지만 무차별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가채무와 관련된 무차별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세계적 경제석학 만큼은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재부가 엠바고를 요청한 사안을 단독보도한 MBC의 엠병신 짓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과 연동시켜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엠병신은, 당정청이 힘들게 합의에 이른 4차재난지원금 규모를 보도함으로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짓거리를 자행했습니다. 국가부채의 적정선에 대한 경험적이고 학문적인 합의가 없는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엠병신의 엠바고 파기는 기본소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시급한지 말해줍니다. 

 

 

무차별 기본소득은 정부 차원이나 그에 준하는 대규모 차원에서 이루어진 실험은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앨라스카처럼 지역 차원에서 성공한 예도 특수한 경우여서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나온 기본소득 개념을 이어받은 조지스트들의 주장도 변방의 소리일 뿐입니다.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의 전반부에서 제시한 경제학과 극단의 혼란과 불평등에 빠진 19세기의 미국이란 조건이 전제될 때만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무차별 기본소득이 극적으로 되살아난 것은 제레미 러프킨처럼 구글이나 페이스북 소속의 인공지능 특이점주의자들의 뻥튀기에 놀아난 미래학자들ㅡ기본소득에 반대하지만 그외에는 똑같다는 데서 유발 하라리로 포함된다ㅡ이 유사마르크스주의적 접근으로 공동묘지로 되돌아간 기본소득을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불평등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인정한 채 하위 99.99%에게 똑같은 금액을 나눠줘 불평없는 노예처럼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마지막에 보면 빅데이타 기반의 인공지능과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낼 유전공학 및 나노공학이란 과학기술의 수렴현상을 한 장으로 요약한 뒤, 이 두 가지를 독점할 극소수의 거인들이 모든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무용지물처럼 버려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에서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제시하지만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에 너무 나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구글을 둘러본 후, 그들의 능력에 화들짝 놀란 제레미 리프킨이 <한계비용 제로사회>를 출판한 것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에릭 드렉슬러의 <창조의 엔진>과 케빈 켈리의 <통제불능>,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등등이 출판된 이후, 일단의 철학자와 물리학자, 허리우드 영화제작자들까지 참여한 과학자와 기술자, 영화제작자 등이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의 종말을 떠들어대면서 부의 극단적 독점과 그런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대안으로 무차별 기본소득을 공동묘지에서 불러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한달에 300만원 가까이 주겠다는 무차별 기본소득은 얼핏 들으면 이보다 좋을 것이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엇에 써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닥 하고, 그래서 혁명도 필요없고 남의 눈치도 볼 것이 없기 때문에 닐리니맘보로 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표퓰리즘의 전형인 무차별 기본소득은 극단적 표퓰리스트인 이재명에게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로 보였을 것입니다. 세월호참사를 더 이상 우려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차별 기본소득은 하늘이 준 선물 같았겠지요.

 

 

 

헌데 모든 국민에게 매달 300만원 정도를 준다는 것은 80%대 이상의 초누진세가 아니면 기존의 복지를 대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액수를 수만 원 대로 떨어뜨졌습니다. 그건 기본소득이 아닌 기본용돈에 다름없지만 엠병신과 모든 진보매체와 유튜버들이 밀어주고, 운이 좋게도 코로나19까지 장기화됐으니 용돈 수준이라도 떠들어댈 수 있었지요. 온갖 문제점이 밝혀지자 이제야 증세를 들고나왔지만 보편적 증세라고 합니다.

 

 

미쳐도 한참 미치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판에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용돈을 나눠주겠다니.. 이럴 경우 정규직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자들은 이렇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부자들은 부와 권력, 기회의 독점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우리는 가난이라는 생각에 금방 익숙해진다. 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하는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오래 계속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ㅡ 토크빌의 편지에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재인용  

 

 

 

 

 

아래의 인용문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제5권 제2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인류가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부를 늘려왔음에도 부의 불평등과 지독한 빈곤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산업화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빈곤의 증가 ㅡ 헬조선의 근원 ㅡ 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설명해주기도 힘들 것입니다. 기본소득제의 정당성도 아래의 인용문 안에 녹아 있습니다.

 

 

불평등과 빈곤 증가의 근원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의 노동착취에 중점을 뒀다면,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화의 독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깝든 신자유주의가 19세기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현재의 부정의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과 정당성, 수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주류경제학이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는 진리가 두 사람의 주장에 들어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산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액에 머무는 이유는,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지대가 더 큰 비율로 상승함으로써 임금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문명 발달의 직접적인 결과는 욕구 충족을 위한 인간 노동의 힘을 모든 면에서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빈곤을 타파하고 궁핍과 궁핍에 대한 두려움을 추방한다. 진보의 내용과 진보하는 사회가 추구하는 상태의 직접적이고 자연적인 결과는,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물질적 상태를 ㅡ 그에 따라 지적, 도덕적 상태도 ㅡ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문명 발달이 가져오는 혜택을 거두지 못한다. 누군가 이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노동에 필요한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전락하여,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모두 지대 ㅡ 노동이 자신의 힘을 적용하는 기회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ㅡ 상승으로 흡수된다. 이리하여 계속되는 진보에 의해 생기는 모든 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고 임금은 증가하지 않는다. 임금이 증가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회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 노동의 생산의 증가에 동반하여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유 노동자의 생활도 자기 노동의 생산력이 증가하면 절대적으로 내지 상대적으로 더 악화될 수 있다. 지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투기 경향이 발생하는데, 투기는 지대를 더욱 상승시킴으로써 앞으로 이룩될 개선의 효과를 반감시켜 버린다. 또 투기 없는 통상적인 상황과는 달리, 임금을 노동자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노예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린다.

 

 

이와 같이 노동은 생산력 향상의 모든 혜택을 박탈당하고 문명 발달의 부작용에 희생된다. 노동은 문명 발달에 자연스럽게 수반하는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자유 노동은 노예처럼 무기력하고 비천한 상태로 전락한다. 문명이 발달하며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개선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노동은 불가피하게 분업되어 구성원의 독립성이 상실된다. 그러나 노동자 전체로서의 능률은 향상된다.

 

 

아주 평범한 물자를 공급할 경우에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개별 노동자는 그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대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미개 부족의 경우 노동생산물 총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각자 독립적 생활을 해나갈 능력이 있다...즉 모든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 자기 부족에서 떨어져도 살아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관계에서 자유로운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 미개인과 문명사회의 최저층 노동자와 비교해 보라. 사회의 부 가운데에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물자도 많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 가운데 한 가지 물자 내지 그 물자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생산하면서 산다. 노동자는 자기가 일하는 데 필요한 도구조차 만들 수 없으며, 자신이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할 능력도 없는 도구로 일을 한다. 노동자는 미개인보다 더 장시간 더 힘들게 일을 하지만 미개인이 얻는 단순한 생활필수품 이상을 얻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미개인이 누리는 독립성을 잃고 산다. 자신의 힘으로 욕구를 직접 충족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동시에 일해 주지 않으면 간접적으로도 충족하지도 못 한다.

 

 

이 노동자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거대한 체인의 한 연결 부분에 불과하며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다. 사회 속의 지위가 낮을수록 사회에 더 의존적이 되고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극히 줄어든다. 자신의 요구 충족을 위해 노동을 행하는 힘조차 자신의 통제 밖에 놓인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또는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어떤 일반적인 원인에 의해서 이 힘이 박탈되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초적 저주를 은혜처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선인 양 그리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법제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 즉 신처럼 환경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노동자는 노예나 기계나 상품이 되어 버리고 어떤 점에서는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

 

 

......(이 때문에) 부의 한 가운데서 빈곤에 처한 계층은 미개인이 누리는 인간적 자유도 없이 빈곤하기만 하다. 생활의 협소함과 왜소함에서는 미개인보다 더 하면서 천부의 능력을 성장시킬 기회도 없다. 미개인보다 더 너른 세상에 산다고 하지만 이는 누리지 못할 축복에 불과하다. 

 

 

P.S. 위의 인용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하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십시오.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답해 드리겠습니다. 

  1. 뉴론♥ 2015.11.07 08:26 신고

    헬조선은 요즘 유행어디르고요 어디가나 댓글에 많긴한데
    왼지 씁슬하죠

  2. 훈잉 2015.11.07 10:39 신고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3. 空空(공공) 2015.11.07 12:29 신고

    갈수록 예전보다 못해 지고 있습니다

  4. 구름바다 2015.11.11 19: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기고문이 뜸하여 궁금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겼었군요...

    너무 무리하게 연구에 몰두하지 마시고
    부디 건강 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에너지가 충만한 나날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5. 참교육 2015.11.12 09:28 신고

    인간이 만든 최악의 제도가 자본주의요 잔본주의 중에 가장 알랄하 게 신자유주의입니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6. 불루이글 2015.11.12 16:02 신고

    손만 내밀면 원하는 물건들이 쇼윈도 너머에 넘치도록 풍성 하지만 그기에 도달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간과 노동은 갈수록 길어지고 힘들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의식주에 다가가는 데 필요한 노력을 낮추어 주는 정치력 있는 정당을 선택 하는 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방법은 오직 투표 밖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7. 공유의 플랫폼 2015.11.17 10:10 신고

    맞아요..자유처럼 보이지만 자유가 없는 사회처럼 지대가 너무 높아져버려서 소비여력이 없게되었죠.

  8. 2015.11.20 06:07

    비밀댓글입니다

  9. 덕산 2015.11.24 17:39

    갈수록 이런 사회적 현상이 고착화 될 것 같네요...
    건강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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