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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투명한 질서가 혼돈처럼 자유로운 곳


어쩌면 나는 깨어나지 않는 잠과 끝나지 않는 꿈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용이 죽음과 같아서 영원히 빛과 어둠 사이 갇힌다 해도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단한 삶의 연속 속에서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돌고 또 맴돌았을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질긴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거기에서 비롯되는 영혼의 잠식과 정신의 몰락이었다.

이상보다는 조금 더 높은 무엇을 추구했지만 늘 돌아보면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음을 발견했다.

온 몸에 가득한 상처란 나의 몸부림이 진실보다 조금 높은 곳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득권과 다툰 패배의 결과들이었다. 





나는 영겁회귀하는 것 같은 순간순간의 동일함 속에서 어제가 오늘이 되고, 내일이 다시 어제가 되는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설명하고 그것과 투쟁하는, 숱한 몽상가들과 예언자들이 꿈꿨던 무한한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이성의 힘을 믿었기에 물질의 과잉 속에서도 투명한 질서와 자율이 있으리라 믿었다.

탐욕의 자본주의 하에서 이성의 가치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고투를 마다하면서도, 자꾸 옆으로 새는 욕망의 소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었지만, 그 끝에는 관대한 희망이 있으리라 믿었다.

정말로 나는 죽는 순간에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로렌스가 그러했듯 밤에 꿔야 했던 꿈을 낮에 꿨는지도 모른다.

밤에 꾸는 꿈은 아침에 일어나면 초라해지지만 낮에 꾸는 꿈은 그 열기로 인해 육체는 물론 정신과 영혼마저 사로잡기 일쑤다.

낮에 꾸는 꿈은 차가운 이성의 채로 거를 시간이 없기에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 마련이며, 언제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영혼의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정신과 육체에게는 어떤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정신이 감각의 부속물이라면, 감각이 견딜 수 있는 데까지 앞으로 나가고, 뒤를 이어 정신이 일보 전진할 때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보다 먼 모험, 보다 깊은 고난, 보다 심한 고통으로 빠져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렌스만큼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하는 나는, 이성이 행동을 지배하고 영혼이 육신을 고양하는 어설픈 성찰의 테두리에서 서성거렸다.

세상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용기가 부족했기에 나는 움직이기 전에 결정하지 못했다. 

사유가 행동을 제약하려 하지만, 감각이 미쳐날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배회할 뿐 세상의 중심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문제는 늘 거기서 발생했다.

 



 

로렌스의 경험처럼, 나의 시작도 어느 수정처럼 맑은 오월의 아침(아니 오후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육체가 혼란스러운 이 같은 경우에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에 일어났다.

지난밤의 폭우가 만들어낸 세상 첫날 같은 태초의 햇빛에 눈을 떴지만, 밤새 퍼 마신 술 때문에 이성은 숙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불 속을 뒹굴고 있었다.

육체는 아직 정신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질서정연한 사고가 배제된 그 순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에게 스며들었다.

만개한 오감은 만물의 속삭임, 색체와 향기, 숨결과 미세한 떨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알코올의 찌꺼기와 잠의 잔재, 정신의 부재가 만들어낸 현실과 비현실의 그 어디쯤에서 나는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었고 무엇도 걸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인위적 해석과 성향이 배제된 본질의 세계였다.

거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창조의 말도, 숱한 우연으로 가득 찬 거대한 섭리와 수십 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여정이 숱한 우연으로 가득차는 것을 막기 위해 미세조정에 슬쩍 끼어든 ‘눈먼 시계공’의 간섭도 필요하지 않았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었고, 만물은 아름답거나 초라하고 복잡하거나 단순했다.

날것 그대로의 세상에선 모든 것이 투명해 어떤 꾸밈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관성의 법칙도, 거대한 거리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힘도, 나노 세계보다 더 작은 극소의 공간(원자)에서 작동하는 양자역학의 비약도, 질량불변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물리학 법칙마저도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시공을 뛰어넘어 내가 로렌스의 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아니면 로렌스가 내 몽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그 꿀맛 같은 몇 분(아니 몇 십 분, 몇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지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이나 본질의 차원을 얘기할 때는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투명한 질서만이 혼돈처럼 자유로운 곳.

만개한 오감이 어떤 계산과 간섭도 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는 바로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