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이 들고나온 대연정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틀 후부터 탄핵을 운운(한나라당이 주친 중이었던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특검을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했던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넘어 열린우리당까지 가세한 발목잡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로 들고나온 대연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 같습니다. 노통이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각오하에 대연정을 제시한 것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지역적 독점을 바탕으로, 이념적 정체성도, 가치 지향도 뒤죽박죽인 잡탕 정당이어서 어떤 공약과 정책도 제대로 실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정을 통해 권력의 대부분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과 결선투표제를 요구했습니다. 당시의 노무현은 권력의 대부분을 넘겨줘서 자신은 식물대통령이 되더라도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과 결선투표제를 통해 이념과 가치에 따른 다당제의 밑거름이 되고자 했습니다. 지역독점에 기반한 보수화된 양당체제로는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의 본질을 살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마저 포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영향력이 강했지만 특별한 변수가 될 수 없었던 당시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보수정당이었지만 개별 의원들로 한정하면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자신이 무슨 정책을 펼치려고 해도 거대양당과 조중동, 진보언론 등의 반대와 낮은 지지율에 부딪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이념과 가치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정책 별로 양당의 의원들을 이합집산시켜 다당제로 가는 길을 열려고 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자신의 대에서 끊기 위해 4대권력기관(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의 정치적 독립성을 인정함으로써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만끽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노통으로서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 집행이 절실했습니다. 노무현을 씹는 것이 대국민 취미활동이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자신의 진정성을 알릴 방법이 없다면 대연정을 성사시켜 정책 별로 양당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소수의 재벌이 아닌 절대다수의 서민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4대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고,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를 무력화시킨ㅡ장기적으로는 위대한 결단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자살행위ㅡ노무현으로서는 대연정이 유일한 탈출구로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대연정을 제안한 후 지지자들의 비판과 이탈이 속출(꾸준한 홍보로 여론은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었다)하고, 현실적 장벽(개별 의원들의 정체성과 능력 부족)을 확인한 후 대연정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노통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던 때는 정치 지형이 압도적으로 보수진영에 유리했습니다. 노통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도 지지표명을 거두었고(조중동의 조오옷 같은 업적!), 노사모와 넥타이부대는 해체되거나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노통의 대연정이 승부수였던 것도 이런 정치지형의 불리함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작금의 상황은 정반대라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여론이 80%대를 유지하고, 반기문이 중도하차할 만큼 보수진영이 지리멸렬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촛불민심은 부패한 기득권세력의 청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필자를 비롯해 상당수의 촛불시민들은 드골식 청산을 요구할 정도입니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친일파를 대한민국 건국의 주축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일제강점기의 최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의 원혼(겨레의 역사)마저 단돈 십억 엔에 팔아먹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반역적 일들을 자행한 자들과 정당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도 압도적인 상황입니다.
노통의 대연정과 안희정의 대연정이 같을 수 없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질게 말하면 안희정의 대연정은 노통의 대연정을 폄하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정이라는 단어선택도 잘못됐습니다. 안희정의 추가 설명을 보면 대화와 타협의 협치를 말한 것 같은데, 그것은 민주적 국정운영의 기본이어서 권력을 나누는ㅡ내각을 공동으로 구성하는 공동정부라는 뜻의 연정과는 다릅니다. 협치는 연정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안희정이 정말로 연립정부를 하겠다는 것이면 시기도 빨랐고(박근혜는 아직 탄핵이 확정되지 않았다!), 순서도 틀렸습니다. 민주당 경선룰이 완전국민경선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론나는 바람에 중도보수층에 어필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반기문의 조기탈락으로 충청유권자들을 흡수할 수 있게 됐지만, 그것 때문에 민주당에 주어진 시대정신이 퇴색되거나 변질된다면 안희정의 대연정은 이념과 가치에 따라 의원들을 재구성하려는 노무현의 대연정과 정반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희정도 이재명과 똑같은 과정을 겪는 것 같습니다. 지지율이 급상승하면 후보들이 오버하는 경우가 나오는데 이재명의 커밍아웃(개혁적 보수주의자, 이재명은 손가혁 때문에 확장성마저 잃었다)과 안희정의 대연정 제안은 이런 면에서 동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21세기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정권을 잡은 다음의 얘기이지 정권을 잡으려 가는 길에 나올 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새로은 길을 열어가고 있는 촛불혁명은 진보적이면서도 자유주의적인 혁명입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통치자와 지배엘리트들에게 지키라고 하는 것이 진보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요구입니다. 보수적인 구좌파의 물질주의적 강령에 경도된 이재명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도, 경제를 중시하지만 노동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사회적 평등과 탈물질적이고 개인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촛불집회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과 그 속에 담긴 뜻을 풀어내는 것은 다르다).
안희정은 쓰레기 언론들과 새누리당 등이 악용하지 않도록 대연정 제의를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민주당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에 반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은 가치를 내세워 다시 달려가면 됩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승리여야 합니다. 촛불시민과 유권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정보 접근능력과 처리능력이 탁월한 촛불시민과 유권자들이 노통의 대연정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잘된 일이지만, 그것을 왜곡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안 지사가 계속해서 대연정을 끌고갈 생각이라면 노무현을 끌어들이지 말고, 그와 다른 대연정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희정표 대연정으로 정치적 승리에 성공한다면 그럴 때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화와 타협이란 협치를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상대가 새누리당이라면 차라리 촛불시민과 국민을 믿고 정면돌파함이 낫다고 봅니다. 박근혜를 지켜주고 있는 그들과 손잡는 것이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합당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노무현을 뛰어넘는 것이 목표라면 정치적 언어선택에서도 그에 합당해야 합니다. 안 지사가 표리부동한 정치인이 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합니다. 안희정을 문재인만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새누리당과의 대연정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안 지사가 이 부분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하지만 부족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친노를 자랑으로 여기고 저평가된 그를 제대로 평가받도록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유권자로서 이번 글을 썼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밝힙니다.
#새누리다가박근혜다
#박근혜는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삼성이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노무현의 대연정에 대해 제대로 알고싶다면 노무현의 회고록인 <성공과 좌절>,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재조명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학자들의 공동저작인 <노무현의 민주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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