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부터는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언론의 영향력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SNS와 아고라와 오늘의유머 같은 각종 커뮤너티와 그룹들의 네트워크가 넘어설 수 있을지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4년 6개월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4년정도는 아고라에도 올렸습니다. 6개월 전부터는 오늘의유머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두 달 전부터는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제가 아고라에 올린 글 중 19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이 최고였습니다. 글이 퍼날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100만 명 정도가 읽었을 것이라 추산됩니다. 하위 99%가 상위 1%의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필자의 모든 글이 이 정도에 이를 수 있고, 저 말고도 10명 정도의 논객들이 비슷한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면 쓰레기들의 현실왜곡과 이익 독점에 맞설 수 있는 민주주의의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정도에 이르면 미네르바처럼, 저와 논객들도 국정원과 정치검찰의 수중으로 넘어가겠죠. 그들은 초법적 코걸이와 귀걸이를 가지고 있어서, 어디에 걸던 저와 논객들을 법정으로 끌고가 재기불능의 만신창이로 만들겠지요. 아고라가 정권의 집중포화에 굴복해 조회수 1만도 넘기기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오유에서 몇 만의 조회수를 올린다 해도 그저그런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은 제 고정관념을 깨뜨린 하나의 글 때문입니다. 제 건강 상의 문제와 티스토리의 폐쇄성 때문에 일일방문객이 천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떨어진 상황에서 한 편의 글이 6,000명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것입니다. 블로그의 유입경로를 살펴보니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방문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글이 페이스북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란 고정관념 때문에 그곳에서의 활동은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연동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제 글에는 광고가 실려있어서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반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2천만원이 넘은 도서구입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광고를 실었는데, 이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분들이란 4년 동안 저를 지켜본 애독자와 6~10명 사이를 오갔던 후원자를 빼면 페이스북에선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상위 1%의 광고와 협찬에 따라 재갈거리는 쓰레기들의 무비판적 보도와 노골적인 왜곡에 맞서는 글을 쓰면서 광고비용으로 도서를 구입하는 제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실정 때문에 조기 레임덕에 빠진 박근혜를 지켜주기 위해 엽기적이고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사건·사고만 다루는 쓰레기들의 보도에 맞서, 하위 99%를 지옥으로 내모는 것들의 실체를 밝히는 필자의 글들이 보다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면, 저보다 뛰어난 논객들도 주 활동무대를 페이스북으로 옮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상위 1%의 천국을 무너뜨리려면 SNS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제가 두 달 동안 페이스북에 전념한 결과, 페친의 네트워크만으로 쓰레기 언론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그룹에 가입했습니다. 그럴수록 제 글의 중복 노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발(이유도 모른 채 일부 기능의 정지를 당했다)도 심해지리라 생각하지만, 한 분에게라도 더 노출될 수 있다면 상위 1%의 압도적인 힘에 맞설 수 있는 꿈의 네트워크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 믿게 됐습니다.      



사이버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커뮤너티와 그룹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숫자는 하위 99%의 열망과 희망, 절망과 체념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푸코가 말했듯이,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상위 1%와 다양한 저항점을 형성하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양한 기호와 지향에 따라 파편화되거나 정예화된 이들을 보다 촘촘하게 연결할 수 있다면 혁명적 변화도 가능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도권 언론에서는 종적을 감춘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저항, 위안부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청춘들의 희생적인 소녀상 지키기, 이재명과 박원순 시장의 활약상과 정치철학 및 복지실험, 노동개악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백남기 농민의 근황, 말도 안 되는 법 해석에 의해 법외노조로 전락한 전교조의 투쟁, 한국 정치사의 혁명을 이뤄낸 10만 명을 넘은 온라인입당 러시, 표창원에서 시작된 바람몰이가 김병기를 거쳐 조응천에 이르러 화룡점정을 찍은 대박행진 중인 문재인의 인재영입, 정의당과 노동당과 녹색당 등의 진보정당의 활약상 등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어떤 형태로든 연대의 필요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하위 99%의 진실과 정의는 이곳에 있었고, 넘칠 만큼 많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그것들이 각개전투나 게릴라전에 머물러 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의도적으로 뿌려지는 음란성 글들과 영상들이 커뮤너티와 그룹를 채우는 것들이 싫고, 특화된 내용만 다루려는 의도는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페이스북을 떠도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들이 각자도생의 파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돌파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회원이 늘어나면 커뮤너티 브레이커가 등장하기 마련이듯이, 촘촘한 연결이 늘어나 네트워크의 촘촘함이 강화되면 그것에 따른 반작용도 커지는 것은 불변의 진실입니다. 수많은 커뮤너티가 이런 과정을 겪으며 분열되고 폐쇄적으로 변한 것은 이해의 조정보다 갈등의 조성이 더 빠르고 쉽기 때문입니다. 상위 1%라는 체제의 지베엘리트들이 원했던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일'들이 일본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없는 필자로서는 단 하나의 선택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2달 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면서 조회수를 늘릴 수 있었던 노하우를 모든 논객들에게 오픈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의 콘텐츠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늘어나 상위 1%에 맞서는 하위 99%의 힘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만 고집하는 논객들의 보다 열린자세가 필요하다고 믿게 됐고요.    



머리를 스치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잇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논객들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글을 쏟아낼 수 있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수십 수백 배에 이를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필자가 글을 쓰는 목적이 평생 동안 읽은 책들(약 3,000권)과 상당히 특별했던 현실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깨우친 것들을 나눠드리는 것이기에, 이에 동참하는 뛰어난 논객들이 늘어난다면 반칙과 특권이 사라진 상식과 원칙이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도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닐 포스트만이 말했듯이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발전은 상위 1%에 힘과 돈을 몰아주는 적으로 많이 쓰였지만, 우리의 선한 의지와 정의 실현의 열망에 따라 친구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문화지체를 피할 수 없지만, 최종적 결정은 우리가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만이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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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시 2016.02.04 19:26 신고

    도령님이 보시기에, 페이스북과 블로그의 각각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 늙은도령 2016.02.04 19:43 신고

      블로그는 소수라도 고정독자를 확복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긴 글도 가능하고, 논리적 접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티스토리는 이용자수에서 페이스북에 너무나 뒤떨어집니다.
      다음에서 특별히 다뤄주지 않으면 일일방문객이 천 명을 넘기는 것도 하늘에서 별따기입니다.
      꾸준한 노력이 있어도 수백 명에 머물기 일쑤입니다.

      페이스북은 그것에 비해서 나와 공통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그룹에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파급력은 매우 높습니다.
      저의 일일방문객이 하루에 42000명에 이른 적도 있습니다.

      무조건 페이스북 활동을 늘리십시오.
      글의 질도 중요하지만 목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라면 페이스북은 하나의 오아시스입니다.
      님과 생각이 비슷한 그룹들을 검색해 가입하고 글을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2. 원시 2016.02.04 19:51 신고

    도령님...아 답변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페이스북도 일일방문객 숫자를 알 수가 있나보죠? 4만 2천명이면 어마어마한데요?

    여튼 정보 공유 감사합니다. 도령님의 블로그를 제 링크에 첨가해두겠습니다.

    보시기에, 블로거들 중에서, 추천하시고 싶은 사이트가 있으면, 몇 개 추천해주세요. 저도 링크해 두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2.04 20:54 신고

      추천할 블로그는 제 링크의 상위에 위치한 분들입니다.
      총선까지는 미친듯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블로그거들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총선이 끝나면 블로그 방문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3. 원시 2016.02.04 21:01 신고

    옙 감사 합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6.02.05 08:28 신고

    그래서 방문자가 폭발적으로 늘으셨군요
    도령님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합니다

  5. 조남주 2016.02.07 17:06 신고

    공감을 넘어 감동입니다~^^

  6. 식스파이 2016.02.18 00:24 신고

    좋은 글 늘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7. 시골잔차 2016.07.11 20:48 신고

    훌륭한 글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8. BC 2016.11.01 11:37 신고

    페이스북 링크는 혹시 없을까요?
    검색해봐도 나오지가 않아서..

  9. 참교육 2016.11.08 08:24 신고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같은 분의 뜻이 전해서 세상이 자유와 평등을 실현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슈퍼 엘리뇨에 의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보통 10~20년 간격으로 발생해 2년 정도 지속되는 슈퍼 엘리뇨는 기상관측이 이루어진 이래 세 번(1972-73년, 1982~83년, 1997~98년) 일어났습니다. 이중에서 세 번째 슈퍼 엘리뇨(해수면의 온도가 2도 이상 3~6개월 정도 이어질 때 발생하는데, 19997~98년에는 최대 4도 이상 해수면 온도가 높아진 곳도 있었다)가 가장 큰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해류의 변화 등에 따라 바다에 엄청난 열에너지가 축적돼 일어나는 엘리뇨는 적도 주위의 태평양에서 무역풍(동풍)이 약해짐에 따라 적도를 기준으로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할 때 발생합니다. 엘니뇨에는 적도 중앙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태평양 엘니뇨와 적도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동태평양 엘니뇨로 나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을 속출시키고 있는 슈퍼 엘리뇨는 동태평양 엘니뇨에 속하는데, 이 때문에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 남미 등에서 발생한 폭설과 폭우, 가뭄과 폭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국의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거대한 냉기류가 슈퍼 엘리뇨와 정반대로 적도를 향해 밀려나는 것과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기상이변과 감당하기 힘든 재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남미에 위치한 페루와 미국이 샌프란스시코를 거쳐 동아시아로 이어진 환태평양대에 속한 한국에서 세 계절에 걸친 혹독한 가뭄과 겨울에 들어와 이상고온과 갑작스런 한파가 교차하는 것도 슈퍼 엘리뇨 때문입니다. 이런 기상이변과 재해에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내년 봄까지는 슈퍼 엘리뇨와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지구적 차원의 각종 기상이변과 거대한 재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문제는 슈퍼 엘리뇨의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기 시작하면 현재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록적인 가뭄과 폭설, 폭우와 태풍이 상시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도 수십 배 이상의 강도와 규모로. 20년만에 발생한 슈퍼 엘리뇨의 피해로 전 세계가 비상사태에 빠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 대기의 평균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는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피해는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만약 인류가 무차별적인 개발과 성장, 그에 따른 변화한 인류의 삶의 방식 때문에 발생한 지구온난화를 2도 상승에서 잡아내지 못하거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 온도 상승을 최대한 미루지 못한다면 비대칭적 종말(특히 위험한 지역의 중하위층에 집중될 종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온도 상승이 4도에 이른다면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체가 거의 다 종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과 기상학자들, 양심적인 석학들이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외치고 있지만, 박근혜처럼 대규모 개발을 피할 수 없는 성장을 외치며, 지구온난화를 늦추는데 도움이 되는 필수규제를 마구잡이로 풀고,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세우고 있을 상위 1%를 위해 노동개악과 경제 관련 법안들을 추진하는 것은 하위 99%를 죽음으로 내모는 최악의 홀로코스트에 다름 아닙니다.





이반 일리치로 대표되는 탈성장론자들의 주장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닙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소비를 줄이고ㅡ특히 에너지와 육식ㅡ취업과 교육을 위한 이동거리를 줄여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정부 차원의 대규모 성장정책이 추진된다면 모든 것이 말장 도루묵입니다. 미래세대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모든 성장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20년만의 슈퍼 엘리뇨처럼, 지구온난화는 피할 수 없지만 최소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도록 늦출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구온난화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든 성장지상주의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유)시장근본주의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오직 정치만이 체제를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정치를 선택하는 우리 모두의 선택이 현명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위기와 민생을 내세워 성장지상주의를 외치며 지구온난화를 주도한 정당과 정치인부터 퇴출시켜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우파로 대표되는 이들이 더 이상 인류를 상대로 거대한 지적사기를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많은 시민과 청춘, 학생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박근혜의 잔인함은 슈퍼 엘리뇨와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한파보다 더욱 치명적입니다. 부디, 건강 잘 유지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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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1.25 08:56 신고

    대한민국이 꽁꽁 얼어 붙었고
    폭설로 많은 시민들이 발이 묶여 있습니다

    제주 공항 사태는 미리 조처 못한 정부의 부실 행정 결과입니다

    한파에 건강 잘 돌보시기 바라겠습니다

  2. ZERO 2016.02.25 20:24 신고

    1999년과 2012년은 끝났지만 1999와 2012는...

    • 늙은도령 2016.02.25 22:38 신고

      지구온난화와 슈퍼엘리뇨는 다른 현상입니다.
      이번의 슈퍼엘리뇨도 자체적 현상이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슈퍼엘리뇨가 입힌 피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물론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피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이 두가지 합쳐진 결과는 내년부터 본격화됩니다.



먼저 아직까지도 저를 후원해주시는 네 분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 번이라도 저를 후원해주신 분들께도 영혼을 담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최근에 들어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주신 분들에게도 진심을 다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올 한 해는 좋은 일들이 많기를 바라며 무엇보다도 사람사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랍니다.





새해의 첫날을 열면서 숨겨두었던 얘기 하나를 할까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에서 한 연설인데요,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라 사실에 가장 가까울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딱 한 번 국정원에 가 연설을 했는데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있었습니다. 



중앙을 기준으로 할 때 나는 좌측에 있는 사람입니다. 국정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측에 있는 정부기관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인 제가 좌측으로 너무 좌측으로 가려고 하면 국정원이 보다 우측의 입장을 강조함을써 균형을 잡아주십시오. 국민의 반이 좌측에 있고, 나머지가 우측에 있다고 한다면 나는 가능한 한 좌측의 입장을 고려할 생각이니 여러분은 반대로 우측의 입장을 말해주십시오. 다만 국내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것만 잘 지켜주시면, 제가 국정원을 다시 오지 않겠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국정 운영에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 ㅡ 비판이 필요할 때는 했지만 ㅡ 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나라에서 스스로의 권한행사를 민주적 절차와 법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좌우 양측의 입장 모두를 반영(좌측을 조금 더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통치하는 입장에서 경제성장을 포기할 수 없었고, 반대로 부의 재분배와 복지 확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박근혜는 아집과 불통이지만, 노무현은 원칙과 소통이었습니다. 박근혜의 참모들은 받아쓰기에 바쁘지만(그렇게 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과정에 살이 붙어 개판이 됐다), 노무현의 참모들은 수평적 토론에 바빴습니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일방적 통치를 위해 방송장악에 집중했지만, 노무현의 청와대는 민주적 통치를 위해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박근혜는 국무석상에서만 얘기하지만, 노무현은 국민과의 대화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박근혜는 기득권화한 특권층의 입장만 생각하지만, 노무현은 기득권화한 특권층과는 철저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노무현을 샅샅이 털어도 나온 것이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들이 통치자금으로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에게 시스템적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상납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노무현은 이것을 받지 않고 시스템도 폐지해 거의 모든 재벌들의 비자금사건으로 곤혼을 치러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애석한 것은 이런 노무현 대통령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들(조중동이 행동대장)의 담합이었습니다. 노무현은 이것을 끝내 돌파하지 못했고,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장 성적이 좋은 대통령이었으면서도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여정부 2인자이자 노무현의 친구였던 문재인이 당대표에 오른 이후 기득권세력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은 것도 노무현에게 가해진 융단폭격의 연장입니다.





문재인은 이때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며, 시민의 온라인 입당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기득권 의원들을 최대한 빨리 물갈이시켜야 합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서로 교류를 늘리고 글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아우성을 치고 거리로 나서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를 외쳐야 합니다. 올해 최대의 목표는 문재인 체제로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MBC와 KBS 경영진들과 이사장, 이사들의 퇴출입니다. 



박근혜는 총선 승리를 위해 맞춤형 매표행위를 줄기차게 진행할 것입니다, 서민증세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정부에서 어떤 선심성 정책이 나오면 그 모든 것이 총선용임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것에 대해 계속해서 떠들어야 합니다. 총선은 투표율이 50%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지자들을 누가 더 많인 투표소로 이끌어내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안철수 신당 때문에 수도권이 문제이지만 우리들의 목소리가 더 크면 극복할 수 있는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 해는 미쳐보는 것입니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무한퇴행한 대한민국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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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1 13:58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01 15:36 신고

      네, 님도 건강하시고 올해에는 행복한 일이 많기를 바랄게요.
      님도 화이팅 하십시오.

  2. PinkWink 2016.01.01 16:16 신고

    이렇게도 역사가 뒤돌아 갈수 있는 것인지..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3. 별밤러 2016.01.01 16:30 신고

    하루차이지만 올해는 사회가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4. 공수래공수거 2016.01.01 18:23 신고

    2016년에는 이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진자보다 못 가진자를 우선하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를 꿈꿉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

  5. 참교육 2016.01.01 18:47 신고

    국민들은 제 복을 자기 발로 차버립니다.
    노무현 같은 지도자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습니다.
    학교가 우민화를 시키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이제 좀 깨어냐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는 한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6. 2016.01.01 21:4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01 23:24 신고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회적 약자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됐으면 합니다.
      문제는 상위층과 하위층이 너무 차이가 벌어져서 합의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메워줄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노무현 같은 지도자가 다시 나와야 합니다.
      문재인이 노무현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7. 2016.01.02 21:10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01 23:22 신고

      님도 좋은 소식이 많기를 기원합니다.
      올해도 열심히 공부하고 글 쓰고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죠.

 

 

정밀종합검사 결과 간암이 재발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상태도 안정돼 있었지만 지방간 수치가 올라가 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운동량을 늘리면 지방간 수치도 내려갈 수 있으니 이제는 저와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처음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 5년 생존률이 40%였기에 산술평균으로 하면 2년은 살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기간은 채웠습니다. 이제부터의 삶이란 제가 주어진 여분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동생이 다니던 회사가 삼성에서 롯데로 넘어갔지만 생명연장에는 성공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고, 제가 사는 이유 중 하나인 사랑스런 조카는 영국의 명문대에 합격했습니다. 형은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중국 정부와의 공동사업도 원할하게 진행 중입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셨는지 어머님의 건강도 유지되는 등 저의 집안은 행복하고 충만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데 저의 집안만 잘 나가는 것인지 미안할 따름입니다. 세계경제가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한국의 상황은 풍전등화라 할 수 있음에도 잘되는 놈은 잘되는 것이 삶의 불공평한 역설일지 모르겠습니다. 청춘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노동자를 보면 안타까움이 커지고, 세월호 유족들을 보면 슬픔을 주체할 수 없고, 언론을 보면 분노를 다스리기 힘들고, 정치를 보면 숨이 막히지만 저의 가족만 무풍지대로 들어선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여러분들의 도움과 응원, 격려로 여분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반성적 성찰과 지적 사유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삽니다. 제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주었고, 그 덕분에 세상의 부정의와 부조리를 향해 미력한 글이나마 떠들어댈 수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자동차 정기검사를 받고 안산분향소를 가볼 생각입니다. 단원고 희생자들과 유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희생자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의 지식과 경험, 성찰을 전해줄 생각입니다. 그것부터 하지 않으면 다른 일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제게 주어진 여분의 삶 중에서 상당 부분을 그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그런 노력은 제 건강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가슴에서, 영혼에서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들이 떠올라 저를 짓누르는 것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의 개별 만남도 갖고 싶습니다. 제가 멀리 갈 수 없는 관계로 산본으로 오시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만 연락을 주시면 무조건 가능합니다. 주치의도 보다 많은 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삶이 살아갈 만할 것이 될만큼의 행복이 주어지고, 거기서 솟아나는 활력으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주인공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한 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살 수 있었고, 조금 더 살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잊었던 말,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이어. 여러분들이 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행복하세요.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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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24 19:3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24 20:33 신고

      제 페이스북 주소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ireem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에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꼭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참교육 2015.12.24 19:59 신고

    축하드립니다.
    진짜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새해는 더욱 건강하셔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방황하는 사람들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 술맛을 알아? 2015.12.24 22:40 신고

    건강이 많이 호전되어서 다행입니다.
    남은 생을 여분이라 여기시는 그 뜻은 아마도
    절실했던 순간들을 겪어보신 분들께서나 하실수
    있는 말씀인것 같네요.
    모쪼록 쾌차하시어 많은 이들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셨으면 좋겠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12.25 01:04 신고

      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과 새해가 되기를 바랄게요.
      많은 분들 덕분에 이렇게 살게 됐으니 나누며 살아야죠.
      감사합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12.25 09:10 신고

    다행이십니다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을 하시면 완치 되리라
    믿으며 더 건강하시게 될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순간의 행복을 누리십시오

    형님이 화학분야 계시는가 보군요..ㅎ

  5. 백순주 2015.12.26 05:52 신고

    오~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저도 새해에는 축하받을 일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우선 저에게 말입니다.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순풍에 돛을 달았습니다.
    부디 내년에도 도령님의 가정에 복이 깃들길 희망하겠습니다^^

  6. 원시 2016.01.25 05:38 신고

    쾌유를 빕니다.

 

 

박근혜가 함량미달의 여당 지도부(김무성과 원유철)를 호출해 쏟아낸 말들을 보면,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야당과 노조에 돌리는데 혈안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대공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권 3년 동안 재벌과 부자의 주머니만 불려준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자 이제는 대놓고 야당과 노동자들을 핍박하고 나섰습니다. 경제를 이 정도로 망쳐놓은 것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또다시 남탓 타령만 늘어놓았습니다.

 

 

 

 

박근혜의 말대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지 않지만, 이명박의 부자감세를 바로잡거나 선진국 수준의 누진증세만 단행해도 경제위기를 최소화할 자금이 마련됩니다.  연내에 '노동개혁 5개법과 경제활성화 2개법,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기를 쓰고 용을 써도' 경제위기 탈출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고 했지만,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영원히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박근혜가 머슴들을 불러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통과시키라고 법안들은 오너와 대주주, 최고경영진들로 대표되는 사측의 입장과 국정원의 의견만 반영된 것들이어서 폭력집회가 끝없이 되풀이되더라도 반드시 저지시켜야 하는 악법들입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는 이 법안들의 특징은 선진국의 노동자마저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가장 악독한 신자유주의적 요소들로 가득한 법안들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박근혜도 "500대 기업에 물으니까 80% 가까운 기업이 빨리 해달라고 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법안들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자신도 모르게) 자백했습니다. 현재 대기업들은 박근혜 정부의 비호 아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임원들을 잘라내고 있는데, 이 법안들까지 통과되면 정규직들이 뒤를 이을 것이며, 파견과 기간제를 포함한 비정규직들의 처우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는 자신의 임기 동안 대한민국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신자유주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모양입니다. 상위 5%를 위해 하위 95%를 노예로 만드는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대처와 레이건도 실패한 신자유주의 천국이 처음으로 완성됩니다. 미국과 영국, 일본의 보수우파 시장경제 엘리트들이 실패한 반동적 혁명을 박근혜는 이룩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박살냈던 것처럼. 

 

 

 

P.S. 삼성을 비롯해 대부분의 재벌들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임원들을 잘랐습니다. 재벌들은 이렇게 해서 엄청난 인건비를 줄이게 됐지만 정규직 신입사원 선발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내부유보금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지 않고, 임금 보존도 없는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 및 취업규칙 변경 완화 등을 담은 노동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직원들을 향한 칼날이 휘둘러질 것입니다.

 

 

이런 추세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까지 퍼지면 IMF 외환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구조조정이 현실이 됩니다. 박근혜가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오너와 대주주, 최고경영진들이 신바람을 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이런 식으로 보수우파의 신자유주의는 세력을 확장하고, 이들과 동맹을 맺은 상위 5%의 부와 권력은 더욱 공고해집니다.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달리 경제는 정치가 결정합니다. 삶의 대부분은 경제와 관련되고 그것에 예속되기 마련이지만, 그 경제를 조정하는 것은 정치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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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耽讀 2015.12.08 08:23 신고

    아버지는 18년 재임 기간 중 적어도 3선개헌 전까지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습니다. 비판세력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박그네는 집권하자마자 유신으로 바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유신종말은 와이에이치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노동자 탄압있습니다. 20년 후 김영삼 정권이 무너진 것도 노동법 날치기가 그 시작었습니다. 또 다시 20년 후 박그네는 노동법 날치기를 시작합니다. 그 끝이 보입니다. 저는 박그네 정권이 야당 때문이 아니라 자멸을 통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멸 원인은 박정희도 그 자신, 김영삼도 마찬가지였고, 박그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정말 바라는 것은 박그네정권 종말이 박정희 같은 모습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08 15:22 신고

      총선 압승이 박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만 저항이 가능합니다.
      총선 압승을 막을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12.08 08:35 신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체계를 뒤흔드는 입법부에 대한
    간섭과 관여..도를 한참 넘었습니다
    제왕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3. 참교육 2015.12.08 10:56 신고

    이런 나쁜 대통령을 짝 사랑하는 유권자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결국주범은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과 비판을 용인 할 수 없도록 마취키는 교육이 아닐까요?
    새누리와 박근혜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인간들입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도 경제 살리기도 꿈일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08 15:25 신고

      언론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고요.
      특권층을 위한 천국이 됐어요.
      바닥까지 가야 변화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4. 바람 언덕 2015.12.08 11:33 신고

    미친 정권...
    저도 오늘 이 주제로 썼는데,
    정말 막가네요. 인생 자체가 위선과 기만 덩어리인데
    이제는 국가와 시민을 아주 아작을 내려 하는군요.
    아, 이제는 면상떼기 보는 것도 역겹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08 15:27 신고

      고역이네요, 하루하루가.
      독재에 준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5. 덕산 2015.12.08 15:24 신고

    주위사람들은 이런 일에 무관심하지요...그래서 더 슬픈 현실이네요,

  6. 하늘이 2015.12.08 22:28 신고

    박근혜는 지금 무서운게 없습니다ᆞ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것 외에는~
    얼굴이 점점더 표독 스러워집니다ᆞ국민을 사랑하는 선한
    얼굴은 이미 그 마음에서 지워진듯요ᆞ

    • 늙은도령 2015.12.08 23:28 신고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니 그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여자입니다.
      권력의 나쁜 점만을 아버지에게서 배운 진정한 독재자입니다.

 

 

아래의 글상자에 요약해 놓은 것처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면 '밈'이라는 문화적 유전자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복잡한 유기체를 만드는 기계적인 유전자와는 달리, 문화적 유전자인 '밈'은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하는 낡은 유형의 진화가 뇌를 만들어 내면서 최초로 등장하게 됐습니다. 이 때부터 인간은 밈 유전자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누적적인 변이가 아닌 빠른 진화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밈 유전자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진화의 예로서는, 성장과 규모 위주의 개발 때문에 미세먼지가 급증하자 아이들의 속눈썹이 길어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돌연변이와 개선을 거쳐 자연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누적적인 변이가 아닌, 한두 세대 만에 이루어진 이런 변이는 "유전적인 변이를 수반한 계획적인 번식은, 축적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유전자 단위의 진화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진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인 뇌가 문화적 진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간은 '유전자가 만들어낸 기계'에서 벗어나 보다 독자적이고 빠른 진화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화의 최종단계(최상의 단계가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인 자연선택에서 벗어나 인간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적 진화란 이기적인 유전자 단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전복적 혁명이자 '연속적인 돌연변이' 이상의 반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진화의 핵심이 적자생존이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이유도 밈 유전자의 존재에 있습니다. 승자 ㅡ 승자이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과 살아남았기에 승자라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ㅡ 만이 후손을 남길 수 있다는 적자생존으로는 인간의 이타적인 행태를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생존의 조건이 좋아짐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태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업화(세습되는 천민자본주의)와 민주화(생존선 이하의 삶만 보장하는)를 동시에 이룬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다가오는 삼포(오포, 칠포)세대들이 연예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행태가 바로 그러합니다. 우파 전체주의를 숭상하는 박근혜와 새누리당 및 뉴라이트 무리들은 압축성장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이 위대하겠지만, 그 때문에 온갖 불평등과 차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청춘들에게는 진화의 법칙을 거스르는 선택을 강요하는 나라에 불과합니다. 

 

 

진화라는 과정은 양자슈퍼컴퓨터가 나와도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의 행운들이 쌓여서 시작됐고, 최초의 유기체가 수십억 년에 걸친 복제와 변이, 선택을 통해 인간으로 진화하려면 그만큼의 확률이 더해져야 가능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이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임도 이런 진화의 과정에서 나옵니다.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에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행운과 수십억 년에 걸친 거대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청춘들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주재하는 진화의 법칙을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문화적 유전자인 밈이 자신의 창조자인 진화의 법칙에 저항하라고 합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문화와 문명에 저항하라고 합니다. <국제시장>의 세대들이 온갖 고생을 자식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청춘들은 앞세대들이 포기하지 않아도 됐던 것들마저 포기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행운들이 수없이 쌓이고 겹쳐 인간으로 태어난 그들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것들마저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으로서의 인간의 진화는 계속될지언정, 문화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진화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줍니다. 헬조선을 외치는 삼포(오포, 칠포)세대들의 선택이, 그 전복적이고 반역적인 선택이 슬프고 처절하게 다가오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며,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새누리당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앞선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불통과 아집으로 변하지 않을 때, 많이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는 탐욕과 무한경쟁이 나눔과 공존의 지혜로 바뀔 때,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세습과 천민자본주의의 천국,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화에도 흥망성쇄가 있듯이 진화에도 흥망성쇄가 있습니다. 고대와 근대, 현대의 제국들이 무너진 것도 앞선세대가 이루어놓은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진보와 성장의 낙관론'처럼 하나의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진화의 과정이란 없습니다. 정치가 아닌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도 수많은 독재자와 어리석은 지도자들,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이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청춘불패가 청춘필패로 바뀐 세상이 헬조선의 핵심이고, 죽창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이 탈조선의 열망이라면 앞선세대와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흙수저는 없게 만드는 것,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진화의 법칙마저 거스르는 청춘들의 슬픈 선택이 사라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적 전달이 더 보수적이지만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언어는 유전자가 아니 수단에 의해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게다가 그 속도는 유전적 진화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유전적 진화에서와 같이 그 변화는 진보적이다.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의 유사성은 종종 논의 되는 사항이다. 때로는 쓸데없이 신비로운 함축이 있다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과학적 진보와 자연 선택에 의한 유전적 진화의 유사성에 관해서는 칼 포퍼 경이 밝혀 주었다.

 

인간은 과거 수백만 년을 소규모 혈연 집단 단위로 생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본적인 심리적인 특성이나 경향을 대개 혈연 선택과 호혜적 이타주의를 촉진하는 선택이 우리의 유전자에 작용한 결과로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와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다윈주의는 유전자라는 좁은 문맥에서 국한되기에는 너무나 큰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자기 복제자

가령 탄소 대신에 규소를, 물 대신에 암모니아를 이용하는 화학적 구조를 가진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100도가 되어서야 죽는 생물이 발견되거나, 화학 반응에 의존하지 않고 전자 회로를 기초한 생물이 발견되었다고 할 때, 이들 모든 생물체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원리는 없는 것인가? 물론 나는 그 답을 모지만 내기를 한다면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복제를 하는 실체의 생존률 차이에 의해 진화한다는 법칙이다.

 

과 그 진화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는 문화의 전달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의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단음절로 줄여 밈meme이라 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닌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래도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신이라는 밈

밈 풀 속에서 신이라는 밈의 생존 가치는 그것이 갖는 심리적 매력의 결과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는 고쳐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이것이 신의 관념이 세대를 거쳐 사람의 뇌에 그렇게 쉽게 복사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 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만 실재한다.

 

새로운 자기 복제자 밈

30억 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그 독점권을 영원히 가지리란 법은 없다.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이미 낡은 유형이 된 진화를 답보할 이유는 없다.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하는 낡은 유형의 진화는 뇌를 만들어 냄으로써 최초의 밈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진화를 시작했다. 우리 생물학자는 유전자에 의한 진화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빠져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진화 중 일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칫하면 잊어버린다.

 

밈의 특성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에서도 특정한 사본의 수명보다 다산성이 훨씬 중요하다. 문제의 밈이 과학적인 아이디어일 경우 그 아이디어가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경우에는 과학 학술지에 그 아이디어가 인용되는 수를 셈하여 대략적인 생존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

 

이 논의는 자기 복제자가 성공하기 위한 세 번째 일반적인 성질인 복제의 정확도와 연관되어 있다. 과학자가 어떤 아이디어를 듣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할 때 그는 그것을 어느 정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이를 테면 강조하는 점을 바꾸거나 나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혼합해서 그의 아이디어를 나의 목적에 맞게 바꾸어 놓았다...밈의 전달은 연속적인 돌연변이를 거치며 다른 것과 혼합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밈의 단위

아이디어 밈은 뇌와 뇌 사이에 전달될 수 있는 실체로서 정의될 수 있을지 모른다. , 다윈 이론의 밈이란 그 이론을 이해하는 모든 뇌가 공유하는 그 이론의 본질적인 바탕이다. 사람들이 그 이론을 표현할 때 방법상의 차이점은 정의상 다윈 이론의 밈의 일부가 아닌 셈이다. 만약 다윈 이론이 A B 두 분분으로 나뉘어, 어떤 사람은 A를 믿는데 B는 안 믿고, 다른 사람은 B를 믿는데 A를 불신하는 상황이라면, AB는 서로 다른 밈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A를 믿는 사람은 대개 B도 믿는다면, 즉 유전학 용어로 이 둘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이 경우에는 양쪽을 합하여 하나의 밈으로 보는 것이 편리하다.

 

경쟁하는 밈

대규모의 컴퓨터 센터에서는 연산 시간과 기억 용량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사용자에게 초 단위의 사용 시간과 문자 단위의 기억 용량을 일정량씩 배분한다.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다. 뇌에서는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시간이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어떤 사람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밈 복합체의 예-종교, 맹신, 독신주의

사람들에게 종교 의식을 가용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었던 교의의 하나는 지옥불의 협박이다...이것은 매우 간악한 설득 기술로서, 중세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나는 성직자들이 그렇게까지 똑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을 갖지 않은 밈들이, 성공한 유전자가 나타내는 준잔인성이라는 성질을 가진 덕분에 스스로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가설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지옥불이라는 이이디어는 단순히 그 자체가 갖는 강렬한 심리적 충격 때문에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것이 신의 밈과 연관되어 버린 것은, 이 둘이 밈 풀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맹신은 아무것도 정당화할 수 없다...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밈과 유전자는 종종 서로를 보강하지만 때로는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 같은 것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성 곤충과 같이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하게 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독신주의의 밈은 밈 풀 속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독신주의는 상호 협력하는 종교적 밈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복합체에서 작은 일부분인 셈이다.

 

나는 공적응된 유전자 복합체가 진화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의 복합체가 진화한다고 추측한다. 선택의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하게 적용한다. 이 문화적 환경은 함께 선택되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밈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로서의 속성을 지니며,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할 수 없다.

 

밈의 긍정적인 면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유전자 자체는 불멸일지 몰라도 우리 각자의 유전자의 집합은 사라질 운명에 있다...번식이라는 과정에서 불멸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 버린 후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에서 오늘날 살아 남아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이나 있는가.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지 않은가.

 

문화적 특성의 진화와 그 생존 가치를 문제 삼을 때에는 누구의 생존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어떤 문화적 특성이 단지 그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종교, 음악, 제식 춤 등에 생물학적인 생존 가치가 있는지 몰라도 이들에게서 전통적인 생물학적 생존 가치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일단 유전자가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그 생존 기계에게 만들어 주면, 밈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을 것이다. 모방이 유전자에게 이득을 준다고 가정할 필요조차 없다. 만약 그렇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뇌가 모방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뿐이다. 그러기만 하면 밈은 그 능력을 십분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인간의 선견지명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의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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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공(靑空) 2015.11.30 06:02 신고

    저는 자기복제자(유전자와 밈)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쇠가 인간의 이성 혹은 상상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라는 바이러스 혹은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
    혹은 자아에 오염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끊임없이 생각과 말이란 매개체를 통해 영속하는 바이러스로서의 자아가...
    인간의 생각과 존재를 왜곡시키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인간을 발전시키는 힘은 욕심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에 의한 차원의 이행에 있다고 봅니다.
    항상 정진하는 것,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의지, 올바른 방향성을 부여하는 지혜가 그 기제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자아가 만들어내는 욕심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높은 수준으로 이행하려 하면 할수록...
    오염된 체계보다는 순수한 체계일수록 유리할 것입니다.

    작은 차이가 누적이 되면 결국에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특성이 개인적인 성공의 요소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철저한 이기주의와 목적지향성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 개인간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현상적으로는 개인의 성공이라 보일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적자본에 해를 입힘으로써 사회발전의 실패를 초래합니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위협에서 보호하고,
    예측가능하게 만듦으로써 특정 행위에 집중하여 더 복잡하고 높은 수준의 생산물을 창출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매커니즘인데...
    사이코패스와 같은 이기주의자는 자신들에게 해가 입게 되는 규칙만을 준수하지...
    그것이 어떤 형태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머지는 무시를 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준법자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사회적자본에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이기주의자는 극단적인 요소이지만,
    인간의 자아가 만들어낸 욕심과 잘못된 전제들은 똑같이 노이즈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 생각을 길게 정리할 역량도 안되고, 상황도 아닌지라 대략이나마 풀어봅니다.
    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꼭 완전한 자아의 극복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에게 맞춰진 포커스를 사회로, 역사로 확장시키지 않는다면...
    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 여지는 젊은 세대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는 점점 작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11.30 08:48 신고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수 있다 라는 말이
    크게 와 닿습니다

    건강은 좀 괜찮으신지요?

  3. 2015.11.30 11:37

    비밀댓글입니다

  4. besso 2015.12.12 04:44 신고

    늙은 도령님 이야기가 옳다는것은 귀납적으로 증명됩니다.
    보세요 세상을... 인간이 만든...

    • 늙은도령 2015.12.12 14:43 신고

      그래서 답답한 것이지요.
      인간은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족속인가 봅니다.

 

 

 

우리는 가난이라는 생각에 금방 익숙해진다. 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하는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오래 계속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ㅡ 토크빌의 편지에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재인용  

 

 

 

 

 

아래의 인용문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제5권 제2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인류가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부를 늘려왔음에도 부의 불평등과 지독한 빈곤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산업화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빈곤의 증가 ㅡ 헬조선의 근원 ㅡ 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설명해주기도 힘들 것입니다. 기본소득제의 정당성도 아래의 인용문 안에 녹아 있습니다.

 

 

불평등과 빈곤 증가의 근원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의 노동착취에 중점을 뒀다면,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화의 독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깝든 신자유주의가 19세기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현재의 부정의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과 정당성, 수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주류경제학이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는 진리가 두 사람의 주장에 들어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산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액에 머무는 이유는,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지대가 더 큰 비율로 상승함으로써 임금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문명 발달의 직접적인 결과는 욕구 충족을 위한 인간 노동의 힘을 모든 면에서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빈곤을 타파하고 궁핍과 궁핍에 대한 두려움을 추방한다. 진보의 내용과 진보하는 사회가 추구하는 상태의 직접적이고 자연적인 결과는,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물질적 상태를 ㅡ 그에 따라 지적, 도덕적 상태도 ㅡ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문명 발달이 가져오는 혜택을 거두지 못한다. 누군가 이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노동에 필요한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전락하여,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모두 지대 ㅡ 노동이 자신의 힘을 적용하는 기회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ㅡ 상승으로 흡수된다. 이리하여 계속되는 진보에 의해 생기는 모든 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고 임금은 증가하지 않는다. 임금이 증가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회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 노동의 생산의 증가에 동반하여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유 노동자의 생활도 자기 노동의 생산력이 증가하면 절대적으로 내지 상대적으로 더 악화될 수 있다. 지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투기 경향이 발생하는데, 투기는 지대를 더욱 상승시킴으로써 앞으로 이룩될 개선의 효과를 반감시켜 버린다. 또 투기 없는 통상적인 상황과는 달리, 임금을 노동자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노예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린다.

 

 

이와 같이 노동은 생산력 향상의 모든 혜택을 박탈당하고 문명 발달의 부작용에 희생된다. 노동은 문명 발달에 자연스럽게 수반하는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자유 노동은 노예처럼 무기력하고 비천한 상태로 전락한다. 문명이 발달하며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개선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노동은 불가피하게 분업되어 구성원의 독립성이 상실된다. 그러나 노동자 전체로서의 능률은 향상된다.

 

 

아주 평범한 물자를 공급할 경우에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개별 노동자는 그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대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미개 부족의 경우 노동생산물 총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각자 독립적 생활을 해나갈 능력이 있다...즉 모든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 자기 부족에서 떨어져도 살아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관계에서 자유로운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 미개인과 문명사회의 최저층 노동자와 비교해 보라. 사회의 부 가운데에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물자도 많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 가운데 한 가지 물자 내지 그 물자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생산하면서 산다. 노동자는 자기가 일하는 데 필요한 도구조차 만들 수 없으며, 자신이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할 능력도 없는 도구로 일을 한다. 노동자는 미개인보다 더 장시간 더 힘들게 일을 하지만 미개인이 얻는 단순한 생활필수품 이상을 얻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미개인이 누리는 독립성을 잃고 산다. 자신의 힘으로 욕구를 직접 충족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동시에 일해 주지 않으면 간접적으로도 충족하지도 못 한다.

 

 

이 노동자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거대한 체인의 한 연결 부분에 불과하며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다. 사회 속의 지위가 낮을수록 사회에 더 의존적이 되고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극히 줄어든다. 자신의 요구 충족을 위해 노동을 행하는 힘조차 자신의 통제 밖에 놓인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또는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어떤 일반적인 원인에 의해서 이 힘이 박탈되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초적 저주를 은혜처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선인 양 그리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법제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 즉 신처럼 환경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노동자는 노예나 기계나 상품이 되어 버리고 어떤 점에서는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

 

 

......(이 때문에) 부의 한 가운데서 빈곤에 처한 계층은 미개인이 누리는 인간적 자유도 없이 빈곤하기만 하다. 생활의 협소함과 왜소함에서는 미개인보다 더 하면서 천부의 능력을 성장시킬 기회도 없다. 미개인보다 더 너른 세상에 산다고 하지만 이는 누리지 못할 축복에 불과하다. 

 

 

P.S. 위의 인용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하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십시오.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답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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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5.11.07 08:26 신고

    헬조선은 요즘 유행어디르고요 어디가나 댓글에 많긴한데
    왼지 씁슬하죠

  2. 훈이- 2015.11.07 10:39 신고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5.11.07 12:29 신고

    갈수록 예전보다 못해 지고 있습니다

  4. 구름바다 2015.11.11 19:34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기고문이 뜸하여 궁금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겼었군요...

    너무 무리하게 연구에 몰두하지 마시고
    부디 건강 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에너지가 충만한 나날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5. 참교육 2015.11.12 09:28 신고

    인간이 만든 최악의 제도가 자본주의요 잔본주의 중에 가장 알랄하 게 신자유주의입니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6. 불루이글 2015.11.12 16:02 신고

    손만 내밀면 원하는 물건들이 쇼윈도 너머에 넘치도록 풍성 하지만 그기에 도달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간과 노동은 갈수록 길어지고 힘들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의식주에 다가가는 데 필요한 노력을 낮추어 주는 정치력 있는 정당을 선택 하는 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방법은 오직 투표 밖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7. 쩡은&참인간 2015.11.17 10:10 신고

    맞아요..자유처럼 보이지만 자유가 없는 사회처럼 지대가 너무 높아져버려서 소비여력이 없게되었죠.

  8. 2015.11.20 06:07

    비밀댓글입니다

  9. 덕산 2015.11.24 17:39 신고

    갈수록 이런 사회적 현상이 고착화 될 것 같네요...
    건강챙기시구요.

 

 

 

기본소득제를 최소화하고 최소화한 청년배당제를 두고 집권세력과 기득권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체 청년배당제가 무엇이기에 집권세력은 물론 정론직필을 지향한다는 JTBC를 비롯해 종편과 지상파3사까지 나서 집단적으로 서울시를 비판하는 것일까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저임금·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에게 쥐꼬리 만한 지원 좀 해주자는데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이명박이 자원외교를 통해 40조 이상을 날리고(다른 것까지 합치면 200조에 이른다), 박근혜가 100% 실패할 수밖에 없는 KF-X사업에 혈세 18조5천억을 쏟아붙는 것을 결정한 것에는 일정 수준의 비판만 하면서, 경제사회적 약자인 청춘들에게 겨우 백억 정도의 금액을 배정한 것에 이렇게도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없었다면 이재명과 박원순을 향한 공격이 노무현 죽이기에 버금갈 만큼 퍼부어졌을 것입니다.  

 


 

 

 


이들이 청년배당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봐야 합니다. 헌데 이 책을 통독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전파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며, 19세기의 미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을 지닌 그의 주장이 2015년의 한국에서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조지의 주장을 최대한 쉽고 압축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기본소득제의 세원을 토지가치의 상승분에서 찾습니다. 토지사유화가 일반화된 작금의 현실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인 제안으로, 모든 토지는 지구 진화의 결과물이라며 공동소유를 주장하는 어리석음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지대법칙(토지가치 상승에 대한 이자)의 불로소득적 성격에 집중했습니다.

 

 

토지는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의 원천(재생산에 투자되지 않으면 부가 되며, 재생산을 위해 투자되면 자본이 된다. 둘 다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다)으로 스스로는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가치를 올리지 못합니다. 토지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몰려들고 부의 증식을 위해 자본이 투입돼야, 즉 생산활동이 이루어져야 토지가치(현재는 지대로 소유자에게 돌아간다)는 상승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토지라고 해도 그대로 방치해두면 자연상태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몰려들어 노동과 자본이 투입되면 생산물이 나오고, 이는 토지가치에 반영됩니다. 땅값이 오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한반도 전체에 한 사람만 있다면, 한반도 전체의 토지가격은 제로에 해당합니다. 거기서는 토지가 스스로 제공하는 것 이외의 어떤 부가가치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토지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토지가격도 생성될 수 없습니다. 도시의 땅값이 시골의 땅값보다 비싼 이유도 사람이 몰려들고 자본이 투입돼 토지의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즉, 토치가치의 상승은 토지소유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그러나 그 토지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돼야 일어납니다. 물론 토지소유자가 노동을 동원해 생산물을 만들어내면 토지가치가 올라갈 수 있지만, 이럴 때도 토지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 토지가치의 상승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토지가치의 상승분은 토지소유자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야 할 불로소득이라는 것입니다. 

 


 

 

 


투기소득처럼, 모든 경제학에서 불로소득(상속과 증여도 마찬가지다)은 정당한 수입이 아닙니다. 불로소득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철학과도 배치되며, 전액을 세금으로 거둬들여도 경제정의에 반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본소득제의 정당성이 나옵니다. 토지가치의 상승분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으로 이루어지고, 이것 때문에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미래가치를 현재에 반영해 토지소유자가 독점하는 것이기 때문에, 토지가치를 상승시키는 노동과 자본에 상승분이 배정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토지는 이미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토지가치의 상승분으로 마련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돈을 제공할 수 있으며,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에 합당하기 때문에 경제정의에 반하지도 않습니다. 기본소득에 반대해 토지소유자가 재산(부)을 늘리고 싶다면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며, 어떻게 획득했던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인과의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반면에 미래에 토지가치가 올라갈 것만 고려해 토지를 놀리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어느 누구도 부를 늘리기 위해 토지를 소유하는데 혈안이 될 수 없고, 토지 사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제가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직 극소수의 대토지 소유자만 피해를 입을 뿐이지만, 그들의 부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어긴 결과로 이미 충분할 정도로 넘쳐나기 때문에 약간의 불이익을 받아도 됩니다. 신과 자연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편애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제의 최소한의 최소한인 청년배당은 포퓰리즘도 아니고 선심성 정책도 아닙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류경제학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함이며, 타인의 노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불로소득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투임된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부의 증가분이 배분돼야 하며, 노동의 결과물인 자본의 투입에도 그 대가가 지불돼야 합니다.   

 

 




기본소득제의 탄생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그 논리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충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 헨리 조지와 그의 후예들이 아예 주류경제학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21세기에도, 그 이후에도 주류경제학의 오류를 바로 잡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면에서 변함없이 좋은 정책이지만, 주류와 기득권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헨리 조지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던 것입니다.  

 

 

기본소득제와 보편적 차등복지, 생태복지 등이 더해지면 세상은 가장 민주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신자유주의와 좌우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기득권과 특권층이 없는 세상은 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중위소득이 기준) 이상 이루어져, 개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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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11.07 12:27 신고

    자기들이 하지 못한것을 시도 하니 배가 어지간히 아픈 모양입니다

  2. 바람 언덕 2015.11.07 13:13 신고

    성남시에 이어 서울시도...
    극한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이 불씨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어떻게 키우고 퍼트려갈지는 여전히 숙제입니다만,
    적어도 이재명과 박원순이 그 불씨를 붙였네요...
    꺼지지 않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겠습니다...

  3. Chris (크리스) 2015.11.08 03:23 신고

    있는 놈들이 더해...어느 어르신이 한탄하듯이 하신 말씀이 문뜩 떠오릅니다.
    그 최소한도 그렇게나 싫은걸까요?

  4. 불루이글 2015.11.12 15:43 신고

    친재벌 정권의 패악도 밉지만 이들에 편성해 서민들 을 까대는 집단과 인간들이 더 원망스럽네요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5. 민주청년 2015.11.18 13:21 신고

    청년배당 굿! 이재명 시장 응원합니다



거의 3주 가까이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몸에 갑작스런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증상이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원인 판명과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도 병원에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때문에 병원에 오래 있을 수 없어서 원인 불명으로 퇴원했지만 그나마 간암이 재발한 것은 아니어서 어제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온몸이 빨개지고, 열이 오르고, 귀에서 진물이 나오고, 극도의 피로를 느끼는 증상도 푹 쉬고 병원치료를 받으니 사라졌습니다.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장기복용 중인 약들의 부작용 때문에 일시적인 불균형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연한 회복기라 이번 주만 잘 관리하면 다음 주부터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갑작스런 불균형을 겪으면서 마음이 많이 꺾였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혼자 살아야 하는데 이런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한 것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데 전에는 없던 갑작스런 불균형까지 겪고 나니 두려움까지 생겼습니다.





그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모든 것을 냉정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이런 건강으로 지적공동체를 목표한 대로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몇몇 분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얼마도 하지 못하고 중단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결론은 지금 같은 건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적공동체를 시작한다 해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산본으로 이사 온 이후 운동량을 줄이고, 여름을 넘기기 위해 밤낮을 바꾸고 했던 것들이 몸을 엉망으로 만든 모양입니다.



사람은 만나고 싶고,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싶은데 지금과 같은 몸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사람이 많이 그립습니다. 10월 9일, 저희 집에서라도 첫 번째 모임을 강행하고 싶습니다. 만남과 관계가 있는 삶이 있다면 건강에도 더욱 정진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충한님에게 부탁해 장소를 섭외하기로 했는데 제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장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10월 9일 첫 번째 모임은 집에서 갖을까 합니다. 참여의사를 밝힌 분이 적기 때문에 집에서 차라도 한 잔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개별적으로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요. 강동훈님은 저희 집에도 와 본 적이 있으니 제가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운동을 통해 건강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로 인사라도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집은 열어놓겠습니다. 오후 3시 이후면 가능합니다. 아무튼 저는 글의 수를 줄이고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입니다. 저 혼자 살아야 할 때를 대비해 건강 회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공부는 충분히 했으니 추가적인 투자는 최소화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자꾸 사람을 만나는 일을 만들 생각입니다. 너무 갇혀서 살다보니 인간적인 면모도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운동이 궤도 올라 돌아다닐 수 있게 되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지식도 사람 사이에 있어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저는 저에 대해서는 참 많은 것을 닫고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삶이 정말로 싫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홀로 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벽을 치고 살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 아픔도 풀어놓고 살 생각입니다. 먹는 약도 줄여볼 생각이고요.



그 동안 아무런 연락도 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 다시 돌아 올려는 욕심에 회복에 방해될 수 있는 것들은 일체 하지 않았는데 그 바람에 더욱 외로웠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2개월 후에 추가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살 생각입니다.



원체 몸이 약하고 병이 많다 보니 오래 살겠다는 욕심이 없었는데, 생각을 달리 해볼 생각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있는 것이 낫다면 그러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참 많이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아픈 것을 알리지 말아야 하는 상황을 내 스스로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달라질 생각입니다. 삶의 패턴을 바꿀 생각이고, 자꾸 만남을 만들 생각입니다. 혼자라도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고요. 아프기 직전 친구들과 10여 년 만에 당구도 쳤는데 살아있다는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조금 늘려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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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palchisan 2015.10.09 21:07 신고

    긍적적 사고가 가장 좋은 건강법이긴 한데 긍적적이지 못한 세상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수천년간 비틀거리면서도 여기까지 왔습니다.어둠은 밝음이 가까워진다는 증거입니다.헬조선은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이구요. 희망을 가집시다.

  3. 군산에서 2015.10.11 09:42 신고

    한동안 글이 안올라와서 걱정했습니다.
    혹 건강이 안좋아지신건지.
    저도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뵐수있게 건강하세요.

  4. 군산에서 2015.10.11 09:42 신고

    한동안 글이 안올라와서 걱정했습니다.
    혹 건강이 안좋아지신건지.
    저도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뵐수있게 건강하세요.

  5. 耽讀 2015.10.11 19:20 신고

    글이 없어 무슨 일 생겼는지 걱정을 했습니다.
    이 글도 벌써 4일이 지났습니다. 늦게 들어왔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늙은도령님 같은 분 글이 많아야 합니다.
    갈수록 박그네정권은 폭압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6. 엄윤성 2015.10.11 19:37 신고

    자연에 가깝게 먹고, 자연속에서 적당히 운동하면 몸은 알아서 좋아질 것입니다.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관계로 모임에는 참석 못하지만 늙은도령님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눈팅만 하고 갑니다...

    본인 소개 : ~2011년 7월까지 한국내 DISPLAY업체에 근무했던 40대 공돌이 입니다.
    한국의 미래에 대해 불길함을 느끼고 중국회사로 옮겨서 북경 왕징(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 입니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TFT-LCD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7. 앨리스 2015.10.14 20:52 신고

    소식을 읽고 맘이 너무 아팠습니다.
    몸을 돌보시며... 행복하고 충만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8. 구름과종이 2015.10.14 22:05 신고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아 궁금하였는데, 편찮으셨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건강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니, 하루 속히 회복되도록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9. bluesky 2015.10.15 01:12 신고

    아고라에서 요즘 글이 안올라오길래 와봤는데 몸이 많이 안좋으셨군요.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10. 머무는바람 2015.10.15 22:25 신고

    힘내세요

  11. 우니에몽 2015.10.16 18:19 신고

    친하게 지내요 ㅋㅋ 초보블로거 입니다!!!! 앗앗얍얍얍!!

  12. 하늘이 2015.10.17 18:08 신고

    다시 글로 뵐수 있어서 반갑습니다ᆞ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글로 뵙기를 바랍니다ᆞ

    시간 되시면 여행도 하시면 어떨까합니다ᆞ

  13. 참교육 2015.10.18 07:50 신고

    그랬었군요. 걱정을 햇었는데...
    건강이 최고입니다. 늙은 도령님의 능력이 어느때보다 아쉽운 때입니다.
    건강 챙기시고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4. 린엘 2015.10.19 05:27 신고

    건강에 좀 더 집중하세요. 이겨 내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15. 백순주 2015.10.19 20:53 신고

    건강을 기원합니다.

  16. 2015.10.19 23:43

    비밀댓글입니다

  17. 일본의 케이 2015.10.20 10:56 신고

    아프셨구나,,,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도령님, 꼭 이겨내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18. 하늘이 2015.10.20 11:56 신고


    글 쓰는데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기도드립니다.

    인생은 장거리 운동이라고합니다.
    모두와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체력이 꼭 필수입니다.

    메일 확인 한번 부탁드립니다.

  19. 구원투수 2015.10.21 16:10 신고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기도함니다~^^

  20. Old Conan 2015.10.21 21:28 신고

    너무 오랫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아 블로그를 직접 방문해 봤습니다.
    건강문제셨습니다.
    사실 저도 거의 매일 병원 다니고 있습니다.^^
    부디 몸조지 잘하시고,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1. 구름바다 2015.11.11 19:37 신고

    부디 회복에 온 마음과 정신력을 집중하시고
    회복 후 좋은 에너지가 충만한 몸으로
    훌륭한 글 계속 쓰시기 바랍니다.



동등한 권리들 간에는 힘이 결정한다.


                                                                                      ㅡ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인용




답부터 얘기하면, 케인즈 경제학과 프리드먼 경제학이 나눠지는 경계가 (제로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 2%이기 때문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목표는 주기적인 공황을 일으키는 시장실패를 정부 개입으로 막아 완전고용을 이루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2% 이상의 기대물가상승률이 필수적이다.





(제로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이 2%대 이하로 떨어지면 경제가 위축되거나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든다는 증거여서, 정부가 확대재정정책을 펼쳐 경제를 부양한다. 70~90%에 이르는 고율의 소득세와 상속세, 50%대의 법인세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당연시됐다. 1960년대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우리 모두는 케인즈주의자다’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고용과 정부 개입에 의한 2%대 이상의 기대물가상승률은 불변의 원칙으로 인정받았다.



신자유주의(신고전파 경제학과 신보수주의가 만난 우파적 버전을 말함) 40년은 이런 케인즈 경제학을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거둬내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일체의 규제가 없었던, 그래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었던 19세기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헌데 여기에 거대한 정치경제적 지적사기가 숨어있다. 레이건과 클린턴, 부시와 오바마로 이어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부가 걷어낸 것은 고율의 과세, 각종 규제, 보호무역, 정부보조금, 복지와 사회안전망, 두 자리 수의 기준금리가 핵심이었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은 채 2%대의 물가상승만 들먹인 것이다.



볼커와 그린스펀, 버냉키에 이어 미 연준의장에 임명된 옐런은 전 세계를 말아먹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면죄부를 발행하기 위해 2% 이상의 물가상승이 문제라고 호도한 것이 오늘 이루어진 지적사기의 실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펼쳐진 미 연준의 지적사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옐런이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2% 이하의 물가상승만 강조한 것은 하위 99%의 부를 상위 1%로 이전하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볼커(최악의 연준의장, 볼커쇼크는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위한 자해극이었다)에서 그린스펀을 거쳐 버냉키로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통화주의를 포기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하위 90%의 지갑을 털어서 마련한 돈으로 천문학적인 구제금융과 무제한 양적완화를 펼칠 수 있었으면서도, 지갑을 탈탈 털린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2% 물가상승만 강조한 옐런의 발언에서 더욱 분명해졌다(전 세계의 반발 때문에 1~3개월 정도 금리 인상을 미룬 것으로 보이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개인과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강자를 위한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철저하게 망가져야 세계가 살 수 있음을 오늘의 연준의장 옐런이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기축통화국이란 지위를 이용해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위 99%가 존엄한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단기적으로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개개인의 복리와 후생을 보장하는 파레토 최적을 실현하는 것과 장기적으로는 성장 없이도 풍요를 실현할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정치경제학을 확립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한 각종 제안은 넘쳐날 정도로 많다(헨리 조지, 칼 폴라니, E.F. 슈마허, 이반 일리치,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등).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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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쌤』 2015.09.18 19:40 신고

    항상 어렴풋이 뜬구름 잡듯 모호하게 알고있던 이야기들인데
    늘 많이 배워갑니다
    다른 복잡한 것들은 잘 모르지만,, 개개인의 복리후생 확충,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
    그것이 옳다,,라는것 정도는 확실하게 알고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8 20:00 신고

      경제학이 정치학과 떨어진 60년대를 기준으로 사기를 치는 학문이 됐습니다.
      전 세계를 망친 최악의 지식인들이 경제학자들입니다.
      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현실을 왜곡했고, 이것이 정치에 이용되면서 현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2. 다노시무 2015.09.18 20:30 신고

    고맙습니다.매번 잘보고 많이 배워갑니다..주말 잘 보내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9.19 11:17 신고

    중국에서의 바람도 그냥 보고만 있을 일은 아닌것 같군요

    • 늙은도령 2015.09.19 15:05 신고

      네, 강국들이 너무 커지면 힘듭니다.
      미국보다는 중국은 더욱 고통스러운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자체의 문제 때문에 힘들 것입니다.

  4. 2015.09.19 12:3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5:13 신고

      제가 음악 중에서 클래식은 잘 모릅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베토벤과 모짜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바하 정도고요.
      저는 천재성으로는 모짜르트를 좋아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슈베르트를 좋아했고요.
      헌데 클래식은 그 이후로 접하지 못해 잘 모르고요.

      팝송을 좋아했지요.
      레드 제플린부터 돈 맥그린 등등... 90년대까지의 팝송은 거의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노래는 좋아했지만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존 레논의 삶은 예외적이었고요.
      사이먼 앤 가펑클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지식은 없습니다.
      음악 쪽은 제가 가장 약한 부분이에요.
      너무 평범한 귀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5. 박군.. 2015.09.19 15:12 신고

    경제란 정말 어려운 분야네요..잘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5:14 신고

      기본적 지식이 쌓이면 경제가 가장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에서 통계학과 수리학을 빼면 정치학과 비슷합니다.

  6. 덕산 2015.09.20 08:00 신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1인으로서 신자유주의 몰락은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기다려집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동결했다. 미국식 통화정책의 마지노선인 물가상승률이 2%를 넘지 않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게 냉혹한 신자유주의를 강요해 경제위기를 조장하면서도 자신들은 케인즈 정책을 펼쳐 경제위기를 극복해왔는데, 이번에는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반발에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미 연준은 부자들을 갑부로 만들기 위해 금리를 20%대까지 올린 1970년대의 ‘볼커쇼크’를 거쳐, 레이건의 집권과 함께 단행된 천지개벽의 감세(소득세를 78%에서 28%로 내렸다), 워싱턴컨센서스로 이어지며 뉴딜과 케인즈의 잔재를 미국에서 걷어냈다. 이때부터 미국의 갑부들은 국내외로부터 돈을 긁어모았고, 연준은 이들의 돈놀이를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내렸다.



미국에서도 하위 99%의 부가 상위 1%의 수중으로 이전되기 시작했고, 높은 금리로 전 세계의 돈을 빨아들여 천문학적인 실탄을 마련했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오일쇼크’를 주도했던 사우디를 협박해 수백 조(1980년의 경우)에 달하는 석유대금까지 굴리게 된 월가가 전 세계를 상대로 본격적인 돈놀이에 돌입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그의 제자들인 시카고보이즈와 제프리 삭스와 립턴으로 대표되는 버클리마피아를 앞세운 미 연준과 재무부, 월가, IMF의 연합은 남미와 동유럽, 러시아, 중국을 털고(천안문 사태의 이면은 중국에 신자유주가 상륙한 것이고, 그 시작은 등소평이 경제교사로 프리드먼을 초청한 것이었다), 태국에서 한국으로 이어진 1997~8년의 외환위기를 일으키며 태양계 차원의 돈을 긁어모았다(이때 스웨덴처럼 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도 털렸다).





이런 과정에서 슈퍼리치와 월가(와 군산복합체)의 부를 무한대로 늘려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구적 차원의 착취구조를 완성했다. 전 세계적으로 슈퍼클래스를 구축한 0.1~1%의 수중으로 하위 99%의 돈이 이전됐고, 중국은 미국의 채권을 사주는 대가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할 수 있었다(노동의 종말, 고용없는 성장, 차이메리카는 이렇게 구축됐다).



태양계를 사고도 남을 돈이 슈퍼리치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갔고, 이 돈이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벤처거품의 조성과 붕괴를 일으켰다. 그 다음에는 부동산 광풍을 비롯한 파생상품의 우주적 차원의 남발로 2008년의 신용(금융) 대붕괴로 전 세계를 끝을 알 수 없는 경제대불황으로 몰고 갔다.



이상이 전 세계는 물론 미국마저 몰락의 길로 내몬 신자유주의 40년의 가장 압축적인 묘사다. 문제는 이다음에 오바마가 정부가 행한 조치다. 월가의 돈으로 대통령에 오른 오마바 정부는 경제대불황의 주범들에 대한 우주적 차원의 사면복권(구제금융과 무제한 양적완화를 위한 기준금리 인하)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개의 조치로 인해 금융업체들은 손실처리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됐고, 탐욕의 잔치를 벌였던 슈퍼리치들은 2008년 이전보다 더욱 부유해졌다. 전 세계 부의 30%가 상위 0.1%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상위 1%에 수중에 50%, 상위 10%의 수중에 90%가 넘어갔다.



그 대신 전 세계 하위 90%는 적선인양 남겨둔 10%의 부를 가지고 피 터지는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적자생존의 지옥으로 내몰렸다(신자유주의가 가장 잘 작동하는 조건). 실물경제는 완전히 무너져 역사상 최장기의 대불황 속으로 빠져들었고, 유럽의 경제위기와 중국의 경착륙, 신흥국들의 저성장과 금융불안은 전 세계적 차원의 환율전쟁을 촉발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돈이 넘쳐난다. 실물경제(테러와의 전쟁으로 대박을 터뜨린 군산복합체와 감시‧영상‧용역산업처럼 재난과 위기를 조장하고 재건을 담당하는 산업은 대호황)와 하위 90%와는 상관없이 금융과 슈퍼리치의 수중에서만 도는 돈이 넘쳐난다.



헌데 정말로 교묘한 것이 실물경제의 몰락은 저유가 체제를 구축했고, 사실상의 제로금리와 마이너스금리는 하위 90%에게 저축보다는 소비를 늘리도록 만들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막아주는 효자노릇을 하게 됐다. 미국경제가 조금 살아났지만 그것은 하위 90%의 혁명을 막는 정도에 불과하다.



선진국처럼 내수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각국 정부가 경제침체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국민혈세로 확대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이 돈들이 슈퍼리치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것도, 하위 90%의 임금인상에 나서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박근혜 정부처럼 임금을 깎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상태는 상위 1%에 의한, 상위 1%를 위한, 상위 1%의 신자유주의가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전 세계경제가 동시에 망하지 않는 한, 상위 1%도 피해갈 수 없는 대몰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전복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의 상태를 바꿀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미 연준이 당장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올해 안에만 올려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10월도 있고, 12월도 있으니 중국과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와 대척점에 설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의 파장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먹을 것도 더 많아진다.  



게다가 각국에는 국민 전체의 것인 공공재들이 넘쳐난다. 민영화를 시키면 수백 년은 먹고 살 수 있는 국영기업과 공기업, 공공서비스(국민연금, 사회복지, 건강보험, 교육제도 등)가 넘쳐나고, 정부 자체를 민영화하면 하위 90%의 소비와 세금만으로도 영원한 부의 제국을 구축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상위 0,1%의 슈퍼리치와 상위 1%의 슈퍼클래스들이 하위 99%에 대한 역(逆)계급혁명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세상을 모두에게 돌려주었던 위대한 대혁명의 전통이 완전히 뒤집혀 상위 1%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미 연준-미 재무부-월가-IMF가 추동하고, 미 국방부와 군산복합체가 강제하고, 각국 정부가 협조하는 글로벌 노예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됐다.



미 금리 동결과 헬조선이 상관없는 것도 이 때문이며, 더한 지옥이 조금 미뤄졌을 뿐이며, 최상으로 쳐도 지금과 같은 지옥이 계속된다는 것만 말해줄 뿐이다. 명심하라, 당신이 하위 90%에 속한다면 신자유주의 체제(글로벌 노예제도)를 거둬내지 않는 한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간다 해도 그곳이 바로 헬조선이라는 사실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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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耽讀 2015.09.18 12:16 신고

    박그네정권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경제 파국은 막을 것입니다.
    다음 정권에 핵폭탄을 물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명박처럼 아무 책임 안집니다. 정말 나쁜정권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8 13:16 신고

      문제는 국민들이 어떻게 이 난관을 넘기느냐 입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언론은 이런 실상을 얘기하지 않으니....

  2. 우니에몽 2015.09.18 15:36 신고

    뀨 저왔씁니당!!

  3. 바람 언덕 2015.09.19 10:32 신고

    언젠가는 터질일...
    빨랑 올리고 터져버리던지...
    매도 빨리 맞는 게 낳다고 했는데...
    요즘은 정말 욕지거리 밖에는 안나옵니다.

    ^^;;;

    • 늙은도령 2015.09.19 17:22 신고

      네,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있겠지요.
      이런 상태로는 더는 불가능하니까.....

  4. 공수래공수거 2015.09.19 11:15 신고

    재벌들의 금고에도 돈이 철철 넘쳐 나고 있습니다
    제 주머니는 언제나 먼지만 훌훌....

  5. base 2015.09.19 12:36 신고

    위 내용에서 미 갑부들은 국내외에서 돈을 긁어 모았고 연준은 이를위해 금리를 내려주었다는 의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5:37 신고

      원래 연준은 미국의 공식적인 정부기구가 아닙니다.
      원래 민간기구입니다.
      미국 각주의 중앙은행과 다른 은행들의 대표기구입니다.
      볼커부터 옐런까지 모조리 유대인이 의장을 했고요.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는 완전고용을 위해 금리가 어느 정도 높아도 됩니다.
      저축과 고율의 조세로 경제를 성장시켜 임금을 올려주면 되니까요.
      물론 안정적인 물가상승을 관리하면서요.

      헌데 이런 상황에서는 부자들이 재산을 늘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볼커 의장 때 금리를 21%까지 올렸습니다.
      레이건은 세율을 78%에서 28%까지 내렸고요.
      미국의 중산층은 돈을 벌어 집을 살 때 대출을 낍니다.
      헌데 금리가 올랐으니 여러 중산층이 무너지고,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며 케인즈 체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것을 볼커쇼크라 하는데 이때 부자들이 이자 덕분에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금리를 내렸습니다.
      파산하거나 가난해진 중산층들이 대출을 늘렸고, 이 돈은 부자들의 돈에서 나왔으니 국내에서 돈놀이를 할 수 있게 됐고요.
      그렇게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이 늘어납니다.
      정부의 각종 복지제도도 없앴기 때문에 더욱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부자들의 금고는 늘어났습니다.

      그 다음은 외국에 금융위기를 일으켜 IMF 구제금융을 받게 하고 이자를 대폭 올립니다.
      대출받은 사람들은 망하고, 그들은 어마어마한 이자를 챙기고, 값싼 가격에 주요 기업들을 인수하고, 다시 되팔아 목돈을 챙기고, 그 다음부터는 대출 증가에 따른 이자로 돈을 또 벌고....

      이런 식이지요.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국내외에서 상위 1%가 하위 90%의 돈을 긁어갑니다.
      정부가 할 일을 줄이는 것도 이 때문이고, 규제를 푸는 것도,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는데 그것은 지적공동체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 base 2015.09.19 16:05 신고

      원문에서 중간과정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답변에 감사드리고 그날 뵙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7:20 신고

      네, 그때 뵙겠습니다.

  6. 불루이글 2015.09.19 18:01 신고

    0.1%슈퍼리치들 이 전세계 부의 30% 더 늘려서 상위10%가 90%의 부를 차지하고 나머지 10%로 90%의 하위층들이 피터지게 싸워 가며 싸우고 있다는 말씀 이군요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수 없네요

    빈민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현상이

    바로 우리 나라 처럼 목소리를 낼수 없도록 귀족노조로 낙인을 찍어 노노 갈등과 국민 불신을 조장하고 그기에 놀아난 저능한 국민들 때문에 노예들 끼리 피터지게 다투는 형국과 다를바가 없는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8:43 신고

      네, 정말로 이렇게까지 심각한 부의 불평등이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최악의 시기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7. 브이포벤데타 2015.09.20 00:04 신고

    ...어디를 가더라도 헬조선이란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나은 곳이 있지 않을까요? 북유럽 국가나 스위스라던가 ^^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민 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8. 덕산 2015.09.20 08:04 신고

    우리 자녀들을 이땅에서 어떻게 키워야 될지 많은 고민을 하면 살고 있습니다.

  9. 소피스트 지니 2015.10.04 23:10 신고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야근에 지친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우리를 또 털어먹는 족속들에게 주먹이라고 한번 날려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10. 타임슬리퍼 2015.11.03 22:56 신고

    안녕하세요! 미국 금리 동결 관련해서 검색해 보다 이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아고라에서 늙은도령님이 올려주시는글 잘 봐오다가 이렇게 개별 사이트가 있는걸 알고서 내용 살펴보다가 궁금중에 글을 남깁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02/0200000000AKR20151102209500071.HTML?input=1179m

    위의 사이트 내용 대로라면 미국 부채가 오바마 임기내 2배 가까이 상승해서 지금 2경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려버리면 부채가 더욱 증가되고 결국 미국이 더 힘들어 지는것 아닐까요?

    미국이 금리를 올릴수는 있을까요?

    무식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몰라서 그럽니다.

    이점에 대해서 제가 어떤점을 간과하고 있는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자분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편지를 써서 병 속에 넣은 후 바다로 떠나보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병 속에 편지를 넣은 주인공은 병이 어디로 갈지, 누구한테 갈지, 도중에 병이 깨져 사라지거나 영원히 바다를 떠돌지 알 수 없습니다. 미지의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었지만, 운이 좋아야 병을 주운 사람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동시대의 사람일 수 있지, 반대의 경우라면 해독 불가능한 나만의 독백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병 속의 편지'를 통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다룬 철학자이자 사회과자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현재의 독일을 만들어낸 양대 학파 중 프랑크푸르트 학파(나머지 하나는 프라이부르크 학파로 신자유주의의 원형이자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정립했다)의 1세대인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21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영국의 지그문트 바우만입니다.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나치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자 미국으로 망명한 아도르노는, 정착할 수 없는 미국사회의 방랑자이자 소외자로서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을 다룬 《미니마 모랄리아》를 통해, 90대 후반의 고령을 이끌고도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 바우만은 근대이성의 산물인 현대성 대한 고찰로 유명한 《유동하는 공포》에서 '병 속의 편지'라는 비유를 통해 지식인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들인 두 사람은 47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발터 벤야민(필자가 아는 한 산문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지 보여준 최고의 철학자이자 사회과학자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긴 좌우를 막론하고 20세기 말과 21세기의 철학자와 사회학자, 미학자, 정치학자들 중에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보편적인 정의와 최선의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는 노엄 촘스키,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하워드 진, 미국에서는 나오기 힘든 좌파지식이지만 미국 특유의 낙관론에 기대는 경향이 있는 리처드 도티, 존 롤스처럼 합리적 토론를 통해 민주적인 합의에 이르는 길을 탐구한 위르겐 하버마스 등은 벤야민이나 푸코에 인색하지만, 그들의 위대함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결국에는 자유와 정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란 '결과의 낙관론'을 믿는 사람들은 희망의 전도사로 최후의 승리를 주창하기 때문에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처럼 지금/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그래서 비폭력적인 저항을 지지하는 진보좌파 지식인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저항과 투쟁을 반길 혁명가는 없기 때문입니다.  





석학들의 판단이야 어떻든, 이번 글에서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인 사회참여와 집필을 보여주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의 도움을 받아 '병 속의 편지'가 지식인에 대해 지니는 알레고리(은유 또는 비유)를 다루고자 합니다. 영국이 배출한 최고이 석학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위대한 휴머니스트이자 정직한 철학자이며 불굴의 사회학자였던 마르크스와 아도르노, 브르디외를 인용하며, '병 속의 편지'에 담긴 지식인에 대한 비유에서 두 가지 추정을 제시합니다. 



(병 속에 담긴) 그 메시지가 종이에 써서 병에 넣어 띄워 보낼 만큼 가치가 있다는 추정. 그리고 그것이 발견되어 읽혀질 시점(비록 그 시점을 미리 확정할 수는 없지만)에 아직도 가치가 남아 있으리라는(발견자가 그것을 해독하고 연구, 이해, 적용하기만 한다면) 추정.



이런 두 가지 추정은 어떤 지식인이 자신의 사상에 대해 '들을 준비도 뜻도 없는 동시대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을 때, 그래서 '정해지지 않는 미래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맡기는 일'이 낫다고 여겼을 때 가능합니다. 이는 어떤 지식인이, 특정할 수 없는 미래의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을 들어줄 것이며, 이해할 수 있으며, 연구하고 발전시켜 후대에 전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호응도 받지 못하고, 토론을 거쳐 인정받거나, 검증 절차를 거쳐 진리의 영역으로 들어서거나, 심지어는 맹렬한 반박이라도 받지 못하면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에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은 위대한 마르크스가 "아무튼 나는 말했고, 나의 영혼은 구원받았다"고 말한 것처럼, 체념에 빠져 똑같이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처럼 위대하고 방대한 추상을 펼칠 수 있는 지식인도 없겠지만, 전복적이라고 할만큼의 혁명적 변화가 없으면 공멸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 행동해야 할 때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작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된 것에서 보듯 혁명의 기운은 전 세계적으로 분명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 속의 편지'는 영원한 가치를 믿는 사람, 보편적인 진리를 믿는 사람, 지금 진리를 찾고 가치를 지키려 애쓰게 만드는 우려가 계속되리라 의심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편법이다. 그 병 속의 메시지는 좌절이란 일시적일 뿐임을, 그리고 희망은 계속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가능성의 패배하지 않음과 그런 가능성을 가로막는 적들의 허약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우만은 지식인의 역할이 치열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는 것에 있다는 아도르노의 성찰을 따라갔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살해 위협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던 아도르노가 너무나 흥청망청이고 더없이 풍요롭고 지독히 이중적인 미국에서의 경험이 정신적 부적응에 가까웠던 것도 고려해야지만, 완벽하게 고립된 지식인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뻔뻔하고 파렴치할 정도의 표절이 넘처나고, 권력과 자본의 돈에 빌붙어 살며, 파벌을 만들어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기에 바쁜 이 땅의 지식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모든 철학이 죽었다"는 비트켄슈타인의 절망적인 선언이 나왔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철학과 사회학이 죽어버린 시대가,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거대 미디어의 세상이자, 생각 자체가 사라진 채 끊임없이 이동하고 접속하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자신의 과거를 삭제하고, 현재의 나를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는 모발일기기의 특징으로 대변되는 시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의 행정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인류사의 최대 악으로 지탄받던 나치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이었던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ㅡ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를 출간한 뒤, 좌우로부터 융단포격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동시대의 주류에서 벗어난 사상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고립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자, 학문적으로 자살행위에 다름이 아닙니다(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악의 평범함이다. 모든 분야에서 타락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우의 융단포격을 받은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사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그녀가

《인간의 조건》에서 지식인(모든 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에게 주어진 삶이 사막처럼 척박하고 황량해도 끝끝내 시작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비판이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병 속의 편지' 같은 편법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의 추고에서 말한 것을 지식인(특히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이라면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사회적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칠 기회를 얻은 사람은,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으로 있을 수 없다.         

 


부정적 세계화가 돈이 되는 지역들을 전 지구적 시장으로 끌어들여 뼈속까지 빨아먹고 있는 지금/현재,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다 전문화돼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도 없고, 전 지구적 지배계급과 거대 자본 및 초국적기업에 봉사하는 지식에는 국경이 없어졌습니다. 세계화의 주역들을 위해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며 계급화된 엘리트로 자리매김한 현대의 지식인들은 부정적 세계화를 위해 시민을 소비자로 변질시키는 상징제작자와 상징조작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정적 세계화의 정도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족벌신문과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방송들을 맴돌며 정치권만 기웃거리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영혼도 철학도 없는 그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만 쫓아 불나방 같은 행태를 서슴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업무가 현실비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사실과 진실은 물론 진리와 공리마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와 진실 여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지식의 이름으로 홍수처럼 밀려오는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인이 할 일이란 자신의 사상이 경고하는 미래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부정적 세계화의 현실과 사회비판에 물러섬이 없어야 합니다. 성장과 개발이 불러온 현실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지만, 모름지기 철학과 사회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실낱 같은 희망을 잉여에서 쓰레기로 버려지는 시대의 난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박근혜 정부가 무서울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지금, 지식인이라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공포》의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과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진보좌파의 가치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지식인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오픈된 디지털세상이라고 해도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이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신자유주의의 천국인 미국과 영국에서 샌더스와 코빈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거대한 전환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용암을 내뿜고 있다는 뜻이기에, 이 땅의 지식인들도 다음과 같은 진단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부산대 교수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면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희망을 갖자. 이 두 개의 미래에 대해, 아직도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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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9.16 08:42 신고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말에 저도 공감합니디다
    이 정권은 반대이기 때문에 싫어할수밖에 없습니다

    고현철 교수의 고귀한뜻도 지켜내야할 가치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6 15:44 신고

      네,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제 한몸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2. 백순주 2015.09.17 09:14 신고

    '해독 불가능한 나만의 독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그러운 듯 다시한번 설명해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쯤 됐다 싶어 답을 다그쳤습니다.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남들은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요.

    관심은 희생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7 15:14 신고

      누구를 설득하려고 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꾸준히 얘기하다 보면 듣는 사람도 비슷한 얘기를 접할 때 자신도 모르게 님의 얘기를 떠올리게 되고, 그런 과정을 몇 번이나 거쳐야 변하기 시작합니다.
      설득이나, 설명이나, 진실과 진리로 가는 길은 오랜 고통이 따르는 힘든 일입니다.
      말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만날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화학실험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했는데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처럼요.

      관심은 희생이기도 하지만 노력이고 사랑입니다.
      노하우가 쌓일 거에요.
      그러면 설득력이 높아지고, 진심이 전달될 것입니다.
      art of love처럼요.

    • 백순주 2015.09.18 08:01 신고

      관심어린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쓰다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네요.
      이 말 뜻이 진심어린 말이었군요. 호호.

    • 늙은도령 2015.09.18 10:44 신고

      허허.. 그러네요.
      만일 상업광고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수천 배는 좋아질 것입니다.
      우주적 차원으로 소비하는 사회는 광고로 움직이니까요.

      남을 설득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 입니다.
      인간은 뇌의 구축이 거의 끝나는 16세 전후가 되면 설득당하지 않는 경우가 99.99%입니다.
      수많은 노인들이 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박정희와 인생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능하면 진실에 가까운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말해주는 사람의 몫이 아니기에.



세르주 라투슈의 《탈성장사회-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를 보면 소비사회에서 학교와 교육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탈성장’은 이반 일리치와 카스토리아디스, 장 피에르 뒤피 등이 개념화한 것으로, 경제주의, 경제 성장, 공급주의와 빚의 경제학 등이 만들어낸 지속 불가능한 소비사회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생태주의 시민운동입니다.





많은 분들이 현재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는데, ‘탈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육과 학교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합니다. 이들은 각종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신질환과 만성질환, 자살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인류의 공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대지의 사막화, 물 부족 등을 초래하는 소비사회로부터 벗어나려면 교육과 학교가 전복적일 만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려서부터 TV와 스마트폰, PC, 야외광고판 등의 고도로 첨단화된 상업광고에 노출되는 아이들은 학교에 진학해서도 미디어에 노출되고, 경제성장과 소비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 회로가 단절되고, 유도된 욕구를 즉각적으로 해소해야만 - 욕구는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므로 과소비와 소비중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살아갈 수 있는 소비자(=생산자)로 키워집니다. 학교와 교육이 모두 다 점령당한 것이며, 그래서 세르주 라투슈는 《탈성장사회-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주체 형성을 기조로 하는 학교는 일조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학교는 현재 모습 그대로의 사회, 즉 경제 성장과 치열한 경쟁을 중심 가치로 하는 이 사회에 청소년들을 적응시켜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드시 나아가야 할 사회 - 탈성장 사회 - 를 준비하도록, 즉 소비주의적인 파괴에 저항하는 능력을 지닌 시민의 형성을 위해 청소년을 교육해야 하는 것인가. 학생은 장차 지적이고 혁명적인 실업자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소외된 생산자=소비자, 즉 ‘문명화된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학생은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질서를, 적어도 그 가장 유해한 측면을 극복하거나 깨뜨리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이용하고 발달시키는 동시에 사회에 최소한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 있어서 학교 제도 - ‘사회 질서에 종속을 조장하는 요소와 해방을 촉구하는 잠재적 요소가 동거하고 있는 제도’ - 의 책임은 어떤 것일까. 교육자에게 요구되는 곡예 같은 훈련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반 일리치의 신랄한 비판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교육은 ‘고용 가능한’ 노동자의 양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경제, 경제 성장, 소비라는 이름의 종교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의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소수 엘리트가 극히 생산적으로 변해가고 대다수 대중은 규율을 준수하는 소비를 배울 필요가 있는 사회에서 학교는 그 사회의 일부가 된다.” 


시장 민주주의의 퇴폐함은 필연적으로 제도의 타락을 초래한다. 오늘날 학교는 경제 성장이라는 종교를 전파하고 진보에 대한 믿음을 주입시킨다. 유치원부터 대학 그리고 평생 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 제도의 공식적인 일부는 상식을 벗어난 초대형 기계를 위해 원활하게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만든 것이다(이반 일리치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와 《성장을 멈춰라》,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고민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탈출구를 모색하고 실천하며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탈성장’의 모토가 대안의 모색이 아닌 대안의 모태이듯이, 다양한 형태의 대안교육들이 미래를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울리히 벡이 경고한 대로 우리는 ‘초위험사회’에 돌입해 있고, 신자유주의는 그런 위험사회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탈취의 체제입니다. 지배엘리트를 구축하는 상위 1%가 9% 정도에 이르는 체제의 간수의 도움을 받아 하위 90%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언론의 소유와 함께) 교육과 학교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지속이 불가능한 현 체제를 비폭력적으로 전복하려면, 교육과 학교의 중심인 교사들이 분명한 시대적 이해와 사명,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소비자 육성 세력과 사고력을 저하시키는 기술에 저항해야 합니다.” 교육과 학교가 차별을 공고히 하는 지배의 수단과 장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더 이상 미루면 기회는 없습니다.





성장과 대규모 개발, 과학기술의 고삐 풀린 폭주, 타락한 정치의 직무유기, 진보의 낙관론, 자연의 풍요를 자원의 희소성으로 탈바꿈시킨 경제학(극소수에게 무한대의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해준 경제학)이 창출한 문명의 역설이 '초위험사회'로 귀결된 지금, 인류가 6번째 종말에서 탈출하려면 우리의 인식이 급진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성장을 얘기하는 것은 지독히 무책임한 것이며, 공멸의 순간을 앞당기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진 자들이야 그렇게 해서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싶겠지만, 그 과정에서 배제되고 버려지고 죽어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탈성장'과 '성장 없는 풍요'의 긴급성과 전면성에 대해 얘기하고 떠들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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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9.14 08:26 신고

    숫자 놀음 하는 성장..
    피부에 와 닿는건 없습니다
    도대체 뭐가 성장인지..

    • 늙은도령 2015.09.14 17:06 신고

      지금은 성장이 아닌 파괴입니다.
      성장보다는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먼저입니다.
      망가진 지구를 살리는 것도 시급하고요.

  2. 앨리스 2015.09.14 09:34 신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 너무나 공감되고 걱정되고 걱정되는 시대입니다.
    도령님의 추천으로 읽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주더군요.
    실제 요즘 아이들은 생각을 귀찮아 하고 많이 하지 않아요 그것이 가장 충격적이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4 17:08 신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인간은 진화의 산물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나갑니다.
      교육도 거기에 맞춰 아이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제발 무엇이 인간의 미래를 바꿀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화를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다.


                                                             ㅡ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인용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를 다룬 책 중에서 가장 명료하게 신자유주의를 압축한 설명이 위의 인용문이라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이해하려면 꼭 숙지하기를 바랍니다. 푸코가 밝혔듯이 신자유주의는 19세기의 자유주의가 통치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생긴 상위 1%가 하위 90%를 상대로 벌인, 일종의 계급전쟁입니다. 



공통의 이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계급은 하위 90%가 이루어야 할 것인데, 신자유주의에서는 상위 1%가 공통의 이해와 이익을 위해 계급을 형성합니다. 이것 때문에 소수에 불과한 지배엘리트들이 하위 90%의 돈과 노동을 탈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상위 1%는 사회주의, 하위 99%는 자본주의가 적용된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합니다. 





상위 1%에 근접한 9%는 체제의 간수로 하위 90%를 감시하고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상위 1%의 필요에 맞게 관리하고 동원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도록 하위 90%를 각각의 임무를 수행시키며 그들의 노동과 부를 착취합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노동착취와 함께 임금과 혈세(정부사업 및 국가업무의 민영화 등으로)까지 탈취합니다. 



체제의 간수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의 경영진이나 중역들이고, 재벌이나 대기업의 경영진과 고위임원, 교육기관의 수장이나 종신교수 및 프로페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급진적 지식인, 고위공무원, 상급법원 판사, 정치검찰과 경찰간부, 교도소장, 공장장, 각종 감독관, 용역업체 간부, 범죄조직 보수 등등 각 분야에서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상위 1%의 이익을 실현시키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분상승의 가능성인 사회이동성을 말할 때 주로 인용하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 9%에게만 해당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정착되기 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례가 다양한 계층에 적용됐지만, 이제는 체제의 간수에게 적용됩니다. 상위 1%가 정치적 용어로 경제를 말할 때 쓰는 성공이니 대박이니 하는 것들은 성공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체제의 간수에게만 유효한 것이 신자유주의 체제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좌파적 버전과 우파적 버전이 공히 존재하며,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근본주의를 내세운 극우적 버전(시장자유주의 우파라고 순화해서 부르기도 한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경제규모는 커져도 국민의 소득은 늘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1원1표를 성립시키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상화한 것을 말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위계적 질서가 강한 초국적기업이나 대기업 집단, 거대금융업체, 슈퍼리치 등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지배엘리트의 이익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과 자본 편향적인 법치주의(현재의 권력과 자본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주기 위해 체제의 반대세력을 합법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목표)를 말합니다. 교육적으로는 권력과 시장 주도의 교육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1%의 지배층과 99%의 자발적 복종의 피지배층을 구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탈성장사회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쓴 조하나 버크만은 신자유주의가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로 구성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이룰 수 있는 이유가 이것에 녹아있습니다. 박근혜의 권위주의적 통치(줄푸세), 재벌의 황제경영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과 《쇼크 독트린》을 쓴 나오미 클라인은 소련과 동유럽, 남미를 박살낸 시카고보이즈(프리드먼의 제자들)와 하버드 신자유주의자(제프리 삭스가 대표적이었다)들이 보여주었던 통치방식에 따라 재난자본주의, 카지노자본주의, 쇼크자본주의라고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와 혼란 시기(전쟁, 내전, 금융 및 경제위기)에 적용해야 해야 이식이 가능하며, 권위주의적 정부가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정지시킬수록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현대 신자유주의의 탄생지인 독일의 경우 좌파적 버전(사회적 시장경제)이 상당 부분 살아남았고(필자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적 요소와 민주주의가 배제된 것이 우파적 버전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생각이다), 유럽 각국에 사회민주주의(민주적 사회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시장사회주의라고도 한다)의 형태로도 남아있습니다.



우파적 신자유주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라 하며, 최근에는 미국식 자본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이것의 기원은 리프먼, 미제스, 하이에크, 프리드먼, 나이트, 포퍼 등이 참여한 몽페를랭 협회(초기 이름은 액턴-토크빌 협회였다)가 결성됐을 때 구체화된 신자유주의(국가 개입을 극도로 반대하고, 통화주의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독립, 자유방임 시장경제와 이를 위한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가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극우적 버전인데, 권위주의적 정부, 제왕적 대통령, 위계적 재벌, 기득권화한 양당, 노조와 파업 불용, 비정규직 양산, 상시해고, 취업규칙 완화, 최저임금의 악용, 각종 규제 철폐, 경제민주화 회피, 경쟁 중심의 교육, 지역적 차별, 언론의 상업화, 안보 강조, 재난자본주의, 시장 중심의 경제주의, 여성의 상품화, 세대 간 갈등 조장, 소비지상주의, 사법과 인식의 보수화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사회주의적 요소 때문에 민주정부 10년을 뺀 60년을 내내 극우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였지만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박정희 향수에 사로잡힌 37.5%의 고정지지층만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들 중에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0.0001%도 안 되겠지만, 이들의 열성적인 투표 참여로 인해 하위 90%의 돈을 상위 1%로 이전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현재의 한국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치적 자유도 사회경제적 평등도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남북분단 상황을 악용해 최대로 번성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재벌 오너도 한 사람의 시민에 불과한데 국회에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이 마치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된 것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모든 파업에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고, 기업의 경영실패는 노동자에게 전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평등에 기반하는 민주주의가 최소화됐고, 부자감세와 서민증세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도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성공을 말해줍니다. 한국 현대사를 성공한 자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국정교과서 부활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헬조선에 가깝습니다. 집권세력이 포털을 대놓고 길들이는 독재적 행태가 가능한 것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주주의를 최소화하는 극우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세습자본주의가 정착됨에 따라, 뉴라이트 계열의 부활하는 것은 역행하는 역사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정치엘리트와 위계적 재벌의 경제엘리트가 이끌고 있는 상위 1%가 지배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 출발은 잘못된 광복의 형태(남북 분단)에 있었고, 이를 이용한 친일부역자들과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맥아더의 오판이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려면 박정희 시절의 압축성장과 IMF 외환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IMF 외환위기부터 다루겠습니다.  




10월9일 첫 만남을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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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공(靑空) 2015.09.12 18:19 신고

    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이런 식으로 정착이 되었을까요? 저는 조중동과 재벌, 이승만의 자유당부터 지금의 새누리당까지 이어지는 기득권층(이라 부르는 매국집단, 재난집단)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철학 따위는 없고, 영악함을 제외하고는 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이라도 짓밟고 망칠 수 있는 이들이요. 저는 이념과 체계조차 인간 이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악한 이들을 잉태한 것은 일제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사회학과의 게오르크 폴만 교수의 전세계 엘리트들의 이동경향성을 추적한 연구에서 한국은 비정상적으로 영미에 편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의 무국가성에 대한 이해없이 문화적 토양과 법과 국가체계가 상이한 한국에 무분별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심었습니다. 미국에 자국의 국가기밀을 팔려고 서로 다투는 그 모습은 미국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국가와 사회의 의사결정에서 이들을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압도적이고, 그들의 금력과 권력 또한 반대진영에 비해서 너무나도 공고합니다.

    제대로 된 후속세대라도 키워야 할텐데... 작금의 교육과 사회가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들을 키울 수 있을지... 키우고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답답하네요.

    • 늙은도령 2015.09.13 03:39 신고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해방될 때 친일 부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것이 컸습니다.
      이 책임은 당시의 미 국방부와 맥아더에 있습니다.
      이들이 너무 안이하게 일본을 판단했고,소련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은 기회주의자의 천국이 됐습니다.
      더더욱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것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한국이 친일부역자들은 친미사대주의로 방향을 틀었고 박정희 또한 그것을 철저히 이용해 먹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조중동과 친일 부역자들이 한국의 주요 엘리트가 됐습니다.
      미국 유학파들이 한국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도 일본이란 나라를 점령한 맥아더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일제의 교육제도가 그대로 정착했고, 한국의 국가체제가 미국과 일본의 혼합물이 됐습니다.
      여기에 압축성장은 도덕의 필요성을 없앴고 성공만이 살길이라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더 이야기해야 하지만 아무튼 한국은 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공지상주의와 경제주의를 거둬내야 다음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거둬내야 조중동도 친열 부역의 후계들도 몰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과 유럽식 철학, 체제 등을 합쳐야 미래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적인 것들을 글로 옮기지 않는 것은 유럽을 먼저 이해해야 미국의 문제를 알 수 있고, 그래야 한국 지배엘리트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글로 옮기기에는 너무 길어 지적공동체가 잘 되면 거기서 풀어야겠지요.
      우리나라에도 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대가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을 각성시킬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국민들에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렵지만 하나씩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최근 많은 움직임들이 있으니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최소 10년은 갈등 상황이 폭발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2. 훈이- 2015.09.13 00:27 신고

    이게 절대 바뀌지는 않지만 바뀌지않는이상 저희 애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수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9.13 03:43 신고

      제가 보기에는 10년 내로 대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세계적으로 더 이상 이런 식의 경제와 정치가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부류들이 늘어났습니다.
      가장 빠른 길은 미국이 바뀌는 것이지만, 아무튼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이 조금 더 좋은 콘텐츠를 반영할 수 있으면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고요.
      한국은 현대성의 나쁜 점들이 모두 모여 있는 난장판이지만, 그것이 용광로처럼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3. 참교육 2015.09.13 08:07 신고

    어둠이 짙어진다는 것은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희망을 말하지요.
    우리사회는 더 이상 물러설수 없는 막장에 가끼워지고 있습니다. 자본은 자기네들의 세상을 구가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깨어나야 하는데.... 깊은 잠에 빠진 민중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3 23:39 신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그들은 실질적인 면에서 강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명목상의 자본은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그런 것이 불가능합니다.
      정치와 사법까지 얽매여 있느니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합니다.
      헌데 그런 힘을 시민이 만들지 못하니 외부효과가 있어야겠지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이라, 걱정이 앞섭니다.

  4. besso 2015.09.19 01:41 신고

    님 글을 읽다보면 웬지 정토회가 생각이 납니다. 희망의 내음...
    진정한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만나서 좋은 세상을 만들면 참 좋겠습니다.
    다만 인류라는게 원래 탐욕이 근본이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화해보자는 식으로 .. 뭐랄까 참회의 마음으로 접근하는게 좋다는 생각도 하구요.





제 건강 때문에 미루고 미루었던 첫 번째 만남을 10월9일(금요일)에 가지려 합니다. 지적공동체를 향한 첫 걸음을 띠고자 합니다. 글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을 풀어놓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매달 한 번씩은 이런 만남을 가지려고 하며, 그때 제 구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소는 제가 살고 있는 산본과 서울 중에 한 곳으로 정할까 합니다. 첫 번째 만남에 참가하고자 하는 분들은 댓글로 원하는 장소를 선택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석 인원이 적더라도 무조건 진행할 것이니, 늙은도령이란 놈의 정체를 알고 싶은 분들은 댓글로 참석 여부를 밝혀주십시오.



첫 번째 만남에서는 현재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강의할까 합니다. 질의응답시간도 가질 것이니, 날카로운 질문은 가슴 속에 묻어두시고, 소프트한 질문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분야를 다룰 생각이므로 지식을 나눌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저도 만남이 잘 되면 제 인맥을 풀가동하겠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가 내년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 것입니다. 힘겨운 시절을 넘기는 방법에 대해 서로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모임 일시 : 10월9일(금요일, 공휴일)

모임 장소 : 산본과 서울 중 택일,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모임 시간 : 오후 3~6시  

회비 : 미정(장소 확정된 후 결정), 최소화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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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se 2015.09.11 20:03 신고

    안녕하세요. 제가 참석할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참가해 보겠습니다. 장소는 산본이 좋을것 같아요.

  2. 하늘이 2015.09.11 20:17 신고

    너무 멀고 시간이 안되어서 아쉽네요 ᆞ멀리서 응원하며 글로서나마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9.11 20:22 신고

      너무 아쉽네요.
      꼭 뵙고 싶었는데...

      다음 번에는 꼭 뵙기를 바랄게요.

  3. 머무는바람 2015.09.11 22:04 신고

    아자 화이팅 하셔요

  4. 백순주 2015.09.11 22:27 신고

    참석인원이 적더라도 진행하실 생각이라고 하시니 응원 많이 해 드릴께요.

    저도 수업 하나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사람 모으는 일이 어렵습니다. 당신한테 이익이 뭔지를 알리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는데 ...그 보다 감사함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문을 다 열어 놓고 기다림을 선택한다면 성장할 거라 믿어요!
    화이팅!!

    • 늙은도령 2015.09.11 22:53 신고

      네, 길게 보고 있습니다.
      그 동안은 건강에 자신이 없어서 못했는데, 그러다 보니 무한대로 늘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시작합니다.
      제가 가진 것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최대한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5. C.H.Kim 2015.09.12 08:07 신고

    안녕하세요. 어제 말씀드렸던 것처럼 장소는 산본이 좋을 것 같습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5.09.12 10:51 신고

    뜻깊은,의미있는 모임이 되시길
    멀리서나마 성원하겠습니다^^

  7. 줌 마 2015.09.12 12:20 신고

    많은 분들이 좋은 강의를 들었음하는 바람입니다. 전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

  8. 2015.09.13 02:3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03:16 신고

      네, 꼭 한 번 뵙지요.
      언제든지 연락 주시면 날짜를 잡을 수 있습니다.
      늘 제 글에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요즘은 미래세대들이 하도 힘들어하니 답답한 노릇이고요.
      지구온난화까지 고려하면 정말 걱정이 많습니다.

  9. 앨리스 2015.09.14 09:24 신고

    첫 잔을 드는 그림 너무 멋집니다.(이런 것들은 어디서 가져 오시는지 ㅎㅎ^^)
    형편이 된다면 참석을 꼭 하고 싶지만... 참아야 되는 일인입니다 ㅎㅎ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늘 시작은 한 점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후기도 올려주세요^^
    도령님의 목소리가 너무 멋져서 모두들 팬들이 되실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인식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과도 같음을 느낍니다!!!

    • 늙은도령 2015.09.14 21:03 신고

      다음 모임은 대전이나 광주 쯤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방에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참여가 미진할 것 같습니다.
      작은 출발이라도 시작해야 다음이 있을 것이기에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님도 함께 했으면 했는데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아... 첫 키스의 날카로움...
      술에 만취한 상태여서 필름이 뚝!!! 끊겼답니다.

  10. 강동훈 2015.09.19 21:30 신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드디어 만남의장을 갖는다고 하시니 정말 기분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도 참석할수있으면 참석하고 싶습니다
    그전에 해외로 나갈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국내에 있다면 꼭 참석하겠습니다 한번 선생님께 재밌는 가르침을 받은터인지라 매우 기대가 됩니다 어머니도 모셔 가겠습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인식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전제(대표적인 것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 추상성, 모든 노동이 균질하다는 전제하에 사후적 평등의 근거가 되는 노동가치설, 계급투쟁의 기원이 된 다윈적 역사인식, 유토피아적 세계의 도래가 가능하다는 뉴턴식 우주관 등. 당시에는 뉴턴 이후의 과학은 없다고 할 정도로 뉴턴의 역학은 절대적 영향력을 지녔었다)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찰을 이루고도, 그가 예언했던 절대 다수가 누려야 할 ‘자유의 왕국’이 극소수의 ‘신자유주의 왕국’으로 변질되는데 일조했다.





아니 일조가 아니라 절대적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 어떤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여파는 근대유럽을 착취와 억압이 넘치는 무법지대로 만들었는데, 마르크스가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찾아냄에 따라 그의 성찰은 종교적 영역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가 작은 시장만 보고 자기조정 시장을 추상했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을 양산했듯이, 마르크스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던 영국의 자본주의에 경도돼 역사의 발전과정이 노동자의 유토피아로 이른다는 결정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자본주의의 경험이 일천했으며, 그 당시까지의 과학적 한계에 갇혀 있었지만 이는 문제가 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다윈적 역사인식과 뉴턴식 우주관에 경도되는 바람에 역사의 발전과정이 거듭되는 계급투쟁에 의한, 최종적으로는 무계급사회에 이른다고 봤다(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은 자본주의가 극에 이르면 자유의 왕국에 이른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적 성과들은 미래는 무엇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맞물려 자본주의적 착취가 종말에 이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거꾸로 뒤집어버린 지배엘리트(특히 전통의 금융‧산업권력)에 의한 반동의 역사이자 권위주의적 통치로의 회귀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박근혜의 ‘줄푸세’처럼, 신자유주의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더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 덜 가진 자들의 것들을 탈취하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식 복지국가나 국가개입이 자연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내세워 적자생존의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뒤집어 ‘자유의 왕국’과 정반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해 위기를 조장하고 ‘쇼크요법(IMF 구제금융)’을 강제하는 것도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뒤집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1, 2차세계대전 이후 평등과 공존, 상생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발전국가 모델의 핵심이었던 평생고용 체제 때문에 상위 1%의 부와 권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대상으로 반동의 계급혁명을 감행해 부와 권력을 회수한 것이 신자유주의 40년이고,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마르크스가 하늘에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노릇이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신보수주의 세력(뉴라이트)들이 19세기에 유행했던 자유방임 시장경제(어떤 규제도 없었고, 노조도 없었으며, 국가의 개입은 원천차단됐던)를 전면에 내세운 채,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평생고용 체제를 파괴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이를 위해 경찰력과 감시권력을 극대화한 권위주의적 정부를 선호했고, 정경유착과 회전문 인사로 집권을 이어가야 했다(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인 사회주의에 비해, 신자유주의가 개인적이며 환경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극복하는 과정인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도 상위 1%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던 불평등은 자유를 제한하고 침식하는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늘어나고 정의와 도덕, 윤리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도 필연의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고 했지만, (바우만의 주장이 옳다면) 견고한 자본주의는 녹았지만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내부로부터 무너진 자본주의는 더욱 유연하면서도 무엇이라도 쓸어버릴 수 있는 상위 1%의 ‘액체의 형태’로 변형돼 세상의 모든 부분을 신자유주의화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석학들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통치의 방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막강해졌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줄이고 다른 세상을 만들려는 다양한 저항운동의 일치를 이룰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하위 90%에게 ‘유동하는 공포’를 양산하는 체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비어있는 9%는 체제의 간수로 별도의 군을 이루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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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9.09 09:19 신고

    변수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마치 마르크스나 애덤스미스가 잘못내린 결론처럼.... 저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국 자멸의 길을 걸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39 신고

      앞으로 10년 안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기반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파국을 면치 못합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 물부족 등의 공격이 2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성장 자체를 하면 안 됩니다.
      소비를 줄이고 지금보다 매우 많이 불편해져야 합니다.

  2. 耽讀 2015.09.09 12:38 신고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지요.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46 신고

      그래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가치가 없고 쉽게 사라집니다.
      우리는 실천하고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9.10 07:59 신고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1 01:04 신고

      네, 저도 제가 공부한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4. 천상명월 2015.09.10 16:36 신고

    언제나 현실과 타협하는 저는...정말 어려운 용어에 .. 작게만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청공(靑空) 2015.09.11 07:39 신고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주시는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쓰신 글에 감탄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가 그 형태와 목적이 유동적일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이론체계라기보다는 그 실상이 자본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이유를 기술발달과 환경적 요인와 같은 구체적 근거에 의해 설명하기보다 자유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명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가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선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다수의 시민의 해방을 드셨는데요. 푸코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인간은 문제에 직면해서 그걸 보아야만 바뀌고, 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결국 인류문명은 그 끝을 보게 되겠죠. 아니면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되거나요..

    이러한 신자유주의와 인류의 문제를 위한 해독제(Antidote)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독일식의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범주에 속하지만..)가 답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답은 독일만을 위한 답이지, 현재 봉착한 문제를 위해 고안된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답이 안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깊게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는 바가 적고, 또 그에 대해서 밝지 못하네요. 얼른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5.09.11 16:29 신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십니다.
      신자유주의는 권위적인 정부가 권위적인 재벌과 함께 시장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새워 부를 독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공의 자산을 민영화시키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지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사회주의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현대에 맞게 수정한 것이 나와있더라고요.
      그것을 민주주의와 엮으면 충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은 너무 상황이 심각해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집중해야 하고요.
      국민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제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기를 바랍니다.

  6. 백순주 2015.09.12 10:53 신고

    약속 지켜드리려고 열어는 보았으나 도령님과 대화를 나눌 능력은 멀었나 봅니다. 열심히 읽은 것이 아까워 댓글에 손은 댔습니다.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저는 벌써 주말은 글을 쉬려고 합니다. 매일 발행이 힘겨워졌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32 신고

      네, 그렇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게 매일 글을 올리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풀어놓으면 그 다음부터가 문제가 됩니다.
      길게 보셔야 합니다.

  7. 무지개 2015.09.15 10:06 신고

    항상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처음으로 댓글 남겨봅니다.

    마르크스가 가진 사유의 한계가 신자유주의라는 논리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마르크스의 어떤 부분이 신자유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인 부연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한 '계급 투쟁의 역전' 양상은 이해가 되지만, 어떤 논리적인 연관성 속에서 이런 일이 전개되는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필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푸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하위 90%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거꾸로 된 재분배)하는 정치경제적 과정인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푸코는 이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





많은 학자들은 모든 권위를 해체하던 푸코가, 해체작업이 뛰어날수록 자신이 지적 권위자로 자리 매김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없어 오랫동안 침묵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푸코는 모든 권위를 해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권력의 구조와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최후의 권력을 대면할 수 있었고,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침묵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는 푸코의 침묵은 방향의 급전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삶에 대해ㅡ그것이 뭐라고 불리건 간에ㅡ인류의 해방에 대해, 진정한 구원에 대해 얘기하고자 (프랑스 특유의 지적이고 언어적인 유희를 벗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공백이란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갇혀 있고, 이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지적공동체의 첫 발을 뗄 수 있다.



나머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성의 역사》시리즈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맞서려면 각각의 개인이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배려와 자아 성찰 및 해방이다. 모든 개인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그래서 자신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해방에 이르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푸코의 삶정치).





푸코의 성찰처럼, 각각의 개인이 칸트(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탐구한 뒤, 역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공존의 세상을 위한 방법까지 사유와 실천의 영역을 넓혔다)와 니체(대략적으로 말하면 칸트 류의 성찰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최고에 이른 자가 초인이며, 그는 그 자체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며 정의로운 세상의 창조자다)가 혼합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면 극소수가 독점하는 권력과 승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은 한 진정한 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하위 90%가 소비를 줄이면 상위 1%도 무너지듯이. 마르크스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도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든 자유인과 투쟁할 수 있는 권력과 승자란 존재할 수 없으니, 푸코는 체제를 뒤집는 혁명(맹자가 오래 전에 천명했던)보다 어떤 체제도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의 해방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렇게 폭력이 없는 혁명을 이루려했다. 그가 루소나 마르크스보다 칸트와 니체에서 희망을 본 것도 이 때문이다(공자와 맹자를 공부한 다음에 칸트와 니체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칸트에서는 인사상을, 니체에서 예사상을 볼 수 있다. 묵자는 홉스를 닮았다. 그는 강력한 주권을 가진 국가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근대적 인류, 즉 시민(추상화된 개념적 존재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와 대비되는 존재로써)은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며, 국가란 이것을 충족시키는 존재라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인데, 이것이 말의 성찬을 넘어 근대 이후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유재산이 보장될 때 자유주의의 실현이 가능한데(그렇다고 무한대의 재산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로크까지는 가지 마시라), 마르크스가 온갖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로는 무한대의 자본축적이 가능한 사적독점 때문에, 폴라니가 여러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기조정 시장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초래하고 있는 종말 때문에, 자유주의가 꿈꾸었던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나마 근대적 시민의 탄생과 함께 했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주의와 짝을 이루었던 시절에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실현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의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의 교집합과 너무나 닮은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적 성향을 지닌)에서만 시민적 덕목인 자유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었다



특히 좌우 양쪽의 버전이 있으며, 시대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하위 90%의 부와 공공의 영역으로 나두었던 국가의 부를 상위 1%라는 지배엘리트(이들은 이익의 독점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에 계급적 특성을 띤다)에 이전하는 반동의 과정(상위 1%가 주도한 역계급투쟁)이라는 점에서,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되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맞서기 위한 푸코의 성찰은 대단히 중요하며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처럼 추상적 관념에 머물렀던 시민의 재구성은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논의만 무성했지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했던 시장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교합, 생태학적 고려에서 나온 다양한 문화의 병존을 되살려낼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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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8 07:40

    비밀댓글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9.08 08:13 신고

    저에게는 난해하긴하지만
    정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29 신고

      너무 쉽게 풀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조금씩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

  3. 참교육 2015.09.08 11:18 신고

    각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때...?
    참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사실으 현대인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잊고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깨어난다는 것은 사실 혁명보다 어렵지 않을까요? 너무 비관적인가요? 제가?

    • 늙은도령 2015.09.08 19:31 신고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소화해서 적절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가 먼저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배려하려면 성찰하고 진실돼야 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해야 하거든요.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4. 백순주 2015.09.08 12:55 신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시작하신다니 감축드립니다. 건강조심하시면서 이루시길 바랍니다. 100번까지는 못 읽어도 다녀가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38 신고

      최대한 쉽게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길이 마냥 길어집니다.
      그래서 일단 압축적인 글로 시작했습니다.

  5. 앨리스 2015.09.08 19:26 신고

    '지적공동체' 라는 것을 아직 저는 잘 모르지만 도령님의 활동을 지지하는 열열한 애독자가 될 것입니다ㅎㅎ^^
    제 짧은 소견과 경험으로는 무엇이든 완성된 후에 하려면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것 같습니다.
    나아가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더 성숙되고 성찰되어지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읽는 공부로 평등과 상생의 진리에 도달하고 그 실천으로 매일 글을 쓰시는 도령님은
    정말 대단한 현자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봉사를 하면서 또 도령님의 글을 읽으며사회를 알아가고 있는데요^^;;
    사랑이든 봉사든 그냥 되어지는 것은 없고 자꾸 연습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소개하시는 많은 책속의 이론가들의 사회인식과 이론은 결국 그 사람의 의식수준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그 누가 높은 의식으로 이 세상을 구할것인가......

    • 늙은도령 2015.09.08 19:40 신고

      우리 모두가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는 타인의 배려도 퍼져가고 자기 사랑은 타인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강해지고 충실해지면 세상 어떤 권력도 우리를 건들지 못합니다.
      각자가 진정한 시민이 될 때 세상은 변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요.

  6. 고나 2015.09.08 20:00 신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정독해 보겠습니다 ~

  7. base 2015.09.08 21:18 신고

    수고하십니다. 노무현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생각나네요. 요즘 주변을 보니 더욱 더 위축되고 암울해 보이는데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로 애국하시고 준비하시는 일이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람니다. 건강에 주의하시고..

    • 늙은도령 2015.09.09 01:56 신고

      네, 건강 때문에 글과 병행할 생각을 햇습니다.
      혹시라도 오프라인 모임이 원할하지 못하면 이렇게라도 풀어가야 하니까요.

  8. 덕산 2015.09.10 19:03 신고

    요즘 글만 읽고 갔는데.. 오늘은 찬찬히 정독해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공감은 항상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늙은도령님

  9. 청공(靑空) 2015.09.11 07:16 신고

    오늘의 유머에서 늙은도령님의 글을 알게 되어 이렇게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근 십년의 세월동안 공부가 업이었고, 지금은 공부하기 위해서 해외로 나와있건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늙은도령님의 글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내 눈도 이렇게 깊어지고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공분야만큼이나 식견이 탁월해야 하고, 그보다 먼저 바른 뜻과 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변화를 포착하지는 못하겠지만... 늦지 않은 시간 내에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기술의 발달을 통한 발전과 위기 극복에는 한계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 또한 없고...
    생활을 가능케하는 사회환경과 자연환경을 파괴시킬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해방, 인류의 해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여러가지 접근과 실천이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근대 이후 가장 정체되어 있는 부분이 어쩌면...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체제를 위해 구조화된 교육이 아닌 진정한 지성과 자유의 전달이 가능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성과의 가시성, 그에 따른 예산 확보 및 필요성 설득의 어려움,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러한 교육에 적합한 교육자와 교육체계의 구성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제 문제의식은 제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이지만, 한 번 말씀하시는 시대의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적어보았습니다.

    올려주시는 글 열심히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서 함께해주시길 기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48 신고

      교육의 중요성은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합니다.
      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교육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며 구축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제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뿐이지요.
      성장보다는 인간 중심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철학 등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교육이 체제를 유지하는 하부구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열린 교육으로 바뀌면 어떨까 합니다.
      지구온난화, 발전과 개발의 폐해, 인간성의 상실, 소비지상주의의 문제 등을 가르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공존과 상생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의성을 살려주고 다양함의 가치를 알려줘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선택과 공동체 구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미래의 주역에게 열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생명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윤리적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은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어서 저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다룰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때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 하늘이 2015.09.11 18:03 신고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주인된 자리에 있을려고 노력합니다 ᆞ도령님이 하시고자하는 지적공동체 응원합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9.12 15:49 신고

      네, 감사합니다.
      아주 작은 출발이라도 꾸준히 키워갈 생각입니다.
      건강만 허락하면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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