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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재인의 리더십을 제대로 이해하면 미래가 보인다



나는 무너져가는 제1야당을 살려내고, 지지율의 폭등을 이끌었으며, 참시한 인재들을 영입하고, 당내에서 새누리당2중대 역할에 충실하던 비주류들을 내보내고, 그 사이에 온갖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가며 김종인을 영입한 뒤, 백의종권을 선언해 박근혜를 거리로 나서게 만들고,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외에는 탈출구가 없게 만들어놓은 문재인 리더십을 이렇게 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무려 한 달 남짓 필자도 이들에 포함됐었다)은 문재인이 노무현 같은 폭발적인 리더십이 없다며 그를 노무현과 별개로 보려고 한다. 지금처럼 박근혜 정부의 폭정이 통치의 금도를 넘어 나라를 말아먹을 지경에 이르렀고, 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인데도 노무현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제1야당의 대표로서 막장 정국을 뒤집어버릴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국정원 불법적인 대선 개입이 밝혀졌고 개표조작의 증거들이 넘쳐나는 데도, 그래서 문재인이 가장 억울할 노릇인 데도 비주류의 압박과 대선불복 프레임에 갇히면 그나마 미래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욕과 비난을 감수해오면서 헌정파괴범이니, 이명박근혜와 함께 대힌민국 3적이란 어리석은 자들의 분노까지도 감내하면서 때를 기다렸으니, 물러 터졌다는 비판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문재인 리더십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증거들로 해서, 문재인이 대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 대선불복 프레임에 갇혀 노통의 가족은 물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은 외면해왔다. 노무현의 수족을 자르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 이 땅의 친일수구세력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고려하지도 않은 채 문재인도 함께 퇴출시키고 싶어했다. 이들은 문재인과 정체불명의 친노 패권주의를 퇴출시는 것을 덤으로 개표 조작만 밝히려 했을 뿐, 그 다음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개표 조작이 인정되면 가장 민주적인 지도자가 뽑힐지, 새누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지, 쓰레기 방송들이 퇴출될 것인지, 나라를 팔아도 35%의 지지를 받는 박근혜의 콘크리트지지층을 와해시킬 수 있을지, 개표 조작을 밝혀낸 다음의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이들은 박근혜를 끓어내린다는 명분으로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운동권세력과 친노 패권주의를 구태정치의 정화로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지정한 지도자라면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세력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되면 어떤 비난도 감수하며 물러날 줄 알아야 하며, 다시 도약하기 위해 내부의 힘을 다지는데 집중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마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박근혜만 아니라 노무현까지도 개표 조작으로 당선된 가짜 대통령이고, 그것을 묵과한 문재인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와 함께 타도의 대상이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문재인이 친노 패권주의에 함몰된 계파의 수장에 불과하다며 당내의 분란뿐만 아니라, 첨예한 여야의 갈등을 유발하는 주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문재인이 비겁하다고 몰아부쳤다. 그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우측으로 옮길 때만이 외연이 확장돼 제1야당이 살아날 수 있다며, 끝없이 문재인을 흔들어대는 비주류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들 모두가 주장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면 한국정치판에 어마어마한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그곳으로 새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는 진공을 싫어하고, 기득권의 힘이 거기까지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새정치의 주인공을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젊은이들이 혁명을 이루면 늙은이들이 기어나와 그 자리를 차지해왔던 인류 역사의 어김없는 되풀이의 진정한 힘에 대해선 터무니없을 정도로 고찰이 부족했다.  



물론 필자도 문재인이 대표에 오른 초반에는 그의 리더십이 노무현처럼 폭발력이 없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그가 노무현 같은 리더십을 가졌다면, 작금의 정국은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풍이 거침없이 제도권의 높은 벽을 타고 넘었다면 문풍도 그러하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비주류 탈당파들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2중대가 됐고, 문재인의 리더십이 발휘될 공간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다시 말할 수 있다, 문재인에게는 평생을 걸쳐 구축한 신뢰의 리더십과 모든 곳으로 파고들 수 있는 성품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알려진 문재인의 삶을 하나씩 되돌아보면, 그는 행동이 필요할 때는 단호했고, 어떤 위협에도 물러섬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정치쇼나 벌이는 인위적인 조작을 극도로 꺼려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의 셀프디스처럼, 폭발적인 파괴력이 없어서 그렇지 그는 물처럼 흘러, 끝내는 모든 것을 담아낼 그런 리더십을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정치는 유권자와 상대를 설득하는 것) 상대의 말을 먼저 들어야 하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뒤, 그에 맞춰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 물과 기름을 섞어내야 하는 정치적 설득은 상대에게 스며들 수 있다. 노무현은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재능과 에너지를 소유했지만, 문재인은 귀에서 진물이 나도록 누구의 말이라도 들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을 키워왔다. 정치인이 말을 잘해야 하는 족속이라면, 노무현의 장점을 수십 년 간 지켜보면서 문재인 대표는 정반대의 방법을 갈고 닦아왔으며 최고의 지도자에 오를 수 있었다. 



필자는 현대의 리더십이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안는 여성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과 현상의 이면을 보기 위해 통섭적 시각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과 논문을 섭렵하면서, 지구온난화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과 맞물린 위험들이 비대칭적 종말(상대적이고 절대적 약자부터 희생양이 되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여성적 리더십과 가장 근접해 있는 신뢰의 리더십이 절대적 요청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초국적기업과 선진국, 세계 상위 1%의 집단인 슈퍼클래스들은 그들만의 생존 전략을 수립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와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의 삶에 치여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적 리더십과 신뢰의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아니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들을 탈출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 비대칭적 종말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그런 지도자의 출현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대처나 박근혜처럼 성별만 여성일 뿐, 사실상의 독재를 강행하고 가부장적 권위에 기반한 통치를 보여주며, 정치적 권모술수와 폭력적 공권력 집행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지도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의 폭발적인 카리스마보다는 문재인의 여성적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리더십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2016년의 대한민국이다. 위험사회가 폭발 직전에 이른 작금의 현실을 고려할 때, 묵묵히 신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마다 자리해 모두를 포옹해주는 그런 지도자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물처럼 유동하는 액체의 리더십은 어느 곳이든 스며들어 상대를 포용하고, 때로는 거대한 벽도 무너뜨릴 수 있는 더 거대한 힘을 보여준다. 물처럼 스며서 마침내 대지의 모든 것을 촉촉하게 적시는, 그런 리더십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여성적인 리더십이며 신뢰가 있을 때만이 작동할 수 있는 리더십이며, 성별만 여자인 박근혜에게 바랐지만 1%의 교집도 이루지 않는 순정한 리더십이며, 노무현의 동반자이자 친구였던 문재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리더십이다.  





세월호 유족을 안아주고, 밀양의 할머니를 위로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비오는 밤에 청와대 앞에 앉아 연좌시위를 벌이고, 유민 아빠의 생명이 염려스러워 단식을 말리려다 단식을 함께 하고, 위안부협상을 원천무효라 선언한 후 위안부할머니를 찾아간 것에서 문재인만의 리더십을 본다. 지금은 폭력적인 혁명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지만, 한 마리의 양을 챙겨야 하는 모세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어린 자식이나, 한 분의 위안부할머니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예수를 닮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처 찾지 못한 곳에서 그의 빈자리를 메우는 문재인은 여성적 리더십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 작금의 세상이란 지독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이며, 그 자체로 지옥이다.



그런 압도적인 권력에 맞서 힘으로 맞붙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은 상대의 힘을 풀어내고 폭발 직전의 분노를 껴안는 여성적 리더십이 필요하며, 한 사람의 목숨이 그 어떤 대의보다 앞선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함도 요구된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란 바로 이런 리더십에서 흘러나오는 유토피아적 발현이다. 





김영오씨의 단식을 말리려고 왔다가 그를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대선주자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서 단식을 함께 함으로써,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정치적 지위보다 중요함을 보여준 문재인의 모습에서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소통과 포용, 정의의 리더십을 본다. 새롭게 정한 당명처럼 더불어 가는 리더십이야말로 온갖 위기를 최대한 키운 이명박근혜 정부의 8년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필자의 판단이 100% 정확할 수 없지만, 안철수 신당(국민의당)이 박근혜의 레임덕을 막아주고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지랄맞은 현실 때문에 문재인의 리더십에 한 표를 줄 수밖에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막아야 할 것은 친일수구세력의 장기집권이며, 이명박근혜 10년만으로도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권불십년이나 화무십일홍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