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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밤샘토론, 문재인 직접사과 요구한 최명길에 대한 반론


아무리 통계적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오늘의 밤샘토론에서 국민의당을 대표해서 나온 최명길이 올빼미논객으로 뽑힌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세련된 박지원을 보는 듯했던 최명길은 이낙연과 김상조 등의 위장전입에는 도덕의 잣대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북한과의 협력에는 (미국의 이익만 반영된) UN의 북한제제로 문재인 대통령을 한 박자 꼬아서 엿먹이는 것으로 일관했는데, 현장의 대학생들에게는 그의 토론이 가장 뛰어나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방청객들이 봤을 때, 최명길이 첫 번째 인사에서조차 자신이 제시한 원칙을 지키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한 것은 당연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강경화의 위장전입은 미리 밝혔으면서도 이낙연과 김상조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임종석 비서실장의 사과가 (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면 이낙연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에 동의할 수 있다는 단서까지 달았으니, 최명길의 주장이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사과를 요구하는 그의 주장이 방청객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반적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면 오늘의 올빼미논객으로 뽑힌 것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주장대로 문 대통령의 직접사과가 모든 것을 풀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최명길이 국민의당을 대표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자유한국당이 이에 따를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낙연은 그렇다쳐도, 아직 청문회도 열리지 않은 강경화와 김상조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사과에 나서면 이낙연은 물론 강경화와 김상조의 위장전입도 눈감아 주겠다는 것일까요? 문 대통령의 직접사과를 기점으로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국민투표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최명길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사과에 나서도 이낙연 등을 낙마시켜야 합니다. 최명길처럼 도덕의 잣대로 정치를 재단하면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도덕의 잣대로 정치를 하면 절대적인 것들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도덕은 모든 것을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악한 것들의 전멸이라는 해결책을 빼면 어떤 것도 통용될 수 없습니다. 





이럴 경우 어떤 정치인도 정치적 차원의 발언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것들만 말할 수 있으며, 일단 말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전지전능한 신이나, 플라톤이 말한 완벽한 철인이 아니라면 어떤 누구도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갈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와 이를 조정하는 정치란 존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작용했던 것도 이 때문이며, 민주주의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체제가 아닌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비민주적이고 반정치적인 공격에 무너져내렸습니다. 노통이 자신의 뜻을 반의 반도 펼치지 못한 것도 이런 도덕적 잣대로 그를 공격했고 옥죄었기 때문입니다. 노통이 대북송금특검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탄핵에 몰린 것도,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대연정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노무현에게만 적용된 도덕적 잣대 때문이었습니다. 



최명길이 올빼미논객에 뽑힌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도 여기에 기원합니다. 필자가 최명길에게서 세련된 박지원이 보였다고 한 것도, 그가 노무현에게 가해졌던 바로 그 방식대로 문재인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눈높이가 대단히 높아진 대학생 방청객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에서도 최명길의 주장이 얼마나 교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8주기 추도사에서 국민에게 노무현을 돌려드리겠다고 말했지만 최명길 같은 자가 널려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시민이 썰전에서 걱정했던 것처럼, 모든 후보자들이 문재인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사과가 최선의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노통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해서 도덕의 잣대로 민주주의와 정치을 재단하는 것까지 동의해야 한다면, 이낙연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이 정답이지 대통령이 직접사과에 나서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인수위도 없는 상황에서 인사검증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직접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노무현의 전철을 밟도록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시민의 문자폭탄까지 비판하는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태까지 더하면, 정말로 사과해야 할 자들은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없는 도덕적 잣대를 내세워 자신의 주장만 옳다는 형편없는 적폐 정치인들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