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찾사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써 깨어있는 시민들은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정렬 변호사가 있는 동안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궁찾사의 소송은 저를 포함해 1,437명이 국민소송단으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소송인단의 1차 추가모집에 1,500 명 정도가 참여했고, 2차 추가모집으로 총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이며,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정렬 변호사의 트윗들과 궁찾사의 국민소송인단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트친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소송인단의 숫자에 경찰도 많이 놀라는 눈치인가 봅니다. 저는 소식을 받는 위치에 있느라 정확한 진행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두 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는 수사는 느리지만 내실있게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증거가 많을수록 재판에 유리하기 때문에 놓친 것들이 있는지 전자기록을 끌어모으고 있고요.
소송인단의 노력으로 경찰의 수사 속도도 빨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김부선에게서 관련 내용을 제일 먼저 취재한 김어준과 주진우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경찰 수사가 그들에게까지 이르면 더 이상 도망갈 구멍이 없으니 그때까지라도 침묵으로 시간을 끌려는 것 같습니다. 김용민, 김갑수, 이동형, 진중권, 서명숙, 미디어오늘 기자 등이 이재명을 감싸고 도는 것에 비해 직접 당사자인 이들의 침묵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꼼수 시절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수중에 넣음으로써 주류 기득권에 진입한 김어준과 주진우이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렵기만 할 것입니다. 잃을 것이 많아지거나 그런 것들을 수중에 넣는 방법이 떳떳하거나 깨끗하지 못했다면 더욱 두렵겠지요. 하자투성이 이재명이 당선되면 한 숨 돌릴 줄 알았는데, 전해철에 이은 궁찾사의 소송까지 더해진 것과 함께 인격과 성품이 워낙 바닥인 이재명이 연이은 실족을 거듭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지요.
국민소송인단의 일인으로써, 소송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노통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의 일단을 처음으로 경험한 우리는 사람이 먼저인 문프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그를 찬양하고 우상화해서 아니라 문프의 성공을 통해 상식과 원칙, 정의와 평화, 야심과 배려가 넘치는 사람사는 세상에 이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문프 임기 동안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기틀이 확고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평화협정 체결이 문프의 임기 내 체결되면 최상이겠고, 3통 문제가 해결돼 남북경협이 본격화될 수 있으면 현재의 이익이 아닌 후손의 미래를 위해서 최상일 터이고요. 궁찾사를 비롯한 문파는 상식을 얘기합니다. 칸트가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종합적으로 비판한 다음에 내놓은 『판단력 비판』을 통해 정립해놓은 'common sense'(세계시민정신의 근간,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 선험적 종합판단에서 나온 '선한 의지'로 귀결된다)의 21세기 버전인 노통과 문프의 상식을 이성적 판단과 실천의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문파는 이재명과 김어준처럼 권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이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 바로 상식을 찾아가는 길이고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볼 생각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3편에 이르는 칸트의 비판 시리즈는 세 개의 질문으로 압축됩니다. 『순수이성 비판』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고, 『실천이성 비판』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판단력 비판』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모든 철학의 주제인 존재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 질문은 이성적 인간의 삶을 고찰한 것이며, 세 번째 질문은 이성적 인간의 능력를 고찰한 것입니다.
제 능력으로 세 편의 책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다),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칸트는 플라톤 이래로 하늘에 머물러 있던 철학(형이상학)을 인간의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근대의 최대 업적인 개인의 발견은 칸드의 철학이 없었으면 껍데기에 불과했을 것이며, 시민사회를 발견하고 정립한 헤결에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칸트는 모든 자유주의자의 나침반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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