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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호남배신론 내세운 탈호남에 시대적 정당성이 있을까?



마치 칼날 위에 서있는 느낌이다. 국민의당이 광주·호남을 석권한 것을 가지고 '호남 배신론'을 떠드는 자들(더민주의 정신나간 일부 지지자들, 마타도어를 하는 국민의당 지지자들, 상당수 새누리당 지지자들, 조중동과 종편 등의 여론몰이에 호응하는 자들)과 이에 격분한 광주·호남인들의 반박까지 오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칼날의 어느 면을 따라 흘러내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1년도 살지 않았고 삶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필자가 '호남배신론'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것은 배신이란 말을 들을 만큼 광주·호남이 희생의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국민의당이 광주·호남을 독식한 것은 승자독식의 소선구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배신론 운운하는 것은 사실왜곡을 넘어 비로소 타파 조짐이 보이는 지역주의와 새로운 차별을 조장하는 새누리당스러운 범죄에 해당한다. 



특히 득표율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의원수만 놓고 보면, 더민주가 소선거구제의 최대 수혜자였음에도 '호남배신론'을 떠벌리는 일부 더민주 지지자들이란 비열하기까지 하다. 박근혜의 새누리당과 김종인의 비대위가 정치적 야합으로 무력화시킨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됐다면, 더민주의 의석수는 100석 아래로 떨어지고 국민의당은 80석을 넘는 결과가 나온다. 새누리당은 1당의 지위를 유지했을 것이고 정의당은 10석 이상, 녹색당도 원내진출에 성공했을 것이다(안철수 비판과 사실관계의 확인은 별개의 사안이다. 안철수를 비판할 일은 넘칠 정도로 생길 것이다). 



물론 이런 분석은 총선 결과에 대한 무수히 많은 요인을 배제한 채 정당의 득표율만 가지고 한 것이라 한계가 있다고 해도 더민주 지지자들이나 관계자들이 '호남배신론'을 운운하는 것까지 정당화할 수 없다. 정당 득표율까지 무시한다고 해도 광주·호남의 선택에 배신이란 낙인을 찍는 것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자들이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옹호하는 발언과 다를 것이 없다. 수도권 패권주의는 대단히 위험하다.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광주·호남의 선택이 이전과 달랐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 것에 어떤 정당성이 있단 말인가? 그들이 더민주의 정치적 노예라도 된단 말인가? 김대중도, 노무현도 광주·호남의 몰표가 없었다면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일부(정봉주의 전국구 포함)에서는 광주·호남이 광주정신만 팔아먹으며 자신의 이익만 챙겼다고 하는데 그 증거들을 내놓지 못한다면 발언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익은 박지원, 정동영, 박주선, 주승용 같은 자들만 챙겼지 주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노무현에게 가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문재인을 집요하개 내부에서 흔든 자들이 호남의 기득권(후단협과 민집모)이라고 해도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것은 지역구민의 권리이지 타 지역의 사람들이 개입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더민주가 광주정신을 팔아먹으며 제1야당을 유지한 것(문재인처럼 진성성이 있는 의원들도 하고, 민집모처럼 자신의 기득권만 챙긴 자들도 있다)이 역사적 사실이지, 광주·호남분들이 광주정신을 내세워 자신과 지역의 이익을 챙긴 것이 아니다. 



필자도 김종인 비대위체제의 더민주에게는 단 한 표도 주고 싶지 않았다. 친노·운동권 비판과 배제를 대놓고 떠들고 민주적 절차와 당헌·당규도 무시하며, 비례대표 공천에서 청춘과 사회적 약자도 배려하지 않는 더민주에게 표를 준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후보표를 더민주에게 준 것이 후회로 남을 판인데, 5.18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으로 정당의 선택지를 갖게 된 광주·호남분들에게 '배신'이란 낙인을 찍는 것은 너무나 가볍고 지독히 새누리당스럽다. 



필자도 투표에 대한 구체적 통계가 나오기 전까지 광주·호남의 선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하기만 했다. 선관위의 터무니없는 규제에서 벗어나 각각의 여론기관들이 제대로 된 조사결과를 내놓고, 총선 과정을 역순으로 되돌아보고, 선거 결과와 연관된 각종 데이터들을 최대한 모은 후에 심층적인 분석에 들어가서야 광주·호남을 국민의당이 석권한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똑같은 이유로 해서 더민주가 수도권과 낙동강벨트, 제주에서 압승하고 강원과 충청에서 선전할 수 있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소선구제만 아니라면 국민의당이 광주·호남을 석권할 수도 없었고, 더민주가 수도권과 낙동강벨트에서 압승할 수도 없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이런 식으로 지독히 모순적인 결과들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만 빼면 한 지역에서 통하는 분석이 다른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필자는 국민의당의 독식에 광주·호남분들이 당혹해하는 것과 각당의 득표율에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광주·호남이 더민주에서 자유로워지고, 그에 따라 광주·호남의 표를 잡기 위해 더민주가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에서 정권교체와 지역주의 극복이란 노무현 정신의 실현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김종인의 비대위가 문재인의 광주·호남 방문을 늦추지 않았고, 정의당과의 선거연대도 파기하지 않았다면 더민주의 과반수 확보도 가능했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결과다. 



필자가 윈지컨설팅 같은 여론조사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정봉주보다 더욱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면, 최소한 총선 결과를 놓고 더민주 지지자들 사이에서 '호남배신론'이 회자되는 것은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 문재인이 정계은퇴나 대선불출마를 선언하지 않고 광주·호남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은 대단히 현명한 선택이며, 한국현대사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이 광주·호남 민심을 되돌린 다음에 정계은퇴를 선언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정권교체로 가는 제일 확실한 길이기에 그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에게도 김종인을 영입한 원죄가 있기에 광주·호남 민심을 되돌리는데 정치생명을 걸고, 그 다음은 민심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필자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며, 김홍걸과 함께 김대중 생가와 봉하마을을 방문한 것에서 문재인도 이를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필자가 오랜 전에 썼던 글의 제목처럼 '노무현의 확장판이 지금의 문재인이다'이라는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평당원으로 돌아간 문재인이 증명해주기를 바라며, 그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부 더민주 지지자들의 '호남배신론'이 더 이상 회자되지 않기를 바란다. 새누리당 골수지지자들 사이에서 박정희와 박근혜를 분리해서 보는 것과 같은 일(노무현과 문재인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더민주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안하무인 꼴통, 김종인 처리에도 힘겨워 죽겠는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