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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5월이 오면 다시 노란 바람이 불어온다





자신과 같은 시민의 힘으로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와 현실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자신을 지켜줘야 한다'는 당선인의 부탁을 흘려버렸습니다.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당선인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력이 막강했기에 지지자와의 약속인 반칙과 특권이 사라진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앞으로는 뭐 할 거냐'는 당선인의 질문에 '감시'라고 답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지켜줄 지지자들마저 감시로 돌아선 상황에서, 노통은 이전의 대통령과는 달리 제왕적 권력을 적절하게 이용하지 않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자 했습니다. 통치의 수월성을 위해 제왕적 권력을 사용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언정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모두를 파괴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더불어 사는 세상의 공정한 정의로움이란 제왕적 권력을 통해 이룰 수 없는 것이니까요.





비주류 출신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이 땅의 주류 기득권들은, 제왕적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대통령이란 최고의 먹이감이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내 책임 같다'는 대통령이라면 임기 초반이라도 끌어내리지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선거가 끝난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탄핵을 운운할 정도로 노무현을 흔들어댔습니다. 그들의 '노무현 죽이기'는 너무나 집요하고 교묘하고 끈질겨서 그에게 표를 준 지지자마저 노무현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지율은 급감했고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실적이 좋았고 나라는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초석을 다지며 제2의 도약을 꿈꿀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국가들이 광란의 빚잔치로 고도성장을 노래했지만, 노무현 참여정부의 대한민국은 그런 광풍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선진국으로 들어서기 위한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나라를 말아먹고 또 말아먹어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데, 조중동을 비롯한 모든 언론과 사이비 지식인들의 왜곡과 호도에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조작과 거짓말은 국민들을 세뇌시켰고 티클이 쌓여 태산이 되듯이, 5년 내내 지속된 이들의 '노무현 죽이기'는 그와 국민 사이를 무한대로 벌려놓았습니다.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인데,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노무현의 지지자마자 '민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살을 파고드는 송곳이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한없이 가슴이 아파 오는' 노무현에게서 돌아서고 비판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전통적 지지층이 없는 노무현으로서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습니다. 국회의 탄핵 소추에 촛불집회에 맞불을 놓았던 깨어있는 시민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패한 주류 기득권의 악의적인 왜곡에 속았다 해도,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기에 노무현은 바보처럼 받아들이고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제왕적 권력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포기한 그였기에 자신을 욕하는 국민의 권리 행사를 기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국민이 고개를 돌리면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욕하는 국민의 권리 행사도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백년 정당을 꿈꾸었던 열린우리당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후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민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는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던 철저하게 왜곡됐고, 조중동에 세뇌된 국민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반전의 기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참여정부가 무엇을 하던, 어떤 실적을 거두던 조중동과 그 아류들의 필터를 거치는 순간, 실패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퇴임한 노무현은 비로소 국민적 욕받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통이 깨기 전까지는 사상 최대의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의 역주행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수록 노무현의 인기는 높아졌습니다. 이명박을 비롯한 주류 기득권으로써는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진보매체까지 합류한 노무현 죽이기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졌고, 그 압도적 기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지켜달라는 당선된 그날에도 감시(비판적 지지)를 외쳤기에 그를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감시가 필요없는 대통령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지요. 



2008년 5월의 어느 날, 그는 한 장의 유서를 남긴 채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를 지지하고 도와주었던 모든 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촛불혁명을 거쳐 판문점 선언에 이른 집단적 성찰의 암울하고 엄혹했던 여정이(문재인의 발견과 운명, 10.4선언과 판문점 선언을 다룬 2부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