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은 자신의 일초도 받아내지 못하는 류심환을 보며 작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와 대화할 때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는 자신이라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막강했었다.



헌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자신이 직접 키운 자들은 아니었기에 정확히 감지할 수는 없었지만 세외문의 십이 력 중 제천문으로 파견 나온 여섯 명의 력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자신이 키운 진정한 제천문의 힘 중에서 삼경과 사경의 기운이 사라짐을 느꼈다.



처음에 무천은 믿기 힘들었다. 그는 그들을 한 푼의 공기와 바람, 햇살과 구름의 기운을 담아 천년 동안 키운 전사들이어서 고금제일의 수준에 이르렀다. 느렸지만 하루하루 다져간 자들이었기에 가히 천하무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무천은 그들이 있는 한 자신은 류심환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믿었고 그들을 깨워 류심환의 안배를 저지시키기 위해 두 명을 삼혼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다음이 무영과 삼혼이었으며 그 외의 나머지들은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헌데 그 티끌 같은 존재들에 의해 자신이 키운 천하무적 전사들의 기운이 일환이 그랬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을 키우기 위해 쌓았던 공기와 바람, 햇살과 구름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무천은 류심환의 기도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무천은 삼경과 사경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자신의 최대의 적인 류심환의 기도에 엄청난 변화가 일자,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무천은 잠시 동안 그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 자신의 천년 연극이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점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단 류심환의 변화가 너무 뜻밖이었고 급작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느낀 류심환의 변화는 깨달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무위의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까지 갖고 있던 공력마저 사라지는 느낌이 분명했다. 이를 테면 류심환이 무공을 익히기 전의 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했다.



무천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류심환의 변화는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류심환 자신이 본신(本身)의 공력을 스스로 타인에게 넘기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것은 오직 미친놈만이 하는 짓이었고, 자신과 대화하는 중에 공력을 전달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무천은 류심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삼성의 공력으로 제천무한장(制天無限掌)을 펼쳤고 , 그 결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고금제일에 이른 류심환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처럼 튕겨지더니 회오리바람에 휘날리는 부유물처럼 제천무한장이 일으키는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부딪치고 휘날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똑똑히 지켜보면서.. 무천은 지랄 맞게도 자신이 느낀 것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류심환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펼친 3성의 제천무한장에 류심환은 한 문파의 수장 정도밖에 안 되는 무인처럼 너무 쉽게 무너졌다.



“어떻게..? 왜? 너는 이러는 것인가?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돌아와! 다시 돌아와 나와 전력으로 부딪쳐! 류심환!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돌아와, 돌아오란 말이야!!!”



무천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자신이 수억 번 양보한다 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류심환과의 대결이 이래서는 안 됐다. 류심환이 이렇게 쉽게 자신에게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그래야만 자신의 천년이, 그 작은 첨과 삭의 흠집이 자신의 완벽함을 갉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 뭐라 해도 천년을 이어온 전설이었고, 그 중심에 있는 자가 류심환이거늘 이렇게 쉽게..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퇴장은 그로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야! 이놈! 류심환!! 이렇게.. 이렇게는..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무천이 오히려 미쳐버릴 판이었다.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단 말이야. 천년 연극의 흥행 대박을 위해 다지고 다졌고, 삭하고 첨하기, 일탈과 부분 수정을 통해 완벽하게 진행돼온 것이 천년인데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어! 이럴 수 없단 말이야!! 준비한 것만 천년이란 말이야!!! 류심환 일어나, 돌아와, 돌아와 나에게 검을 겨누란 말이야!!!”



그때였다. 그가 미친 듯이 외칠 때였다. 무천은 류심환의 말이.. 그가 보낸 영혼의 말이 들렸다.



- 오직 하나만.. 너는 나와 나눈 대화만 기억하면 된다. 그 다음에 일어날 모든 것들은 내 뜻도 아니요, 더군다나 자네의 뜻도 아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하고 떠날 뿐이다. 운명이란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운명인 것이지. 내가 비튼 것이 새로운 운명이 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아니..? 왜, 왜! 내 영혼에서 너의 말이 들리는 것이냐? 나와 네놈이 있는 이 실제의 공간에서 들리지 않고 왜, 영혼에서.. 그 지겨웠던 천년의 기다림처럼 왜, 왜, 영혼의 울림으로 네놈이 말한단 말이냐? 돌아와, 류심환. 이놈 어서 돌아오란 말이야. 제발.. 제발 돌아와 나에게 검을 휘두르고 베고 자르고 찔러라. 크크크크! 켈켈켈켈!! 어서.. 빨리.. 다시 이 실제의 공간으로.. 크아아아악!!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 너를.. 너를 기다려온 시간만 천년이야!! 천년, 천년이라고!!!”



- 네 천년은 완벽하지 않았어도 그 세월의 깊이만큼 컸음을 인정하마. 네가 이룬 정기신일체의 성취가 내가 이룬 경지와 다른 두 명의 절대자가 이룬 경지를 거저 가져감으로써 이뤄진 것이라 해도, 네가 기다린 만큼의 세월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으니까. 나, 류심환은 그것을 넘지 못했어. 노력했지만 천년을 이어온 너의 힘을 이길 순 없었어.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야.



“크크크크!!! 컬컬컬컬!!! 잡소리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무천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손은 투명하게 변했다.



- 해서 내 마지막을 무영에게 남기려 해. 이것 때문에 너하고 많은 시간의 대화를 나누어야 했고 무영으로 하여금 실전을 더 치르게 할 수 있었어. 허나, 그 실전의 깊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실제의 시간.. 천년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너를 처음 본 순간 알았어.


그 때부터 내 몸의 공력을 하나씩 응집시켰어. 너를 속이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지. 그리고 내 간절한 바람에 그것을 실었어. 그것은 내 바람이어서 내가 선택한 것이고, 하나로 응집된 내 모든 것을 무영에 전했어. 다행히 내 바람이 무영에 이를 수 있었어. 삼혼이 기꺼이 신삼혼지문을 열어주었으니까.



“크크! 좋아, 좋아. 뭐가 어쨌든 좋아!! 대신, 무영을.. 그 떨거지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이 허탈함을.. 이 허망함을 무영과 나머지 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임으로써 풀 테다. 그 잔해들을 네 놈의 저승길에 노자 돈으로 얹어주마. 그렇게 갈 것이면 그것까지 가지고 가라. 모조리 죽여버릴 테다. 가장 잔인하게, 가장 고통스럽게.. 컬컬컬컬! 크하하하하하!! 켈켈켈켈켈!!!”



무천은 좀처럼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천년의 세월이 길고 거대했던 만큼 상대의 힘도 거대해야 그 끝이 의미가 있었다. 헌데, 자신의 진정한 적수라고 여겼던 류심환이 저렇게 허망하게 가고 있으니 무천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이런 끝은 있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너무나 분노해 차라리 허망함에 가까웠고, 끝내는 저주에 이르렀다. 



- 이제 신 삼혼지문에 무영이 이르렀으니 내가 이승에서 할 일은 다 끝났어. 이 말을 남기기 위한 내 본신 공력마저 사라지면 내 숨결은 이승의 것이 아니겠지. 비궁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억울한 것은 아니나 새 천년의 공기를 마셔보지 못하는 것만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야.


무천! 이로써 무영은 완벽해졌다. 그의 정기신일체가 너와 같음이요,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그 희생의 진실함이 모였어. 너는 그것을 넘지 못해. 다시 네 놈이 천년을 산다 해도, 그리하여 다시 더 강한 힘으로 돌아온다 해도 너는 무영을 넘지 못해. 그와 그들의 천년을 넌 절대 넘지 못해.



“미친놈!! 죽었으면 사라져. 네놈의 소원대로 비궁 밖의 공기를 맡게 해주마. 켈켈켈!! 가라!! 꺼져, 꺼지라고!!!!”



투명하게 변한 무천의 손이 흔들렸고 핏빛 안구에선 강렬한 안광이 폭사됐다.



팟팟!!



비궁의 대기를 가르는 아주 미약한 진동이 일었다.



퍼엉!!



굉음과 함께 류심환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비궁의 벽을 향해 날려졌다. 부딪쳤다, 류심환의 몸이. 그의 짧은 생이 웃음을 띤 표정으로 비궁의 벽에 부딪쳐선 그대로 뚫고 나갔다.



콰아앙!!





비궁의 백 장 거리에 도착한 삼혼이 주군의 영혼이 남긴 소리와 함께 결집된 하나의 힘을 받았다. 그들은 그것이 주군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아는 자신들이 용서되지 않았다. 신삼혼지문을 열어 결집된 힘을 받아 무영에게 넘기면서도 그 매개체가 된 자신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 크흐흐흑, 주군!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절대 없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주군.. 주군..



- 허허, 삼혼. 이렇게 더 젊어진 모습을 보니.. 허허, 무영의 곁을 잘 지켜주셨군요. 허허,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됐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함께 한 지난 삼십 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충분해서 넘칩니다, 허허..



-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충분하다니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충분하다니요.. 크흐흑! 주군, 주군! 어찌,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삼혼이 느낀 것을 그곳에 도착한 무영도 느꼈다. 그 역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음은 다르지 않았다. 류심환의 기운이 다 스러지는 것을 이곳이 아니라 초마인 진무결을 처단할 때부터 무영은 느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무영은 그 느낌에 가슴이 내려앉고 생각조차 멎었다. 부정하고 부정하며 날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제가 여기 왔는데.. 이렇게 성장해서 왔는데.. 아저씨.. 제가.. 이 범속한 제자가 스승님을 뵈러 왔는데..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왔는데.. 어찌, 어찌 이렇게..



- 허허. 됐다. 이렇게 보았는데.. 허허. 이런, 이런, 네가 이리도 늠름하게 자란 모습이란. 허허허. 스승이라니, 내 아들이라니.. 허허허.



- 아버님.. 내 아버님.. 크흑흑흑!!!



- 무영아, 슬픔을 거두고 준비를 하거라. 내 령의 힘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너의 가슴에 돋는 살의로 준비를 해라. 어서, 무영아. 무천의 힘은 내가 상상한 이상이야.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야. 내가 깨달은 일극무원결의 마지막 오의, 여의(如意)다. 이것을 통해 너는 정기신일체를 완성해 무심공신무중력(無心空身無重力)의 경지에 이르러야 해. 그것만이 무천을 넘어설 수 있을 거야. 어서 준비.. 하거라, 무영아.. 어서.. 무영..



류심환의 혼의 소리가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무영과 삼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했다.



- 알겠.. 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제가 준비할게요.



- 삼혼도 준비해주십시오. 진정한 삼혼지문을 열어주십시오. 천년 전설의, 그 비열한 거짓에, 그 안에서 먼지보다 못하게 떠난 사람들의 영혼의 한을 위해 신삼혼지문을, 그 위대함을 열어주세요.



- 크흐흐흑!!! 주군,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군의 명인데요. 저희의 단 한분의 주군이신데.. 그 위대한 여정에 몇 걸음 따라갔을 뿐인 주군의 삼혼일 뿐인데 열어야지요. 열어서 주군의 위대함을 증명해야지요.



- 무영아, 그리고 삼혼.. 영(靈)이란 무엇도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을 펼치는 것은 인간의 몸이니 반드시 무천이 깨닫지 못한 것을 무영은 이루고 삼혼은 지켜주십시오.


무영아, 부탁한다. 내가 사는 길은 네가 삼혼지문을 거쳐 너에게 넘어갈 오의와 그들의 새로운 깨달음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이뤄진다. 명심해야 한다. 그 둘을 일원무극결의 모든 감각이 하나로 귀결된 현(炫)과 관(觀)을 열어 이를 받아들여라. 해서, 영육(靈肉)의 최후 단계에 들어서거라. 여의에 이르러 일극무원결의 꽃이 만발하여 우주 간에 가득하게 하거라.



"......."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듣는 것인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류심환이 말했고 무영과 삼혼이 듣기만 하면 됐다. 이미 하나인 것은 말하고 듣기조차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 무영아 너를 믿는다. 삼혼 수고해주십시오. 무영아, 이제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어. 우리는 늘 함께 할 거니, 힘내서 반드시 끝을 잘 마무리하거라.



- 가십니까? 이렇게 다 버리고 다 주고 가십니까? 제가 무엇이 건데, 이리 주고 또 주어도 아직 모자라다 하십니까? 가시는 순간까지 주지 못한 것들로 힘들어 하십니까? 저는 넘쳐 어느 하나도 다 담아낼 수 없는데, 다 버리고 다 주시고 또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 어찌 이리도 제게 박절하십니까? 이 고마움을, 한없는 사랑을.. 저는 어쩌라고 이리도 박절하게 떠나십니까? 아아, 보낼 수 없어요. 보낼 수 없어요. 가셨어도 보내지 않을 거에요. 가셨어도.. 저는, 당신의 아들.. 이 무영은.. 크흐흐흑!!



- 가셨습니까? 가신 것입니까? 가셔서 편하신 것입니까? 벗으셨는지요? 벗어 이제는 홀가분해 지셨는지요? 그 지긋지긋한 운명을 벗어 이제는 자유로우신지요? 후인의 자리를 거부하겠다 하셨지만 결국, 그 어깨 위에 다 걸치고 여기까지 오신 주군이 이렇게 가십니까? 전설의 진정한 주인이 주군인데, 어찌 다 이루어 놓고 가십니까? 가셔서 부디.. 부디.. 자유롭게 다니시기를.. 삼혼의 주군이며 모든 이의 친구이신 새 천년의 아버지가 주군이심을 미천한 삼혼은 이제야 알겠나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무천은 비궁 밖으로 종이조각처럼 구겨진 채 날아간 류심환의 최후를 지켜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무천에게 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자신은 천년을 다시 돌릴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끝은 이래서는 안 됐다.



“말하라. 류심환.. 네놈이 직접 말하라. 일극무원결이던.. 지랄 같은 세 무공의 합일이건 간에 네가 꽃을 피웠으면, 하나의 꽃을 피웠다면.. 그것이 일극무원결의 끝이 아니라면.. 말해야지. 말해야 하는 게지, 자네가. 자네가 직접.. 일어나라. 일어나 말하라. 말하여 내게 검을 겨누어라. 류심환!! 이 개 같은 자식아!!! 일어나 덤비란 말이다!!!”



그때 류심환의 몸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채 날아가 생긴 틈이 하나씩 가루로 변하더니 하나의 신형이 비궁으로 들어왔다. 그는 무영이었다.



헌데.. 무천이 아무리 노력해도 무영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하나의 기도도, 실존하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무심함과 그 자유로움이 한없이 담담하고 가벼워서 그 자체가 자연이요 우주였다. 그것은 무천이 천년을 상상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어.. 너는.. 네놈은..”



무천의 신형이 저절로 뒤로 밀려났다. 그것은 몸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물러나 일어난 현상이었다.



“지금부턴 내가 말한다. 류심환의 아들, 나 무영이 말한다. 아니.. 그냥 알게 하면 되는 것이야. 아버지의 위대함을, 그 위대함이 준 희생의 고결함을, 그 고결함의 평등을 알게 하면 되지. 모든 깨달음은 그 극에 이르면 하나로 돌아옴을, 그 수많은 깨달음의 평등을 알게 하면 되지. 그리하면 되는 것이야.”



무영의 무심함이 신체의 허허로움이 진공의 상태처럼 완벽한 안정감이 흔들렸다. 어떤 깨달음이라 해도 그가 인간이어서 느끼는 슬픔과 그 안에 깃든 고마움은 숨길 수 없었다.



해서 그는 신이 아니었고 완벽하지도 않았고 기꺼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인간이었다. 인간이기를 원했다. 모든 평범한 강호인이 꾸는 하나의 작은 꿈이기를 바랐다. 새 천년은 거기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 거기에 들 수 없는 유일한 모자람 하나, 그 어리석음이 죽어 재가 돼 날아가더라도.. 그래도 남을 그 모자람 하나는 그에 들 수 없지. 이제 천년을 그 다음의 천년을 또 이어갈.. 그래서 영원히 이어질 진정한 모든 이의 전설에 들 수 없는 것이지. 그것을 내가, 내 안에 계신 아버지가, 위대한 무인 류심환 그가 나를 통해 말 하려는 것이야. 너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전설의 언저리에도 어슬렁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야.”



순간.. 무영의 눈빛에서 하나의 빛이 떠올랐다. 무명곡의 입구에서 두 명의 신형이 움직였다. 현성과 금강이었다.



"하여.. 너의 마지막이 그 천년의 시작임을 천하에 알리려 한다."



오라, 무천. 그 어리석음을 운명처럼 껴안고 오라! 






P.S. 천검지로는 제가 자살만 생각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때 썼던 무협소설입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도중에 건강이 악화돼 미완성으로 끝냈습니다. 소설을 쓰는 중에도 여러 번 건강이 악화돼 중후반부터는 관성처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허점투성이 무협소설을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어주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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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랩소디블루 2015.03.02 05:46 신고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2. 耽讀 2015.03.02 07:51 신고

    흥미로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耽讀 2015.03.02 07:51 신고

    흥미로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4. 꼬장닷컴 2015.03.02 11:06 신고

    기온이 좀 떨어 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힘찬 한주 되시기 바립니다..^^

  5. 박창식 2015.03.02 16:20 신고

    긴 여운으로 남는 작품입니다.
    연재 되는 내내 손꼽아 기다리며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02 22:36 신고

      감사합니다.
      언제간 시간이 되면 후편을 쓸 생각인데, 그때는 정말 노력해서 써야지요.
      철학적인 것을 녹이려다 보니 조금 어렵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즐거우셨다면 다행입니다.

  6. 박창식 2015.03.03 06:45 신고

    후편을 구상하고 계시다니 기대만땅입니다.
    무협의 세계는 주인공과 나를 일체화 시켜
    불의를 혁파하는데 있죠.
    이 대한민국의 잘못을 깨기 위해서는 무영의 의기와 힘이 절대 필요합니다.

    • 늙은도령 2015.03.03 16:17 신고

      현재의 정치상황을 녹여내 쓸 수 있도록 구상해볼 생각입니다.
      SF식 무협으로 현대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본격적으로 써볼 생각입니다.

  7. 박창식 2015.03.04 18:55 신고

    후편을 앍으려면 야당이 총선에서 이겨야 겠네요.
    화이팅입니다.


- 자네, 타초경사(打草驚蛇)라고 아나? 성동격서(聲東擊西)는?


- 헐헐… 나를 바보로 아나.


- 그럼, 됐고.


- 응? 됐다고…? 아니,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 그것도 잘 두드리면 재미있지. 지금처럼.


- 허, 나를 갖고 놀겠다? 너의 그 얕은 준비로 내 천년을 대체할 수는 없지. 네가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해서 그것이 타초경사건 성동격서건 달라질 건 없어. 암. 자네가 이룬 일극무원결의 성취로는 안 돼. 무영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고.


- 정말, 그럴까? 확신하나? 자네의 수정 극본에도 결점이 없다고 믿고 있나, 아직도? 하하하, 그렇다면 뭐, 나라고 더 할 말은 없지. 두 연극을 동시에 무대 위로 올릴 밖에야.


- 극본이 탄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에 대한 자질과 연기력의 차이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자네의 연극은 너무 갖춰진 게 없어. 준비도 부족했고, 해서 한 무대에 올릴 것도 없지. 그 어떤 것으로도…


- 주인공의 인기를 넘어설 수 없다, 이거 아닌가? 자네의 말은?


- 더 말해 무엇 하겠나.. 이는.. 하룻강아지가 범.. 어?

‘이것은.. 삼경과 사경의 기운에 이상이 생긴 것.. 일환에 어.. 어찌 이런 일이? 허면 정말 저놈의 말이..’


-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영 또한 네놈처럼 정기신일체다.


- 뭐라고? 무영이!


- 뭘, 그리 놀라나? 그것뿐이 아니야. 검강천은 무영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이를 알았지. 그리고 천상천와 역천마곡, 천외천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 그는 천상지무의 무공이 극에 이를 때쯤에야 한 가지 검결이 이상했음을 알았고 그것이 정기신일체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 그 또한 이를 추론해냈고 그때부터 대비했던 거야.


- 검강천이..


- 선천지체였던 검강천은 알 수 있었던 거야.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무영이 갖고 있음을. 해서 그는 자신이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어. 정기신일체는 세 가지 무공을 소화해낼 수 있는 유일한 신체라는 것을 선천지체의 한계에 도달한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이는 세 개의 무공을 다 취하려는 자도 정기신일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면 최고의 적이 될 수 있는 무영을 제일 먼저 제거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했지.

그가 혜준을 불렀어. 그 아이는 순음지체였지. 무영에게서 정기신일체 중 신의 일부를 혜준에게 옮겨놓은 거야. 그 대가로 검강천은 자신의 내공 3할을 아이에게 넘겨야 했어. 만일 그 3할이 그의 몸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는 천상무극독에도 중독되지 않았을 거야. 역천은 막을 수 있었더라도 대신 무영이 죽었겠지, 자네에게.


- ......


- 그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천년 전설의 허상을 벗기기로 결심했던 게야.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고 나와의 비무에서 그는 물을 줘 그 씨앗을 키울 사람으로 나를 정했던 거야. 나 역시 그의 뜻을 알았고 내가 무영을 가르치며 물을 줘 줄기와 몽우리까지 이끌었어. 대견한 것은, 해서 너와 다른 것은 무영이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 꽃을 피웠다는 거야.

헌데 검강인과 진무결의 순서가 바뀌고 자네가 자꾸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면 이젠 무영이 열매까지 맺은 것 같은데.. 맞나? 네놈은 천년을 관조했던 눈을 갖고 있는데 보이지 않나?


- ......


- 후훗! 이젠 말도 못하는군. 세 개의 무공의 위대함은 각각 존재함으로써 최강이지. 자네가 애당초 비틀지 않았다면 그러했겠지. 일극무원결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는 거야. 자네가 비튼 부분을 채워 어떤 무공이던지 간에 그 끝에 이를 수 있게 돕는데 있지.

등에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고 하지 않나. 자네가 비틀었기에 자네만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거기에 허점이 있었어. 나는 그것에 모든 것을 걸었고 여기까지 왔어. 이것이야, 너와 내가 다른 점이.


- ..해도 변할 건 없다. 내가 다 없애면 되니까. 정기신일체라 해도 천년을 단련시킨 나를 무영이 넘을 수 없어. 시간이 차이가 너무 커. 해서 안 되는 거야, 자네의 연극은. 더더욱 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가를 치러야지.


- 그래 네놈 말대로 무영에겐 시간이 문제였어. 그것을 극복할 묘안이 필요했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고민했어. 헌데 나에게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어.


- ...?


- 시간은 싸움이 되지 않지만 운칠기삼(運七機三)이 떠올랐던 거야. 시간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실전경험을 선택했던 거야. 네놈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실전경험만이 시간을 메울 수 있음을 알게 된 거야. 운을 줄이기 위해 삼의 기술을 최고조로 올리는 최고 무인들과의 실전이 필요했고 지금도 무영이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지.


- ...! ..놈!


- 후후. 그리 감탄할 것까진 없고. 네놈한테 듣기는 더욱 싫고. 어쨌든 일석이조였어. 이제 알겠나? 내가 준비해 무영이 완성시킬 새 천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크하하하하하!


- 놈! 내가 준비한 기간만 천년이다. 완벽한 정기신일체는 나 하나뿐이야. 그것으로 족한 거고. 앞으로의 천년도 마찬가지야.


- 다시 말하지만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은 결코 스스로 익힌 것을 넘지 못하는 법, 네놈이 무영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알겠느냐!

‘하지만, 자네는 나와 나눈 대화를 잘 기억해야 할 거야. 마지막 안배는 이미 닻을 올렸어. 자네가 천년 연극을 만들고 직접 그 무대에 오른다 해도, 자네는 나와 나눈 대화를 앞에서부터 마지막 말까지 잘 기억해야 해. 그것이 마지막 내 안배니까.’


ㅡㅡㅡㅡㅡㅡㅡ


한성과 철용의 합공은 마치 하나의 연인이라 해도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일극무원결로 그 결점이 보완된 파천태극무검의 제 삼초 단천령태극검류와 제 사초 태극어검단천류가 한성과 철용에 의해 펼쳐지니 그것은 완벽해서 너무 강했고 오히려 아름다웠다.



슈욱!



빛은 푸르렀고 검기는 간결했으며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아 신비로웠다. 오직 빛 다음에 소리가 있어 그것이 시전된 것을 알뿐이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아니 넘쳤다. 천하의 마인에겐 너무 아름다운 합공이었기 때문이다.



빙혈천마 사마천은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마기가 움직임을 멈췄고 그제야 드러난 처음 무공을 익히던 날의 그 깨끗했던 기운이 느껴졌다.



퍽! 퍽!



한 순간에 오백 년을 돌아간 그에게 미간과 심장에서 전해져 온 소리와 통증은 그 기운을 자신에게 돌려준 것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개가 꺾어졌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허전한 게 바람의 서늘함도 느껴졌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이 이런 것이라면 자신은 마공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검신과 도천 앞에 한 무리의 마인들이 나타났다. 이미 대결을 마친 준영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고 한성과 철용도 몸을 날렸다. 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삼영 옆으로 내려섰다.



“이곳은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오빠!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기원할게요. 힘내세요. 현성 사숙과 금강...도.’



삼혼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시선이 굳은 믿음과 함께 혜준과 삼영, 검신과 도천, 천상천의 4 명의 호법들을 스쳐갔다. 허나 삼혼의 표정은 어두웠다.



‘간절히 바란다. 아니길 바란다. 오직 주군의 부름이 그것을 의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무명곡을 향해 가던 두 신형이 그 입구로부터 백여 리 떨어진 곳에서 만났다.



“잘 지내셨어요. 현 사숙님.”

“너도 그랬느냐? 허허! 결국 우리가 다시 무림에 나오게 됐구나.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사숙님.”



그들은 사라졌던 현성과 금강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비궁의 입구에서 다시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러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크하하하하! 겨우 너희들이 나를 막겠다고. 크하하하! 크하하하! 감히 초만인 진무결과 열한 명의 지옥의 힘, 역천마곡의 정예들을 상대하겠다고. 어림없다. 류심환과 검무영 보러 이리 오라고 해라.”



진무결은 그들 앞을 막아선 자들 속에 두 사람이 없음을 발견하자 어의가 없었다. 당연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 이들을 상대하려 했다면 제천문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오늘로써 막을 내린 거짓과 위선의 천년이었을 때의 얘기다. 지금부터는 모든 이의 천년일 것이므로 우리라 해도 너희들에겐 넘친다. 덤벼라. 그것도 떼거지로.”



준영의 눈치를 힐끔 보던 한성이 먼저 말했다.



‘허! 이거 죽이는데. 내가 말했지만 멋있어. 도혼 할아버지가 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험! 분명 죽였어.’

“켈켈켈켈! 켈켈켈켈!”



진무결이 그저 바람 빠진 웃음만 흘렸다.



“넌 좀 빠져. 나설 때 나서야지.”



준영이 한성에게 말했지만 눈을 부릅뜬 것은 진무결이었다. 오해였다. 그것이 두 무리 간에 벌어진 천지개벽 같은 대결의 시작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


검강인은 만신창이 몸으로 겨우 집성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패했다는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은 그를 더 심하게 자책하게 했다.



허나.. 공포란 또 무엇인가. 자신이 고금제일을 꿈꿨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해 치러졌던 일방적인 대결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더 두려웠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무영의 어머니인 검강천의 아내를 겁탈하던 장면이었다.



‘이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인면수심의 말종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래, 역천의 정당성이 그것으로 사라진 거야. 허허.. 늘 마음에 걸려 죄스러움을 버릴 수 없었는데.. 허허.’

“이제 끝을 내지. 내가 힘들군.”



말을 하는 중에도 통증은 쉬지 않고 그를 강타했다.



“여죄가 적지 않은데.”

“허허. 그렇겠지. 자네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겠지. 한마디만 말하겠네.”

“길지 않게.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그래. 그거야. 내가 말하려던 것이 그거야. 미안했네. 내가 사람으로써 못할 짓을 했어. 그것은 진심으로 사죄하네. 미안하네.”



검강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점점 격해지더니 흐려져 갔다.



“...안 된다. 내가 너를 처단하기 전에 너는.. 검강인은.. 내 어머니를 겁탈한 너는.. 아직 그대로야 한다. 내가 너를 가장 치욕스럽게 죽일 때까지 너는 검강인 그대로 있어야만 한다.”



무영은 그의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특히 자신의 어머니에 관해서는 그가 사죄해서는 안 됐다. 그래야만 복수가 의미가 있고 어머니의 영혼의 일부라도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그가.. 그 짐승만도 못했던 그가.. 사죄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내 검에 가장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욕망에 눈이 먼 검강인이어야 한다.



무영이 일극무원결로 합친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정수를 끌어올렸다. 그의 검에서 투명하고 푸른빛이 폭발했다. 그의 분노가, 미칠 것 같은 허탈함이 폭발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영아. 복수가 다가 아님을 잊었느냐. 네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그 초식은 새 천년을 여는 순간에만 펼쳐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초식은 아직 아껴야 한다. 이곳에 와서 나를 만난 후에 펼쳐야 한다. 무영아, 너와 모든 이의 천년을 생각해라.’



류심환의 영혼의 말이 그의 마음에서 울렸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와 모든 이의 천년...

그 천년을...

위해...



무영은.. 검강인의 목을..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한풀이를.. 천상지무로만 끝내기로 힘겹게 마음을 바꿨다.



그의 검에서 푸른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투명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 빛이 이미 검강인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때.. 무영의 눈에 하늘 가장 푸른 곳에서 미소 하나가 번쩍이는 것이 들어왔다. 착각이었을까.. 내 죄스러움의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것은 분명 어머니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삼혼은 계속 날았다. 주군의 부름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생을 다하는 사람이 말하는 유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느낀 것은 주군의 부름이 몹시도 급했고 급하면서도 탈속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야 했기 때문에 급했고 그것을 결심했기에 탈속해져 그 부름에 숨결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삼혼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몸의 속도가 빛살 같다 해도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남았다.



‘주군이 선택이 신삼혼지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야.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지금까지 주군이 단 하루라도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있었던가? 주기만 했고 받은 것이 있었던가? 심지어 주변 한 번 돌아보지 않았어. 주군의 삶에서 천외천의 이름으로 산 기간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 허망함이 부처라 해도 다스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주군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시작한 새 천년을 위해 무영과 강호인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었어. 심지어 주군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칭송마저 강호에 남기지 않았어.’



불혼은 자꾸 눈물이 나오는 것이 비궁에 가까워올수록 심해졌다. 돌이켜 보면 주군의 삶이란 모든 것의 희생뿐이지 않은가.



‘주군은 가장 위대한 무인이었으면서도 스스로 그 자리를 포기했어. 그저 다음 천년이 모든 이의 것이 될 수 있다면 부모의 죽음도, 그 불효이 회한과 처절한 복수마저 가슴에 담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어디 그것뿐인가? 새 천년의 초석을 위해 삼영에게 각각 일 할의 내공을 전수했고 신 삼혼지문을 위해 또 일 할의 내공을 넘기셨어. 이제 주군의 몸에 남은 것은 5할의 내공인데 그마저 대부분 사라진 것 같아.’



도혼도 눈에 자꾸 차오르는 것이 사내로써 그리 부끄러운 눈물임을 감추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주군의 삶은 온통 준 것뿐이다. 일극무원결은 또 무엇인가.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결합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며 이를 위해 주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고 기꺼이 모두에게 나눠줬다. 무인으로써의 최고 기재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다른 무인들의 완성을 위한 무공 창조에 다 쏟아 부은 것이니 그 희생을 또 누가 알겠는가.



‘5할의 무공도 이제 거의 다 소모했을 거야. 무영이 비궁 바로 밑에서 제천문의 감시를 피한 채 천상귀원검과 여의일도파천황을 익혀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주군은 그 감시의 눈을 속이는데 남은 내공 대부분을 소진했을 거야. 어찌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또한 내 자신의 목숨과 명예, 행복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찌 주군의 발끝에라도 이를 수 있단 말인가. 헌데.. 그 주군이 우리를 불렀어. 아직 줄 것이 남았기 때문이야, 주군은.’



속혼의 눈에서 눈물이 허공중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갈 때 세 사람은 동시에 떠올렸다.



‘주군은 신 삼혼지문을 열어 무영에게 무엇인가 넘기려 해. 이는 주군의 죽음을 말하는 거며, 비궁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이 무영에게 필요하기 때문일 거야. 아, 대체 주군이란 사람은..’


ㅡㅡㅡㅡㅡㅡㅡ


검강인의 죽음을 확인한 무영의 마음은 무거웠다. 자신이 그를 죽일 때 그는 가장 포악해야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도 사람이었고 사람이어서 죽음에 이르자 그의 일부는 선해졌다. 그것이 못내 받아들이기 싫었다.



‘허나.. 사부님의 말씀을 따른다. 그 뜻의 위대함을 내가 받든다. 그래.. 어쨌든 원수는 갚았고 어쩌면 저승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승의 한을 다 잊으셨을 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 복수까지도 산 사람들만의 일이 아닐까?’



쉽지 않은 깨달음에 이른 무영의 시선이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초마인 진무결을 향했다.



‘그래, 검강인과의 인과는 이것으로 끝내자. 사부님이 부르시니 빨리 저 자를 처단하고 비궁으로 가야 해. 이미 삼혼 할아버지들은 떠났고.. 서두르자.’



무영의 몸이 어느 새 광소를 멈추고 살기로 가득한 진무결의 앞에 내려섰다.



“그렇지. 네놈이 와야 하는 것이지. 나머지 떨거지를 내게 보내면 안 되는 것이지. 크하하하하!”



진무결의 청아한 음성이 마기마저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룬 초마인이 진면목이 그것만으로도 넘쳐흘렀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냥 시작하마. 천 년 전에도 너의 무공은 졌고 지금 너의 무공도 무엇을 더 얹었던 간에 나에게 져. 그것이 섭리다. 상극의 원리가 아니더라도 바르게 간 길과 사술을 쓴 것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야. 그 처음은 이것으로 깨닫게 해주마. 간다.”



무영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망상재를 펼친 것이다. 그는 빨리 류심환에게 가봐야 했기 때문에 속전속결을 택했다.



순간 진무결도 사라졌다. 그는 극에 이른 마기를 통해 세상의 어떤 탁한 기운에도 숨어들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어도 상관없었고 대기에 떠다니는 황사나 탁한 연기라도 상관없이 스며들 수 있었다. 마기가 자연의 일부와 일치를 이뤄낸 것이다.



‘제법이군. 허나 탁한 기운은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망상재를 펼치자 무영이 움직이는 곳마다 실상과 같은 기의 흔적들이 생겼다. 그것은 남아 있는 잔상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실상 같은 기운들이었다.



‘허억! 아니.. 이것은 모두가 다 진기(眞氣)야. 무한공력이 아니면 불가능하잖아? 이는 신의 영역이거늘 어찌 저놈이 펼친다 말인가?’



탁한 기운 속에서 무영에게 다가가던 진무결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물론 탁한 기운의 일부가 무영에게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지. 탁한 기운의 단점은 흩어질 수 없다는 거야. 탁한 기운은 한데 모여야만 위력이 커지고 본래의 성질도 유지하는 법이지. 자연에 스며들어 몸을 숨겼다 해도 결국..’



무영은 파천태그무검의 제 육초 제마무림파천황(制魔武林破天荒)을 탁한 기운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펼쳤다. 수없이 생성된 그의 사십이 개의 진기들 중에 스물아홉 번째에서 푸른빛이 일었다.



그 순 번에 어떤 의미도 없어 보였다. 일곱 번째에서도 빛이 일어날 수 있고 사십일 번째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만큼 모든 진기가 다 무영 같았다. 허나 무영의 실체는 스물아홉 번째 있었다.



팟!



빛이 날아간 후에 짧은 소리가 일었고 그곳의 대기가 잠시 흔들렸다. 그때 진무결은 자신의 종아리 쪽이 따끔하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펼친 멸천귀원장(滅天鬼怨掌)이 무영이 만든 사십이 개 진기 전체를 휩쓸어가는 것을 보았다.



“크윽!”



따끔한 것은 통증으로 발전했다. 허나 그의 손은 다음 장강을 발사하고 있었다. 무영의 진기들이 다 장풍에 산산이 부서지는 중에서 다시 열 개의 진기가 생성됐고 이번에는 여덟 번째에서 빛이 다시 일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망상재를 구성까지 펼쳤고 이번 열 개의 진기 중 열 번째까지는 순차적으로 펼친 것이었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앞의 진기로 두 번 거꾸로 옮겼다. 결국 무영은 열두 번의 진기를 만든 것이다.



이는 초마인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종아리가 잘려나갔음을 알았을 테고 급격히 흔들렸을 내력 때문에 다시 모든 진기를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자신이 만드는 진기 중 마지막 것이 생성될 때 그 진기를 노리리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았다. 진무결이 격발한 멸극귀혼장(滅極鬼魂掌)이 정확히 열 번째 진기에 부딪쳤다. 그 결과는 흩어질 뿐이었다. 멸극귀혼장은 조금 더 나간 뒤 사라졌고 이미 흩어진 진기는 스르르 대기로 돌아갔다. 본래의 성질로 귀환한 것이다.



번쩍! 콰르르릉!



엄청난 빛의 폭발과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그 빛은 검이었으나 처음부터 모든 곳에 있었고 초마인 진무결 시야의 모든 곳에도 있었다. 그것은 푸른빛의 해일이었고 축제였으며 거력이었다.



진무결은 멸극귀혼장을 회수하며 멸천마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천지양단마장(天地兩斷魔掌)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빛의 해일이 일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천지양단마장이 격발됐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에 완벽하게 펼쳐졌다. 이를 위해서 잘린 종아리의 혈도를 짚어 지혈해야 하는데도 방치했다.



그것은 본능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대응이었다. 그가 초마인의 경지를 이룰 때보다 그 위력은 더 강해졌다. 미증유의 거력이 그의 손에서도 쏟아졌다.주위의 모든 것이 극을 넘어선 마기에 전율했고 숨죽였다. 그렇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점령한 채 무영이 일으킨 빛의 해일에 부딪쳐갔다.



두 기운이 충돌했다. 천지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충돌은 이전에는 없었다.



쾅아아아아앙!!! 콰아아앙!!!!

버언쩍!! 슉! 쉭! 쉭! 팟! 팟!



주변 수백 장이 흔들렸고 들썩이었으며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 모든 것이 그 충돌 여파로 천지개벽 직전의 혼란함을 드러냈다. 한참 열한 명의 지옥의 힘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삼영과 혜준, 검신과 도천, 그 밖의 다른 정, 사파 고수들까지 급히 물러나야 했다.



쩍! 쿠르릉! 우드득!



충돌의 여파는 반각을 이어갔다. 그 위력에 맞서 성한 것이 없었다.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졌고 오직 커다란 진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차츰 그 진공 속에 떠다니던 부유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충돌의 여파가 진정되자 조금씩 시야가 트였다. 충돌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그 시점에서 진무결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다. 충돌은 여파가 반각이 갔지만 그 사이에도 수천 번을 넘게 작은 충돌이 이어졌고 그것은 일종의 내공 대결과 비슷했다. 해서 내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헌데 그는 자신의 내공이 밀리는 것을 느꼈다. 우위를 점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공이 무영에게 밀렸던 것이다. 내력의 대결이 되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의 판단이 뿌리 채 흔들린 것이다.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작은 마음의 흔들림이 그의 몸이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그의 종아리에서는 피와 함께 마기도 쉴새없이 빠져나갔다. 무한 마력이라 믿었는데 잘린 종아리 혈관을 타고 들어온 검기는 마기와 상극이었다. 그것이 이제야 위력을 드러내며 그의 내력을 급격히 갉아먹었다.



그리고 번쩍! 하나의 투명한 빛이 일었다. 그 빛은 그가 본 빛 중 가장 강렬했다. 그 빛의 강렬함에 무영의 말이 눈부시게 빛났다.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이 이 초식에 의해 양단됐으니 그의 후예인 너 또한 그리하라. 이미 말했듯 천 년 전에 진 자는 천년 후에도 천상지무를 넘을 수 없다. 천상지무의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天上制魔奪魂검)은 한 번 펼쳐지면 목표한 상대를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목숨을 거둔다. 이는 상대방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둘로 양단하기 때문에 천상제마양단검(天上制魔兩斷검)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화극연을 벌한 것이 이 초식이다. 너도 그리한다.”



진무결은 믿을 수 없었다. 아직 내공 대결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데 하나의 진기가 더 생기더니 거기에서 빛이 일었고 그 빛은 놀랍게도 천상지무의 초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절대에 이른 두 무공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진 것을 믿기란 그의 무공지식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두 무공을 동시에 펼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각각의 무영이 각각 하나씩 펼쳤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믿을 수 없어.’



그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졌고 그 중 일부는 그의 몸이 양단되면서 두 개로 갈라진 뇌가 조금씩 더 한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위대한 마인, 그 극에 이른 마기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진무결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정확히 둘로 양단됐다. 피조차 튀지 않았다.



쩍!



한 번의 소리와 작게 두 번 쿵! 쿵! 그것이 다였다. 초마인 진무결이 세상에 나와 마의 극에 이르렀음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이 몸이 소리와 함께 마기에 의해 재로 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가 튀지 않았다.



진무결의 생각은 맞았다. 무영은 둘을 두 개의 진기를 만들어 발사했다. 하나로 합쳐진 것은 지금 펼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고, 그 직전에 사부의 말이 있었다. 새 천년을 열기 위해서만 이는 펼쳐야 한다고 했으니 그것을 따라야 했다. 무영으로서도 최후의 초식은 지금은 남겨두고 싶었다. 아직 그에게는 최대의 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무결은 검강인보다 한 수 위였어. 만일 내가 두 무공을 합치기 위해 일극무원결을 익히지 않았다면 결과는 반대였을 거야. 대단한 자였어.'



[혜준, 삼영. 뒤를 부탁할게. 믿어도 되겠지?]

[오빠.. 조심해야 해!]

[주군.. 아니 동생 잘 해.]

[그래 나도 믿어.]

[형님.. 편히 다녀 오세요. 이곳은 우리가 해결할 테니..]

[다들 고마워. 내 꼭 돌아올게. 아무도 다쳐서는 안 돼.]



전음과 함께 무영이 신형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그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건너뛰어야 했다. 분명 류심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


그 순간 류심환의 몸이 끊어진 연처럼 튕겨져 이리저리 휘날렸다. 무천이 손에서 격발된 장장에 류심환이 힘없이 나가떨어진 것이다.



“아니? 이것이 웬 일이냐? 너는.. 나 못지 않은 자인데..? 어찌 이리도 간단하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 류심환! 어찌 이렇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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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무천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자신과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 명의 환 중 일환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일환이 죽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설마...? 그럴 수 없어. 삼영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해.’



무천이 표정을 감추며 류심환을 쳐다봤다. 그 또한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것 같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무엇엔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변화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ㅡㅡㅡㅡㅡㅡㅡ


이곳은 천산의 정상! 선인(仙人) 같은 풍모의 한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주재자가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음! 무천이 무리하는구나. 현 무림에 정기신일체는 세 명인데 그 중 두 명은 이를 완성 직전에 이르러 있어. 무천과 무영. 허나 그 신체를 이루는 것에 차이가 있어.”



그는 여기까지 말한 후 눈을 감더니 무엇인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가 눈을 떴다.



“이번 일전에서 세외문은 빠진다. 무천이 할 수 있다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맞다.”



그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세외문주였다. 이로써 그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삼기(三氣). 십이력을 불러들여라.”

“봉명!”



그의 명령에 그의 뒤 일장 높이에서 소리가 들렸다. 헌데 거기에선 대기의 흔들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흐르는 바람 중에 한 마디가 슬쩍 빠져 나온 것 같았다.



“무천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승리자가 누구이던 간에 어차피 세외문을 찾아올 터, 천년을 기다리며 지켜봤으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승자가 나를 보러 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고.”


ㅡㅡㅡㅡㅡㅡㅡㅡ


삼혼이 날아간 곳에 두 명의 신형이 있었다. 존재하는 자체가 대기와 같은 두 사람. 삼경과 사경이었다.



“천년을 기다려왔을 텐데 지겨워할 것 같아서. 천년 동안 잠만 잔 놈들아.”



그곳에 둥실 떠있는 상태에서 도혼이 말했다. 헌데 이번에는 도혼 자체도 대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떠 있는 데도 그는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것 같았고 바람에 따라 신형이 흔들거렸다. 불혼과 속혼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크흐흐흐! 켈켈켈켈! 그래 천년 동안 잠만 자서 미치는 줄 알았다. 너희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제법이구나. 켈켈. 좋지, 한바탕 살육을 벌이는 것도.”



말이 끝나자 두 명의 신형이 대기에서 빠져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삼경이 말했고 사경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극도의 놀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건, 우리의 경공과 같아. 어떻게 저들이?’


ㅡㅡㅡㅡㅡㅡㅡㅡ


삼영은 제마단 백여 장 앞에서 두 명의 절대마인을 만났다. 그들은 이경의 말을 듣고 제마단에 거의 다가온 일소빙혈사 설지연과 빙혈천마 사마천이었다. 예상외의 만남이었지만 어차피 그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 삼영은 여기서 그것을 실행하리라 마음을 바꿨다.



“이번에는 영원히 보내주마. 다시 깨어나고 뭐 그런 것 없도록. 확실히 보내주지.”



한성이 준영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말했다.



“호홋! 젊은 것들이 말도 잘하네. 에그. 저것들 다 보쌈 해 먹어야 하는데, 호호홋. 애들아, 대체 어떻게 할 건데?”



설지연이 한성의 말에 징그럽게, 그러나 색기 넘치게 물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건데? 궁금하네. 어린 녀석들이. 범 무서운 것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 클클클.”



사마천이 삼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를 것 있겠나. 한성의 말이 정답이지. 말을 섞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시작하지.”



이번에는 준영이 사마천의 질문에 답하면서 상황을 아예 정리해 버렸다.







“이제 백리 남았다. 다 쓸어버린다. 크하하하! 초마인 진무결이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되는 거야. 천년의 진정한 주인에 오르는 거야. 크하하하!”



진무결이 광소를 터뜨렸고 그 뒤를 열한 명의 지옥의 힘이 뒤따랐다. 삼백여 장 뒤에서 역천마곡의 곡도들이 죽을힘을 다해 쫓아오고 있었다.



‘헥헥! 좆 나게 빠르네. 좀 늦추면 안 되나? 휴~ 수련을 더하든지 살을 빼든지 해야지 원 이건 도통 숨이 너무 차서. 헥헥!’



곡도들이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곡주라 대놓고 욕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다.


ㅡㅡㅡㅡㅡㅡㅡ


역천마곡 무리들을 쫓아가던 두 명의 신형이 갑자기 멈춰 섰다. 대기 중에 그대로 멈췄는데 바람조차 일지 않았다.



“문주께서 문으로 돌아오라는 명을 내리셨다. 복귀하도록.”



바람 중에 하나가 약간 흔들리며 하나의 말로써 풀어진 것이다.



“봉명!”



두 사람, 육력과 칠력이 명을 받는 뒤 대기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으! 가장 재미있는 순간인데. 천년을 기다린 일전인데..’

‘할 수 없지 상상으로 해결할 밖에야. 머리에 쥐나겠네.’


ㅡㅡㅡㅡㅡㅡㅡ


세 명의 환은 전력으로 제천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헌데 일환이 죽었다. 이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천의 계획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일단 제천문의 상황부터 살펴야 했다. 주군이 일환이 죽었는데도 자신을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류심환과의 대치가 만만치 않은 상황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세 명의 환은 마음이 다급했다. 자꾸 천년 연극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ㅡㅡㅡㅡㅡㅡ


두 사람이 있다. 어느 날부턴가 화전민이 모여 사는 곳에 들어와서 묵묵히 밭만 갈던 두 사람이 있었다. 꼬박 일 년을 그들은 밭만 갈며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그들은 화전민 터를 전부 갈고도 시간이 남아 터를 점점 넓혀가던 중이었다.



헌데 오늘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머물던 초가도 사라졌다. 그들이 이곳에 올 때처럼 그렇게 떠나간 것이다.



‘무명곡으로 간다.’

'주인이 명했다. 때가 됐다고.'





천검지로25 - 새 천년 그 시작을 향한 마무리2




- 헌데 그게 좀. 무영이 내 예상도 뛰어넘는 아이니까. 어쨌든 내가 무영과 삼혼, 삼영에게 준비시킨 안배의 첫 과실은 당연히 초마인이었지. 허나 무영은 그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아. 검강인을 먼저 삭한 것 같아. 그는 대의(大義)를 선택한 거지. 가슴 속에 담아 썩고 또 썩어서 그 증오의 흔적마저 어린 그의 살이 되고 피가 된 그 증오의 대상, 회한의 원수마저 새 천년이라는 대의를 위해 가장 극적인 개인적인 순간을 포기한 게지.



‘무영아 한은 풀어도 다시 매듭을 짓는 놈이란다. 운명과 그 이름을 같이 하는 질긴 놈이지. 이로써 네 한은 풀어졌지만 그 매듭만은 남을 거다. 그것을 내 안배의 마지막이 풀어줄 것이니. 무영아! 부디, 너는 운명의 질긴 매듭마저 풀어 내거라. 돌고 도는 것이 복수가 아님을 증명하거라. 부탁한다, 무영아.’


-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게야. 자네 말처럼 몸의 극대화를 이룬 자와 영혼의 극대화까지 이룬 자의 싸움이었으니까. 당연히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지. 이제 남은 건 하나 제천문. 자네와 그 떨거지들이지.


- 놈!


- 그 정도에 화낼 것까지는. 자네가 천년 동안 저질렀던 만행을 떠올려 봐. 그 짐승보다 못한 짓거리들을 떠올려 봐. 그러면 내 질문이 그리 화낼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야.


- …! 컬, 그 중에는 네 부모들도 들어있지. 크흐흐흐…


- 갈! 너의 더러운 입으로 내 부모를 말하는 것,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다.

나는 무영과 다르다. 내 가슴 속의 분노는 단 하나도 줄지 않았다. 여기서 끝낼 참이면, 내 부모를 다시 입에 올려도 좋다.


- 컬컬! 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 뛰는군. 천년 흥행이 그리 쉬운 줄 아나? 어림없지. 좋아. 이것은 내가 양보하지, 다음이 궁금하니깐. 천년 연극의 한 줄의 대사도 되지 못한 자들은 내 양보하지.


- 짐승만도 못한 놈! 그 대가를 치를 거다.


- 컬! 양보했잖아. 너도 흥분하지 말고 말해. 다음은 뭐야?


- 좋아, 그 부분은 인정하마. 이 부분만은 인정하마. 아직 후반부가 많이 남았으니까. 줄 것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그래, 이번은 넘어가마.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제 손으로 이 자를 벌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함을 탓해 주세요. 저승에 가서 이 불효를 어떤 것으로든 달게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영아 너무 큰 짐 맡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내 복수를 부탁하는 내가 많이 미안하다.’


- 참. 지금쯤이면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 후후! 없는데.


‘이환 삼환 사환 돌아와라. 육경도 돌아오라.’


- 그래? 이상하군. 이쯤이면 떨거지 중 하나는 갔을 텐데.. 여하튼.


‘이놈이.. 일환의 변고를 눈치챘나? 이곳에 있는 이상 알 수 없을 텐데? 설마 내 경지에 이렀을 터는 없는데? 아무튼 더 지켜보자.’


- 클클클,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 바뀐다!


- 큭! 아니라니까.


- 바뀐다.


- 무슨 자신감…? 지나치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지.


- 된다. 지나치지도 않고. 네가 뭘 생각하던 그 이상이다. 결과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렸고 무영이 실현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아. 다시 천년이 흘러도 이는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말해주마. 이곳에 들기 전 일 년 간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을 풀기 위해 움직였고 두 가지를 확인했지. 그 첫 번째, 삼재와 쌍비의 침입 후 화월곡이 천상천과 역천마곡에 드러났다면 당연히 제 삼의 세력도 이를 알 것이라 생각했지. 결국 피할 수 없다면 부딪치기로 마음먹은 것이지. 운명이 원한다면 들어주기로 했지. 비궁행을 결심한 이유네.


물론, 그 때까지 제 삼 세력이 천외천이라 생각했네. 결과야 같아졌지만, 여하튼! 제천에 의해 유지된 천외천이던, 자네 무천(無天)의 숨겨진 하늘, 태천(太天)이던 간에 제 삼의 세력이 천외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고 그전까지의 내 추측을 수정했네.


- …! 후후. 다음.


- 짐승도 웃는군. 하긴, 그것도 아쉬웠겠지.


- …! 다음!


- 그렇지, 인내는 그렇게 배우는 것이지.


- 다음!


- 갈! 인내하라! 후반부의 시작이니. 내 부모님의 죽음에서도 네놈의 졸개들이 흘린 흔적을 확인했지. 해서 이번에는 내가 틀었어. 절대 독점의 천년을 틀어보기로 한 거야. 안배를 하나 추가하고 참여를 확대하는 거로.


‘허나, 그것에는 하나의 안배가 더 들어 있다. 지난 육년은 하나의 안배를 더하기 위함이지. 진정한 숨김(秘)이 무엇인지 너의 심장에 검을 꽂으며 알려주기 위해서지. 이것이 내 극본의 핵심이다. 너의 핵심이 무대로의 자신의 등장이라면 내 핵심은 그 등장의 장면을 삭(削)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모르는 새 전설, 모두의 출발이다.’


- 강해진 삼혼과 삼영, 그 아이 혜준으로? 겨우 그것으로, 설마?


- 네 생각에 맡기겠다. 거듭 말하지만 혜준에게는 검강천의 안배가 있었고 네 놈의 존재를 최초로 감지했기에 준비한 거다. 곧 말하지.


- 후후! 검강천의 안배라? 그래도 재미없는데, 그들로 다라면. 그 정도로 천년의 연극을 종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을 텐데? 아닌가…?


- 네 생각에 맡긴다고 했다.


- 풋! 말하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지. 천년 동안의 감시와 조정, 수정과 끝내 제 자리로 돌려놓는 완성이라는 것이 거저 얻는 것은 아니지.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여하튼. 다음!


ㅡㅡㅡㅡㅡㅡㅡ


무영은 집성전의 금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자 일각도 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검강인의 무릎까지는 이곳에서 자른다 했으니 좀 더 확실한 수를 써야 했다. 무영은 일극무원결의 망상재를 선택했고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때 검강인은 공포가 극에 달한 상태, 하지만 그도 절대자 중 한 명이다. 아직 그에겐 남은 것이 있다. 해서 그는 중간 단계를 모두 생략하고 다음 한 수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걸리라 결심했다. 자신이 무영의 상대가 아님은 이미 손목과 발목의 절단을 통해 알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존재했던 천상무극진기와 빙혈류, 마교의 대법을 통해 얻은 천의 기운이 평상시에는 다스릴 수 있어 하나가 된 것이라 착각했음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것들이 자신이 복용한 천상천양신단과 함께 어우러져 절대공력을 이뤘고 천상지무도 극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사실 그는 수련과정에서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도 완벽하게 펼쳐졌으니까.



헌데 그것이 허상이었다. 네 가지 기운 중 하나가 천상천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극한에 이르렀을 때는 본연의 성질이 나온 것이었다. 그가 이를 깨닫는 순간 공포가 극에 이르렀지만 한편으로는 어차피 죽을 거면 단 한 번의 초식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일어나 자신의 몸에 배어버린 것을 지금 바꿀 수는 없었으며 그 이유로 이것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영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는 무영이 공격해올 때 천상귀원검을 펼치는 동시에 천의 무공, 태극전류섬(太極電流閃)을 펼치기 위해 상단전과 중단전의 기운을 하나로 모았고 하단전을 태극전류섬에 배치했다.



무영이 움직였다. 헌데 그가 사라졌다. 무영이 펼친 망상재가 극한까지 펼쳐졌기 때문이다. 신형 자체가 사라질 정도의 공간과 시간마저 단축하는 일극무원결의 정수, 그것이 극점까지 펼쳐졌다. 아울러 무영은 천상귀원검을 육성의 내력으로 펼쳤다.



검에서 나온 투명한 기운이 결빙체를 만들었다. 비록 육성의 공력을 사용했지만 천상귀원검의 정수가 발휘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그대로 재현됐다. 검강인도 무영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 결빙체가 시작된 곳을 보면서 천상귀원검을 전력으로 펼쳤다.



동시에 태극전류섬을 무영의 승천제마검 검병을 잡고 있을 팔의 위치를 가늠해 어깨와 심장을 다 포함할 수 있도록 연속으로 세 번 격발했다. 그 순간에 손가락이 세 번 털렸다. 심검을 펼친 것이 아니었기에 그쯤에 무영의 몸 일부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강인의 생각은 그랬다.



콰아아앙!



무영과 검강인에게서 나온 투명한 기운이 정면충돌했다. 엄청난 폭발음이 일면서 그 공기의 파장으로 인해 집성전의 금이 공간을 만들어 밖의 빛살들이 스며들 정도로 커졌다. 이어 지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사방의 벽도 갈라져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에 집성전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혼돈의 순간에도 두 기운은 정면으로 맞선 채 서로의 힘을 겨루었다.



휭!휭!휭!휭!



두 개의 투명한 기운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속도로 휘돌았다. 더 전진을 못하자 그 힘을 감당 못해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고 그 회전의 속도가 안력(眼力)의 범위를 넘어서자 집성전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집성전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검강인이 격발한 세 발의 태극전류섬이 무영의 어깨와 심장이 있음직한 곳으로 파고들더니 그대로 관통해 맞은편을 뚫고 나갔다.



퍽!퍽!퍽!



허나 망상재가 무엇인가. 일극무원결 다섯 가지 감각 중 태(態)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가. 존재 자체마저 잊게 하는 것, 해서 어디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펼쳐졌으니 태극전류섬이 관통한 것은 무영의 기의 잔상이 남아있던 곳이다.



이것이 망상재의 진정한 위력이다. 단순히 잔상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를 그곳에 일부 남겨서 완벽히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그때부터 검강인의 투명체가 밀려기 시작했다. 집성전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해진 무영이 다 무너져 내리기 전에 무릎을 잘라야 했기에 공력을 팔성으로 올린 것이다. 동시에 무영이 손을 펼쳐 무엇인가를 끌어들이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세 개의 빛이 태극전류섬이 만든 구멍을 통해 들어왔고 검강인의 무릎을 향해 폭사됐다.



“아니 이것은?!”



검강인의 놀란 외침처럼 그 세 개의 빛은 태극전류섬이 다시 되돌아 온 것이었다. 그 순간 내력에 밀려 뒤로 질질 밀려가던 그의 왼 무릎에 세 개의 통증이 일어났다.



퍽!퍽!퍽!



그 통증은 소리와 함께 구멍이 됐고 피가 터졌으며 뒤로 밀리던 검강인의 신형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었다.



“분이발이라 하지. 집성전에서는 여기까지.”



말과 함께 무영의 신형이 사라졌고 투명체도 흔적 없이 증발했다. 순간 검강인의 투명체가 힘 겨루던 상대의 힘이 사라지자 그대로 날아가 집성전 좌측면을 통째로 날렸다.



“크아아악!”



그제서야 무릎에서 시작된 통증이 신경에 전달됐고 뇌도 그것을 감지했다. 검강인이 그 안에 극도의 통증이 느껴지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흩뜨리며 그의 머리 위로 대리석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잘린 발목을 축으로 경공을 펼쳤으며 잘린 손목으로 대리석을 쳐냈고 나머지 손은 검을 이용해 왼 무릎의 주위의 혈도들을 찍어 지혈을 해야 했다.



쿵! 텅! 팍!



그는 온몸으로 대리석들과 부딪치며 집성전 밖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그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잘린 부위들 때문에 호신강기를 펼칠 수 없었고 당연히 금강불괴의 몸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대리석에 맞은 부위들이 그래서 더욱 아팠다. 뼈도 부러졌다.



“크아아아아악! 검무영!! 이놈!!!!”


ㅡㅡㅡㅡㅡㅡㅡ


삼혼의 합공이 삼경과 사경을 향해 펼쳐졌다. 무천이 틀어놓은 검결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 완벽해진 구 삼혼지문이었다. 삼경과 사경도 그에 대항해 제천무형거력장(制天無形巨力掌)을 펼쳤다. 구 삼혼지문을 무력화시키는 원리가 들어있는 장법이었다.



지금까지 오합을 치르는 동안 그들은 서로 간에 최정예의 수를 펼치지는 않았다.상대에 대해 서로 처음 접하는 것이라 오합은 일종의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였다. 특히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삼혼의 입장에선 더욱 그랬다. 삼경과 사경도 달라진 삼혼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이에 응했다.



그 순간 집성전이 통째로 무너졌다.이런 식의 일전은 그 순간 무의미해졌다.그래서 전력을 다한 수가 펼쳐진 것이었고 그 첫 합이 이번의 충돌이었다.



쾅! 쾅! 콰앙!



세 번의 충돌이 허공중에 일어났다. 주변 십장 안의 모든 것들이 이 충격의 여파로 흔들렸다. 헌데 신기한 것이 그 정도에서 파장의 위력이 끝났다는 것이다. 완벽해진 구 삼혼지문이 제천무형거력장을 흡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어? 반대로 되는 것이 맞는데?”



삼경과 사경이 믿을 수 없다는 경악성을 날렸다. 그들이 천년을 준비했고 삼혼지문 또한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삼혼이 자신들의 비전무공을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삼혼이 더욱 강해진 것은 감시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 하지만 그 근본이 바뀐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이 현상에 경악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주군이 운결 몇 개를 바꿨지. 해서 삼혼지문은 더 이상 남의 무공을 받아 전하는 매개로써의 역할은 사라졌어. 이것이 우리가 달라진 점이지.”



불혼의 말에 도혼이 자신이 먼저 말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분했다. 해서 껴들었다. 가로챈 것이다.



“알겠냐! 잠만 처잔 놈들아. 새 삼혼지문도 있는데 그것은 다른 놈들한테 써야 하니까, 이것으로 그냥 가라. 자식들, 왜 깨어나서 고생을 자초해. 크하하하하하하!!”



도혼이 통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려준다. 우리가 또 하나 배웠거든. 역반투일세. 그냥 그렇게만 알아. 이젠 깨어나지 마! 우리가 재워줄 테니까.”



도혼의 말과 함께 불혼과 속혼이 동시에 소리쳤다.



“돌아가라!”



그 순간 구 삼혼지문 속으로 흡수된 제천무형거력장이 튕겨져 나와 삼경과 사경을 향해 뇌전처럼 폭사됐다. 삼혼 각각의 내공이 그 안에 무려 8성씩 포함돼 있었다.



“헉!”

“엇!”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삼경과 사경의 몸이 제천무형거력장에 휩쓸렸다. 그들은 위험을 느끼는 순간 급히 대기로 스며들려 했는데 이런, 삼혼의 무공이 아니라 자신들이 펼친 장풍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대기에 스며들어도 이 장풍 또한 제천문의 무공이어서 대기로 스며든 삼경과 사경을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대기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내상을 입거나 몸의 일부분이 파괴되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대기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


삼영 중 준영이 일소혈빙사를 맡았고 한성과 철용이 빙혈천마를 상대했다. 일소빙혈사의 무공은 극음무공의 정수였고 그를 뒤받침 하는 내공 또한 가히 일절이었다.준영은 처음 십합을 조금 밀렸다. 십합까진 파천태극무검으로만 상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력을 오성만 사용했기 때문에 그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즐기고 싶었다. 제마단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일소빙혈사 설지연을 만났지만 제마단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고 해서 이런 일전이 다시없을 것 같아 이것저것을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



“호호홋! 토실토실한 것이 맛있게 생겼구먼. 왜 이리 앙탈이야. 얼른 와. 이 누가가 어루만져 줄게. 어영~ 어서. 호호호호!”



설지연은 상대의 강함도 좋았고 자신이 우위를 점함도 좋았다. 늠름한 것이 보기에도 좋았고 그의 공력을 자신이 흡수해버릴 생각이어서 더욱 좋았다. 둘 간의 교접을 생각하니 입이 찢어질 판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크게 웃어 가슴도 격랑 치게 만들었다.



“허! 이런. 칠백 년 묵은 몸을 함부로 놀리는군. 이제 볼만큼 봤으니 보낼 때가 된 것 같군. 어.. 칠백 년 묵은 처녀라. 허허.”

“그래서 더 완벽하지. 이 누나가 가르쳐 줄게. 호홋! 어서 오래니까.”

“아! 실수. 칠백 년 묵은 걸레겠지. 미안. 할머니.”

“뭐라고? 요놈 보라? 어린 것이 예쁘다고 봐줬더니만 기어오르려고 하네?”

“내가 왜 걸레 위로 기어올라? 미쳤어?”

“이..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아니, 죽이고 싶어 환장했어. 아주 오래된 걸레 할멈.”

“죽어!!!”



그녀가 정말로 욱해 극빙마혈공의 제 삼초 빙혈단혼절빙장을 팔성의 내력으로 펼쳤다. 팔성 정도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반경 십 장 이내의 나무에 서리가 끼고 바닥의 땅도 얼어붙었다. 개방에서 펼쳤던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이크! 할멈, 참!”



준영이 얼른 한마디 하고 몸을 회전시켰다. 호신강기로 막을 치는 동시에 회전을 통해 자신 주위의 공기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그 다음은.



“이상한 놈과의 대결에서 깨달은 태의 순상평(順狀平)이다.”



그의 외침과 함께 열기 덩어리가 된 준영의 신형이 빙혈단혼절빙장의 극음기에 부딪쳤지만 그냥 산들거렸다. 극음기가 비껴간 것이고 그 여파에 준형의 신형이 갈대처럼 흔들거렸지만 그것을 흔든 바람처럼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헛! 말도 안돼!”



설지연이 공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다급히 외쳤고.



“이번 초식은 무영이 깨닫게 해준 삼영지문의 여의무상파천류라 한다. 누구와 싸워도 최선을 다해야 하거늘, 넌 그렇지 못했어. 그 교만이 너를 죽음으로 인도할 거야. 이것으로 너의 칠백 년을 마감시킨다. 살!”

그의 검에서 빛이 번쩍했고 사라지더니 공간을 건너뛰는 시간을 압축해 설지연의 목에서 하나의 검 날로 재현됐다.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상평을 펼쳐 회전하기 시작한 몸이 극음기가 비껴가며 회전속도를 더욱 높여주었기에 그가 펼친 여의무상파천류는 가속을 받아 본래의 속도보다 몇 배는 빨랐던 것이다.



싹둑! 파!



두 개의 소리, 목이 잘리고 피가 튀는 것으로 일소혈빙사 설지연의 파란만장한 삶이 마감됐다.



‘이런. 말도 안 돼.’



그녀가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말은 앞서 뱉을 수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끝에 그녀의 몸이 얼음이 깨지는 것처럼 온몸에 금이 생기더니 이윽고 산산 조각나 사라졌다. 몇 개의 물방울이 대지 위로 떨어졌다. 나머지는 다 증발한 것이다. 그녀의 칠백 년과 일소혈빙사라는 희대의 마녀가 몇 개의 물방울로 무림 사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준영이 사마천을 상대하고 있는 한성과 철용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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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연극은 무대 위로 올렸지. 자네가 모를 뿐이지.

- 무영이 천상귀원검에 이어 여의일도파천황을 이뤘다고 해서? 컬컬! 두 초식을 이뤘다고 해서 무턱대고 올릴 무대가 아니야. 천년의 연극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어 빨리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야.

- 자네의 눈으로 보면 그렇겠지. 이미 천년을 너의 입장에서만 봤으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겠지. 아, 몇 번 수정을 했다고 했지? 그런 게야. 직접 살아 움직이는 것에선 완벽함이란 없어. 그건 삶에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 자의 개념일 뿐이야. 수많은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기도 하지만 우연이 그냥 우연으로 끝나는 경우도 숱하게 있어. 모든 변화와 단절, 비약과 우연에 열려 있는 게 삶이야.

살아 있는 연극이란 때로 남이 마련한 무대에 올릴 때가 더욱 쉬울 수도 있어. 혼자만의 삶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만물은 서로 얽히고설켜 상호보완적 경향을 취해. 반대의 경우도 수두룩하고. 단절이 지속을 보장하고, 비약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해. 자유, 그게 핵심이야. 창조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야. 확정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뭐 그런 혼돈 속의 질서이지.

스스로 구성이 완벽하다고 확신해, 탈고하지 않는 극본이면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어. 모방이 창조의 시작이니까. 너의 연극이 그래서 더 쉬운 거야. 완벽하다고 믿는 것에 늘 허점이 있지. 난 그것만 찾으면 됐어. 아주 작은 틈을 찾아내는 게 삶이고 미래에 투자하는 현재의 의지야. 그게 무엇도 가능하게 하지.

게다가 너의 연극은 천년 동안이나 최고의 흥행을 거둔 연극이라 관성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네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첨삭이란 너조차 관성을 되돌릴 수 없어 미세조정만 가능하게 된 거지. 그게 네 연극의 단점이야. 난 관성에 올라타기만 하면 됐으니까.

- ..베꼈다는 게냐?

- 아니. 검결 몇 자 수정한 것처럼 가장 느슨해진 각본의 일부를 조금 고쳤을 뿐이야. 네가 자네처럼 어리벙벙하게 하겠어? 물론 자네야 무엇이든 갔다 쓰면 됐지만, 중간에 들어간 난 대사도 고치고 연기 지도도 직접 해야 했어. 때론 이리저리 빈자리도 메워야 했고, 고친 각본에 따라 연기할 배우들도 새로 뽑아야 했어. 당연히 천년의 흥행에 성공한 자네와 같을 수야 없겠지.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어. 자네가 첨삭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었으니까.

- 뭐라고? 이놈이 감히!!!

- 허허. 이제야 이해를 하네. 그래, 자네는 지금 천년의 주재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이 된 거야. 나, 류심환이 썼고 무영이 주연한 연극의 첫 번째 관객!

- 이.. 노엄! 이.. 클클.. 클클.. 좋아, 그렇다고 하고, 다음!!!

- 하하. 너무 서두르지 마라. 성질을 내니 이제 사람답군. 좋아, 그 모습.

- 다음!!!!!!!

-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놈의 성미하곤.. 좋아, 지금부터 확실하게 느껴보라고. 연극 속에 갇혀 네가 정한대로 연기하다 허무하게 사라진 그 많은 배역들의 눈물과 피와 한을 철저하게 느껴보라고. 네 놈의 극본에 갇혀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눈을 뽑고 입을 찢으며 사지를 절단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수많은 희생들을. 지금부터 내가 그들의 한을 네놈의 영혼과 뼈와 살에 하나하나씩 각인시켜 놓을 테니.

- 쓰레기들 얘기를 내가 왜? 아, 참! 대역이라면 삼영을 말하나? 설마 혜준을 같고 그럴 리는 없을 테니.

- 마음대로 생각해. 이젠 네 생각이나 궁금증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혜준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게야. 그때 확인해 보라고?

- 진정한 가치라? 겨우 그것으로. 클! 너무 재미없잖아, 그러면?

- 상상은 자유니까, 너 꼴리는 대로 생각해. 아무튼 다시 얘기하면 이렇지. 이곳에서 보낸 총 6년간의 기간 중 5년은 무영이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하나로 합치는 기간이었어. 파천태극무검이 천상지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합쳐지는 것이지, 대등하게.

- 대등하게?

- 그래, 대등하게. 여기서 자네와 다른 것 하나, 어떤 깨달음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다 의미가 있다는 것. 하나의 무공이 독점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이지. 자네처럼 관념 속에서 무공을 익히고, 사변으로 경험을 대신하는 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 생명 말이야. 약동하는 생명!!

- 생명?

- 넌 존재도 아니고, 실존도 아닌 채 천년을 이어왔어. 너는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어디서도 실존하지 못했어. 네 각본 속에서는 한 자의 문자였던 것이 현실에선 실재의 삶이야. 숱한 우연과 단절, 변이와 지속이 난무하는 삶 말이야. 넌 이해할 순 있어도 체험하지 못했어. 해서, 무의 근본이 힘에서 출발한다고? 어림 반 푼 어치 없는 소리!!

- 삶.. 기껏해야 백년도 못 넘기는 삶? 클클,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이야. 그까지 삶, 체험하지 않아도 돼. 난 천년을 주재했어. 편재가 곧 집중이야. 난 언제나 연결돼 있었으니까.

- 그럴까? 그렇다면 왜 첨삭이 필요했지? 변수는? 그것도 안배했나? 모든 변수를? 편재가 곧 집중이라고? 그건 집중이 아닌 연결일 뿐이야. 어디서나 단속은 일어나. 그래서 변수가 생기고, 첨삭이 필요한 거야. 너의 연극도 그랬고. 지금 너와 나의 대화가 바로 그래. 알겠나? 다시 말하지만, 너의 연극,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니까.

-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네 놈이 천년의 극본을 육년 만에 바꿀 수는 없어. 암, 그럴 수는 없어. 안 돼, 안 돼. 안 돼!!

- 너무 자책하지 마라. 추해 보이니까. 천년을 영혼으로만 떠다녔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넌 너도 아니야. 누고도 아니야. 그저..

- 으드득! 감히 어디 앞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망발을!! 노엄!!!

- 망발이라… 이제 시작인데, 망발이라면? 아직 많이 남았거든. 너무 흥분하지 말게. 좀 더 들어보라고. 내 각본도 재미있거든. 사람이.. 사람? 뭐, 사람이라 하지.

- 다음!!!

-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래, 천년의 전설을 바꾸는 건데 마냥 쉽기야 했겠어? 나도 사람인데.

- 크.. 크.. 다음!

-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웃기라도 해야겠지. 허나, 두 번째로 내 연극이 자네하고 다른 건 이거야. 자네가 초마인을 죽여 삭(削)하고, 검강인을 제거해 첨(添)할 임시주인공을 내게 보내주었을 때,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지. 그것은 임시주인공이 연기가 아니라, 삶의 무대로 내려와 부모의 처참한 죽음에 순정(純情)한 피의 분노와 한이 너무 깊어 투명해진 영혼으로 내게 다가온 순간 이루어진 깨달음이었어.

그것이 너와 달라. 인간의 삶에 담긴 진정한 가치란 그 잠재능력으로 하여 인간 자체가 우주가 될 수 있음을 그 아이가 가르쳐 주었어. 천상무극독을 치료할 때 무영의 본능이 보여준 잠재능력의 무안함과 순정함, 그것이 나를 깨우치게 해줬어. 그걸 해탈이라 하면 해탈이고, 그걸 우화등선이라 하면 우화등선이지.

내가 씨를 뿌렸으나 아이의 아비가 물을 주었고 아이에 의해 몽우리를 맺어 비로소 완성된 것, 일극무원결이 바로 그 결과야. 이로부터 해탈과 우화등선의 길에 오르고 두 무공의 합일을 통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끝이 끝이 아닌 거라는 깨달음, 죽음에서 시작되는 것도 있다는 깨달음, 그게 해탈이고 우화등선이야.

삶도 운명도, 하물며 무(武)라고 해도 그 극에 이르면 하나의 원리로 귀결돼. 그게 무의 해탈이고 우화등선이야. 넌 집중했지만, 난 풀어놓았어. 넌 상승만 생각했다면, 난 하락도 받아들였어. 그 깨달음을 아이가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 지난 오년이었고, 나머지 1년은 그 과실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어. 바로 이것이 자네의 집중이나 독점과는 근본부터 다른 거야.

- 무의 해탈? 무의 우화등선? 그따위는 없어. 점점으로 나눠 편재할 순 있어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순 없어. 그건 무야. 무란 없는 거야. 관념이고 허상이야.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 일어나기나 하겠어?

- 그건 무가 아니라 진공이지. 무란 충만한 거야.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무엔 모든 것이 있어. 그냥 시공간에 드러나는 것이 없어 보일 뿐이지만, 무에는 모든 것이 있어. 그래서 무란 유의 부재가 아니라 충만이야. 다시 말해 우주인 거지.

- 철학적 유희는 그만하면 됐어. 네 놈은 일극무원결을 너무 믿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그것이 세 무공의 합일보다 더 강하다? 시정잡배가 말하길 개소리라 했던가, 네가 말한 것들이?

- 개소리도 극에 이른다면, 인간의 말이라고 못할 게 또 무엇이겠나?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일극무원결의 진정한 힘을 알 수 없어. 크하하하하!! 그게 너와 내가 다른 점이고 네놈이 다시 천년을 산다고.. 아니 뭐, 살아있던 떠 있든 간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진정 무영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여의일도파천황을 구현할 때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어떻게 여의일도파천황과 하나로 합쳤는지, 그 사이에서 일극무원결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네놈이 천년을 생각하고 지켜본다 한들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 얻는 것과 남이 이룬 것을 훔쳐가는 것의 차이를 네놈이 알 턱이 없지. 인간은 정신과 육체 외에도 영혼의 공간이 있어. 넌 그걸 이해하지 못해. 너와 나, 무영과 검강천이 죽음으로 안배한 것이 혜준의 사랑으로 완벽해지는 것을 너는 알 수 없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야. 무영과의 차이이기도 하고. 이게 지난 6년의 진정한 가치야. 천년보다 더욱 소중한.’



- 후후. 해서.

- 그렇게 총 육년, 나의 연극은 막을 내렸지. 네 말을 또 빌리면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한 연극의 전반부야.

- 전반부라고? 컬컬, 컬컬, 재미있어, 재밌어. 다음은?

- 먼저 4년이란 기간의 연기에 대한 대가를 너의 각본으로부터 받아내야 했어.

- 초마인과 검강인의 제거군. 당연히, 초마인이 먼저겠지.

-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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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너와 겨루려면 검무영과 그 떨거지들을 먼저 죽여야 한다? 크하하하. 건방진 놈. 이경이라? 뭐, 천외천이 아니라 제천문이라고? 컬컬컬! 뭐든 상관없어. 다 쓸어버리면 되는데 이제 와서 따진다 한들 뭐가 다르겠어. 좋아, 그래, 제마단으로 가마. 한 번에 모두 쓸어버리고 네놈의 본거지로 가지.”



초마인 진무결이 자신의 앞에 대기처럼 떠있는 이경에게 말했다. 그가 자신에게 한 말이 놀랍고 어의없는 것이어서 잠시 황당하기만 했지만 그 역시 이런 형태의 경공이란 처음 보는 것이라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잠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솔솔 흥미마저 일었다. 그는 원래 먼저 현 무림을 다 쓸어버린 후 천상천을 칠 생각이었다. 천외천은 그 다음에 멸문시켜야 가장 멋있는 결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천마성과 몇 개 문파를 멸문시킨 것이었다.



물론 뜻밖의 희생도 있었지만 천외천, 아니 제천문의 능력이 생각보다 커서 오히려 재미가 늘어났다. 그 결과란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 새로운 재미와 긴장을 자신에게 주지 않았던가.



헌데... 천외천은 껍데기고 실은 제천문이라고 했다. 저놈이 말하길 자신도 그 문파의 일원이라고 했다.

툴툴! 오히려 화도 나지 않았다. 지난 천년의 한이, 그 굴욕의 세월이 다 허망할 뿐이었다. 해서 순서고 계획이고 다 없애기로 마음을 바꿨다. 저놈부터 당장 없애고 싶었지만 그것은 재미가 덜할 것이어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마침 제마단에 검무영과 그 무리들까지 모였다니 이 살의와 허망함을 달래기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개 지옥의 힘과 곡인들은 들어라. 이제부터 무림을 쓸어버린다. 마음껏 죽여라. 살육을 즐겨라. 그 다음에 제천문을 쓸어버리겠다. 그것으로 천년을 바꾼다. 역천마곡의 이름으로 다시 무림 사를 기록한다. 일어나라. 마의 혼들아!”



초마인 만세!!

곡주님 만세!!

역천마곡 만만세!!!



천지를 흔드는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이 내뿜는 마기가 끝없이 일어나 하늘의 푸름마저 산 너머로 검붉게 기울게 했다. 마기 덩어리의 함성은 노을을 타고 제마단을 향했다, 놀라운 속도로.

그곳에선 지금, 무영이 막 열 걸음 째를 딛고 있었다.






천검지로23 -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5




“컬컬! 그런 것이었어. 천상천의 진정한 힘은 다섯 장로와 십팔 호법, 금제 당하지 않았어야 했던 십이 제마령, 삼재와 나머지 내궁 고수들이었어. 대부분 외궁에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나만 강해진 것이었어, 제기랄.”



검강인인 무영이 열 걸음 째를 내딛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모든 천상천 식솔들은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일부는 삼혼에게, 혜준에게, 검신과 도천에게 목숨을 잃었다. 온몸으로 번져가던 공포가 그들의 시신을 보자 일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모두들 최대한 물러나. 호신강기를 펼치되 이 갑자 이하의 무인들은 아예 집성전 밖으로 나가, 당장!”

검신이 두 절대자의 일전이 시작되려 하자 주위에 있던 각 파 대표들에게 그 위험성을 일깨워줬다. 그의 말에 각 문파의 대표들은 서둘러 물러났다.



허나 그들 중 단 한 명도 집성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생을 살면서 이런 대결을 보게 됐는데 누군들 그 자리를 떠나겠는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검강인이 툴툴거렸다.



“후후. 물러나야겠지. 컬컬컬! 내 판단이 잘못됐어. 그때 삼재가 아니라 내가 직접 움직여 너를 죽였어야 했어. 결국 내가 씨를 키운 셈이야, 클클클.”



무영이 검강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네가 직접 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네 잘못과 그 대가는 내 아버지 검강천 천주를 제거하겠다고 마음먹은 그 역천의 순간에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길게 생각할 것 없다. 지금부터 너는 죽어주면 되니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서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넌, 그렇게 죽어주면 되는 거야.”

“후후후. 자신이 지나치군. 검강천도 그랬지.”

“네 입에 내 선친의 이름을 올리지 마라. 한 번 더 올리면 네가 받을 고통의 크기는 그만큼 는다. 이미 한 번은 늘었다.”

“후후.. 컬컬. 이제는 말도 못하게 하는군. 허나 난 검강인이다. 천상천의 천주며 천상지무를 대성한 최초의 천주다. 여기 있는 놈들을 다 죽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너는 데려가야겠어. 원래 천주자리는 내 것이었고, 굴러 들어온 놈의 자식마저 없애야 천상천은 바로 서는 것이지. 천외천이라 해도 예외는 없어. 내가 원하는 만큼은 데려가야 하겠어, 클클.”



검강인의 자신의 검 천무신검(天武神劍)의 검병을 잡았다.



“하나만 얘기해 주지. 네가 알고 있는 천외천은 허상이야. 껍데기야. 천년 전설도 그래서 껍데기고. 그 뒤에 천년을 주재했던 세력이 있어. 그들이 있는 곳에 천검 류심환 사부님이 계시니, 너와 초마인 진무결을 없앤 후에 그곳으로 합류하면 천년의 전설은 막을 내리는 거야. 결국 천외천은 허상이야. 너는 껍데기가 간직한 비밀 속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야. 너의 삶 모두가 의미 없다는 거야, 알겠나?”



말을 마친 무영도 승천제마검을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이제는 복수의 완성을 이뤄야 할 시간,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뭐? 천외천이 허상이라고? 그 뒤에 다른 세력이 있다고? 크하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놈, 무영! 분명히 해라, 네 말이 정말인지?”



검강인이 검을 뽑은 상태에서 무영의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실은 죽어 지옥에서 확인해라. 일단 너의 손목으로부터 시작한다. 역천의 대가다. 갈!”



무영이 검을 뽑자마자 신형을 우측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검 끝을 튕겨 검강인을 향해 투명한 빛을 격발했다. 천상지무의 제 일초였다. 그가 튕긴 검강은 검강인의 손목을 향했다. 그 거리 안에서 이보다 빠른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속도로.



검강인은 무영이 한 말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으나 무영이 이미 몸을 이동했기에 그도 천상지무를 펼쳐야 했다. 그의 천무신검에서도 투명한 빛이 일었다. 동시에 하나의 검이 떠오르고 검강이 격발됐다.



천상지무 대 천상지무!



천년 전설의 검법이, 바로 그 천년 전설의 또 다른 검법을 상대하는 뒤틀어진 운명이 만들어낸 두 번째 일전이 시작됐다. 그 일전 첫 합은 투명한 두 개의 빛이 정면충돌하는 것이었다.



퍽!



두 사람 다 천상지무의 제 일초 천상태극뇌전류를 격발했는데 의외로 충돌음은 작았다. 다만 두 검강이 그 끝을 마주한 채 힘겨루기를 했다. 이런 모습이란 천년 역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두 개의 검강은 살아있는 생물인 듯 그렇게 서로를 향해 으르릉거렸다.



윙! 윙! 윙!



두 개의 감강이 반의반의 반각도 안 되는 순간에 만들어낸 수천 번의 충돌에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휘돌며, 엄청난 크기의 파장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발생된 파장이 두 검강이 이루는 반탄력에 밀려 맹렬하게 휘돌며 주위를 휘몰아쳤다. 그들의 첫 합이 집성전을 고려해 내력 대결로 간 것인데 그 대결의 여파가 순식간에 집성전 내부를 쓸어버릴 듯 퍼졌다. 두 사람에게서 최대한 뒤로 물러나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던 각 문파의 대표들이 이에 휩쓸릴 정도였다. 그 중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몇몇 장로급 인물들의 신형이 급격히 흔들렸다. 그들 중 일부는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때 삼혼과 검신, 도천이 그들을 앞에 하나의 기막을 형성시켰다. 무영과 검강인의 대결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반탄력을 흡수하는 성질의 기막을 펼쳤다. 그렇게 방어벽이 생기자 비로소 각 문파 대표들의 흔들림이 멈췄다. 그 순간 두 절대 절초가 대치한 곳에서 일고 있는 윙윙거리던 소리가 급격하게 커졌다. 두 사람이 내력을 올린 것이었다. 검강인인 이런 힘겨루기라면 자신의 내력이 무영보다 강하다고 판단해 승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내력을 올렸고 무영도 이에 뒤질세라 내력을 올렸다. 그는 어떤 식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모든 초식에서 검강인을 아예 압도해버릴 생각이었다. 상대가 느낄 공포란 그럴 때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휭!! 휭!! 휭!!



상승된 공력이 전달되자 두 검강의 끝에서 엄청난 속도의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마침내 하나의 화염을 형성했다. 충돌이 만들어낸 열기와 불꽃이 주변의 공기를 태우기에 이른 것이다.



콰-앙!!!!!



처음 제대로 된 폭발음이 터졌다.



쏴아악!!! 트트트특!!!



폭발의 여진이 집성전을 미친 듯 회오리 쳐 거력의 광풍을 만들었다.



쩌억! 쩌억! 쩍! 쩍!



집성전의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삼혼과 검신, 도천의 기막이 뒤로 크게 밀렸다. 순간 혜준이 그 기막에 하나의 기막을 더 얹었다. 그러자 그들이 펼친 기막을 뚫어버릴 듯했던 거력의 강풍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일전을 치켜보다 다음을 결정해요.”



혜준은 무영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문은 중요치 않았다. 그런 혜준의 시선과 함께 그들의 눈에도 검강인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내공에서도 밀리다니... 이럴 리가 없는데..’



검강인이 기혈이 흔들리며 솟아온 신음을 삼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번쩍! 차르르르륵!!



맹렬히 뒤엉키던 검강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검강인은 다급히 기혈을 조절해 파편들을 튕겨내며 다음 초식을 펼치기 위해 천상지무의 운결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시야에서 빛이 먼저 어른거렸다. 그것은 화염이 폭발할 때 생긴 강기의 수천 조각 중 하나였다.



“역반투라 한다.”



무영의 말과 동시에 검강인인 자신의 왼 손목에서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들었던 순간에 소림 끼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삭둑!



그 느낌은 이런 소리와 함께 극렬한 통증으로 변했다. 강렬한 신음이 검강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큭!”



헌데 자신의 손목을 자른 것은 자신이 펼친 검강 조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강에는 일정량의 마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었다.



툭! 파앗!



검강인의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잘린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검강인은 급히 요혈을 짚어 지혈했다. 그렇게 검강인 지혈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있어야 할 곳에 있었던 팔의 일부를 볼 수 없었다.



“마기만 돌려줬다. 천상지무가 아니어서. 다음은 오른쪽 발목!”



무영의 말이 검강인이 고막을 흔들기 전에 무영의 신형이 흐려졌다. 검강인의 눈이 본 것과 귀가 느낀 차이는 그런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삼혼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핫!”



검강인은 천무신검의 끝을 두 번 튕겨 천상지무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을 격발시켰다. 흐린 무영의 모습 끝에 두 번 번쩍이는 것이 그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펑! 펑!



검강의 정면충돌이 두 번 일어났다. 또 다시 내력의 대결이 일어났고 일합보다 더 큰 파장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집성전 전체가 흔들렸고 삼혼과 혜준의 기막도 크게 흔들렸다. 폭풍을 동반한 거력이 집성전을 삼킬 듯 휘몰아치던 그 혼돈의 순간, 두 내력의 폭발에 의해 수없이 만들어진 조각난 강기 중 하나가 폭발과 동시에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빠져 나왔다.



무영은 일합과는 달리 자신이 격발한 검강이 검강인의 검강과 충돌할 때 일극무원결의 수비식 망(網)을 동시에 펼쳤고 검강을 통한 치열한 내력 겨루기를 하는 동안 하나의 검기를 분리시켜 다시 역반투로 발사했던 것이다. 일극무원결의 위대함이란 이런 임기응변적 창조성에 있었다.



“이번에는 망을 더했고 역반투는 아버님 몫의 일부다.”



검강인은 그런 수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불신의 결과는 여지없이 슥! 하고 싹둑! 이었다. 찰라 지간의 차이를 두고 검강인의 귀에 두 소리가 인식됐다. 이어 신경이 감각을 건드렸고 이를 감지한 뇌에서 신호를 보내기 전에 검강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감각보다 본능이 빨랐다.



“크악!”

톡!



발목이 작은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고 엇갈리듯 그 위의 다리는 앞으로 밀려났다.



휘청!



발목이 잘린 여파에 발이 앞으로 나가자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턱!



잘린 발목이 바닥을 짚었고 피가 튀면서 다시 비명이 터졌다.



“컥!”



순간 내력의 대결을 펼쳤던 검강인의 검강이 검결에서 이탈했다. 무영의 검강도 같은 순간 사라졌다. 마기가 담긴 일탈한 검강인의 검강들이 사방으로 폭사됐다. 집성전이 그 파편에 의해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그 충격에 금이 깊어지고 간격이 넓어졌다.



쩌ㅡ억!!!



“이번 합에선 발목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영의 청아한 음성이 울렸고 각 문파의 고수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혜준이 그들의 앞에 기막을 유지해 퇴로를 확보해 주었다. 그 순간 삼혼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제마단 집성전 위 삼십여 장 위로 빛살처럼 날아갔다. 삼영은 이곳 제마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검강인이 급히 검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손으로 발목으로 가는 혈도들을 점해 출혈을 막았다. 검강인의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 봤다. 고금제일인을 꿈꿨던 자신이 허리를 비틀며 힘겹게 중심을 잡고 발목으로 서있는 것이었다. 이제 통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이 더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는 툴툴거리며 겨드랑이에 꼈던 검을 다시 오른손으로 들면서 고개를 들어 무영을 바라봤다.



그때 무영은 집성전에 생긴 금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했다. 그 정도면 검신과 혜준 등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어 검강인을 보며 말했다.



“다음 무릎까지는 이곳에서. 지금부터 어머님의 몫도 함께 포함된다.”



그의 말에 어머니이란 단어가 들어가자 검강인의 뇌리에 다시 공포가 떠올랐다. 그 공포엔 치욕 같은 수치심이 묻어 있었다. 허망함이 아무리 크고 자존심의 상처가 뼈에 사무쳐도 수치심을 동반한 공포는 그에게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검강인의 눈빛이 마음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그때 삼영에게 목숨을 잃은 일환이 쓰러져 있는 곳에 나머지 세 명의 환이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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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hur Jung 2015.02.02 17:00 신고

    아, 이런 글도 쓰시는군요.
    블로그를 잘 활용하고 계시네요 ^^

    • 늙은도령 2015.02.02 18:55 신고

      아, 예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죽지 못해 썼던 소설입니다.
      그때는 정말 자살만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이끌어갈 수 있게 해준 소일거리였습니다.



삼영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상대의 신법이 왜 자신들의 절초를 그렇게 쉽게 무력화시키는 것인지. 파천태극무검의 초식을 준영은 오성의 공력으로, 한성과 철용은 육성의 공력으로 펼쳤음에도 상대는 그 절대초식들을 너무 쉽게 무력화시키는 것이 바로 그의 신법에 깔려 있는 근본원리가 파천태극무검의 변화에 상극인 흐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극무원결의 시의 후반부 투원을 펼치자 이것이 보였고 따라서 지금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장풍이 그와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준영이 먼저 반응했다. 그의 몸이 모든 방위를 차단한 채 날아오는 장풍의 정 중심부로 빛살처럼 몸을 날렸다. 뒤를 이어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표시를 대신한 한성이 장풍의 맨 오른편으로 날아가더니 일환이 떠있는 옆 십장 거리에 이르자 몸을 직각으로 휘었다.



철용도 한성이 몸을 날릴 때 왼편으로 섬전처럼 날아가는 후 그 역시 일환의 십장 거리에서 직각으로 꺾어 일환을 향해 날아갔다. 검을 든 오른팔을 몸 옆에 붙인 채 날아가는 모습은 너무 빨라 하나의 선처럼 보였지만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그 위력을 드러냈다.



슉! 휘릭!



삼영의 몸에서 소리가 났고 그들이 검을 휘둘렀다. 헌데 그 검이 그려내는 선은 준영의 것에서 그냥 찔렀고 한성의 검에서는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으며 철용은 몸에 붙였던 팔을 밑에서 위로 들어 쳐 올렸다. 무공의 초자나 하는 검초들, 횡소천군(橫掃千軍)이나 직도황룡(直道黃龍)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을 시전했다.



다만, 그들의 내공과 신형의 속도가 주는 위력은 그 단순한 동작이라고 해도 가히 하늘도 베고 찌를 수 있을 정도였다. 기초 초식이 일절이 됐다.



“헛!”



삼영의 대응이 의외로 단순 그 자체로 나오자 일환은 급하게 터진 신음을 갈무리하며 자신이 펼친 제천다환장(制天多幻掌)을 거둠과 동시에 제천중강력(制天重强力)을 뿜어냈다. 그는제천다환장이 파천태극무검의 초식들이 만드는 극한의 변화에 상극이라면 제천중강력은 천상지무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권법이어서 삼영의 초식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한 가지 있다. 일극무원결이었다. 그는 삼영이 왜 그런 허무맹랑한 그래서 제천다환장에 적절했던 합공을 펼칠 수 있었는지 잘못 판단한 것이다. 삼영은 그의 판단처럼 천상지무는 익히지도 않았다. 해서 합공의 원리도 일환의 판단과는 달리 투원이 삼영에게 알려준 제천다환장의 원리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쾅!



거력의 충돌이 일어났다.



퍽!



무엇인가 누군가를 찌르는 소리가 충돌과 동시에 들렸다. 네 명의 입에서 신음이 그제야 흘러나왔다.



“크윽!”



철용이 지른 가장 큰 신음이었고 그는 튕겨 나온 검을 따라 이장을 밀려나다 그대로 삼장을 솟아올라 반원을 그렸다.



“컥!”



한성이 지른 중간 크기의 신음이었으며 그 역시 뒤로 이장을 밀려난 순간 땅을 발로 차며 그대로 허리를 활처럼 휘더니 그 탄력에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핫!”



준영의 입에서 새나온 가장 작은 신음이었는데 그는 두 걸음 밀려난 상태에서 검을 날렸다. 전설의 어검비행(馭劍飛行)이었다. 그의 생각은 철용과 한성의 의도와 다르지 않았다.



‘저 자가 갑자기 바꾼 초식은 중(重)을 근간으로 해. 해서 다음 초식을 펼치는데 찰나만큼이라도 늘어져. 여기에 치명적 약점이 있어. 투원이 그리 말했어.’



그 순간에 일환이 보기에.



‘어찌 이럴 수가. 제천무영보를 바탕으로 펼칠 제천섬전뢰(制天閃電雷)를 펼치려면 제천중강력이 느낄 수도 없을 정도만큼만 늦어지는데.. 이들의 합공이란 그 틈새를.’



삼영의 합공이 그 찰나 지간의 틈새에는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 류심환이 쌍비를 목숨을 취할 때 그저 빨리 뻗기만 했던 검의 기본 쾌검처럼. 이것으로 제천문의 천년 위세가 처음 그 축의 일부가 흔들렸다.







“호호호홋! 그 놈, 칠력인가 뭔가 하는 놈이 말한 제마단이 저것이란 말이지. 저기에 가면 고수들만 즐비하다고. 호호호홋! 너무 좋아. 기왕이면 고수피지. 손끝의 짜릿함이야 고수들의 목을 딸 때지. 호호호홋!”



일소빙혈사 설지연이 제마단 삼 리 밖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천마행공을 보는 듯 그녀의 옆으로 나무와 가옥들이 순식간에 스쳐 아득해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클클클! 제마단. 이리 가면 이제 오리 정도 남았단 말이지. 팔력이라 했던가? 그 놈 마음에 들어. 클클클! 거기 가면 걸리는 것마다 고수라고. 이보다 좋을 순 없지. 본 좌의 강림을 도대체 떠들지 않는 거야. 이번 한 번 만에 확실하게 알려주지. 나 빙혈천마가 강호에 돌아왔음을. 클클클클!”



사마천이 설지연처럼 한 마리 검은 새가 되어 전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설지연보다 이리 정도 뒤떨어져 있었지만 제마단을 향하는 것은 동일했다. 칠력과 팔력은 급히 자신들을 찾아온 이환과 삼환이 전한 제천의 명령에 따라 이 두 명의 절대마인을 제마단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에게 제천문의 금제가 가해져 있었기에 그들을 제마단으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서. 모두 죽여라.”



제천금마제혼대법(制天禁魔制魂大法)을 펼쳐 한 마디 했으면 됐으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크크, 빈 공간이라? 그것도 검강천이 안배한? 허허. 재미있어. 다음은.



- 후후. 재미있다니 다행이군. 이미 말했듯 오년은 그랬고 그 다음의 1년이 진짜 허송세월이었지. 지겹고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견뎌야 했지. 그 1 년 동안 무영이 처음으로 네 수하들의 감시가 없는 유일한 기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기간의 의미는 무영이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다 취한 다음 다른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기간이기도 했지. 이를 테면 극본의 전면수정이요. 연극을 새로 올린다고 할까, 뭐? 당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 뭐라고… 지금 전면수정이라 했나? 새로 연극을 올린다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3년 전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을 처음 펼칠 때처럼 무영이 파천태극무검의 마지막 초식 여의일도파천황을 다시 전력으로 펼치려는 그 순간에도 그의 영혼을 울리는 류심환의 혼어(魂語)가 있었다. 



“무영아. 이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그래, 하나의 거짓은 네가 지금 영혼 속에 담아 펼치는 두 초식의 결합이며 네가 지금 전력으로 펼칠 초식은 여의일도파천황은 그 거짓 뒤에 숨어 있는 비밀을 풀기 위함이야.”



무영의 몸이 떠올랐다. 승천제마검을 든 오른손을 단전에서 한 뼘 정도의 거리에 두고 검 끝을 눈의 높이로 맞추는 견적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승천제마검에서 푸른빛이 떠올랐다.



“1년이란 시간을 단축한 것을 축하해. 너의 자랑스러움이 네 선친 천상천주 검강천으로부터 나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의 시작은 내게서 시작됐다고 해도 그 끝은 돌아가신 선친 두 분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삼혼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너에 대한 사랑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허허. 내가 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이 기쁜 순간에.. 네가 1년이나 시간을 단축했는데.. 허허. 이 아저씨가 오늘따라 왜 이러는 것이냐. 무영아. 마음껏 펼쳐라. 너의 세상이 왔음을 알리고 새 천년이 이로써 시작됐음을 또한 알려라. 그 안에서는 누구도 위에 있지 않고, 누구도 아래에 있지 않은.”



“네, 아저씨! 그런 세상을 꼭 보여드릴게요. 그 시작은 아저씨의 희생에서 비롯됐고 그 끝에서도 함께 하고 있었음을 천하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 아버님. 지켜보고 있지, 아빠, 엄마!”



빛이 폭발했다. 해일 같은 빛의 축제가 시작됐다. 그 처음엔 빛이었으나 그 빛은 검이었고 그 검은 어디에도 있었다. 해서 처음부터 빛이요 검이었다. 그 순간에 무영의 영혼 속에서도 하나의 검결이 운용되고 있었으니 이것이 이날의 진초였다. 제천도 무천도 이를 알지 못했고 이에 류심환은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드디어 이루었다. 내가 무림 천년 사에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렀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무영아 네가 이룬 거야. 오직 너만이 그에 이른 거야. 축하한다, 무영아.’



무영은 자신의 영혼이라는 우주를 떠올리고 그 무한대의 공간에서 상상으로 천상귀원검과 여의일도파천황을 일극무원결에 의해 하나로 합쳐 그 결과를 전력으로 시전했다. 그것은 생명의 약동이었고, 추진력을 촉발시킨 무한한 진화였다. 그 위대한 검결이 운용되고 그만 알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어 무영은 자신의 성취를 류심환의 영혼에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나간다. 답은 일극무원결에 있었어. 이제, 아저씨의 뜻을 다 이루었어. 그것도 1년이란 시간을 단축한 채. 만나면 아저씨께 자랑해야지.”

‘이는 아저씨도 함께 이룬 것이에요. 제가 아저씨고 아저씨가 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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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년 전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완성해 그것을 처음으로 펼칠 때였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뜻밖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주목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선천지체가 천상귀원검의 검결에 따라 온몸에 충만해 있는 천상무극진기를 하나로 모아 단전을 출발할 때 무영은 검결이 운용되는 그 시발점에서 아주 미세한 공간이 비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천상지무의 최후 초식 천상귀원검을 펼치려면 온몸에 있는 천상무극진기를 모두 써야 하는데 무영도 이를 처음 펼치는 것이어서 이제까지 자신의 몸 속에 이런 공간이 비어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천상귀원검을 완성했건 안 했건 간에 무영의 몸은 이제는 순의 경지에 이르러 있어 몸 안에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선천지체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무영은 천상무극진기를 다 꺼내니 비로소 드러난 새로운 공간에 의문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검결의 운용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어서 판단을 내리기가 오히려 어려웠다. 그가 느끼는 그 공간은 자신에게서 다른 누구에게 무엇이 넘어가 생긴 빈자리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를 이해할 방법은 없었다. 그때 무영의 마음에서 다시 류심환이 전해온 영혼의 소리가 들렸다.



“무영아, 멈추지 말고 그대로 천상귀원검을 펼쳐라. 그 빈공간은 너의 선친인 검강천 천주께서 안배한 것이니라. 어떤 의혹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답은 혜준에게 있으니 너는 지금 천상귀원검을 펼치되 전력을 다해야 한다. 네가 파천태극무검을 완성할 때면 이 이유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한껏 펼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펼쳐라.”



‘네? 아버님의 안배가 이것에? 그렇다면...? 아니야, 지금은 아저씨의 말을 따라는 것이 현명해. 이유는 자연히 알게 되겠지. 지금은 오직 천상귀원검만을 생각한다. 늘 아저씨가 옳았음을 믿자.’

번쩍!



하나의 검에서 시작한 빛의 해일은 암천을 삼켰다. 그 빛이 가는 어디에도 검이 있었고 그 투명함이 하늘가 닮았다.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전력으로 펼쳤다.







남은 두 명 중의 일인인 천상천 제일 장로 천상거력참마장(天上巨力懺魔掌) 견필과 제이 장로 천상태극일검(天上太極一劍) 무소야는 그저 투명한 빛이 폭사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분명 빛이었지만 그것은 검을 닮았고, 천상지무 제일 초 천상태극뇌전류가 확실했는데 검무영이 펼친 것은 검강천 천주가 보여준 것과 또 달랐다.



빛은 검에서 이는 순간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고 동시에 그들의 심장을 터뜨릴 것 같은 세 개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슥! 슥! 슥!



무엇인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눈에서 모세혈관이 터져 붉게 충혈됐다.



투둑! 투둑! 투둑!



검류에 잘린 것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그들의 뇌에서 모세혈관이 터져 생각이 멈췄다. 허나 공포는 맹렬하게 떠올라 살을 뚫고 뼈를 자를 듯 그들의 사지에 생생하게 각인됐다. 검궁인이 그것을 보면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잠시 그 상태로 있었다.



데구르르!



“더 벌하지 않고 목을 자른 것은 그 죄의 경중이 경에 가까웠음이나 천상지무의 제일 초로 이를 행한 것은 검강천 천주의 애정이 아직도 천상천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 어머니 유선화 천후의 영전에 바치려 하니 너희 두 장로가 그 시작이다. 여덟!”



콰앙!



그 걸음이 내는 소리에 그들은 세 사제의 머리가 구르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공포에 질려 물러난 것을 인지했을 때 여덟 번째 걸음이 만들어내 소리는 한 걸음 더 다가와 견필과 무소야의 고막을 터뜨렸고 코의 혈관을 함께 터뜨렸다. 그의 귀와 코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뚝! 뚝!



자신들의 귀와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또 왜 이리 크게 들리는 것인지. 그 치명적 공포를 떨쳐내고 싶어서 그들은 장풍을 펼치고 검을 휘둘러야 했는데 뇌가 기능의 마비돼서 신경이 명령해도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혈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곧 칠공 모두에서 피가 흘러내릴 판이었다.



헌데 그 놈의 소천주의 음성은 그들의 고막이 터졌는데도 또렷하게 들렸다.



“먼저 두 팔!”



청아했지만 살기가 담겨 있는 무영의 음성이 그들의 뇌리에서 폭발했다. 견필과 무소야는 그 충격에 팔을 뻗어 장풍을 펼쳤고 검을 휘둘렀다. 그들은 그것을 원했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무사답게 죽고 싶었다. 그들의 원(源)은 이랬으나 근육과 뼈, 힘줄이 그것을 거부했다. 소천주 검무영의 검에서 투명한 빛이 일었다.



‘참 아름다운 빛이다.’



그들의 생각이 이랬다. 동시에 싹둑! 하는 소리가 두 번. 이어서 툭! 툭! 그들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자신들의 팔임을 알았을 때 어깨에서 피가 튀었고 데구르르 굴어왔던 사제들의 머리 위로 무소야가 놓친 태극검이 떨어져 오 장로의 이마에 박혔다.



퍽!



태극검이 무소야와 견필이 가장 아꼈던 막네 사제의 이마에 박혔지만 견필과 무소야는 몸이 급격하게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오직 비명만 질러댔다.



“크악!” “커억!”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말로 형언키 어려운 통증이 어떤 것임을 알았다. 동시에 앞으로 쓰러지는 몸의 균형을 잡아 줄 팔이 없음을 다시 느꼈고 그때 소천주 검무영의 음성이 푸른빛으로 날아들었다.



“다음 무릎!”



팔이 잘렸을 때와 약간 다르게 이번에는 스걱! 하는 소리가 두 번. 그리고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을 경험해야만 했다. 눈이 보기에 무릎 밑으로는 그대로 서있는데 그 위의 다리가 앞으로 꺾어지는 것이 아닌가. 평생 뒤로만 접혀지던 두 다리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야 반대로도 꺾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 현상은 그들이 다시 느꼈던 살아 두 번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과 분수처럼 뿜어지던 피가 쿨렁쿨렁 솟아서는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을 동반했다. 그 바람에 그들은 보지 못했다, 자신들의 안면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을.



뻑! 뻑!



소리는 가장 컸지만 이것은 아픔도 아니었다. 그들은 코가 부러지고 이마가 깨지는 정도만 아프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픈 것이 그들은 허탈했다.



툴툴..



웃음이라도 흘렸으면 좋으련만 무심한 머리가 대리석과 충돌한 후 한 번 튕겼고 아주 조금 한 번 더 튕겼다. 그제야 견필과 무소야는 대리석 바닥이 붉은 빛을 띠고 있음을 알았다. 코와 잎의 높이가 같아진 그 순간, 그들은 대리석을 물들이는 자신들의 피처럼 그 한의 깊이가 느껴지는 무영의 음성이 그들의 뇌리에서 폭발함을 느꼈다.



“무릎을 잘라 벌함은 너희의 죄가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짐승과 같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서는 옳지 않으면 주인의 말이라도 거역하길 바란다. 이는 검강인을 주인으로 두었음에 대한 단죄와 같음이다. 이만 떠나라.”



무영의 왼손에서 두 줄기 빛이 일었다. 태극멸섬이 다시 펼쳐졌고.



퍽! 퍽!



어김없이 그들의 머리에서 그 결과가 일어났다. 그들의 머리가 터지며 이승에서 두 개의 숨이 사라졌다. 그 끝에 천상천 외궁주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던 견필과 무소야가 내궁의 장로라는 자리가 자신들에게 벅찼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트득! 툭! 턱!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시 대리석 위로 떨어지는 머리와 뇌 조각들이 어지러운 소리를 냈다. 그때 검강인이 눈을 떴다.



“아홉!”



너무나 청아해 오히려 슬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무영의 음성이 집성전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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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개의 무공을 익힌 극에 이른 자들로 정립을 이루었는데, 그래서 영원히 균형을 유지하며 적당한 일화(一話)들을 조절하면 최고의 연극으로 또 천년을 흥행할 수 있을 텐데, 왜? 삼혼지문의 필요성이 존재했는가?



- 대저 자신이 극에 이르렀다 생각하면 모든 인간은 일탈을 꿈꾸기 시작하기 마련이야. 자신이 이룬 경지를 드러내고 싶은 거지. 또는 그 경지가 진정한 극점인지도 알고 싶기도 하겠고. 어떻든 모든 문제는 여기서 출발하네. 화극연이 먼저 튀어나갔어. 그리고 열두 개의 지옥의 힘, 그 일부를 깨웠어. 하지만 여기까지는 검궁영이 막아낼 수 있었고 그의 일탈은 내 극본 안의 특별히 준비된 한 편의 일화(一話) 정도라 할까. 해서 초대 천상천주 검궁영이 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



헌데, 천년이 흐른 후 이놈의 후예가 사고를 쳤어. 열두 개의 지옥의 힘, 그 전부를 깨워 그 일부를 취한 거야. 그것은 사로 이룰 수 있는 몸의 극대화를 넘어서는 것인데, 초마인이 절대 경지에 이르려 도를 넘어버렸어. 이것은 극본 상 첨(添, 부족한 부분을 더하는 것)으로 두었던 극비 전략이었는데 연극의 반응이 끝없이 이어지는 중에 악역을 맡은 자가 거기서 탈퇴해 감히 자신이 연극을 다시 만들려 했던 거야.



당연히 일회성이라도 용납할 수 없었지. 물론 이를 예상해 극비 전략을 마련해 두기는 했어. 그것이 바로 마지막 첨, 삼혼지문이었던 거야. 악역이 돌아오지 않으면 삭(削)해야 하고, 그것을 대체시킬 수 있는 것을 내세워야 하지. 그래야 천년 연극이 유지돼 그 흥행 또한 열광적인 광기를 이어갈 수 있는 거니까. 그것이 다시 백년이라도, 물론 천상지무처럼 천년을 이어가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테고.



해서, 초마인이 절대 경지에 이르렀을 경우 그를 처리할 완벽한 무공이 필요했고 삼혼지문이 그 무공을 이룰 출구였어. 물론 초만인의 절대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삼혼지문은 그냥 극본에만 있고 실제 무대에는 올리지 않은 배우면 됐던 게야.



결국 삼혼지문은 삭을 대신해 연극의 흥행을 지속시킬 첨이었고 이는 천년 전에 마련해 두었던 하나의 안배였지. 파천태극무검을 천상지무에 더해 몸의 극대화를 넘어 영혼의 극대화에 이르려면 두 무공을 하나로 이어줄 매개체가 필요했고 그것이 삼혼지문이었어.



그 절대적 필요 때문에 하나의 거짓을 만들 수밖에 없었어. 물론 자네가 파기해 의미 없어졌지만. 천외천의 존재이유도 그것으로 사라질 뻔했지. 내 연극의 등장인물 중 비중이 가장 큰 두 명, 검강천과 자네가 한 번씩 출연을 거부한 거야. 이야기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늘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비중은 달랐어. 이야기 전개의 마지막 장 그 두 축이었기 때문이야.



허나 둘은 어떠한 경우에도 돌아올 수밖에 없어. 이미 무대에서 내리기에는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고 특히 자식과 부모가 그곳에 있었으니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게지. 내가 그들을 일회성 출연자라 해도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항상 출연할 준비를 하게 묶어놓았기 때문이지. 그것은 무림에서 너무 흔한 복수란 것이고 특히 부모자식과 마누라와 연계된 것으로 포장을 하면 그 안배는 더욱 튼실해져. 실제 검강천이 무영을 살려 자네에게 보냈고 이렇게 자네까지 돌아왔으니 내 안배의 완벽함이 입증됐고 당연히 나야 신날밖에. 하하하하!



- 빠드득! 놈.. 으드득! 좋다. 일단 지금은 듣기만 한다. 그래 다음은.



- 후후. 부모라 하니 흥분하는 꼴이란.. 그래 또 다음이라? 음, 그래. 이것이 가장 말하기 힘들었던 건데,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까. 내 말하지. 그 다음은 일회성 출연자 중 한 놈의 단원이 천년 전설의 주인공 역할을 탐하는 일이 생겼어. 비중은 작았지만 주인공과 너무 닮았기에 이를 꿈꿨고 실행에 옮겨 성공했던 거야.



비중이 적어 그냥 스쳐 가면 될 놈이 무대 뒤로 가서는 주인공을 죽였어. 삼혼지문을 통해 파천태극무검을 일단 받아둬야 할 주인공, 검강천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나선 거야. 그가 검강인이 검강천을 대신하겠다니? 이런 창피할 데가!



내 연극에도 단 하나의 허점은 있었던 거야. 천년 동안 지속되다 보니까 나 또한 놓쳤던 허점이 하나 있었던 게지. 그것에 대한 안배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었거든. 게다가 주인공으로써 검강인의 연기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검강천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에 문제가 더 컸지. 이는 주인공의 근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야. 결국, 내 연극의 흥행을 유지하려면 근본이 같은 또 다른 주인공이 급히 필요하게 됐던 거야.







- 그렇게 완벽한 천년 연극이 너무나 작아 티끌 같던 역할에서 틀어진 것이군. 이제야 재미가 생겨. 허허. 허면 자네는 그것 때문에 내게 하나의 거짓과 거짓말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켜 나로 하여금 삼혼지문과 검강천의 역할까지 한꺼번에 하게 한 것이군. 자네도 몸소 움직여야 했고. 해서 무영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군.



- 하. 역시! 거의 정확해. 내가 배우는 잘 뽑았던 게야. 그래, 맞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대안은 늘 손을 뻗치면 언제든 가져올 수 있는 거리 안에 뒀지. 다름 아닌 임시 주인공이라 할까. 자네가 말한 무영이지. 검강천의 아들 무영을 전면에 등장시켜야 했지. 그에게 잠시 주인공 역할을 맡겼던 거야.



그 동안 나는 네게서 두 개의 무공을 흡수해 역천마공과 하나로 합쳐 몸의 극대화를 통해 영혼의 극대화까지 다 이룬 후에 임시 주인공으로 등장한 무영을 제거하면 천년 연극은 그것으로 종극이 돼. 이를 위해 천상지무와 멸천마공을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 몸의 극대화를 이룬 제천이 움직였어.



- 몸의 극대화를 이루니 하나의 떠 있는 눈처럼 몸 자체가 대기가 된 것이라. 그것도 재미있군. 결국 감시자의 배후가 제천이었고 자네의 몸이기도 했군.



- 그래, 그래! 맞아, 맞고 말고. 대단해. 자네는 정말 주인공 자격이 있어. 무영을 등장시켰지만 너무 급히 올린 까닭에 나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살피지는 못했었거든. 또한 나는 태천문을 만들 때 오직 일인계승만 가능하게 했어. 애당초 내가 영원히 문주로 지내기 위해 내 스스로 그런 율법을 만들었지만 제천을 통해 천년 연극을 감시케 한 제천문을 다스리려면 어쩔 수 없었어.



게다가 자네가 키운 무영의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나 나는 제천의 유일한 적수인 새외문의 육경을 깨워야 했어. 문제는 그들이 제천이 완벽하게 다스리기에는 너무 강한 자들이야. 결국 그들을 단속하려면 서둘러야 했지.



제천은 두 무공의 정수가 하나로 합쳐져 생명을 유지시킨 불완전한 정기신일체의 내 몸이지. 자네가 파천태극무검을 완성한 순간 완벽해진 지금의 나 무천이야. 서둘렀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은 게지. 다 자네 덕분이야. 하하하.



이로써 전면에 나선 나의 등장으로 새롭게 시작될 천년 공연이 다시 막을 올리되, 관객의 광기를 최대로 키워 내가 독식하려면 새롭게 등장한 임시 주인공이 관객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기 전에 교체하는 것이 필수였지. 연극의 질을 떨어뜨리는 연속된 주인공 교체는 흥행에 좋지 않아 임시주인공이 분위기만 띄우면 그때 진정한 주인공인 내가 전면에 나서 이를 절정으로 이끌고 가면 천년 연극은 그 끝에 이르는 거야.



헌데 임시주인공의 연기력이 너무 뛰어났던 거야. 그 아비의 그 아들이더라고. 해서 진정한 주인공인 나의 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흥행요소, 또 한 번 천하의 혈난을 포기하고 자네를 이리로 오게 만든 거네.



그를 위해 내가 내 육신을 조금 빨리 회수한 거고 천년을 벼르고 별러 왔던 몸의 극대화를 통한 영혼의 극대화, 즉 정기신일체의 완벽한 실현을 내가 직접 실행했어. 거듭 말하지만 그게 다 자네의 덕이니 그 고마움이 뭐라 말할 수 없네. 해서 나는 자네에게 가장 편한 죽음을 선사하려 하는데 자네는 괜찮을지 몰라. 



그것은 자네의 몫이니 자네에게 듣기로 하고, 여기까지가 급히 수정된 내 극본의 핵심이네. 이것이 천년 전설로는 완전한 종(終)이지.



- 하하하! 그런가? 잘 들었네. 자네 혼자만의 일방적 얘기였지만, 일단은 잘 들었어.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좀 얘기를 하지. 중간에 말해주고 싶었지만 자네가 내 부모를 감히 그 더러운 입에 담았기에 잠시 참았어. 지금껏 참아왔는데 너의 허접한 말을 조금만 더 참아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지.



- 자내가 내게. 호! 그것도 허접하다. 켈켈. 좋아 다음은.



- 후훗. 그 자신감이 얼마 가나 두고 보마. 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얘기하지. 자네의 그 잘난 천년 연극을 뒤엎을 것이니 굳게 마음먹어야 할 거야. 내가 어떻게 자네의 연극을 망쳤는지. 무영이 어떻게 자네의 연극을 내리고 그의 무대를 새롭게 꾸밀지 이제부터 낱낱이 얘기해주지.



- 자네가 내게. 허! 나는 자네에게 죽음의 종류만 들으면 되는데. 허! 이런 번잡할 데가. 좋아 듣지. 별 것 없겠지만 끝났으니까 뒤풀이 연회라 생각하고 내 듣기는 하지. 그럼, 하시게. 허허.



- 후후. 웃음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보지. 그럼 먼저, 비궁에 들어와 내가 육 년이란 세월을 왜 허송세월 했는지 그 이유부터 말해주지.



- 뭐? 허송세월…을 한 이유…?



- 허허. 벌써 놀라면 어떻게?. 자네, 무천이 지켜보았던 내 무공 수련은 그래 내가 배우니 일종의 연기라 해야겠지.



- 뭐? 연기였다고…? 컬컬. 연기라고? 컬컬!



-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많이 놀라면 내가 재미없지. 아직 시작도 한 것이 없는데 한 마디 말에 그러면 재미있겠어, 자네라면. 그러면 나도 웃을 밖에. 허허허.



- 헐… 컬컬! 그렇군. 이제 한 마디 했군. 컬컬컬… 좋아. 좋아. 그래 그 다음은?



- 다음? 아. 이제 마음을 다 잡았나 보군. 그럼, 그 다음을 애기하지. 물론 육년이란 기간이 다 연기는 아니었지. 처음 2년은 천상지무를 익히는 기간이었고 다음 삼년은 천상지무에 파천태극무검을 합치는 기간이었으니까. 누가? 내가? 아니 무영이가.



- 뭐? 자네가 아니고 무영이라고? 컬컬컬! 그 말을 믿으라고. 컬컬컬컬! 나 보고 그 말을! 컬컬컬! 컬컬컬컬!



- 그래 웃어야겠지. 지나가던 개도 웃을 판이니까. 개만도 못한 자네야 당연히 웃어야지. 어쨌든 이 두 가지 모두 자네가 원했던 것, 그대로 진행했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어서 검결 몇 자만 수정하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 뭐라고…? 지금 검결 몇 개 수정하면 된다 했나?



- 그렇다 했네. 오래된 몸이라 되살려놓고 보니 귀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하긴 그리 오래 됐으니 뭐 하나 성한 것이 있겠어. 어린 내가 이해해야지.



- 갈!



- 허. 그러다 목도 상하겠네. 그렇게 질러대면 오래된 것이 견뎌나겠어.



- 놈! 계속.. 하라.



- 그래 하지. 검결 몇 개 바꿨어. 자네가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불완전한 합일을 이끌어내 내게서 삼혼지문을 통해 받으려 했던 그 두 무공의 검결 몇 개만 바꾸면 되는 일이라 어렵지도 않았고 시간을 끌 일도 없었어. 그 오년 동안 내가 한 일은 자네의 몸 제천을 속이는 일이었어. 완벽한 합일을 불완전하게 보여야 했으니까. 이를 위해 내가 무영의 수련과정과 똑 같은 과정을 반복했어. 뭐 너의 얘기를 듣고 지금에 말한다면 나도 내 극본대로 연기를 한 것이지.



하지만 네 각본 속에 들어있던 첨이란 너의 관념에선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실재에선 첨이라고 하는 것도 서로 다른 형태의 창조야.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첨과 삭이란 생존경쟁의 승자와 자연도태의 패자에 불과하지만, 개체의 입장에서 보면 약동하는 발현이자 창조적인 변화야. 각각은 별도로서도 존재하는 실재야,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 컬컬컬! 첨과 삭이 별도의 창조라고? 검결 몇 개 바꾼 게 첨가가 아니라 창조라고? 컬컬컬! 무영과 똑 같은 수련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전체의 법칙에 따르는 것처럼 했다고? 그것이 개체의 실존을 위한 연기였다고? 컬컬컬! 그런 5년의 창조였다고? 컬컬컬!!!



- 응. 그래, 그랬어. 매 순간이 창조였지. 물론 말라버린 물줄기처럼 흔적까지 지울 순 없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게 실재라는 것이야. 정말로 완벽하게 그랬어. 창조적 진화라고 할까? 생각나나? 무영이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과 파천태극무검의 마지막 초식 여의일도파천황을 구현하던 것을? 천지개벽의 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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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5.01.14 06:48 신고

    난 하루 1회정도 포스팅하는데 도령님은 많이 하시네요

    • 늙은도령 2015.01.14 13:40 신고

      네, 글을 읽다가 생각이 나면 씁니다.
      가끔은 오늘의 기사들을 검색하다가도 씁니다.
      쓰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게 저이니까요.

  2. 꼬장닷컴 2015.01.14 07:27 신고

    이 아침에 도령님 방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어제 어린이집 폭행 뉴스를 보고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컨디션이 정말 별로네요.

    • 늙은도령 2015.01.14 13:42 신고

      어린이집은 열악함은 아무나 교사로 쓴다는 것이고, 교육이 적어 자신의 감정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업을 접기 전에 어린이집연합회, 유치원연합회 등과 일했는데 어린이집은 민간과 국공립의 차이가 엄청나고, 유치원은 그 이상입니다.
      일종의 재벌인데 학원까지 동시에 운영하는 원장 가족도 많습니다.
      실제 재벌급 딸들이 유치원을 하는 경우도 몇 번 봤습니다.

  3. 저녁노을 2015.01.14 15:30 신고

    천년의 연극...잘 보고갑니다.
    노을인 어렵심더....ㅎㅎ

    • 늙은도령 2015.01.14 20:58 신고

      이 부분만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철학적 사고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4. 참교육 2015.01.14 17:49 신고

    앞 글으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 주시면 처음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려울까요?






두 명의 살혼령(殺魂靈)의 검이 무영의 목과 가슴을 관통했고 동시에 세 살혼령의 검이 그의 단전과 명문, 오른쪽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영의 머리 위에서 내리꽂힌 검이 천령개를 갈랐다. 연이어 두 명의 살혼령의 검이 무영의 복부에 박히고 두 다리를 잘랐다.



여덟 명의 살혼령은 네 명의 살혼령이 동귀어진을 노려 무영의 움직임에 작은 틈새를 만든 순간을 이용한 자신들의 합공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자 비로소 미소 지었다. 허나 그 미소가 다 그들의 입술에서 완벽한 선으로 완성되기 전에 그들의 눈에서 갑작스런 광채가 떠올랐다.



광채의 오 할은 합공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었으나 나머지 오 할은 그들의 검이 무영에게 박히고 잘라내던 그 순간 무영의 신형이 저절로 반걸음 뒤로 옮겨지며 그곳에 이동의 잔상을 남긴 채 다시 반걸음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떠오른 경악을 담은 것이었다.



“어, 어..”

“분명 찔렀는데?”

“나는 베는데 성공했어! 헌데 이 건 뭐지?”



그들이 보기에 무영의 움직임은 합공의 결과로 발현된 검기들이 만들어낸 공기의 움직임과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여덟 개의 검기는 모두 무영을 찌르고 벤 것이 확실했는데 실제로 찌르고 벤 것은 무영의 잔영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놀랄 일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도 엄청난 문제였다. 여덟 명의 살혼령들은 여덟 개의 검기에 의해 여러 개로 조각난 무영의 잔영들이 정확히 8개로 모여서는 자신들을 향해 공격해 오는 각각의 무영으로 화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번쩍!



여덟 명의 살혼령은 각각의 무영이 펼친 검에서 발출된 눈부신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볼 수만 있었다, 의지는 피하라고 명령했지만 몸이 그것을 따르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그들은 남의 목숨을 취할 때 듣기만 했던 그 소리를 이번에는 정반대로 들어야만 했다.



퍽!퍽!퍽!



섬뜩한 소리와 함께 여덟 명의 살혼령 미간에 각각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살혼령들은 자신을 향해 날아든 각각 하나씩의 검만 불 수 있었다. 검강인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여덟 명의 살혼령들에게 각각 한 명씩의 무영이 배정된 것처럼 보였다. 천상천주에 오른 검강인의 눈에도 무영의 신법이 너무 빨라 신체분신술(身體分身術) 같다는 착각이 들었고, 각 살혼령마다 배정된 무영의 검이 다 진초(眞招)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었다. 어떤 무공도 한 명의 인간을 8명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무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검강인 같은 절대고수의 눈에서마저 무영이 8명으로 보인 것은 그의 신법이 빛의 속도를 방불케 할 만큼 빨라서 일어난 착각이었다.



‘이런 신법이 있을 수 있다니..’



검강인은 평생 처음으로 공포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8명의 살혼령들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더욱 큰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 공포라는 사실을 이때의 검강인은 깨닫지 못했다.



“너희 죄는 주인을 잘못 만난 것. 단 일초에 너희를 절명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나머지 여죄는 저승에서 검강천 천주에게 받도록. 그럼 다음.”



고목처럼 쓰러지는 여덟 명의 살혼령을 뒤로 한 채 무영이 돌아섰다. 그는 다섯 명의 외궁 장로가 검강인 앞으로 나선 것을 봤다. 그 순간에 무영은 혜준의 상황을 살폈다. 그녀는 천상천의 미래였던 세 명의 제마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해. 안심해도 되겠어.’



헤준의 안전을 확인한 무영은 다섯 장로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삼혼의 상대가 될 만한 자가 검강인을 제외하면 이곳에 없었기 때문에 혜준의 신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기우였음을 알게 됐으니 마음 놓고 일전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검강인의 앞으로 나선, 외궁에서 내궁의 장로가 된 다섯 명의 천상천 장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그가 내딛는 걸음마다 압도적인 죽음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5명의 장로는 무영의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맥박이 빨라지고 무기를 잡고 있는 손에서 땀이 배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기랄, 이 지랄 같은 느낌은 뭐야?’

‘염병할!!’



5명의 장로는 무영이 두 걸음을 더 다가오자 이번에는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살혼령들이 여덟 수처럼 보인 단 한 번의 절초에 절명한 것을 봤기 때문에 두려움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겄다. 그때.



“살!” 

“갈!”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 먼저 승천일룡검 옥진결이 무영의 관자놀이를 향해 그의 성명절기인 욱일승천검(旭日昇天劍)을 전력으로 격발했다. 그는 중검(重劍)에 속도를 붙여 변화를 만들어낸 신검류(新劍流)로 인해 강호 최고 후기지수(後起之秀)로 꼽혔다. 특히 그의 마지막 초식, 중가속변절명류(重加速變絶命流)는 검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절초 중의 절초였다. 창룡문의 장로로 변신해 있던 그는 천상천의 비밀명기 십이 사마령의 첫째였다.



옥진결의 공격과 동시에 화산파 장문인 매화일검(梅花一劍) 추성웅이 자하신공(紫霞神功)에 천상무극진기를 가미시킨 신육합신검법(新六合神劍法)의 최후 절초를 무영의 후단전을 향해 번개처럼 격발했다. 추성웅도 검강인이 각 문파에 침투시킨 제마령 중 여덟 번째인 방명석이었다.



그들은 두 문파의 핵심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한 채 정파 고수들과 함께 천상천 무리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무영이 검강인 앞으로 나선 다섯 명의 장로를 향해 걸어갈 때 양 옆으로 길을 터줬고, 그 덕분에 무영의 바로 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그 이점을 이용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살초를 펼칠 수 있었다.



쉭! 쉭!



그들이 펼친 두 개의 살초는 낙뢰 같은 기세를 드러내면서도 소리조차 늦을 만큼 빨랐다. 두 개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전무해 보였다. 모두의 예상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두 제마령의 검은 무영의 관자놀이와 후단전을 파고들었다.



‘성공했어!’

‘확실해!’



두 제마령은 그렇게 느꼈다. 헌데, 옥진결의 검기가 무영의 관자놀이를 관통해 무영의 앞면까지 나갔으나 갑자기 그 끝이 반원을 그리며 휘어졌다. 무영의 뒤에서 앞으로 후단전을 뚫었던 방명석의 검기도 그 끝이 휘어지더니 오진결의 검기와 스치듯 교차했다. 두 검기는 이렇게 방향이 바뀌었고 그것에는 무영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퍽! 퍽!



무영에 의해 강제로 방향이 바뀐 옥진결의 검기는 방명석의 미간에 박혔고 방명석의 검기는 옥진결의 미간을 뚫었다. 이런 결과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크윽!” 

“커억!”



두 제마령이 생을 다하는 비명을 토했다. 옥진결은 자신의 검에 의해 관자놀이가 관통된 무영의 머리와 함께 자신의 검기를 피할 만큼만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무영이 있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관통시켰다고 확신했던 무영의 머리가 옆에 있는 머리 쪽으로 흡수되는 것을 본 것은 그가 살아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이었다.



‘두 개였어. 미간을 관통당한 한 개와 멀쩡한 또 한 개.’



생사가 뒤바꾼 순간의 방명석의 눈에도 옥질결의 눈에서 드러난 현상이 똑같이 재현됐다.



‘두 개였어. 내 검기가 관통하자 그 중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야.’



그의 생각도 옥진결처럼 거기에서 멈췄다. 그들은 상대의 목숨을 취해야 했을 두 개의 검기가 제멋대로 교차해 자신들의 미간을 관통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너희들도 주인을 잘못 만난 죄이니 이것으로 족해. 가서 내 어머니께 나머지 죄를 고해 사죄를 받아라. 너희 명(命)을 취한 것은 일극무원결의 공격식 제 삼초 분이발(分移發 : 분석하여 변형시킨 공격)이며 너희가 본 나는 다섯 개의 감각 중 태(態)의 후반부 망상재(妄想在)가 만든 것이다. 너희의 목숨을 가져갈 만한 수이니 그리 알고 가라.”



“휴~!”



그 순간 혜준은 세 명의 사마령 중 사 사마령 냉면철심(冷面鐵心) 구지굉의 목을 베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세 명의 사마령을 상대하면서도 무영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상대해야 자들이 너무 많았고 하나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녀의 한숨 소리를 들은 무영이 혜준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고 전음을 보내며 검지 하나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이 정도 쯤이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너도 하나 처리했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와중에도 다섯 장로를 향해 걷는 무영의 걸음이 그 속도와 폭을 일정하게 유지했다는 사실이었다.



쿵! 쿵!



그때야 두 제마령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처음으로 생명체가 아닌 육질 덩어리로 변화한 소리를 냈다. 그것이 다섯 장로에게 뚜렷하게 들렸고, 검강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열 걸음 정도면 진정한 복수가 시작된다.’



무영의 생각은 그랬고, 다섯 장로는 그 열 걸음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강인에게도 무영의 걸음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공포의 농도가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무영의 발걸음이 두 번 더 바닥을 딛자 그들에겐 거한이 걷는 소리처럼 들렸고, 공포에 질린 그들의 감정이 저절로 둘이라는 숫자를 세게 만들었다. 두 사마령의 기습마저 간단히 무너뜨린 무영의 무공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이성을 대신해 걸음의 수를 셌던 것이다. 그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박동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뚜벅! 뚜벅!!



이번에는 무영의 걸음이 내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두려움이 센 숫자가 다시 두 걸음이 진행됐음을 알려주었다. 두려움에서 공포로 발전한 감정이 더욱 확실한 느낌으로 죽음의 수를 셌다. 극한으로 커가는 공포가 죽음과의 거리를 좁히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 같았다. 다섯 명의 장로들 중 제일 밑인 오 장로 검일이 공포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숫자를 외쳤다.



“넷!”



그가 말한 숫자가 나머지 네 명에게 공포를 극점 근처까지 이르게 했고 무영은 아랑곳없이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쿵!



"이것으로 반. 다섯!"



무영이 죽음의 숫자를 말했다. 다섯 장로의 귀에 무영의 말이 야차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하는 법이지만 다섯 명의 장로에게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영이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쿵!



다섯 명의 장로 중 상대적으로 무공이 떨어지는 세 명의 장로에게 무영의 여섯 번째 걸음이 만들어 낸 소리는 염라대왕이 직접 다가오는 것 같은 거력의 폭음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나머지 두 장로의 뇌리에도 공포가 세는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 섯..”



이번에는 목과 팔의 핏줄마저 지렁이처럼 꿈틀대던 삼 장로 환충이 신음처럼 숫자를 뱉었다. 호흡마저 턱턱 막혀왔고 온몸의 신경은 있는 대로 곤두섰다. 죽음이라는 것이 공포를 타고 와서 그들에게 이제 네 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그들은 더 이상 이를 수 없는 공포의 극한으로 빠져들었다. 검강인의 손에서도 땀이 배기 시작했다.



“이제 네 걸음 남았다. 그것으로 너희에게 허락된 이승은 더 이상 없다. 이후의 기억은 저승까지 가져갈 것이니 하나도 놓치지 말도록. 일곱!”



쾅!



무영의 일곱 번째 걸음이 대리석에 내리 찍힐 때 세 명의 장로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아예 폭발해 버렸다. 그들의 뇌리와 마음속에선 제어할 수 없는 공포가 직접 비명을 질렀고, 온몸의 피는 모든 혈관이란 혈관을 미친 듯이 휘돌며 모세혈관들을 모조리 터뜨렸다. 신경이 폭발이 뒤를 이었고, 그 폭발은 근육과 정신에게 명령해 더 이상의 공포는 감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죽어라!”

“크아아아아! 이놈, 너 죽고 나 죽자!!”



그들은 미친 듯이 외쳤으나 공포 때문에 날카롭게 갈라졌고, 몸을 날려 무영을 향해 황소처럼 달려들었으나 사시나무 떨 듯 불안정했다. 그것은 신경이 미쳐 근육에 전달된 공포가 만들어낸 본능의 몸부림이었다. 아무것도 안하느니 차라리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질린 본능적 몸부림을 지켜보며 무영의 손목이 좌우로 튕기듯 한 번 흔들렸다.



번쩍!



손목을 한 번만 튕겼을 뿐인데, 세 번의 빛이 일었다.



태극멸섬(太極滅閃)!

류심환이 검강윤을 절명시킨 태극일섬보다 더 빠르고 파괴적인 지공이다. 빛을 봤을 때는 이미 늦은 뒤라는 사실이 태극멸섬의 무서움이었다.



펑! 펑! 펑!



세 번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에서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이성을 잃은 세 장로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와 살점이 솟구쳤다.



“크윽!”

“컥!”

“으악!”



그들 세 명이 엄청난 통증에 비명을 터뜨렸고 그것을 그들의 귀가 확인한 순간 그들은 왼쪽 어깨 부위로 파고든 또 다른,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절초를 느낄 수 있었다.



‘어?’

‘뭐야?

‘대체 이건?’



그들은 의문을 풀기도 전에 그들의 신경은 인식했으나 뇌에서 정리되지 못한 비명부터 토해야 했다, 살아서는 풀지 못할 것 같은 의문과 함께.



“안 돼!”

“이놈!”



나머지 두 장로가 그들의 사제인 세 명의 장로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하자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극한의 공포를 억누르며 무영을 향해 그들의 최고 절초를 펼쳤다. 허나 그때에는.



퍽! 싹둑! 푸욱!



세 장로의 세 가지 다른 공격 중 장풍은 그것을 발사한 삼 장로에게 되돌아가 그의 왼쪽 어깨를 통째로 날렸고, 하나의 도기(刀氣)는 그것을 펼친 사 장로의 왼쪽 어깨를 잘랐으며, 마지막 검기(劍氣)는 자신의 주인인 오 장로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그들의 몸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뒤로 밀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오는 죽음의 공포를 동반한 통증이 정신을 가물가물하게 했다. 그런 그들의 귀로 무영의 소리가 흘러들었고 나머지 두 장로는 그들을 지나 무영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죽어라!"

"살!"



그들의 외침은 간절했다. 허나.



“너희들은 그 죄가 중하니 오른쪽 어깨로 그것을 깨닫게 했고, 역반투(力反投)로 왼쪽 어깨를 취했으니 너희들이 깨달은 죄의 대가가 그 일부를 벌했다. 여죄가 있으므로 다음은 천상지무로 벌하겠다. 여덟!”



세 장로의 공격을 그대로 돌려준 역반투는 일극무원결의 공격식 제 이초였다. 무영은 말을 하는 중에 자신을 향해 폭사된 두 명의 장로를 향해 다시 왼쪽 손목을 흔들었고 오른손에 든 승천제마검의 끝을 한 바퀴 돌려 세 명의 장로를 겨냥했다.



그것으로 검강인 앞에 더 이상 장로가 없었고 그도 비로소 공포가 현실처럼 분명해졌다. 손에서 나던 땀이 등에서도 솟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의 상대를 가볍게 처단한 삼혼이 삽시간에 날아와 검강인을 정립의 형태로 둘러쌓았다. 그 바람에 그에게는 탈출구마저 사라졌다.



검강인 자신이 죽던지 아니면 무영 일행을 모두 죽이던지 이곳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느끼는 공포의 단계가 이판사판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두 장로마저 죽으면... 남은 자는 자신뿐이지 않은가? 검강인의 눈빛이 깊고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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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다당! 쿵! 쿵!



무영 일행과 검강인을 중심으로 한 천상천 무리들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집성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다섯 명의 무인을 포박한 채 회랑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창룡문과 성도문의 장로들과 소림사와 무당파 장문인이었다.



사실 그들은 검강인이 각 문파에 침투시킨 제마령들이었다. 무당의 태극도인으로 변신한 장지영과 나머지 네 명의 제마령들이 발각돼 여기까지 끌려온 것이었다.



“선물일세. 외궁주에게 돌려드리는 제마령들이지. 천상천의 미래로 키워졌으나 외궁주의 야욕 때문에 자신이 아닌 다름 사람으로 살면서 제압당한 영혼 때문에 매일 괴로워했던 자네의 꼭두각시 인형들이라 돌려주는 것이네. 우리가 좀 늦었던 이유도 이것이었고.”



무영이 턱으로 다섯 명을 가리키듯 고개를 돌렸다. 검강인 뿐만 아니라 아직도 헷갈려 하는 각 문파의 대표들에게 누구의 말이 정말인지 판단해 보라는 행동이었다. 그때였다.



“후후! 돌아가려 했더니.. 어차피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것이라면, 마다할 이유 또한 없다. 천상천도들, 이제부터 다시 전설로 돌아간다. 허나 그 전설 안에 강호를 다 가지고 간다. 천상천에 거역하는 자는 모두 처단해도 좋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아도 된다. 시작하라!”



이미 상황이 돌이키기에는 너무 틀어졌다고 판단한 검강인의 입에서 결전을 알리는 말이 떨어졌다.



“좋지. 죄가 있는 자 그 대가를 치르면 될 것이고 내 부모를 죽인 자 그 대가의 처절함을 받으면 될 일. 나 또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 검강인! 이제부터 공포라는 것이 무엇임을, 네 죄의 간악함이 어떻게 이런 공포를 너에게 돌려주는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겠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있는 자체 그것만으로도 그곳은 하나의 산이고 드넓은 바다였으며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었다.



마침내 천년의 주재자 무천(無天)과 그 천년을 송두리 채 흔들고 있는 류심환이 마주 섰다. 한 명은 운명이니 따르라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운명을 바꿔버리겠다고 한다. 전자는 이미 천년을 진행된 것이니 돌릴 수 없다 하고 후자는 다시 천년을 제대로 가면 된다고 한다. 그들이 만났다. 천년을 격하여 그들이 만나 지난 천년의 성패를 논하려 한다.



- 몇 가지 궁금한 것부터 묻겠네.


- 좋을 대로.


- 네가 준비해서 주물렀고 이제는 거둬들이려 하는 천년 무림의 전설, 그 하나의 비밀은 어디서 출발했나?


- 하나의 비밀이라? 그래 천년의 전설은 하나의 비밀에서 출발했지. 결국, 그 비밀은 단 하나의 지향점에 이르기 위한 것이지. 그래서 전설이 필요했던 게고.


- 천년의 전설..


- 그래, 천년의 전설이 필요했지. 헌데 무릇 정(正)은 무엇이며 사(邪)란 무엇인가? 정이 이르고자 하는 경지는 자신과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자신을 극대화하거나 또는 버림으로써 이루어지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해탈의 경지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깨달음도 다 이와 다르지 않다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을 택한 자들은 영혼은 두고 몸만 취함과 같네. 한 마디로 사이비지. 여기서 사(邪)는 출발하는 것이지. 해서 자신의 영달에 이르고자 단기간에 몸을 최대한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사술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지. 방법이 다르더라도 둘 다 최고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데에서 무(武)의 양 축이라 할 수 있지.


- 양축이라?


- 양축이지. 하지만 사의 방법은 편법이야. 따라서 몸이 이를 수 있는 최후의 경지, 즉 초식의 극대화는 정이 추구한 끊임없는 노력과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지. 언제나 균형을 이루는 삼라만상의 조화(三才), 오르고 내리며(乘降) 나아가고 물러나고(進退) 커지고 작아지는 과정을 통해 우주의 흐름을 보여주는 움직임(象)의 원리(四象), 우주의 상생을 이루는 순환의 기와 그 흐름을 역행하는 기의 총합(五行), 그리고 머물러 있으나 흐르는 대지의 류(地支, 음을 뜻함)와 떠 있으며 흐르되 빈자리를 다시 채우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늘의 류(天干, 양을 뜻함), 순에 이르러 흘러감으로써 다시 근본으로 돌아오는 태극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초식으로 담아내면 몸이 이룰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이르지.


- 최고의 경지라?


- 자네도 알겠지만, 이 모든 것들의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초식은 몸에 자리한 잠재능력까지 극한으로 끌어올릴 순 있어. 이는 우주가 보여주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경지인 수(手)의 완성이라 할 수 있네. 이런 몸을 취해 이른 수의 완성이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일세.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원류가 같음은 여기에 있네.


- 역시, 그랬어.


- 하긴 지금의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뭐, 지켜보는 건 지겨웠지만. 아무튼 이것과 달리 수의 완성에 이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태극에서 오행까지 각종 이치를 터득하기 위한 미망(未忘)의 경지를 단기간에 역의 방식을 택해 수의 완성에 이른 것이 멸천마공이지. 이 마공이 앞의 두 무공과 동일한 수준에 올라섰음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거고. 비록 차면 넘치는 몸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세 개의 무공들이 인간의 몸으로 이룰 수 있는 극한의 무공이지. 해서 천상천과 천외천, 역천마곡을 만들었고 세 개의 무공을 각각 하나씩 나눠줬어.


- 후후! 나눠줬다고? 좋아, 다음은.


- 그래. 내가 나눠줬지. 대강은 파악했겠지만 그 과정은 이러했어. 내가 태생적으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 일단 천상지무를 통해 천상천을 만들었지. 하지만 천상지무는 극강의 무공이라 그것을 앞세워 무림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으로 천상천을 제어했고 오로지 몸이 이르는 극대화에 정진하게 만들었지. 혈난으로부터의 천하 구원을 천상천의 존재이유로 만들어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는 천상지무가 세 개의 무공 중 몸의 극대화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야. 해서 천상천이 천년 전설의 주역이어야 했던 거야.


- 검강천까지는 그러했겠지.


- 클클. 검강천.. 생각보다 뛰어났기는 했어. 하지만 내 손안에서 벗어날 순 없었어. 중요한 건 고인 물은 썩고 권력도 강해지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거야. 해서 절대 권력을 갖게 된 주역이 끝없는 정진을 하게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상대가 필요해. 멸천마곡의 등장이 이것들을 다 해결시켜 줄 방법으로 적격이었지. 나는 몸의 극대화에 이르는 사의 방법을 멸천마공에 담아 사파의 천년 전설, 멸천마곡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했어. 즉, 누구처럼 선천지체를 타고났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 직전에 있었던 화극연에게 멸천마공을 준 것이지. 물론, 우연을 가장했음은 당연했고. 하여튼, 멸천마공을 얻은 그는 내가 안배한 방식대로 움직였고 마침내 절대 마인이 됨으로써 연극의 한 축을 완성하게 됐지. 덤으로 공연한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의 피와 살육의 축제는 가히 일품이었어.


- 뭐, 일품이라고?


- 암, 일품이었어. 그렇다 해도 화극연의 경지는 천상지무를 넘을 수 없네.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은 절대마인의 경지를 막을 수 있게 상극의 원리를 담아 두었기 때문이야. 천상천과 천외천의 관계가 마치 그런 것처럼 유도했던 것과 같게. 이 부분이 자네의 역할이고, 천년 연극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했던 요소야. 어쨌든, 두 세력을 앞세운 두 무공의 충돌은 천상천과 천상지무의 위대함을 낳게 했고 그럼으로써 전설은 일단 완성이 됐네. 당연히 천상지무의 일방적 승리로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에 대한 불만은 잦아들었고 연극은 천년을 유지할 수 있었어.


- 천년의 연극..


- 그래, 내가 쓴 연극! 나만이 수정할 수 있고, 끝낼 수도 있는 연극! 클클, 난 연극이 재미있도록 만들기 위해 역천마곡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암시를 남기게 했어. 그래서 천상천의 정진은 멈추지 않았고 전설은 스스로 내리지 않는 한 영원하게 된 거야. 역대 천상천주들은 이에 만족했지. 단 한 명 검강천을 빼고. 그는 많이 갈등했어. 역대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라 나 또한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상증후가 발견되지 않아 큰 신경은 쓰지 않았어. 약간의 착오가 있을 뻔했지만, 그 정도 예외란 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그는 도중에 죽었어. 물론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이것이 문제이긴 했어. 어쨌든 내 예상대로 천상천의 힘은 끝없이 커져갔지. 연극 성공을 위한 토석이 튼튼하게 자리 잡게 된 거야. 해서, 파천태극무검은 천상지무와 상극을 이뤄야 했네. 인기, 즉 힘의 차이로 등장인물 간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흥행은 불가능하지. 그것도 천년을 이어가려면 더욱더 안 되는 것이고.


- 흥행..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 태산 정도로 되겠어? 정이건 사이건 간에 몸의 극대화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내 욕심 때문이라는 건 인정할게. 내가 원하는 것은 몸의 극대화가 아닌 영혼과의 동시 극대화였어. 최초로 몸과 영혼이 동시에 진정한 해탈과 우화등선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꿈꾸었던 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무(武)란, 겉으로 명백하게 드러나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힘(力)이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기(氣)가 더해져 신체의 근육과 뼈가 갖고 있는 힘보다 더 강력한 힘(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몸의 극한이 영혼의 극한을 만나 정기신일체(精氣神一體)의 완벽한 극대화를 이루는 것이라 믿어. 의도기도(意到氣到), 기도경도(氣到勁到)라 했듯이 마음 가는 곳으로 몸이 가고, 몸이 움직이는 곳에 영혼이 함께 흘러야 하는 것이지.


- 후후.


- 단언컨대 몸을 떠나 이루어지는 무(武)는 허상이야. 순간적인 깨달음을 통한 해탈과 우화등선 또한 몸의 극대화를 이루지 못한 영혼만의 순수한 깨달음이지. 이는 무가 추구하는 바와 그 근본이 다르네. 인간이 아닌 것이지. 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출발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것이 아닌 이상 무라 할 수 없네. 그것은 허상이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야. 무는 몸이 만드는 힘에서 출발해 기에 의해 자라 영혼에 의해 그 경지를 넓혀가는 것으로만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네. 이는 영혼으로만 살았던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이고 무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이며 천년 전설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해서, 파천태극무검이 원류가 된 천외천은 천상지무를 견제하고 천상지무는 초마인의 경지를 견제하는 완벽한 정립(鼎立)을 이루어야 했네. 그런 견제와 균형 속에서 완성된 세 가지 무공의 합일을 통해 영혼의 극대화까지 이르는 것이지.


- 견제와 균형..


- 그래, 정립을 위해선 견제와 균형이 중요해. 그것을 위해 세 무공은 하나로 합치는 안배가 필요했어. 그 안배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가능했고 그 중 하나가 삼혼지문을 이용하는 것이고. 몸의 극대화를 가진 상태의 영혼의 극대화, 이는 인간이 신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지. 네가 거기에 이르면 되는 것이었고, 그것이 일인계승의 태천문(太天門)이 존재하는 이유였으며 제천문을 통한 이 모든 것의 감시가 필요했던 거네. 그것들이 하나가 되어 내 삶의 회한을 풀어주는 마지막 살풀이가 돼야 했던 거야. 이것이 내가 연출한 천년 전설의 완성이며 내가 연출해 주연한 연극의 종(終)이기도 하고.


- 태천문과 제천문..


- 다 내 작품이야. 그렇게 나는 천년 전설을 만들었고, 그 성과를 내가 취했지. 하나의 비밀에서 출발한 천년 전설은 이렇게 종극(終劇)에 이르게 돼. 이것으로 무를 주제로 한 다른 어떤 연극도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지. 천년을 공연했으니 그 작품의 탄탄한 구성(세 개 세력의 정립)과 내용들(세 가지 무공) 그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완벽한 공연(수 없는 혈난과 응징), 그를 천년이나 지켜본 무림인들의 열렬하며 지속적인 열광(천년 전설)은 이보다 더한 것이 다시 나올 수 없음을 말해줬네. 그 안에 무엇이 진행됐던 그 위대한 공연에 함께 했음을 모두가 만족했던 것이고 이제 내가 그 무대 위에 서면 천년 전설은 완성돼 영원하게 되는 것이네. 천상천도 천외천도 그리고 악역이지만 결정적 역할을 해낸 역천마곡도 함께 했다는 것에 만족해 퇴장하면 연극은 끝나는 것이지.


- 삼혼지문의 필요성도 거기서 나왔고 하나의 거짓이 역시 이것이었군.


- 그렇지. 




P.S. 이 부분부터가 제가 천검지로를 쓰게 된 이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들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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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창식 2015.01.01 12:31 신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님의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배경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무엇보다 강건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1.01 12:36 신고

      님도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랄게요.
      건강하십시오.
      님의 관심이 저를 살게 합니다.

  2. 국밥소년 2015.01.02 10:31 신고

    흥미진진 한자한자 읽고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제마단 집성전의 창틀이 통째로 날아갔다. 어떤 사전 징조도 없이 통째로 창틀이 날아간 자리에는 뻥 뚫리듯 커다란 출구가 생겼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밖의 날씨는 더없이 청명했고, 이곳이 원래 바람도 드문 곳이라 튼튼하게 만들어진 창틀이 통째로 날아가는 일이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괴변이었다.



허나 단 한 사람, 조금 전부터 이맛살을 찌푸리며 통째로 날아간 창틀 쪽을 주시하고 있었던 인물이 있었다. 당연히 그는 검강인이다. 무림맹을 천상천 내궁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한 순간부터 그는 숨 막힐 듯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화경을 넘어선 무인이면 자연스럽게 배나오는 완벽한 호신강기 같은 것이었다.



천상천주인 그를 숨 막히게 만든 그 기운은 놀랍게도 그에게는 엄청난 압박을 주면서도 집성전 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검강인은 그것을 믿기 힘들었다. 호신강기와 비슷한 기운으로 수많은 무인들 속에서 오직 자신에게만 지독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은 무공의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아무래도 제 삼 세력 같다. 모두 준비하고 나머지 천도들에게 연락을 취해 모두 이곳으로 모이게 하라. 당장 실시하고 혹시 모르니 전서구도 날리도록 해라. 천의 모든 인원이 움직일 태세를 갖추도록 하라. 다음 명령은 상대를 확인하고 알려주겠다.]



‘정말 엄청나.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해. 오직 내게만 기도를 드러낸 채, 나를 노리고 온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알려주면서..’



검강인은 빠른 속도로 자신을 압박해 오는 기운을 찬찬히 살폈다. 그는 본능적으로 필할 수 없는 승부의 시간이 왔음을 느꼈고, 피하기에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검강천보다 뛰어나. 현 무림에서 역천마곡주와 류심환을 빼면 이 정도의 고수는 없어. 대체 누구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 검무영이 아니야. 이들은.. 삼영이야. 어떻게 내 눈을 속을 수 있었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검무영은 어디 간 거야? 큰일이야. 어, 이건 또 뭐야?’

“핫.”



엄청난 살기를 느낀 일환이 몸을 대기에 풀었다. 그의 신형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지만, 그의 다리가 대기에 풀어지기 직전에 하나의 음성이 들렸다.



“그만큼 지켜봤으면 됐어. 그러다 눈 빠지겠어. 가뜩이나 귀신같은데 눈마저 빠지면 어떻게?”

“사형들, 저 놈 놀라서 허둥대는 것 봐! 하긴 우리가 무영이 형인 줄 알았을 테니, 놀랄 만도 하지만.”



일환 같은 고수를 깜짝 같이 속인 세 명의 훤칠하고 늠름한 사내들. 그 느낌이 삼혼을 한 60~70년 정도 당겨놓은 것 같은 절대무인들, 그들은 삼혼의 유일한 제자인 삼영이었다.



“이놈들이 감히.. 후후! 제법이야, 삼영.”

“뭘 그걸 같고. 여태 우리의 눈을 피했던 당신이 더 제법이지, 안 그래? 헌데 이름을 모르니 그냥 놈이라고 부를 생각인데 괜찮지?”

“클클. 어린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좋아, 내가 속은 건 인정하지. 하지만 거기까지만, 그것으로도 너무 과분해.”

“그럴까? 과분한 건 너 같은데, 우리가 아니라.”



일환을 상대하는 한성의 농이 더욱 짙어졌다. 나이로 치면 존댓말을 해야 할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그가 과도할 정도로 농을 친 이유는 일환의 무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상대 같은 상대를 만났으니, 기 싸움에서 밀리면 힘겨운 싸움이 될 터였다.



일환도 한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제천문의 눈과 귀인 제천사환의 일원으로써 살아오면서 이런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존재하지만 실제의 삶을 포기한 인생이란 그 자체로 죽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제천문의 율법은 천상천의 율법보다도 더 혹독한 희생을 요구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정도 비아냥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어차피 내 손에 다 죽을 테지만, 그게 고마울 따름이지.’

“헐헐! 귀여운 놈들. 류심환이나 삼혼 정도를 기대했는데 겨우 삼영이라? 어린놈들이 감히 제천사환의 맏형인 나, 일환 앞에서 이랬다는 사실은 죽어서도 잊지 마라. 곧 죽을 놈들이지만 죽은 뒤에 날 기억 못하면 내가 섭섭하기 때문이야. 크크크! 헐헐헐. 크하하하하하하!!”



일환은 앞으로 벌어질 일전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됐으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웃음까지 징그럽기가, 꼭 놈이라 불러야 제격인 놈이야. 이 인간 같지 않은 놈!! 길게 얘기할 것 있겠어? 말이 길면 산으로 간다고 했으니 이쯤에서 시작하는 게 어때?”



한성을 대신해 이번에는 준영이 말했다. 사실 그는 마음이 급했다. 무영 일행에 빨리 합류하려면 농을 주고받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빨리 여기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제마단으로 가는 것이 최상이었다. 어떻든 무영의 부탁대로 신비의 감시자인 일환과 그 배후를 묶어둘 수 있었고,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사실 삼영지문을 합치면 파천태극무검이 되기 때문에 천하의 일환을 속일 수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삼영은 무영의 행세를 할 수 있었고, 일환을 이곳에 묶어둘 수 있었다.



“그럴까? 한 판 진하게 놀아보자고. 어린놈들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을 테니.”





검강인은 뻥 뚫린 공간 너머로 무인들을 살펴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었다. 그 맨 앞에서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며 날아오고 있는 자의 기도란 천상천주인 그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자는, 너무나 새파랗게 젊은 그자는 죽은 검강천을 빼놓은 듯이 닮았다.



‘저자는, 저, 저 놈은.. 무영, 무영이야!’



검강인은 그 나이 때의 검강천과 너무나 닮은 무영을 놀란 눈으로 봤다. 그의 눈빛은 심하게 흔들렸으나,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검강천의 아들, 검무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천의 날에 놓쳤던 어린 조카가 전대의 천주를 능가하는 기도를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기도란 뭐야? 검강천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저 기도란 뭐란 말이야? 겨우 10여 년이 흘렀을 뿐인데, 저 말도 안 되는 기도란 뭐야?’



검강인은 무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어마어마한 기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상지무를 대성한 뒤로는 고금제일인에 올랐다고 확신했지만, 무공의 신이라 불렸던 검강천의 젊은 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올 정도였다.



‘저 3인은.. 삼혼일 텐데, 천상천 비록에 나온 것과 너무 차이 나. 한 명 한 명이 검강천의 경지에 뒤지지 않아.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어? 천상지무를 능가하는 무공이 존재하지 않거늘, 도대체 이건 뭐야? 어.. 저자들은 도망간 네 명의 호법이잖아! 저놈들이 왜 저기에 있어? 나머지 두 놈과 저 여자애는 또.. 누구란 말이냐?’



검강인이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 때 집성전 안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검신과 도천이야!”

“두 분이 돌아왔어! 무림을 구하려고 돌아왔어!”

“두 분이 칩거를 깬 모양이야. 허허허. 무림의 홍복이야. 검신과 도천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여기저기서 검신과 도천을 알아본 각 문파의 수장과 장로들이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역천마곡이 출현한 지금 그들 모두는 삼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그 중에서 두 분이 나타나 주었으니 각 문파를 대표하는 무인들은 수만 수십만의 원군을 얻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귀환이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그들은 검신과 도천보다 앞에 있는 젊은 청년과 3명의 고수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검신과 도천과 함께 오는 것으로 볼 때 상상 이상의 원군이라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성불이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의 제자인 소천불이 있기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삼가 길상이 문주님을 뵙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삼가 백강이 문주님을 맞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도문의 외문주 길상과 창룡문의 삼 장로인 백강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의 예를 취했다. 뒤를 이어 각 문파의 무인들이 검신과 도천 일행을 향해 반가움의 예를 취했다.



‘뭐라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무영과 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검강인은 각 문파의 대표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영 일행을 향해 예를 취할 때,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영을 비롯한 11인인 등장이 미리 예정돼 있었다면, 그리고 자신과 천상천의 정보망이 이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오늘의 목적은 달성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검강인 주변으로 천상천 장로들과 호법 등이 모여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상천의 주력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었지만, 집성전 안으로 들어선 11인의 무공의 깊이가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다는 사실은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반갑습니다. 무림 동도 여러분. 저는 선친이신 검강천 천상천주의 아들 검무영이라 합니다.”



집성전에 내려선 무영은 검강인을 무시한 채 각 문파의 대표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각 문파의 대표들은 검신과 도천보다 젊은이가 먼저 말을 꺼낸 것에 불만이 있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무영의 음성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검신과 도천보다 먼저 입을 연 청년이 자신을 천상천주의 아들이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천상천주의 이름이 검강인이 아니라 검강천이라고 말했다. 천상천주가 두 명이 아닌 이상, 둘 중의 한 명은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천상천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현 무림의 최고 어른인 검신과 도천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에도 자신을 검무영이라고 밝힌 청년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서있니, 각 문파의 대표들은 청년의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검무영이라고 밝힌 청년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검강인을 향했고, 그들은 숨죽인 채 그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숙, 오랜만입니다. 천상천주 검강천의 아들, 검무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숙께 인사를 올립니다. 사숙께서, 아니 도둑 천주께서 이렇게 강해져 있어서 고마움이 너무나 큽니다.”

“…”



검강인은 무영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달리 할 말도 없었다. 무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아무 말도 없으신지요? 천주 자리를 훔칠 땐 자신 있었을 거 아닙니까? 아 참, 오랜만에 만났으니 먼저 인사부터 나눠야지. 호법님들, 한 말씀들 하시죠. 도둑 천주와 외궁주를 이런 데서 만났으니, 한 말씀들 하시죠. 지난 10년 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바로 그 말씀을.”



무영이 자신의 양 옆에 서있던 호법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그들만큼 이런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왔던 사람들도 없을 터, 고금 최고의 죄인이 돼 10년을 어둠 속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던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소천주님. 천주를 지키지 못한 죄인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험, 허엄! 검 외궁주, 십년 만인가? 그 동안 역천을 감행한 저 도둑놈 밑에서 잘 지냈나?”

“…놈!”

“갈! 당장 처 죽여도 모자랄 판인데, 놈이라니!! 어떤 말이라도 네놈이 하면 그건 짐승의 말일 뿐이야. 소천주님이 계시고, 나 천상천 일 호법 구정회가 살아있는 한 네놈의 말은 짐승의 말일 뿐이야.”

“이, 이놈이..”

“놈, 놈이라고? 크하하하하! 짐승이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더 이상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이거로 충분해. 넌 그냥 죽기만 하면 돼. 여기서, 내 손에.”

“감히, 호법 따위가 나를.”

“닥쳐! 역도 주제에 감히 어디라도 함부로 입을 놀려! 심 대 장로의 손녀인 나 혜준이 외궁주, 네 놈에게 한 마디 하겠다. 너, 너무 오래 살았어. 살아있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라!”

“이년이 감히! 컬컬컬컬! 크하하하하! 좋아, 좋아. 그래, 10년 전에 죽이지 못한 내 잘못이지. 무지렁이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오늘 다 죽여주마.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외궁주의 웃음과 함께 그의 뒤로 여러 명의 무인들이 내려섰다. 똑 같은 무복에 가슴에 수놓아진 천이란 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근처에 잠복하고 있었던 천상천 무리였다. 일이 검강인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이곳에 온 모든 무인들을 몰살할 계획이었지만, 그것이 틀어진 이상 잠복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때 묵묵히 있던 검강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 좋아 좋아, 외궁주 말대로 하지 뭐. 천년을 기다려온 일인데 십년 쯤 늦춰졌다고 별반 다를 것도 없어. 크하하. 그렇게 하지. 여기서 끝내주지. 허나 시작부터 끝에 이를 때까지 너희들 기억 속에 생생히 각인시켜주마. 나 검무영, 34대 천상천주의 자격으로 천상천 33대 천주인 검강천의 떨거지들을 모조리 죽여주마. 크하하하하하하!!”



무영은 미친 듯이 광소를 토하는 검강인을 보면서 한 가닥 특유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가 말한 호랑이 눈이 이것이었으며, 무영이 처음으로 류심환의 안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 첫 번째 결정이었다.



순서를 바꾼 정면 돌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결정. 철천지원수인 검강인과 그의 일당들을 먼저 침으로써, 자신과 전대의 천상천 문도들의 마음의 부담부터 덜어야 그 다음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진정한 적들과의 일전을 부담없이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영이 말한 호랑이 눈이란 최상의 승률을 위한 숙고의 결과였으며,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을 키워준 류심환의 안배를 단 하나라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면, 패배의 가능성을 하나라도 줄이는 것이 호랑이 눈의 핵심이었다. 



게다가 검강인과 역천의 무리들을 제압한다면 진정한 적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들 정도의 고수들이라면 검강인과 역천의 무리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삼혼, 삼영, 검신과 도천 등의 무공도 한 단계 이상 뛰어오를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실전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훈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절대 명제 중 하나였고, 호랑이 눈은 이것을 고려한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일환이 이번에도 그의 몸을 삼영의 펼친 검의 진로에 맞춰 맡겨놓았다. 그것은 본능적인 반응이었으면서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대응이었다. 그의 몸은 마치 연기와 같아서 바람이 불면 그에 따라 흩어지듯, 삼영의 검기가 다가오면 그 부분이 마치 연기처럼 흩어짐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삼영은 일환의 놀라운 신형술에 벌써 삼 초나 날려버렸다. 삼영은 이런 무공이 있을 것이란 짐작조차 못했기에 그들의 놀람은 상대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다. 물아일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는.. 처음 보는 형태의 신형술. 마치 몸을 허공 속으로 분해시키는 것 같아. 이 자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야. 시(視)의 후반부 투원(透原), 그걸 극대로 펼치는 것뿐이야.’



준영은 3초의 합공을 피해내는 상대의 신형술이 중원무공의 원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근본에 이르면 모든 무공은 다를 수 없다. 이는 류심환의 일극무원결이 말해주는 것이며, 여기에 예외란 존재할 수 없었다. 한성과 철용도 준영과 동일한 판단에 이르렀고, 그들은 다섯 개 감각 중 하나인 시의 투원를 극한까지 펼쳤다.



삼영은 무영의 도움으로 파천태극무검을 대성한 뒤, 1년 동안 일극무원결 중에서 오직 시와 상에만 전력투구를 했다. 그 결과 삼영은 시에 관해서는 거의 대성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근원에 투사하는 것, 투영이면 일환이 펼치고 있는 신형술의 근본원리를 들여다 볼 수 있을 터였다.



“이만큼 피했으면 나도 슬슬 공격해 볼까. 제천문이 왜 무림을 천 년 간이나 마음대로 주물렀는지 이제부터 보여주마. 헐헐.”



일환은 삼영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합공을 제천환보(制天幻步)로 피해내며 양 손을 동시에 흔들었다. 순간 허공중에 그의 손이 수없이 생기더니, 합공에 거듭 실패한 삼영의 삼십육 방위를 순식간에 차단해버렸다.



만일 일환이 펼친 장법이 삽시간에 허공을 가득 채운 속도만큼 위력이 있다면 삼영은 그것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만큼 일환이 펼친 장공(掌功)의 위력은 가히 천하 일절이고, 그 안에는 삼영이 파악하기 힘든 비밀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삼영이 펼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합공은 투원을 통해 일환의 신형술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실패로 끝난 앞의 합공 3초와 결과와 합치면 신형술의 근본원리에 다가갈 수 있을 터였다. 그것으로 완벽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상대의 초식과 맞서는 가운데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일환이 신이 아닌 이상 이것을 눈치 챌 리 없었다. 이렇게 삼영과 일환의 서로 다른 목적의 생각들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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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하남성(河南省) 내 대별산(大別山) 앞자락에 제마단(制魔團)이 있다. 창룡문과 성도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일종의 무림맹인 제마단은 현 무림의 정파를 대표하는 단체이다. 제마단은 백 년 전 소림대첩 시 구성됐으나, 그 필요성이 사라져 이제는 명맥만 남겨두고 무림 정세만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 됐다. 현재의 제마단이란 느슨한 형태의 무림맹 수준으로 백 년 전의 위용은 사라진 상태다.



물론 그 이름처럼 무차별적인 살인을 일삼는 살마(殺魔)의 등장이나, 문파 간의 이해관계가 강호정세에 영향을 줄만큼 복잡하고 엄중할 경우 제마단은 휘하에 소속된 문파들의 인원들을 파견해 조정을 한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무력행사를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는 등 나름대로 무림의 조정자적 역할을 해왔다.



보통 희대의 살마인 경우 죄의 경중에 따라 척살하거나, 생포해 무간뇌옥에 감금했다. 문파 간의 싸움에선 이해관계를 보편타당한 무림의 관습과 전례에 따라 중재를 하거나, 억울한 쪽이 있으면 그 문파를 지원했다. 지원은 주로 정파 위주로 이루어졌지만, 때에 따라서는 정파와 사파의 중간에 위치한 문파의 경우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재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무력으로 해산시키거나 휴전을 강제하기도 했다. 중재의 관점은 정파의 보편적 규범과 관습을 따랐다.



그런 제마단 내 집성전에 제마단에 참여한 거의 모든 문파 장문인과 연배가 비슷한 장로급 무인들이 모였다. 제마단이 결성된 지 백년 만에 그 출발 시의 규모에 버금가는 거대한 집회가 이루어졌다. 이는 무림의 정세와 균형을 뒤흔들 만한 중차대한 일이 일어났음을 의미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인 무당파 소속 태극도인 문지광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무당파의 장로로 양의무극신공(兩儀無極神功)과 태극혜검(太極慧劍)을 대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당(武當)의 현 진무관(眞武觀)을 관장하고 있는 무당파 서열 이위(二位)의 초절정 고수였으며 제마단의 부단주이기도 했다.



“여러분, 이 분이 천 년 전설의 주인인 천상천주인 천검무존 검강인 대협이십니다. 바로 제마단의 태상맹주이시기도 합니다. 강호의 안녕을 위해 천 년 전설의 주인으로써 위대한 명예를 포기한 채, 복마전을 멸문시킨 고금제일의 무협이십니다.”

“아, 드디어 전설의 천상천주를 살아서 내가 보다니. 이를 어찌 믿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하면 전설의 천상천주가 일인재림의 율법까지 깨뜨릴 정도로 역천마곡의 위세가 막강하다는 것 아닙니까? 천 년 만의 혈난이 우리 세대에서 다시 발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탄성을 토해낸 화산파 장문인 자하선인(紫霞仙人) 우중문에 이어, 창룡문 삼장로 일검필 사마검(一劍必死 魔劍) 백강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창룡문 십대고수에 속하는 추살마대 대주였으며, 그의 명성을 드높인 일검필탈마혼검류는 가히 일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역천마곡의 후예들이 단 하루 만에 천마성을 몰살시킨 것처럼, 어쩌면 그들의 힘이 천 년 전의 위세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백강의 질문에 이번에는 소림의 홍인대사 소유걸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는 현 방장인 홍기옥불 소유진의 친동생이었으며 현 소림의 지객당주 겸 십팔나한을 이끄는 나한전의 전주이며 당대 소림의 삼대 고수이기도 했다. 현재 소림의 대외적인 일도 대부분 방장 소유진을 대신해 소유걸이 대행했으며 당연히 외소림(소림의 속가제자 전체를 이름)도 그가 관장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천상천이 복마전을 친 이유 또한 그것에 있다 합니다. 복마전의 주요 자리에 역천마곡의 사마령을 위장 침투시켜 복마전을 사실상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멸문을 시켰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너무 위중하여 일인재림만을 지킬 경우 너무 많은 무림인이 피해를 볼 수 있어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율법의 엄중함과 전설의 약속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검강인 태상맹주님!” 



처음 말을 꺼낸 문지광이 침중한 소유걸의 말을 받은 후에 자연스럽게 검강인에게 넘김으로써 좌중의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음. 먼저 창룡문과 성도문 및 구대일방과 오대세가의 주요 인사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 뵙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검강인이 정중한 인사와 함께 가볍게 포권의 예를 취하며 좌중을 둘러봤다. 그의 눈이 마주치는 곳에 있던 몇몇 문파의 고수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각 문파에서 파견된 대표자들이 그의 겸손하면서도 정중해 보이는 인사말과 포권에 화답했다.



“저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천년 만에 역천마곡이 다시 부활했는데 그 위세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게다가 그에 못지않은 제 삼 세력도 등장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탄성에 대전 안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들썩일 만큼 침중했다. 역천마곡 말고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그의 말에 좌중은 찬물이 끼얹어졌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 삼 세력은 숫자는 적지만 무공이 하나같이 화경(化境)에 이른 자들입니다. 현재 천상천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중 가장 약한 삼영이라는 젊은 무인들도 화경에 이른 것으로 보여 집니다.”



충격이었다. 검강인의 말은 이곳 제마단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약한 자가 무공의 최후 경지 중 하나인 화경에 이르렀다니 가장 강한 자의 무공은 어디까지 이르렀다는 말인가. 화경에 이른 초절정고수는 현 무림에서 무림 삼성과 몇몇 문파의 장문인들을 빼면 두 손을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화경에 이른 무인은 무림사를 통틀어 당대마다 그 숫자가 불과 열 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인데, 제 삼 세력이라고 하는 집단의 최약자들이 화경에 이르렀다면 그들의 위험성은 천상천이 아니면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제마단에 모인 무인들의 표정에는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갔다.



“게다가 역천마곡은 천 년 전 그 능력의 일부만 깨웠던 지옥의 열두 힘을 완벽히 깨웠는데,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그들은 단 한 명만으로도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을 만큼 절대마인의 경지에 오른 자들입니다.”



검강인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고수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력을 드러내는 순간을 만들려고 그들의 생각을 한 곳으로 유도했다. 명예라 하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통해 무인으로서의 반발을 유도했다. 여기저기서 검강인의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좋소. 천주께서 당연히 태상맹주에 오른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현 강호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허나 지옥의 열두 힘이 얼마나 세기에 그 한 명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중 어느 문파 건 혼자서 멸문시킬 수 있단 말씀입니까? 그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성도문의 부문주 길상이 그가 유도한 것에 휘말려 들었다. 검강인이 바라던 바로 그런 반발이었다.  



‘역시 네놈이 앞장서는군. 그래 마음껏 짖어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검강인이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숨기며, 고개를 아리송한 방향으로 끄덕이며 말했다.



“제 말이 과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천상천에서 알아본 제3 세력의 힘이 너무나 막강해서 제 말이 조금 과했던 것 같습니다. 헌데, 대협 명호가 어찌 되시는지요?”

“아, 미안합니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성도문의 외문주로 있는 절혼도류광(絶魂刀流光) 길상이라 합니다. 천주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는 내문과 외문으로 이루어진 성도문의 서열 삼위(三位)에 자리한 절대강자로써 도천의 사제다. 그는 성격이 너무 강직해서, 한 번 이것이 옳다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그런 부류의 협객으로 유명했다.



“무슨 말씀을. 성도문이라 하면 현 무림의 최대 문파 아닙니까. 전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무림 삼성의 일인인 도신이 문주로 있는 곳인데 그런 겸손의 말씀을. 듣는 제가 무안하군요. 길 대협.” 

“허! 감히 제가 태상맹주이신 천상천주님께 무안을 드리다니요? 천상천에 비하면 성도문이 하도 초라해 제 자격지심에 무례를 범했나 봅니다. 저는 늘 명예만 쫓아가다 이렇게 우둔해졌습니다. 맹주님의 너른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허허허! 명예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무림의 안전과 강호인들의 목숨이 중요한 것이지요. 길 대협은 너무 저를 채근하지 마시고 함께 머리를 맞대 천년 만에 재현된 이 혈난을 가장 효율적으로 종식시킬 묘책을 의논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태상맹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강호의 힘을 하나로 모아 역천마곡과 제 삼 세력을 가장 잘 막아낼 방안을 의논해야 합니다. 맹주께서 즉위식도 취소하신 이유가 그것 때문 입니다. 그러니 일단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검강인과 길상의 대화가 자존심 싸움 비슷하게 전개되자,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제마단의 현 맹주 십절서생(十絶書生) 마광수가 나섰다. 무릇 강호를 주유한 협객이라면 상대가 전설의 천상천주라 해도 한 번쯤은 일전을 치르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고금제일인하고 겨뤄봤다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호인의 특성이다. 이를 너무도 잘 아는 마광수가 적당한 시점에 끼어들어 더 이상의 자존심 싸움을 말렸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맹주. 그리하지요.”



그의 말에 제일 먼저 길상이 물러섰다. 마광수는 자신보다 연배가 위이고 현 무림맹의 맹주이니 한 발 물러선들 문제될 것은 없었다. 검강인의 입고리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일단 태상맹주님의 의견을 들어봄이 어떨까요?”



길상이 한 발 물러서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문지굉이 다시 군중의 초점을 검강인에게 돌렸다. 문지굉은 누구의 편에 서는 것이 후일을 도모하는데 유리한지 본능적으로 알았고, 제마단에 모인 대부분의 무인들도 이를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 년 전설의 천상천이라면 현 무림 전체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절대문파이니, 이런 생각은 너무나 당연했다. 문지굉의 의견에 마광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럽시다.”

“그리 하시죠. 태상맹주.”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소리가 다시 나왔다.



“허허. 여러분들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한 말씀 드리지요. 작금의 무림은 천 년 전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동안 천상천 인력이 무림 전역을 조사한 결과, 천 년 전보다 더 강해진 역촌마곡을 비롯해 두 개의 신비문파가 무림 전역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힘은 천상천이 일인전승과 은둔의 율법을 깨지 않으면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합니다. 천상천이 천마성을...”



검강인은 현재의 정세를 설명하면서 천상천이 은둔의 율법을 깨고 전면에 나선 것을 무림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천상천이 전면에 나선 것을 기정사실화한 그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천상천을 중심으로 뭉치지 않으면 안 되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물론 천상천이 무림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전혀 없음을 강조했지만,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천상천이 다시 전설 속으로 돌아갈 것이란 말은 일절하지 않았다. 그는 일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당면한 위기를 최대로 부풀리며 천상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주력했지만,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길상은 일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무림이 혈난의 위기에 처했다 해도 천상천은 천년 전설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천상천주가 어떤 이유를 든다 해도 무림 전체가 받들었던 율법을 깨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당사자가 천상천주 자신이라 해도 길상이 생각하는 무림은 모든 강호인들의 것이지 특정 문파의 독점적 지배가 허용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허나, 역천마곡이 등장한 이상 천상천이 전면에 나서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어. 그들을 상대하려면 정파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하니까. 게다가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비의 문파가 2개 더 있다면 천상천의 도움이 없으면 위기를 극복하는 게 불가능해. 문주님의 지시도 있고 하니, 일단 지켜보자.‘



길상은 마음을 가라앉힌 채 검강인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들었다.



“복마전의 멸문과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심각한 타격까지, 저들의 힘이 강력하고 세 개의 문파에 이르니, 먼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저들의 기세를 꺾을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상천의 내궁을 무림맹으로 내놓을까 합니다.”



역천마곡과 신비의 2개 문파까지, 현 무림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한 검강인이 폭탄선언을 하는 것으로 말을 마쳤다.



“네? 천상천의 내궁을?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천상천의 내궁까지 내놓을 생각이십니까? 무림맹을 위해서요.”

“그건 무림맹을 옮기자는 뜻 아닙니까? 그것은 모든 참여 문파의 뜻을 모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부분 검강인의 폭탄선언에 놀라고 감사하는 가운데, 길상은 검강인의 제안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검강인이 내궁을 무림맹으로 내놓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천상천은 천상천이고 무림맹은 무림맹이어야 한다, 길상의 생각은 그랬다.



‘클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저놈이 바로 그런 놈이네. 어차피 넌 쓰레기야. 기껏해야 몇 달 정도 더 살 수 있을 뿐이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 누가 온다 이리로. 몸놀림만 봐도 하나같이 엄청난 고수들 같아. 조심하지 않으면 날 찾을 수도 있겠어.’ 



제마단 집성전 삼 장 높이에서 떠 있던 사환이 갑자기 이곳으로 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헌데 그들이 보여 주는 기도가 하나같이 자신에게 뒤지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현 무림에 대한 감시를 이행하고 있던 사환이 있는 쪽으로 엄청난 자들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마치 그 자체가 하늘인 것 같은 사람이 있었고 그 뒤에서 함께 날아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치 그들 자신이 대기인 듯 공간을 뭉툭뭉툭 자르며 제마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현 무림의 고수들을 손톱의 때처럼 여기는 사환의 눈에도 그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사환은 소리없이 삼십여 장 밖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제마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무리의 맨 앞에 있는 사람, 그의 눈에서는 감히 마주보기도 힘든 혈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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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극장출판사 2014.12.23 17:43 신고

    안녕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



무영이 장고를 했던 내용을 삼혼과 삼영에게 말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 소림과 규모 면에서 뒤지지 않는 개방의 중심, 총타(總舵)! 이곳에서 종남파와 아미파에서 일어났던 일방적 도륙이 재현되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침략자가 역천마곡도 천상천도 아니라는 것이다.



침략자는 단 두 명이었다. 그들은 두 전설의 문파 소속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도륙은 다를 바 없었다. 한 명은 여자였고 한 명은 남자라는 점에서 달랐지만 그들 자체가 얼음에 가깝다는 것은 동일했다.



“호호호홋! 이게 얼마 만이냐. 오. 이 붉은 피들. 넘실대는 살과 잘리고 뭉개지는 뼈. 호호호. 이렇게 재밌고 즐거울 수가!”



핏빛 웃음을 터뜨리는 한 명의 여인은 바로 칠백 년 전 강호를 존망의 위기까지 몰고 간 혈사 ‘세외지란’의 주인공인 일소빙혈사 설지연이었다. 헌데, 살인을 밥 먹듯 하고 있는 그녀는 아름답기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경국지색이었다. 얼굴이면 얼굴, 잘록한 허리, 긴 팔과 다리, 나올 곳은 확실히 나왔고 들어갈 것은 완벽하게 들어간 그런 미모에 이런 말이라니.



그래서 더 끔직했다. 후세에 한천마후로 칭해진 설지연은 자신의 독문 절공 극빙마혈공을 마치 봄나들이 온 소녀처럼 춤추듯 걸인들에게 휘둘렀다. 그녀의 손이 오른편을 향하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다섯 개의 음강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똑 같은 수의 개방 걸인들의 미간과 심장, 갈비뼈같이 피가 많이 나오고 뼈가 잘 드러나는 곳을 여지없이 관통했고, 날카롭게 부러진 뼈는 살을 뚫고 나오게 만들었다. 피는 몸에서 조금 튀어나온 상태로 얼어붙었다.



“호호. 또 피가 터지네. 어머. 뼈도 살을 뚫고 나왔어. 너무 아프겠다. 어? 헌데. 그냥 죽네. 아. 뒤에도 있지. 왼쪽도 남았고. 호호호.”



먼저 웃음이 터졌고 시선이 대상을 정하면 고개가 돌아갔고 그 다음에 오른편을 향했던 그녀의 손이 그 자리에서 연체동물처럼 휘어져 목 뒤로 감기듯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손목의 흔들림을 이용해 손가락을 털었다. 그 일련의 동작이 기묘했지만 그녀의 기괴한 아름다움을 가릴 수는 없었다.



슉! 슉!



다섯 개의 투명한 지음강이 빛살처럼 발사됐다. 그 속도와 위력은 빛이 번쩍했음을 느낀 시선이 체 뇌에서 정리되기도 전에 뒤에 있던 다섯 명의 육결 제자의 태양혈과 미간, 심장과 갈비뼈, 이마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퍽! 퍽! 퍽!

“크악!” “커억!”



지음강이 지나간 곳에선 피와 뇌수, 뼈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고 그에 따른 비명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다섯 개의 비명 뒤로 연이어 터진 열 개의 비명 때문이었다. 그 중 다섯 개는 뒤에 있던 육결 제자를 관통한 지음강이 멈추지 않고 조금 방향을 틀어 다시 그들 뒤에 있던 오결 제자 다섯 명의 각각 다른 부위에 박힐 때 발생했다. 지옥의 현신이 따로 없었다.



“큭!” “컥!”



생을 마감하는 다섯 개의 비명이 피와 살, 뼈로 이루어진 절명의 흔적들과 함께 터졌고 그만큼 그녀는 미친 듯이 웃었다.



“호호호홋! 너무 신나. 앞에서도 피. 뒤에서도 피. 살과 뼈는 또 어떻고. 호호호. 그럼 이번에는 어느 쪽일까? 호호.”



나머지 다섯 개의 비명은 그녀의 말이 거의 끝날 때쯤 들렸다. 이 비명들은 그녀의 왼손이 목을 타고 뒤로 감길 때 오른손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스쳐 겨드랑이 옆으로 휘어지며 왼손과 똑 같은 방식으로 날린 지음강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 역시 육결 제자였고 지음강이 통과한 신체 부위는 뒤의 걸인들과 같았다.



“크아아!” “컥!”



압도적이면서도 너무나 빨라 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지음강이 개방의 무인들에게 강타되면서 다시 피가 튀고 살과 뼈가 뒤엉켰다. 물론 그것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곧바로 땅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다섯 개 지강 모두가 지 마음대로 움직여? 그것도 두 번 연속해서. 말도 안 돼.’



이것이 육결 제자 사이에 유일하게 섞여있던 칠결 제자 취얼개가 이승에서 했던 마지막 생각이었다.



“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좀더 버티다 안 되나. 에이, 재미없어. 그래서 또 죽여야겠어. 호호호!”



천하제일빙미 설지연이 칠백년을 격해 터뜨리는 혈소가 섬뜩하게 넘쳐나는 이곳은 개방 총타 그 정문 쪽이었다.



“일단 소개를 대피시켜라.”



길이가 반 장보다 조금 짧은 청록색 타구봉(打狗棒)을 연신 휘두르며 방주 천결개가 몇 명 남지 않은 장로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칠결 장로 중 살아남은 네 명이 급히 방향을 틀어 이제 막 소개로 책정된 난영화 구지옥을 총타(總舵) 밖으로 탈출시키려 했다. 개방의 본거지인 총타의 뒤편에서 오히려 개방의 후계자가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장로로써 소개의 안위를 책임지는 백결철권 구절환과 세 명의 장로는 개방의 절기 백결신권(百結神拳)과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을 연이어 구사하며 마지막 힘을 불사르고 있는 방주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삼십 년을 함께 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로 스쳐 지나갔다.



'잠시라도 시간을 끌어주시면...'



그들의 생각은 공통적으로 이랬으나.



“그럴 수야 없지. 내가 못 보내지. 특히 그 어린년은 더. 카카카카.”



또 한 명의 얼음인간, 빙혈천마 사마천이 천결개의 타구봉을 왼손으로 툭 처내며 오른 손목을 안에서 밖으로 뿌리 듯 아주 짧은 탄력을 붙여 급히 털었다.



슝! 슝!



네 번이 강력한 빙장이 격발됐고 한 번의 가는 빙기가 발사됐다. 네 개의 빙장은 거리를 뚝뚝 잘라내며 네 명의 장로를 향해 최단 거리로 쏜살같이 날아들었고 하나의 빙기는 구지옥의 목 뒤에 있는 천주혈(天柱穴)을 노렸다.



구절환과 세 장로는 자신들의 당문혈(當門穴)과 제문혈(臍門穴)을 파고드는 엄청난 한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틀고 손을 뻗었지만 빙장은 그들 손을 그대로 뭉개면서 당문혈과 제문혈 주변을 아예 관통해버렸다.



뻥!



경쾌한 충돌음이 일었고 약간의 피가 튀기는 했으나 그것도 금새 얼어버렸고 정말 관통된 부위는 정말 매끈해서 더욱 처참해보였다. 엄청나게 빠른 극음의 한기가 뚫어 만들어낸 단면은 즉시 얼었기 때문에 매끈한 것이 잘린 상태에서 피가 엉겨 붙은 핏줄과 근육 등이 그대로 보여 오히려 더 참혹했다. 이어서 틱 하는 소리가 구지옥의 천주혈에서 났고 그녀는 그대로 마비돼 앞으로 쓰러졌다.



“으아아악! 이 짐승 같은 놈! 죽어라!!”



이 모든 것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본 천결개가 사마천이 튕겨낸 타구봉을 겨우 되돌려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그대로 후려치며 소리쳤다. 그의 터질 듯한 분노에 그의 몸도 반쯤은 떠올랐다.



“클클. 이것으로 끝인가? 개방에선.”



사마천은 자신의 머리를 내리찍는 타구봉을 향해 오른손을 튕겼고 그와 함께 그의 음성이 냉혹하게 개방의 총타 뒤편을 울렸다. 일방적인 살육이 끝을 향하고 있었다. 무림 전체에 정보망을 지닌 거대문파 개방의 역사가 폐문의 직전까지 몰렸다.







“제천님이 깨우라 명해 깨웠지만 정말 대단한 년 놈이다. 단 둘이서 두 시진만에 개방을 초토화시키네. 헐헐. 헌데? 어느 선에서 저들을 없애지? 아. 고민 좀 되네.”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십 장 떨어진 허공 중에 일환의 음성이 적막을 깼다.

그의 신형은 바람이 불면 그 방향으로 출렁거렸고 먼지라도 일라치면 스르르 비껴갔다.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군. 크크. 재미도 있어지고. 그래. 지겨운 천년이었어. 클클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아이를 만나러 간다. 가슴이 마구 뛴다.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됐으리라. 그 예쁨은 이제 아름다움이 됐을 것이고, 그 눈부신 미소는 더 매혹적이 됐으리라. 



아이의 이름은 혜준이다. 내가 처음 천상무극진기요결을 아버지로부터 받아 들었을 때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그 아이, 이제 숙녀인 혜준은 유일한 여자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책을 봐도 그 글자가 하나의 얼굴로 떠오르며 자꾸 뒤에 옆에 있는 것 같아 때 없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그녀를 사랑함에 틀림없다.



내가 지금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아이는,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슴만 격렬하게 떨었다. 그 때문에 어깨도 같이 들썩였다. 눈은 파르르 떨렸고 눈망울은 있는 대로 커졌지만 이미 물기로 뒤덮였다. 손은, 그 하얀 섬섬옥수는 소중한 무엇을 쥔 듯 주먹을 꽉 쥐었고 다리는 후들거려 서있는 것이 불안해 보였다. 허리는 경직돼 딱딱하게 굳었고 주변의 근육은 극도로 긴장했다. 온몸이 격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그녀는, 나의 혜준은.



“오랜만이야. 혜준아. 나 무영이야.”

“…”

“이렇게 살아주어서 고마워. 보고 싶었어. 너무나도.”

“…흑!”

“이제부턴 내 곁에만 있어. 내가 지켜줄게. 누구도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하게 할게.”

“…흑흑흑흑!!”

“이제까지는 아무 것도 주지 못했지만 이후로는 줄 것만 넘쳐나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음을 자책할 정도로 아직 또 주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할게. 혜준아.”

“…오빠! 무영…오빠!! 흑흑흑흑흑!!!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흑흑흑흑!! 단 한 순간도 오빠를 잊은 적이 없었어.”

“…나도 그랬어. 나 역시 그랬어. 혜준아.”

“아침에 깨어 내 머리맡에 햇살이 있으면 그것이 오빠의 미소라 생각했고 아침상을 차리며 만두라도 있으면 그것이 또 오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해 나를 울렸어.”

“…혜준아.”

“낮에는 오빠가 많이 갔던 내궁 뒤뜰에서 오빠의 손이 간 곳이나 오빠가 디뎠을 발자국을 찾아 걷고 또 걸었고 해질녘엔 노을처럼 웃던 오빠의 미소를 찾기 위해 황혼이 모두 어둠이 될 때까지 거기에 서있었어.”

“…아!”

“또 저녁이 될라치면 이 혜준은 오빠가…”

“됐단다. 그것으로 충분하고 넘치도록 됐어. 혜준아. 그만 해. 나도 너를. 나도 너를…”



사. 랑. 해.



그리고 이날 두 사람은 한 사람, 바로 무영의 아버지인 검강천의 진정한 모습과 고뇌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왜 혜준에게서 검강천의 진기가 내장돼 있었는지, 무영이 선천지체에 대한 의문을 왜 느끼고 있었는지 그들을 비로소 알게 됐고 그것이 검강천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선택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 아버지… 진정한 무인이셨던 아버지의 뜻을 이제야 이 못난 아들이 알겠습니다.’

‘천주님. 그 깊은 뜻과 그 외로웠을 시간들이… 지금의 무영 오빠가 되기 위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 오랜 시간들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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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순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냐?”

“네. 역천마곡이 아니라 검강인을 먼저 치겠습니다. 역으로 가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네가 의심하는 신비세력이 움직일 보장은 없잖아.”

“뭔, 얼어 죽을 신비세력? 그냥 아새끼들이지! 헌데 그 자식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날 건 없죠. 어차피 없애야 할 놈이니. 대신 그놈을 처단할 때 최대로 많은 인원이 직접 보게 해 신비세력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먼저 상대를 파악하자, 이거네.”

“그거 멋지다. 지피지기면, 즉 가죽을 벗기면. 백전백승이라, 즉 호랑이를 때려잡는다는 것이지. 허, 그거 정말 멋지네.”

“네 도혼 할아버지. 호랑이를 굴에서 끌어내는 거죠. 게다가 그 자리에 역천마곡까지 끌어들이면 신비세력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도 모습의 일단이라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거에요.”

“후후. 그거 신나겠군. 원 없이 싸워보겠네. 크크, 하하.”

“해서. 삼혼께서 역천마곡을 흔들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더 좋고, 좋지. 아예 뿌리 채 뽑아놓을게. 흐흐흐. 놈들! 다 죽었어, 이제. 이 도혼 어른님이 사랑을 듬뿍 안겨주마.”

“무영아. 그러면 천상천은 삼영에게 유인시키게 할 생각이냐?”

“아니요. 불혼 할아버지. 그것을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아저씨가 미리 안배한 사람들.”

“뭐? 주군께서?”



뜻밖의 말에 불혼과 도혼이 동시에 물었다.



“네. 아저씨가.”

“아, 그래서.. 역시, 주군이야. 그 혜안의 깊이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겠어.”



불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혼의 말이 이미 귀를 파고들었다. 헌데 무영의 말도 함께 파고들었다.



“그거야, 네놈 머리가 나빠서지.”

“네. 그래요. 정말 아저..”

“그렇지? 무영아,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불혼, 저놈은 정말 돌대가리가 분명해.”



도혼과 무영의 말이 섞이는 불혼이 정말로 돌대리가 됐다. 무영은 웃으며 끊겨진 말을 이었고, 불혼의 얼굴은 붉그락푸르락 했다.



“도혼, 너 이놈!! 내, 너부터 손 보고 말겠다!!!”

“할아버지, 제 말은 그것이 아니라.. 아무튼 정말 아저씨는 대단한 분이세요. 게다가 이런 상황을 예상해 삼영이 해야 할 일을 안배해 놓으셨으니 그저 감탄할 뿐이에요.”

“뭐? 삼영이 할 일까지? 어허! 허. 허허. 역시 불혼의 주군이시구나. 도혼 저 덜 떨어진 놈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 너겠지? 주군은 너보다 날 믿으셔. 착각하지마, 이 땡중아! 늙었다고 모든지 다 갖다 붙이면 되는 거 아니거든!”



대화가 여기까지 본말이 전도됐다. 무영은 맨 날 되풀이되는 둘의 말싸움부터 막아야 했다.



“그래, 너 잘났다. 너 힘쓰는 것 굵어서 좋겠다. 젊고 힘이 넘치지만 아무 데도 쓸모없어서 좋겠다. 우이구, 이것도 사제라고. 쯧쯧.”

“큭! 두 분 싸우지 마시고요. 일단 밥이나 먹죠. 그리고 준영형과.. 삼영이 한 가지 일을 해줬으면 해. 맨 날 어려운 일만 시켜서 미안하지만.”

“말만 하십시오. …주군.”



불혼과 도혼의 말다툼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준영이 공손하게 답했다. 무영이 준영이라고 말했다가 삼영으로 바꾼 것은 삼혼이 같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삼영으로 하기로 약속한 것이 떠올라, 얼른 말을 바꾼 것이었다.



‘그래도 주군이란 말은 정말 싫어.’

“부탁할 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며칠 자리를 비울 거야. 늦지 않겠지만, 그 기간 동안 삼영이 어떤 방법을 쓰던 간에 내가 여기 머물러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었으면 해.”

“어떻게 저희가 주군을 대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힘들 것 같은데요?”

“아니. 될 수 있어. 힘들겠지만 그 방법을 생각해봐 답이 나올 거야. 셋이서 생각하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럼, 나는 한 시진 후에 출발할게.”

“하지만 주군, 뭔가 단초라도 하나만 주시면..”

“셋이 모이면 생각날 거야. 삼영이 함께 하면 뭐든 못 하겠어? 그럼, 나는 준비할게.”








“혹시 이것 아닐까요, 대사형!”

“우리끼리 있을 때는 큰형이라고 부르라 했지. 뭔데?”

“네, 큰형. 다름 아니라 우리 셋이 모여서 무영 형에게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것 아닐까요?”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그러네. 네 말이 맞아. 그런 것 같아. 형, 안 그래?”

“허허, 철용이가 보통이 아니네. 우린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허허, 막내가 최고야.”

“헤! 형. 뭘 이정도 갖고.”



철용이 준영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야! 그러면 나는 그 정도도 아니다, 이 말이잖아? 이 노~옴 철용아, 이 예쁜 막내야.”

“켁! 헤헤.”

“하하하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곳은 무영과 류심환이 상승무공의 기초를 닦았던 무명곡! 무영이 삼혼과 삼영을 차례로 만날 때, 두 신형이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그들의 신형은 그 은밀함이 삼재나 쌍비에 못지않았다. 신형 하나는 육척을 넘는 장신에 어깨가 넓고 전체적으로 건장한 것이 남자인 게 틀림없었고 나머지 신형은 작고 동그란 어깨와 가녀린 허리, 길고 얇은 다리와 팔로 볼 때 여자인 게 분명했다.



“금강인가요?”



여자로 보이는 신형이 듣기만 해도 심신이 맑아지는 소리로 칠 척 장신의 신형에게 물었다.



“네. 그렇소. 당신은?”



그는 중저음의 음성으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고 다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네. 혜준 맞아요.”

“반갑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아마, 저곳 같습니다. 거기에 현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혜준임을 확인한 금강은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네. 그리로 가요.”



그녀의 말이 끝남도 동시에 두 사람이 무명곡의 동쪽 끝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곳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클클. 이런 어린 얘들과 함께 해야 한다니. 이거 참. 이 나이에 입장이 말이 아니야, 말이. 너 금강이라 했나?”



칠 척 장신의 거구였지만 머리는 감았으나 냄새가 남아 있고 삐쩍 말라 뼈가 다 드러날 정도 로 마른 강시 같은 사람이 금강에게 물었다.



“네. 금강입니다.”



그의 음성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담백함과 단아한 품위가 느껴졌다.



“어린놈이 늙은 티내는 느낌하곤. 클. 그럼 너는?”

“혜준이라고 해요. 할아버지는요?”



초롱초롱한 별빛 같은 눈망울로 혜준은 현성이란 존재가 마냥 신기한 듯 올려보았다.



‘허. 이렇게 크고 맑은 눈이. 그 안에서 헤엄도 치겠어. 원, 저런 눈이 있다니?’

“나는 현성이라 한다. 하지만 내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열 받으니까.”

‘이름을 얘기해 주고 부르지는 말라니?’

“그럼 뭐라 불러요?”

“험.. 음.. 에.. 그러면. 험. 어.. 그러니까. 험.. 에라! 그냥 현성이라 불러.”



그 또한 그들과 너무 많은 나이 차이가 커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칠십 년 세월이 너무 가슴에 맺혀 죽어도 할아버지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땅한 호칭이 도통 떠오르는 게 없었다.



“호호호. 그럼 사숙이라 할게요. 현 사숙님. 와. 그렇게 부르니까 참 좋다. 혜준은 그게 좋아요. 현 사숙님.”

“혜준 소저님이 그러시면, 저도 사숙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야! 넌 됐어 그냥 부르지 마. 필요하면 내가 놈이라고 부를 테니.”

“어머, 현 사숙님 그러는 게 어딨어요. 그럼, 금강 오빠가 맘 아프잖아. 그냥 사숙이라고 부르게 해줘요. 응? 나의 사숙님. 헤헤.”

‘응? 나의 사숙님… 이라고. 요 맹랑한 것 보라? 저 표정은 또..’



혜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에 견딜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그는 고금제일의 감정억제신공을 대성한 자일 것이다.



“혜준의 사숙님. 응? 그렇게 해줘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귀엽고 아름다운 거야. 에라. 한 번 망가진 것.’

“알았다. 너도 사숙이라 불러.”

“네. 사숙.”

“님 자 붙여.”

“네 사숙님!”

“와 이것으로 우리 사이의 관계가 정리됐네. 잘됐다. 그럼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맛있는 저녁 준비할게.”

“저. 혜준 소저…”

“왜? 금강 오빠.”

“저… 저녁은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왜? 내가 하면 맛없을 것 같아서? 아니야, 이젠 나 잘해.”



금강의 말에 혜준의 말끝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왕방울만한 두 눈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야, 놈! 니가 왜 밥을 해. 넌 빠져. 혜준…아, 네가 해라.”

“정말? 알았어요, 나의 사숙님.”



그렁그렁한 눈물이 쏙 들어가며 혜준이 해맑게 웃었다.



‘우와! 죽겠네. 지 사숙이래? 헐, 저놈의 표정하고는!’

“왜! 또 뭐! 야. 제발, 그 표정 좀 풀어..라.”



혜준이 눈을 약간 찌푸린 채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인가 부탁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알았어. 알았어.”



현성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혜준이 자신을 왜 그렇게 뚫어질 듯 바라보는지.



“야. 놈. 너도 같이 해. 대신 놈, 네가 장작 패 불 피고 쌀 씻고… 뭐, 그런 거. 잡일은 놈, 네가 해. 끝!”

“와. 잘됐다. 그럼 왕창 산해진미를 차려야지.”

“…네. 혜준 소저.”

“야. 놈! 젊은 놈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놈!”

“넵!!”

“호호호호. 오빠 그냥 같이 해요.”



그녀의 웃음은 정말 옥쟁반에 구슬 구르는 소리였다. 금강은 왜 선인들이 혜준 같은 웃음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어색한 세 사람의 만남을 부드럽게 만들려는 혜준이 노력이 가상할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허나, 그들을 볼 때마다 혜준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저렸다. 그들의 몸에는 천상천 네 호법의 희생도 함께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혜준은 며칠이 지나면 자신은 그들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온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렸다. 그녀의 옆에서 간도 보고 몰래 소금도 넣고 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도왔지만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과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한 가지 합공을 수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합공은 펼쳐질 수도 평생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수련의 결과가 거의 완성에 다다랐다. 그 순간이 오면 현성과 금강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해 완벽한 어둠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그것은 은형술을 펼쳐 숨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아예 그들의 삶 자체를 어둠에 묻어둬야 했고 일이 잘못되면 그들은 영원히 그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더욱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해 결국 임무의 완성은 두 사람의 완전한 희생을 담보로 했다.



그래서 혜준은 마음이 더욱 아팠고 상을 차리는 손에 자꾸 눈물이 떨어졌다. 해서, 혜준은 간절히 기원했다. 아예 최상의 결과가 나와 모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무영 오빠가 해내길 바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같은 것을 기원했다. 며칠만 지나면 자신들은 이제부터 존재하지 않는 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돼야 한다. 현성은 자신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무림 삼성의 제자로 선택된 이유도 천년 전설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전설만 믿고 기다릴 수 없어 삼성이 천하 기재인 자신을 보자마자 공동 제자로 받아들였고 최강의 전사를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 같았다. 이제 팔십을 넘기는 나이가 돼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운명은 아예 돌고 도는 것 같았다. 인간은 그 안에서 쳇바퀴 돌듯이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금강은 혜준이 너무 예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녀와 있는 동안은 바라만 봐도 좋았기 때문에 그 다음은 일은 그녀가 떠난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까짓 것 사나이 한 목숨 아닌가. 혜준 같은 사람이 나 하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무림이나 천하. 뭐 그렇게 대단한 것 대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까짓 것 정말 사나이 한 목숨 얼마든지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그녀가 곁에 있어 행복하고 너무 아름답고 눈부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금강은 이십 평생 짧은 세월이었지만 처음으로 행복이란 단어의 뜻을 알 것 같았다. 그녀와의 만남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어쨌든 그녀가 지금은 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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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소림의 입설정(立雪亭)으로부터 조사동(祖師洞)이 있는 방향으로 오백여 장 떨어진 송림! 그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소림 내에서도 장로급 이상만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전설의 각불동(覺佛洞)이 있다. 이곳은 백 년 전 성불이 폐관에 들며 특별히 만들어진 임시 동굴이고, 소림사 내에서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지난 백 년 동안 현 소림방장인 홍기옥불 소유진만이 이곳을 한 번 다녀갔을 뿐이다. 그곳에서 백 년 동안이나 쌓여왔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음성은 두 개였다.



“강아, 네가 이곳에 보내진 지 벌써 사년이다. 그 동안 네가 두 가지 무공의 기초를 다 익혔으니 이제 무명곡으로 떠날 시기가 됐다. 이제 준비를 하거라.”



성불이 인자로운 표정으로 한 청년의 등 뒤에서 가부좌를 튼 상태로 말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스무 살 안팎의 청년이다. 헌데… 성불은 두 가지 무공이라고 말했고, 무명곡을 언급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저는…”



강이란 불리는 청년이 말을 했으나, 침중한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고 성불에 의해 제지됐다.



“내가 네 사부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네가 익힌 무공은 내 무공이 아니다. 나는 그 무공 주인의 수하가 제시한대로 너를 도와줬을 뿐이다. 나 또한 그 무공의 원리를 이제야 조금 알 듯 한데 어찌 내가 너의 스승이 될 수 있겠느냐. 더 이상 이를 거론치 말고 운기에 정신을 집중해라.”



성불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했다. 그가 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제자이며, 그 다른 사람은 성불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무공의 소유자였다. 사부와 제자의 관계가 엄격한 소림 출신의 성불이 아니어도 금강을 자신의 제자로 묶어두기에는 그의 그릇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의 크기가 너무 크고 넓어, 내정할 정도로 사실 관계를 명확히 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의 말에 소천불 금강이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몸을 한 자 가량 공중으로 띄웠다. 그가 그렇게 허공 중에 자리를 잡자 성불의 몸도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그만큼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양손을 금강의 후단전에 댔다. 그것은 공력을 넘겨주는 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따르는 내공전수였다. 성불은 해탈에 들기 전에 자신의 백이십 년 공력을 유일한 제자인 금강에게 주입시켰다. 그 역시 무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무림 삼성이라는 위치를 넘어 정파 무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것이었다.



검신과 도천이 자신들의 공력 일부를 현성에 주입시킨 것처럼 그 역시 소천불 금강에게 자신의 내력을 주입시켰다. 다만 그는 내력 전체를 금강에게 주입시켰다. 성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제자에게 넘겨줌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에서 최대한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제자 사랑이었다. 금강은 후단전에서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부처의 법어 같은 불력(佛力)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불타의 깨달음이 바다와 같음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따뜻하고 헤아릴 수없는 거대한 량의 불력이었다. 금강은 비로소 자신의 스승이 이룬 경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성불은 그렇게 해탈을 했다. 그는 금강에게 자신의 불력의 마지막 한 올까지 다 전해주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기쁜 마음과 두려움을 지닌 채 입적에 들었다. 이렇게 무림 삼성의 일원인 소림 역사상의 최고 기재로 꼽히는 성불이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해탈의 경지에 들었는지 가부좌를 튼 그의 얼굴에는 해탈한 고승의 인자한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백년 이래 최고 무인이며, 무림 삼성의 일원인 성불이 생을 마감하고, 그를 능가할 가능성이 높아진 새로운 신성이 태어났다. 이 모든 것은 속혼을 통해 류심환이 진행시킨 무영과 그의 동반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안배였다. 그 시작은 류심환이었고, 그 끝은 무영에 의해 완성될 무림의 새로운 신화의 시작이었다.

금강이 눈을 떴다. 그의 앞에 삶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성불을 떠나보낸 검신과 도천이 서있었다.







‘무영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류심환에 뒤지지 않을 정도야.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일어났어. 허면 나는..’

“원인을 찾아야 해. 어디서부터 잘못이 있었는지 찾아야 해. 아니면.. 아예 씨를 말리면 돼. 하지만 씨를 말리는 것은 재미없어. 일환!”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일환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제천님!”



소리와 함께 익숙한 그 오체 복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재현됐다.



“하늘의 힘 십이력 중 칠력과 팔력이 일소빙혈사 설지연을 맡고, 구력이 빙혈천마의 후인을 맡아 그들이 일으키고 있는 혈사를 지켜본 뒤 어느 정도 진행됐다 싶으면 그들을 제거하라고 전하라. 출신 문파는 밝히지 않는 것,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존명! 소신 일환 제천님의 명을 받아 이를 시행함에 추호의 빈틈도 없게 하겠습니다. 제천님!”

“나머지 하늘의 힘에겐 가정 둘을 시행한다. 전하라. 종!”

“존명! 제천님!”



제천의 명령이 끝났으니, 일환은 당연히 그 말의 끝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자리에 아직 그가 일으킨 티끌만한 바람이 돌고 있는데 그 위로 제천의 마지막 말이 스쳤다.



“내일 류심환을 만나야겠어.”

‘크크. 내가 아닌 무천으로.’



물론 그의 생각은 스치지 않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제 됐어. 마지막까지 다 끝냈어. 후우! 일이 잘 돼 이것까지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일단, 무영을 믿자. 결정은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 자! 다들 힘내라고. 내가 모든 순간마다 함께 하고 간절히 기원할 테니, 다들 힘내서 꼭 살아서 다시 보자고. 그럼, 나는 내 일을 볼까.’

“이봐. 눈만 떠 있는 놈. 약속한 일주일이다. 저번에 하지 못한 얘기, 오늘을 끝내자고.”



류심환이 비궁이 무너진 뒤에 들어난 제천문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삼장 높이의 담과 전각 몇 개가 다인 제천문 앞에서 일주일을 내내 그런 상태로 있었다. 어쩌면 그는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떠있는 것이 누워있는 것보다 편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류심환은 존재하는 자체가 자연과 하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야! 눈만 떠 있는 놈. 빨리 와. 일주일 다 됐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은 한 가지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다. 귀곡의 일을 정리하고 나온 이후부터 그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 그는 무엇인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생각을 하는 중에 가끔 머리를 짧게 흔들거나 한 숨을 쉬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었고, 그럴 때마다 삼혼과 삼영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제 무영은 거칠 것 없는 경지에 이르렀고 자신들도 예전의 자신이 아니거늘 무엇이든 다 쓸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무영이 장고에 들어간 것이다. 삼혼 중 특히 도혼은 불안도 했지만 무영의 장고가 계속되자 마침내 그의 궁금증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물론 그가 참아낸 시간이 하루도 아닌 고작해야 반나절에 불과했지만.



‘끙! 더 이상 못 참아. 이러다 내가 죽지. 에라 모르겠다.’

“무영아. 대체 뭔 생각이냐? 내용이 뭐길래 이리도 기냐? 말 좀 해줘라.”

“…”

“쩝. 무영아. 정말 답답해 죽겠다. 대체 뭔데? 또 호랑이냐?”

“…?”



무영의 눈이 처음으로 떠졌다, 의문으로.



“…!”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한줄기 빛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그래! 호랑이다. 호랑이야. 맞아. 호랑이 눈이야.’

“맞아요. 도혼 할아버지. 호랑이 눈이에요. 항상 눈 다음에는 호랑이가 있죠. 그래서 호랑이의 눈이 무서운 거죠. 맞아요. 도혼 할아버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호랑이 눈은 뒤에 호랑이가 있는 것을 알기에 무서운 거예요.”



그때, 도혼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무영이 처음 해보는 장고를 끝낼 단서를 찾은 바로 그 순간에 불혼은.



‘야. 도혼! 너 또. 이번에는 정말 죽어봐라.’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며 이번에는 기필코 도혼을 개 패듯 손보기 위해 주먹을 치켜들었고, 게다가 힘까지 잔뜩 넣었다.



‘헛! 이건 또 뭐야? 호랑이 눈이라니? 도혼의 말이 맞다니… 이거 원, 손을 어디다 두지?’



힘을 잔뜩 주기까지 했던 주먹을 펴며 마치 먼 산 가리키듯 시선과 함께 돌리며 슬그머니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긴 이곳에는 호랑이가 많을 거야. 암!”



허나 도둑이 제 발 저린 불혼이 뭔 짓을 하던 도혼의 생각은 달랐다.



“뭔 소리여, 그게? 호랑이 눈이라니!”



그는 무영의 말이 뭐가 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뭔가 자신이 한 말이 적절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호랑이가 눈에 문제 있어? 왜 그러는 건데? 호랑이 눈이 도대체 뭔데?”

“…! 아…! 답답하셨구나. 미안해요. 제가 생각할 것이 있어서.”

“미안하다니, 무슨 소릴. 중요한 것 같던데 얼마든지 더 해도 괜찮아, 우리는.”



불혼이 적절한 순간에 끼어들 수 있었고, 도혼의 헛소리를 더 듣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혼이 그의 생각대로 할 리가 없었지만.



“야. 불혼! 이번에는 네가 빠져. 대체 호랑이 눈이 뭐야? 얘기해 봐. 어서.”

“야! 도혼. 너 정말. 흠.”



그의 말에 속이 뜨끔한 불혼이 말을 다 끌지 못했고 그나마 끝을 흐리기까지 했다. 한결같은 그들의 말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무영이 입을 열었다. 



“하하. 두 분 싸우시지 마세요. 제가 말씀 드릴게요. 하하. 호랑이 눈은 다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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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라니 2014.12.14 11:06 신고

    즐거운 맘으로 잘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4.12.14 11:54 신고

      소설 연재를 잠시 잊었습니다.
      어제 생각이 나 급히 올렸습니다.
      1부 끝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매일, 또는 하루 걸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 박창식 2014.12.16 15:14 신고

    와!드디어 2달만에 기다리던 작품이 재개되었네요.
    우영워드와 함께,손꼽아 기다리며 님의 글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시대진단과 함께
    이리도 멋진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인천에서 작은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상황이 좋지를 않지만,국민티브이,뉴스타파등 진실을 알리는
    매체에 이래 저래 10만원 정도의 기부를 하면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작은 돈이지만,매월1만원을 후원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준 지식과 시대성찰을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크지만
    작은 위안이라도 되길 희망하며...

    • 늙은도령 2014.12.16 16:17 신고

      고맙습니다.
      님의 후원이 저에게는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비판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또한 좋은 글과 소설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서민이 잘 사는 나라가 될 때까지 저의 비판은 계속될 것입니다.
      님의 관심과 격려에 힘입어...
      감사합니다.



천도령과 천불령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달려든 각각 여섯 명의 탈혼객들을 상대했다. 천도령은 먼저 왼손을 앞으로 뻗어 천상도력마절장을 격발했고 이어서 손목만 우측으로 틀어 다시 장풍을 발사했다. 동시에 오른손도 왼손 밑으로 교차하며 좌측을 향해 장풍을 폭사했고 다시 손목을 안으로 꺾어 뒤쪽을 향해 장풍을 뿌렸다. 이어 몸을 뒤로 젖히며 오른발로 두 번의 각경을 만들었다.



헌데, 그 역시 처음에 격발된 장풍이 정면으로 날아든 오와 칠 탈혼객 중 칠의 머리를 박살냈으나 그때 느껴진 반탄력에 의해 오 탈혼객의 머리는 반쪽만 박살낼 수 있었다. 오 탈혼객 머리의 반을 박살냈지만 장풍에 대한 반탄력은 더욱 커졌고 손목만 비튼 상태로 발사한 두 번의 장풍은 결국 십이와 십사 탈혼객의 머리가 아닌 턱에서 작렬했다.



물론 그것으로도 둘 다 반쯤은 죽었지만 그가 세 번째로 우측을 향해 폭사한 장풍은 십일 탈혼객의 왼쪽 어깨부위만 뭉개버렸고 뒤로 튕긴 마지막 장풍은 십이 탈혼객의 우측 어깨만 가격하는 것에서 그쳤다. 자연히 아무 타격도 받지 않은 십사 탈혼객이 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왔는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입술 선이 귀를 향해 양 옆으로 최대한 벌어졌다.



어쨌든 자신은 살았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검이 이 무지막지한 놈의 어깨를 관통하는 것이 아닌가. 십사 탈혼객은 동료들의 죽음보다 적을 처단했음이 기뻤을 뿐이다.



‘땡 잡았어.’



그의 기쁨이 너무 커서 동문수학한 형제들이 죽어가는 도중에 그만 웃음까지 터뜨리고 말았다.



“크크크! 죽어라, 이 괴물 같은 놈.”



그는 상상하기도 힘든 괴물을 잡았다는 생각에 다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헌데.



‘응? 분위기 왜 이래.’



그랬다, 그의 입이 찢어졌지만 모든 초식은 아주 미세한 차이가 눈덩이처럼 커져 종국에는 뜻했던 위력의 반에 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처럼, 천도령의 절초가 마지막에 드러낸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대가는 자명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의 검이 자신의 몸을 관통했고, 극렬한 통증과 함께 피가 튀었으며, 살점과 옷 일부분도 찢어졌다. 그나마 천도령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머리를 옆으로 틀었기 때문에 머리가 관통되지 않고 그 선에서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공격에 죽거나 치명상을 입은 탈혼객들이 터뜨린 비명 속에서 검이 관통하며 전해진 충격에 일장을 뒤로 밀려났고, 그 사이에 한 번 더 장풍을 뻗어 십사 탈혼객을 쳐내 검이 더 이상의 진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는 그 정도에서 간신히 절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어떤 놈이냐. 첫 장풍에 반탄력을 높인 놈이.”



천불령 또한 천도령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똑같았다. 그 역시 네 번의 불장과 두 번의 각경을 펼쳤으나 첫 불장부터 전해오는 반탄력에 사 탈혼객을 절명시킨 순간부터 자신의 불장이 조금씩 그 흐름이 밀려 구 탈혼객은 치명상, 십탈혼객은 중상을 입히는 선에서 그쳤다.



나머지 십오와 십칠 탈혼객에 이르러서는 그보다 더 결과가 나빴다. 둘 중 십칠 탈혼객은 경한 중상, 십오 탈혼객에겐 상처도 주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목과 어깨가 연결되는 부위에 십오 탈혼객의 검이 관통됐다.



“컥!”



짧은 비명과 함께 그도 불장을 한 번 더 발사해 십오 탈혼객을 쳐낸 후 그 역시 비슷한 높이의 한 곳을 향해 소리쳤다.



“정체를 밝혀라.”



천불령의 음성도 천도령처럼 죽은 자의 음성과 다를 것이 없었다. 허나, 그 음성의 허무함과는 달리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펼친 절대 강자가 나타나리라 예상되는 지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십팔탈혼객의 합공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의 초식을 정해야 했던 살신 무명인과 살아남은 열두 명의 탈혼객은 그들이 느낀 공포와 두려움, 분노와 좌절의 감정은 차라리 공황상태에 가까웠다. 천상천 무리들의 무공이야 천년을 전설로 이어온 것만큼 그 막강함을 비로소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그렇다 해도 그들의 공격을 동시에 틀 수 있는 자가 천하에 존재하리라는 것은 아예 그들의 상상이 이를 수 있는 영역마저 넘었다.



‘허!’

‘어!’



그들이 만들 수 있는 반응은 이 정도였고, 웃음까지 터뜨린 십사 탈혼객은 시간이 흐를수록 똥줄이 탔다.



“어느 은공이신지요. 귀곡의 멸문을 막아주신 대협이?”



십사 탈혼객과 함께 무명인도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자가 누구인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전설의 천상천주라면 모를까, 이 정도의 능력을 지닌 고수가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검무영이라 한다.”



너무나 맑아 천상에서 내려온 음성의 주인공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인 중 유일무이한 경지에 오른 무영이었다. 고금제일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종남파에서 맛 베기로 보여줬던 무영이 귀곡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그의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무림사의 첫 장을 기록할 무영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표홀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가족과 수하의 검에 처참하게 생을 마친 천상천주 검강천의 비겁했던 아들이며.”



번쩍!



그의 오른손에서 하나의 빛이 일었고, 그것은 지독하게 투명했다. 천불령은 그 투명함이 빛의 근원이었는지 아니면 빛의 결과였는지 헷갈렸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의 생각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퍽! 하는 소리와 슥!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고, 그것은 투명함이 지나간 곳에서 나왔으며 천불령이 이를 알았을 때는 그의 오른 팔이 몸에서 분리되는 격렬한 통증과 함께 알 수 있었다. 



'너무 빨라.'

“크악!”



천불령의 비명은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 것이 확실히 자신의 팔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터져 나왔다. 신경이 전해주는 속도와 눈이 보는 속도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다. 통증을 인식하는 것과 외팔이가 되었다는 생각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빛의 속도를 인간의 검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무인으로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끝을 알고 싶은 욕망은 죽음보다 강한 치명적인 호기심이었다. 



다만 천불령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검무영이라는 자가 또 다시 말을 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 이름이..



'검무영이라고??'



“짐승보다 못한 검강인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돌아가신 내 어머니 유선화의 무력했던 아들이며.”



번쩍!



이번에도 상대의 검에서 하나의 빛이 일었고, 그것은 투명함에 속에 앞의 것보다 약간 붉은 기운이 들어 있었다. 천도령도 눈으로 본 것은 빛과 붉은 투명함 중 어느 것이 근원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몰랐지만, 천불령의 경험을 기준으로 하면, 퍽! 하는 소리는 투명함이 자신의 어깨와 목이 만나는 지점에 도착한 소리였고, 스윽! 하며 일어난 소리는 그 결과라는 것을 경험으로는 알았다.



그것은 두 마찰음과 함께 천도령의 어깨부위와 목이 만나는 지점에 빛이라고 여겼던 무영의 검이 관통됐고 이어 그의 검이 사선으로 내려가며 천도령의 어깨부위를 통째로 잘라낸 것을 의미했다. 그 잘린 단면에선 피가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해 사방으로 잘게 튀어 분홍빛 물감처럼 퍼졌고,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비명이 터졌다.



“크아악!”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려는 어깨부위를 잡으려 천도령은 급히 왼손을 오른쪽 어깨로 보냈으나 이미 늦어 그는 속절없이 비명만 더 질렀다.



“아아악! 내 팔!”

“소천주..?”



검무청이 그제야 절대 무인이 전 천주 검강천의 외아들 무영임을 알았다.



“나에게 제 이(二)의 삶을 주신 류심환의 부족하고 무심했던 제자이며 아들이다.”



번쩍!



그의 양 손에서 두 개의 빛이 일었고 그 빛은 적홍색 투명함을 보였다. 마침내 무영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낸 천상지무의 제 일초 천상태극뇌전류(天上太極雷電流)가 급히 몸을 날려 도망가는 검무청의 오른쪽 무릎과 회음혈을 파고들었다.



잘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무청의 다리에서 무릎 아래가 잘려 밑으로 떨어졌고 회음혈을 강타한 검기에 그는 순간적으로 몸이 마비되며 먼저 떨어진 다리 위로 추락했다.



쿵!

“크악!”



그가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치욕, 두려움을 섞은 비명을 질렀고 그나마 천상천 외궁주답게 무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무영 이놈! 감히 네놈이, 나를… 헛!”



그는 다시 헛바람을 켜며 두 눈을 부릅떠야 했다. 그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찌 이것이 인간이 펼친 무공인가? 전 천주 검강천도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어. 검에서 동시에 나온 검기가 무릎과 회음혈에서 서로 다르게 느껴졌어. 동시에 만든 초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니? 헌데.. 이 초식은? 이름이 검무영이라고??’



“이제 내가 천상천을 벌하려 하니, 그 처음이 바로 너다. 내 부모가 당한 고통의 한 조각만큼만 너를 통해 보상받겠다. 네 목숨은 그 정도 가치밖에 되지 않아서.”



무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검강천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검무청의 시선에.



번쩍!



다시 빛이 일어 완벽하게 투명한 검기가 발사됐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목젖 부위에서 아주 미세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하나의 감각이 통증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검무청은 그 빛이 자신이 그렇게 익히고 싶었던 천상지무의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天上制魔奪魂劍)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검강천의 아들인 검무영이 이를 펼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렸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싹뚝!



그가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소리.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갖기를 원했던 초식에 의해 생을 마쳤다. 그의 잘린 목에서 처음에는 피가 맹렬한 속도로 분수처럼 솟아오르더니 곧이어 물컹물컹 새나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흘러나온 피는 엉거주춤 앉은 자세로 있던 그 주변의 흙을 흥건히 적셨다.



‘이 초식은.. 천상지무 일초와 이초! 간단하게 죽였네, 나를. 결국.. 나 벌.. 받은 것이네. 헐헐..’



그의 부릅뜬 눈이 말하려 했던 것은 이것이었으나, 그것은 그만의 생각으로 그쳤다. 그리고 목이 잘려나간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 이어졌다.



퍽!



검무청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몸통과 부딪친 피가 주변으로 조금 튀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생각이 피에 튕기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것이 귀곡을 구해주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은원이 없을 뿐이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무영이 모든 것을 마친 후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무명인을 향해 말했다. 무영의 말에 무명인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 생각은 이랬다.



‘재수 없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코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천하제일미녀가 다 벗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주책없기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할 만했다. 무명인, 그나마 이름 없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특히 검무영이라는 새파란 젊은이와 원수를 진 적이 없다는 것은 더더욱 다행이 아닌가?


ㅡㅡㅡㅡㅡ


천도령과 천불령은 자신들의 온몸을 관통하는 전율을 느꼈다. 비록 그들은 천상대력무상대법과 흡혈차능대법에 의해 금제돼 검강인의 꼭두각시가 됐지만 무영에게서 검강천의 이름이 나오고 그가 펼친 무공이 천상지무임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머리에 터질 듯한 압력을 느꼈다. 그 고통이란 오른 팔이 잘려나가고 어깨부위가 통째로 잘려진 것보다 더 심했다.



“으아아악! 머리가, 머리가! 크아아악!”



천도령이 머리를 산산조각낼 만큼 날뛰는 이상한 기운에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검강천! 크아악! 검무영! 으아악! 나는. 나는.. 제마령이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죽이지 않았어. 크아아악!!! 내 머리가, 내 머리 속이!”



천불령은 두 사람의 이름을 정신없이 외치다 자신의 머리를 부서 버리기라도 할 듯 주먹으로 퍽퍽 치는 것이 아예 미친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심혼까지 제압당했어. 되돌릴 방법이 없겠어. 어쩔 수 없지. 검강인, 그 놈을 탓할 일이지 너희를 타할 일은 아니겠지.”



무영은 그들이 심혼까지 금제 당한 상태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서 되돌릴 방법이 없음을 확인한 후 마음을 굳혔다. 



“죽어 저승에 가거든, 내 아버지 검강천 천주에게 용서를 구하라.”



침중한 음성으로 말을 마친 무영이 오른손을 두 번 흔들었다. 꼭 필요한 만큼의 강도를 지닌 지풍이 발사돼 천도령과 천불령의 미간을 관통했다. 그들은 그것으로 절명했다. 그들의 입에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뒤로 젖혀진 머리가 앞으로 되돌아온 후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쓰러지는 그들의 표정에 언뜻 미소가 어리는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나면 너희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무영은 스칠 듯 지나간 그의 흐린 미소를 허전한 마음으로 보며, 천천히 돌아섰다.



“삼영. 나머지 천상천 잔당들을 처리해줘. 부탁할게.”



상황 종료를 알리는 무영의 말이 흘러나왔다. 무영은 어차피 죽여야 할 자들이라면 손속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무영은 무인의 목숨을 거두는 일이라면 최선의 절초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최고의 절초로 그들의 목숨을 취한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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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꽃 2014.10.11 05:21 신고

    새끼 강아지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가..읽고갑니다.감사. *...*

  2. 박창식 2014.10.11 09:52 신고

    님의 소설을 항상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무영의 행보가 너무나 궁금하네요.

    • 늙은도령 2014.10.11 19:44 신고

      얼마 남지 않아서...
      이 소설은 3부로 구상했는데 2부까지만 썼거든요.



현 무림을 정과 사로 나눌 때 사파의 경우 그 세력의 크기에 따라 순서를 정했다. 물론 세력의 전체적인 힘이 순서대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 백년 간 일어난 일들과 각종 대결과 비무의 결과, 문도수와 그 중 절정에 오른 고수들의 상대적 숫자와 절대적 숫자간의 조화 등 모든 것들을 종합해 분석한 뒤 이를 십년 간 더 지켜본 후 결정됐기 때문에 대체로 그 순위가 맞았다.



허나, 위로부터 세 개 세력은 그 힘과 저력, 역사의 우위를 쉽게 논하기 힘들어 통칭 사파정립세(邪派鼎立勢)라 칭하여 세 세력 간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았음을 대변했다. 무림인들은 이런 정립상태의 세력 균형을 일성일전일곡(一城一殿一谷)의 정립이라고 말했다. 이중에서 일성은 천마성을, 일전은 복마전을, 일곡은 귀곡(鬼谷)을 말한다.



이 세 개의 거대 사파가 나름의 균형을 이룬 것은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림을 혈겁 속으로 몰아넣은 6대마인과 사파의 악행이 구대문파를 비롯한 정파의 근거까지 흔들 정도에 이르자, 무림삼성을 앞세운 정파가 무림맹을 결성해서 6대마인과 사파연합의 혈겁을 종식시킨 ‘소림대첩’의 결과였다.



정파와 사파가 건곤일척의 대격돌을 한 소림대첩에서 무림삼성이 6대마인을 제압하고, 구대문파를 중심으로 한 무림맹이 사파연합을 분쇄함에 따라, 살아남은 사파의 지도자들이 무림맹과의 협상을 통해 각각의 근거지로 물러나, 주위 500리 밖까지 세를 넓히지 않는 조건으로 멸문지화는 피할 수 있었다. 사실상 사파의 종말과 다름없는 굴욕적인 결과였지만, 6대마인을 배출한 세 개의 거대 사파로서는 재기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했다.



헌데 소림대첩의 주역이었던 무림삼성이 갑작스럽게 폐관에 들거나 칩거하면서 사파는 조직을 재건하고 고수의 수를 늘리면서 정파와 어느 정도의 대립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림대첩에서 승리한 무림맹도 무림삼성의 폐관과 칩거에 뒤를 이어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놓은 채 사실상 해체됨에 따라 일성일전일곡(一城一殿一谷)이 부상할 수 있었고, 몇 년 전부터는 정파를 압도할 만큼 성장해 정파와의 협상을 무시한 채 무림 전역으로 세를 넓힐 수 있었다.



헌데 그 일성일전일곡(一城一殿一谷) 중에서 이미 두 곳이 천상천과 역천마곡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현 무림의 사파제일세는 자객들의 집단 귀곡의 차지가 됐다. 귀곡은 천마성과 복마전의 멸문으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으나, 천년의 전실인 천상천이 일인전승의 율법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일체의 활동을 중단한 채 극단적인 방어에 돌입했다.



한편 복마전과 귀곡과 함께 사파를 대표했던 천마성이 역천마곡의 후예들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 알려지자, 정파는 물론 무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무림삼성이 폐관과 칩거에 든 이후 무림맹인 제마단도 유명무실해진 상태에서 천년 전설의 한 축인 역천마곡의 후예들과 맞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파의 수뇌부들은 천년 전설의 주인공인 천상천주의 예언처럼 복마전을 멸문시킨 천상천의 등장으로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됐다. 천상천이 복마전을 멸문시킨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천상천이 역천마곡의 등장과 함께 일인계승의 율법까지 파기한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때맞춰 소림대첩 이후 칩거에 들어갔던 검신과 도천도 돌아왔다.



이에 제마단 단주와 대주들이 검신과 도천 및 구파일방 수뇌부와 의논하여 천상천을 중심으로 뭉쳐 역천마곡의 부활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들은 소림대첩 이후 두 번째로 무림맹을 결성하면서, 천상천주 검강인을 태상맹주로 추대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무인들인 검신과 도천도 검강인을 태상맹주로 추대하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역천을 통해 일인계승을 파기한 검강인은 무림통일이 목표였기 때문에 무림맹 태상맹주의 자리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태상맹주라는 자리는 검강인이 원했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에 2차 무림맹의 결성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강인은 태상맹주에 오르기 전에 즉위식을 위한 사전축하행사 의미로 귀곡을 멸문시켜 자신의 이름을 무림 전체에 각인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검강인은 귀곡을 멸문시키기 위해 외궁주 검무청과 열두 명의 살천령, 두 명의 제마령과 제마추살대의 대주 일도단마 사공일과 그 수하의 삼십 명의 정예고수를 보냈다. 천상천의 정예 중 2할에 해당하는 고수들이 검강인의 태상맹주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귀곡의 멸문에 투입된 것이다.



그리고 검강인의 명령에 따라 귀곡에 도착한 이들은 압도적인 무공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살육을 자행했다. 멸문의 과정은 천마 위진천의 무공이 워낙 강해 검강인이 직접 나선 것을 제외하면, 복마전의 멸문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특히 외궁주 검무청과 함께, 천상천의 미래로 키워진 두 명의 제마령의 활약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들은 삼(三) 제마령 천도령(天道靈)과 사(四) 제마령 천불령(天佛靈)으로 도문의 선공과 불문의 불공을 집대성한 고수로 현 소림방장과 무당장문을 능가할 고수였다.



그들이 펼치는 천상천과 선공 및 불공의 초식에 강호 제일의 자객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그들의 살해방식은 종남파와 아미파에서처럼 한 번의 공격에 한 명씩 죽이는 일격일살은 비슷했으나, 상대가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는 귀곡의 자객들이어서 가끔은 한 번에 두, 세 명을 처치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이 귀곡이 자랑하는 1차와 2차 저지선인 미혼계과 망혼계를 간단하게 넘어서자, 귀곡 곡주인 살신(殺神) 무명인(無名人)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뒤로 귀곡의 자랑인 십팔탈혼객(十八奪魂客)이 병풍을 치듯 좌우로 포진하며 검무청과 두 명의 제마령을 둘러쌌다.







“천상천이 전설에서 나와 직접 무림의 일에 관여한다는 것은 들었지만 그 방법이 졸렬하기 그지없구나. 늦은 밤에 암습을 하지 않나, 살인에 굶주린 자들처럼 살수를 펼치지 않나, 천년 전설의 실체가 이것이었다만 말이냐?”



살신 무명인이 천상천 고수들에 의해 속절없이 죽어가는 곡인들을 지켜보면서 극도의 분노를 곱씹으며 말했다. 그는 일방적 도륙을 즐기는 그들의 행위와 그 방법의 잔혹함에 두려움이 일었으나, 더 이상 자신이 직접 키운 곡인들의 죽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돈만 주면 어린아이나 노인마저 살해하는 놈들은 인간이 아니므로, 이런 정도도 과분하지. 무명인, 안 그래?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검강인의 사촌이자 외궁의 궁주인 검무청이 무명인의 말을 일언지하에 짓밟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드득! 전설의 탈을 쓴 개차반 같은 놈. 천상천이라고 해서 절대는 아닐 터, 너희가 전설에 숨어있을 때 귀곡은 살아서 움직였고, 그만큼 일취월장한 귀곡도 이제 전설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귀곡의 무서움을 톡톡히 보여주마.”



무명인은 극도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자객 집단의 두목답게 그의 음성과 표정에는 어떤 감정의 표시와 굴곡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까? 우리라고 천년 동안 가만히 있었을 것 같으냐? 한 번 전설은 영원한 전설.. 엇. 호오!”



검무청이 말을 하다 급히 멈췄다. 그를 둘러싼 십팔탈혼객 중 그의 뒤에 포진해 있던 두 명이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겠지. 허나, 이곳에선 우리가 전설이야.”



유령이 말한 것이 아닌 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등 뒤에 서있던 십육, 십팔 탈혼객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무명인 왼편에 있던 일과 삼 탈혼객도 검무청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검무청의 좌측에 있던 십삼 탈혼객과 우측에 있던 육 탈혼객도 몸을 날렸다.



“천년 전설을 오늘로 끝내주마.”



천불령 뒤에 서있던 십오, 십칠 탈혼객과 그의 좌우에 있던 구 탈혼객과 십 탈혼객이 유령 같은 음성과 함께 날아올랐고, 동시에 무명인의 바로 왼편에 서있던 이와 사 탈혼객도 몸을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오와 칠 탈혼객이 천도령의 정면에서 몸을 날려 팔과 다리를 노렸고, 그의 양편에서 서있던 십일과 팔 탈혼객이 천도령의 양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뒤를 이어 십이와 십사 탈혼객이 천도령의 머리와 배를 향해 파고들었다.



달빛과 별빛에 몸을 숨긴 십팔탈혼객 모두가 빛살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검무청과 천도령, 천도룡의 사방위(四方位)를 파고들었다. 그들의 합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은밀하고 빠르기까지 해서 합공의 결과에 따라 무명인이 최후 절초를 펼치면 전설의 천상천주라 해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호, 제법이지만 그래도 달라질 건 없어.”



검무청이 맨 처음에 그의 뒤와 좌측에서 파고든 두 명의 탈혼객을 향해 급히 머리를 숙이며 그 위로 오른팔을 휘돌려 뒤편으로 검을 두 번 튕겼다. 그의 검에서 두 가닥 검기가 격발됐다. 동시에 그는 몸을 오른 쪽으로 누이며 팔을 좌측으로 돌려 검을 앞으로 뻗으며 살짝 비틀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 의해 두 가닥 검기가 또다시 격발됐다.



“그냥 저승으로 가면 돼.”



검무청은 연이은 말과 함께, 왼손을 오른손 밑으로 교차하면서 우측에서 파고든 세 번째 탈혼객을 향해 천상제마장을 발사했다. 마지막으로 오른발로 몸의 중심을 잡아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왼 다리에 진기를 실어 연속적으로 두 번 찼다.



그의 의도대로라면 처음에 뒤로부터 비명이 들려 천상비류검의 쾌류(快流)가 상대의 목을 연거푸 잘라야 했으나 두 번째가 그의 생각보다 눈앞을 스친 달빛만큼 느렸다.



‘어? 잘랐는데… 이 묵직함은?’



슥! 이것이 첫 번째 목에서 난 소리였고, 스윽! 이것이 두 번째 목에서 난 조금 늘어진 소리였다. 그것으로 해서 좌측으로 뻗은 검은 육 탈혼객의 심장을 관통해야 했으나, 바로 옆의 명문을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상대를 절명시킬 수 있었으나 그 순간부터 그가 의도한 흐름이 확실히 틀어졌다.



퍽!

“크악!”



검무청이 듣기에 그것은 분명 절명의 소리였다. 그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육 탈혼객의 명문에서 검을 뽑는데 시간이 이번에는 눈앞으로 새가 지나갈 만큼 조금 더 걸렸고 무게 중심을 잡은 오른발도 약간 더 굽혀져 우측으로 날린 천상제마장이 십삼 탈혼객의 태양혈이 아닌 어깨부위를 뭉게버렸다.



펑!

“크아악!”



이번의 비명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을 때 많이 나오는 비명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한 수에 한 놈을 죽이지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연각을 펼쳤던 왼발의 각경 중 하나는 일과 삼 탈혼객 중 왼편에서 날아든 삼 탈혼객의 옆구리에 박혔으나, 나머지 각경은 끝내 일 탈혼객을 차내지 못했다.



퍽!

“크윽!”



이번의 타격음은 생각보다 작았고, 따라서 비명도 작았다. 그 결과 그의 머리 위로 한 명의 탈혼객, 가슴에 붉은 색으로 일(一)자가 수놓아진 자의 검이 시리도록 눈에 부셨다. 검무청은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츄슉!



‘누군가 첫 초식에 작은 충격을 줬어. 그것 때문이야.’



검무청은 애당초 상대도 되지 않는 상대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최상의 무공을 펼쳤는데, 모든 것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어긋나자 제3의 인물이 개입했음을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낀 그는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인 손목을 튕기는 방식으로 왼 손등을 위로 처 올려 일 탈혼객의 검을 튕기려 했다.



허나, 퍽!



그의 바람은 그랬으나 현실에선 상대의 검이 그의 손등을 뚫었다. 불강지괴에 이른 자신의 손등이 너무나 허무하게 뚫렸지만, 다행히 그는 일 탈혼객의 검을 자신의 눈앞에서 양피지 한 장 차이로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헉!”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는 왼 손등에 힘을 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검을 잡은 후 빗나갔던 하나의 각경을 다시 일으켜 그를 쳐냈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일 탈혼객의 몸이 허리부분이 뒤로 튀어나오며 위로 떠올랐다 검무청 머리 위로 날아갔다. 하지만 검무청은 일 탈혼객의 검이 검지와 중지 사이를 갈라 자신의 손을 손가락을 세 개로 만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동시에 그는 오른편 오십 장 위를 향해 소리쳤다. 물론 비명을 닮은 신음이 먼저였다.



“크윽!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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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사천성(四川省) 내 서부의 명산으로 유명한 아미산. 그곳엔 구파일방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 수백 년에 이르는 아미파(峨嵋派)가 있다. 헌데, 달빛 교교한 이 한밤에 수백 년 여승들의 성지(聖地)가 흔들리고 있다. 대웅전은 이미 함락됐고 복호사(伏虎寺)마저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휘익! 퍼억! 꺄악!



여기저기서 연속적으로 비명이 터졌다. 한 번의 병장기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한 명의 여승에게서 생을 달리하는 비명이 터졌다. 한 시진 전에 아미파에 들이닥친 침입자들은 한 칼에 한 명만 죽이는(一擊一殺) 살인놀이를 하고 있었다.곳곳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비구니의 승복이 찢기고 하얀 살점이 돼지고기 썰리듯 잘려나갔고,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침입자의 살수(殺手)에는 추호의 인정도 없었다. 여승의 유방이 뭉툭뭉툭 잘려나가고, 온 몸이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지거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고 있었다. 일격일살의 일방적인 도륙을 통해 살인놀이를 하고 있는 자들의 수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천하의 아미파의 여승들이 단 세 명의 침입자에게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크하하하! 비구니라도 여자의 피를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군! 아깝지만, 할 수 없지. 켈켈켈.”



침입자는 오직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 듯 잠시의 멈춤도 없이 잔인한 살수를 펼쳤다. 그렇게 그는 또 다시 아미파 여승들을 무 배듯 쓸어가면서 살인이 주는 쾌감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그는 목을 밴 여승을 뒤로 한 채 공포에 질려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는 또 한 명의 여승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흐흐흐, 셋째! 옷이라도 벗긴 다음 죽이는 게 어때? 살인도 좋지만 눈요기 한 후에 죽여도 늦지 않잖아?”



맹렬하게 여승을 도륙하던 삼 사마령 수라마군(修羅魔君) 필귀가 둘째 사형의 얘기에 귀가 쫑긋거렸다. 방금 휘두른 검에 30대로 보이는 여승의 머리가 경악한 상태에서 목과 분리되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잠시 동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사형, 그런 방법이 있었구려! 크흐흐흐. 고것 참.”



생각과 동시에 벌써 번뜩이기 시작한 필귀의 눈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여승을 발견했다. 삼십 대 초반과 중반으로 보이는 여승들은 번뜩이는 필구의 눈을 보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검을 든 손으로 가슴과 아랫배를 가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치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허나, 그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필귀의 욕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삼십대 물 오른 여승의 나체가 필귀의 눈에 아른거렸다.



“호오, 이렇게 보니 고년 제법인데. 크흐흐흐.”



필귀는 두꺼운 승복을 뚫고 그 안에 있는 여승의 나신을 떠올리며 음소를 흘리더니, 삽시간에 여승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는 왼손을 뻗어 두 여승을 향해 금나수를 펼쳤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금나수는 두 여승이 필사적으로 펼친 아미파의 비전무공인 소청신공(小淸神功)을 무력화시키며 여승들이 입고 있는 도복 깃을 낚아챘다.



“안돼! 이 살인마!”

“놓지 못해 이 손! 앗! 꺄악!”



두 여승은 자신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몸에서 도복이 벗겨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것도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던 속옷과 함께. 필귀의 금나수에 의해 삼십대 물오른 여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단 한 번의 남자관계도 없이 무공에 전념한 여승들은 유방의 형태도, 아랫배도 십대 후반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다리는 군살 하나 없는 것이 물오른 십대를 능가할 정도로 탄력이 넘쳐보였다.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가꿔온 그녀들의 나신이 파랗게 질려 오히려 수정처럼 투명해 보였다.






“오호라! 이거야 이거!! 젊은 처자라도 이만하겠어. 크크크, 잘 봤어. 너무 탐스러워 아깝지만, 그래도 살인이 주는 쾌감만은 못하지. 크크크크!!”



그의 음흉한 눈빛이 전라 여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살의로 물들어갔고, 잠시 동안 멈춘 살수를 다시 펼치려 할, 바로 그때.



“거기까지만.”



백장 정도 밖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엔 역천마곡의 마기로 키워온 필귀의 마력(魔力)을 억누르는 상극 같은 불력(佛力)이 들어 있었다. 필귀는 가공할 불력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느 놈? 헉!’



필귀가 소리가 시작된 백장 밖을 바라본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앞으로 내려서는 늙은 땡초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불혼이었다.



‘땡초? 너무 빨라!’

“넌, 누구.. 헉!”



필귀는 소리의 주인공이 늙은 중이며, 그의 경공이 가히 빛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헌데 상대가 자신의 앞에 내려서자마자 다짜고짜 손을 뻗자, 필귀는 헛바람을 켜며 상대의 수를 막아야 했다. 상대의 공격은 단순했지만, 그 빠름이 상상을 불허했다.



“핫!”



필귀는 오른손을 뻗어 귀곡탈혼장을 펼쳤다. 귀곡의 소리가 들리면 상대의 목숨을 뺏는다는 귀곡탈혼장은 역천마곡의 장풍 중 가장 빠른 것 중에 하나였다.



“너의 악행이 너무 커, 지옥으로 돌려보내니.”



불혼은 필귀가 펼친 귀곡탈혼장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불력이 담긴 손날로 필귀의 천령개를 내려쳤다. 그것은 마치 손목이 날아가도 괜찮다는 듯이 무모하기 그지없는 공격처럼 보였다.



“크하.. 헉!”



필귀는 상대의 손목이 귀곡탈혼장의 위력에 잘려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의 손날이 그리는 선을 따라 귀곡탈혼장에 담겨있는 마력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가서 네 죄를 씻어라.”



필귀의 놀람과 불혼의 말이 교차하면서 하나의 소리가 일었다.



퍼억!



필귀는 자신의 천령개에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수천 배는 넘을 듯한 강한 통증을 느꼈다. 필귀는 천령개가 박살나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으로 퍼진 그 통증이 말해주는 것은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였다.



“크악!!”



필귀는 언제나 상대에게서만 들었던 최후의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헌데 그의 마지막 생각과는 달리 불혼의 손날은 필귀의 천령개에서 머리 한 올 떨어진 상태로 멈춰 있었다. 대신 그의 손날에서 나온 불력이 필귀의 뇌를 파쇄시켰다. 불혼은 필귀의 머리를 산산조각낸 것이 아니라, 천령개를 통해 뇌를 파쇄시킬 만큼의 불력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필귀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선수를 뺏겼어. 아쉽지만 네놈들이라도. 이 짐승보다 못한 후랑당말코 같은 놈들아!”



도혼은 잠시 다른 곳을 보느라 자신보다 두 걸음 먼저 현장에 도착한 불혼이 필귀를 제거하자, 선수를 놓쳐버린 것이 억울해 나머지 두 놈은 자신의 몫이라고 목을 박았다. 속혼이 한 명을 맡기 전에 자신이 두 놈을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선이 착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도혼은 불혼의 등장과 필귀의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한 두 명의 사마령을 향해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뭔 소리야? 어, 어..’

‘자신이 신선이란 거야? 피해야 해!’



이(二) 사마령 혼마지존(魂魔至尊) 유결과 구(九) 사마령 금륭마왕(金輪魔王) 갈소풍은 필귀를 단 한 수로 죽인 자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 늙은 도장이 상상을 불허하는 속도로 날아오자 경공을 펼쳐 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상대의 공격에 대비해 최고의 절초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유결과 갈소풍은 비마귀혼을 펼쳐 상대의 공격권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력과 상극을 이루는 기운이 온몸을 둘러쌓고 있어서 운기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설마?’

‘정말로 저자가 신선인가?’



유결과 갈소풍은 두 눈 가득 불신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력과 신선의 기운이 상극이어서, 상대가 펼친 것이 압도적인 신선의 기운이라면 역천마곡의 마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은 알고 있었다. 상극의 기운이 만나면 쌍소멸하기 마련이지만, 한 쪽의 힘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면 약한 쪽의 기운은 작동하지 못한다.



‘천상천주는 아닌데?’

‘곡주와 비교해도..’



유결과 갈소풍은 가늠하기도 힘든 불력과 전설에나 존재하는 신선의 기운을 가진 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웠다. 전설의 천상천주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무인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렸다. 어쩌면 이들은 역천마곡주와 맞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고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결과 갈소풍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자가 눈앞에 내려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죽음이라는 놈이 어슬렁거렸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상대의 정체가 더욱 궁금했다.



“신선도 열 받으면, 나처럼 하기도 해.”



도혼이 유결과 갈소풍의 앞에 내려섰다, 마치 거기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어떻게 죽을래? 세 가지 중에 골라. 눈을 깜빡일 수 있을 테니, 내가 제시하는 세 가지 죽음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눈을 깜빡이는 숫자로 말해, 알았지?”

‘뭐라고? 죽음을 선택하라고?’

‘이 새끼가, 정말!’

“속으로 열불을 내고 있는 것 느껴지지만, 그냥 듣고 선택해. 많이 봐준 거니까. 첫 번째, 죽을 때까지 한 곳만 맞는 것. 두 번째, 죽을 때까지 두 곳만 맞는 것. 세 번째, 죽을 때까지 세 곳만 맞는 것.”

‘야, 이 개 같은 신선아! 그게 그거잖아!!’

‘이.. 이.. 이 자식이!!’

“속으로 욕하는 거 아니까, 그냥 눈이나 깜빡여. 안 그러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도 추가할 거니까, 알았어?”

‘뭐,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추가하겠다고? 이 새끼가 정말!’

‘이런 지랄 같은 놈이!! 헌데, 운기가 안 돼. 아무리 시도해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으니,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추가한다. 내가 원래 친절해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자세히 말해주마.”



그렇게 도혼과 유결과 갈소풍의 일방적인 실랑이가 일각 정도 계속됐다. 불혼이 도중에 ‘당장 끝내지 못해! 다른 곳도 가봐야 하잖아!’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면 도혼의 장난은 계속될 수 있었다.



“에이, 알았어! 야, 시간이 없어서 두 번째로 정했어. 이마와 사타구니!”

‘뭐, 사타구니? 야, 그냥 한 방에 죽여!!’

‘으아아아악!! 이노오오옴!! 죽어서도 너를 죽여 버릴 테다!!!!’



유결과 갈소풍은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하는 비명을 수없이 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도혼은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간 여승들을 대신해 유결과 갈소풍을 벌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다 익히지 못한 것이 있어. 시신부터 수습하시죠.”



불혼이 처참하게 도륙된 비구니와 여승의 시신들을 돌아보며 아미파 장문인에게 말했다. 종남파에 이어 아미파도 멸문지화는 면했지만, 그 피해가 너무 커서 재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속혼은 이미 시신들을 수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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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생각보다 몇 수 위야.”



무영이 종남파에서 오마황 전기령을 처단할 때, 대웅전 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하나의 신형이 말했다.



“천년 만에 무림에 나왔지만 이런 놈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어. 이것만 봐도 제천의 판단이 부족했다는 게 확실해. 검무영, 저 놈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잘못된 거야.”



하나의 신형은 상상을 뛰어넘는 무영의 무공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일환을 불러 깨우라 지시했던 육경의 셋 번째인 삼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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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감시자가 있어. 삼혼 할아버지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아. 은신술은 그 이상이고. 천년 배후가 모습을 드러냈어. 아저씨의 예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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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역시 아미파 내 복호사에서 30장쯤 떨어진 높이의 대기가 흔들리더니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삼혼의 능력이 이렇게 강해다니? 삼혼지문은 제천의 함정일 텐데?”



육경 중에서 네 번째인 사경이 삼혼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환이 말해준 것보다 삼혼의 무공은 몇 수는 위였다. 지난 천년 동안 제천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들이 없었다면, 삼혼이 보여준 무공은 그의 감시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천의 감시에 착오가 있어. 최초의 삼혼도 이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 돼. 무공의 깊이가 너무 차이가 나. 뭔가 잘못됐어. 혹시 삼경 쪽도 상황이 비슷하다면, 보통일이 아니야. 뭔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어.”



사경은 현 시대의 삼혼을 바라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읊조렸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하늘 밖의 힘으로 천년을 잠들어 있는 동안 제천도 파악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최소한 삼혼에 관한 한 천년의 감시는 완벽하지 않았다. 일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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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놈이 있는 것 같아.]

불혼이 도혼과 속혼에 전음을 보내며 눈동자로 사경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도혼과 속혼도 감시하는 자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불혼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주군의 예상이 정확했어. 천년의 전설은 거짓이야.]

[주군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선대의 삼혼처럼 천년의 거짓에 속은 채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네요.]

[제기랄! 지난 80년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 기간이 무려 천년이라니! 대체, 이 거지 같은 천년 전설의 진실이 뭐야?]

[그러게 말이야. 천년 전설의 진실이 뭐기에 그 오랜 동안 무림 전체가.. 허허허.]

[주군이 그렇게도 저희를 구속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년 전설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이유가 너무 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거짓을 숭배하며 살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간 거야.]

[지금도 속고 있잖아! 제기랄!! 천년의 전설,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내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네, 그래야죠.]

[그래, 우리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천년 전설의 거짓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었으니 진실을 밝혀낼 책임이 있어. 무림을 무림인에게 돌려주려면 반드시 밝혀내야 해.]

[그래,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보자. 천년 전설을 이따위로 만든 놈이 누구인지..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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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꽃 2014.10.04 07:37 신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섬서성(陝西省) 남부에 자리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종남산! 짙은 황혼이 종남산 너머로 서둘러 지친 몸을 거두려 할 때, 그곳에 있는 구대문파의 중의 하나, 종남파(終南派)에 족히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종남파 문인들이 황혼에 젖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절명의 상흔이 비슷해 불과 몇 사람에 의해 당한 것 같았다. 문파의 위엄을 드러내는 종남파의 현판은 이미 두 동강이가 난 채 땅에 널브러져 있어 종남파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종남파 곳곳에서 사람이 죽은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고 문파의 수장이 있는 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퍽! 스윽!

크악! 커억!



장문실 쪽에서 계속해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천마성과 복마전에서처럼, 치열한 접전이 아닌 일방적인 도륙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종남파에 닥친 위기는 절체절명임에 틀림없었다.



“크크크… 모두 허접한 것들. 태을신수(太乙神手) 종재기, 네가 장문 놈이냐?”



지옥의 열두 개 힘 중 한 명인 오(五)마황 벽력마존(霹靂魔尊) 전기령이 마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한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가 음성에 공력을 실지 않았음에도 듣는 사람은 그 본연의 마기에 기혈이 흔들릴 정도였다. 종남파의 장문이자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종재기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장문 사형의 명호를 함부로 지껄이느냐. 네가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그의 마성에 얼굴을 찡그리며 종남파 이대(二代) 장로인 태을분광이검(太乙分光二劍) 추성호, 추성우 형제가 동시에 외쳤다.



“컬컬컬컬!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그래 어떻게 죽일 건데.”



전기령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디 한 번 죽여보라는 듯이 아예 목을 길게 내밀었다. 두 손도 늘어뜨린 것이 저항도 하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상대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야합!”

“멈추게. 사제. 자네의 상대가 아니네.”



종재기는 추성호가 행동하기 전에 그의 말을 잘랐다. 추성호가 막 몸을 날리려다, 멈춰 섰다. 사형이기에 앞서 장문의 명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그 자체로 마의 현신, 승산이 없다는 사실은 추성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상대는 어떻게 해본다는 것이 씨도 먹히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지만, 명문정파의 장로로서 죽음을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클클, 똘마니 대장이라고 보는 눈은 있네. 허나, 입은 달렸다고 다 말하라는 것은 아니지.”



전기령은 종재기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늘어뜨렸던 오른손으로 벌레를 쫓는 것처럼 작은 원을 그렸다. 빠르지만 설렁설렁 하는 것이 무슨 어린 아이의 옹알이처럼 단순했는데, 순간 원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하나의 권경이 느닷없이 격발됐다.



그와 거의 동시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추성호의 입 부분이 뻥 뚫렸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종재기가 권경이 격발되는 순간 그것을 막으려 장품을 발사하려고 했고, 추성호도 그러려 했으나 그것은 생각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끝 부분에는 생각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슉!



그제야 권경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종재기와 추성호는 그런 속도를 믿을 수 없었으나, 잘 드는 칼로 도려낸 듯 매끄러운 구멍이 추성호의 코밑에 생겼다. 이어서 덜컥! 하더니 조금 남은 그의 턱이 빠지는 증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추성호가 자신의 생을 서있는 상태에서 마감했다. 그리고 천천히 추성호의 몸이 뒤로 무너져 내렸다. 장문인 종재기도, 동생인 추성우도 얼굴이 뒤로 젖혀지고, 무릎이 꺾이면서 뒤로 쓰러지는 추성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쿵!



한 방의 권경, 뒤를 이은 하나의 소리, 하나의 죽음과 바닥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를 끝으로 추성호가 생을 마감했다. 코밑이 뻥 뚫린 채 턱이 빠진 사람이 돼 흘리는 것이 침인지 피인지 모를 상태로 마치 장난치듯 전기령이 흔든 손에 종남파의 장로가 즉사했다.



너무 간단해서,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고, 극도로 허망했다. 대 종남파의 장로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극도의 분노와 당혹,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왔다.



“형님! 형님!!”



추성우가 짚단처럼 쓰러진 추성호의 몸을 안았다. 친형의 몸을 안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으으… 이놈! 용서하지 않겠다.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내 손으로!!”



추 장로의 절명을 그저 옆에 서서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던 종남파의 장문인 종재기도 그 순간만큼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뚫고나오는 자신의 음성에 살의(殺意)의 감정을 실었다. 물러날 곳이 없다면 구대문파의 일원답게 그렇게 산화하는 것이 나으리라. 허나, 상대는 차원이 다른 마인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아. 이렇게 하려고?”



전기령이 종재기의 말은 무시한 채 추성우의 말에만 응대하며 이번에는 왼손을 한 바퀴 돌렸다. 조금 전보다 빨리 원을 그렸지만, 아무리 봐도 대강대강 돌리는 것 같았다. 그 작은 동작에서 어떤 심오한 무공의 원리를 떠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어린 아이의 손짓 같음에야.



하지만 여지없이 권경이 발사돼 추성우를 향했고 예외 없이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도 그때야 들렸고, 이번에는 추성우의 안면에 미간을 중심으로 주먹 한 개가 들어갈 만큼의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뒤로 핏빛 종남산의 경치가 붉게 보였고, 그 위로 뇌수가 낙엽처럼 흩어져 얼핏 보였던 경치를 덮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추성우의 몸을 안고 있던 추성우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것으로 태어난 것은 1년의 차이가 있었지만 갈 때는 말 몇 마디 차이만 둔 채 두 형제가 동시에 쓰러지며, 이승을 떠났다.



“네, 이노옴! 죽어라. 살!”



두 장로의 죽음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본 종재기가 신형을 날리며 전력을 다해 전기령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극도의 분노가 그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지, 절정 경공에 의해 떠오른 것과 차이가 났다. 극도의 분노가 몸을 지배하자, 당연히 경공의 속도가 평상시보다 떨어졌다. 종재기는 순간적으로 무술의 초자나 하는 형편없는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태을무형검에 최대한 공력을 싣는 것 이외에 선택할 것이 없었다. 허나, 전기령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였다.



“컬! 너라고 다를 것 없지. 클클클!”



말할 때마다 마기가 출렁거리는 귀소(鬼笑)를 터뜨리며 전기령의 오른손이 이번에는 앞의 것보다 조금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그의 주먹이 출발한 곳에서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 원으로 완성되는 순간, 권결이 격발됐다. 바람을 가르며 공간을 압축하는 듯한 권경이 종재기와의 거리를 뭉툭뭉툭 잘라냈다.



슉! 슉.



소리가 하나 더 들렸고.



퍽!! 크윽!



권경에 무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동시에 전기령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푸시시시..



강력한 권경과 다른 무엇이 부딪쳤는데,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물에 의해 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일대종사 ㅡ 구글이미지



‘어라? 이건 뭐야?’



전기령이 듣기에 종재기의 머리통을 날리는 권경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작은 충돌음을 냈다. 그렇다고 그 충돌음을 일으킨 것이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과 자신의 권경이 부딪쳐 일어난 것임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러질 듯 저려오는 통증이 손목을 타고 온몸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경마저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가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게 그거였던 종재기의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이 자신의 가슴을 강타했다는 것이었다. 종재기의 검이 금강불괴지신을 한참 넘긴 자신의 몸을 뚫지는 못했으나, 안중에도 없던 종남파 무공이 자신에게 제법 큰 통증을 가하자, 전기령은 허접한 무공에 당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육체의 아픔보다 자존심을 더욱 건드렸다. 자신의 권경을 무력화시킨 자에 대한 두려움과 또 한 번의 신음과 함께.



“크윽!”



가슴에 가해진 충격에 두 발에 힘을 주었지만, 발목이 바닥에 박힌 채로 서너 걸음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기령은 상황을 단 번에 바꿔버린 미지의 상대를 향해 마기와 분노가 풀풀 넘치는 소리로 강력하게 외쳤다. 하지만 전기령은 미지의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올 정도로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냐?!! 내 권경을 막은 놈이!”



전기령이 종재기 너머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커지는 상대를 보고 외쳤다. 그의 음성에는 분노와 광호함이 묻어있었지만, 두 눈에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드러났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렇게 먼 거리에서, 내 권경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해 죽은 종남파 문인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너를 벌해 죽은 영혼을 위로함으로써 내 미안함을 덜려 하는, 나는.”



분명 점에서 나온 말은 백 장 밖에서 들렸는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전기령 앞에 하나의 신형이 나타났다.



"검무영이라 한다."



전기령이 보기에 그는 아무리 봐도 약관도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헌데,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도란, 초마인의 기도에 뒤지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눈빛과 서있는 자체가 하늘을 닮아, 보는 이의 영혼마저 시리도록 푸르게 만드는 그 품위란,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엄청난 기도야! 게다가 분명 백 장 밖이었어. 내 권경을 그 정도 거리에서 무력화시킬 자가 있다니? 절대 불가능한 일이거늘, 손목과 팔이 너무 저려.이 자의 기도는 내 마기마저 약화시키고 있어. 이 정도의 이르려면.. 아. 뭐라 했지, 이름이? 검.. 무영.. 검? 검!!'



“검.. 무영? 너, 너.. 혹시?”

“시간이 없어서.”

“헉! 크악!”



전기령은 자신의 앞으로 내려선 상대에게 엄청날 정도의 기도를 느꼈고, 형언키 어려운 두려움이 일었으며, 상대의 성이 검이라는 것에 천상천이 떠올랐는데, 그래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려 했던 것인데 상대의 주먹이 자신의 눈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권?'



그 주먹 끝에 하나의 권경이 격발돼 자신의 미간과 입술 사이의 공간에 엄청난 통증을 일으키며 그대로 가격됐다.



'경? 내가 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코를 중심으로 주먹 크기만큼의 구멍이 뻥 뚫렸다, 추성호와 추성우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휭! 하니 바람도 시원하게 그 구멍으로 불었다.



“네가 그 위와, 그 아래를 두 분에게 했기 때문에, 그것을 동시에 벌하려 나는 네 놈의 코 부위를 선택했지. 그래야 공평해서. 너무 허무하게 당한 것에 대해서는 지옥에 가면 알게 될 거야. 원래 역천마곡은.. ”



단 한 수에 전기령을 지옥으로 다시 돌려보낸 후 무영이 돌아섰다. 무영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류심환 아저씨에게서 전해오던 영혼의 울림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도 설렁설렁 했어, 전기령처럼!'



종재기는 그제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검무영이라는 존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장문인,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최대한 서둘렀는데.. 아무튼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네? 네? 네.. 저야.. 그래주시면..”



종재기는 지금의 상황들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마인들이 나타나 일방적 살육을 벌였고, 자신의 처소까지 쳐들어와 종남파를 무림에서 사라지게 만들기 직전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천년 전의..



“호.. 혹시? 자네는.. 아니 대협은..?”

“삼영! 종남파에 침입한 나머지 역천마곡의 잔당들을 처단해줘. 상황이 급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면 안 될 것 같아.”

“존명!!”



삼영으로서의 첫 임무에 들뜬 준영이 큰 소리로 무영에게 답했다.



“알았어, 형. 빨리 끝낼게.”



철용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했다. 순간 준영이 공적인 자리에서 무영에게 반말로 답한 철용을 죽일 듯 째려보며 몸을 날렸다. 한성은 ‘아차’ 하며 자신이 철용에게 주의를 주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철용이 너무 움츠려 들지 않도록 철용에게 눈을 한 번 찡긋거린 후,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준영이 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철용은 준용의 눈빛에 조금 움찔했다가 한성의 위로에 다시 기운을 내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의 중간인, 무영이 내려선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다 죽었어.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야지.’



철용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기를 부렸다. 그는 병을 달고 살았기에 이 순간의 떨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더욱 호기를 부려야 했다. 이렇게 무영이 맡은 남쪽을 빼고, 동서북으로 한 명씩 삼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한 이각쯤 흘렀을까, 철용이 상대를 향해 외치는 기합이 마지막으로 들렸다.



“에이, 시시해. 이게 뭐야.”



철용이 마지막 침입자를 제거한 후 실망한 듯 말했다. 철용은 첫 번째 실전이고, 자신의 주위에는 고수들만 있어 다른 무인들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 고정관념이 있었다. 철용은 그가 이루어낸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몰랐던 것이다. 비교의 대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삼혼의 무공이 얼마나 위대한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종남파에서 벌어지던 일방적 도륙은 정반대의 결과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장문인, 저는 검무영이라 합니다.”



무영은 종재기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의 예를 취했다. 종재기는 그제야 마인들이 역천마곡 후예들이며, 이들을 제거한 청년들이 천상천의 후예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협! 이 고마움을 어떻게…”

“아닙니다. 제가 늦었는데요. 일단 수습을 하시는 것이.”

“아? 아! 네. 그래야죠. 그래야죠. 아. 아. 그리 해야… 하지요.”



그때, 쿵!



그것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오래 버티고 서있던 전기령이 제법 강한 바람이 불자, 그제야 썩은 나무처럼 뒤로 넘어가며 땅과 부딪쳐 만들어낸 소리였다. 몸의 나이는 천 살이 넘었으나 잠들어 있던 시간이 거의 구백육십 년에 이르러 실제 살아있던 기간은 사십 년에 불과한 지옥의 다섯 번째 힘, 전기령이 너무나 허무하게 영원히 잠들었다.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을 대성했고, 그것을 하나로 합친 무공까지 익힌 무영의 상대로는 전기령의 무공은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단상 같은 전기령의 마지막 생각 하나가 종재기의 생각과 함께 종남파를 떠나지 못한 채 맴돌았다.



‘정말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 흉수는 전설의 마인인데 단 한 초였어.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또 누구야? 천상천은 일인전승의 문파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만 종남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대부분의 문인이 죽었으니..’



비로소 현실의 참담함을 파악한 종재기의 생각이 이러했고.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천년을 누워만 있다 이제 막 일어났는데.. 게다가 저놈이 펼친 권경은, 제기랄. 내 것이야!!’



죽어서도 미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전기령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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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봉 2014.09.29 21:58 신고

    잘 읽었습니다
    오늘 제이티비 2부에 보니 강준만 교수가 나와서 인텨뷰 하던데
    낼 2부에 나와서 나머지 인텨뷰 방송한다던데, 저는 보니 잘 모르겠네요
    혹시 안 보셨으면 낼 보시고 강준만 교수의 인텨뷰 평좀 해주세요^^

    • 늙은도령 2014.09.29 22:36 신고

      '새정연과 진보정당이 몰락한 세 번째 이유ㅡ1'에 짧게 언급했습니다.
      '진보세력의 몰락과 부활을 위해'이 사실 저 나름의 진보진파이며, 미래의 진보를 위한 제언업니다.
      거기에 썼던 것처럼, 내일 강주만 인터뷰 2부를 보고나서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객관적이던 주관적이던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심코 던진 말이라도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도 비슷한 사례들이 쌓여서 나온 것이다. 말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말 한 마디에도 신중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물며 천년 동안 무림을 주재해왔다고 자부하는 자의 자존심과 자기 확신이란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할 터였다. 류심환은 상대의 능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은 것에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천년의 주재자가 직접 움직일 만큼 자신의 능력을 경계한다는 뜻이었고, 이는 무영이 자신이 안배해둔 것들을 모두 취한다면 천년의 주재자와 맞설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안배가 남았어. 저 자의 감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 계획을 바꿔야 해. 저 자의 약점은 단 하나니 일단 그걸 파고들면서 다음을 생각해보자. 무조건 시간을 벌어야 해.’



류심환은 생각을 정리한 후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먹혀야 다음이 있을 수 있었다.



“진실.”

“...?”

“...”

“...........?”



류심환은 ‘진실’이라는 딱 한 마디만 하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심리전에 들어간 것이었다. 마지막 안배를 이곳에서 하려면 자신이 말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상대가 길게 말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도, 그를 속인 유일한 인물인 자신에게 천년을 주재해온 것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도록 만드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비록 상대는 천년을 주재한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할지언정, 그 긴긴 세월 기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고독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류심환은 상대가 천년의 주재자라 해도 신이 아닌 이상 배후의 절대자로 살아왔던 욕망의 출발점에 그의 약점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는 그것을 건드리면 천년에 걸친 그의 고독 속에 축적됐을 천년 무림의 역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천년의 모든 것, 무림의 진짜 역사를 그 혼자 지니고 있기에는 미치도록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고 천년의 진실이 남아 있어. 그게 너의 진짜 욕망이겠지. 기의 형태로 천년을 존재했다 한들, 무림역사에 개입해왔다는 건, 넌 언제나 인간이었다는 뜻이야. 미치도록 무림에 현존하고 싶은, 그런. 넌 욕망 그 자체야. 폭발 직전의 욕망!’



“진실? 무슨 진실?”



제천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류심환에게 물었다. 생각 같아선 단 칼에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류심환이란 존재가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제천은 천년의 전설을 매듭짓기 위해 류심환에게 취할 것이 있었다. 그래서 제천은 류심환과 최대한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헌데, 달랑 진실이라니?’

“무슨 진실을 말하는 것이냐?”



‘너의 비밀. 천년을 기의 형태로 버텨온 것 뒤에 숨겨져 있던 바로 그 비밀. 너를 처음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너의 비밀. 천년의 주재자로 보낼 수 있었던 진정한 하나의 거짓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단 하나의 진실, 그것 말이야. 내가 준비한 최후의 안배가 잘못 됐음을 알려준 것, 그래서 최후의 안배를 수정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너라는 존재의 비밀, 이제야 깨닫게 된 단 하나의 천년의 진실 말이야.’



류심환이 제천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생각을 이어가자 하나의 떠 있는 눈의 주변에서 급격한 파장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의 떠 있는 눈이 일으킨 느닷없이 생긴 회오리바람이 일으키는 파장 같았지만, 류심환은 그 너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제천이 이곳에 떠 있는 하나의 눈이면서도, 무림 전체를 볼 수 있는 모든 떠 있는 눈이 될 수 있는 존재의 근원을 볼 수 있었다. 천년의 진실은 바로 그것이었고, 그래서 류심환은 떠 있는 하나의 눈을 조금 더 속일 필요가 있었다.



“지난 천년 무림의 실체적 진실.”

“실체적 진실?”

“그래, 실체적 진실. 네가 주재한 진짜 무림의 역사 말이야.”

“클클. 그게 알고 싶었던 게구나. 좋아, 좋아. 내 말해주.”

“거짓부터 시작해야지. 이름도 밝히고.”



류심환이 제천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것은 격장지세였지만, 스스로 신이라 여기는 자에게는 효과적이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내 말을 잘라!! 내가 말하면 넌 그냥 듣기.”

“이름부터 말해. 그냥 떠 있는 눈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천년을 주재해온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름이 없으면 존재도 없는 법이지. 네가 천년의 무림을 주재했다고 해도 넌 비존재였을 뿐이야.”

“비존재??”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면 류심환이 말한 비존재가 자신의 천년을 말해주는 것으로는 가장 적절할 듯싶었다.



“어디에나 있으면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지. 넌 비존재일 뿐이야. 너의 세상에 갇혀 천년을 허송세월한. 그래서 측은해, 너의 삶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삼혼 할아버지, 이제 출발하죠.”



무영이 천상천의 진정한 주인만이 지닐 수 있는 승천제마검을 집어 들며, 삼혼에게 말했다.



“그래, 늦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



불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영에게 답했다.



“부처님, 살생의 길로 접어든 저를 이해해주십시오. 최대한 적게 죽이겠습니다. 뭐, 실수로 몇 명 더 죽였다고 윤회에 가두거나 그러지지 마시고요. 나무아미타불.”



도혼이 복마도장을 집어 들며 말했다. 무림에 다시 나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게 됐으니, 온몸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얘들아, 너희들을 능력을 마음껏 펼칠 때가 왔구나.”



속혼이 탈명비도를 챙기며, 삼영을 향해 말했다.



“저희야 그냥 이끌어주시는 대로 할 뿐이죠.”



준영이 한성과 철용을 대표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영이 출발하자고 말했을 때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한성과 철용은 이미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철용아, 항상 조심해야 해. 상대는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까.”

“한성 형, 걱정하지마. 내 몫은 꼭 할 테니까.”



철용이 무림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이제 천년 무림을 제 자리로 돌려놓으리라. 철용이 문을 열며 다짐했다.



“검강인, 내가 간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줄 테니, 기다려라.”



아버님, 어머님, 이제 제가 갑니다. 못난 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들이 이제 갑니다.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