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의 경쟁적인 세계에서 다수의 패자들이 떨어진 이삭을 줍는 동안, 성공한 자들은 식탁 위에 차려진 이익들을 쓸어 담는다. 바로 유연성이 그러한 시장을 형성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가 없는 곳에서는 이익이 권력을 지닌 최고위층에게로 돌아가고, 규제가 없는 체제에서는 모든 것을 장악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익을 차지하게 된다. 유연성은 이렇게 승자만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킨다.
위의 인용문은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 나오는 내용으로, 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겠다고 하는 노동시장 개혁(노동유연화)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한 일이란 자본(기업 오너와 경영진, 대주주와 고용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착취를 유연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빨긴 색으로 강조를 준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란 근무연속에 따라 자동적으로 호봉과 복지후생비가 올라가는 정규직 임금체계(연공서열제)를 말합니다. 비정규‧임시직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정규직 임금체계는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고정비용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자본은 핵심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를 아웃소싱하고, 자동화를 통해 비정규‧임시직을 늘렸으며,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상시적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임금체계는 워낙 저항이 심해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돼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선진복지국가마저 무너뜨렸지만, 연공서열제는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연말정산대란의 결과에서 보듯이 유리지갑들이 한 마음으로 뭉치면 어떤 정부도 권력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비정규‧임시직은 하루하루의 삶에 치여 정치적 연대를 구축할 수 없도록 길들이는데 성공했지만,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을 버틸 수 있는 정규직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노동시장 개혁, 즉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자본의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정규직 임금체계를 파괴해서 하향평준화시킬 수 있다면, 정규직과의 차별을 근거로 한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개선 요구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본의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기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 정부였던 이명박 정부는 정규직 노조를 파괴하는데 집중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날개가 꺾인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개혁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규직의 임금체계가 무너지면 임금의 하향평준화는 대세로 굳어집니다.
사실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는 유권자들도 거의 대부분 정규직에 분포돼 있습니다.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증세를 해서라도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정부와 맞서려면 피고용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학력자와 전통의 중산층들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는 것도 이런 생존의 필요성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돈이 곧 힘인 자본주의 세상에서 절대다수의 피고용자들이 부를 독식하려는 극소수의 고용주(자본)와 맞서려면 노동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비정규‧임시직이 하루살이처럼 사는 한 이는 불가능합니다. 이에 반해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은 복지 확대에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반대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확대가 공멸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은 각국의 정부들이 비정규‧임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집중하는데 비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대한민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가면 뒤에서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파괴하는데 성공하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는 유권자들마저 보수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개선 요구는 시대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모두가 비정규직화됐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처우개선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비정규‧임시직들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화려한 스펙과 능력으로 중무장한 이들이 비정규‧임시직으로 내려오면 현재의 비정규‧임시직들은 알바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교훈은 부의 불평등이 초래한 위험의 불평등입니다. 선진국 초입에 있는 대한민국이 패선이 돼야 할 여객선을 수입해 위험천만한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가난해진 사람들을 상대로 후진국형 장사를 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작고한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경고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부의 불평등과 만나면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양산됩니다.
정부에 의해 정규직 과보호론이 제기된 것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할 정도로 부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명목 상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아니 알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면 이를 되돌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필자의 눈에는 자본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두고 정규직에서 내려온 신규 비정규직들과 기존의 비정규‧임시직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끌어내리는 것 중, 선택은 유권자들이 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것도 유권자들이라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분명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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