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들이 실려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중에서 특히 화제가 됐던 것은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이라는 칼럼이었다. 이것을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수 세력의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와 칼럼이 연달아 나오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자주민보 넷에서 인용
하지만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아래에 전문을 올린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의 핵심은 국민이 비이성적인 상태여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풍문이 사실처럼 떠돈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실질적인 아킬레스건인 만만회로 향하는 여론의 관심을 무력화시키기 위함이다. 어차피 김기춘 비서실장은 버려야 할 카드라서 그를 향한 비판에는 찬서리가 느껴질 정도이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전통의 조중동이 박근혜 대통령을 때리는 것은 짧게는 7월 재보선의 승리를 위해서며, 길게는 보수 세력의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때리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권은희를 집중공략함으로써 새정치민주연합 전략공천의 난맥상을 부각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마케팅을 하지 않고 7월 재보선에서 승리하면 차세대주자로 떠오른 김무성의 무게감은 문재인과 박원순과 동급의 수준으로 올라선다.
이럴 경우 박근혜 대통령은 조중동의 지원을 받은 미래권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공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청와대에서 전통의 보수 세력의 뜻에서 벗어나는 정책과 결정들을 밀어붙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7월 재보선 이후 2년 동안 선거가 없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를 빌미로 한 국가 개조를 보수 세력의 정권재창출에 유리하도록 만들 수 있다. 어차피 조기레임덕에 빠진 박근혜 정부가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욕을 먹는다 한들 변하는 것은 지지율 하락일 뿐이다.
연합뉴스에서 인용
그런 과정 속에서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 마음 속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자리할 수도 있고, 동시에 김무성으로 대표되는 미래의 주자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가 견고해지기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권이 부여된, 그러나 기소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할 수도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자식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투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며, 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높은 피로감으로 응축될 것이다.
보수 세력의 결집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짧게는 7월 재보선의 승리로 이어질 것이며, 길게는 보수 세력의 정권재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그 출발이 이미 죽은 권력의 길로 들어선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함은 당연하다. 다만 이런 박근혜 정부 비판은 7월 재보선 승리가 확정될 때까지만 유효하며, 그 이후로는 미래권력과의 조합을 통해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루어갈 것이다.
JTBC 방송화면 캡처
다른 어떤 언론에 앞서 조중동이 확인할 길이 없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해, 모든 제도권 방송들이 이것에 근거해 7월 재보선의 판세를 예측하게 한 것은 조중동의 프레임이 얼마나 막강한지 세삼 확인하게 만든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 대표의 담판마저 깨버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안철수와 김한길 공동대표 덕분에 7월 재보선의 승기를 잡은 것(허상일 수도 있지만)도 이들에게는 전화위복이자 신의 한수로 작용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지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직접적인 이유(별도의 글로 다룰 것이다)는 다른 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차피 그것도 보수 세력의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는 과정에 포함돼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방송이 편향된 상태에서 치러지는 선거란 민주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최근의 연구에서 보듯,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 세력의 정권 재창출 전략이 이미 가동된 상태이다.
조중동을 필두로 소리소문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KBS와 그 밖의 편향된 방송들의 박근혜 대통령 때리기는 7월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또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급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이용해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은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국정원과 군, 보훈처 등을 동원해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 세력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평균작 수준은 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보수 세력에게 유리한 기존의 체제를 적정선에서 개조하는 작업은 대통령과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TV나 스마트폰, PC화면으로 보는 것조차 싫은 사람들에게는 조중동의 대통령 때리기에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그것으로는 세상이 단 한 발짝도 변하지 않는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볼 때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의 진검승부는 총선을 6개월 남은 시점부터 본격화될 것이며, 그 이전에는 7월 재보선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한다. 유족이 제시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가능하려면 7월 재보선에서 야권이 압승해야 한다. 바로 이것을 막기 위해 조중동을 필두로 현재의 권력에 편향된 제도권 방송들이 보수 세력의 정권 재창출에 동원된 것이라면 필자의 지나친 상상일까?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風聞)'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정작 대통령 본인은 못 듣고 있는 게 틀림없다. 지난 7일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가 발단이 됐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오전 10시쯤 대통령이 서면(書面)으로 첫 보고를 받은 뒤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 동안 대면(對面) 보고도, 대통령 주재 회의도 없었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문답.
"대통령께서 집무실에 계셨나?" "그 위치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비서실장이 모르시면 누가 아나?" "비서실장이 일일이 일거수일투족 다 아는 건 아니다." 대통령 일정을 실시간으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후에는 알 수 있다. 그날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던 날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찾거나 물어봤을 것이다.
김 실장이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서실장에게도 감추는 대통령의 스케줄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秘線)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 차라리 "대통령의 소재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곤란하다"고 했으면 이렇게 전개되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루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가 정보지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 등장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걸로 여겼다. 행여 누가 화제로 삼으려고 하면 "그런 들으나 마나 한 얘기는 그만"하며 말리곤 했다. 그런 대접을 받던 풍문들이 지난주부터 제도권 언론에서도 다뤄지기 시작했다. 사석에서 몇몇 사람들끼리의 잡담이 아닌 '뉴스 자격'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뜻이다.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그는 재산 분할 및 위자료 청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인에게 결혼 기간 중 일들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그는 정치인 박근혜의 7년간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의 이권 개입, 박지만 미행 의혹, 비선 활동 등 모든 걸 조사하라"며 큰소리를 쳤다.
세상 사람들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이런 상황을 대통령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됐다. 과거 같으면 대통령 지지 세력은 불같이 격분했을 것이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식과 이성적 판단이 무너진 것 같다. 국정 운영에서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다면 풍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온갖 루머들이 창궐하는 것이다.
마치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숨어 있던 병균들이 침투하는 것과 같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왜 어디서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현 정권만큼 국정 어젠다가 많았던 적이 없었다. '국민 행복' '국민 대통합' '비정상의 정상화' '규제 철폐' '통일 대박' '국가 혁신'…. 하지만 임기 내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될 걸로 믿는 사람들은 없다. 대부분 발표만 해놓고 끝날지 모른다.
쓸 사람을 뽑는 문제만으로 시간과 정력을 몽땅 날린 탓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논란과 불신을 낳은 정권이 없었다. 대통령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저런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을까" 하며 매의 눈으로 응시했다. 이런 누적된 의심이 대통령의 면역력을 서서히 떨어뜨려 온 것이다.
국가 혁신을 이룰 '2기(期) 내각의 출범'이라고 내세웠지만, 거리에 나가 누굴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인물 면면을 보고서 선뜻 우리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걸기가 어렵다. 국가 혁신을 하려면 대통령 본인과 주변 인물의 혁신부터 먼저 해내야 한다. 대통령은 여전히 구(舊)시대의 심벌 같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안고 있다. 그의 충성심과 비서실 안정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김 실장이 그대로 있는데 '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인사 때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세간에는 회자되는데도, 청와대 담장 안에서만 평온한 일상이 계속된다. 대통령이 이들을 불러 "조금이라도 오해받을 처신을 하거나 직무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는 소식도 없다. 설령 이들이 억울하다고 해도 민심을 향한 메시지 차원에서도 필요했을 것이다. 장마철에 곰팡이처럼 확산되는 풍문을 듣지 않기 위해 대통령은 자신의 귀만 막아서는 안 된다. 곰팡이는 햇볕 아래에서 말라죽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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