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할 정도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동성결혼합법화가 연방대법원을 통과하기까지 60년이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또 다른 축이 기독교(자본주의와 국가권력에 친화적인 청교도정신으로 대표된다)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여성 비하와 혐오를 남발하고 동성애자를 폄훼해도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보수적인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우파를 다룬 책들을 보면 동성애와 낙태 반대는 핵심 주제에서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68혁명을 주도한 유럽의 신좌파처럼, 평등과 차이를 억압하는 일체의 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에 동성애에 열려있었던 미국의 신좌파(제임스 밀러의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를 보라)가 진보정치의 핵심으로 자리했다면 동성결혼합법화가 보다 빠르게 통과될 것입니다. 50~60년대 미국을 관통했던 인권운동 활동가와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치열한 차별반대와 양성평등운동이 없었다면 오바마 정부에서도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교의 영향력이 남아있고, 가부장적인 수구세력(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이 핵심)과 대형교회의 카르텔이 막강하고, 노무현을 빼면 신좌파(진보적 자유주의)에 속하는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던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면 동성결혼합법화는 상당히 힘겨운 일입니다. 500만 명이 넘는 장애인(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하는 분들이 수두룩하다!)들이 수십 년 동안 요구하고 투쟁했던 차별금지법조차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단히 진보적인 의제인 동성결혼합법화에 찬성하라며 문재인을 공격한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단체의 행태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정부 10년에 뒤집어씌운 심상정의 주장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장된 것임에도, 이번에는 홍준표의 교활함은 나둔 채 문재인을 공격하는 것까지 더하면 한심하고 권위적인 구좌파와의 완전한 단절에 전력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현실을 뒤바꿀 의제설정 능력과 정치적인 힘도 없으면서, 게다가 홍준표의 유세에는 난입하지도 못하면서 문재인만 공격하는 모습에서 동성결혼합법화에 동의할 국민의 수는 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노무현의 개혁입법이 좌절로 끝난 것도 내부에 총질하는 이런 구좌파의 폭력적인 행태에서 나온 것인데, 차별금지법의 국회 통과마저 어렵게 만드는 이들의 꼴통 짓거리는 억압받는 국민들이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와 일부 시민단체가 대표하는 동성애자(성소수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더욱 분노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필립스의 말처럼, 억압받는 자들이 좋은 행동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며, 희생자가 되는 것이 권리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평등한 권리를 제공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폭력을 배제하면, 차이에서 나오는 갈등이 시민의 권리 증진과 인류의 해방에 도움이 되는 성과물이 나온다'는 경험과 믿음의 산물에서 나온 것입니다. 필자는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에 찬성하지만, 피아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으로도 모자라 문재인도 죽이려는 진보매체들의 선정적이고 악의적인 보도에 놀아나는 것도 한심할 따름입니다.  

 

 

노무현의 성공을 좌절로 만든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기회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행태에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합니다. 동성결혼합법화는 여론은 물론, 국회와 헌재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정치적인 행위이며,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릴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성소수자들이 심상정에게 투표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현명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홍준표의 교활한 질문에 군대에서의 동성애는 반대하지만(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들이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문재인을 찾아가서 깽판이나 놓는 어리석고 폭력적인 작태에 동의할 국민이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민주노총과 동성애 시민단체가 모든 성소수자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목적이 옳고 숭고하다 해도 수단이 폭력적인데 그것에 찬성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했다가 수구세력과 종교계의 연합공격에 좌절하면서 확인한 것입니다. 그 후에 수구세력과 기독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명박근혜의 9년이 이어졌습니다. 그 기간 동안 공간이 더욱 넓어졌는지, 아니면 많이 줄어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현실의 공간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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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름없음 2017.04.27 17:09 신고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490
    문 후보측 공보팀에서도 이미 "멱살 잡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여러 언론에서도 오보라고 밝혔음에도불구하고 '문재인의 멱살을 잡았다'라고 표현을 하며, 성소수자 및 단체들의 시위를 '깽판', '폭력', '꼴통짓거리' 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늙은도령님께선 다음/네이버 댓글 등에서 볼 수 있는 '문재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광신도'들과 다를바가 없어보입니다. 일명 '문빠'라 하지요. 이들의 진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지지 후보의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모습은 '박사모'와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잘못된 수단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극도로 억압된 사람들'이 일으키는 폭력을 무조건 '틀렸다'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한 국가의 대통령 후보가 국민 모두가 보는 방송에 나와서 일부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드는데, 그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홍준표는 비판할 가치조차 없기때문에 한마디로 무시하는 것이고, 문재인씨는 대통령 후보로서 인정하기때문에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을 왜곡한 전제 위에서, 상당히 주관적인 감정(이 감정은 '늙은 도령님이 찬양하는 문재인씨'가 비판받는 상황을 참을 수가 없어서 튀어나온 감정으로 보입니다)으로 현실을 풀이하는 것은 상당히 '폭력'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늙은 도령님이 쓴 글은 오보에 기초한 글이기에 지워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편협한 시각에 치우쳐 쓴 주관적인 글로 보이기에 그냥 두셔도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 여부는 표기하는게 양심있는 지식인으로서 할일이라 봅니다.

    • 늙은도령 2017.04.27 18:21 신고

      멱살을 잡았다는 것이 오보라면 그것은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것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저의 잘못이지만 언론도 정정보도를 하듯이 저도 그러면 됩니다.

      그리고저는 문빠 맞습니다.
      그것을 숨길 생각도 없고 부정할 생각도 없습니다.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것이 그런 것을 숨겼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친노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기 때문에 문빠 맞습니다.
      그의 집권이 대한민국을 바로잡는데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 동성애자의 폭력을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억압받은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인정됐다는 훼궤한 논리는 폭력 때문에 끝내는 실패했던 68혁명의 시대로 돌아가셔서 하십시오.
      민주주의란 폭력을 담론으로 대체한 것이지, 폭력이나 총구에서 권력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깽판이란 단어는 사진으로 충분히 설명되고요.
      오랫동안 억압받았다고 폭력이 인정된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하시던지요.

      성소수자들이 당신과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못하고요.
      제 주변에도 성소수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요.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이 있다면 폭력적일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성소수자말고도 억압과 착취의 대상은 수두룩합니다.
      문재인이 군대에서의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지, 그렇지 않다면 독재나 권위주의로 회귀해야지요.
      성소수자로서 문재인을 지지할 수 없다면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면 되는 것이지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 비약으로 넘쳐나는 당신의 댓글로는 누구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동성애는 인류가 사피엔스로 진입한 초창기부터 항상 존재한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성공한 시민의 상징이었고요.
      그러던 것이 농경사회를 거쳐 중세와 봉건시대, 기독교의 암흑시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동성애가 억압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 성인남성 위주의 정의론과 정치철학에 대해 치열하게 도전한 페미니즘의 활약 덕분에 인권과 시민권이 강화되면서 동성애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고요.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지만, 독일 등에서는 아직도 합법화까지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동성결혼합법화는 아직도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이슈이지만, 그것을 폭력적으로 실현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현명해지십시오.
      신좌파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동성결혼합법화에 제일 많이 열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2. 에쏘 2017.04.27 17:59 신고

    일명 "보수"라고 하는 쪽에는 가만 있으면서 경청할 수 있는 사람에겐 저러는 거.. 솔직히 비겁합니다. 소수라고 해서 다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죠. 실제로는 여러 성소수자 분들이 저 공격을 보며 더 상처를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죠. 그들은 직접 겪는 일이기에 차별금지와 동성혼 합법화 사이에 큰 갭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아쉽기는 해도 차별 금지법만이라도 제대로 정착시킨다면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 중 소수지만 여전히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의견을 밝히고도 있고요. 일명 진보라고 하며 소수자 뒤에 숨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구좌파라고들 하던데 노무현 때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는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저도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합법화에 찬성하지만 저들의 방식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7.04.27 18:34 신고

      마르크스 같은 목적론자들의 공통점은 수단에서의 정의에는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연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를 신처럼 떠받드는 구좌파는 그의 교리에 담겨있는 권이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공산당과 전위조직들이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흘러간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68혁명의 신좌파들이 구좌파와 보수우익을 모두 다 비판한 것도 그들의 권위주의적 행태 때문이고요.
      심지어 엥겔스는 혁명이 권위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우리나라의 입진보라 하는 자들의 이중적 행태는 여기서 나옵니다.
      노조와 공장 등에 가보면 위계서열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데, 자체의 민주주의는 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행태란 답답하기만 합니다.

  3. 이름없음 2017.04.27 18:33 신고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금 이 상황의 본질은 성소수자들의 과격한(?) 시위가 아닙니다. 그 본질은 대선 유력후보인 문재인씨의 발언에 있죠. 인권변호사 출신이며,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씨가 동성애문제에 대해 기존 한국사회의 '보수적 생각'만을 가지고 있을 거라 보진 않습니다. 아마 그는 성소수자 이슈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로써 생각하고 있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왜 홍준표의 동성애 질문에 '반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단번에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 이탈을 우려해서 일 거라 짐작합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성소수자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성소수자 지지는 말그대로 '소수의견'이기에, 문재인은 '다수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만약 '동성애를 존중한다'고 말했다간 홍준표의 수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재인은 줏대없는 쉬운 길을 택한 겁니다 . 마치 이전토론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가 아니라 '개정'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죠. 보수표를 의식해서 소신있게 말을 하지 못하는게 바로 문재인이며, 이것이 바로 이 상황의 본질입니다.
    본질을 흐리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지 마십시오.

    • 늙은도령 2017.04.27 18:39 신고

      하여간에 왜곡에는 도를 트셨네요.
      홍준표는 군대에서의 동성애를 예를 들며 문재인에게 질문했고, 문재인은 그에 대해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답을 기다렸던 홍준표가 논리적 비약으로 동성애 전체로 넘어갔는데 문재인은 그것에는 분명한 반대를 표했습니다.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당신은 그런 과정을 뛰어넘은 채 당신이 이용하고 싶은 것만 가지고서 논리를 펼칩니다.
      왜곡에 도를 튼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반적 현상이지요.
      자신에게 유리하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그런 부류의....

  4. 한비자 2017.04.28 03:04 신고

    이름없음님은 이름부터 찾으시는게 현명할듯

    • 늙은도령 2017.04.28 14:14 신고

      성소수자를 대표하지 않는 자들이 대표하는 것처럼 하기 때문에 이름이 없는 것이지요.

  5. 耽讀 2017.04.28 06:51 신고

    정말 황당한 것은 왜 문재인에게 달려간 것입니다.
    에이즈 운운한 홍준표에게 달려가야지.
    진보언론들도 웃깁니다.
    문재인에게 덮어씌웁니다.
    아마 이번 논란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더 짙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4.28 14:16 신고

      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
      성소수자들의 대부분은 다른 생각을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얼마나 힘겨웠는데 저런 폭력적인 또라이들 때문에 모든 것이 무산될 수 있으니까요.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면 답이 나오는데 저런 조폭 같은 자들 때문에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됩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7.04.28 08:34 신고

    어떠한 이유에서건 소수자가 차별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정해주고 이해와 배려를 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홍준표는 정말 양아치입니다

    • 늙은도령 2017.04.28 14:17 신고

      홍준표는 죽일 놈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놀아난 자들과 언론들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차별금지법까지 오는 데도 정말 힘겨웠는데 이런 돌발적인 행위 때문에 몇 십 년을 후퇴하게 됩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7. 적폐청산 2017.04.28 09:34 신고

    그나마 존중하고 소통이 가능한 사람에게 패악질이나 해대는 자칭 입진보들 진짜 역겹습니다....

    이것들이 참여정부때도 그렇게 노통 상대로 패악질 및 만만히 봤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자칭 진보정당 진보팔이들 진보자영업자들 진짜 저는 무조건 아웃입니다...이들은 책임감도 없고 예의도 없고...그냥 입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개준표의 혐오발언에는 찍소리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얼어죽을 진포팔이 해대나요? 겁쟁이 비겁자들 주제에 문재인이 품성이 좋아보이니까 패악질이나 해대고...

    이런것들과는 무조건 선을 그어야 하고 원칙대로 나아가야 합니다..입진보팔이들은 그냥 비겁자 양아치에 불과합니다.

    • 늙은도령 2017.04.28 14:19 신고

      입진보들은 그냥 타성으로 정치합니다.
      그러니 답이 없지요.
      노동자들이 지금은 대형노조를 바탕으로 기득권화되어 있어 비정규직의 권리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

  8. 허걱 2017.04.28 11:35 신고

    참 누가 댓통이된덜 혼자 합법화시킨다고 되나요? 무슨 말도 안되는소리를 다 하고있는지. 한심스럽다..뭘 말을 잘못했다고..아직은 사회에서 받아들이지를 않는데 대통령인 한사람이 이렇게해라 한다고해서 그게 되나요? 한심한착태다..

    • 늙은도령 2017.04.28 14:20 신고

      차별금지법은 무조건 통과돼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합법화를 논할 수 잇습니다.

  9. 삶취 2017.04.28 13:18 신고

    홍준표 에이즈 이야기할때
    저러고도 멀쩡할까 싶었는데
    홍준표 흙탕물 옴팡 뒤집어쓴건 어이없게도 문후보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저는 이 명제가 원칙을 세우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1월의 혁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에 무려 16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박근혜 탄핵에 성공했지만, 그 출발선상에서 촛불혁명의 원동력을 제공했던 아름답고 위대했던 이대생의 저항이 정부와 검찰, 경찰의 조직적인 보복으로 많은 학생들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투쟁을 이끌었던 최은혜씨가 교수들의 선처 호소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기소에 처해졌습니다. 





살아있는 권력과 거대자본에는 시녀와 주구를 자처했으며, 독재정부에 충성함으로써 불멸의 신성가족이자 대한민국 최대 특권층으로 자리잡은 '김기춘과 우병우의 검찰'으로써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붕괴가 시작된, 그래서 검찰공화국의 거대한 성벽에 치명적인 균열을 가한 이대생의 투쟁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히 이대생 따위가 검찰공화국의 드높은 위상을 뿌리부터 흔들었으니 '김기춘과 우병우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적 처벌을 받도록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박근혜를 끌어내리는데 모든 시민의 관심이 집중된 동안 괘씸한 제자들을 고발한 이대 교수와 교직원들의 보복에 힘입어 최은혜씨를 수사해온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도균)는 지난해 7월 교수와 교직원을 감금했다는 혐의(특수감금)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감금으로 볼 수 없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존재함에도 '김기춘과 우병우의 검찰'은 "사안 자체가 가볍지 않고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최은혜씨를 기소했습니다.   



지금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으로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법적 면죄부를 발행했으며, 독재에 협력해 수없이 많은 범죄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단 한 번의 대국민사과도 하지 않는 검찰입니다. 행정부의 일개 부서에 불과한 검찰과는 달리 정부를 구성하는 사법부조차도 독재에 협력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음에도 오직 김기춘과 우병우의 라인이 살아있는 검찰만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일체의 반성도 없었는데, 그런 전통이 최은혜씨의 기소로 이어진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시민과 국민들의 피와 땀,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와 헌법, 법률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박근혜를 비호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검찰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모라자 유관순 누나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 최은혜씨를 기소했다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검찰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최은혜씨와 8명의 학생들을 고발한 자들은 악질적인 친일부역자였던 김활란이 세운 대학교에 어울리는 자들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그것에 근거해 최은혜씨를 기소한 검찰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명제를 언급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시민과 국민들이 큰 승리에만 심취해 있고, 박근혜 수사와 부역자 처벌, 각당의 경선과 조기대선이란 거시적 문제에 집중해 있는 동안 촛불혁명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대생과 최은혜씨는 박근혜-최순실 정부의 살인경찰과 정치검찰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을 대통령에 올려놓았다고 정치에서 등을 돌린 것 때문에 이명박근혜 9년의 악몽을 피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에 몇몇 언론에서 한국현대사에 영원히 기록될 승리를 이끌어낸 이대생들이 '경찰의 폭력집안과 학교 관계자의 보복, 이에 화답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기소, 민주화운동 세대들이 겪었던 취업 등의 불이익'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검찰의 최은혜씨 기소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이 기소를 취하하지 않는 이상 최은혜씨는 힘겨운 법정싸움을 벌어야 합니다. 



경찰에서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에 송치되지 않은 8명의 학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이대생들은 최은혜씨의 법정싸움과 판결을 국민적 관심에서 삭제된 두려움과 공포,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과 자본의 시녀를 자처해온 정치검찰에게 최은혜씨 기소를 각하라는 시민적 저항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대생의 저항과 투쟁이 없었다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과 헌법·법률 위반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촛불혁명은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저항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낸 이대생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대생에게 대다수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협박에 움추리고 있을 때 그들의 불의와 불법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최은혜씨와 8명의 학생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대생들의 트라우마를 보듬고 감싸안으며, 그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표명해야 하는 것은 촛불혁명의 승리를 지키는 일이자 의무입니다.  



촛불혁명의 꿈인 적폐청산과 국가개혁에서도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최은혜씨를 지켜내고, 이대생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이 지긋지긋한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최은혜씨,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으며 반드시 지켜줄 것입니다, 경찰 수사를 받은 8명의 학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대생들은 물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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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둘리토비 2017.03.16 23:17 신고

    예전에 이대의 이번 이슈에 관해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반응이 대단했죠. 그런데 더 놀란 것은
    사법정의가 무시된 후속조치와 무심한 시간들의 흐름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화여대의 학생들은 너무나 숭고했지만 이화여대의 리더십들은 학교를 말아먹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16 23:31 신고

      이것 때문에 혁명은 젊은이들의 피로써 성공에 이르지만, 늙은이들이 기어나와 열매를 따먹는 것이지요.
      혁명 다음에 구체제로의 복귀가 어김없이 되풀이 됐던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법이죠.
      디테일한 면, 즉 미시적 차원에서도 승리할 때 진정한 혁명이 됩니다.
      68혁명에 나선 전 세계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총체적 혁명을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3.17 09:15 신고

    박근혜를 끌어 내린 시작이 이대에서 출발했음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권력에 부역하는 학교,경제계들의 일침이 되었는데...

    • 늙은도령 2017.03.17 14:35 신고

      작은 것들을 놓치면 답이 없습니다.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에서 모두 승리할 때 진정한 체제혁명이 가능해집니다.

  3. ㅅㅌㅂ 2017.03.17 15:57 신고

    도령의 글처럼 나도 근혜만 미워하다 은혜는 돌아보지 못한 우를 행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나같은 많은 사람이 정신차리는 디테일이 깨어나는 세상을 기다립니다.

    • 늙은도령 2017.03.17 17:49 신고

      우리의 삶은 거대담론보다는 작은 것들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력자들은 국민 전체가 아닌 일부를 집중공략함으로써 국민을 길들입니다.
      우리나라 보수정부와 검찰의 특기이지요.
      이런 공권력의 행사를 국민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펼쳐집니다.
      작은 것에 악마가 있는 법이지요.

  4. ㅅㅌㅂ 2017.03.18 21:41 신고

    미안합니다.

  5. 무정부주의자 2017.03.20 18:36 신고

    이대는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했다고 하네요
    김활란은 조선인 최초의 총장이라고 하네요
    확인 부탁드려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영국에서 '복지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 조카를 위한 글이다. 너무나 자상하고 능력있고 현명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조카가,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조카가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부딪쳐야 하는 차별들에 노출되며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공부 중인 조카까지,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차별들이 그들의 삶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치철학으로서의 정의론에 심취해 있는 총각 삼촌의 의무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의 종류는 너무나 많아 십여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은 필자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평생을 소아마비로 살고 있는 필자의 경험은 수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각종 차별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평등주의적 전제를 공유하는 현대 정치이론은 여성이 가족에 유폐되고, 가정 내에서 '법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여성이 그들의 남편에게 종속'돼 있다는 '자연적 근거'를 수용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과 대응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여성을 남성처럼 자기결정권과 정의감이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보면서 취업과 승진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법률 및 제도를 도입하는데 동의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성차별ㅡ이득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임의적이고 불합리며 부정의하게 성별을 적용하는 것ㅡ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수행해야 할 일과 성별 사이에는 아무런 합리적인 연관성이 없음에도 여성 고용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피부색 불문(color-blind) 사회'를 추구하는 인종차별법의 모델이 '성별 불문(sex-blind) 사회'를 추구하는 성차별법인데, 그것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페미니즘 이론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면에서만 성공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 이유는 기존의 사회가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완전히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 구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지만, 성별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는 성 중립적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제도를 성평등적으로 재구축하지 않는 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소방관, 경찰과 군대 같은 직종에 취업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장과 체중 제한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칙은 공식적으로는 성 중립적이지만, 남성이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더 신장이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 직종에서 여성의 지원을 걸러내는 작용을 하게 된다. 전형적으로 이러한 규칙의 적용은 그와 같은 직종에서 상용되는 기구들을 사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신장과 힘이 요구된다는 근거에서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직종에서 타당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도구들이 왜 키가 165cm가 아니라 175cm인 사람들에게 맞게 만들어졌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그러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도구들을 남성들이 사용할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들은 그 도구들을 평균적 남성의 신장과 신체에 맞도록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동일한 도구들을 보다 작고 체중이 덜 나가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은 명백히 가능하다.


여기서의 문제는 낡은 편견 혹은 쇼비니즘이 아니다. 이러한 신장과 체중 제한을 사용하는 고용주는 지원자들의 성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뿐이다. 그는 단지 그러한 직종의 자격제한을 만족하는 사람들을 원할 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러한 직업들의 제한 조건이 애초에 남성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데 있고, 그러한 결정에는 남성이 그 직업에 적합하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다 심각한 예는 대부분의 직장이 '성 중립적'이지만 취학 이전 아동을 돌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에 대한 적임자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의 육아를 기대하고 있다고 할 때, 그러한 직장에서 여성과 경쟁하는 남성은 더욱 유리할 것이다. 이것은 여성 지원자가 차별받기 때문이 아니다. 고용주는 지원자들의 성별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거나 사실은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하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많은 여성이 육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업을 얻을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지원자의 성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 중립성은 충족되지만, 그 직업이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부인이 있는 남성들고 채워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정의되기 때문에 성적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별 중심 접근방식은 누가 직업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성별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성별을 고려하는 바로 그날이 그 직종의 종사자가 육아의 책임을 갖지 않기를 기대하는 구조를 갖는 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윌 킴리카의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에서 인용).





이처럼 두 가지 예만 들어도,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와 직종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구축돼왔는지 알 수 있다. 남성노동자에 맞춘 자본주의도 그런 전제하에 출발했고, 그것이 극단화한 신자유주의 세상은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된 여성에게는 최악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여성의 가임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여성으로서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 한들 유리천장과 결혼 기피, 만혼, 저출산의 악순환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가 직립보행으로 귀결되면서 여성의 자궁과 궁도가 좁아졌고, 그에 따라 출산의 고통이 극대화됐기 때문에 여성의 불리함이 얼마나 근원적이며 오래됐는지 말해주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더하면, 여성차별이 얼마나 근원적이고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의 약속은 아직은 구현되지 않았고, 영원히 구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성차별의 근원을 정확히 꿰뚫은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선진복지국가인 독일에서 체험했고, 복지국가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와 웹툰작가나 동화 일러스트가 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가 귀국했을 때 여성에 대한 근원적인 차별이 줄어든 세상이기를 바란다. 조카들이 귀국했을 때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활약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기대되고 있는, 아니 제도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두 번째 교대' 또는 '이중 노동'의 차별이 전업주부의 무임금노동을 정당화하고, 여성을 비정규직과 파트파임으로 내모는 불평등의 근거로 이용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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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7.03.14 20:30 신고

    평등사회는 꿈입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잔본주의에는 성을 상품화해야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외모지상주의 ... 얼마나 자본이 눈독 들이는 상품입니가?

    • 늙은도령 2017.03.15 00:41 신고

      그것 뿐이겠습니까?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도 나오지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보면 여성이 당하는 차별의 근원성은 모든 정치이론에서 천대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라나는 최악의 흡혈귀입니다.
      규제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나오고 보편적복지의 필요성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정말로 교육의 질과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정치철학적으로 교육이 어떻게 규정됐는지는 며칠 내로 글로 올리겠습니다.

  2. merryjanet 2017.03.15 10:29 신고

    페미니스트란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없애고자하는 사람들인데요.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기지만 남자의 위치를 끌어내려서 만드는 하향평등은 명백히 반대한다는 점을 확실히 합니다.
    예를들면 남녀의 임금 차별 철폐가 중요한 안건의 하나인데, 쉽게 말해 여성의 임금을 남성의 그것과 동급으로 올리자는
    목표이지만...
    최근 세계화 흐름으로 남자들의 임금이 내려와서 임금차이가 줄어든것을 평등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는거죠.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정규직의 수를 쉽게 자를수 있게 법을 고치겠다고 한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지요?
    그런식으로 평등의 물타기를 하는 무리가 고의로 편가르기를 이용하는것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당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먼저 올바른 평등의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15:49 신고

      상향평준화는 당연한 얘기라서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요.
      비정규직법은 그것을 법제화함으로서 공식화하고,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됐으나 국회에서 누더기로 변했습니다.
      노통이 비정규직을 위해 추진한 일이 국회를 거치면서 개판이 됐죠.
      그러나 이명박근혜9년의 경험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듯이, 비정규직을 법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그들의 문제가 사회의제화되는 것도 매우 늦었을 것입니다.
      재벌개혁의 문제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법제화를 통화 공론화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비정규직은 피할 수 없는 시대흐름이었습니다.
      국회가 노통의 초안을 그대로 통과시켰거나, 그 다음의 정권이 법의 취지를 살렸으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법과 제도는 만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개판이면 아사리판이됩니다.
      이명박근혜 9년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최근에 나온 판결에서 국민의 분노를 폭발 직전까지 몰고간 것은 한국전쟁이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와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법원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입니다. 사망자가 최소 1012명을 넘고,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중상자를 포함해 피해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데 법원의 판결은 옥시 전 대표에게 징역 7년, 외국인 전 대표는 무죄, 세퓨 전 대표 징역 7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전 본부장은 금고 4년에 그쳤습니다.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벌금 1억50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국민의 법감정은 완전히 무시한 판결이었습니다. 





정부와 다국적기업의 압력에 굴복한 검찰이 낮은 형량이 나오도록 공소를 형편없게 했고, 전관을 동원한 변호인단(악마의 김&장)의 막강한 위력에 짓눌렸다 해도,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수만 119명에 이르는 희대의 살상극에 최고의 처벌이 징역 7년이고, 외국인 대표는 무죄라면 이 나라에 법원이 존재할 이유가 있습니까? 죽을 것 같은 굶주림에 7500원어치의 먹을 것을 훔친 가난한 청년에게는 징역형을 언도하면서도, 11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범죄자들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롭다면 그런 법원은 필요없습니다. 



법이 그렇다는 변명은 하지 마십시오. 형량은 양형기준이 있다 해도 법원(판사)의 재량이며 피고가 항소와 상고를 한다고 해도 양형기준을 뛰어넘는 법정최고형(사형)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다국적 탐욕의 결과인 '가습기 살균제'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법리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 없다는 상식만 가지고 있다면 이따위 벌레만도 못한 자본편향적 판결은 나올 수 없습니다. 





법이, 이 지랄 같은 헬조선의 법이 문제라면 국회를 압박해 바꾸면 그만입니다. 매주 광화문 광장과 전국을 밝히는 촛불이 국회를 포위한 채 문제의 법을 개정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면 됩니다. 박근혜의 탄핵소추안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는데, 국민의 행복과 이익에 반하는 악법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벌레보다 못한 법원의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고, 더민주는 해당 법을 개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헌데 이런 노력 끝에 해당 악법이 국민의 명령대로 바뀌었다고 해도, 이번 판결처럼 법원에서 자본편향적 법리 해석을 감행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이 행정·입법·사법부로 나뉘는 것은 균형과 견제를 통해 국민의 복리를 최고로 높이기 위함입니다. 법앞의 평등이라는 것도 반칙과 특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상식과 양심에 근거한 보편적 정의를 실현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의 저울이 평평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치학자들은 '사법의 정치화'를 놓고 무수히 많은 찬반 토론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법부의 자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권력이 정치권력과 언론권력마저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 사법부마저 자본권력의 앞잡이로 전락하면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선진민주국가일수록 가진 자와 대기업에게 더욱 혹독한 것이 사법부의 공통된 특징인데, 이놈의 대한민국 사법부는 가진 자와 재벌의 앞에서면 한없이 관대해지고 반민주적이 되는지, 분통이 터집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자본권력에 길들여졌는지 말해주는 바로미터입니다. 특검이 박근혜 게이트의 부역자들과 또다른 몸통인 삼성전자그룹 오너(이재용)와 최고경영자들(최지성이 핵심)의 범죄혐의를 아무리 철저하게 파헤쳐도, 형량을 아무리 높게 구형해도 자본권력에 길들여진 사법부가 솜방망이 선고를 연이어 때리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맙니다. 촛불혁명의 꿈과 촛불시민의 명령은 한낱 물거품으로 화하고 맙니다.



자본권력을 위한 사법부는 법에 의한 지배(헌정주의와 법치주의를 말하는 '법의 지배'와 다르다. 법에 의한 지배는 법을 수단으로 독재나 과두정치를 자행하는 것을 말한다)로 민주주의를 고사시킵니다. 이런 판결이나 내리는 사법부라면 국민의 복리를 위해 없애는 것이 낫습니다. 국민이 직접 법정을 운영하는 파격적 참심제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악습을 되풀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같은 교통법규를 어겨도 부자일수록 더 많은 범칙금을 냅니다. 돈이 곧 권력인 자본주의 세상에서 부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국회가 문제의 악법을 고치기 위해 움직인 상황에서 사법부가 계속해서 이런 개 같은 판결을 쏟아낸다면 촛불은 청와대를 거쳐 사법부를 향할 것입니다. 촛불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촛불의 열망과 분노가 쉽게 사그러들 것이라 오판하지 마십시오. 촛불은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넘어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만들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니, 대충대충 넘어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법이 상식을 넘어설 때 권력이 되고, 권위를 요구할 때 특권이 됩니다. 촛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하는 지성의 총합입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헌법의 최고 가치인 주권재민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고요.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법정을 운영하고 판결을 내리십시오. 당신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존재임을 한시도 잊지 마십시오. 국민이 곧 국가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와 피해자들이 국가입니다.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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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7.01.10 22:42 신고

    사법은 죽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3권분립의 정체성부터 다기 찾아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1.10 23:02 신고

      네, 정치의 사법화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대법원장의 독립을 확실하게 해야 하고 각각의 판사를 승진의 두려움에서 벗아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평생판사제도의 도입도 필요하고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1.11 08:36 신고

    검찰이 기소장을 부실하게 쓴 모양이로군요
    법원의 판결이전에 기소를 잘 살펴 봐야겠습니다
    김앤장의 위세에 눌려 버린 판결이군요

    • 늙은도령 2017.01.11 16:31 신고

      모든 것이 다 어우러진 것이지요.
      특검 수사가 아무리 잘되도 이런 식의 판결이 나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3. magrove 2017.01.11 13:04 신고

    사법부의 관행과 퇴직후 변호사 개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이 연결고리 때문에 김&장 같은 로펌이 대한민국 법조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 입니다.
    변호라는 것은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죄를 밝히고, 팩트에 근거하여 과도한 형량을 막기 위한 인권보호제도입니다.
    하지만 로펌은 그 원칙을 무시하고 전관예우라는 기형적 관행으로 유죄를 무죄로 만들고 때에 따라서는 무죄를 유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법치주의의 기본취지를 해치며 나아가서는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사법농단이라고 생각 합니다.

    향후 법조계의 퇴직자들은 애초에 임관시 부터 퇴임후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에 취업을 하지 못하는 법령을 만들어 원천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1.11 16:32 신고

      참심제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사건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형량까지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판사의 배정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사법개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다시 다룬 것처럼 육영재단 폭력사태에서 출발한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때마다 사체로 발견되는 것은 우연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전문 프로파일러들이 살해와 자살로 보기에는 박용철과 박용수의 죽음에는 의문점이 많다고 한 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나꼼수 멤버들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외소한 박용수가 거한 박용철을 죽였다면 최소 2~3명의 조력자 있어야 한다는 추론은 그래서 적절해 보입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제보자들의 증언처럼 박용철은 청부살인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박용철의 청부살인을 요청했다는 새로운 인물까지 드러났으니 사건의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박용철이 녹음한 내용이 담긴 하드가 복원되면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것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재벌로부터 천문학적인 통치자금을 받고, 온갖 방식으로 뇌물을 챙겨 수십조의 돈을 빼돌린 박정희의 맨얼굴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호참사의 대처에서 보듯이,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박정희 가문의 살인행각을 아무리 우연으로 돌려도 그것이 계속해서 겹치면 필연이 됩니다.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때마다 핵심 증인들(5~6명)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수사를 맡은 경찰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인을 내놓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새로운 증거와 증언이 속출함에도 경찰이 재수사에 나설 수 없도록 만드는 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손이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보이지 않아서 더 막강한 이 손은 박정희와 최태민의 딸들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천하의 김어준과 주진우, 김용민, 신동욱, 정청래, 진선미, SBS PD 배정훈 등이 관련 사실을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모두를 저인망식으로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의 능력은 국정원의 정예요원이 모두 다 투입되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심지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내부고발자인 노승일, 고영태, 박헌영 등이 그들을 죄어오는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의 행태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고도의 훈련을 거친 자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와 최순실, 박지만과 정윤회, 죽은 문고리4인방의 일인인 이춘삼 등이 관련돼 있다고 해도 이땅의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회피하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할 정도라면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은 국정원 전체와 맞먹는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진우 등과 2년 이상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취재해온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해당 내용을 방송하기 위한 최종본이 삭제된 것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김어준이 배정훈 PD에게 방송을 위한 최종본이 삭제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방송이 불가능할 수 있으니 반드시 백업을 해두라고 했는데, 그것이 없었다면 대형 방송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SBS의 사측은 관련사실을 부인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 없다'는 우리네 속담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더욱 경악할 일은 더민주에서 경찰에게 사건 재조사를 요구했고, 특검에서도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살펴보겠다며 주요 참고인 10인 중 한 명을 접촉한 날에 주진우의 가족을 향해 인도로 달려들은 자동차(폐차 수준으로 망가졌다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는 뜻)가 있었고, 진실을 알고 있는 마지막 인물이라고 알려진 박지만의 비서실장이 돌연사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보도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등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살인사건의 전말을 증언해줄 증인이 증언 하루 전에 라면 먹다 급사한 것처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PD들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박용철의 여자로부터 받은 하드를 살려내지 못한 상태에서 방송을 내보낸 것으로 볼 때 방송을 계속해서 미루면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채 보복의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헌재가 박근혜 탄핵 인용 선고를 하루라도 빨리 내려주면 이들의 두려움도 가실 것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하고 증거를 제공할 것이기에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청산과 처벌에 크게 공헌할 것은 분명합니다.  





경찰의 행태도 의문투성이입니다. 더민주의 재조사 요구를 일축한 것을 넘어, 박지성 비서실장의 사인을 부검 하루만에 심근경색에 의한 자연사라고 단정했으니, 살인경찰의 지령(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에 따라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심폐정지라고 기록한 백선하 교수가 오버랩됩니다. 온갖 증언과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사촌 간에 벌어진 살인과 자살로 처리한 당시의 경찰들(사건을 마무리한 후 승진하거나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다)이 되살아난 듯도 하고요.   



박근혜가 직무정지 상태고, 최순실이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고도로 훈련된 프로들이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일들은

박정희 통치자금을 세탁해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자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육영재단(과 영남대학)의 비밀로 향한다는 점에서 핵폭탄급 후폭풍이 예상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추가로 공개한 영상까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 한국현대사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박정희 신화'의 추악한 면면이 두꺼운 베일을 벗을지도 모릅니다.



잔혹하고 타락한 독재자를 반신반인의 경지에 올린 '박정희 신화'는 반칙과 특권의 기회주의자(친일부역자)들이 이땅의 지배엘리트와 특권층으로 자리잡는데 활용된 만들어진 신화로, 약물중독으로 후천성 지진아로 퇴행한 것 같은 박근혜를 대통령에 올린 부패한 기득권세력의 막강한 시스템의 결과물입니다. 촛불혁명이 무너뜨려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인데, 이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노골적으로 가로막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악착같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해서 필자는 요청합니다, 특검에서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하기를. 또한 국회는 법개정을 통해서라도 특검의 활동기간을 연장하는데 나서라고 요구합니다. 대한민국 제1정당의 요구마저 묵살할 정도로 경찰이 요지부동이니, 대통령이 되면 그들의 생사여탈권(인사권이 핵심)을 행사할 수 있는 대선후보들이 직접 나서야 진상규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살해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수사를 통해 한국현대사의 추악한 단면을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대한민국을 불평등과 차별의 천국으로 만들고, 미래세대·청춘·노인·여성·장애인 등처럼 사회적 약자의 헬조선으로 추락시킨 반칙과 특권, 폭력과 협잡, 탐욕과 불의의 시스템을 끝장낼 수 있습니다. 후세대에 길을 열어줘야 할 70대들이 개헌을 고리로 정치판으로 기어나와 구태를 반복할 수 있는 것도 박정희 신화를 만들어낸 시스템 때문입니다. 한국현대사의 적폐가 집약돼 있는 세월호참사와 함께,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 구세대는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촛불은 꿈꿉니다, 모든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사라진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촛불은 기원합니다, 그곳에서 각자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하루하루를 즐겁게 뛰놀고 일하는 국민의 웃음소리를. 촛불은 희망합니다, 미래의 권리가 현재의 욕망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기를.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새누리가개혁보수당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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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둘리토비 2017.01.06 00:19 신고

    의혹이 낱낱이 밝혀지길 원합니다.
    그게 제대로 된 사법정의가 실현되는 것일 텐데, 어쩌다 한국은.....

    • 늙은도령 2017.01.06 00:22 신고

      이번 사건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박정희 신화를 청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니까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1.06 08:29 신고

    이 놈의 나라는 요즘 이상한 행태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헬조선이 전혀 이상한말이 아닌게지요

    이승만에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06 18:30 신고

      이제부터 바로잡야죠.
      촛불집회가 하나의 정치형태로 자리잡으면 혁명적 개혁도 가능합니다.
      그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3. 동우 2017.01.06 09:33 신고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직전 삭제 논란 배경에 sbs 출신 청와대 수석이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요.
    비판 보도 기자에게도 직접 압박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2010년 10월, 포항 mbc "경술국치 100년 석굴암 100년의 진실"은
    서울 mbc 본사에서 12월 28일에 전국 방송을 하기로 하고, 언론에 예고가 나갔지만
    방송 몇 시간 전, 방영 취소가 되어 그 배경에 의혹이 있었죠.

    그 후 이러한 방송 압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구요.

    • 늙은도령 2017.01.06 19:02 신고

      5공시대로 회귀한 것이지요.
      재벌의 임원들도 국정원 관리가 늘어났습니다.
      헌데 방송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MBC는 박정희가 뺏은 작물이었다가 벗어났지만 방문진이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4. mangrove 2017.01.06 09:40 신고

    그 뒤에 종교단체가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그들은 아마도 최순실과 함께 청와대, 국정원, 정부 요직 곳곳에 포진해 있을 것이고, 그들 자체적인 조직도 막강하리라 봅니다. 물론 영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겠지만..... 요즘은 영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니....

    • 동우 2017.01.06 12:34 신고

      그 종교단체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이 창조했다는 그 종교단체 아닐까 싶은데요.

    • 늙은도령 2017.01.06 19:03 신고

      임순이와 최태민의 수족들인 조폭과 종교집단만이 아니라, 국정원 수준의 개입이 있을 것입니다.
      박정희의 수족들이 아직도 암약하고 있으니까요.

  5. 2017.01.06 11:36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06 19:04 신고

      특검의 결과는 법원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특검이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박근헤 탄핵 말고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특검이 얼마나 증거를 확보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다루기 때문에 짧은 편이다. 필자가 아는 한 위대한 역사가의 반열에 오른 네 사람의 관점을 통해 국정교과서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가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수구적인지, 전체주의적인지, 기회주의적인지, 권력지향적인지, 시장지향적인지 등을 확인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뉴라이트 출신이 저자인 국정교과서는 쓰레기 그 자체다. 





《로마 제국의 쇠퇴와 멸망》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은 '역사란 인류가 저지른 범죄와 인류의 어리석음 그리고 불운을 기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미화하고, 건국절을 제헌헌법(미국의 수정헌법을 참조, 현재의 헌법은 프랑스 헌법을 참조)이 만들어진 1948년으로 규정해 친일파를 건국의 주역들로 둔갑(친일 미화)시켰고, 불평등성장과 차별적 분배를 '한강의 기적'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에드워드 기번의 관점에서 보면 뉴라이트의 국정교과서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칼 포퍼는 '역사란 국제적 범죄와 집단학살의 주체인 정치권력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에 저항하고 희생되고 죽어간 이름 모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제에 충성한 사대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일관한 세력과 독재를 자행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서술된 뉴라이트와 시장우파의 국정교과서는 칼 포퍼의 관점에서 보면 쓰레기의 정수만 모아놓은 최악의 역사교과서다. 



따라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진 국정교과서 집필자들과 그것을 수정한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들, 이 모든 것들을 지시하고 방조한 박근혜와 교육부장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위간부들은 나치부역자에 대한 드골식 청산에 준하는 당사자들이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역사를 왜곡·조작한 뉴라이트의 국정교과서로 우리의 아이들이 공부하면 그들의 미래도 왜곡·조작된다. 





역사가는 아니지만 조지 오웰은 《빅브라더》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와 뉴라이트, 교육부와 역사편찬위원회 등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내에 과거를 왜곡·조작함으로써 미래를 영속적으로 지배하려는 목표'로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미래세대마저 노예화하려는 이들이 드골식 청산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촛불혁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S.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세계사(유신독재 하의 국정교과서)의 반은 중국사였다. 그때에 필자는 세계사의 반이 중국사인 이유를 몰랐다. 그 당시의 중국은 중공으로 불리며 소련과 북한과 함께 타도의 대상이었음에도 그랬다. 최근에 이덕일과 김용섭, 최재석, 이주환, 설민석 등의 역사책들을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중국의 사대주의자들었다가 일본의 사대주의자로 변신한 반민족적 기회주의자들이어서 한국고대사부터 조선시대 역사, 일제강점기까지 왜곡·조작했던 논론의 후예들(이병도 사단)이 역사학회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한국사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다, 서울대에 몰려있는 이병도의 후예들과 뉴라이트 개자식들 때문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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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12.06 09:10 신고

    저도 만일 공부를 다시 한다면 역사공부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2. 질문자 2016.12.06 09:54 신고

    한국사를 제대로 다시 공부할 때,
    공부해야할 책의 제목과 순서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늙은도령님께서 공부하시는 순서대로)

    • 늙은도령 2016.12.06 13:41 신고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을 먼저 봤습니다.
      그 이후 <조선왕조 실록>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 <칼날 위의 역사> <조선왕을 말하다1, 2>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일본서기의 사실기사와 왜곡기사>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조선왕조실록 세트> <영조실록> <정조실록> <일본서기>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 등을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어렸을 때 읽었고, <환단고기>도 읽었습니다.
      사서삼경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것 뿐인데 나중에 책들을 찾아보고 또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전, 순서가 없이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라....

  3. YYYYURI 2016.12.06 10:55 신고

    미쳤어요.. ㅂㄱㅎ는 ㅠㅠ

  4. 독립군 2016.12.07 21:37 신고

    페북에 올라온 역사비평에 동감하여 공유좀 하였습니다.이런 사실은 전 국민이 많이 알수록 역사 정의가 바로섭니다.

    • 늙은도령 2016.12.08 02:21 신고

      네, 얼마든지 공유하십시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이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4.5로 알려진 오늘의 여진은 일주일 전의 본진(5.8)보다 강도는 작지만 전국에서 지진을 감지했다는 것은 향후에 벌어질 일들의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조심스럽다. 그 이유는 기상청과 지질연구소 등이 진원지를 파악하기 힘들 만큼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단층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진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일어나는 것도 진원지의 활성단층들이 응력을 풀어낼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5.8의 본진이 발생하면서 경주지역의 활성단층들이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가 차원에서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가 부실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니 대비 자체가 불가능하다. 4대강공사나 자원외교, 방산비리, 해외순방 패션쇼로 날아간 돈의 만 분의 1만 지질연구에 투자했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지질연구가 엄청난 일본의 경우 강도 9의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자민당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핵마피아가 무시했다). 



경주 지역의 활성단층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오늘의 여진이 또다른 지진의 전조인지, 지난 주에 발생한 본진의 여진인지, 향후에도 여진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인지, 심지어는 어떤 활성단층(길이가 길수록 지진의 규모도 커진다)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때 실시했던 조사들이 대규모 공사을 남발해야 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보통 5.8 정도의 강진이 발생하면 땅이 갈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지난 주의 본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주의 본진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적은 것이 이 때문이었는데, 만에 하나 땅이 갈라지지 않는 대신 지진의 응력이 단층의 내부에서 움직이느라 지표면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 아니라면 짧은 시일 내에 6.5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내진설계가 형편없거나 아예 없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붕괴를 피할 수 없고, 대한민국을 존망의 위기로 몰고갈 수 있는 경주방폐장(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 보관)이 붕괴되고 노후원전들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유독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할 수 있는 석유화학 공장들이 폭발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지진만으로도 많은 건물과 시설, 공장들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을 것이기 때문에 6.5 규모의 강진이 발생하면 최악의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지진을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오로지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매진해온 결과, 대한민국은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형편없이 부실한 국가라는 것이 이번 지진으로 또다시 확인됐다. 국민 304명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봤으면서도 아무런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이니 더 말해야 무엇하랴.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미래세대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무책임에서 나왔이니 피해를 감내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동물과 곤충도 먹고 사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존의 차원에서만 삶을 이어가겠다면 우리 모두는 짐승에 불과하다. 인간은 과거의 역경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족속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의 힘으로 지진을 막을 수 없다면 지진이 일어난 이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은가.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는 바로 오늘처럼 뜻밖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기상청 사무관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 제대로 대처하라고 내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도 '아~몰랑'하지 말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국민에게 의무만 강요한 채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그 자체로 지옥이다. 세금을 내는 만큼, 법을 지키는 만큼, 지시에 따르는 만큼, 우리가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또다른 이름이 헬조선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P.S. 같은 지역임에도 움직이는 활성단층과 움직임을 멈춘 비활성단층이 있는 이유는 지질학적 시간단위가 100만 년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활성단층이 서기 1년에 생겼다면, 활성화단층은 서기 100만년에 생겼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두 단층 간에는 9,999,999년의 차이가 난다. 경주의 활성단층도 비활성화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 말고도 몇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100년을 사는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지질학적 시간단위나 사건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물며 닭의 머리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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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류겐 2016.09.20 07:25 신고

    정치&시사 이야기도 좋지만, 저금리나 불황, 금리인상, 가계부채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부탁드립니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에게 있어서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노무현 다음에 이명박을 불러온 도 "노무현이 경제를 망쳤다"는 서민들의 생각 때문이었으니까요.

    전 지금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 한 떡볶이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분식집 주인 아줌마가 TV 경제면 뉴스가 나오자 넋두리로 '노무현 때문에 경제를 망쳤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시기 전 퇴임하고 얼마 안 됬을 때인데요.

    • 늙은도령 2016.09.20 15:05 신고

      경제 관련된 글도 자주 써볼 게요.
      진보가 경제를 잘하고 보수가 망치는 방법에 관해서는 수백 편도 쓸 수 있으니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면 자주 쓸게요.

  2. 공수래공수거 2016.09.20 08:07 신고

    지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어제 이곳도 많은 분들이 공포를 느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이럴진대 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게 분명합니다. CB

    • 늙은도령 2016.09.20 15:08 신고

      박은 생각이 너무 단순합니다.
      재벌만 잘 돌아가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 이것 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권력유지만 생각합니다.
      너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밑에서 올린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언행이 달라집니다.

  3. 맹그로브 2016.09.20 09:24 신고

    단층에 대한 지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블랙박스 입니다. 그 어떤 단정도 긍정적 해석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복구보다는 향후 닥쳐 올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하고 단층지역의 주민들의 피난 및 구난책도 세워야 합니다. 재난이 발생한 후에 재난지역선포 보다는 재난 발생이전에 확실한 대피 시나리오 및 구난 시나리오가 백번 낫습니다.

    닭이 이걸 알까나요?

    • 늙은도령 2016.09.20 15:10 신고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대피책을 세워 조금씩 실현해야 합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에 사는 분들의 이주에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나머지도 내진설계를 추가해 대비해야 합니다.

  4. 참교육 2016.09.20 17:49 신고

    북핵이 아니라 핵발전소입니다.
    박그네는 무엇이 중요한지 구별이 안됩니다.
    먹을 식량도 없는데 무슨 도발입니까? 미사일이 아니라 지진에 대비한 핵발전소 문제부터 대책 세워야합니다.

  5. 2016.09.21 05:2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9.21 06:15 신고

      건강은 좋습니다.
      갈수록 더워질 여름이 걱정이지만 올해는 무사히 넘겼습니다, 어마어마한 전기료를 지불하는 대가로ㅠㅠ.

      님도 잘 지내시지요?
      지난 4~5개월 동안 인공지능과 로봇공학,나노공학 등에 대해 공부하느라 님의 블로그에도 들리지 못했네요.
      공부는 끝이 없겠지만 시간적 여유를 가질 만큼은 됐기 때문에 자주 들릴게요.



자신의 시대에 당해서 쓰러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시대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ㅡ 장 폴 사르트르, 타니아 모들스키의 《여성 없는 페미니즘》에서 인용




학생 300명을 진압하기 위해 무려 1600명의 경찰을 투입한 것에서 근혜의 복사판을 보는 듯한 최경희 이대총장이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을 철회하기로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폭력적인 진압이 2016년의 이대에서 일어난 것에 분노한 동문과 학부모들이 총창 퇴진까지 거론하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꼰대행정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통쾌하기도 했지만, 이대 사태의 주범인 교육부는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 학위장사를 계속하겠다니 제2, 제3의 이대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대 사태의 본질은 정치검찰과 족벌언론과 함께 최악의 기득권집단으로 유명한 교육부의 권위주의적 꼰대질이다. 공교육 파괴의 주범으로써 교육부가 하는 일이란 막강한 예산력을 동원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대 사태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럴싸한 명칭만 들춰내고 안을 들여다보면 돈(국민의 혈세)으로 대학들을 줄세우겠다는 꼰대의 갑질에 다름아니다.



대한민국이 OECD 가입국 중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이 심해지는 과정에서 중산층이 붕괴한 것은 '공교육 부실화'에 따라는 사교육비의 무한증가가 핵심에 자리한다. 국내외의 수많은 석학들이 미국에 필적하는 '극단적 학벌주의'가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몰고간 핵심 요인으로 지적한다. 독일과 스웨덴 등으로 수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보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곳에 정착시키려는 것도 무한의 돈지랄이 필수인 '극단적 학벌주의' 때문이다. 



'민중을 개·돼지로 보기 때문에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나향욱이 교육부에서 승승장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진행 중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은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역주행의 전형이다. 교육부가 뭐라고 주절대던 이번 사업의핵심은 고졸취업자에게 임금격차와 승진의 불이익에서 벗어나려면 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이 사회이동성의 수단에서 차별과 불평등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도 공교육 붕괴를 이끌어온 교육부의 책임이 절대적임에도, 누적적립금이 수백~수천억이 넘는 사립대학에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서 학벌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나향욱 같은 자들이 교육부에 즐비함을 간접 증명한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이 명분을 지니려면 정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립대학이 아닌 국공립대학 위주로 진행돼야 하고, 무엇보다도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다음에 진행돼야 한다. 





이대의 역사에 치욕적인 기록을 떠넘긴 교육부의 '팽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은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예산 지원사업으로 사립대학까지 교육부의 개·돼지 양산소로 만들겠다는 꼰대들의 갑질이다.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정원 외로 하겠다는 것은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대학으로 하여금 학위장사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어서 사업 자체를 취소하고, 해당 예산을 공교육 강화에 투입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적 절차란 '노무현스러운 것'이어서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며, 박정희식 독재의 효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공적 영역을 지배해버렸다.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대학생과 청춘에게는 민주적 절차라는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대생들의 저항, 아니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민주적이고 수평적이었다)임에도 이를 무시하기 일쑤인 꼰대들의 갑질이란 대한민국을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추락시키는 것을 넘어 탈조선의 행렬에 기름을 붓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중에서 부도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거론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이 바로 그러하다. 이대생들이 자신의 시대에 당해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본관 농성에 들어갔고, 승리를 쟁취하는 역사를 창조했지만, 주범인 교육부는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 제2, 제3의 이대 사태도 불사하겠다니 '시대에 등돌리는' 학생들이 늘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기득권의 온상인 교육부를 파하라! 

대선공약인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오승환 끝내기홈런 허용, 매시니 감독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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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누리안티 2016.08.04 02:49 신고

    교육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만악의 근원인 왜육부를 없애지 않는 한 희망이 없습니다. 나중에 왜육부가 앞장서서 국민 없는 나라+제2의 일제강점기+한국판 나치 독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늙은도령 2016.08.04 02:57 신고

      네, 교육부는 뿌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친일파의 온상인 교육부를 바로잡지 못하면 미래세대들의 고충은 계속될 것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8.04 08:30 신고

    타락한 교육부입니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빨리 중단해야 합니다
    예산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3. 쌈둥아빠 2016.08.04 09:45 신고

    식견을 넓혀주는 글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무더위 건강 조심하세요~~

  4. 맹그로브 2016.08.04 09:47 신고

    추경 예산 편성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예산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고 있는데 추경 편성이 가당키하 한 일일까요?
    어제 뉴스에서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 원인은 역시 돈이었습니다.

    가장 편하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은 딱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착취고 또다른 하나는 사기 입니다.

    현재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는 이 두가지 신공을 열시미 발휘한 덕에 서서히 밀려나고 있더군요.

    학위를 붕어빵 찍듯이 찍어내면 취업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 정말 사행적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대로 하기 싫으면 내려오면 됩니다. 구지 교육부라고 앉아서 냄새 풍기면서 뭉개고 앉아들 있는 꼴을 두고 보기가 정말 힘들군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면 구지 국민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6.08.04 13:49 신고

      네, 맞습니다.
      학위를 따는 것을 도박화합니다.
      학위가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차별없이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요.

  5. 참교육 2016.08.04 09:53 신고

    교육부가 해체될 이유입니다.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이대생들의 승리 높이 평가합니다.

    • 늙은도령 2016.08.04 13:51 신고

      네, 교육부는 해체돼야 합니다.
      이대생들의 승리는 참으로 값진 것이고요.



무려 21개 중대 1,600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농성 중인 이대생을 끌어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성주를 방문해 성난 군민들로부터 셀프감금을 유도했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언론에는 이대생이 교수들을 감금한 것으로 나오지만, 경찰력이 투입된 이후에 SNS 등에 공개된 학생들의 증언과 녹취록(학생을 자극하는 교수의 폭언 등)을 보면 교수들이 감금을 자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대생들이 본관에서 집단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국민을 ·돼지로 보는 교육부의 꼼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교육부는 고졸 출신 직장인들에게 학위를 제공한다며 정원 내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을 추진했는데, 그럴 경우 교육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액(35억, 세금으로 마련) 외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자 대학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했다. 이에 교육부는 정원 외로 규정을 바꿨고, 대놓고 학위를 팔 수 있게 된 이대가 참여를 결정했다. 



얼핏 보면 이대생들이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교육부의 지원사업에 반대하는 것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반대 이유만 살펴봐도 교육부의 지원사업이 대학으로 하여금 대놓고 학위장사를 할 수 있는 또하나의 통로를 열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대에는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목적으로 1984년에 개원한 평생교육원이 있기 때문에, 재학생(이대에 진학하기 위해 투자한 것들을 논외로 한다 해도)에게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단과대학을 신설할 이유가 없다. 



단과대학을 설립해 '정원 외'로 학생을 뽑는 것은 비정상적인 정원 확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2018년부터 본격화될 인구절벽으로 정원 축소가 불가피한 마당에, 기득권 집단인 교육부가 특정 대학들을 선정해 국민의 세금으로 손실분을 만회해주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장기 중 하나가 부자감세를 숨기기 위해 서민증세를 늘리는 역주행이라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도 대학의 배만 불려주는 역주행이다. 



특히 신설되는 단과대학의 전공들(미디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 전공,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 전공 등)이 기존학부와의 겹침을 넘어, 철저하게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대학을 단순 취업훈련소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란 점에서 역주행이다. 대학이 산업의 변화에 대처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학과와 정원이 결정되면 대학이 존재할 이유와 목적이 사라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기존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20~30년 후에는 이런 대립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교육부와 대학이 앞장서서 인간의 가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려 한다면 헬조선만으로도 부족하지 않겠는가? 이대의 단과대학 신설은 졸업생들도 정규직 취업이 힘겨운 마당에 이미 취업된 고졸 직장인에게 '학벌의식만 조장하는 학위'를 팔겠다는 것이어서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세대로 기록될 1020세대들을 조금이라도 위한다면,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신분제를 옹호하는 교육부(와 이대)의 역주행은 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의 마지노선마저 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총체적인 타락'을 빼면 2016년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참담한 마음 뿐이다. 



역사에 '만약에(if)'를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도 마다하지 않은 기득권의 융단폭격을 뚫고 사립학교법을 개혁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까지 이에 놀아났으니 방법이 없었겠지만, 최소한 이해당사자의 한 축인 학생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일방통행과 야만공권력을 동원한 무력진압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백남기씨에게 가해진 직사 물대포와 우장장창에 대한 리쌍의 강제집행(용산참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에서 보듯, 상대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우월적 강자의 반민주적인 일방통행과 정부의 폭력이 대한민국을 짐승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은 이대에서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 자행됐다면, 내일은 연대와 고대, 한양대와 중앙대 등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화와 소통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종말을 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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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누리안티 2016.07.31 01:24 신고

    이러다 한국판 나치 독일이 도래하는 건 아닐런지...

    • 늙은도령 2016.07.31 02:20 신고

      박근혜 임기 동안은 이러 방식의 폭력적인 이익챙기기가 자행될 것입니다.
      다음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갈수록 쌓여갑니다.

  2. *저녁노을* 2016.07.31 05:15 신고

    씁쓸하군요. ㅠ.ㅠ

  3. 참교육 2016.07.31 10:53 신고

    대한민국 어느 분야에도 정상적으로 국러 가는 곳이 없습니다. 멘붕이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완전히 미쳐 돌아갑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15:16 신고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는 임기 동안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다 저지를 모양입니다.

  4. 꼬마분석가 2016.07.31 11:52 신고

    정부에서 먼저 대학에 개입하고 말안들으면 돈안주겠다 협박하고.. 비단 이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구조조정으로 많은 대학들이 교육부의 말도 안되는 강압행정을 받아들여야 해요.

    • 늙은도령 2016.08.01 15:18 신고

      네, 심각한 지경이지요.
      모든 국립대를 무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립대도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만이 대학진학률도 줄어듭니다.
      물론 취업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그것은 기술발전과 자동화에 따라 수시로 정해져야 합니다.

  5. 생명마루한의원 2016.07.31 17:11 신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ㅎㅎ

  6. 맹그로브 2016.08.01 10:08 신고

    김활란의 학교 답군요.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보다 상아탑이 되어야 할 학교가 취업교육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수십년간 대학생들을 산업전선으로 내몰아서 이 사회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당연히 있어야할 학문적 깊이와 다양성이 경제논리로 매몰되고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역대 교육부 장관이나, 공무원들은 그들의 업적(?)을 위해서 한 일이겠지만, 결국 국민들이게는 익명 싸논 똥으로 다가 오는 군요. 학문적 철학적 깊이를 가진 자만이 이 사회를 올바르게 볼수 있고 비판할 수 있으며 이끌어 나갈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취업전선에 내몰려 재벌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온 결과가 참담할 따름입니다. 결국 지금은 철지난 생산기지로 대한민국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와서 아무리 인공지능을 부르짖어 봐야.... 다양성과 깊이를 추구해온 미국등 선진국을 따라 잡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경제논리가 아닌 학문적 다양성의 논리와 철학에서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요즘 대학에서 안드로이드 가르치고 있다는데.... 정말 한심한 짓거리 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해서 받아들였던 경제가... 지금은 우리의 목을 누르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15:20 신고

      모두가 기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니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친짓이지요.
      모두가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정부의 지원금을 따기 위해 미친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합니다.
      세상의 변화가 어떠한지도 모릅니다.

  7. 하하하 2016.08.01 20:53 신고

    불통이다 뭐다해도 결국 이 사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망국적 학벌주의죠.
    학위장사라는 님의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대학생들이 자신들의 학벌에 대한 기득권의식이 전혀 없이 저렇게 반대하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모든 대학을 국공립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21:29 신고

      그러면 좋지요.
      대학은 정말로 공부할 사람만 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한 소득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학벌주의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8. 공수래공수거 2016.08.02 06:46 신고

    좋은 취지로 잘 운영될수 있는것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었군요
    매관매직하는 탐관오리나 다를바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2 16:14 신고

      단과대학을 설립하려면 정원 내에서 해야 합니다.
      학생수의 절대수가 줄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말도 안됩니다.
      이대는 오로지 돈 때문에 이런 미친짓을 하는 것이지요.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습니다.

  9. 하하 2016.08.02 20:58 신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잘사버리고 불통하는 늙은도령의 작태가 마치 박근혜 같구료 ㅋㅋ

    • 늙은도령 2016.08.02 22:02 신고

      내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이면 안 그러지요.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형편없어 길게 끌고갈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합니다.
      댓글에서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은 본문에 즉시 반영합니다.
      당신처럼 삐딱하게 보니 그렇게만 보이는 것이지요.



독자의 부탁으로 쓰게 된 이번 글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양성평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권리신장에도 관심이 있는 필자(백일 때부터 소아마비로 살아왔다)이기에 스치듯 보았던 사안이었지만, 독자의 부탁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잘못 발을 디뎠다간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나 부수적인 부분을 가지고 상대를 죽일 듯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으니 겁대가리는 없는 필자라 해도 댓글 공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프레시안>에 나온 "사건의 얼개는 이렇다. 지난 19일, 유명 게임 업체 '넥슨'은 자신들이 발매한 게임에서 한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성우 김모 씨가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이 티셔츠가 여성혐오 반대 그룹을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정확히는 메갈리아4)'를 후원하는 취지로 제작·판매된 것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왜 메갈리아4가 문제가 됐을까? 나무위키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을 통해 '김자연 성우 교체 논란'을 살펴보면, 메갈리아4가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조직인양 과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살펴본 메갈리아4 페이스북은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을 강타했던 페미니즘 열풍을 보는 듯했다. 문제의 티셔츠에 인쇄된 '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유명한 문구다. 



시저를 암살한 부르투스가 "남자는 세상을 정복한다면 여자는 그 남자를 정복한다"고 자신의 부인을 달랬지만, 인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간 이후 여성의 권리는 늘 남성에 의해 정해졌다. 토크빌은 'Ladys and Gentle Man'이 적용되는 대상이 넓어진 것이 참정권 투쟁의 역사이자 평등한 자유와 사회적 권리를 표방한 민주주의의 발전사였다고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재산이 있는 백인)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역사였다. 스위스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91년일 정도로 여성은 남성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 



특히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로는 여성의 권리가 남성(노동자)에 부속된 것으로 조직되고 세뇌되고 구조화됐다(푸코 참조).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집권한 이후, 전 세계를 정복한 신자유주의는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통치술이어서 여성의 권리는 더욱 악화됐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었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수준이며,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가 탈정치화됨에 따라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상품화됐다(나오미 클라인 참조). 





심지어 여성지도자들은 남성보다 더욱 남성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신자유주의화가 심한 나라일수록 여성의 권리는 후퇴했고, 혐오의 대상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마이크로 크래디트도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빈곤의 거버넌스'로 포장되며 빈곤여성을 빚의 굴레로 떨어뜨리는 것으로 변질됐다. 최근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매매춘 여성이 급증한 것도 여성을 사지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여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 영미식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인터넷과 SNS 사용자의 폭발(특히 댓글과 답글을 통해)은 페미니즘 운동을 벌이는 여성들을 혐오대상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 동생마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일베와 그들에게 끊임없이 먹이감을 던져주는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들이다. 이들에 의해 페미니즘 운동은 혐오의 대상으로 변질됐다. 



메갈리아4가 연관됐다는 이유로 본질에서 벗어난 '김자연 성우 교체 논란'도 마찬가지다. 메갈리아4 회원들이 장애인을 폄하하는 것(남성 성기와 동성애, 특히 게이를 비하하는 단어들의 사용과 무관치 않다)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고, 일부 짐승에 준하는 자들의 행태를 전체 남성으로 넓혀가는 논리의 비약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메갈리아4 회원들이 (인터넷의 특성상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많지만)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토론하고 투쟁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가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보는 헬조선의 조건들'에서 밝힌 것처럼,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한 가운데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로 타락한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의 삶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정직원으로 남으려면 결혼과 출산을 최대한 미루거나 포기해야 하며, 남성의 눈으로 모든 잣대가 형성되고,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 가능성이 갈수고 높아지니 페미니즘 운동이 가열차게 일어나는 것은 생존본능에 다름아니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김자연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를 말한 것은 그녀의 성정체성을 밝힌 것일 수도 있고,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나 신데렐라 컴플렉스처럼 여성의 삶과 성공, 행복이 남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잘못된 통념이 끝없이 재생산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표현일 수도 있다. 모든 여성이 'Girls Do Not Need A PRINCE'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문구가 남성과 여성의 극한 대립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존중돼야 한다. 



분명히 하자,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세상에서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지 남성을 혐오하고자 함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 극단적으로 흐르면 문제가 있지만, 메갈리아4가 연관됐다는 이유로 '김자연 성우 교체 논란'에 극단성을 덧씌우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폭력이다. 더구나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으로 이용한다면 나치와 다를 것이 없는 대단히 반인류적 행태다. 김자연이 해명글을 올렸다고 해도 넥슨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필자의 바람이 있다면, 메갈리아4 회원들이 극단적인 단어 사용에 신중했으면 좋겠고, 부분적 사례로 일반화를 시도하는 논리의 도약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떤 종류의 차별도 없었으면 한다. 여기에 한가지 바람을 더하자면, 세계적인 페미니스트였던 나오미 클라인이 신자유주의 저격수로 변신한 이유를 알 수 있는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서는 《No Logo》-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그럴 때만이 페미니즘 운동이 주류남성의 거대한 벽을 넘어설 수 있으며, 보다 많은 동반자들을 확보할 수 있다. 일베로 대표되는 벌레보다 못한 놈들이나 짐승 같은 자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웹툰작가들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공통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면 잘못된 것에도 신성을 덧씌우는 경향이 생긴다. 세상이 온통 남성중심적이니 미칠 만큼 힘든 것은 알지만,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없음도 고민했으면 한다.     




P.S. 메갈리아4가 과격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살라 로보섬의 《아름다운 외출》이나 타니아 모들스키의 《여성없는 페미니즘》이라도 읽어 보라. 메갈리아4가 결코 급진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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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ㅎ 2016.07.27 00:05 신고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285275&page=1

    이제 메갈과 엮였던 정의당은 개박살난 것 같네요.

    • 늙은도령 2016.07.27 00:23 신고

      엄청나게 실망했습니다.
      정의당이란 이름을 내려놓아야 할 판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7.27 08:01 신고

    이런게 잇었군요'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는데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7 15:51 신고

      대단히 복잡합니다.
      많은 시간을 내야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필요한데, 그것을 불편해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3. ㄴㄴ 2016.07.27 12:45 신고

    다른 곳에 퍼가도 되겠죠?

  4. 맹그로브 2016.07.27 13:11 신고

    사실 저도 오늘 아침에야 메갈리아 라는 것에 대해서 나무 위키를 통해 어슴프레하게 알게되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남성 혐오가 아닌 여권의 신장이란 측면이 확실히 더 긍정적으로 와 닿네요. 트위터에서 강냠역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그것이 여혐으로 비추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표현 하니 여기저기서 흥분한 여성들이 욕을 해대더군요. 그냥 함량미달의 욕도 있었고, 나름 논리적인 분도 결국은 감정으로 치닫아 결국은 한 몇 일동안 계속 block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ㅋㅋ 토론이라는 것이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잣대를 지켜가면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요즘은 거의 그런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더군요. 나중에는 우기고, 결국 감정적으로 치달아서 ... ㅋㅋㅋ 이야기하기 싫어지네요.. ^^;;

    여성도 남성도 자신이 존중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말에 진정한 힘이 실리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낮추면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존중이라는 것이 단순한 자존심과 이기심의 발로가 되서는 안되겠지만요.

    • 늙은도령 2016.07.27 15:54 신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강경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메갈리아4가 그러합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아주 조금만 정제된 단어를 쓰면 더욱 효과적일 텐데, 그것이 아쉽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승화시킬 수 있다면 더 큰 위력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로 필요한 나라입니다.

  5. 참교육 2016.07.27 13:43 신고

    정의당이 왜 이런 민감한 문제에 좀 더 신중하지 못했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7 16:03 신고

      정의당 전체 의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지만, 제가 경험한 것 중에 정의당의 직원들이나 당직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고답적인 행태가 많습니다.
      진보가 망할 때는 엘리트화 될 때입니다.
      당원과 지지자에서 멀어지는 것이지요.
      진보당이 그렇지 않은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6. 휴우 2016.07.27 16:51 신고

    근대 이후로 반복되는 패턴.
    자유주의자들이 독재를 몰아내고 인권을 향상시키면 자유 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결코 전체를 위하지 않고 특정한 집단만을 선동 하고 사회 내에 내전을 조장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챙긴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후 . 혁명을 주도하면서 거액을 모은 이들이 돌아온 왕에게도 복고를 주도한 공으로 엄청난 토지와 연금을 받아챙기는 것을 본 후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 자체가 저들의 사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음

    심지어 혁명의 성과라는 것들도 이미 루이 16세가 시작하거나 정착시킨 것을 밝혀내고는 혁명이 선동가들의 손에 놀아난 것을 깨닫게 됨

    지금 대한민국 페미니즘도 선동가와 조직들이 급진회중. 이 열풍이 지나간 후에 피를 토할 여성들이 많을 것.

    • 휴우 2016.07.27 16:57 신고

      메갈 내부에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공주라는 비아냥을 듣는 위선적인 이들이 있으며 이들은 여성 인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않은 인물들

      이들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여성 인권과 그에 대한 인식이 저하된다고......

    • 늙은도령 2016.07.27 17:04 신고

      혁명이 문제가 아니라 혁명을 일으킨 자들이 제3자적 위치에서 우리가 너희의 뜻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것이 문제였지요.
      혁명이 추구한 것은 인간의 권리와 평등한 자유, 공존과 상생의 삶을 추구하는 박애 등이었기 때문에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이고, 그들의 숭고한 목적과는 달리 기득권의 힘이 너무 강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프랑스혁명이 없었다면 현재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도 정립되지 못했겠지요.

      페미니즘도 선동가와 조직들이 급진화 중이라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네요.
      페미니즘 자체가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남성중심적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혁명이기에 당연히 급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남성중심적인데 어떻게 말랑말랑한 저항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겠습니까?

      여성들이 피를 토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도 난자와 정자은행을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왜 전통의 섹스에 구속돼야 하지요?
      미래는 여성적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사회입니다.
      피를 토할 것은 남성입니다.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 휴우 2016.07.27 17:24 신고

      닭고기든 소고기든 불에 넣으면 같은 잿더미일문

      목적이 무엇이든 극렬한 방법은 똑같은 결과만 냄

      남성 살해 사회적 추방 번식 탈락을 여성 인권을 위한 수단으로 하면서 설마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은 필요한 것이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음 투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용당한 사람들의 후회만 남을 뿐

    • 늙은도령 2016.07.27 17:32 신고

      왜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지요?
      제가 만나본 수많은 10대 소녀들도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데.
      닭고기와 소고기를 불에 넣으면 다 잿더미일 뿐이라면 인간도 똑같지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용한 자도, 이용당한 자도 똑같지요.
      논리적으로 님의 주장은 허점투성이입니다.
      실질적으로도 제3의 관점에서 남성우월적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누가 이용당하는지, 이용당했다면 어떤 것인지,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런 것들을 분명히 얘기할 수 있어야 님의 논리가 그나마 설득력을 가집니다.
      비판과 비난, 약간 비튼 양비론은 다릅니다.
      여성들이 이용당할 만큼 어리석다고 보는 것도 문제고요.

    • 휴우 2016.07.27 17:36 신고

      살해 추방 노예화가 선택가능한 말랑하지 않은 수단이라고 여긴다면 집권 전의 나치들과 달르게 없음 사람들도 나치들이 말로만 그러거나 조금 탄압하는 정도로만 알았음

    • 휴우 2016.07.27 17:56 신고

      우크라이나와 방데에서 죽어간 백성들이 고귀한 목적을 위해 타의에 의해 죽었으니 괜찮다고 여긴다면 뭐 할말은 없음 삭제하라면 그냥 삭제함

    • 휴우 2016.07.27 18:04 신고

      갑갑해서 하나 더 적자면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던 오웬은 자기 구상을 하나씩 실험해본 후에 적용 가능한 것을 남겨서 현실 사회주의와 노동당을 기능케 했음

      폭력없는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오히려 폭력이 과학적이라고 떠들던 막스는 자기 이론을 단 한번도 성공시킨 적이 없음 막그야말로 공상가였음

    • 늙은도령 2016.07.27 18:18 신고

      마르크스가 공상가였음에는 동의하지만 추상화라는 과학적 방식이 가지는 한계도 고려해야지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특이점에 이르면 마르크스의 공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사회주의자인 오웬도 초기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좀더 큰 조직에서는 실패했습니다.
      마르크스보다는 폴라니에 찬성하는 필자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두 사람을 통합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펼친 적은 없었고요.
      레닌부터 현실에서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적용될 수 없다며 수정주의로 나갔고, 그밖의 모든 혁명가들도 마르크스 이론을 곧이곧대로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추상화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공학적 사고가 필요하고 그래서 수정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모두 다 살펴봐야 마르크스를 비판할 수 있지요.
      또한 그 당시에는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이 절대적 진리였기 때문에 마르크스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지요.
      헤겔의 변증법도 마찬가지고요.
      이 모든 것을 고려한 다음에 마르크스 비판이 나온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님처럼 말하면 아예 토론 자체가 불가능해지지요.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수많은 것들도 현실에 옮기려면 어마어마한 공학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추상화한 이론이란 그런 것입니다.

  7. 휴우 2016.07.27 18:37 신고

    기술적 특이점이란 말은 근래 조어지만 이런 개념은 서구 문명에서 여러번 반복된 것임

    처음에는 발달하던 연금술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골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다음에는 감는 태엽으로 계산기와 온갖 것을 만들다가 인간과 똑같은 태엽 기계를 만들어서 모든 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고 했고

    18세기 이후로는 영구 동력 기관을 만들어서 인간이 손대지 않고도 저절로 일하는 기계들을 만든다고 주장하였음

    실제로 대단히 재미있고, 과거 기술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놀라우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투입 자원 보다 산출 자원이 적었음

    지금 돌아서 보면 모두 미친 소리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지식인들조차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가능할 것으로 보았음

    커즈와일이나 엔지니어들은 또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음

    사실 저런 기술 혁명기마다 기술자들이 자신이 믿든 믿지 않든 엄청난 주장을 하면서 큰 자본을 끌어들여 일을 벌였음

    저런 기술 허풍과 그에 편승한 자본 시장의 버블로 인해 인생날리고 온갖 깡통차는 사람들이 가득했음


    특이점주의는 열역학 2법칙을 뛰어넘는 기술이 나와야지만 가능하다고 봄

    • 늙은도령 2016.07.27 19:41 신고

      기술적 특이점에도 몇 단계가 있지요.
      지금은 마지막 단계를 말합니다.

  8. 휴우 2016.07.27 18:54 신고

    어차피 정의당 비롯한 진보류들은 이번 기회에 정말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음

    정말로 유시민같은 한줌도 안되는 자유주의자들 외에는 믿을만한 정치세력이 전무함

    페미니즘 세력이라고 민주적이거나 인권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해줘서 사실 감사함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살해, 차별을 조장하는 것을 보고 왜 해외에서 페미나치라는 말을 만들었는지 알았음

    • 늙은도령 2016.07.27 19:43 신고

      페미니즘을 악용한 자들이 문제이지 여성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을 폄하해서는 안되지요.
      민주주의는 평등에 기초하지 자유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평등이 없는 자유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나치는 메갈리아4의 일부가 그렇지 전체는 아닙니다.

    • 휴우 2016.07.27 19:56 신고

      여성 권리 폄하같은 것 한 적도 없음

      늙은도령님이 뭔가 오해하는듯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지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수단이 아님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민주주의는 북한에도 있음.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약간 양보하자는 것은 여우가 주는 지렁이에 깃털 뽑아주는 매와 같은 짓임

      자유에 근거하지 않은 평등이야말로 허상임. 평등하지만 자유롭지 않다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평등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투표를 강제할 권력도 구조적으로 발행함.

      페미나치가 메갈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수뇌부임. 사실 일부도 아니고 아닌 이들이 일부지만.

    • 늙은도령 2016.07.27 20:04 신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네요.
      자유에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있습니다.
      북한에도 있는 자유란 소극적 자유입니다.
      민주주의는 적극적 자유, 다시 말해 법과 제도, 여론 등에 의해 생기는 자유를 말합니다.
      자유주의라고 해도 어떤 자유주의에 따라 그것이 자유방임에서 소극적 자유까지 여러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자유주의가 세상을 개판으로 만든 것도 상당하고요.
      신자유주의도 자유주의가 통치술로 변동되며 나온 것입니다.
      조금 더 학문적으로 말하면 로크가 주장한 자유방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인데, 정부는 시장을 중심으로 경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

      저도 페미니즘과 페미나치와 분명히 구별했습니다.
      극단적인 것은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가 님의 댓글에 반론을 제기한 것은 님은 일부의 진리를 보편적 진리인양 말하는 것에 관해서입니다.

    • 휴우 2016.07.27 20:24 신고

      일부러 곡해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라고 믿겠음. 법, 제도, 여론에 의해 생기는 것은 권력이지 자유가 아님.

      적극적 자유라고 써놓은 것은 권력임. 그것은 자유가 아님.

      국가가 나서서 자유를 증진시켜야한다는 식인데 권력으로는 자유를 증진시킬 수 없음. 이것은 마치 유교의 성인론처럼 성인이 성인에게 선양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환상적인 주장일뿐임

      이것은 권력으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임.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여 자유를 제한하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파괴됨. 사실상 민주주의 파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음

      자유주의가 아니면 민주주의는 성립조차 하지 않음.

    • 늙은도령 2016.07.27 20:35 신고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에 대해 책을 사 보시던지, 검색을 해 보시던지 하십시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공교육과 적정한 보건의료를 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남녀평등, 차별금지 등이 적극적 자유의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자유주의는 소극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소극적 자유 뿐만 아니라 적극적 자유까지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절대는 아닙니다.
      자유는 내 주먹을 휘두를 때 그 범위 안에 타인의 얼굴이 있으면 제한되는 것입니다.
      님이 말하는 자유는 자유방임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 휴우 2016.07.27 20:44 신고

      휴. 그걸 몰라서 그러는게 아님

      공산주의는 노동자들 보호를 위한다며 권력을 잡았지만 결과는 죽음이었음

      늙은도령님이 원하는 적극적 자유는 자본가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는 자유임. 자본가들이 원하지 않는데 그게 법, 제도, 여론에 의해서 형성되면 권력임.

      척 피니는 놀라운 자본가이지만 모든 자본가들에게 척피니가 되라고 강요하는 순간 독재를 보게될 것.

      대한민국에서 이런 자본가가 등장하여 사실상 대한민국의 부의 대부분을 가지고 자유로서 정책을 행사한다면 모르되 정부 권력으로 강제한다면 민주주의도 파괴됨.

    • 늙은도령 2016.07.27 22:06 신고

      참으로 답답하네.
      당신이 말한 자유가 강자를 위한 자유라고요.
      적극적 자유는 강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 인류가 투쟁을 거쳐 획득한 것입니다.
      자유가 소극적인 것에 한정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강자가 승리해요.
      그것이 다윈의 진화론을 곡해한 허버트 스펜스의 사회진화론이고요.

      또 공산주의(예수의 초기공동체가 공산주의의 전형)는 단 한 번도 이 세상에서 시행된 적이 없어요.
      공산주의를 내세운 모든 국가 중에서 공산주의를 실천한 국가는 없어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좌파 전체주의지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사회주의국가가 무너진 것은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한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국가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적극적 자유라는 것이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도 완전히 틀렸습니다.
      독재에 대해 정치신학적으로 정치공법적으로 완성한 사람이 칼 슈미트인데 그의 책들을 보면(아감벤의 책들을 봐도 되고, 신좌파의 책들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독재라는 것은 소극적 자유만 허락하고 적극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국법이 정지한 예외상태라 하는데 당신이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당신은 개념의 수준에서 온통 오류로 가득합니다.
      개념부터 제대로 이해하세요.
      그런 다음에 댓글이나 답글을 달던지 하십시오.

  9. 휴우 2016.07.27 19:02 신고

    사람 모으는 블로그에서

    주인장과 반대되는 주장하는게 영업 방해같아서 잘 안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뒤통수쳐줘서 이성을 잃었음

    사실 사회에 저런 애들 나이 불문하고 많이 있는 것 알고는 있음

    페미니즘 뿐만 아니고 온갖 사회적 의제를 우상처럼 받들면서 그걸 대의명분으로 걸어놓고 장사함

    하지만 속내 찾아보면 결국 자리와 돈임

    물론 처음에는 그들도 꽤 순수한 구석이 있었음

    하지만 목적을 위해 자리와 돈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면 결국 목적은 잊혀지고 수단이 목적이 될뿐

    심지어 강용석 같은 인물도 10여년 전에는 경제민주화를 믿고 박원순과 함께할 정도였음

    하지만 박원순이 얼마나 음흉한 인간인지 모든 일이 끝난 후에야 알아차렸을 정도니 말 다한 것

  10. 휴우 2016.07.27 19:38 신고

    문맥을 보면 주인장은 진보를 위한 투자가 어마어마해도 감수해야한다는건데

    누구 목숨을 투자가능한 자원으로 삼는지 좀 궁금함.

    사람들한테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면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분배하면 기술 발전을 위해 쓸 자원은 없음

    기술 발전을 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면 그 자원만큼 후진국에서부터 사람들이 죽어나감

    물론 선진국이라고 안죽는 것은 아님

    프랑스 혁명가들은 왕당파의 재산과 목숨

    나치는 유대인의 재산과 목숨

    공산주의자는 자본가의 재산과 목숨

    자유무역주의자들은 아일랜드인의 재산과 목숨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족 혁명가들은 식민 부역 세력들의 재산과 목숨

    특이점주의는 사회공학이 아닌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을 주장하지만 자원을 동원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음

    자원을 동원하면 그만큼 어디선가 벌충해야와야함

    미국은 과거 보다 좀 세련된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덜 죽는다거나 덜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아셔야함. 오히려 지역적으로 제한되었던 과거 혁명의 폐해에 비해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특이점주의 혁명은 점진적이면서도 그 피해가 전 지구적일 것이므로 지구 상에서 피할 사람이 없을 것.

    늙은도령님이 공감한다는 그 사회적 약자들

    바로 그 분들부터 죽어나가는 것

    • 늙은도령 2016.07.27 19:46 신고

      기술 발전이 결과가 무엇인지 지금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특이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시죠.
      철학, 윤리,도덕, 사회과학, 인문학, 심리학 등등 관계되지 않는 분야가 없으니까요.
      현재의 불평등은 기술 발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디 제대로 세상을 보시죠.

  11. 휴우 2016.07.27 19:59 신고

    기술 발전의 결과말고 과정 말하는 것.

    과정 중에 사람들이 죽음.

    그러니까 주인장은 이 사람들의 목숨은 기술 발전을 위해 죽어도 되는거라고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임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킬 방법이라도 있어서 결과를 자꾸 논하는 것인지?

    왜 외면하시는지?

    • 늙은도령 2016.07.27 20:05 신고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을 옹호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해 해로운 기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했지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나노공학, 생명공학 등이 마지막 특이점을 넘으면 인류는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주장인데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12. 휴우 2016.07.27 20:37 신고

    기술발전으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해방되어 남성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뭐인지? 옹호한 적 없다고 하시려면 바로 위에 단 댓글은 무엇이신지... 날은 덥고 짜증은 늘어남. 특이점주의를 비판하니 특이점주의를 더 공부하라니 이게 무슨 순환논리인지.

    • 늙은도령 2016.07.27 22:09 신고

      당신이 기술 발전의 중간에 사람들이 죽는다며 특이점을 언급했잖아요.
      자신이 쓴 댓글도 기억 못해요?
      잘 모르면 배워요.
      개념 차원에서 온통 오류로 가득한 댓글이나 답글에 답한 것은 그래도 당신을 존중해서인데, 더는 못하겠네요.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후에 다시 오십시오.

  13. ㅎㅎㅎ 2016.07.27 21:52 신고

    잠시 끼어들자면 기술 발전은 평등을 오히려 가속화시켰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자체를 날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7 22:13 신고

      기술 발전이 평등을 오히려 가속화시켰다고요?
      다른 것은 다 그냥 두러라도 <21세기 자본>이라도 읽어봐요.
      기술 발전은 불평등을 늘리는 방향으로만 작용했어요.
      기술 발전의 불평등을 정치의 힘으로 막는 것이 인류의 역사였고요.
      이건희나 이재용이 그렇게 큰 돈을 갖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도 기술 발전을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기술이 평등을 늘린 것 같나요?
      그것 때문에 극단의 불평등이 생겼습니다.
      양과 음을 같이 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을 국가가 국민을 위해 쓴 보건이나 의료보험 등 때문에 그나마 최소한의 평등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 발전의 결과가 기업과 슈퍼리치로 넘어간 이래 불평등은 인류가 공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습니다.

  14. 자유 2016.07.31 02:04 신고

    운동권에서 부르는 노래 가사중에~ 민주주의여 만세~하는 노래가 있던데 그걸 자유주의여 만세~라고 부르면 좀 웃긴듯...
    위에 휴우님의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대해 이야기하는거에대해 든 생각입니다만


    • 늙은도령 2016.07.31 02:23 신고

      자유에 대한 개념이 엉터리입니다.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요.
      검색 수준의 지식으로 너무 큰 문제를 얘기하려 하니 온갖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저론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회자되는 자유는 강자의 자유며, 소극적인 자유로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불과합니다.
      정치적 개념이 너무 부족하니 민주주의가 돌아갈 수 없는 것이고요.

  15. BOW 2016.08.02 21:38 신고

    뒤늦게 보는데 느끼는 거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한반도에는 진짜패미니즘이 설수 없다는것입니다.그저 간판만 내세운 사이비만 있을 뿐...(클로저스 사태,강남역)

    • 늙은도령 2016.08.02 22:47 신고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습니다.
      민주화운동에 페미니즘이 묻혔죠.

      메갈리아4는 그런 배경 하에 생겼다고 봅니다.
      인터넷의 속성 상 거친 단어들이 동원되고 강렬한 적의가 표출됐지만 그것은 그 동안의 피해에 대한 당연한 반발입니다.
      그 정도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남자들이 죽일 놈들이 됩니다.
      수천년을 남성 위주로 살았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이르러서는 여성이 노예로 전락했는데 이 정도의 반발이 꼴보기 싫다고 집단매도하는 것을 어이가 없습니다.
      이러니 한국남자들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존중이란 쥐꼬리만큼도 없이 비판만 하는 모습에서 어떤 여성이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16. BOW 2016.08.03 15:31 신고

    덤으로 보충하고자 이주소를 링크해봅니다.
    http://blog.naver.com/highkyo/220778494163
    https://namu.wiki/w/%EB%A9%94%EA%B0%88%EB%A6%AC%EC%95%844

    PS:게다가 김자연씨의 성우교체는 유저들이 요청으로 교체된것뿐입니다.
    그나저나 요즘 넥슨의 행태가 별로 맘에 않들긴합니다.(클로저스를 배제하더라도...)
    PS2:이번 메갈사건으로 인해 진보계쪽 완전 몰락해버렸습니다.
    /%ED%81%B4%EB%A1%9C%EC%A0%80%EC%8A%A4%20%ED%8B%B0%EB%82%98%20%EC%84%B1%EC%9A%B0%20%EA%B5%90%EC%B2%B4%20%EB%85%BC%EB%9E%80
    https://namu.wiki/w/%ED%81%B4%EB%A1%9C%EC%A0%80%EC%8A%A4%20%ED%8B%B0%EB%82%98%20%EC%84%B1%EC%9A%B0%20%EA%B5%90%EC%B2%B4%20%EB%85%BC%EB%9E%80/%EA%B0%81%EA%B3%84%20%EB%B0%98%EC%9D%91#toc

    • 늙은도령 2016.08.03 15:37 신고

      진보계가 완전 몰락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메갈리아4 사태는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
      찌질한 남성들의 정체가 폭로되는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여성이 조금만 목소리를 내면 금방 찍어누르는 아주 못된 버릇이 본격적인 토론의 대상이 된 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입니다.
      다음을 기대하십시오.

  17. BOW 2016.08.03 15:43 신고

    일단올립니다.

  18. 몽테를랑 2016.10.22 19:53 신고

    그래서 전태일과 안중근 얼굴을 사용해서 능욕을 벌이고
    이제 다시 순직한 경찰관 모욕하면서 낄낄 거리는 족속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거기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찌질한 짓거리인가요?

    한가지 더
    이 혐오스러운 발언중에 이백충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돈 못버는 남자들은 등X이라는 이야기 이고
    이를 페미니즘 투쟁에서 적극적인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 분노하는 것 역시 찌질한 짓인가요?

    물론
    지금껏 여성이 당해온 역사가 있으니 어느 정도의 반동은 필요하다라고 보시는 모양인 모양인데
    그 반동의 이면에는
    지극히 비열한 정서가 담겨저 있다는 것 쯤은 짚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덕분에 빻은 한남들은 더더욱 진보=메갈 이라는 생각이 더 깊어지게 되고
    성별간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겠지요..(뭐 태초 이래로 서로 분열하고 싸우게 숙명지어진 운명이긴 합니다만)

    다만
    이 더러운 메갈/워마드의 언어들이 보수의 손에서 더욱 악랄하게 다듬어져 내년에 그들의 주요무기가 된다고 할때
    그때도 안중근 전태일 얼굴에 낙서 한것이 무슨 잘 못이냐고 악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10.22 19:57 신고

      여성 중에도 또라이는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 쓰지 않았어요.
      일베와 동일한 여성들도 있는데 그들 때문에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찌질한 짓 그만 합시다.
      그런 여성들 때려눕혀 뭘 그리 얻을 것이 많다고.....

  19. 몽테를랑 2016.10.25 20:29 신고

    굳이 메4와 워마드 이야기 하지않아도 이미 듣지않으실테니 더 이야기는 않하렵니다.
    하기야
    죽은 노무현이나 전태일이 살아있었다면 메갈이었을 것이라는
    '늙은 운동가'들이 수두룩하니..
    이야기 해봐야 뭐 하겠습니까.
    정의당이 어떤 꼴이 됐는지 다시 복기하고 싶지도 않으시겠지요.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 늙은도령 2016.10.25 21:01 신고

      여성들에게도 또라이는 있는 법입니다.
      욕할 것이면 그들을 하세요.
      전체를 매도하지 말고.



결국 법을 앞세운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허울뿐인 개념과 함께, 우월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찍어누르는 전가의 보도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개념화한 '일반의지'는 법으로 구체화된다. 인민이 만들고 지켜야 하는 법에는 모두가 동의한 일반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최고 주권의 통치자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법 앞의 평등'이다. 누구도 상대적 약자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불리하지 않으며 동등한 변호를 보장받는다. 지금처럼 우월적 강자는 거대 로펌의 변호를 받고, 상대적 약자는 국선변호사나 무료변호를 받는 실질적인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국가에서는 절대명제로 어떤 의문도 허용되지 않는 '법 앞의 평등'은 부와 지위, 인맥 같은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불평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루소의 일반의지를 반영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지고, 이익의 충돌이 첨예해졌으며, 통치자이자 피통치자인 인민이 국가주권(최고주권)에 복종해야 하는 의미의 국민으로 격하된 이래, 법의 제정을 소수의 국회의원과 전문가, 행정부에 넘어간 이후에는 법의 정립, 집행, 적용에서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법 앞의 평등'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렇게 생긴 야만의 빈공간에 우월적 강자들이 전유물로 변질된 '법대로'가 자리잡았다.



리쌍의 '법대로'도 이런 배경 하에 바라봐야 한다. 리쌍의 옹호자들은 강제집행이 '법대로'로 진행됐기 때문에 '합법적이기에 압도적인 폭력을 동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서윤수 씨가 우장창장을 개업하기 위해 들인 자금(현재 2억5,000만원)을 빌미로 리쌍의 '법대로'를 옹호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우월적 강자가 법(임차대보호법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을 앞세워 상대적 약자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내몰아도 괜찮은 기준이 2억5,000만원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일반의지가 담겨있는 법(사회계약)이 어떤 불평등도 인정하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서 우월적 강자의 무기이자 보호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허울뿐인 개념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드의 성주 배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간에 체결한 법률인 '소파 규정의 불평등'을 파고든 것인데, 리쌍의 '법대로'와 법논리 상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홍만표를 동원한 정운호 게이트와 진경준 검사장의 축재에서 보듯,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검사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법대로'에서 나온다. 검찰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한 기소권 독점도 법에 근거한다. 극소수의 슈퍼리치와 거대 투기자본이 주권국가와 싸울 수 있는 것도 '법대로'를 극대화한 것에서 나온다.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법은 99.99% 우월적 강자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싸이(강제집행을 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에 이어 리쌍까지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대로'만 외치며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우월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지옥으로 내모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아 먹먹하기만 하다. 물적 탐욕에는 만족이란 없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가지려 하는 것이 물적 탐욕이다. 리쌍은 시청자와 팬들의 사랑으로 벌어들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 땅의 약자들은 촛불만 들 수 있지만, 강자들은 '법대로'를 앞세워 경찰, 용역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 어디에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상생과 공존, 공감과 상식이란 없고, 그래서 사람사는 세상이란 아득한 꿈이 되버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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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7.19 08:27 신고

    가진자의 횡포입니다
    가진것들이 더 가지려 기를 씁니다...

    죽으면 빈손인것을..

    • 늙은도령 2016.07.19 15:18 신고

      특히 연예인은 인기로 큰 돈을 만지는 사람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능력 대비 엄청난 대가를 받는 것이니까요.
      리쌍이나 싸이, 둘 다 가진 능력에 비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2. 맹그로브 2016.07.19 10:08 신고

    매스 미디어가 발달하고 먹고 살만해 지면서 연예인들의 지위가 급속도로 격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소위 "딴따라"로 불리며 손가락질 받던 직업군입니다. 직업의 귀천을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본질은 이 시대의 교육의 부재와 급속도의 미디어의 후광을 얻으며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된 딴따라 일 뿐입니다. 거기에 철학과 공익과 공인으로서의 터무니 없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일반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이름 모를 예인들과는 상당한 거리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박유천을 비롯하여 심심치 않게 그들의 사생활이 까발려 지고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웃긴 것은 그런 것을 보고도 우리 아이들은 테레비 앞에서 그들의 흉내를 내고,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정신줄 놔버린 다는 것이죠. 저는 이것도 일종의 쇄뇌라고 봅니다. 궁민을 개, 돼지로 만드는 쇄뇌.

    • 늙은도령 2016.07.19 15:20 신고

      네, 우리나라는 너무 망가졌습니다.
      청소년들이 평등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으로 승부할 수 있는 연예인에 많이 도전합니다.
      불평등이 만든 왜곡된 현상이지요.
      그것이 연예인들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올려놓았고 그 부작용들이 속출하는 것이지요.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모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킵니다.
      근본적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3. 참교육 2016.07.19 11:55 신고

    마르크스가 그랬지요? 법이란 '계급 지배의 한 양식'이라고...
    헌법이니 민법 상법..어쩌고 하는 법이 버젓이 있지만 그 법이 진정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두환노태우의 재판에서 '성공한 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문을 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사법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꿈을 깨지 못하는한 민주주의란 민중과는 거리가 먼 법전일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19 15:23 신고

      법의 지배가 갖는 허상을 마르크스는 정확히 꿰둟었죠.
      우리가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만이 판단이 정확해지기 때문입니다.

    • 2016.08.08 04:09 신고

      잘 모르시나본데, 1996년 전두환 노태우에게 반란죄·내란죄 유죄 선고가 되면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 가능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8 06:11 신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현 새누리당 3선 의원이 검사 시절에 박정희의 쿠데타를 고발한 것을 기각하면서 한 말이지, 법정까지 가지도 못했습니다.

  4. ㅓㅓ 2016.11.06 09:36 신고

    리쌍이 우월적 강자라고 믿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오히려 피해자같던데요. 건물주는 무조건 악인가요?



저에게는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지닌 충격이 너무나 커서 몇 개월 째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뇌 역분석 등에서 헤매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강남역 살인사건'과 그에 대해 수많은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개별사건으로 축소시키는 한국 정부와 사회의 비정상적이고 비열한 행태에 극도로 분노하고 절망했었습니다. 여기에 '구의역 참사'까지 더하면 이땅의 체제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며 반인륜적인지 알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토론이 원천봉쇄되는 것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의 반이 여성임에도, 그들(특히 대한민국의 미래인 1020세대)이 공유하는 참담함과 문제의식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주류사회의 행태는 상대적 약자를 향한 극단의 혐오를 불러일으킴에도 이에 대해 침묵하고 특권의 원천인 현재의 체제(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에 전복적 혁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존과 상생의 지혜, 상대에 대한 배려, 인간에 대한 예의, 보편적인 양심과 정의 등이 모조리 사라진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란 단어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이 대통령인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데이트폭력이 늘어나고, 일베 현상으로 대변되는 폭력적인 여성혐오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불공정한 경쟁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들을 잉여를 넘어 쓰레기로 치부하는 반인륜적 행태가 만연함에도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시장경제(사적 독점)만 외쳐되는 특권층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이 헬조선인 것은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없을 듯합니다.     



승자독식을 허용하는 무한경쟁은 경기장에 참여하지도 못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경쟁에서 패한 자들까지 상대적 약자를 찾아 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아예 경쟁에서 배제된 자거나 경쟁의 패자로써 승자의 동질감에 묻어가려면(평균수명이 늘어났음에도 패자부활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악착같이 승자와 동일시하려 한다) 상대적 약자에게 가혹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승자의 체제와 맞설 용기가 없기 때문에 패배에서 오는 분노를 해소시킬 대상으로서의 희생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테이트폭력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노골적인 혐오범죄와 언어 폭력 등이 급증한 것에서 이런 희생양 찾기는 남녀 간의 극단적 대립과 신뢰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체제인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폭력과 범죄에 해당할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모토는 강자(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만듭니다.





컴퓨터(인공지능 알고리즘)로 집약되는 각종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극소수의 인간만 필요할 뿐이어서 극단의 불평등(1대 99사회는 장난에 불과할 정도)을 초래할 것이고, 갈수록 늘어나는 99.99…9%의 패자와 탈락자들은 더 많은 희생양을 찾아 폭력과 범죄를 남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발전이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달콤한 꿈은 정반대의 결과만 양산해왔고, 인간의 일을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와 로봇(나노봇)이 대체하는 지점에 이르면 인류 멸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인간중심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특이점을 넘은 기술 발전에 따라 인류의 각성과 성찰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류는 정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낙관론자나 긍정론자의 논리에 고개를 끄떡일 어떤 경험적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1020세대에게는 일상이 된 '팬픽(2차 창작)' 신드롬처럼, 최근에 들어 동성애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의 역습과 무한경쟁을 장려하는 신자유주의가 시너지효과를 이룬 결과 중 하나입니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으며,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남성과 사귈 바에야 위험부담이 거의 없는 동성들과 서로를 이해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인 대안이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탈출구 중 하나입니다. N포세대라는 말처럼 포기하는 것을 수없이 늘리기보다는 그들 나름의 생존법에 적응하는 것이 동성애의 확장(또는 열린 접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경력 단절과 육아 등도 중요한 상수로 작용합니다. 



멋지고 예쁜 남성과 아름다우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은 아이돌과 스포츠 선수들에게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현실의 남자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습니다. 1020세대의 남자들도 할 말이 있겠지만, 승자의 체제에 맞서지 않은 채 상대적 약자(여성, 장애인, 노약자 등)를 향해 폭력을 자행하는 한, 어떤 변명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장 파렴치한 범죄이자 자신이 짐승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최악인 것은 이처럼 국가나 체제, 사회가 몰락하는 말기적 징후들을 부추기는 자들이 대통령을 비롯해 이땅의 주류지배층이라는 점에서 절망적입니다.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남성들에 의한 여성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에 철저하게 침묵하고 외면하는 박근혜의 행태는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부터 법원의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솜사탕 처벌, 지상파3사의 막장드라마, 종편의 폭력방송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결과만 강화시킵니다. 





인류의 반이 여성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핵심은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표출했던 피해의식과 자발적 추모와 집단적 분노입니다. 남녀평등이나 인권 증진, 취업율 등과 상관없이 국민의 반인 여성들 중 상당수가, 특히 한국의 미래인 1020세대일수록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와 여성 상대 폭력과 범죄를 보았다면, 그것에 관해 국가 차원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그런 의식을 공유하게 됐는지,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조현병 환자에 의한 우발적 살인으로 결론 지어버린 것은 대다수 여성에게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린 전쟁터이자 지옥에 불과합니다. 강남역에서 죽은 여성은 내 어머니며, 누이며, 동생이며, 아내이며, 연인이며, 친구이자 동시대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동반자입니다.



세월호참사나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모든 사건과 참사를 줄일 수 있겠지만,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참사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고 대비책을 세워서 충분하게 변화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물며 참사와 사건의 피해자가 청소년이고 여성이라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상시적인 위험에 놓출 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면, 이땅의 여성들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명박근혜 8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은 그 이상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고, 망가졌습니다. 이명박근혜와 새누리당에 표를 주신 분들, 현재의 대한민국에 만족하십니까? 당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남성중심적 폭력과 차별,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이라면 대단히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극우주의자나 종편, 국정원, 정치검찰, 어버이연합, 일베충들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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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耽讀 2016.06.23 07:49 신고

    여성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도 비슷한 위치입니다. 구의역 김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주류기득권들은 자신들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은 해충에 불과하죠.
    물론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조금 낫겠지만.

    • 늙은도령 2016.06.23 14:59 신고

      외국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국이 얼마나 많은 욕을 먹고 있는지 안다면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 대한민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최악입니다.
      이런 형편없는 나라가 된 것은 여전히 박정희 신화에 갇혀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표를 주는 분들의 책임입니다.
      물론 언론이 가장 나쁜 놈들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6.23 08:01 신고

    이명박근혜에게 표를 준 사람들은 지금이 예전보다 살기
    좋아졋다고 믿고 있을것입니다
    가진자들이 많대부분이며 또 예전 헐벗고 굶주림을 겪어봤던 세대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눈쌀이 지푸려지고 토가 나올정도로 극단적인 미치광이 (일베충)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약자들을 무시하는 그들의 시선이 고와지지 않는 이상 영원한 평행선을
    달릴것입니다..
    결론은 약자들의 힘을 보여주는수 밖에 없습니다..선거로

    • 늙은도령 2016.06.23 15:02 신고

      제발 정신차리고 세상을 제대로 봤으면 합니다.
      향후 이루어질 인공지능과 로봇들의 침공이 궤도에 오르면 거의 모든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감정이니, 남녀차별이니, 산업화의 기적이니 하는 것은 나머지 국민마저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자신만 죽으면 이해하겠지만 남들까지 함께 죽자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 우주미아 2016.06.24 13:18 신고

      전기 신자유주의(남성우월주의)의 종착점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가 아마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음의 시대로 접어든 상황이고 그와 더불어 개봉된 영화이기도... 이 작품만큼 전기 신자유주의를 잘 풍자한 영화가 없을 정도입니다

    • 늙은도령 2016.06.24 17:59 신고

      여성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신자유주의적 폐해에서 벗어날 때만이 인류는 그나마 희망적 단서를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습니다.

  3. 쌈둥아빠 2016.06.23 09:36 신고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4. 솔의눈 2016.06.23 12:01 신고

    강남역 추모를 주도한 단체 '메갈리아' 를 한번만 검색해보고 글을 쓰시지요

    • 늙은도령 2016.06.23 15:08 신고

      저는 그런 극단적인 사이트는 관심없습니다.
      이번 글은 수많은 1020세대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고, 신자유주의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의 현 상황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 쓴 글입니다.
      당신이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댓글을 다시지요.
      자본주의의 최악의 버전인 신자유주의는 극단적인 권위주의적 남성우월심리를 강화시키는 체제로 첫 번째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무한경쟁을 넘어 승자독식의 집중화까지 이루어지는 현상은 인간을 공존과 상생의 존재가 아닌 상대적 약자를 죽음까지 내몰고 갑니다.
      한국은 그런 신자유주의가 최악의 단계까지 이른 나라이고요.
      외국에서는 한국의 멸망까지 얘기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한국은 극단적인 국가됐습니다.
      지금은 여성이 피해대상이지만 곧 대부분의 남자들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제발 세상을 바로 보세요.

  5. 견마질박정희 2016.09.09 20:02 신고

    헬조선을 극복하려년 친일 친일 동조자들을 사형이상 중형을 내려 피의혁명을 하지않는 이상 답은 없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29일)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2호선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29세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2인 1조가 돼 진행해야 되는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는 작업을 혼자 했고, 그것도 열차가 다니는 시간대에 진행됐습니다.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려면 선로에 들어가야 하는데, 바로 그 스크린도어가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열차가 다가와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메트로 측은 스크린도어 정비를 맡은 외주업체가 안전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며 사고의 책임을 용역업체에게 돌렸습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매뉴얼이 존재해도 그렇게 일하면 도저히 수지를 마칠 수 없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습니다. 이놈의 ‘슈퍼갑’은 일만 터지면 ‘스몰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를 맡은 용역업체라고 열차가 다니지 않은 시간에 매뉴얼대로 일하지 않고 싶었을까요? 서울메트로가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를 외주화시키면서 용역업체가 매뉴얼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합당한 비용을 지불했을까요? 선로에서 할 수밖에 없는 업무의 특성을 살펴 열차 운행을 조정하거나,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심야에 할 수 없었을까요?





필자가 분노하는 것은 그가 느꼈을 공포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생존자들이 느꼈을 출구 없는 공포와 같았을 것인데, 그의 죽음에 얽혀있는 제도적 문제에 관한 사회적 토론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성공의 다른 말인 로스쿨 논란은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이 만든 최고의 히트상품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 도입된 로스쿨제도는 사법시험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법시험은 도박의 성격이 너무 강해 성공보다는 실패의 총량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사법시험은 합격하지 못하면 얼마의 노력을 했건 돌아오는 것은 전무합니다. 우리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얘기만 들었을 뿐, 그보다 수천수만 배나 많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고졸이나 지방대 출신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이 형편없는 것은 스치듯 지나칩니다.





사법시험의 신화는 철저하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 폐해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내려가야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지만, 그 작은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집니다. 사법시험이 통일은 대박처럼 한건을 부추기는 도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로스쿨은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가족의 차원에서도 사법시험은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입학전형을 두었습니다. 제도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헌데 로스쿨을 도입한지 7년 만에 이런 취지들이 무색해졌습니다. 부와 권력, 기회가 대물림되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제도는 그대로인데 (아니 일부는 발전했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파고들어 상위 1%의 잔치로 변질된 것입니다.



사법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실업자가 나올 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강화됐고, 그것이 (조)부모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례가 늘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했던,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한방에 인생역전이 일어나던 시절이 가버렸습니다. 로스쿨 논란의 근저에는 이런 사정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로스쿨 논란에 관련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매뉴얼조차 지킬 수 없어 선로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직 문제에 비하면 0.0001%의 국민들에게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29세 비정규직의 죽음에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물림되는 돈과 권력, 기회의 독점, 성공지상주의를 빼면 로스쿨 논란은 국민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그것,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상위 1%의 문제이기에 로스쿨 문제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습니다. 하위 99%에 해당하는 29세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처럼 묻혀버렸습니다.



미디어시대는 언론에서 무엇을 다루냐에 따라 국민의 관심이 결정됩니다. 자본주의의 정수인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기업과 개인의 이익이 모든 것에 앞섭니다. 가능하면 상위 1%에 속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과 로스쿨 논란의 사이에 갇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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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9.01 08:56 신고

    신분의 대물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계층 사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양반,중인,평민,노예.....

    • 늙은도령 2015.09.01 17:45 신고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잘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못사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이동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2. 『방쌤』 2015.09.01 10:30 신고

    읽는 동안에도 몇번이나 맘이 아파오네요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하는 바로 우리들의 일인데 말이죠,,
    대한민국이라는 계층사회에 살고있는 현실이 살짝 서글퍼집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47 신고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최악으로 가고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버렸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언론은 상류지향적 내용만 내보네고....

  3. 참교육 2015.09.01 11:48 신고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잔인하 얼굴입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사악한 제도 자본이 인간을 살해했습니다.
    가슴먹먹해지는 얘깁니다. 언제까지 이런 세상을 구경하고 살아야 하는지...
    남의 얘기가 아닌데... 사람들은 모두가 구경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51 신고

      종편이 생긴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들어야 힘을 가질 수 있는데 저들의 얘기만 듣습니다.
      정말로 민중을 위한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서민의 얘기로 모든 것이 다루어지는 그런 방송......

  4. 耽讀 2015.09.01 12:20 신고

    1%는 99%를 지배합니다. 99%는 1%에 저항하지 못하고, 않습니다. 1%가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99%를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월세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종부세에 분노하는 세상이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54 신고

      네, 그렇게 세뇌하는 것이지요.
      어르신들은 투표율이 높은데 그분들을 계속해서 세뇌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를 넓혀가고 기본적인 표를 안고 갑니다.
      언론이 이를 도와주고요.

  5. 바람 언덕 2015.09.01 15:32 신고

    귤이 강남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했습니다.
    이 놈의 나라는 늘 이런 식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모두 뜯어 고쳐야 합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피를 본다하더라도....

    • 늙은도령 2015.09.01 18:00 신고

      정말 혁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답이 없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힘드네요.
      일단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다루는 방송이 필요한데 그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6. 백순주 2015.09.01 16:45 신고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진정 물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세상, 암흑에 갖히지 말아야 하는 세상, 미지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순 없을까요?

    • 늙은도령 2015.09.01 18:07 신고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서민의 입장에서 역사가 얘기되고, 서민의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 등이 얘기되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세상은 승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서민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지요.
      민주주의는 서민이 주인인 세상인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탈출구는 교육과 철학, 방송인데 이 모든 것도 승자가 운영하니....

  7. 소피스트 지니 2015.09.01 21:16 신고

    좋은 말씀입니다. 이 나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절대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 많은 이들이 가장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21:49 신고

      방송에서 다루어져야 힘을 받는데 방송사 자체가 현 구조의 기득권이라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국민방송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원래는 KBS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정권의 눈치만 보니....

      모든 국민이 책을 읽거나 인터넷의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기는 힘듭니다.
      그런 규모의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자살만 생각하던 필자가 ‘세상을 알고나 죽자’라는 심정으로 출발한 지난 10년 동안의 공부는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로 압축된다. 정말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신자유주의 통치술로 귀결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피하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산업화된 대학에 자리를 틀고 앉은 강단의 지식인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고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을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의학이 도와줘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면 몇 개의 지적공동체라도 이루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작은 예들을 만들고 싶었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무엇인가 미진했던 부분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비롯한 푸코의 강연 저작들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술이며,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강한 국가와 기업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 독일의 기업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읽은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 국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박정희의 통치술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는 것에서 기인함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를 열렬히 지지한다고 나온다. 필자도 이것에 동의한다. 여기에 무제한의 사유재산과 독재자, 기업의 사적독점을 중심으로 한 정경유착이 더해지면 신자유주의는 완성된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최단기간 내에 강제적으로 이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자가 공부한 바로는 박정희가 한국적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했고, 줄푸세의 박근혜에 이르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일 수 있는데 일정 수준의 도움을 준 결과를 초래했다(이는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점인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경제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화시키거나 말살시킨 형태다. 따라서 노조가 살길이 없고, 민주주의가 극도로 위축되기 때문에, 공교육이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고, 최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민주주의는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정치검찰과 국정원, 국토부와 함께 최고의 기득권 이익집단인 교육부가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따라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장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 갔고, 이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형편없이 낮아졌지만, 그들로부터 간선제를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비리사학을 복귀시켰고, 국공립대에 예산 지원 중단이라는 압력으로 간선제를 밀어붙일 수 있었고, 교수들이 간선제로 뽑은 총장 후보도 청와대의 낙점을 받지 못하면 임명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국공립대들이 하나씩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87민주화항쟁의 최대 성과 증 하나인 총장직선제가 부산대만 남겨놓은 상황에 이르렀다.



부산대마저 총장간선제가 확정되면 권력의 뜻에서 벗어나는 대학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니, 그 다음에는 교과서의 국정화와 대학의 신자유주의 우경화와 산업 및 상업화(민간대학은 다 이 길로 들어섰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교육을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고, 교육부의 목표는 완전히 이루어진다.





이럴 경우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화석처럼 흔적만 남는 최악의 교육환경이 조성된다. 이 땅의 보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미래세대까지 신자유주의 우파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수우파의 영구집권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미레새대가 지옥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이런 최악의 과정을 지켜본 부산대 교수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교육부의 일방통행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학생의 자살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해 교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하고 절망적이었으면,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교수마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정말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미친 증상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고 있다. 푸코가 말한 ‘광기의 시대’가 대한민국에서 통째로 재현되고 있다. 정의는 고사하고 윤리와 도덕을 넘어 상식과 지식, 종교와 예술마저도 돈이 되지 않으면 천대받는 세상이 됐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되는 이기주의가 극에 달했고, (조)부모의 재산과 사는 지역, 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긴다.





일베나 서북청년단, 어버이연합처럼, 자유청년연합 등이 초법적인 폭력을 일삼아도 처벌도 되지 않고 수구세력과 극우집단이 비호하고 있어 그들의 초법적 폭력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국민은 온갖 방식의 조작과 이간질로 반목하고 작은 이익을 두고 극단으로 갈라짐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가는 길이 아예 차단돼 버렸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정부 부처들과 기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혈안이 됐고, 대통령이 지시한 것만 행함으로써 국민의 요구는 무시하기 일쑤다. 국방부와 국정원은 청와대의 관리를 벗어난 느낌이 들 정도다. 정부는 무능을 넘어 무책임까지 일상화돼 최악의 행정부로 전락했지만, 그마저도 쓸데없는 일만 벌이고 있다.



한국이 미쳤다. 어디를 둘러봐도 뭐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대통령부터 선행학습에 내몰린 유아까지 권력과 성공에 대한 욕망만이 역겨운 냄새를 내며 대한민국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 혼란과 역주행을 견딜 수 없었던 교수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미친 대한민국에 묵직하고 참담한 경고를 던졌다.





필자는 교수의 유서를 읽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숨이 막혀 읽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라와 세상, 집단들은 미쳤지만, 그 와중에도 바르게 살려는 분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필자 주변에는 교수들이 널려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적당한 타협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 언론에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는 것에 극도의 절망을 느꼈다.



허구한 날 정부에 유리한 쓰레기 보도들만 양산하고, 선정적인 사건만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종편과 존재이유를 포기한 보도채널이 친정부적 행보만 이어간 이래 지상파3사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제 역할을 포기했고 교육은 공공성을 포기했다. 필자는 부산대 사태를 어디에서 접해보지 못했다. 매일같이 여러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도.



아래의 유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묵직하고 먹먹한 돌 하나가 가슴에 자리하고 있는데, 유명을 달리한 교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미친 일들이 더해지는 바람에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미쳤다, 망하는 길을 향해. 기득권은 특권화를 울부짖는다, 미래세대의 고혈을 짜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려도 시국선언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여러 국·공립대에서 올린 총장 후보를 총장으로 임용하지 않아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며 국·공립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닌 부산대학교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이런 참당한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봐도 부산대학교는 그런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장직선제 수호를 위해서 여러 교수들이 농성 등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하고 교수총투표를 통해 총장직선제에 대한 뜻이 여러 차례, 갈수록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있다는 방증이다. 대학 내 절대권력을 가진 총장은 일종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수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이 들어갔고, 오늘 12일째이다. 그런데도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총장은 아무 반응이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메일을 통해 전체 교수들에게 그 뜻을 전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교수끼리 보는 방법으로 이미 전체교수 투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는 상황에서 별 소용이 없다. 늘 그랬다.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시국선언 등을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도 그동안 이를 위해 시국선언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개선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8·90년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방식으로 유인물을 뿌리는 게 보다 오히려 새롭게 관심을 끌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자신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 질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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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쏘 2015.08.18 19:52 신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뭐라 말을 덧붙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미쳐간다는 말 밖에는...

    • 늙은도령 2015.08.18 19:59 신고

      정말 광기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 수구세력들의 준동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나저나 건강하신 것이지요?

  2. 방문객 2015.08.18 20:12 신고

    충격적입니다. 교수 직위와 삶을 포기해서라도 불의에 맞서셨군요.

    • 늙은도령 2015.08.18 21:16 신고

      실제 교육부가 마음에 안 들면 총장 임명 품위를 청와대에 올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피해본 대학교가 여러 군데입니다.

  3. 참교육 2015.08.18 22:13 신고

    선생님의 글을 통해 학문의 깊이와 인간애 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막가파들이 판을 치는 세상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인간 망난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생님의 뜻 하신바를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0:07 신고

      요즘은 정말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극단에 이르렀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겹치면 정말로 극단의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중요한데, 우리는 잘할 수 있을까요?

  4. HowlS 2015.08.19 00:38 신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2:05 신고

      묻혀 버리면 안 되고, 국공립대 교수들로 고인의 뜻이 전파돼야 합니다.
      교수사회가 그럴 수 있을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묻히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5. 진검승부 2015.08.19 11:13 신고

    30년이 필요할 지, 100년이 더 필요할 지....우리세대까지 다 저승에 가면 바뀔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6:56 신고

      정부가 법인세 인상과 부자증세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절대 답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전체 인류가 지금보다 몇 배는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풀려있습니다.
      조세정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제대로 되면 당장 내년부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6. 백순주 2015.08.19 13:01 신고

    아직 제 깜냥이 선생님 글을 소화할 수 없을 듯 하여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살며시 들춰낸 글에 역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충격'이란 단어는 이제 목숨을 내놓아야만 가능한가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의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면...
    요즘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일들을 눈으로는 보는데 머리로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진정 이 사회를 위해 제가 할 일은 있는 걸까요?

    • 늙은도령 2015.08.19 16:58 신고

      그럼요, 많지요.
      지금 쓰시는 글들도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순간 망합니다.
      화학은 한국 최고의 젖줄이고요.
      님은 지금처럼 살아도 충분합니다.

  7. 공수래공수거 2015.08.19 13:51 신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북대학교도 수개월째 총장을 교육부가 승인을
    하지 얺고 있습니다
    대학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려는 청와대의
    술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두렵습니다
    유신시대로의 회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7:05 신고

      이런 대학이 많습니다.
      방통대도 총장 임명이 1년 이상 미뤄졌다 정권이 원하는 자가 올랐지요.
      경북대는 아직도 싸우고 있고, 몇몇 대학도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류층은 유신으로 복귀했습니다.

  8. 행인 2015.08.19 19:57 신고

    자신의 목을 걸고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조선시대 선비 같은 분이 아직도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습이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20:16 신고

      이것이 그냥 묻히면 안 되는데 벌써 언론에서 사라진 느낌입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은 반드시 기억되고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가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9. Chris 2015.08.20 01:26 신고

    정말 미쳤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저렇게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그냥 소비되는 현실이 아프네요.

    • 늙은도령 2015.08.20 01:50 신고

      정치라는 것이 정말 추악해졌습니다.
      기득권을 형성해 지들 이익만 챙기는 최악의 사기로 변질됐으니까요.

  10. 2015.11.18 09:53 신고

    어리버리한 동네 아줌마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생양아치 깡패집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어떤 것도 통하지않는...

    모든 것이 저들의 권력에 장악되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가슴은 뜨거워 분노가 들끓는데..



우리는 주류엘리트의 80% 이상이 미국에서 공부한 시장자유주의 우파(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등)여서 미국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선 초반부에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민주당에서는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트럼프는 매카시를 연상시키는 극우적 성향이고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니 보수적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양당의 대선후보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극우에서 극좌, 전체주의에서 아나키즘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까지 다양했다)가 무너진 1989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독주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이런 이념적 다양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시장근본주의적 전체주의 성향이 만개한 미국(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 1, 2》에서 명료하게 밝혔다)에서도 사회주의의 전통은 끈끈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19세기에는 유럽의 생시몽, 푸리에, 블랑키, 오언과 비견될 수 있는 헨리 조지, 유진 뎁스, 헬렌 켈러 등이 인민당 전성시대(9개주를 석권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참조할 것)를 열기도 했습니다.





미국 건국을 주도했고 지금까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 엘리트의 양당과 연방정부가 인민당의 확장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 열풍을 말살시켰고, 루즈벨트가 사망한 이후 매카시 광풍으로 미국의 사회주의가 극도로 위축됐지만, 전 세계 사회주의자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진보와 빈곤》의 성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 등으로 이어진 미국의 사회주의는 기본소득(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과는 다르다)을 핵심적 가치로 내세우는데, 샌더스도 일정 부분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샌더스는 금융자본주의를 해체하고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건강보험체제에 집중하지만,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인정한 케인즈주의보다는 훨씬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제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자라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국가민족주의(수구적 제국주의의 냄새가 난다)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아나키즘적 극우주의(정부를 없애고 자유방임을 극대화하는)를 연상시킵니다. 미국 우파의 한 축으로 연방정부를 없애는 것이 목표인 사회적 복음주의자들(미국 우파를 다룬 《러 라이트 네이션》을 참조하라)이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데 이런 미국의 역사와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모두 다 무시한다 해도, 트럼프와 샌더스가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대선은 2008년 금융붕괴의 주범들이 연방정부와 양당의 지원 하에 최대수혜자로 바뀐 것에 대한 반발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붕괴의 주범들은 미국 연방정부와 양당의 지원 하에 더욱 부유해졌고, 중하위층은 더욱 빈곤해졌기 때문입니다. 



2008년 월가 발 금융붕괴를 다룬 책들은 거의 대부분 주류의 입장에서 서술했고, 그 때문에 일종의 면죄부를 발행한 역할에 불과해서, 상위 1%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경유착(거대 양당, 연방정부, 월가, 군산복합체, 언론, 아이비리그, 허리우드, IT재벌 등의 주류엘리트가 미국의 이익을 독식하는 회전문식 정경유착)의 전모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유일제국 미국을 풍비박산낸 금융붕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마저 주류의 이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가자, 좌우를 막론하고 미국 비주류들 사이에서는 극도의 불만과 분노가 쌓여만 갔습니다.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은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상위 1%의 주류엘리트에 대한 반발과 분노를 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미국 역사를 철저하게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1, 2》를 보면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며, 충분히 가능한 것에 속합니다. 그들의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월가를 점령하라’는 분노한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가 트럼프와 샌더스에게로 갈라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트럼프의 돌풍은 현 주류엘리트에 대한 반발의 일환이면서도, ‘월가를 점령하라’로 분출된 중하위 99%의 사회민주주의적 요구에 대한 수구 백인들의 반작용이지만, 샌더스의 초반 돌풍은 클린턴, 오마바, 힐러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수적인 진보엘리트에 대한 반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트럼프의 돌풍이 오래 가면 샌더스의 돌풍도 오래 갈 것은 분명합니다.



1929년의 대공황이 우파 전체주의(이탈리아의 파스시트, 독일의 나치, 일본의 군국주의)와 좌파 전체주의(소련의 스탈린)를 탄생시켰듯이, 2008년 금융붕괴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총선과 대선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요? 미국보다 신자유주의적 정경유착이 더욱 강한 나라가 한국이다 보니···   



P.S.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들이 있습니다. 글에서 인용한 책들 이외에도 토마스 페인의 《상식》, 미국 국부들의 《연방주의자 논설》, 찰스 비어드의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 존 듀이의 《공공성과 그 문제들》, 아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노엄 촘스키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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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7 08:49 신고

    민주당에서 샌더스의 돌풍이 어디갈찌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클린턴의 대세론을 꺾을지..

    • 늙은도령 2015.08.17 15:08 신고

      보수화된 클린턴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기를 바라야지요.
      그래야 우리도 바람이 붑니다.

  2. 참교육 2015.08.17 12:29 신고

    시장자유주의 우파를 이렇게 정의해 두셨네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너무 멋진 정리네요.
    페북으로 퍼갑니다.

    • 늙은도령 2015.08.17 15:11 신고

      한국이나 외국이나 재벌들이 성공하고, 정경유착이 넘쳐나는 이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 이래서 당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요.

  3. 耽讀 2015.08.17 13:27 신고

    2017년 우리나라 대선때도 비슷한 사람들이 일전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들도 당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란 변수가 있지만 색깔론을 들고나오면 오히려 받아쳐야 합니다.
    색깔론은 방어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공격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7 15:14 신고

      북한은 좌파 전체주의이고, 사회주의와는 다릅니다.
      사회주의에는 시장사회주의가 있어서 경쟁적 시장과 기업의 노동자 관리, 민주주의적 이익 배분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것이 민주적 사회주의입니다.
      자유주의적 사회주위라고도 합니다.

  4. 표르바 2015.08.17 19:17 신고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5. 신은죽었다 2016.01.30 12:35 신고

    저는 EBS 사진에 이렇게 답하고 싶군요.
    "땅을 소유하고 이익을 얻는건 눈에 쉽게 보이고 알아차릴 수 있지만 공동체에 이루어지는 이익 봉사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때문이다. 땅을 소유하건, 땅을 임대하건. 그 땅의 가치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결정하고 그 땅에의해 생산된 것은 최종소비재의 것으로 직접 충족되거나 변형되어 시장에 거래로 봉사를한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시장거래 조차도 등가교환,잉여착취의 개념으로 악 이기에 EBS 내용이 전혀 문제 없다고 보실수는 있겠군요. 왜냐면 토지소유를 통한 어떠한 생산물이라도 근본적으로 착취라고 볼테니까요.
    시장경제, 보이지 않는손 이런것들은 칸트같은 이성비판,경험주의,전통 철학에서 나오는겁니다.
    무슨 수구 전체주의 이런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소유를 통해 공동체에 이익 봉사를 합니다.
    그게 얼마나 잘보이냐 안보이냐의 차이입니다.
    토지를 예로든건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경험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입니다.
    상상이 안가고 토지를 어떻게 이용하고 이용되는지 과정을 모르며 눈에 확 보이는것도 아니고
    그 중간과정은 뇌의 한계로 정리하지 못하고 시작점과 끝만 기억하는겁니다
    토지를 소유했다 내 머리로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돈벌어먹고 잘산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 놀고먹고 착취하는 계급이다. 끝.

    그런데 정말 궁금한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트나 전통시장가서 물건살때 투쟁하나요?
    등가교환이라는 생각을하면 엄청나게 허무하고 나중엔 무의미한 거래에 화가날텐데.
    왜냐면 등가교환을 했는데 만족과 쾌락을 얻는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일하러 갈때도 착취당한다고 엄청 스트레스 받을텐데.

    • 늙은도령 2016.01.30 15:02 신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보시지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좋고.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착취의 체제인지 아실 테니까요.

      땅값은 주인이 올리지 않습니다.
      그 땅을 개척하고, 그 주변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고, 과학기술이 발전으로 생산량이 늘거나 하면 저절로 올라갑니다.
      무노동무임금이 자본주의의 원칙이라면 땅값 상승은 100% 불로소득이지요.
      이것이 EBS가 인용한 <진보와 빈곤>의 핵심 주제입니다.
      기본소득제의 개념도 여기에 연원하고요.

      이런 식으로 님의 댓글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1권에서 다루었던 등가교환이라는 것도 2권으로 넘어오면 시장교환과 노동착취로 넓어집니다.
      아무튼 마르크스적 한계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까지 더해야 조금이나마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요.

      자본주의는 생긴 지 20~3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비판의 대상이었고, 각종 규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존속도 될 수 없었던 체제입니다.
      노동착취의 종류는 <자본론> 2~3권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마르크스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등가교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비판은 제2권에 나오는데 당신은 그 사실도 모르고 댓글을 달았으니 책도 읽지 않은 것이지요.

      칸트에서 나온 것이 마르크스라 하는데, 칸트는 그런 것에 관심없었습니다.
      그의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숭고에 대하여> <영구평화론> 등등의 책들에 자본주의와 엮일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치를 사유한 사람이고, 만인의 행복을 찾았던 철학자이자, 예술의 힘을 믿었던 미학자였습니다.
      그는 관념론자이지 경험론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에 영향을 준 사람은 뉴턴과 다윈, 헤겔 등이었지 칸트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두세 번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
      칸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청년 마르크스의 <철학의 빈곤>도 읽지 않았겠지만 제발 뭘 아는 척 하려면 기본적인 지식부터 갖추셔야죠.
      검색하면 나오는 쪼가리, 사이비 지식 말고요.

      댓글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법입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욕보일 정도의 학자도 아니고요.
      인류 역사상 전체 지식인과 홀로 맞서 승리한 유일한 학자가 마르크스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이비 학자들을 동원한다 해도 이윤 추구 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통치술로서의 자유주의(경쟁을 최대화하고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경제 중심으로 국가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승자 중심의 통치술)가 손을 잡으면 부와 기회를 독점하는 극소수의 수중에 권력이 넘어가고, 절대다수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전체주의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살아있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이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병자에게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희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가장 끔찍하게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희망고문과 열정패이가 일상일 때는 힐링마저 또 다른 절망의 연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운이 좋아 양질의 일자리와 부의 재분배를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었던 기득권 세대들은 어떻게든 나머지 삶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출생 때부터 이것에서 배제된 중하위층의 1030세대들은 기득권의 식탁에서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두고 무한경쟁을 펼쳐야 생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흙수저라도 올릴 밥상이라는 것이 아예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극단으로 내몰리게 되는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런 퇴행적 현상은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확장됐으며, 공고화됐습니다. 특히 가장 신자유주의적 나라인 '헬조선'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 공업 국가들이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이 세 가지 주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여러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에서 인용).






이런 정치와 경제의 실패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이 풍요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결핍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빈약한 복지와 공정한 재분배를 감추기 위해 방임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졌으나,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를 주지 않아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세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평등조차 박탈된 이들은 주로 1030세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2015년 현재 30세 이하인 사람들은 지금처럼 엿 같은 현실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그 해결책마저 그들이 늙은 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평생을 지옥에서 살게 되는 최초의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더하면 청춘들이 감수해야 할 빈곤과 위험의 정도는 무한대로 늘어납니다.



이들은 ‘자신이 원인 발생에 가담하지도 않았지만, 그 피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고, 문제의 해결에도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악의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로서는 전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체념이 보편화되고 내면의 분노로 시달리는 ‘저주받은 세대’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을 따먹기는커녕 그들이 남긴 쓰레기를 뒤집어써야 하는 최초의 세대인 이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죽장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절규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기득권 세대들이 나누려 하지 않고,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지 않고, 재계가 따르지 않는다면, 1030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지옥과 다름없습니다.



이들이 해체된 가족과 무력해진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디지털 세상을 배회하는 것도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묶어 ‘지배의 변증법’을 만들어낸 기득권의 무제한적인 탐욕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부와 기회와 권력은 상층부에 쌓이고, 빈곤과 차별과 위험은 중하위층과 청년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탈피할 때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걸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쟁취할 때 '헬조선'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충분한 돈과 자원이 있으며, 소수의 기득권이 모든 부와 기회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자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인류는 미래세대의 것들마저 가져다 썼기 때문에 넘칠 만큼의 부와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1030세대의 미래를 포기한 나라에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5060세대와 정치권, 정부와 재계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이 남긴 것으로 해서 1030세대가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의 세습과 생명연장의 꿈이 미래세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살아있는 자체가 치욕이며 부끄러움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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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2 08:41 신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들의 고통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정말 눈에 보이는것만 믿어서는 안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36 신고

      네, 그래야 하는데 이 놈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 참교육 2015.08.12 09:17 신고

    막장 자본주의에 태어난 세대들.... 삶 자체가 비극입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야합니다. 체제를 바꿔야합니다. 유럽식 사민주의로라도...

    • 늙은도령 2015.08.12 16:38 신고

      네, 자본주의 다음이 사회주의인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를 고민할 때입니다.
      인류는 더 이상 자본주의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사회주의로 가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혼합하면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가 가장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3. 일본의 케이 2015.08.12 09:29 신고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받아들리기 힘든 현실...

    • 늙은도령 2015.08.12 16:43 신고

      청년들의 분노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어차피 제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것에 있으니까요.

  4. 耽讀 2015.08.12 13:36 신고

    개혁은 힘듭니다.
    민주혁명이 필요할 때입니다.
    민주혁명을 일으킨 후, 경제민주화와 정치민주주의 그리고 친일부역자들과 독재부역자, 자본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미래는 암울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44 신고

      네, 민주주의의 혁명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말로 혁명이 필요합니다.

  5. 다노시무 2015.08.13 12:52 신고

    오랜만이죠.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이 생겨도 생길것 같네요.
    그러탐 같이 죽창을 들어야 하겠죠

    신기하게도
    제 카톡배경도 죽창사진
    입니다..ㅎㅎ

    그럼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옹~~~^^

    • 늙은도령 2015.08.13 20:36 신고

      대단히 위험한 시기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최악이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나라를 말아먹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살인과 함께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인 성폭력은 인류의 역사만큼 길고 육체보다 영혼에 가해지는 상처가 더욱 크다는 점에서 피해자 받은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들이 중요합니다. 특히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해자의 처벌만큼 영혼의 치유에도 최고의 노력이 기울어져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독일에서 귀국한 조카가 졸업에 맞춰 받았던 성교육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조카는 여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성교육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성폭력 피해여성(백인과 흑인, 황인으로 구성된 3명의 여성)들로부터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은 몸에 남아있는 성폭력 증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곧바로 경찰서에 출두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가해자를 신속히 체포할 수 있었고, 추가범죄의 가능성을 원천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폭력 피해자가 취해야 할 행동의 모범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입장에서 성폭력을 당한 것이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것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가해자의 책임이며, 자신이 당한 성폭행이 결코 창피하거나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과 정확한 상황판단이 있었기에 그녀는 성폭력에 대처하는 최상의 행동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조카에게 들려준 얘기는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 편견과 고정된 인식을 타파하는 것들로 이루어졌고, 여성의 몸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서 어떤 종류의 강제적인 폭력으로부터 예속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겪은 일을 담담히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극복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가족과 사회, 정부의 도움을 받아 끔찍한 폭력에서 자유로워질 때 진정한 극복이 가능하다는 그들의 얘기는 성폭력 신고율이 1.1%(성범죄 전체로는 10%)에 불과하고, 신고된 성범죄가 법정까지 가는 비율이 20%대에 머무르며, 사법부의 형량마저 형편없이 낮고, 집권여당의 또 다른 이름이 성누리당과 색누리당인 한국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보호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하루빨리 돌아가도록 도와주지 못할망정, 그들에게서 책임의 일단이라도 찾으려는 한국사회의 야만성은 성폭력 가해자들의 단죄는커녕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는 일이어서 어떤 것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라 할 수 있습니다. 처벌은 당연하며, 엄격해야 합니다. 



최악의 슈퍼갑질인 성폭력은 철저하게 가해자의 책임이며, 그것 때문에 피해자가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성관계를 자행했다면, 그 사실을 인지한 모두가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협조해야 하고, 피해자가 최대한 빨리 훌훌 털고 평상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성폭력의 반 이상을 아는 사람이 일으킨다는 것을 감안할 때, 피해를 숨기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조카가 독일에서 들은 성교육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자신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줌으로써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고 미래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성범죄 1위라는 최악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범죄를 영원히 없앨 수 없다면 최대한 줄이는데 노력해야 하며, 그 출발은 피해자 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한 것을 고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보편화돼야 합니다. 특히 성폭력일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그럴 때만이 성범죄는 줄어들고,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조카와 졸업생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공유한 세 명의 여성들에게 경의와 존경, 고마움을 표합니다. 진정한 용기와 극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당신들로 해서 남성의 일원이자 개인으로서도, 종으로서의 인류에게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P.S. 서울시 공립학교에서 벌어진 성범죄가 독일이나 유럽의 선진국가에서 일어났다면 그 학교는 무조건 폐교됩니다. 가해자와 책임자의 처벌 정도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들이 취해집니다. 여성 대통령이 10명 정도 연속으로 나와도 지금의 박근혜처럼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성범죄의 정당이 집권여당인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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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2 08:34 신고

    잘은 모르고 확실하지 않지만 어제 탈주성폭행범을
    자수시킨 여성분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18 신고

      성폭행범을 처벌하려면 여성이 신고를 꺼리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래야 성폭행이 줄어듭니다.

  2. 참교육 2015.08.12 09:19 신고

    무터킨더 박성숙님의 독이교육이야기를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성교육한다면서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우리나라 성교육지침서를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20 신고

      네, 우리나라 성교육은 성교육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성폭력의 개념부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인식의 결여가 곳곳에서 보여집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각종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고 대물림됨에 따라 수없이 많은 '사회경제적 잉여'와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인 2030세대의 경우 부채의 늪과 저임금 단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런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적 자본마저 무너져 내려 빈곤의 고착화와 대물림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자료와 통계를 사용해 여러 가지 분석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경제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특별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연구들이 2030세대의 미래를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다룬 저자 중에 에릭 우슬러너는 《신뢰의 힘》에서 문명의 진보가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인류를 정반대의 결과를 양산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의 붕괴를 자세히 다루었다. 그는 수많은 자료와 통계, 인터뷰를 통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모두에서 신뢰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2030세대에게 지옥 같은 삶을 강요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가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절망적인 현실에 갇혀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를 이해하는데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해준다. 활기와 도전으로 넘쳐야 할 청춘이 행복한 삶과 발전 가능성으로 연결되지 않고 절망적인 고립와 배제로 연결되는 세상이란, 모든 관계에서 상호 호혜성과 공존의 기반인 신뢰가 깨져버린 현대의 척박함을 보여준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개인들 사이의 연계,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신뢰성)’인데, 우슬러너는 ‘신뢰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경제규모는 갈수록 늘어나지만 삶의 질은 갈수록 줄어들고, 인생주기에 따른 기본적인 삶의 경험과 과정을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 증가현상은 미국의 신뢰 감소현상이 세대교체가 아닌 모종의 요인에 의해 초래됐음을 의미한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 증가현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났다는 것이 반영됐다. 다른 집단,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보다 젊은 세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타인을 덜 믿고 미래를 덜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낙관론에는 그들의 소득향상과 함께 공평한 소득분배가 반영되어 있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과 이후 세대보다 소득을 더 공평하게 분배받았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낙관적이고 신뢰 지향적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과 차별이 심한 나라가 된 미국이지만, 한 때는 최고 세율이 91%에 달하는 등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성장과 분배가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거의 유토피아에 근접했던 1940~45년 사이에 출생한 전기 베이비붐 세대는 안정적인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그 이후의 세대에 비해 정치와 공동체 참여, 종교와 봉사활동 등에 적극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때가 미국에서 사회적 자본이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전후 체계가 무너지고, 공정한 분배를 담당했던 조세정의가 무력화됨에 따라 상위 1%에 천문학적인 부와 권력이 집중됐고, 그에 따라 중하층의 경쟁이 심화됐고, 적자생존의 시장근본주의가 정치의 영역까지 지배하기에 이르면서(특히 리처드 피트 등의 《불경한 삼위일체》를 보라)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가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인들이 서로를 덜 믿게 되면서 점점 더 작고 동질적인 공동체 안에서 보호막을 두른 채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이(소수집단, 동성애자, 이민자) 다수에 비해 특혜를 받을까봐 우려하는 것 같다. 호황기에는 점점 커지는 파이가 빈곤과 차별 같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자ㅡ예로부터 경제적 불안을 느끼면 늘 그랬듯이ㅡ내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립주의와 근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외국인‧소수집단‧이민자 등이 다수의 복리를 해치는 위험한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 신뢰가 개별적 신뢰에 무릎을 꿇어 이제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믿는다.



이런 결과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고, 각종 총기사고, 증오범죄, 10대 출산율, 이혼율, 자살률, 정신질환자, 아동사망률, 빈부격차, 부정부패, 탈세 등이 높아진 것도 미국사회를 지탱해주던 사회적 자본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정치의 극한대립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고, 이제는 공공연히 두 개의 미국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을 이렇게까지 망쳐놓은 것은 정경유착과 상위 1%가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정치와 재계를 장악한 다음에 일어났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고, 압축성장의 폐해가 폭발하고 있는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갈수록 청년실업자가 늘어나고, 저임금 비정규직만 늘어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지역 단위의 복지와 사회적 안전망은 일정 수준 이상은 작동하고 있어 저복지 국가인 한국에 비교하면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는 약한 편이다.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를 보면,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사회적 자본이 높은 주일수록, 즉 소득불평등이 적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론을 내놓았고, 이는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진실이다. 



서울의 강남에서 강북, 분당과 죽전, 평촌과 일산 등의 신도시 순으로 대학진학과 직업의 종류 등이 결정나는 한국의 상황은 미국은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지역과 부에 의한 차별이 너무나 심한 편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아니고 욕이 나온다. 최근에는 개천마저도 썩은 물과 녹조로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일 만큼 열악해졌다. 



따라서 소득향상이 좋았고 소득분배가 공평했던 시절에 열심히 살아온 5060세대들이 모든 것이 나빠진 2030세대들을 비판하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들이 받고 있는 압력이 얼마나 큰지, 그런 것들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난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국가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근본적이고 깊이,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기제까지 자세히 봐야 한다.



특히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한 칼 폴라니의 성찰처럼, 사회의 일부분이었고 정치의 하위개념이었던 경제ㅡ특히 초국적기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장경제가 자원의 희소성을 내세워 상위 1%의 리그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과 사회적 자본의 붕괴가 각각의 세대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피해자이지만 극단적 폭력을 선택한 일베가 자유(책임이 따른다)와 자유방임(책임을 거부한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극우적 버전의 2030세대라면,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는 정치적 자유의 출발점인 사회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버전의 잉여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복지국가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반영된 복지와 사회안전망,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다.

  


사회적 자본과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각종 수치가 OECD 가입국 중에서 최악으로 나오는 한국에서 이제야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가 나온 것은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아직은 소수이고, 지향점이 확실하지 않고, 어디로 흘러갈지, 어떻게 살아갈지 예상할 수 없지만 신자유주의와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인 것만은 확실하다.



벗어날 수 없는 먹이사슬과 한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들의 절망과 분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해소될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우경화된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편에서 서서 상대적 약자들에게 폭력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가하는 일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들의 절망과 분노, 외침을 한국사회가 제대로 반응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파국적 결말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P.S. 정부가 독점하는 공권력이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이용된다면 국민은 이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력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혁명의 본질이지만, 최고의 저항권은 분노와 권리를 결합해서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정치세력화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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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se 2015.08.07 19:26 신고

    역사적으로 국민의 생활이 극도로 피폐해짐으로 일부 세력 또는 민중에 의해 개혁이나 혁명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한 징후를 보이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단지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있은 아픔이 진정 안타깝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9:57 신고

      네, 병리현상이 자꾸 커지네요.
      하지만 헬조선은 일베와는 달리 기득권에 반하는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베는 권력에 손잡고 폭력과 차별, 혐오를 조장하지만 헬조선은 더 이상 피해를 입지 말자는 것이기에 젊은이들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여론을 움직이는 여론환경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2. 아이스킹 2015.08.08 02:08 신고

    제가 느끼는 대한민국은 차이를 만드는 집단과 차이를 극복하려는 두 그룹의 충돌이라고 봅니다. 다수가 극복 할 수 없는 격차로 고통 받지만, 다수가 차이를 만드는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이 괴리를 선명하게 알리고 누가 격차를 계속해서 만드는지 명확하게 각인 시켜야만 젊은 이들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정의를 말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할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02:41 신고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언론은 광고로 돌아가기 때문에 차별을 만드는 자들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하나입니다.
      혁명에 준하는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세력화밖에 없습니다.
      정치철학이 확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런 정치세력이 나와야 합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는 한 이 세상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참여하고 연대하지 않은 한 답이 없는 것이지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8.08 08:26 신고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분노의 정치 세력을
    언제쯤이면 볼수 있을까요?
    젊은 혁명가가 나와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17:12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정말로 젊은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4. 참교육 2015.08.08 12:42 신고

    자본이 만드는 세상은 막가파 세상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청년들이 깨어날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5. 호빵멘 2015.08.11 23:45 신고

    요즘 헬조선이란 말이 나와서 뭔가 했는데 작성자님 글을 읽고 모두 해소했네요.
    정말 핵심을 잘 집어 주신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트윗으로 퍼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00:06 신고

      답답한 내용이지요.
      어떻게 인류가 여기까지 왔는지, 대한민국이 이렇게도 형편없는 국가가 됐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최근에 들어 40대 후반에서 50~60대들이 1030세대들을 비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확대해석했거나, 누구나 겪는 인생주기에 따른 앞선 세대의 희망사항으로 흐르기 일쑤여서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조악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세대를 비판하는 일은 방대한 자료와 분석을 필요로 하는 대단히 힘든 작업이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은 것도 많지 않으며, 숱한 검증을 통과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거의 없다. 필자가 읽은 책 중에서는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과 에릭 우슬러너의 《신뢰의 힘》이 고전에 반열에 오른 것들로, 수많은 학자들이 인용하고 있다(당연히 비판도 있다).



최근에 들어 1030세대의 절망과 자조, 분노로 뒤범벅된 ‘헬조선’이란 외침을 이해하려면 《88만원 세대》나 《1000유로 세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으로는 피상적인 도움밖에 받을 수 없다. 정치와 경제, 사회, 종교, 교육 등의 결과가 반영된 사회적 자본의 변천사를 함께 고찰할 때만 1030세대의 절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들은 미국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정치와 경제, 사회의 번영과 안정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자본을 다룬 《나 홀로 볼링》과 《신뢰의 힘》에 나온 내용으로 한국 탈출을 외치는 1030세대의 참혹함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리라 믿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미국적인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처럼 협소한 자신의 경험과 특정 집단에만 의존해 통치를 할 때 온갖 부작용과 문제들이 양산되는 것에서 보듯, 다른 세대를 비판할 때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함몰돼 일방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세대 간 갈등과 반목만 커질뿐 상호 간의 이해와 신뢰 구축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퍼트남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에 관한 거의 모든 통계가 몇 가지 요인들로 해서 20세기 말까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미국사회의 파괴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 차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적 활동과 참여의 내용이 달라지는 인생주기(나이를 먹을수록 보수화된다는 통념이 대표적)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보통 자식이 학교에 들어갔을 때나 은퇴를 했을 때 학부모 활동이나 지역사회 활동, 종교나 봉사활동 등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6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런 인생주기에 따른 공통적 경향마저 갈수록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자본을 이루는 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인데, 퍼트남은 그런 차이를 불러온 원인을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했고, 이는 한국에서도 한 세대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났다.



첫째, 맞벌이 가족이 받는 압박을 포함해서 시간과 돈의 압박이 사회적 참여와 지역사회 참여율 전체 감소분의 10% 정도를 차지했다. 

둘째, 교외 지역의 도시화, 장거리 출퇴근, 도시의 팽창이 전체 감소분의 10% 정도를 차지했다. 

셋째, 여가 시간을 혼자서 소비하게 만드는 전자화된 오락 수단,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이 전체 감소분의 25% 정도를 차지했다(퍼트남이 이 책을 쓸 때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직전이었고,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어서 전자화된 오락 수단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넷째, 오랫동안 시민 활동에 헌신적이었던 세대가 자녀손자 세대로 느리지만 불가항력적으로 꾸준히 해체되고 있는 현상, 즉 세대교체가 가장 강력한 요소로 밝혀졌고, 전체 감소분의 50% 정도를 차지했다.



퍼트남이 찾아낸 위의 4가지 원인들은 미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뉴딜정책과 전후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60년대(신자유주의가 세력을 넓히던 기간)를 거치면서 미국의 사회적 자본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대통령인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가속화됐고, 연방정부와 양당의 탐욕에 맞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사회적 자본을 파괴했다. 



한국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이런 경향이 시작됐고, 기득권에 속하지 않았던 노무현을 대통령에 올릴 때를 제외하면 가파르게 사회적 자본(특히 중하위층의 정치참여와 시민단체 활동)이 줄어들었다. 지금의 1030세대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것이 일베와 '헬조선'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란 나라가 유일제국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땅과 지역적 유리함에만 있지 않았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지역 공동체와 정치결사체, 종교와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기업과 자본 위주의 일방독주에 완충장치로 작용했다. 이것이 무너지면 미국은 불평등과 차별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일반적 인식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재산과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미국에서 상위 1%의 독점에 저항해 ‘월가를 점령하라’는 99%의 저항이 분출했던 것도 정치적 참여와 경제적 평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자본이 작동불능의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유일제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마저 천혜의 땅에서 지옥과 비슷하게 바꿔놓았다.  





다만 퍼트남은 21세기를 전후로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우리나라의 경우 ‘촛불소녀’와 '4.16세대'가 대표적이나 정치세력화하지 못하는 한 희망은 없다)가 기존의 변화와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나타나는 점에 희망을 걸었다. 이들은 각종 불평등을 양산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처음부터 겪었고, 전자화된 오락의 한계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다는 점에서 앞선 세대와 다르며, 퍼트남이 제시한 네 가지 요인들이 이미 반영된 세대라는 점에서 앞선 세대와 질적으로 다르다. 인터넷과 SNS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스마트폰의 등장이 사회적 자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 들어 양극화하는 사이버 세상은 비관적인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은 앞선 세대들이 보여준 인생주기를 따르지 않고,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의 세대가 될 수도 있다.





20세기 말에서 분석이 끝난 퍼트남의 예상과는 달리, 현재의 1030세대들은 벡의 ‘위험사회’와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의 세대로 내몰리고 있다. ‘88만원 세대’와 ‘천유로 세대’는 '성장을 멈춰라'와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고, ‘불평등 민주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제 시차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1030세대들이 ‘fucking아메리카’나 ‘헬조선’을 외치는 데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어쩌면 현재의 1030세대에게는 미국 역사를 철저하게 사회경제적 약자와 정치적 피해자 입장에서 기술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1, 2》가 그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줄지도 모르겠다.



조부모와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1030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무너져 내린 사회적 자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고용안정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선행학습부터 시작해 스펙 전쟁까지 평생을 무한경쟁에 놓여진 1030세대들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분노,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헬조선'을 외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2부로 이어집니다).



P.S. ‘fucking아메리카’와 ‘헬조선’을 빼면 따옴표는 모두 다 책 제목으로 현대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명저들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소화할 수 있는 책도 있지만, 도전하지 못할 정도의 책들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종류의 책들이 살아남기 힘든 나라로 변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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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8.07 08:07 신고

    나이가 들면 경륜이 쌓이고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수구세력들은 눈뜬 장님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5:42 신고

      일베도 '헬조선'도 그들에 대한 반작용이지요.
      일베는 최악이라면 헬조선은 그나마 평등을 추구하기에 조금은 낫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극좌로 가는 것인데 그러면 일베와 상부상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제대로 된 좌파의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8.07 08:24 신고

    트위터의 내용이 최고입니다
    정말 적절한 표현입니다

    나빠요가 약 4,8% 수준이군요 ㅋㅋ

    • 늙은도령 2015.08.07 15:48 신고

      네, 널리 돌았던 내용입니다.
      참 대단하지요?
      요즘 젊은이들, 이런 표현에는 가히 천재적입니다.

  3. EMC 2015.08.07 08:26 신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몇년째 아마존 쇼핑카트에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넣어두고 구매하지 않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구매해서 읽어볼까 합니다.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헬조선'이란 말 들을때마다 씁쓸합니다.
    비록 이민온 처지이나 그래도 10대때는 나름대로 약진하는 한국이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이곳에서도 이공계와 의대생은 대채적으로 취직이 잘된다 하여
    한떄는 그쪽으로 진로를 택했던 친구들이 부럽고 정치학을 택한 내 자신이 실수했나 자책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 분야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는 친구들을 보왔기에
    어차피 재 적성에 맞는 이 분야에서 좀더 수행을 하고자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5:53 신고

      그럼요, 남들과 똑같이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지금의 추세로 볼 때 정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화될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 한계에 봉착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체제를 바꿀 여력이 없어 끝까지 간 다음의 파국을 경험한 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10년 내외로 대대적인 변화가 올 것이며, 정치나 사회학의 중요성이 강조될 것입니다.
      인류가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면 그쪽의 학문이절실하니까요.
      힘내시고 준비를 착실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푸틴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도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동생이 러시아의 여러 업체와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와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나름의 정보가 있는데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푸틴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서양의 경제봉쇄가 먹혀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들어 오바마도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니 각국 정부들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는 모양입니다.

  4. 바람 언덕 2015.08.07 09:31 신고

    저들의 외침이 자신과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으로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한
    저같은 외침은 푸념이자 넋두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5:59 신고

      그래서 걱정인데, 좌파적 가치인 평등을 중시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도 하는지라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관심갖고 좌파의 진정한 가치들을 알려드려야죠.
      또한 혁명의 필요성과 정의로운 무력에 대해서도 고민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정치세력화해 분노를 조직적이고 정당하게 펼쳤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좌적 혐오로 빠질 수 있습니다.

  5. marsmania 2015.08.07 17:50 신고

    참,,,, 할 말이 없는 사회입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은 몇 년째 들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이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하면 표현하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 변화로 만들 수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8.07 17:55 신고

      조금 더 힘을 비축하십시오.
      연대를 늘리면서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하십시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분노를 예리하게 가다듬고 보다 풍부하게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력화를 해나가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세를 넓히고 상호소통과 신뢰를 구축하십시오.

  6. 불루이글 2015.08.08 13:04 신고

    정치는 힘없고 약한 집단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현재 박그네 정권을 보면
    정반대 입니다.

    힘있고 부유한자들은 스스로 얼마든지 자신을 케어 할수 있는데도
    박정권은 오히려 그들이 잘못될까 먼저 걱정하고 그들 위주의 정책만을 고집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일부 귀족노조들이 있을수 있겠지만
    그들 또한 무수한 투쟁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들과 대립각을 가지도록 만들어 노노 갈등으로 양분 시켜 자신들에게 향하는 화살을 피해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도령님 말씀처럼 빨리 구조적인 정치 세력화를 이루었으면 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17:11 신고

      거꾸로 가는 것도 한계에 이를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박근혜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경제상황이 너무 나빠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증거이니까요.

  7. 푸디나 2015.08.10 08:20 신고

    고도성장으로 세대간 이해할 수 있는여지가 줄어들었고 핵가족, 세계화, 개인주의 등 여러가지 사회문화적 변화가 '헬조선'으로 표출되는것 같습니다.
    헬조선이란 문제를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세대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0 23:45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청년은 최고의 약자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있지만 청년은 사회에 던져진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사회적 자본이 작용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기본적인 삶의 질이 중요한 이유는 누구나 존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색안경을 쓰고서 과거를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경향들을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더 쉽게 인식하게 되어 있다.


                                                         ㅡ 칼 폴라니의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에서 인용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표발의해 본회의 참석 의원 199명 만장일치로 가결된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21일부로 시행됐다. 인성법을 주도한 단체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말한 손병두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정부가 인성교육을 주도하는 나라도 없거니와, 교육부장관이 5년마다 인성교육종합계획을 정하는 나라도 없다. 인성이란 정부의 입맛대로 측정하고 계량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가 동일한 것도 아닌데, 정부 주도의 인성교육이란 기성세대의 가치를 주입하는 것으로 왜곡되기 일쑤였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문명과 문화도 구별하지 못하는 유신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올랐으니, 인성을 제단하고 강제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되살려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독재자의 딸이 <국제시장>을 보기도 전에 ‘칼로 물배기’ 하던 부부가 태극기 하강에 맞춰 경례를 하는 장면을 언급할 정도였으니, 일제의 교육칙어를 베낀 국민교육헌장을 유신독재의 묘지에서 파내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민주주의를 만끽했던 국민이, 특히 인성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시민정신을 되살려낸 촛불소녀를 필두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자 이것이 못마땅했던 수구꼴통 어르신들이 인성교육을 통해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일베의 양성에 나선 모양새다. 철학과 도덕, 윤리와 양심, 정의와 공존의 영역인 개개인의 인성마저 관치를 통해 관리할 모양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새정치민주연합(비례대표를 할당하는 청년의 기준이 45세다. 청년이 이러한데 장년은 70세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러니 기득권 수호 정당이란 말을 듣는 것이다)과 알아서 기는 언론은 안중에도 없으니, 여름방학이 끝난 2학기부터는 전국의 초중교에서 유신독재의 양대 축이었던 충과 효가 난무할 터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인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학생들 때문에, 더 이상 정체불명의 애국심과 가부장적 효를 팔아먹을 수 없어 쫄쫄 굶던 안보교육 강사들이 전국을 누비며 유신독재와 국정원 공화국의 부활을 노래하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정작 인성교육이 필요한 자들이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진의 차이를 설명할 방법이란 없다



유신독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어르신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것들에 향수를 갖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구꼴통처럼 색안경을 쓰고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해도 국민교육헌장이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우파의 영구집권을 위해, 충과 효를 내세운 편향된 교육이 난무할 곳에 미래란 없다.



세대는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며, 이들을 오포세대와 이태백으로 만든 것은 수구꼴통 어르신의 유신독재 사랑 때문이다. 모든 언론에서 대통령 비판이 종적을 감춘 지금, 파시즘적 속도로 과거로 돌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퇴행이 무서울 만큼 비정상적이다.



1%의 지배엘리트를 배출하기 위해 99%를 자발적 복종의 노예로 만드는 교육이 본격화됐다. 한국교육이 그 의미를 상실한지 이미 오랜 전이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우파세력과 자본에 복종하는 노예들을 양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자신들은 죽어도 변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제멋대로 하려는 수구꼴통 어르신들이 주도한 인성교육진흥법의 본질이다.



P.S. 이 정도면 고의라고 봐야 합니다. SBS의 일베 이미지 사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본 궤도에 오르면 일베 이미지의 노출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접어들어 우파독재로 가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상파3사가 맨 앞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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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05 07:55 신고

    SBS가 또 일베 이미지를 사용하였군요
    참 문제입니다

    방송에 그런걸 버젓이 사용하다니..

    새눌당과 청와대부터 인성교육을 주구장창 시켜야 합니다

  2. 불루이글 2015.08.05 10:21 신고

    정권 창출 하지 못하면 방송법을 개편 하기 어렵고 방송법 개편 하기 전에는 정권 창출 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정개표가 공공연히 이루어져도
    언론이 이슈화 하지 않으니 국민들이 알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내년의 총선에서 어떻게 하든 여소야대를 만드는게 관건인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3. 참교육 2015.08.05 18:20 신고

    제목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승만이 서북청년회 만들었듯이 박근혜는 일베를 양산해 정권 유지를 호 싶은 겁니다.
    지금은 유신시대나 진배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05 22:39 신고

      네, 인성교육을 정부 주도로 하고, 5년마다 교육부장관이 정한다는 것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박정희 일가가 대한민국을 말아먹네요.

  4. 소피스트 지니 2015.08.06 22:57 신고

    저도 요즘 나라가 파시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것에 동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04:09 신고

      파시즘이 부활한 것은 분명합니다.
      공권력이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언론이 통제되면 그것이 파시즘입니다.
      권력과 자본 비판에 한계가 있는 언론의 자유란 대국민사기에 불과합니다.



책을 없애버리려는 자만이 비평할 수 있다.


                                                                  ㅡ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서 인용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질서를 세우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이들을 굴복시키고 배제시키는 완벽한 독재란 그 자신마저도 독재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자신의 세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을 인간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만드는 것은, 사막에 들어온 사람이나 사막을 떠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오아시스마저도 마르게 하기 때문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그렇게도 강조했던 어떤 시작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곳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뿐이다. 카네티도 자신을 노예로 만들었던 칼 크라우스의 실체가 모든 존재를 죽이는 완벽한 독재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성찰과 함께.





나는 이때부터 개개의 인간에게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주는 언어적 형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또 그들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충돌하여 튀어나가는 일종의 반동체라는 사실과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견해보다 더 큰 환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상대방은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는 더욱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외치면, 그들도 되받아 외친다. 이렇게 되면 문법 속에서 초라한 삶을 꾸려나가는 감탄사들이 언어를 지배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외침의 소리들이 마치 공처럼 이리저리 튀면서 지면에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란 거의 없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그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 아름답고, 추하고, 고상하고, 천박하고, 성스럽고, 속된 온갖 종류의 말들이 모두 이 떠들썩한 말들의 저수지로부터 끄집어내어 사용한다. 그리고는 그 말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리고 완전히 다른 어떤 것, 즉 그것이 전에 의미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 될 때까지, 그 말들을 되풀이해서 사용한다. 언어의 왜곡은 창세기적 혼돈에까지 이른다.



결국 칼 크라우스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들으려 했던 그의 자발성과는 달리, 그의 언어 사용은 그에게도, 그의 추종자에게도 어떤 자발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비트켄슈타인과 한나 아렌트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말과 언어는 경험의 산물이며 모든 사유의 출발점인데 칼 크라우스의 강연과 글들은 그 자체로는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어떤 추가적 경험도, 무궁무진한 사유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세계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릴 운명이었다.





칼 크라우스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치명적 모순을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벽한 독재를 꿈꾸는 절대 권력은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지의 일반적인 감퇴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면 어떤 권위도 누리지 못하고, 지속되는 어떤 질서도 세우지 못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타인을 현혹하고 흥분상태로 만들어 자신의 추종자로 만드는 독재자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피지배자들은 자신만의 밀실에서도 독재자가 가하는 공포와 폭력에 압도당해 어떤 사유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노예나 가축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설사 독재자가 무엇을 이루었다 해도 남의 것을 차용해 끌어 모은 추종자의 에너지ㅡ자발적인 희생으로 포장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한 것ㅡ로 이룬 업적이기에, 그것은 단지 신기루일 뿐이다.



카네티의 고백성사는 이렇게 종결되는데, 그가 《말의 양심》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창조의 근원인 사유의 자유가 사라지면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영원한 휴면상태인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노예였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힘겹게 자유인으로 돌아온 카네티 같은 깨달음이 없으면 ‘모든 창작은 인식의 조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자를 현대의 쓰레기로 전락시킨 폭력적인 세계와 혼돈의 시대, 1%의 희망 때문에 99%의 절망을 감내해야하는(조셉 콘래드의 소설에서 인용) 운명을 이해하고자 시작한 모든 지적 여정이 칼 크라우스와 비슷한 필자도 이것이 두려웠다.





한 때 자살만 생각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처했던 필자는 모든 지적 여정을 홀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그 방향과 사유가 올바른지, 원하는 목표에 이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한 마디로 내 지적 여정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잡식성 특징을 띠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에 많이 나오는 책들을 구입해 읽었고, 신문에 나오는 신간들 중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을 구입해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에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카네티가 칼 크라우스에게 사로잡혔던 것처럼, 필자 역시 위대한 저자들에게 사로잡혀서 한 동안 그들의 세상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수많은 석학들의 사유와 성찰은 나에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도록 만들었고, 지적 여정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고, 서로 충돌하는 부분에서 극심한 혼란을 주었다. 필자가 몇 번 집필에 도전했다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인식의 조급함의 결과였고, 끝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체 하던 일을 접어야 했다. 나는 석학들의 사유와 성찰을 내것으로 녹여내,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을 내놓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P.S. 신경숙의 표절논란을 지켜보면서 더욱 참담했던 것은 그녀를 옹호하는 평론가들의 주장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들이 제대로 된 창작물을 내놓게 하려면 평론가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평론으로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론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 문학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작가와 평론가의 선순환적 구조가 구축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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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2 08:21 신고

    문제가 왜 생겼냐는 원인을 풀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읽은 기억은 없고 기억을 믿을수 없고..
    대단한 모순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5:59 신고

      표절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의 끝에 이런 저런 책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인용을 밝히면 됩니다.
      소설과 시는 창조의 작품입니다.
      앞선 위대한 작가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신경숙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2. 耽讀 2015.07.22 13:09 신고

    누구나 표절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생각하면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하는 삶입니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 끝없는 지적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표절할 수밖애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6:00 신고

      표절은 밝히면 됩니다.
      " "로 표시하면 그대로 옮겼음을 말하고 ' '로 표시하면 수정해서 인용했음을 말합니다.
      얼마든지 표절이 아닌 인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표절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다. 제대로 된 사과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숙의 표절논란이 영원히 끝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글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을 읽고 쓴 것이라, 신경숙의 표절논란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표절논란에 대한 그녀의 대응이 뻔뻔함을 넘어, 그녀를 옹호하는 평론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경숙이 진정한 작가라면, 그것도 대단히 성공한 작가라면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합당한 대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






창작은 언제나 인식의 조급함이다.


                                           ㅡ 헤르만 브로흐,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에서 재인용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60년경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발표한 에세이를 연대순으로 묶어 《말의 양심》을 발간했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서 근대이성의 수도라 할 만한 빈에서 공부를 했지만, 바로 그 위대한 근대이성이 만들어낸 모든 성취들을 총동원해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의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작가로서 평생을 권력과 죽음에 천착했다.



작가는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시대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일주일 전에 한 무명작가의 기록을 보게 됐다. 그 무명작가의 기록에는 “모든 것은 끝장이 났다. 내가 진정한 작가라면 전쟁을 저지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개 작가에게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운, 그래서 상당히 오만하게 비칠 수도 있는 이 기록에는 또다시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내모는 제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었던 무명작가의 무력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온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 기록하지도 못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니 발발하게 됐으니, 거대한 악의 번성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명작가의 고뇌란 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무명작가의 비통한 기록을 ‘흥분과 초조의 상태’에서 읽은 카네티는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졌고, 무명작가의 기록이 작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말로 포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옹호하려는 의지이자 또 어떠한 실패도 자기 스스로가 속죄하려는 의지”임을 깨닫게 됐다. 





작가는 보통사람보다 말과 언어의 연금술에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 화려한 연금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작가의 진정성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어느 무명작가의 기록은 “업적과 전문성의 세계, 줄곧 정상만을 향하여 온갖 힘을 경주하는 세계, 정상을 향한 목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부수적이지만 다양하고 본질적인 것을 경멸하고 말소시키는 세계, 자기 파괴의 수단을 증가시킬 뿐 초기의 인간이 획득한 특성을 강한 한 질식시키는, 생산이라는 일반적 목적에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에 점점 더 변신을 금지하는 세계(이는 견고한 근대, 무거운 경제 위주의 생산자 사회에 적용된 것이지만)”에서 삶과 죽음을 천착하는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네티는 ‘문학의 종언’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후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산재해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면서도, “자기 시대에 예속된 맨 밑바닥에 있는 종”이자 ‘끊임없이 짖어야 하는 개’이기도 한 작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그가 자기 시대에 저항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성찰한 카네티가 처음부터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다가와 그의 정신세계를 정복했지만, 결국에는 반기를 들고 자신을 방어하도록’ 만든 칼 크라우스의 말의 항연에 빠져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인하기도 했다.



죽음의 증인이자 시대의 고발자로서 10여 년에 걸친 사유를 묶어낸 《말의 양심》의 세 번째 에세이가 ‘칼 크라우스ㅡ저항의 학교’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에 갇혀 그 밖의 모든 세계를 부정하는 말과 언어의 독재자이자 정신의 파괴자였던 칼 크라우스(벤야민과 아도르노도 크라우스를 인용할 정도)의 포로였음을 고백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든 살아남은 대중에게 남긴 ‘후유증·악덕·살인·탐욕·기만·활자의 오식’까지도 찾아내, 대중의 도마 위로 올려서 현장에서 즉결처분하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 지닌 칼 크라우스에게 빠졌다가 힘겹게 빠져나온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카네티는 다음과 같은 고백성사에 이른다.






맨 처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군중의 효과가 갖는 급진성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사람이 사건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반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것이 고발되고 단죄되기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었을까? 모든 고발자들은 법조문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견고한 어투로 행해졌으며 또 그 고발들은 결코 중단된다거나 끝나는 일이 없이 마치 몇 년 전부터 시작되어 앞으로도 한결같이 동일한 어조로 계속될 것처럼 들렸다. 그 어투는 법의 영역에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또 모든 것은 이미 건드릴 수 없는 확실한 기존의 법률과 같은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거기에는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긁어 상처를 내거나 낙서를 할 수 없는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카네티는 그렇게 칼 크라우스의 ‘법률’ 속으로 빠져들었고, 스스로 예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체의 이단을 인정하지 않는 칼 크라우스의 ‘법률’은 그의 것이 아닌 앞선 사람들ㅡ셰익스피어, 클라우디우스, 괴테, 네스트로이, 오펜바하 등ㅡ의 글이나 말에서 빌려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사용한 것들이었다. 그는 이것들을 연사로서의 특출한 능력으로 버무려 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공공의 적을 만든 다음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즉결심판을 통해 그의 추종자들을 양산했다.



카네티가 칼 크라우스의 최대 장점으로 들었던 ‘청각적 인용’ㅡ연설 중에 특정 인물의 글이나 말에서 일정 부분만 때내 그들의 의도를 왜곡함으로써 관중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악의적인 인용ㅡ도 길거리나 광장, 술집과 같은 곳에서 들었던 대중의 말들과 모든 종류의 신문에서 읽었던 문장들을 그의 연설 중에 적재적소에 써먹는 차용능력을 말한다. 일반의 작가와 지식인들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얘기를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칼 크라우스는 이런 ‘청각적 인용’을 통해 ‘도덕의 영역과 문학의 영역을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그가 연설하는 중에 나왔던 “힘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다정함, 힘 있는 자들을 추적하는 살인적인 대담성, 정신박약증의 가면을 벗김으로써 사물을 꿰뚫어보려는 욕망, 자신의 주위에 거리감을 만들어주는 오만함”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2부로 이어집니다). 




P.S. 칼 크라우스는 플라톤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철학자이자 선동가였고, 연설가였으며 정치인이었고, 탁월한 작가였고 시인이었습니다. 유럽 석학들의 저작들을 보면 칼 크라우스를 인용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마르크스보다 위대했던 블랑키처럼,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초의 유럽을 뒤흔들었던 인물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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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2 08:17 신고

    표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신경숙건은 표절 맞습니다

    왜 인정을 안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칼 크라우스..기억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5:54 신고

      원래 신경숙처럼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표절을 여러 번 한 것이 발견되면 어느 나라에서건 절필을 선언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탐욕의 국가가 됐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경숙이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고 자신이 벌었던 돈을 가난한 문인을 위해서 쓰던지, 여러 가지 대가를 치를 방법이 있었는데 그녀는 최악의 사과와 휴식만 말했을 뿐입니다.

  2. 왜 그냥 2015.07.22 08:40 신고

    자기 이름만 내걸고 글 못 쓰나.
    신경숙 일 있고 여기저기 이름없던 사람들 이름만 떠올라.
    점잖은 양반들은 말을 아끼더라.

    • 늙은도령 2015.07.22 15:56 신고

      창피해서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가 시인들을 여러 분 알고 있습니다.
      연륜이 높으신 그 분들은 너무나 참담해 얘기조차 안하는 것입니다.
      소설이 나오면 계속해서 표절논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대 미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예측 가능한 경력 향상, 임금의 꾸준한 증가로 그 특징이 규정되는 안정된 고용 관계 위에 토대를 두고 세워졌다. 내 집을 갖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며, 공동체와의 유대 관계를 통해서 안정감을 찾는 등, 직장 밖에서의 삶의 질은 고용에 대한 위협과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향상되어왔던 것이다.


                                                             ㅡ 카펠리,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에서 재인용




지난 일요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지인이의 부모와 방청객으로 참여한 한 어머님의 얘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안타까움과 절망, 희망과 힐링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지인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얘기들을 (상당히 재미없지만) 사회적 자본이란 관점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지인이의 현재를 응원하는 마음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회적 자본이 탄탄할수록 잘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탐욕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었을 때 평생고용(이 글에서 말하는 평생고용이란 한 직장에서의 근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과 국민복지, 사회안전망이라는 공생의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였지만, 직원들은 물론 가족과 사회 전체의 이익도 고려하며 공생의 삶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민이 존엄하고 탈락자를 방치하지 않고, 시민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합의하고 조정해 실제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생고용(과 평생교육)에 기반했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다양한 공동체 활동 참여와 자원봉사나 헌혈처럼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개인은 안정된 직장과 수입으로 인해 평생에 걸친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그런 안정감에서 나오는 사회적 신뢰는 다양한 협력과 평화로운 공존을 이룰 수 있었다.



노동(감정노동과 가사노동 같은 비물질노동 포함)의 가치와 연륜이 인정되는 이런 사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분배가 이루어져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정치적 자유가 더욱 공고해졌고, 법 앞의 평등이나 정의실현이라는 열린사회의 실현이 가능했다. 국가 차원의 복지가 미흡해도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역 공동체와 사회가 작동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을 전복해버린 것이 모든 영역에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작동하도록 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린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완전히 압도하던 시절인 19세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니 평생고용을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를 파괴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단 40년 만에 평생고용에 기반한 안정적인 세상은, 생산 증대와 이익 독점만 신경 썼을 뿐, 평생고용이나 누진적 조세제도처럼 부의 재분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무한경쟁의 19세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심해졌고, 사회적 자본은 적은 위험도 막아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경제가 곧 대기업의 이익’을 말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민주주의는 독점 자본과 권력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위에서 찍어 누를 수 있는 국가공권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벤야민의 말처럼 ‘야만적이지 않은 문명은 없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억압과 착취의 시대가 고착화됐다. 지인이 같은 장애인들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형편없는 감호시설로 보내졌다(미셀 푸코의 《광기의 시대》에 자세히 나와있다).  





시장자유주의 우파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진 이명박근혜 정부가 평생고용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집중공략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고용의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 위험의 사회화가 일상화됐고,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자살, 세월호 참사, 경주리조트 붕괴, 메르스 대란처럼 막을 수 있었던 비극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클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승자독식을 이룩한 개별기업 차원에서만 진실인 신자유주의 신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메르스 대란 등은 더욱 빈번하게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배제되고 격리되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지인이와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절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소비만 하고 살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고, 오늘만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지며, 효율성과 생산성도 하락하고, 상호신뢰와 이타심, 호혜성 등의 사회적 자본도 구축될 수 없다.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아(지인)의 부모가 세상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이 됐다고 말한 것도 사회적 자본을 파괴시킨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축적된 결과다.



우리 모두가 지인이의 부모가 될 수 있고, 지인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힐 수 있고, 지인이와 함께 걸어갈 수 있으려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를 거둬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영원한 타인이자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시킬 때 인간은 일베처럼 짐승 이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부의 재분배가 뒤따르지 않는 경제성장이란 말에 속지 말라. 1%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것을 민생이라고 포장하는 말에 속지 말라. 경쟁과 불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공짜점심이 없다는 말에 속지 말라. 타인의 것을 빼앗는 성공을 미화하기 위해 실패는 개인 책임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 극소수의 무임승차를 부각시키는 복지담론에 속지 말라. 상위 1%에 부와 권력과 기회가 독점되고, 그 폐해는 하위 99%에게 전가되는 세상은 그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보편적 진리인양 호도되면서 이루어진 결과다.



하물며 생존선 근처의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런 세상이 지인이의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와 협력, 호혜성의 문화를 높이는 평생고용이 인류의 자산 중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다시 깨닫게 됐을 때, 인류는 비로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누진적 증세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를 얘기하기 전에, 비정규직의 확대 적용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경영효율성을 주장하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신뢰, 이타적 협력과 평등한 자유를 구축할 수 있는 소득 보장과 복지 제공이 가능하도록 만들 때 우리 모두는 지인이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탄생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때, 불평등하게 주어진 조건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현재를 넘어 미래의 삶까지 결정하지 않을 때, 개인으로서나 조직의 일원으로서나 노동의 대가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지인이의 동료나 친구로서 삶이라 길을 동행할 수 있다.   




P.S. 로버트 퍼트남과 수많은 석학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태어났을 때부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체험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 사회적 자본이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래로부터 더 많은 정의와 평등, 협력이 이루어질 때 생존선 이하의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존엄한 존재로서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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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1 08:27 신고

    불편한 시선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얼굴에서 묻어 나올수 있는 따뜻한 배려가 진정으로
    필요할때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16 신고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끝물에 나오는 현상이라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백순주 2015.09.06 08:01 신고

    세종에 중증 장애학생들을 위한 '세종누리학교'가 조용히 첫 개교를 했습니다. 개발이 한참인 중심에서 벗어나 산 아래턱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장애아들이 예체능 과목만 통합운영 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요과목은 '개별학습실'에서 공부합니다.

    특수교육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엄마가 있다고 합니다. 장애아 엄마와 비 장애아 엄마.
    왜 이들이 무서워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린 그 이면보다 보여지는 현상에 집중해서 얼굴을 찌푸립니다.
    무엇이 화나게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존엄한 존재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날은 함께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6 09:12 신고

      네,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소비지상주의가 극에 이르면 외모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강해집니다.
      보기에 좋은 것만 쫓게 되고, 그것이 성형이나 지나치고 너무 어린나이부터의 화장 등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남성도 이제는 화장과 성형을 주저하지 않으니 외모에 대한 강박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외국인들과 얘기하면 한국여성은 너무 날씬하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얘기인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소비지상주의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부추기고 젊음에 집착하게 해서 멋있게 늙은 것을 회피합니다.
      이것이 쌓이면 세대간 갈등의 원인도 되고, 노인을 경시하는 것, 늙지 않기 위해 더욱 소비하고 성형하고 화장하게 만듭니다.
      결국 노후자금을 만들 수도 없고, 상위 1%만 좋은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까지 소비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아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의 무서움이 이것입니다.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으면 좋은 상품으로 인정되듯이....




올해 중부지방과 강원도가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슈퍼엘리뇨)의 영향 때문입니다. 4계절이 뚜렷했고, 강수량이 골고루 퍼져있었던 대한민국의 경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들었습니다. 최악의 가뭄과 지역적인 단발성 폭우도 이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한반도의 기후가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것을 넘어 불특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강원도와 중부지방의 황폐화(최악의 경우 사막화)도 각오해야 하고, 지역적인 집중폭우로 인해 수해지역이 속출할 수 있습니다. 



농업과 산업에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열대성 전염병이 지금보다 더욱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후에 맞게 변화를 해야 하는 산업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명박이 거대한 호수로 만들어버린 4대강의 수질오염과 급격한 물부족 국가로의 진입입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4대강 곳곳에 설치된 보 때문에 유속이 느려지고, 그에 따라 녹조의 범위가 넓어지고 정도가 심해지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질오염은 피할 수 없고, 어민들의 피해를 넘어 국민의 식수원이 치명적인 위협에 놓이게 됩니다.





기후가 아열대로 변화는 과정에서 건기가 길어지고 우기가 짧아지면 녹조의 폭발적 증가와 대지의 황폐화로 4대강의 수질오염은 국가적 재앙으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상수도처리장의 건설에 몇 십 조가 들지 예측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를 빌미로 수도사업의 민영화가 본격화될 것이며, 이미 그런 조짐이 부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토지의 사막화(화학비료의 축적도 고려해야 한다)를 막기 위한 비용도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4대강의 수질이라도 좋으면 사막화를 늦추거나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복지로 들어갈 비용까지 투입해 4대강의 수질오염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대한민국은 가장 빠른 속도로 물부족 국가로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물부족 국가의 핵심은 온갖 오염물질의 배출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으로 정해지는 것이라, 4대강에 아무리 많은 물이 담겨있어도 수질이 나빠지면 물부족 국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학(생화학, 바이오)약품이 대량으로 투입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라고 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건기가 짧은 대신 우기가 길어지면 4대강공사 때문에 수위 조절 능력을 상실한 지류와 지천에서 각종 수해가 빈번할 것이고 피해도 커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류와 지천에서 수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게 되면 그때는 국토의 반이 물에 잠길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4대강의 보들을 모두 다 철거해야 하지만, 그 비용도 만만치 않고,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몰라 쉽게 판단내리기도 힘듭니다. 아열대성 기후가 어떤 속도와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4대강에 설치된 보를 한꺼번에 철거하는 것은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국토의 경사면이 심한 한국의 경우 강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4대강 본류에서도 초대형 홍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대한민국은 이명박의 비용을 넘어 최악의 함정에 빠져버렸습니다.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국토를 2년 만에 바꿔놓았으니, 어떤 전문가들도 '이것이 답이다' 하며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이명박을 사형시켜야 하는 이유도 차고 넘친다!).





이밖에도 토목건축과 환경공학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수두룩합니다. 4대강의 보들을 철거해서 자연적 복원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런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정부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인데, 최소 22조원의 예산이 들어간 4대강공사를 없던 일로 만들기가 그리 쉽겠습니까?



현실이 이러한 데도 박근혜 정부는 국민 몰래 5대강공사를 추진하려고 했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문 하에 각종 규제를 풀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박정희의 유일한 공적인 그린벨트마저 무차별적으로 풀어주고 있습니다. 세월호특위의 예산과 인양비용은 '세금 도둑' 운운하면서도, 담합의 명수인 토건족과 전현직 관료들을 위해서는 수십 조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시장자유주의 우파 정부의 본질).   



우리는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형식적이던, 실질적이던 간에 국민에게 모든 권력의 원천을 돌려놓았기에, 최종 책임 또한 국민이 져야 합니다. 당대의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정치적 선택도 하지 못한 미래세대는 독박 쓰게 된 것입니다. 이명박을 사형시킨다고 해서 피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환장할 노릇입니다.



지구온난화와 4대강공사의 만남.. 어쩌면 이 둘이 만들어낼 미래상은 한반도에서 살아갈 모든 사람들에게 한일강제합병 36년보다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줄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관련 책들을 사서 공부한 결과가 참담하기만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 정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4월 총선에서 야권의 선거연합이 승리해야 합니다. 



특히 녹색당의 원내진출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원내에 진출하면 관련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그럴 때만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빠르게 망가지고 있는 4대강을 복원할 수 있는 정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정당투표에서 이런 점들을 고려할 수 있었으면 하고, 김종인 비대위가 보다 큰 차원의 선거연대에 나서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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