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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시민과 한상진의 차이를 알면 국민의당이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였던 문재인 대표가 패한 후 한상진 전 교수를 중심으로 패배의 이유와 당의 개혁방안이 백서 형태로 나왔음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백서의 핵심은 운동권 시절의 논리에 갇혀있는 친노 패권주의가 패배의 원인이었다며, 이를 타파해야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서가 겨눈 칼은 문재인과 친노였고, 지향한 길은 우측으로의 이동에 있었습니다. 





한상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던 저는 백서의 내용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아니 백서 자체가 문재인과 친노에 대한 편견에서 출발해 그들의 현실정치 퇴출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에 분노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외부인사가 주축이 된 평가였기 때문에 마냥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필자를 상당한 혼란에 빠지도록 만든 백서는 늘 뇌의 한 편에 찜찜한 상태로 저장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안철수 신당에 재영입된 한상진이 JTBC 뉴스룸에 나와 국민의당의 지향점을 물은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거대야당이 독식하는 정치체제의 재편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시민이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던 근본적인 이유이자 목표였던 다당제의 정착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한상진의 발언에 흥미를 느껴졌지만 그것은 2~3초도 가지 못했습니다, 양당체제를 타파하는 위해 '국민의당이 중심에 자리잡아 양쪽을 아우르겠다'는 말에서. 



나머지 발언들은 논평할 가치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정치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중심에 자리잡아 좌우를 아루르겠다'는 발언은 정치학과 정치철학, 정치사 등등 정치와 관련된 어디서에도 찾을 수 없는 궤변이어서 기가찰 노릇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망치는 주체가 서울대 출신 때문이라는 말이 새삼 뇌리를 강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친노 패권주의와 결부시켜 민주화운동세력을 척결 대상으로 삼은 백서의 찜찜함(무려 7년이 흘렀다)이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정치에 중용은 있어도 중도란 없습니다. 그래서 이념의 스펙트럼에서도 중심이란 없습니다. 유시민이 수없이 말한 것처럼, 하나의 직선상에 좌와 우를 병렬하는 도표는 일종의 비유일 뿐이지 그것이 현실정치에 적용될 수 있는 2차원적 스펙트럼은 아닙니다. 이념의 분포를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편의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중심 운운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기본조차도 갖추지 못한 사이비들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이 좌측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보다 더 좌측에 있는 사람이 있고, 우측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순 있어도, 존재하지도 않는 중심에 자리해 좌우로 떨어진 거리만큼 좌파적이라거나 우파적이라는 규정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하지 않는 분류법입니다. 바로 이런 형편없는 정치적 소양 때문에 한상진은 이승만을 국부라고 치켜세울 수 있으며, 박정희를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유시민은 거대보수화된 양당체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진보적 민주주의(진보적 자유주의보다 좌측에 있고,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가 자리할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시민이 양당체제를 타파하려는 이유는 우측으로 기울어진 정치사회적 환경의 불평등을 바로잡는데 있습니다. 그럴 때만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해버린 정치환경의 거대한 기득권을 타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이 추구하는 다당제는 신자유주의 우파(극우에 가까운 시장근본주의자)의 독점을 막기 위해 진보좌파적 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지, 우파적 정체성을 지닌 기득권자들의 이익집단(국민의당)이 마치 심판관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듯이 '중심에 자리했음'을 강조하며 우측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약간의 변화만 가져오겠다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뉴라이트가 내세우고, 수구보수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자유민주주의와 다를 것이 없음은 국민이 해임한 이승만을 국부로, 군사쿠데타를 자행한 독재자인 박정희를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지도자라고 칭송하는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안철수가 새정치를 한다며 당의 정강에서 4.19혁명, 5.18광주민주화항쟁을 빼버린 것도 그의 정체성이 보수우파에 있기 때문이지 실무진의 실수 때문이 아닙니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호남을 대표한다는 것은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많은 사회·경제학자들이 '1대 99 사회'의 출현을 말하는 것에서 보듯, 신자유주의 40년(우리의 경우 30년) 동안 세상은 소수의 특권화된 기득권의 천국으로 재편됐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상진과 안철수, 김한길과 김영환, 이태규와 박형준(천하의 잡놈인 MB의 사람들) 등이 주축이 된 국민의당은 양당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우파의 폐해를 조금만 물타기한 채, 보수우파의 지지층을 부동의 35%에서 50% 이상으로 확장하는 것에 있습니다. 양당체제 타파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한상진의 양당체제 타파와 유시민의 양당체제 타파는 다당제의 정착이라는 껍데기만 같을 뿐, 그 안에 든 내용에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시민이 어제의 썰전에서 당의 정체성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은, 국민의당이 새정치를 갈망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분들의 정치참여를 만들었다는 공로를 인정한 것입니다. 당도 정체성을 만들어가듯이, 정치에 참여하는 유권자도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은 똑같다는 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고요.



해서, 기득권의 이익을 넓히기 위해 그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껍데기들은 가라! 




P.S. 문재인 대표가 19일에 있을 기자회견에서 대표직 사퇴를 발표할 모양입니다.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라 문 대표의 뜻에 찬성을 표합니다. 야권 통합과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백의종군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이라는 사람, 이제는 노무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