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정보통신사업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필자의 회사에서 만든 것은 문자메시지를 대량으로 전송하는 장비인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해당 장비를 여러 곳에 팔 수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곳에서 문자메시지를 대량전송했기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저의 장비로 고객에게 알림문자를 보냈는데, 장비에서 오작동이 일어나 한 고객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수백 건 송신됐습니다. 황당한 일을 겪은 고객이 대한항공에 항의했고, 대한항공은 제 회사에 손해배상을 묻겠다고 나왔습니다.
저로서는 절체절명의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이런 오작동이 다른 장비에서도 일어나면 모든 장비를 리콜해야 하고, 그럴 경우 너무나 많은 피해보상이 발생해 사업을 접는 수밖에 없었습니다(그것이 아니더라도 LG전자의 계약파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작동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오작동의 원인을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통신사의 로그기록이 필요했고, 퀄검사가 납품한 모뎀에도 문제가 있는지(생산 시의 문제로 불량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통신사의 로그기록을 받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였지만 받아내는데 성공했고, 기록 확인을 통해 통신망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로그기록을 살펴보면 망의 문제로 문자메시지의 중복전성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그기록을 통해 통화내역이나 기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지만, 망의 제대로 돌아갔는지, 저의 장비에서 같은 번호로 대량전송이 됐는지, 어떤 번호에 집중적으로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는지,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퀄컴사의 모뎀이 불량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고, 통신사와 퀄컴사가 대한항공에 사과를 하고, 손실보존을 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사업을 접을 필요는 없었고, 그 바람에 진실은 규명했지만.. 더욱 크게 망하게 됐습니다.
아무튼 로그기록만 있으면 국정원의 사찰이 정상적이었는지, 아니면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그기록을 가지고 국정원의 대테러‧대북공작활동을 모조리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로그기록은 디지털 흔적에 불과해서 공작 내용까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로그기록은 누구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하거나 감청했는지 흔적을 알려줄 뿐이지, 그 이상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해킹과 감청에 사용된 프로그램을 함께 돌려야만 해당 내용까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즉 국정원이 로그기록을 제출한다고 해서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작되거나 훼손되지 않은 로그파일만 있으면 진실은 금새 밝혀집니다. 신경민 의원의 주장처럼, 국정원에 의해 조직적으로 로그파일이 조작되거나 훼손됐다면 하드까지 분해해서 일일이 대조해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22일 문제의 마티즈 차량을 폐차시킨 국정원의 조직적 증거인멸처럼.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비영리 연구팀 '시티즌랩'의 작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해킹팀 업체가 국정원과 거래하며 미국의 서버를 경유했다고 하니, 그곳의 로그기록도 삭제됐다면 진실규명은 물 건너간 것과 다름없습니다. 국정원이 국가기밀을 미국(의 정부나 기업, 정보기관 등)에 팔아먹었다는 것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신경민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해킹됐거나 감청당한 핸드폰의 통신사망 로그기록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마저 조작되거나 삭제됐다면 진실규명은 국정원 직원들의 내부고발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경찰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주장을 펼치며 사건을 조기종결했는지도 내부고발이 없으면 밝힐 수 없습니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지난 4월에 자료 삭제가 불가능한 부서로 전출갔다는 사실과 4급 이하는 자료를 삭제할 수 없다는 국정원 내규만으로 국정원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밝힐 수도 없습니다. 권은희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국정원 댓글사건이 표면화되지도 않았을 것처럼, 계속되는 속보를 종합할 때 남은 것은 내부고발밖에 없습니다.
새누리당2중대의 역할에 충실한 야당에게 바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국정원의 내국인 사찰논란도 흐지부지되는 것 아닐지 걱정이 앞섭니다. 슈퍼추경 처리에 합의하면서, 국정원 사찰의혹 청문회도 개최하지 않고 법인세 인상도 명시하지 않는 것에 합의한 것으로 볼 때 진상규명은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문재인.. 이 세 글자를 희망의 목록에서 지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단 한 번도 긍정적으로 다룬 적이 없었던 김한길도 국회를 박차고 나가 천막당사를 차렸었는데, 문재인은 지지자와 국민을 상대로 정신 나간 퍼포먼스(러브샷과 셀프 디스)나 하고 있지 않나.. 정치가 무슨 어린내장난도 아니고,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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