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에 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법치주의입니다. 박 대통령이 몽테스키외가 정립한 삼권분립에 의한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정치는 국회의 몫이라는 발언에서도 수없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야당을 향해 특정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사람이 대통령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어서 법치주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박 대통령은 유독 자신과 측근이 연루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법치주의의 시발점인 검찰에게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발언을 남발합니다. 그것도 사건의 당사자들이자 받아쓰기에 바쁜 청와대 수석들과의 폐쇄된 회의를 이용해서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수석비서관회의 석상에서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라고 단정했습니다. 세계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로 인해 정윤회 문건의 내용이 찌라시 수준의 정보인지, 사실인지,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검찰에 의해 밝혀질 것인데 대통령은 찌라시라고 단정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발 빠르게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헤 추가 폭로를 막는데 성공한 것도 모자라, 사실상의 원고인 박 대통령이 검찰이 밝혀야 할 문건의 진실 여부를 단정해버리면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는다 한들 국민이 믿을 리도 없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주장하는 법치주의도 불가능해집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법치주의는 제왕적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정윤회 문건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소 중 소추가 면죄되는 대통령의 특권을 넘어서고,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발언까지 더하면 탄핵의 요건이 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연관된 정윤회 문건 관련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될 동안 대통령은 일체의 언급을 자제해야 합니다.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발언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자 본질이며, 민주주의의 최소치인 삼권분립의 정신이자, 대통령이 반드시 지키고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예외상황이어서 국법이 정지되는 독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 이상,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된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헌법, 법률은 물론 분명하게 형성된 여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정윤회 문건이 정말로 찌라시라면 몇 주면 그 진위가 가려질 수 있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얼굴 붉히며 성난 표정으로 찌라시 운운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건의 내용이 거짓말이니 명예훼손에 대한 내용 확인보다 문건 유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검찰에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도 안 됩니다.
세계일보에 대한 압수수색도 그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합당하다면 진행될 수 있듯이(세계일보의 추가 보도와 압수수색에 대한 저항은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별개의 사안이라 여기서 다룰 일은 아니다), 대통령도 검찰로 수사가 넘어갔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일부 세력이 국정을 농단하고 국기를 문란시킨 것이라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처럼 바다 깊은 곳에 진실이 수장돼 있어서 몇 년이 걸려도 그 진위를 밝힐 수 없는 것도 아니어서 검찰 수사를 조금만 기다리면 백일하에 드러날 사안입니다. 검찰 수사에 정치적 입김이나 정치적 해석이 작용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며, 국민적 불신과 의혹을 해소하려면 무조건 그래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법치주의란 대통령은 되고, 그 밖의 나머지는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헌법 제1조를 개정하지 않는 이상,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박 대통령이 여당의 지도부와 의원들을 호출해 찌라시를 또다시 강조하고, 새누리당이 그렇게도 바꾸고 싶어 하는 광복절이 건국절이 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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