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의료 전문직(의사)에 불과한 백선하가 백남기씨 유가족, 국민의 70% 이상, 의료계 전부와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세상에서 이런 신과 같은 독점적 권리(이반 일리치는 이를 '근본적 독점'이라고 했음)가 작동할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공학), 지식과 학위 등을 앞세워 세상의 모든 필요를 지배하게 된 전문가 집단의 부상을 살펴봐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삶의 거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했던 인간은 시장경제 안에서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필요(어제의 사치품이 오늘의 필수품이 되는 것, 광고를 통해 필요없는 필요를 창출하는 과정, 제품과 서비스의 세분화를 통해 필요가 폭발하는 과정 등)가 창출되면서 인간은 임금노동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만들어진 필요를 소비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됐다.
평생을 바쳐도 극히 일부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품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 "전문가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남모르는 지식, 오직 그들만이 공급할 권리가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길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전문가들은 마치 중세의 사제들처럼 더 상위의 엘리트 집단에게 이익을 챙겨주는 대가로 그들의 양해를 받아 권력을 보유'하는 수준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 등장한 지배적 전문직은 한마디로 인간의 필요에 대한 통제권 자체를 요구한다. 그들은 현대 국가를 여러 기업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합된 지주회사로, 즉 그들 스스로 자가보증한 자격이 쉽게 효과를 낼 수 있는 통합체'로 바꿨다. 세상을 재구성한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처방할 권한까지 주장'하고 '단순히 좋은 것을 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를 실제로 선포'하는 독점적 지배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인간의 '필요'가 있을 만한 분야라면 어디서든 이들 신종 전문직은 지배적이고 권위적이며 독점적이고 합법적인ㅡ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인을 나락하게 하고 결국 불구로 만드는ㅡ자격을 주장함으로써 공익을 수호하는 특권적 전문가 행세를" 함으로써 지배권을 확고하게 정립했다. 특정 분야의 지식(유용하다는 증거도 없다!)만 조금 더 가지고 있을 뿐인 전문가들이 옳고 그름과, 문제를 처방하는 특권적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런 과정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건강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의료 분야에서 특히 도드라졌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의료 전문직은 '질병의 이름표를 단 것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우선권'을 확보한다. "나아가 질병의 이름표를 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관할권을 우선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백남기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시킨 백선하처럼)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능력이 그들에게 있는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질병을 다루기에 선한 의도를 지닌 전문가로 받아들여지는 의료 전문직은 의심의 눈초리도 받지 않는다. 백선하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백남기씨의 사망을 악착같이 늦춘 의료 전문직에 속한다. 그것도 의료 전문직 집단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권위를 지닌 서울대학교병원에 소속된 의료 전문직이다.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독점적 지배력(근본적 독점)을 획득한 의료 전문직 중에서도 최상위의 먹이사슬에 자리하고 있는 자가 서울대병원의 백선하다.
의료 전문직은 삶의 전 과정에서 질병(정신적 영역까지)을 고쳐주고, 질병을 예방하게 해주고, 건강한 삶을 위해 생활방식도 정해주고, 생명의 시작과 성별을 결정하고, 사망의 시점과 종류까지 확정해주는 존재라서 그들의 '근본적 독점'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현대의 의료 전문직은 섹스, 임신(인공수정 포함), 임신중절(낙태) 등을 관리함으로써 생명의 시작을 결정하고, 성전환수술로 성별마저 결정하고, 죽음의 단계를 세분화함으로써 사망의 시점과 종류까지 결정하는 '근본적 독점자'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전 과정에서 의료 전문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디에나 있는, 언제든지 찾아가야 하는 의료 전문직은 그들의 '근본적 독점'이 선한 의도에서 벗어나 악한 결과를 만들기 위함으로 사용된다면, 잠재적 환자로서의 개인은 현대의료를 부정하지 않은 한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필자가 서울대병원의 백선하를 통해, 한나 아렌트가 유태인 학살의 행정전문가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곤혹스럽게 제시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의 전화를 받고 등산복 차림으로 달려온 백선하가 백남기씨의 뇌파 반응이 있다며 수술을 권했을 때 가족들이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의료 전문직의 선의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백남기의 삶과 죽음을 독점(주치의)할 수 있게 된 백선하가 이런저런 처지를 해도 그것이 악한 의도에서 진행된 정치적 의술이었다고 의심할 수 없었다. 백선하가 백남기씨의 사망을 '병사(심폐정지)'로 정했을 때야 백남기 가족은 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백선하가 의술이라는 이름으로 백남기씨에게 자행한 모든 짓거리가 우병우 라인에 있는 살인경찰(전문직 관료)들이 사건을 조작(이미 조사해 무혐의처리한 '빨간 우의'를 재등장시킨 것 등)가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는 사실들이 모조리 밝혀졌어도, 의료 전문직 누구도 그가 정한 사인을 바꿀 수 없는 것도 그들이 누리는 '근본적 독점'이 깨지는 것까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백선하가 악한 의도로 백남기씨의 주치의가 되는 순간 누구도 그의 특권적 지배권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 그것에서 이 모든 반민주적이고 패륜적인 정치폭력이 가능해졌다.
만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살인경찰(우병우 라인의 경찰수뇌부와 행동대장들)의 백남기씨 시신 강탈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은 이반 일리치 등이 《전문가들의 사회》에서 말한 대로 "정치가 시들어버린 시대, 유권자들이 교수들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법제화할 힘을 전문 관료들에게 위임해버린 시대,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할 권리를 포기한 시대로 기록"되는 것을 넘어 불의한 권력의 악마적 행태에 굴복한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양심에 반하고 부정직하고 불의하며 악마적인 '근본적 독점'의 살인경찰을 막아낼 수 있다면,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되찾아올 수 있다. 파편화된 개인에 불과했던 성주군민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에 기생한 불의한 정권에 맞서 승리한 것과 이대생들이 '박근혜-최순실-최경희로 이어진 절대권력의 야합'에 맞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부패하는 '근본적 독점'에 맞서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을 통해 민주적 연대를 이루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
정유라를 지키기 위해 최순실도 포기할 수 있음을 내비친 박근혜의 살인경찰은 24일과 25일에도 강제집행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명분을 축적한 다음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10월 26일(부검영장 시효가 끝나는 날, 이런 것 때문에 무당이 통치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에 지방의 경찰병력까지 동원해 백남기씨 시신을 강탈할 가능성이 높다. 성주군민과 이대생이 보여준 승리를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로 확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왔노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보았노라, 불의한 정권의 살인적 폭력을!
이겼노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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