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링크해둔 기사는 두산그룹 회장이자 상공회의소의 회장인 박용만 회장이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다. 118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최장수 기업이자 1960년대까지 매출 1위 그룹으로, 'small is beautiful'이 모토였던 두산그룹을 식품 위주의 경공업에서 중후장대한 중공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 박용만 회장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10년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이런 변화를 성공시킨 그룹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족을 못 쓰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세계적 성공사례로 소개될 정도이니, 두산그룹의 변화는 현재까지의 경제계만 놓고 볼 때 신화적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그룹 형제들 중에서도 순수한 국내파라는 사실도 그의 성공사례는 타 그룹과 비교했을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대 수백 억에 이르는 자문료를 지급해야 하는 세계적인 컨설팅그룹의 구조조정안 실패확률이 높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박용만 회장의 성공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상당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
이런 박용만 회장이 한겨레와 한 인터뷰 내용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재벌오너들의 롤모델이 될만큼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가 말한 내용 중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진보적 가치에 배치되는)도 몇 가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거대 그룹의 최고 경영자이자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이런 철학을 표방한 것은 놀라울 정도여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임을 강조한 것과 부자 증세와 기업환류세에 찬성한 것까지 그의 인터뷰 내용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기업들이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가 법을 어기는 일탈 행위 때문이며, 기업들의 행위가 합법이라 해도, 규범과 관행에 어긋나면 오너부터 사원까지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이 땅에서 사라진 합리적 보수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필자는 기업 총수 중에서 정주영을 제외하면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심지어 유한양행 창업주였던 유일환 회장도 친일경력에 대한 사과가 분명치 않아 인정하지 않는다), 두산그룹 임원 출신들과 필자의 형님으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의 칭찬을 들었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했던 박용만 회장은 정주영 회장에 못지않은 기업가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거대 그룹, 즉 재벌의 오너라면 치를 떠는 분이라도 합리적 보수와 뉴라이트가 철저하게 왜곡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해 본다. 현실정치와 정치철학 사이에 간격이 있듯이, 현실경제와 경제철학 사이에도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이런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면, 박용만 회장의 경영철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경제적 평등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 체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에 대해서는 《21세기 자본론》의 저자인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한국 강연을 내년도 예산과 비교해서 다룬 글(내년예산으로 본 최경환의 궤변과 피케티의 진실)을 참조하면 작은 도움이나마 될 것으로 믿는다. 연재 중인 '늙은도령의 눈으로 본 근현대사'를 보면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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