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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워드

우영워드 ㅡ 미디어는 메시지다 2





재영은 언론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예언적 문구와 선험적 경고, 음모론적인 질문을 동원해 문제의 취재기획안을 마무리 지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찼던 초기의 문구에 비하면 그나마 경험과 세월의 풍화작용을 통해 많이 다듬어지고 순해진 문구였지만 휘발성만큼은 여전했다. 그 때문에 지난 3년 동안의 준비기간 중에서 기획취재안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높이려는 최근의 6개월의 노력은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피 말리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연이어 터지는 대형사건이 주는 과다한 업무량과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의 관심과 비정상적인 조직의 변화가 초래한 상황은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사로잡힌 대가치고는..’



재영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아서도 역사적 퇴행을 멈추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을 작심하고 비판한 결론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마음속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취재기획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취재량이 점점 늘어나는 기존의 업무와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기획취재팀에 속한 기자의 수도 줄어들었다. 결국 재영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잠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체중이 무려 5kg이나 빠졌고 늘 만성피로에 시달려야 했다. 사투에 사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가 비록 육체를 극한까지 몰고 가는데 익숙하다 해도 취재를 하러 지방이라도 갈라치면 취재차량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가 다반사였다.



‘욕도 많이 먹었어. 여기가 무슨 모텔이냐, 자신이 기사냐, 귀에 박힐 정도였으니.’



재영은 무엇보다도 정현 선배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녀는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여러 가지 조언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줬고 자신의 열정이 지나칠 때면 너무 나가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했다. 기자로서의 자신에게 그녀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가 연예본부로 발령(보복성 인사였다)난 후 상황이 급변했고 지금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취재기획안이 늦어진 것도 그 결과였다.



‘오긴 왔는데.. 가능할까?’



문제는 재영 스스로 생각해도 기획취재안의 휘발성이 너무 높아 어디서 뇌관이 터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혼자 진행하는 것도 버거운데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자체 폭발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따라서 기획취재가 몰고 올 파장을 대비해 치밀한 논리와 완벽에 가까운 사전 조사, 확실한 정보원과 사후대책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여기서도 정현이 물려준 경험과 그녀가 넘겨준 10년 치의 취재자료가 있었다. 그것은 기자로써 생명을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전적으로 선배의 덕분이었어.’



재영이 보기에 정현은 언론인의 전형에 가까웠다. 그녀와 함께 한 취재 경험은 아웃사이더적 경향이 심했던 재영을 세상의 중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해줬다. 재영은 이런 현장 경험을 통해 정치와 자본의 역학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이면의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게 됐으며, 거대 미디어의 힘과 영향에 대해 뼈 속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갈라진 안개 틈으로 흘깃 보이는 광경처럼, 생생하지만 뚜렷한 형태를 이루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마는 전체에 대한 세부 광경들의 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았다. 재영은 조각들이 만들어낸 전체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고 호기심을 넘어 사실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제야 볼 수 있었어. 실체의 추악함을.’



진실은 실체의 바로 뒤에 숨어 있었다. 비록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딱딱하면서도 울퉁불퉁한 표면에도 내부의 진실은 얼마간은 반영돼 있기 마련이다. 재영은 무엇이든지 접촉하기 전에는 파악하지 못하는 감각의 게으름을 깨워 이성의 칼끝으로 표면을 긁어냈다. 여러 가지 부스러기가 떨어져나갔고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하나하나 취재수첩에 기록하고 ‘우영워드’에 옮겼다. 그렇게 내부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측량할 수 없는 노력과 끈기, 불굴의 투지가 필요했다. 실체의 진실에 다가가도 모든 것을 보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어쩌면 이런 경우가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재영이 소화해내기 힘든 일말의 두려움이 자리했다. 지금까지 어떤 두려움에도 굴복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견고한 것들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와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는 법이다. 개인이 그 앞에 서면(실체 앞에 선다는 것조차 기적 같은 일이다) 터무니없이 왜소한 자신에 대해 비로소 깨닫는다. 두려움은 언제나 그런 과정을 통해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야 없지. 그건 내가 아니야.’



재영은 건조한 미소를 머금었다. 언제나 그는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런 미소를 머금었다. 그 다음은 오직 폭풍 같은 돌진만이 있을 뿐이다. 비록 지난 1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 언론의 실체까지 파고들지 못했어도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힘의 추악함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것만을 보고 전력을 다해 파고들었다. 그것은 무모하리만치 직선적인 방법이어서 위험 부담이 컸지만 그것이 재영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특유의 선택이었다.



‘시스템! 네놈의 실체가 어떻든 간에 기다려, 내가 갈 테니.’



재영은 가장 큰 타깃이자 최대의 언론 시스템인 보수언론과 국정홍보처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자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공영방송의 행태에 취재기획안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우선적으로 국내의 미디어 관련 법률을 검토했으며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가들의 법률과 자료들도 취합했다. 그렇게 해서 거대 미디어 통합과 집중에 관한 분석의 틀을 세웠다. 형이 남긴 파일에 요약돼 있는 언론 관련 서적들의 내용도 커다란 도움이 됐다.



‘거기까진 순탄했어. 대학원 때부터 구상한 것이었고 준비도 철저했으니까.’



재영은 취재 틈틈이 미디어의 관련 분야의 고전에서부터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 최근의 책까지 수백 권의 책들을 섭렵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관련 논문들도 확보해 촬영하거나 복사한 후에 ‘우영워드’에 담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난 20여 년간의 관련 기사와 칼럼, 논설, 뉴스와 각종 영상자료 등도 일일이 참조했다. 그 밖에도 언론 분야 전문가와 교수, 전ㆍ현직 관료(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자도 있었다)와 일부 야당 정치인(말만 많았지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도 취재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취재기회안의 객관성과 보편성은 물론 기획취재의 당위성과 논리의 정당성을 강화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가 축적돼 재탄생된 취재기획안은 무서운 속도로 설득력을 높여갔다. 하지만 ‘우영워드’의 도움을 받더라도 재영 혼자서 지난 60년간 쌓여 견고해진 거대 언론과 공영 방송의 장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혼자서 움직여야 했고, 그 때문에 1년이 넘도록 실체적 진실의 바로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가 최대 고비였어. 그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헤매고 있었을 거야.’



재영이 점차 지쳐가는 중에 뜻밖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그것은 유난히 추웠던 지난 1월의 한파가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 (처음에는 정현에게 온 전화였지만 담당자가 재영이라며 그녀가 돌린)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