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후 '적자생존과 돌연변이 도태와 적응'에 의한 자연선택에 대해 더 이상 연구하지 않고 성선택으로 넘어갔다. 인간을 포함해 동물의 진화를 자연선택만으로 설명하는 것에 부족함을 느꼈던 다윈은 '촉진된 진화' 또는 '형질의 폭발이라는 질주적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성선택에 집중했던 것이다. 몇 년 간의 연구 끝에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란 책을 통해 자연선택만으로 설명불가능했던 인간의 뇌 발달(성선택에 의한 창의적 지능의 발현 또는 창발) 같은 단시간에 일어났던 폭발적 진화의 메커니즘을 풀어냈다.
현대의 진화심리학이 이 책을 기반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테지만, 성선택에 대한 다윈의 주장에 대해 당시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다윈은 자신을 후원하던 기득권층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에 놓였고, <종의 기원>에 비견될만한 위대한 저작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한국에서는 <인간의 유래>로 출판)은 생물학과 진화론의 영역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적응 메커니즘의 전도사였으며,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정립한 월리스의 비판이 결정적이었다. 월리스와 다윈을 진화론의 창시자로 만들려고 했던 기득권층이 힘을 합쳐 성선택을 지식의 전당에서 내쫓아버렸던 것이다.
성선택론은 여성에 힘이 실린다. 물론 진화에 대한 선택압은 양쪽에 모두 적용됐기에 상호진화과정이라는 양의 피드백이 적용된다. 남성우월적이거나 남성중심적 진화가 아닌 성평등적 진화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자들을 식구나 친척, 친지, 부족들이 복수해주었다. 가해자를 죽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여성의 성선택이 인류 진화의 핵심이라면 여성의 가임은 절대적인 것인데, 이것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침탈당하는 것을 방치하면 그 부족이나 가족은 생존하지 못한다.
헌데 이른 자가구제를 대신하게 된 현대의 사법제도는 어떠한가? 인권의 발전이 너무 이성적으로 치우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가해자에게는 관대하고 피해자에게는 가혹하게 된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거나, 특히 너무 어려서 더욱 그러하다며 가해자의 인권을 극도로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권에 대한 극단적 이상주의는 피해자에게 더욱 끔찍하게 작용했다. 가해자의 인권에 집중하다보면 피해자는 시야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당시의 반대는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었으며, 남성중심적 세계관과 남성 위주의 권위주의가 반영된 결과였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던 빅토리아시대 때, 종간의 진화는 자연선택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개체간의 진화는 암컷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다윈의 성선택론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치명적 도발이었다. 언어, 유머, 시, 미술, 음악, 스포츠, 정치적 지위, 지식의 축적, 부의 확장ㅐ 등의 발전은 자연선택에 의한 생존가능성에 긍정적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한몫 거들었다. 검증(또는 증명) 가능한 수학적 모델의 부족(수리생물학의 도래로 이는 해결된다)도 과학으로써의 성선택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성선택은 그렇게 사장되는 듯했다.
영상에 보다 자세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znFtXorX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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