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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오늘의 내용만 기준으로 하면 썰전보다 판도라가 좋았다


개인적인 선호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늘의 내용만 놓고 볼 때 jtbc의 썰전보다 MBN의 판도라가 재미있었던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tvn의 '알쓸신잡'을 보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듯이, 최근에 들어 연예인병(또는 왕자병) 증세를 아주 조금 보여주었던 유시민 작가가 지난주 방송에서 강경화 후보자를 비판한 방식과 단어 선정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시작한 오늘의 썰전보다 수구꼴통에 가까웠던 차명진이 '액체민주주의'를 언급한 오늘의 판도라가 객인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선험적 인식과 경험적 인식의 종합적인 판단력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 유시민의 썰전과 최근에 들어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정청래의 판도라가 비슷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반발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썰전의 시청소감은 글로 옮기면서도 판도라에 대해서는 단 한 편의 글로 쓰지 않았습니다. 유시민의 지혜와 경험이 돋보이는 썰전은 시청할 가치가 충분한 프로그램이어서 글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차명진이 '액체민주주의'를 언급한 오늘을 제외하면 판도라의 내용들은 글의 재료로 활용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었습니다. 차명진이 말한 '액체민주주의'는 지난 1월 1일에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ㅡ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무너져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곳으로도 스며들 수 있는 액체의 특성을 띠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생명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의미ㅡ란 개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엘리트주의적 성격이 강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참여가 늘어난 직접민주주의(기술 발전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지방분권 개헌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로 가는 중간단계의 참여민주주의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참여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미국의 68혁명(유럽과 미국의 68혁명은 기성체제에 대한 반발을 빼면 많은 면에서 다르다)을 주도했던 신좌파 대학생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으로 당시에는 이론적 성취가 미약했기 때문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그 이후의 후속연구와 경험들로 인해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와 박근혜 탄핵찬성 촛불집회를 관통했던 '시민주권 행동주의'로 발전했습니다. 보수 정치인인 차명진으로써는 진보적 표현인 '시민주권 행동주의'를 사용하기 싫어서 보수적 표현인 '액체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숙 교수가 노사모가 최초의 신좌파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는 몰랐지만 정치학적으로 보면 신좌파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적 시각이 많이 반영된 조기숙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신좌파의 참여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신좌파는 보수적인 구좌파와 시장친화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보수우파를 모두 다 비판했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68혁명의 에로스효과ㅡ'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에로스)에 대한 자각, 혹은 이 자각이 특정한 사회적 조건이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동시다발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과, 《파워엘리트》의 저자인 C.라이트밀즈와 함께 신좌파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마르쿠제의 《반혁명과 반역》을 참조할 것ㅡ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신좌파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참여민주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한 최초의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짧았지만 이때의 경험이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며,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을 뽑았다 해도 지속적인 지지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지켜주지 못한 이때의 죄책감과 뒤늦은 성찰이 미국산 쇠고기수입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박근혜 탄핵 찬성 촛불집회로 폭발할 수 있었습니다. 



차명진이 오늘의 판도라에서 '액체민주주의'를 말한 것에 비해, 유시민은 오늘의 썰전에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탄핵하려면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상원의원들을 반트럼프와 친트럼프로 나눠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였다면 최소한 6개월 정도의 촛불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을 친박과 반박으로 나눈 것도 촛불집회의 영향력이었다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유시민의 주장보다는 저의 주장이 조금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이 최고로 앞선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4개월에 걸친 비폭력 촛불집회로 박근혜의 구속을 이끌어냈고 어떤 혁명도 이루지 못한 정권교체라는 신기원까지 이루었기 때문이기에, 유시민 작가가 촛불집회를 제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최소한 저에 한해서는, '액체민주주의'와 기술 발전의 결과인 정당 해체(또는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전환)를 다룬 오늘의 판도라가 오늘의 썰전보다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로써 판도라를 하차하게 된 차명진이 시청자들, 즉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액체민주주의'를 들고나왔을 수도 있지만, 보수 성향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촛불집회에서 폭발적으로 발현된 '시민주권 행동주의'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내용만 놓고 볼 때, 신좌파의 68혁명과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촛불집회에 대한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저에게는 썰전보다 판도라가 좋았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