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오너의 딸인 조현아는 이 땅의 수많은 장그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땅콩 후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재벌의 세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땅콩 후진’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너 딸의 명령에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기장은 항공기를 후진시켰고, 서비스를 담당해야 할 사무장은 무력하게 내렸으며, 거대기업 대한항공은 오너의 딸을 감싸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동안 표 값을 지불한 승객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문제의 항공기는 승객이 지불한 돈으로 비행을 함에도 그들은 철저하게 무시됐습니다. 이런 초법적인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조현아가 대한항공 임직원들에게는 신과 동격인 오너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빚으로 샀을 항공기는 물론, 승객이 지불한 돈으로 월급을 주면서도 자신이 기장과 사무장, 승무원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땅콩 후진’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빼앗긴 승객들의 피해는 승무원의 서비스로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왔지만,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한 지금에는 오로지 돈이 곧 권력입니다. 축적돼 견교해진 돈의 크기에 따라 권력의 크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초법과 불법, 탈법적인 행동도 돈의 크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됩니다. 재벌가의 특권의식과 슈퍼갑질이 일상화됩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하는 독점 자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하에서 가장 잘 돌아가고 성장하지만, 축적돼 막강한 권력이 된 거대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됨에 따라 민주주의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세습되는 독점 자본의 시대에 들어서면 사회경제적 평등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만큼 성가신 것이 없습니다.
왕족과 귀족에게 부와 권력이 독점되던 봉건사회에서 제3의 신분으로 등장해 새로운 부와 권력을 늘려가는 부르주아에게는 자신의 재산과 시장경제를 지켜줄 국가와 함께, 자유방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한국에서는 왜곡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이에 대해서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자들의 속셈’에서 다루겠습니다)가 최상의 체제였습니다.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부르주아가 민주주의와 손을 잡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이 된 독점 자본이 봉건시대의 왕족이나 귀족처럼 거대한 부를 세습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면 민주주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유의 원천이 사라진 불평등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가 단위에서 세계로 넓혀진 시장의 통합은 불평등을 지구적 차원으로 고착화시킵니다.
독점 자본의 권력이 이렇게 세계화되면 절대군주를 떠올리는 ‘땅콩 후진’이 가능한 일이 됩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부의 독점이 이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세습되는 거대한 부의 독점을 분산시키면 이런 봉건적이고 초법적인 행태는 불가능해집니다.
노무현 정부 때 민주주의가 확대됐던 이유
민주주의국가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밖에 없습니다. 독점되고 세습돼 초국가적이 되는 독점 자본의 속성을 조세정의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화 하는 것입니다. 세습되지 않는 한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등 사회적 비용에서 자유로운 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치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대한 부가 세습되지 못하게 하는 것,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 시장의 기능이 원래는 공정한 경쟁과 가격을 형성하는 정의 실현의 장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바로 잡는 것, 국민행복권 실현을 위해 불평등한 탄생을 평등한 공존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조현아 앞에선 또 다른 장그래인 기장과 사무장, 승무원들이 불평등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항공기가 출발하면 그때부터는 기장과 승무원의 역할 하에 표 값을 지불한 승객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정치가 죽으면, 그래서 독점 자본을 견제할 것이 사라지면 계약직 사원도 아닌 정규직은 물론 서비스 비용을 지불한 승객마저도 또 다른 장그래로 만드는 ‘슈퍼갑질’을 방지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경우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재벌 오너 중에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여전히 제왕적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후진'과 '무늬만 사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재 시대의 압축성장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한 정실자본주의와 세습자본주의의 천국인 대한민국은 극소수의 거인과 절대다수의 난쟁이로 나뉘어진 후진국에 불과합니다.
흔히들 경제가 밥 먹여 준다고 하지만 이는 상위 10%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지 하위 90%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거대한 지적 사기입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경제 규모가 수백 배로 커졌지만, 중산층이 줄고 하층민이 늘어나는 것에서 보듯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위 90%에게 늘어난 것은 빚과 구조화된 불평등과 새로운 형태의 차별입니다.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진들 부의 재분배와 경제민주화를 강제하는 정치의 역할이 사라지면 제2, 제3의 ‘땅콩 후진’과 ‘무늬만 사퇴’인 재벌가의 특권의식은 반복될 뿐입니다. 하위 90%를 밥 먹여 주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부와 권력의 독점을 최소화하는 정치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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