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답답하다. 그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전했던 진보 성향을 띠는 인터넷 언론들의 보도 수준이 갈수록 본질에서 멀어지고 지엽적인 문제들만 떠들어대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이 조중동과 방송들을 따라갈 수 없음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고 해도, 거대조직과 이익집단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시민기자들의 보도나 일부 스타정치인들의 대담으로 인터넷 지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상을 보는 눈은 단순히 현장성만 강조한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위 99%의 삶을 보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상위 1%와 거대조직 및 이익집단의 생리를 일정 수준 이상 꿰뚫지 못하면 세상을 바꿀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자신만의 참호를 파고 그 안에 들어앉은 지식인과는 달리, 수십년 간 거대조직과 이익집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존중하고 악착같이 들어야 한다.
필자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로부터 좀처럼 듣기 힘든 얘기들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끌어낼 수 있어야 책과 논문, 통계와 검색 등을 통해 얻은 지식과 현장의 경험들을 대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부분적 진실들을 놓치지 않는 가운데, 극도로 세분화된 현대사회의 문제에 다가갈 수 있는 통섭적 시각을 키울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필자처럼 할 필요는 없고, 먹고살려면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필자처럼 40대에 접어들어 11년 간이나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을 내고자 하면 못낼 것이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술 한 잔 마실 돈과 시간, 영화를 한 편 볼 돈과 시간, 게임을 서너 판 할 돈과 시간, 야동을 몇 편 볼 돈과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독서고 사유며, 토론이고 성찰이다.
우리 모두는 하기에 따라 생존본능에 충실한 사람으로 평생을 보낼 수도 있고, 예수와 부처 같은 위대한 성인으로 영생에 들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인간만이 짐승이나 벌레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정반대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좌우를 가리지 말고, 기호에 얽매이지 말고, 때로는 깊게 때로는 넓게 때로는 멀리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르는 것, 이해하기 힘든 것에 고개를 돌리지 말고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타자에 투영돼 돌아오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최소한 타자에 투영되는 것 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삶의 대부분이 이데올로기나 철학, 체제나 제도, 법과 윤리 같은 거대한 줄기가 아닌 그것에서 나온 곁가지들에서 이루어지고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상당수의 곁가지는 쳐낼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자유의지와 각성의 실천적 발현이기도 하다.
가치체계가 다르면 선과 악이 바뀔 수 있고, 정의와 양심, 진실과 거짓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놓고도 수없이 많은 해석이 존재하고,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을 놓고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미국에 제국적 행태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도 이 때문인데, 경험적 직관을 넘어선 축적된 지식과 반성적 성찰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먹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는 지적사기와 상징조작, 쓰레기 정보와 조각난 얘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 때문에 평생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다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평생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속고 당하고 동원되고 분류되고 배제되고 범주화돼 버려지지 않으려면 잉여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며,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진다고 해도, 우리는 빵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때려 죽여도 위대한 석학들의 성찰이 담겨있는 책은 읽지 못하겠다면, 하루 24시간 중에 한 시간만이라도 인류문명이 이룬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온전한 고독에 빠져 보라.
사유와 성찰, 철학적 사고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투자해 보라. 즉각적인 소비와 경험적 직관, 디지털적 반응에 빠져있는 동안 내가 놓쳐버린 것들과 어떻게든 외면하려 했던 상처받은 영혼과 마주해보라,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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