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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검지로 1장ㅡ운명, 5년 전의 약속



“초식명은 천지빙결검류(天地氷結劍流)라 하네. 한천마결의 제1초지.”

 

 

검강천은 극음지기의 정수, 빙혈류를 천상천의 천상무극진기(天上無極眞氣)에 실었다. 빙혈류가 만든 적홍의 음강이 점점 투명해졌다. 색의 변화는 투명함으로써 오히려 적홍의 음강보다 더 강렬하게 보였다. 어쨌든 차가운 음강 아닌가.

 

 

"비록 제1초식이라 해도 각 빙강마다 다섯 단계의 변화가 있네. 단순히 음강의 격발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말과 동시에 그는 자신의 손 안에서 키운 음기의 결정체, 구를 맹렬하게 돌렸다. 수천 가닥의 음강이 일어나 앞서 펼친 것들과 함께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지잉! 징-!

 

 

공명이 대기를 갈랐고, 비온 뒤 수많은 빛이 구름을 뚫고 땅까지 쏟아지는 광경이 이것 아니면 무엇이랴. 그 장엄한 광경에 눈이 부실 때, 10장 정도의 길이까지 치솟은 음강이 먹이를 앞에 둔 매의 눈처럼 류심환을 노려봤다.

 

 

'대단해. 멋있어!'

 

 

그 변화를 지켜보는 류심환의 긴장도 고조됐다. 혹시 모를 죽음이 두렵기도 했고, 자신을 향해 펼쳐질 절초(絶招)의 끝없는 변화와 위력을 알지 못했기에 긴장은 더했다. 허나, 극도의 긴장은 집중을 증폭시킨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무림인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천상천의 무공, 그것도 천상천주가 직접 펼치는 절대 초식 앞에 서있었지만 증폭된 그의 집중은 점점 하나의 길에 이르고 있었다.

 

 

"처음엔 이중 하나가, 다음엔 두 개, 그렇게 열개도 백 개도 될 수 있지. 변화는 이미 말했고."

 

 

결국, 강기의 수가 가장 많을 때 격발될 것이며 다시 다섯 단계의 변화를 일으키며 날아들겠지만 류심환도 하나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그의 모든 잠재능력마저 깨웠다. 그에겐 아직 선택할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길의 끝에서 그가 잠재능력이 내민 손을 잡았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푸른 느낌이 빛살처럼 스쳐갔다. 지금껏 무의식에 자리해 어렴풋했던 영감(靈感)이 전율처럼 스쳐갔다. 전율의 끝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 가지 원리(原理)가 떠올랐다. 끝까지 밀고 갈 수 없었던 사유가 마침내 목적지 근처에 도달했고, 마치 류심환이 원리에 이르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번쩍! 쾅!

 

 

빛이 일었고, 검강천의 음강이 초신성처럼 폭발했다. 그 폭발은 한 개의 음강에서 시작됐으나 다음에는 2개, 그 다음엔 3개, 그렇게 10개가 연속으로 폭발했다. 이 모든 것은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났다. 속도를 따라가기도 힘든 무한정의 폭발을 향해 류심환은 그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영감이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고 그는 그것에 따랐다.

 

 

‘목숨을 담보로 무엇인들 못하랴. 믿음이 원하는 걸 줄 거야.’

 

 

그렇게 염원했던 무(武)의 최후 단계에 들어서는 것, 그 초입에서 류심환은 느닷없이 떠오른 영감이 자신에게 제안한 수를 굳게 잡았다.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류심환의 한 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아닌, 물 위에 떠있는 지푸라기처럼 자연스러웠다.  

 

 

‘모든 무공이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돌아온다(一極武原訣)!’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래서 어떤 위대한 초식처럼 보이지 않는 류심환의 한 수가 검강천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는 그냥 손을 뻗어 몇 번 흔든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우주의 폭발 같은 음강의 모든 흐름이 멈췄다. 류심환은 이번에도 그런 단순한 동작으로 검강천의 초식을 막아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한 성공이었다.

 

 

‘어떻게 이게.. 말도 안 돼!’

 

 

검강천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정말 상대의 단순한 동작에 천지빙결검류가 파식됐다. 물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지형에 따라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자연의 섭리 같기도 하고, 우주의 원리 같기도 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문득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나의 생각이 검강천의 뇌리 속에서도 떠오르려 했다. 뭔가, 새로운 어떤 것이 꿈틀거렸다.  

 

 

허나, 류심환의 느낌은 단순했다. 그것은 모든 무공의 결과를 이루는 근본에 관한 깨달음이었다. 그 동안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던 그의 깨달음이 일제히 기어 나와 의식에 다리 하나를 걸쳤다. 그 다리가 몸통마저 끌어올릴 것이며 결국 몸 전체가 의식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단순했지만, 그래서 더 명료한 것 같았다.

 

 

‘천지빙결검류에는 이 방식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었어.’

 

 

류심환은 조금 전의 장면을 하나하나씩 떠올려 분리하고 다시 합쳐 보기를 수 십 차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단순한 느낌에서 시작된 이해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거리 안의 깨달음이 됐다. 가만히 있는데도 무의식에 숨어 있던 놈이 이제 몸통까지 나와 의식에 머무르려 했다.

 

 

모든 무공이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돌아온다. 그가 마침내 그 끝에 이른 길이 거기에서 문을 열었다. 그 안은 인간의 잠재력의 보고이자 무의식의 신천지였다.

 

 

‘그래도 아직 한 가지가 남았어.’

“부탁이 있습니다.”

 

 

류심환이 말도 안 되는 현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검강천을 향해 말했다.

 

 

“부탁?”

 

“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천상지무를 보여주십시오.”

 

 

마침내 류심환이 천하 최고의 무공인 천상지무를 언급했다. 그가 여기 온 이유이자 목적인 천상지무를 언급했다. 이미 깨달음의 근간은 얻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무공의 끝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조금씩 다르듯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경이로운 체험이 환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자타가 공인하는 천상지무와 겨뤄야 했다.

 

 

허나 현재의 능력으로는 검강천이 펼치는 천상지무를 상대할 수 없다. 백이면 백 자신의 목숨은 지상에 소속된 것이 아닐 터였다. 천상지무를 경험하지 못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것이기에, 부딪치려고 여기까지 왔고, 온 이상 어떤 형식으로든 천상지무를 경험해야 했다.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류심환은 도박을 선택했고, 그 이후의 것들은 검창천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류심환의 어이없는 부탁에 검강천이 의외로 담담히 물었다. 그도 현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마친 것 같았다. 그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없지만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류심환은 여기까지 온 거, 결과가 무엇이 되든 끝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무인이 그러하듯이..”

 

“....”

 

 

류심환은 여기까지 말해놓고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뻔뻔했기 때문이다. 검강천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류심환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검강천이었기에 말없이 류심환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느리게 눈을 감았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 후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뒤의 얘기는 상대로부터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네, 무리라 하더라도.”

 

 

류심환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검강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울러 입술의 선이 방향을 위로 틀려했다. 상대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갖고 있더라 하더라도 자신이 천상지무를 펼치면 상대의 목숨은 그것으로 끝이다. 검강천의 심기가 약간 뒤틀렸다. 천상지무는 아무나 익힐 수 없는 비전의 신공이기도 했지만, 무신의 현신한다고 해도 보는 것만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천상지무를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천문의 규율을 깨는 일이었고, 그 대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천상지무를 배우기 위해 투입한 시간만 해도 상대의 나이를 훌쩍 넘을 것이었다.   

 

 

“너무 건방지군. 무신이라고 해도 천상지무를 보는 것만으로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자네 정도의..”

 

 

검창천의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순간적으로 휙 하니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아득한 심연의 침묵이 흐른 후, 뜬금없이 검강천이 웃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류심환의 패를 받은 것은 분명했다. 있을 수 없는 상대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그도 류심환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의 뇌리를 번개처럼 지나갔던 생각이 만들어낸 조건이었다.

 

 

“이 거래가 공평하려면, 나도 부탁을 하나 하겠네.”

 

 

웃음을 거둔 검강천이 말했다.

 

 

‘부탁? 천상지무를 공짜로 보여주는 대가로서?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무슨 부탁을?”

 

 

오히려 궁금해진 쪽은 류심환이었다. 검강천이 자신이 제시한 요청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지 너무나 궁금했다. 분명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인으로써, 그것도 그 끝에 이르고 싶은 야망을 가진 자로써 천상지무를 보는 대가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기에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든 자네를 찾을 수 있게 있는 곳을 알려주게. 부탁은.. 하게 된다면, 그때 하겠네.”

 

 

‘하게 된다면 그때 부탁하겠다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 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보여주는 것이 돼잖아?’

 

 

도무지 짐작할 수 없기에 류심환은 검강천의 부탁이 미칠 만큼 궁금했고, 검강천은 조건을 걸면서도 그런 조건을 실행할 날이 도래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이 상대에게 부탁할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천지대란의 서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순 같은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 될 수 있지만, 천상지무를 익힌 검강천에게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검강천이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다. 류심환은 그의 부탁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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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와 검강천과 하나의 약속이 이뤄졌다. 빌어먹을 운명이 비틀어버린 거대한 물길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내 첫 걸음이 5년 전의 이날에 시작됐다. 그것은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하늘이 마련해 놓은 또 하나의 운명이나, 거역할 수 없는 선택지 같은 것이었다. 인간을 구속하는 그 빌어먹을 운명을 따르든지, 아니면 거역해서 새로운 운명, 즉 완벽한 자유를 개척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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