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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2



회사이름을 왜 ‘루팡’이라고 결정했느냐 하면, 어차피 사업에 뛰어든 이상 세상의 돈을 훔칠 거면 확실하게 왕창 훔치자, 뭐 그런 무지몽매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낭만적 생각(결정적 패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가 끝물이라고 해도 잘하면 벤처사업을 통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미친 짓을 밀어붙인 것은 제가 세상 경험이 너무 없었고, 한 번 미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입니다.

 

 

해서, ‘루팡’의 유일한 직원이자 월급여로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루팡’의 부사장에 취임한 S물산 퇴직자에게 장비 설계도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어떤 사업계약서도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장비 설계도와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졌고, 저는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상태에서 허무맹랑한 사업계획서 하나만 달랑 들고 이통사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통신시장의 가장 약자였던 L통신사와 전화로만 연결이 된 상태에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물론 통신사 직원과 미팅을 잡기 위해 L통신사에 수십 차례라 전화를 걸었지요, 담당부서도 모른 채. 그렇게 수십 차례에 걸친 집요한 전화를 통해 당시 데이터 사업팀에서 법인을 상대로 핸드폰을 특판하고, 문자메시지 사업을 담당했던 김 모 과장과 김 모 대리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통사 과장이 이름도 모르는 벤처기업을 만나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저는 ‘내 비록 시작은 초라하나 그 끝은 창대하게 쫄딱 망하리라’는 철저한 패망의 서사극의 첫 막을 인생과 사업이라는 냉혹한 무대에 올려놓은 것이지요. 대기업 조직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저는 통신사 담당자들에게 말하길, 다른 벤처기업들과는 달리 직원도 한 명뿐이고 사무실도 없지만 L통신사의 모뎀을 사용해서 이러이러한 문자메시지 대량전송 무선장비를 만들어서, 내가 갖고 있는 인맥과 영업력을 총 동원해 이러저러하게 판매할 테니 쌍방의 이익을 위해 공동사업 MOU를 맺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걸 갖고 투자를 받아내 사업을 단 시일 내에 궤도에 올려놓고 음성부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L통신사의 데이터 사업부문을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여기서 맨붕에 빠지시면 안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었죠. 그것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미쳤던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아니 강남 길거리에서조차 거의 볼 수조차 없었던 배불뚝이 지체장애인이 뭣 모르고 하는 말이니 L통신사 직원들이 저를 보기에 가소롭고 황당했겠지요. 그들도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더니 제가 좀 더 구체적인 영업계획을 말하면서 화려한 언변으로 끈질기게 설득하자, 질렸는지 아니면 지쳤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틀 후에 다시 한 번 더 미팅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들로써도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가능할 것도 같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한 저의 얘기와 성공에 대한 강한 확신에 대해 냉정하게, 그러나 어이없어 하면서 찬찬히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겠지요.

 

 

어쨌든 그들은 다음 미팅을 약속한 것으로 이미 저의 열정에 감염돼 버린 것이었고 그래서 이틀 후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기업에 몇 명은 이미 임원으로 재직 중이었고, 부장급도 상당수에 이르는 친구들의 명단과 당시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집단인 S그룹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지금은 임원으로 승진한 동생과 D그룹 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형이 들어있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교통공학자인 삼촌과 K생명 그룹 오너인 친척분과 각 분야에서 국가지도자급으로 있는 어마어마한 지인들의 명단까지 제공하며,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으니 이 보다 사기성 짙은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베팅을 한 것이었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모험을 강행한 것이었습니다. 벤처라는 단어가 자체가 모험이니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인맥은 거짓이 아니었으니, 그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뭐 그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무데뽀 정신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날, 음성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L통신사의 데이터 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었던 박 모 상무로부터 MOU 체결에 대한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먹기였습니다. 저의 인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대기업의 인맥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그들로서도 구미가 당겼을 것입니다. 


 

 

P.S. 멀티포트입니다. 장비 안에 모뎀이 8개 들어 있는 문자메시지 대량 전송장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