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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공간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욕망에 우선한다



필자는 선친이 남겨주신 1,500~2,000여 권의 책ㅡ사업 실패와 온갖 병을 견디지 못해 모든 것을 정리할 때 책들도 함께 버리는 불효를 저질렀음에도, 매일같이 가장 초라한 자살만 생각하다 어차피 죽을 것, '알고나 죽자'는 뜬금없는 생각에 가족의 도움으로 1,000여 권을 책을 추가로 구입해 읽었다. 선친이 남겨주신 책들은 외국과 한국의 고전들과 철학서, 한국의 역사와 세계사, 위인들의 전기와 몇몇 분야의 전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필자가 구입한 책들은 정치, 경제, 사회, 철학, 종교, 과학, 역사, 교육, 문화, 미디어 등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거의 전 분야가 망라돼 있다. 문학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솔직히 최근의 문학들은 필자가 심취했던 고전들과 너무 차이가 나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최근의 문학작품과 필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 하면 제일 정확할 듯싶다.    



어쨌든 독서량으로만 보면 상위 1%에 속하리라 생각하지만, 젊은날에 읽었던 책들은 무의식 속에 단단히 갇혀 있는 상태라 필자가 직접 구입해서 읽은 책들 속에서 간간히 되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뇌과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의 뇌라는 것이 가소성이 있어서 운이 좋으면 퇴화된 뉴런들이 되살아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책들의 내용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 하니, 그런 기적이 일어날 날을 간절히, 그러나 무모하고 뻔뻔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필자가 독서량을 자랑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시작한 것은 많이 읽었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위대한 대가는 되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사이비 지식인들은 걸러낼 정도에는 이르렀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방대한 독서량 덕분에 누가 사이비 지식인인지 가릴 수 있는 지적검증부대의 역할은 할 수 있게 됐다. 지식이 검색하는 것으로 변함에 따라 허풍을 떠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지식의 내용이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 깊은 성찰에 이르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다(프랙털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부가 전체와 유사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나 위대한 고전들을 소개하는 수없이 많은 서평들도 해당 책을 다 읽지 않고 쓰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마케팅의 일환으로 그칠뿐 독자들의 선택과 성찰을 높여주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미디어에 길들여진 세대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것까지 더해져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고, 그에 따라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인류를 일로부터 해방시키면서도 복지를 향상시켜줄 것이라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기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속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지적 탐구에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고 듣는 것에 약한 것이 인간의 속성이어서, 지적 탐구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담론과 지식 및 정보들에 속아 기득권의 이익만 강화해주는 이중삼중의 착취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최대한 막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알고나 죽자'에서 시작된 지적 여정의 결과물을 통해 지식인의 역할인 비판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된 성찰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고 싶은 욕망이 넘칠 만큼 가득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필자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을 대상으로 필터링을 하고 있고, 그 결과들을 최대한 쉬운 언어를 이용해ㅡ이것은 너무 어려운 작업이라 필자의 능력에 벗어나 있지만ㅡ글로 옮기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돈이 곧 권력인 세상에서, 거대한 부에 맞서는 방법은 작은 부를 수없이 편재시켜 대항하는 것이 최상이듯이, 필자가 읽은 책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합해서 소개함으로써 거인에 맞서는 난장이들의 지적검증부대를 이루는 것이 필자의 목표다(최근에는 세월호유족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이런 과정에서 필자도 대가에 이르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ㅡ꿈도 꾸지 마셔!ㅡ최소한 승자와 강자 위주로만 흘러가는 대의민주주의 역설을 최대한 막고 싶다.    



정치학에는 몇 가지 절대적인 명제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는 두 개의 명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풍요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탄생한 국가가 최근에 들어서는 전 지구적 지배그룹에 봉사할 뿐, 자신의 존재 목적을 망각한 채 국민을 속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덕과 철학, 윤리와 양심, 정의와 평화, 공존과 상생이 사라진 세상에서 불평등의 심화는 인류의 미래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는 감히 이런 추세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무모한 욕망이 있다. 필자는 운이 좋아 사업에서 망하고 온갖 병에 걸렸고, 운이 나빠 세상이 돌아가는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이것은 감당하기 힘든 내적 갈등을 일으키지만, 남은 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내적갈등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그로 인해 사이비 지식인과 전문가와,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의 야합을 까발리고 그들의 끝없는 탐욕을 고발하기 위해 필자가 얻은 모든 것을 풀어놓아 작은 지적검증부대라도 만들고 싶다. 



그렇게 이중삼중의 착취를 최대화하고 있는 전 지구적 지배세력과 불의한 통치엘리트, 고착화된 부정의에 맞서 투쟁의 지평을 최대한 넓히려 하며, 그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부와 권력의 독점을 이루었다면, 우리도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적검증부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모든 욕망에 우선한다"는 말을 가슴과 머리에 담고서, 강자와 승자에게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더더욱 세월호참사에서 어른들의 탐욕에 250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했음에도 진상규명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정부와 여당이 그 맨앞에 차벽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