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완벽할 때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법과 정의에서 이탈할 때 모든 동물 중에 가장 열등하다.
ㅡ 아리스토텔레스, 피터 코닝의 《공정 사회란 무엇인가》에서 재인용
오늘(21일) 김태우는 기자회견을 통해 몇 개의 폭로를 추가로 내놓았습니다. 자한당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 김태우의 폭로는 신재민의 폭로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김태우는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조국 수석이 있다며 폭로의 목표를 분명히했습니다. 청와대가 조국에게 장악됐고, 임종석 실장의 비리를 찾아오라는 말까지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어준스러운 이런 폭로는 황당무계함을 넘어 음모론의 최고봉을 보는 듯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가 분명하게 말했듯이, 때로는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김태우는 이명박근혜 청와대에서 일했던 자이며, 그때의 방식이 몸에 벤 놈입니다. 자한당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김태우가 여당 관계자의 비리를 캐고 다닌 것도(김태우가 직접 말했는데, 이명박근혜 때는 야당이었던 인물들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팔 능력도 없었다는 뜻)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김태우는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었고, 그래서 업무추진 방식도 바뀌었지만 이명박근혜 시절의 방식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지요.
김태우와 자한당, 조중동 같은 기레기들은 관련 법률과 내규, 관례 등에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해 보입니다. 인간보다 시스템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법률과 내규, 관례에는 직급에 따른 재량권을 남겨둡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수많은 변수로 인해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에 법률과 내규, 관례 등에 모두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떤 조직도 하위직이 올리는 모든 것들을 맨 위까지 올리지 않습니다. 하위직의 보고는 팀장이나 중간관리자가 첫 번째로 걸러내고, 그 위의 상관들이 추가로 걸러냅니다. 직급의 단계가 많을수록 최종 책임자(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책상에 놓일 확률은 떨어집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보고라도 각각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상급장의 판단에 따라 재조사가 이루어지거나 첨삭을 거쳐야 합니다. 하위직들은 중간관리자 단계까지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단계에 오르면 최정 결재가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조직에서 직급이라는 단계를 두는 이유는 보고의 가치, 내용의 경중, 파급력과 시급성 등을 따지기 위함입니다. 책임의 정도가 높아지는 모든 단계마다 하위직의 보고가 그대로 올라가면 어떤 조직도 굴러갈 수 없습니다. 하위직 모두가 최고 책임자가 되면 모든 조직은 태산을 넘어 우주로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이 클수록 모든 직급마다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크기가 다른 것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과 질이 하위직와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처럼 직원만 수만 명에 이르는 초대형 기업의 경우 모든 직원이 최고 경영자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면 단 하나의 사업도 추진할 수 없습니다. 직원 모두가 자신의 생각이 옳다며 사업화해야 한다고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직원의 주장을 사업화할 수 있는 기업이란 영원히 나올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직급에 따라 사안을 보는 시각과 관점의 규모와 크기, 깊이와 넓이, 권한과 책임에서 차이가 나도록 조직을 구성합니다.
신재민처럼 김태우도 그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들의 시각과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보고가 당연히 최고 책임자의 책상에 올라가야 할 것들로 보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걸러지고 수정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명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업무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비교하면 대리나 과장 정도에 불과한 신재민과 김태우의 보고들이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김태우의 경우에는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무차별 폭로를 자행하는 것이어서 폭로의 신뢰성도 의심받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김태우의 폭로만 중계방송하듯이 보도하는 SBS와 나머지 언론들이 괜히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고요. 양심과 상식, 정의와 공정, 취재윤리와 기자윤리, 언론윤리는 개에게나 줘버렸으니 이런 기레기 짓거리들을 매일같이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문프와 기자회견에서도 초딩보다 못한 질문들이 난무했던 것도 이들의 수준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썩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무분별한 확장과 이용도 한몫했고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이성과 사고, 철학과 상식, 윤리와 도덕, 법정신과 정의가 추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각 분야에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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