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람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슬픔과 기쁨, 그들의 수난과 죽음,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인간경험의 참된 내용이다.
ㅡ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인용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국민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미루는 것은 내일 재보선의 재보선 결과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선에서 특별법을 밀어붙일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계속해서 미루거나, 누더기로 만들 수밖에 없음은 충분히 추측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와 팩트만으로 이런 추측은 너무 쉬워 글로 옮기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세월호 참사도 하나로 통합니다. 당연히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떠오른 국정원입니다. 단 하나의 문건이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지만,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일 가능성은 거의 100%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라면ㅡ1, 국정원 세월호의 실소유주, 음모론이 완성되다에서 자세히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만일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라면 새누리당으로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에 동의할 수도 없고, 진상규명만 먼저 다루되 야당이 지정하는 변호사를 특검에 임명하자는 안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국정원의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사를 하다 보면 18대 대선의 불법개입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국정원의 중앙서버를 압수수색해서 조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국정원이 18대 대선에 불법개입한 내용들이 지금까지 나온 것보다 많이 드러날 것이고, 특검법에 의해 이 사실을 공표할 수 없지만 늘 그렇듯이 특검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면 세월호 특별법을 넘어 국정원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될 수밖에 없고, 사태가 여기에 이를 경우 국정원만이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도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4월 16일 당시 청와대를 비운 7시간의 행적도 드러날 테고요.
문제는 여기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까지 문제는 번져가고 이럴 경우 새누리당은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명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들이 더 들어날 수도 있고, 국민이 의혹으로만 제기했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이땅의 보수 세력이 종말(비록 재보선에서 압승했다 해도)을 고하는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문제가 되는 의원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과 관련된 내용들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19대 총선 관련 국정원의 선거개입 여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시나리오는 최대치의 후폭풍을 가상한 것인데, 여기까지 진행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합니다. 거대 양당이 그들의 기득권이 모두 다 무너지는데 절대 여기까지 사태가 진행되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정치고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갖는 최대의 단점입니다. '훈련된 무능'의 대표적인 집단이자 정치의 시녀역할을 자주해온 사법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거대 로펌을 동원한 강자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현실이 그렇다 해도 세월호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월호 희생자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줄 수 있으며, 남은 유족들과 생존학생들의 참담한 고통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도덕 세계의 반원은 길지만 그것은 정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프레드릭 옴스테드는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모든 욕망에 우선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헌데 세월호에서 2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침몰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70% 이상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성역없는 수사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헌데 국정원의 지적사항을 정리했던 청해진해운의 직원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병사인지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헌데 사망한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유병언처럼 희한하게 사망한 직원은 세월호에 탑승하지도 않았답니다. 세월호의 실소유주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고, 또 이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영혼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참사가 두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을 미스테리로 남겨놓은 채 평상시의 삶으로 돌아가라면 당연히 거부하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자의 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Ⅱ》에서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말로 끝낼까 합니다.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칸트(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해 탐구한 관념론의 완성자)만큼 근대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헤겔(무한한 진보가 가능하다고 역설한 낙관론자)을 비판하며 한 말입니다.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내용입니다. 재보선의 결과가 최악으로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최악으로 나왔네요, 에고).
그는 비단 철학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독일 문헌에 대해서 압도적인, 좀 더 엄격히 말하면 포복졸도케 하는 전염병과 같은 악영향을 끼쳤다. 이것에 대항해서 항상 강력하게 투쟁하는 것은 스스로 사회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우리가 침묵을 지키면, 과연 누가 말을 할 것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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