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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의롭지 못한 정의당, 그 편협함에 대해

'효율적 시장 가설'을 두고 지난 30년간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벌이고 있는 이전투구를 보고 있노라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고, 오류와 비약으로 점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론 경제학자(주류경제학)와 행동 경제학자(인지심리학과 사회학 등의 이론과 연구를 대폭 수용)들로 나뉜 이들의 이전투구는 정부와 기업, 국민들로부터 경제학에 대한 혐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정의당의 논리와 행태가 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엘리트 위주의 지배를 위해 다수의 지배를 불가능하게 만든 미국식 양당제(로버트 달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까발린 것)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소수자와 계층을 대표하는 소수정당에게 국회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목적인 연동형 비례제 개헌은 노통의 꿈이었고, 문통의 공약이었다. 민주당이 의석수 감소라는 정치적 피해를 감수한 채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노통의 꿈과 문통의 공약에는 한참 모자란다 해도,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번 개정은 민주당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정의당을 비롯해 군소정당들이 개정안에 합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권위주의와 지역주의로 점철된 한국정당사에서 집권여당이 자신의 의석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대야당인 미국당의 무조건 반대와 개헌을 위한 범여권의 총선 압승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으려면 누더기 개정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했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냉혹하다.

 

 

문제는 미국당이 이런 일보진전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어떤 개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대통령 중심의 한국정치 현실상, 국회의 난립상이 커지는 완전한 연동형 비례제는 득보다 실이 많다. 평균수명과 함께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하는 장노년층이 늘어남에 따라 민주진보 진영이 원하는 형태의 국회 구성도 불가능해졌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미국당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선거법 개정에 무조건 반대로 일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위한 정치적 명분을 쌓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주도한 선거법 개정의 최대 피해자는 자신이라는 정치적 희행양 프레임을 쌓을 수만 있다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당이 믿었던 것은 이명박과 미국당(새누리당)이 임명한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선관위였다. 

 

 

 

보수적인 언론환경도 그들에게 유리했다.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민주당은 최소한의 양보에 그칠 수밖에 없고, 정의당과 기타 정당은 그것이라도 받아들일 것은 어렵지 않은 추론이었다. 패해자 코스프레로 정치적 명분을 쌓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강행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개정을 주도한 민주당은 정치적 도의상 비례정당 창당이라는 반칙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미국당과 함께 열매를 따먹을 정의당은 손해날 것이 없을 터였다.     

 

 

정의당 지지층의 심리도 꿰뚫고 있었다. 노통은 일찍이 정의당의 전신인 민노당 지도부에게 정권을 잡으려면 이념의 강도를 줄이고, 현실상의 국민에게 좀더 다가가라고 말했었다. 이념에 경도되면 그것만이 정의라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표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지 못하거나 국회의 다수당이 될 수 없다면 그들의 이념은 공허하면서도 파괴적인 외침에 불과하다. 필자가 작은 한쪽 구멍으로만 세상을 보려하는 구좌파와 급진좌파를 수구보수만큼 경계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 나온다. 

 

 

미국당의 지도부와 의원들, 지지층이 지적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그들의 두뇌집단마저 그렇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현재의 상황까지ㅡ상황까지는ㅡ내다봤다. 자신에게 1당의 자리를 넘겨줄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것이며, 정의당은 이에 반대할 것이라는 것까지 내다봤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들은 시민사회에서 제안해 민주당이 받아들인 비례연합정당 창당까지 내다봤을 수도 있다. 

 

 

정의당만 합류하지 않는다면 비례연합정당이 현실이 되더라도 특별히 손해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현실은 도외시한 채 자신의 이익만 챙기겠다고 이념적 선명성을 들고나온다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지역 기반의 거대양당 체제는 유지된다. 민주당과의 의석수가 지금보다 벌어진다 해도 개헌선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정의당은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고, 민주당과의 갈등은 문재인 정부 끝까지 이어질 것이다. 

 

 

정의당의 이념 추구 편향은 행동경제학자들로부터 난타를 당한 주류경제학자들의 맹목적인 이론(효율적 시장 가설이라는 사실상의 이념) 편향은 숱한 경제위기를 초래했다. 인간 심리와 행위 및 현실에 대한 보편적 이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전망이론'만으로도 천재들의 경연장인 주류경제학의 이론과 모델들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이론과 이념은 형제지간이라 할 수 있다면, 정의당과 주류경제학자의 편향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정치적 정의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어떤 정의도 공허할 뿐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미국당의 교활한 반칙과 선관위의 불의 때문에 개정 선거법의 취지는 누더기를 넘어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고, 현실은 이미 변해버렸다.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창당은 미국당과 선관위의 반칙과 불의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지 정의당과 군소정당의 그릇을 빼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추론과 이념만으로 좋아질 수 있다면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하지 않았어야 했다. 결과를 원인으로 끌어오고, 연역과 귀납을 제멋대로 뒤섞어버리고, 지나친 단순화(추론화)로 인간과 현실을 도외시한 마르크스의 오류와 잘못이 정치경제적 정의 실현에 실패했음을 받아들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정의당의 반대 논리가 편협하고 멍청하기 그지없다. 정의롭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의당의 목표는 무엇인가?        

 

 

P.S. 세월호참사를 이용해 먹었듯이 코로나19를 이용해먹는 이재명의 행태가 가관이다. 조중동만큼 경향과 프레시안, 오마이뉴스도 문제지만 이재명이 설치는 것에는 구역질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