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위기감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가 보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국가의 권력기관을 장악한 우병우의 환관권력에 박근혜마저 놀아날 지경에 이르자 여소야대의 20대국회를 어떻게 넘길지 두려웠을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경북의 반발, 홍준표 주민소환투표 확정,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재부상, 더민주 초선의원들의 강경투쟁 선언, 세월호참사 3차 청문회에서 새롭게 폭로된 핵폭탄급 사실 등으로 보수 진영 전체가 무너질 판에 여서야대의 20대국회가 개회됐으니 새누리당의 초조함이 극에 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장이라고 울고 싶은 판에 정세균 의장이 개회사를 통해 뺨을 때려줬으니 새누리당이 지랄발광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조윤선 청문회 직전에 야당이 단독으로 박근혜가 파기한 무상보육 공약을 되살리는 누리과정 지원예산 6000억원을 통과시켜 20대국회의 높은 벽까지 경험시켜주었으니, 새누리당 DNA에 각인되어 있는 조폭본색을 발휘해서라도 갱판칠 필요가 있었다. 새누리당은 극도의 두려움에 쌓일 때 조폭본색을 드러내곤 했다.
골 때리는 것은 깽판을 치는 와중에도 이정현이 박근혜의 해외순방을 배웅하기 위해 의장실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새누리당의 의장실 점거가 허접한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이정현의 노예짓은 (노동자가 하면 범죄가 되는) 집권여당의 점거농성까지 허무할 정도로 초라하게 만들었다. 주인이 외국으로 놀러가는 중에 하인들의 자존심보다 추경 처리가 중요하다고 말한 모양이다.
물론 박근혜가 외국으로 도피한 마당에 우병우의 독재가 시작될 터, 그의 하명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시작은 (4대강처럼) 창대했으나 끝은 (녹조처럼) 초라했다. 20대국회를 가늠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의장실 점거농성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자신의 바람막이가 되주었던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이 아니라 밤의 삐끼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추경 처리라도 받아냈으니 승리했다고 자평할 수밖에.
이들은 지우고 싶은 것이다, 개헌선 확보도 가능하다던 지난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을. 박정희 숭배자들을 물려받은 박근혜의 영향력도 더 이상 새누리당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쌓인 극단의 두려움을 어떻게든 외면하려 했다는 것을. 정진석이 잃었던 새누리당 본연의 힘을 되찾았다 자위하는 것도 그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말해준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양보는 적절했다. 세월호특위의 3차 청문회에서 집권세력을 박살낼 수 있는 핵폭탄급 사실들이 폭로되는 상황에서 정세균의 개회사는 대단히 훌륭했지만, 시기적으로는 마이너스였던 점도 있다. 정세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3차 청문회가 국민의 관심에서 완전히 묻혀버리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이런 점에서 정세균 의장의 빠른 양보는 대단히 현명한 결정이었다.
정세균 의장은 20대국회 시작부터 체면을 조금 구겼지만, 개회사를 통해 입법부 권력만은 박근혜-우병우의 대규모 닭사육공장 같은 헬조선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분명히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양보에 실망할 필요란 없다. 국가의 역할이 끝없이 늘어나며 행정부의 권력이 팽창했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은 축소됐지만, 입법부야말로 민의의 전당으로 민주주의의 본령이며, 브라질에서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한 것도 입법부라는 것을 상기시켰으면 충분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손을 잡고 노무현을 탄핵한 것처럼 박근혜도 비슷한 방식으로 탄핵시킬 수 있는 것도 대한민국 입법부다. 잘못된 탄핵은 국민이 바로잡겠지만, 잘된 탄핵이라면 국민이 지지할 것이다. 야당의 누리과정 지원예산 단독통과와 정세균의 개회사에서 비롯된 새누리당의 조폭정치쇼는 박근혜-우병우만 신난 최악의 추경을 처리하는 선에서 봉합됐지만 여소야대 국회의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자, 이제부터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진정한 헬조선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사실들이 폭로되고 있는 세월호참사 3차청문회에 집중하자. 사드 배치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저지하고 있는 성주군민과 김포시민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과 동시에, 박근혜-우병우 조합과 새누리당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세월호특위의 3차청문회에 집중하자. 추경 처리는 3보4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충분하다.
에밀 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이 전진하기 시작했으니 무엇도 막지 못하리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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