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종합검사 결과 간암이 재발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상태도 안정돼 있었지만 지방간 수치가 올라가 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운동량을 늘리면 지방간 수치도 내려갈 수 있으니 이제는 저와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처음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 5년 생존률이 40%였기에 산술평균으로 하면 2년은 살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기간은 채웠습니다. 이제부터의 삶이란 제가 주어진 여분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동생이 다니던 회사가 삼성에서 롯데로 넘어갔지만 생명연장에는 성공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고, 제가 사는 이유 중 하나인 사랑스런 조카는 영국의 명문대에 합격했습니다. 형은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중국 정부와의 공동사업도 원할하게 진행 중입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셨는지 어머님의 건강도 유지되는 등 저의 집안은 행복하고 충만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데 저의 집안만 잘 나가는 것인지 미안할 따름입니다. 세계경제가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한국의 상황은 풍전등화라 할 수 있음에도 잘되는 놈은 잘되는 것이 삶의 불공평한 역설일지 모르겠습니다. 청춘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노동자를 보면 안타까움이 커지고, 세월호 유족들을 보면 슬픔을 주체할 수 없고, 언론을 보면 분노를 다스리기 힘들고, 정치를 보면 숨이 막히지만 저의 가족만 무풍지대로 들어선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여러분들의 도움과 응원, 격려로 여분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반성적 성찰과 지적 사유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삽니다. 제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주었고, 그 덕분에 세상의 부정의와 부조리를 향해 미력한 글이나마 떠들어댈 수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자동차 정기검사를 받고 안산분향소를 가볼 생각입니다. 단원고 희생자들과 유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희생자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의 지식과 경험, 성찰을 전해줄 생각입니다. 그것부터 하지 않으면 다른 일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제게 주어진 여분의 삶 중에서 상당 부분을 그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그런 노력은 제 건강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가슴에서, 영혼에서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들이 떠올라 저를 짓누르는 것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의 개별 만남도 갖고 싶습니다. 제가 멀리 갈 수 없는 관계로 산본으로 오시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만 연락을 주시면 무조건 가능합니다. 주치의도 보다 많은 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삶이 살아갈 만할 것이 될만큼의 행복이 주어지고, 거기서 솟아나는 활력으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주인공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한 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살 수 있었고, 조금 더 살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잊었던 말,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이어. 여러분들이 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행복하세요.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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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24 19:3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24 20:33 신고

      제 페이스북 주소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ireem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에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꼭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참교육 2015.12.24 19:59 신고

    축하드립니다.
    진짜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새해는 더욱 건강하셔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방황하는 사람들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 술맛을 알아? 2015.12.24 22:40 신고

    건강이 많이 호전되어서 다행입니다.
    남은 생을 여분이라 여기시는 그 뜻은 아마도
    절실했던 순간들을 겪어보신 분들께서나 하실수
    있는 말씀인것 같네요.
    모쪼록 쾌차하시어 많은 이들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셨으면 좋겠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12.25 01:04 신고

      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과 새해가 되기를 바랄게요.
      많은 분들 덕분에 이렇게 살게 됐으니 나누며 살아야죠.
      감사합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12.25 09:10 신고

    다행이십니다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을 하시면 완치 되리라
    믿으며 더 건강하시게 될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순간의 행복을 누리십시오

    형님이 화학분야 계시는가 보군요..ㅎ

  5. 백순주 2015.12.26 05:52 신고

    오~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저도 새해에는 축하받을 일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우선 저에게 말입니다.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순풍에 돛을 달았습니다.
    부디 내년에도 도령님의 가정에 복이 깃들길 희망하겠습니다^^

  6. NJ원시 2016.01.25 05:38 신고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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