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이제 1년 남았습니다. 문재인 대세론으로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이유는 차근차근 글로 올리겠지만 이번 더민주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다시 올립니다.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냉정해진 지금과 비교하면 감정적이었고 부족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기분 좋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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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가을의 저항과 이미 너의 수명은 다했다며 무섭게 진군하는 겨울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후 5시만 넘어도 하늘 한편을 차지한 어둠의 전조가 무서운 속도로 대지를 잠식합니다. 인공조명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면 빛은 있으나 세상이 어둠의 지배에 놓여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향한 작금의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이 이와 같다는 말과 함께, 이번 글을 본격적으로 풀어나기 전에 죠셉 콘래드의 <로드짐>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합니다.
“내가 볼 수 있도록 그가 허용해준 자신의 모습은 짙은 안개 속의 갈라진 틈으로 흘깃 보이는 풍경들 같았어. 그 생생하지만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세부 광경의 조각들은 한 지역의 전체적인 경치에 대해서 조리 있게 알 수 있도록 해주진 않아. 그 조각들은 호기심을 부추기기만 했을 뿐 충족시켜 주지는 않았어. 그 조각들은 그 지역에 대한 방위 잡기라는 목적을 위해서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까. 대체로 말해서 그는 나를 오도하고 있었을 뿐이야.”
문재인 후보님, 안철수 후보가 외면적으로 내세우는 것들의 은밀한 내면에 대해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해 보입니다. 합리적 보수의 역할을 정말 그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시점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드짐>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고, 문 후보님이 “오히려 안 후보 쪽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주변에서 자극적이고 과장을 해서 보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안 후보가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측이 상당히 부정한 경쟁을 한다고 믿는 건데, 지금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안 후보에게 과장된 보고가 이뤄지고 안 후보가 (그렇게) 판단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반박한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저는 갈수록 안철수 호보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들 이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성찰하고 실천하고 경험하고 돌아보고 다시 움직여 상당한 업적을 쌓아올렸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들의 언행은 마치 자신들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고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가 시대정신의 총화며 그것에 반하는 자들은 모두가 제거되어야 할 쇄신의 대상이라 합니다.
교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한 그런 무오류성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저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데이비드 흄이 말했던 것처럼 하나의 사실에서 나온 명제로 보편적 가치의 명제까지 확대 재생산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저들에게 외연의 확장과 지지율 정체나 하락 같은 현실 정치가 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자기만족적인 영혼의 흔들림을 제어할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성찰과 경험이 일천한 자들의 무모한 도전이 거대한 바위를 바늘로 뚫어보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왕 콘래드의 <로드짐>을 인용했으니 한 번만 더 인용하겠습니다. “희망이 줄어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은 삶의 요구까지 정복해 버리게 되지.” 오늘 자 경향신문(이들은 진보 언론이 아닌 것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계시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안철수 후보의 진정성에 대해서 그 뿌리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문재인 후보가 치고 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이벤트를 벌였던 전력이 여론 조사의 추이(이에 대해서는 공부가 끝나는 대로 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가 하락하자 다시 튀어나온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일화 협상과 룰을 정하는 회담장에서 철수한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에 오르면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고 합니다(그 뜬금없이란!).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떠오를 정도로 좋은 말이니 미국적 가치에 뛰어난 그답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에게 권력의 대부분을 넘겨줄 수 있다며 연정까지 제의할 정도였지만,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에 오르면 여야를 아우르며 위대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군요. 떡 줄 생각도 없는데 김치국물부터 마신다는 전례의 속담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요? 안철수 후보와 그 진영의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며 올바르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이며, 가능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무조건 한쪽만 변화해야 하며 개혁해야 한다면 그것은 신의 위치에 오른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 이제는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공과가 뚜렷이 갈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오르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설사 유신 치하가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견뎌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식의 단일화고, 이런 식의 정권 교체면 대통령에 오른다 한다고 해도 반드시 사단이 납니다. 차라리 판이 깨지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참에 민주당도 안철수 후보와 그 진영도 철저하게 파악하고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확인해보십시오. 설사 일이 잘못돼 3자 대결로 대선이 진행되고 그 결과 문재인 후보가 2등을 하던 3등을 하던 그 최악의 결과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마치 자신이 힐끗 본 것이 진리의 전체인양 행동하는 저들의 교만함이 진리가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오늘 문재인 후보의 반박은 비로소 방향을 제대로 잡은 느낌입니다.
민주당을 개혁하는 것, 필수입니다. 그것은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 후보가 되는 것과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진행돼야 하는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기 때문이며, 실제로 민주당 내에는 변화된 시대를 담아내지 못할 인사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된 술의 깊은 향기와 맛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잘한 일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개혁의 대상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들을 다 구태라 할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점에 관해서는 안철수 후보의 주장에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권 교체보다 정치 개혁이 먼저라는 것에는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세상에는 친노라는 집단이 현실적 세력이 아니라 가치공동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인정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운명이라고 자신의 삶까지 허공에 던져놓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 바보스러움까지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계산을 버리면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문재인 후보다운 것이기도 하고요. 언제 문재인 후보가 이해타산을 계산하면서 살아왔단 말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계산에 계산을 더해서 바람을 일으키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단 말입니까? 계산은 안철수 후보처럼 기업 경영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저 역시 안철수 후보가 혁신 경제의 모델이라고 제시한 사례들(구글과 애플)과 똑같은 일을 했고 재벌의 계약파기 때문에 망한 사람입니다.
계산 매일같이 했습니다.
역사적 평가요, 저는 그런 것 정확히 모릅니다. 권력이 다르면 지식도 다르고 평가의 기준도 다른데 어찌 그것에 연연해 현실 정치를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하물며 조직도 자금도 당원도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현실 정치를 무엇으로 바꾼단 말입니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저를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도 권위주의 타파와 민주적 절차의 확립, 정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만신창이가 되는 순간에 진정으로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문재인다운 길을 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의 우리나라 경제가 나쁘지 않았음을 통계자료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민과 언론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의 신장도 높아졌음을 UN과 OECD, 국제노동기구, 국제기자협회 등의 자료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역사적 사실과 당시의 환경에 입각한 평가도 나오리라 믿습니다.
문재인 후보님, 박근혜의 5년이라도 견뎌내겠습니다. 그 5년 안에 죽음에 이른다 한들 받아들이겠습니다. 10년 전 후보 단일화에 임할 때, 그때의 노무현을 떠올려 보면 거기에 답이 있음은 문재인 후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에 유의하셨으면 합니다. 이번 대선 이후로도 문재인 후보님을 몇 십 년은 더 보고 싶으니까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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